2억, 누군가에겐 평생 만져보지 못할 돈이지만 재벌가 사람들에겐 쇼핑 한 번 정도에 쉽게 쓸 수 있는 돈이다.지켜주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껌값이나 다름없는 돈 몇 푼 쥐어주고 쫓겨나는 신세가 기막혔지만 이 돈이라도 챙기는 게 이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입술을 깨문 채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빼앗 듯 수표를 낚아채고 돌아섰다.윤시라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쯤 다시 휴대폰을 든 집사가 천한강에게 전화를 걸었다.“돈 받고 떠나셨습니다.”집사의 말에 흠칫하던 천한강의 얼굴에 실망감이 피어오른다.솔직히 남아서 어떻게든 혼자 살아보겠다고 했다면 몰래 도와줬을 것이다. 결국 눈앞의 돈을 선택했구나... 그래. 이것도 그 아이 팔자라면 팔자겠지.“그래. 정말 떠난 게 맞는지 지켜봐.”“네.”어젯밤 천한강 역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동이 틀 때까지 고민한 끝에 그가 내린 결정이 바로 이것이었다.다른 가족과 평생 일궈온 사업을 지키기 위해 포기할 건 포기하고 내칠 건 내치자.말 그래도 두 번 자식을 버리게 된 것 같아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윤시라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워낙 실망스럽기도 했고 잠깐의 죄책감보다는 가지고 있는 걸 잃게 될 거란 두려움이 더 컸으니까.생각외로 부모 자식간의 정이라는 것도 시간을 들여 키워가야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죄책감의 무게는 가벼웠고 어느새 그 자리에 남은 건 실망감뿐이었다.그래. 지금까지 시라가 없어도 잘 살아왔잖아. 이 나이에 자식 때문에 골치 아프고 싶지 않아. 이게 최선이야...한편, SC그룹.한유라의 전화를 받은 소은정이 고개를 갸웃했다.“너 일 안 하니? 요즘 아줌마 회사로 출근 안 하시나 봐?”그녀가 알고 있는 한유라의 어머니라면 출근 시간에 친구와 전화로 수다나 떨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된통 혼내실 게 분명했으니까.소은정의 말에 푸흡 웃음을 터트린 한유라가 말을 이어갔다.“빅뉴스 알려주려고 전화한 건데 이럴래? 아저씨가 결국 윤시라 그 여자를 내쳤대. 오늘 바로 해외로 출국했다던데?”“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거성 프로젝트의 유럽 진출 사안으로 전동하는 유럽 출장을 떠나야 했다.애초에 유럽 진출은 그가 먼저 제안한 거기도 했으니까.이른 저녁, 소은정은 배웅을 위해 전동하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분명 별마음 없이 온 건데 정작 떠나보내려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앞섰다.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전동하가 소은정의 코트를 잘 여며주었다.“곧 돌아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동안 매일 내 생각하는 거 잊지 말고요.”하여간, 느끼하다니깐.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가 그녀의 잔머리를 정성껏 넘겨주었다.“전화도 문자도 자주 해요. 시차가 있긴 하지만 보면 바로 답장할 거니까.”“알겠으니까 얼른 가요.”소은정이 그의 등을 떠밀고 피식 웃던 전동하가 홱 돌아서더니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갑작스럽게 안긴 소은정도 살짝 흠칫했지만 굳이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이 순간만큼은 북적거리는 공항에 두 사람뿐인 듯 싶었다.“사귀고 나서 이렇게 오래 떨어져있는 건 처음이네요.”전동하가 한숨을 푹 내쉬자 소은정이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마이크보다 더 어리광쟁이네요.”싱긋 웃던 전동하가 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말이 나와서 말인데 마이크한테는 너무 자주 가지 말아요. 괜히 더 들러붙을 거니까.”이미 오는 내내 수없이 들었던 당부라 소은정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이 남자 이렇게 잔소리가 심했던가?공항에 “전동하 고객님 얼른 탑승해 주세요”라는 공지가 퍼질 때쯤에야 전동하는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소은정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전동하를 향해 손을 저었다.VIP 통로라 망정이지 다른 곳이었으면 사진이 찍혀도 백 번은 찍혔을 거란 생각에 소은정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은정, 사랑꾼 다 됐네.몇 분 뒤, 전동하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비행기 탔어요. 얼른 가요.”문자를 확인한 뒤에야 돌아서던 소은정의 미소가 차갑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박수혁의 눈동자는 어둡기만 했다.“아직 내 질문에 답 안 했잖아.”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래?소은정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무슨 질문?”“왜 하필 저 자식이냐고. 왜 전동하는 되고 난 안 되냐고.”전동하? 외모로 보나 재산으로 보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보다 나은 게 없는 남자잖아. 그런데 왜 난 안 되고 그 자식은 되는 건데...박수혁의 말에 흠칫하던 소은정은 차분한 표정으로 박수혁의 얼굴을 다시 훑어보았다.이혼할 때의 그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박수혁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항상 그녀에게 선을 긋고 그녀에게만큼은 잔인할만큼 차가웠던 남자였는데...어쩌다 입장이 이렇게 바뀌게 된 걸까?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박수혁이 바뀐 모습을 보여줄 수록 과거 그의 차갑던 모습만 더 뚜렷해졌다.“이유 같은 건 없어. 나 동하 씨랑 있으면 행복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름 잘 맞고 잘 어울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이미 과거야.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말을 마친 소은정이 그를 지나치려 했지만 박수혁은 다시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과거? 정말 너한테는 과거일 뿐이야?”상처받은 야수 같은 박수혁의 눈동자가 일렁였다.“알아. 내가 잘못했던 거.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네 상처 다시 보듬어 주고 싶었어. 도대체...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면 날 용서해 줄 건데? 내가 아무리 해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거 알아. 그러니까 더 잘해줄게. 그러니까 제발...”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의 말에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었다.서민영이 생각나서였다.그녀에게 피를 뽑아줄 때마다 박수혁에 대한 사랑도 함께 빠져나간 걸까?이혼 뒤 박수혁이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인간은 결국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고 이제 와서 비굴하게 구는 박수혁보다 과거 사랑에 상처받았던 그녀 자신이 더 불쌍했다.그러니까 우린 안 돼.“아무것
“은정 씨, 나 강서진이에요. 여기 잠깐 와줄 수 있어요? 형이 많이 취했어요. 근데 굳이 운전해서 은정 씨 만나러 가겠다고 난리라... 기사도 이미 퇴근했고 저희도 전부 술을 먹어서 운전을 못해요. 그러니까 은정 씨가 와주면 안 돼요?”강서진의 급박한 목소리에 방금 전까지 피곤하던 마음이 싹 가셨다.잔뜩 굳은 표정의 소은정이 한숨을 푹 내쉬었고 옆에서 통화 내용을 전부 듣고 있던 우연준도 그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지금 어디예요? 거시서 기다려요.”순간 강서진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아. 지금...”주소를 들은 소은정이 침착하게 통화를 마치자 우연준이 차키를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지금 가시려는 겁니까? 제가 운전하겠습니다.”“아니에요.”대답과 동시에 소은정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여보세요? 경찰이죠. 지금 음주운전을 시도하려는 현장을 목격해서요. 네, 지금 당장 와주세요. 여기 주소가...”이에 우연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세상에... 대표님 꽤 세게 나가시네.한편 통화를 마친 강서진은 꽤 취한 박수혁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형,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나머지는 형이 알아서 해. 차에 타. 은정 씨 오면 바로 시동 걸겠다고 협박을 하든 애원을 하든 하라고...”강서진의 말에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소은정이 온다는 소식에 기쁘면서도 왠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하지만 알코올 때문에 이미 이성이 마비된 그는 더 고민하지 않고 고분고분 강서진에 의해 차에 탑승했다.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던 강서진이 말했다.“너무 고마워하지 마. 여자들은 워낙 마음이 약하잖아? 게다가 형이 전동하 그 자식보다 못한 게 뭐야. 난 형 응원해.”20분 뒤, 혼자 운전석에 앉아있는 박수혁은 왠지 모르게 손바닥에 식은 땀이 났다.이때 저 멀리 도로 끝에서 차량 조명이 반짝이고 그제야 잔뜩 경직되어 있던 그의 몸에 힘이 풀렸다.그리고 혹시나 술 냄새가 덜 나지 않을까 싶어 미리 준비해 둔 술을 들어
잠시 후, 이한석이 도착하고 경찰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곧 상황이 종료되고 이한석이 다시 차쪽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까요?”눈을 꼭 감고 있던 박수혁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참 매정하다...”주어는 없었지만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천하의 박수혁에게 이렇게 허탈함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은 소은정뿐일 테니까.이한석이 정색하며 말했다.“대표님, 여긴 보는 눈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괜히 시끄러워질지도 모릅니다. 제가 모셔다 드리죠?”드디어 눈을 뜬 박수혁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이고 곧 아무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그러자 이한석이 부랴부랴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SC그룹.소은정과 우연준이 차례로 사무실을 나섰다.먼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모습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할 말 있으면 해요.”소은정의 솔직한 질문에 우연준이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이래도 정말 괜찮을까요? 박수혁 대표가 알기라도 하면...”“당연히 알게 되겠죠. 아니, 차라리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계획은 안 통한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차가운 미소를 짓는 소은정의 모습에 우연준이 다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한때 박수혁에게 그렇게나 일편단심이던 소은정이 이렇게 매정하게 변하다니... 시간이 나름 많이 흐르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차키를 누른 소은정이 우연준을 돌아보았다.“내가 직접 운전할 거니까 우 비서님은 어서 퇴근해요.”고개를 끄덕인 우연준은 그녀의 차량이 떠나는 걸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자신의 차에 탑승했다.오피스텔에 도착한 소은정은 바로 전동하의 전화를 받았다.시차에 따르면 전동하가 있는 곳은 아마 아침 9시일터.“아직 안 자고 있을 줄 알았어요.”소은정이 피식 웃었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요?”“새 프로젝트 들어간다고 했잖아요. 은정 씨라면 무조건 야근할 것 같아서요.”스쳐지나가듯 말한 건데 그걸 기억하다니.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그쪽은 어때요? 잘 돼가요?
소찬식의 말에 흠칫하던 소은정이 눈을 반짝였다.“선생님이요? 귀국하셨다고요?”소은해도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방 선생님이요?”방지숙은 국내 톱 아티스트로 해외 공연이 끊이지 않는데다 업계에서는 거의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물론 소씨 일가 남매들에게 방지숙은 평범한 아티스트 그 이상이었다. 그녀는 소은정 어머니의 선생님이었으니까.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나서 방지숙은 자주 아이들을 보러 오는 등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 메꿔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그리고 소은해를 연예계로 데뷔시켜준 것도 방지숙이나 다름 없었고 방지숙의 인지도 덕분에 소은해는 신인 시절부터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적어도 선배 눈치를 살피면서 굽신거릴 필요는 없었으니까.뭐 다들 대학교로 입학하고 각자 일 때문에 바쁘게 지내면서 얼굴을 못 본 지 꽤 되었지만 말이다.벌써 7년 전이네... 선생님 얼굴 마지막으로 뵌 게...“너희들 다 방 선생님이랑 친해? 부럽다...”김하늘이 미간을 찌푸렸다.고개를 끄덕이던 소은정이 대답했다.“너도 방 선생님 팬이었지? 오늘 성덕 된 거네?”소은호와 한시연 역시 서로를 마주보다 싱긋 미소를 지었다.잔뜩 흥분한 표정의 소은해가 바로 주방으로 달려나갔다.“지금 어디까지 오셨는데요? 내가 직접 모시러 가야겠어요!”아들의 호들갑에 소찬식이 눈을 흘겼다.“지금 이미 오시는 중이야. 곧 도착하시니까 조용히 앉아있어!”잔뜩 신난 소은해는 소찬식에게 욕을 먹어도 좋기만 한지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그를 구박만 하는 소찬식과 달리 방지숙은 네 남매 중 소은해를 가장 아꼈다. 예술 재능이 뛰어나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높은 기대를 걸었으니까.20분 뒤, 방지숙이 도착했는지 조용하던 정원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가장 먼저 인기척을 들은 소은해가 버선발로 현관을 뛰쳐나갔다.역시나 방지숙이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50이 넘는 나이임에도 방지숙은 여전히 우아하고 꼿꼿했으며 기품이 흘러넘쳤다.그런 방지숙을
역시 선생님! 내 선물을 빼먹을 리가 없지!순간 소은해가 눈을 반짝였다.“역시, 선생님은 날 가장 아끼신다니까. 제 선물이 가장 좋은 거죠?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주시는 거 맞죠?”소은해는 어이 없다는 표정의 소은정을 애써 무시한 채 싱글벙글 웃으며 선물을 열어보았다.그리고 안에 든 물건을 확인한 순간, 표정이 어색하게 굳더니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선물 상자 안에 든 건 대본이었다.“돌려서 말하지 않으 마. 요즘 연예계에서 나름 잘 나간다는 얘기는 들었다. 뭐 세계적인 톱스타께서 연극 따위에 관심을 가져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내가 준비 중인 연극이 하나 있거든? 그 중에 서생 역할을 맡을 배우가 아직 캐스팅이 안 됐네. 오디션 한 번 봐봐. 물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오디션 기회를 주는 것까지야. 역할을 따낼 수 있을지 말지는 네 능력에 달렸겠지. 물론, 연극에 관심 없으면 그냥 못 들은 걸로 하고.”방지숙의 말에 소은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볼게요. 무조건 볼게요.”방지숙이 추천하는 배역이라면 얼마나 좋은 역할일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연예계에서 이미 톱을 찍은 그에게 더 이상 비싼 출연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인기란 거품과 같아서 언제든지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니까.그가 원하는 건 좋은 작품의 좋은 배역을 만나는 것이었다. 원하는 작품만 하기 위해 직접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그가 가장 원하는 무대, 진정한 예술의 전당이 그의 앞에 펼쳐졌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방지숙의 제안을 듣던 소찬식이 코웃음을 쳤다.“쟤는 이미 연예인 물을 너무 많이 먹었어요. 그 동안 돈을 너무 쉽게 번 거지. 연기하는 법은 진작 잊어버렸을 걸요? 차라리 다른 사람을 찾는 게...”“아빠, 저 누군지 아시잖아요.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소은해예요. 기회 한 번만 주시면 최선을 다해 연기할게요.”다급해진 소은해는 급기야 발까지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아빠, 오빠 겁 주
능글맞은 미소로 대답하던 소찬식이 집사에게 좋은 술을 가지고 오라 분부했다.한편, 저택을 들어가려던 소은정은 여전히 정원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소은해와 김하늘을 바라보았다.반 년 이상 떨어져 지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쉽게 결정하기 힘들겠지...식사를 마친 방지숙은 호텔로 돌아갔다.집을 나서기 전 방지숙은 소은해에게 잘 고민해 보라며 다시 언질을 주었다.뭐, 고민을 위한 시간은 하룻밤뿐이었지만.내일 바로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더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가족들 중 누구도 소은해에게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김하늘, 소은해 두 사람이 결정해야 할 일이니까.“오빠, 난 기다릴 수 있어. 그러니까 선생님 따라서 가. 오빠가 바라던 기회잖아. 난 괜찮아, 진심이야.”오빠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야지. 나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건 죽는 것보다 더 싫어...그녀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소은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방지숙과 함께 출국하기 위해 소은해도 공항으로 향했다.공항으로 가는 내내 소은해는 김하늘을 잘 보살펴야 한다며 소은정에게 당부 또 당부했다.같은 말도 여러 번 들으려니 짜증이 치밀고 소은정이 오빠를 홱 노려보았다.“아, 알겠다고! 그만 좀 해! 내가 내 친구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잠시 후,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전신무장을 한 소은해와 김하늘, 소은정이 공항에 도착했다.아쉬움 가득한 눈빛의 소은해와 달리 김하늘은 무덤덤하게 잘 지내라는 말만 건넬 뿐이었다.너무나도 차분한 그녀의 모습에 소은해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할 수만 있다면... 떠나기 전에 너랑 혼인신고 하고 싶었는데.”그의 말에 흠칫하던 김하늘이 고개를 들었다.“오빠, 우린 아직 젊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너 혼자 두고 가려니까 마음이 안 놓여서 그렇지... 결혼이라는 명분으로라도 널 붙잡아두고 싶으니까.”진심이 담긴 소은해의 말에 김하늘이 두 눈을 깜박였다.“오빠, 우리가 1, 2년 안 사이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