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감정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라... 두 사람 참 다 이기적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다 성인이고 두 사람 사이의 연애에 제3자인 내가 왈가왈부할 건 아닌 것 같아. 뭐가 됐든 너만 행복하면 됐어.”그나마 다행인 건 한유라가 소은호에 대한 집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이었다.소은호에 대한 한유라의 감정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오빠에 대한 동경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다.그래서 소은호의 행복을 위해 보잘 것 없는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온 것이겠지.하지만 그녀에게 민하준은 마약 같은 존재였다. 처음 만난 순간 오고 가는 시선 사이에 불꽃이 튀기는. 진정한 남녀 사이의 관계.그러니 모든 걸 감수하면서도 민하준과 함께 하려던 것이겠지...소은정과의 통화를 마친 한유라는 베란다로 향했다.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는 그녀의 표정은 그 언제보다 더 가벼웠다.‘다행이다... 이제 숨기는 것도 거의 한계였는데 이젠 좀 더 편해지겠어.’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선 한유라의 시야에 잔뜩 굳은 얼굴의 민하준이 들어왔다.검은 눈동자에 스치는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을 읽어낸 한유라는 왠지 당황스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다가갔다.“다 씻었어?”민하준의 바디워시 향이 그녀의 코끝을 자극했다.하지만 그녀의 손목을 낚아챈 민하준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단단히 화가 났는지 호흡마저 더 거칠어졌다.“누구랑 통화한 거야?”“은정이.”한유라가 그를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무슨 대화 나눴는데?”민하준의 뜨거운 시선에 얼굴이 뚫릴 것 같았지만 그 시선을 조용히 마주하던 그녀가 다시 피식 웃었다.화사한 미소에 왠지 모를 자조가 섞여있었다.“다 들었으면서 뭘 물어?”그녀의 손목을 잡은 민하준의 팔목에 핏줄이 꿈틀거리고 눈동자에 담긴 감정도 쏟아질 듯 일렁거렸다.“결혼은 안 할 거라고? 그게 네 마지노선이라고?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데 단 한 번도 결혼 생각은 안 했다고?사실 민하준은 결혼 여부에 딱히 의미를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그런 것에 신경을 썼다면 인생의 유일한 기회를 거래의 조건으로 이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한유라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혼을 결심했다.그런데... 쪽팔려서 결혼을 안 하겠다니?내가... 내가 도대체 뭘 더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실망 가득한 그의 모습에 한유라는 싱긋 미소를 짓더니 갸느다란 팔로 그의 목을 휘감았다.반짝이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남자의 마음을 현혹하는 요괴 같기도 했다.민하준의 품에 얼굴을 기댄 한유라가 주문을 걸 듯 속삭였다.“아니,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당신이 날 위해 한 모든 것... 영원히 기억할게. 하지만 우리... 결혼이라는 형식적인 법적 관계에 얽매이지 말자.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아. 하지만 우린... 지금 이대로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거잖아.”그녀의 말에 민하준의 가슴이 욱신거렸다.분명 한유라의 동작 하나하나는 그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글자 하나하나마다 그의 숨통을 틀어막 듯 치명적이었다.이 세상에 명분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그런데 그 명분이 한유라는 싫단다.애초에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속여 신뢰를 잃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왠지... 마음 속 한 구석이 불편했다.한유라를 품속에서 떼어낸 민하준이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살펴보았다.“유라야, 난 언젠가 다시 결혼을 해야 할지도 몰라... 너도 알겠지만...”어쩌면 언젠가 평범한 가족이 가지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갑게 식어가는 한유라의 표정을 보는 순간 목구멍이 꽉 막힌 듯 뒷말은 꺼낼 수 없었다.단호하게 그의 팔을 풀어낸 한유라가 팔짱을 꼈다.매혹적이던 눈동자는 날카롭게 변하고 사랑을 읊던 빨간 입술은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다.“그럼 헤어지면 되는 거지 뭐. 걱정하지 마.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진 한유라가 홱 돌아섰다.결혼을 원하는 거면 다른 사람한테로 가봐. 난 그 로망 영원히 이루어줄 수 없을 테니까...한유라는 민하준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만큼 민하준이 밉기도 했다.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은 영원히 안 돼...엄마의 기대를 져버리고 친구들의 실망까지 감수하며 그를 만나는 것, 그녀가 민하준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한유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았지만 사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왠지 모를 답답함에 속이 뒤집어질 것만 같았지만 민하준 앞에서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민하준이 결국 성큼성큼 문을 나섰다.쾅!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제야 한유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차라리 잘됐어. 괜한 기대하는 것보다 미리 실망하는 게 나으니까.몇 분 뒤, 감정을 추스른 듯한 민하준이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녀와는 아무런 말도 섞지 않은 채 바로 안방으로 향했다.안방 문이 닫히고 그제야 고개를 숙인 한유라가 피식 웃었다.그녀도 알고 있었다.깨진 그릇을 아무리 붙여도 그 자국을 지울 수 없듯이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두 사람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며 언젠가 민하준이 결혼을 한다 해도 그 상대는 그녀가 아니라는 것을.천천히 한숨을 내쉰 한유라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그래. 어쨌든 다시 돌아왔으니까 내가 먼저 달래야지 뭐.티비를 끈 한유라가 사뿐사뿐 안방으로 걸어갔다.돌아누운 채 괜히 자는 척하는 남자를 바라보던 그녀가 천천히 옷을 벗었다...한편, 인터넷은 여전히 김하늘과 소은해의 열애설로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다음 날, 도준호 대표의 압박에 못 이겨 소은해는 결국 대중들에게 자신의 열애설에 대해 설명을 하기로 결정했다.사실 평소 소은해는 아무리 공인이라도 사생활까지 전부 밝혀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긴 했고 연예인이 아닌 김하늘이 괜히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이 앞섰다.게다가 며칠 전 바로
그리고 하루종일 마음속 한 구석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그래. 공인인 오빠도 저렇게 당당한데 내가 뭐라고 시무룩해 있었던 걸까?은정이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을 때는 딱히 실감이 안 났었는데 이제 알겠네. 나랑 오빠 사이의 장애는 사실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냈던 거란 걸......별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소은정은 굉장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파티장 앞에 나타났다.성강희가 와달라고 조르지 않았더라면 전동하와의 약속을 미루면서까지 올 이유가 없는 파티였다.차에서 내린 소은정이 눈부신 조명에 눈을 살짝 찌푸리고 문앞에서 추위에 덜덜 떨던 성강희가 성큼성큼 다가왔다.“야, 너 20분이나 늦은 거 알아?”성강희의 불만섞인 목소리에도 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했다.“그러게 오기 싫다고 했잖아.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네 체면 세워준 거니까 징징대지 마.”순간 성강희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다른 여자였다면 5분이라도 늦으면 바로 손절했겠지만 소은정은 달랐다.어려서부터 그녀에게 양보하는 게 익숙해져서일까? 소은정 앞에서만큼은 왠지 작아지는 성강희였다.“그런데 무슨 파티인데?”비즈니스 파티면 그녀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의아했다.“심강열 생일 파티. 나도 심 대표랑 안면 튼지는 얼마 안 됐는데... 그래도 얼굴은 비춰야 할 것 같아서.”순간 발걸음을 멈춘 소은정이 얼굴을 찡그렸다.“왜 그걸 이제야 말해?”“왜 갑자기 정색을 하고 그래?”성강희가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야, 아무리 그래도 유라 약혼남이잖아. 한유라... 정략결혼이라곤 하지만 약혼남 생일에 얼굴도 안 비추는 건 정말 너무하지 않냐? 그러니까 친구인 우리라도 참석해야지.”소은정의 마음이 착잡해졌다.‘아... 괜히 왔다. 성강희 이 바보 멍청이! 유라가 왜 안 왔겠어? 정말 아직도 모르겠냐고!’속으로 성강희를 향한 욕설을 쏟아내고 있을 때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심강열이 모습을 드러냈다.소은정을 발견한 그 역시 흠칫하더니 형식적인 미소와 함께 다가왔다
박수혁의 뼛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소유욕이 활화산처럼 터지고 있었다.성강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해서 참석한 파티에서 정말 소은정을 만나게 되다니.꾹꾹 눌러담았던 그리움이 통제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해외 지사에 출장갔다가 네 선물도 샀었어. 회사로 보냈었는데 왜 안 받았어?”박수혁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그녀의 취향에 따라 고르고 또 고른 선물인데... 왜? 마음에 안 들었나?박수혁의 질문에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아무 이유도 없이 선물 주고 받을 사이는 아니잖아?”차가운 목소리로 선을 긋는 소은정의 모습에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전동하 대표 아들은... 괜찮아?”“응.”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정의 눈빛에서는 그 어떤 고마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은정이도 나와 전기섭 사이에 뭔가 있다고 의심하는 건가?우연한 만남에 부풀어 올랐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전동하 대표... 복잡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야. 너무 믿지 마.”“충고 고마워.”기가 막힌 박수혁이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낯선 누군가가 다가왔다.“박수혁 대표님? 아이고, 오랜만이네요. 어, 사모님도 함께 오셨네요?”서산시에서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 대표였다.3년 전 쯤에 태한그룹에서 하청을 맡았던 덕에 박수혁 대표와도 안면이 있었고 그의 부인이었던 소은정도 물론 알고 있었다.사모님이라는 단어에 소은정도 박수혁도 미간을 찌푸렸다.“누구신지...”“대표님, 3년 전에 만나고 오늘 다시 뵙네요. 그때 계획서를 드리려고 태한그룹 본사까지 갔었는데 휴게실에서 사모님을 만났죠. 사모님, 그때 기획서는 사모님께서 전해드릴 테니 놓고 가라고 하셨잖아요. 기억하십니까?”그때까지만 해도 김 대표는 왜 사모님이라는 사람이 일반 손님들과 함께 기다리는 건가 의아했지만 전해 주겠다는 기획서가 퇴짜를 맞고 오고 가는 소문을 듣고 나서야 소은정이 허울뿐인 와이프라는 걸 알게 되었다.이런 상황이 일어날 거라곤 예상치 못한 박수혁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아무렇지
박수혁의 주위에 차가운 아우라가 피어올랐다.차가운 눈빛으로 소은정의 허리에 감긴 손을 바라보던 박수혁이 이를 악물었다.할 수만 있다면 저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한편, 갑작스러운 전동하의 등장에 가장 놀란 건 바로 김 대표였다.“사모님이 아니라고요? 제... 제가 잘못 봤을 리가...”김 대표는 소은정의 얼굴을 다시 훑어보았다.비록 분위기가 살짝 바뀌긴 했지만 저런 아름다운 얼굴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잘못 봤을 리가 없는데...싱긋 웃은 전동하가 차가운 목소리로 해명을 이어갔다.“지금은 제 여자친구입니다. 박수혁 대표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죠.”박수혁을 힐끗 바라보던 전동하가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친구도 왔던데 인사 안 해도 되겠어요?”전동하의 턱끝이 가리키는 쪽을 돌아본 소은정은 그녀를 향해 손을 젓고 있는 추하나를 발견했다.한시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그녀에게는 나이스 찬스였다.“인사해야죠. 얼른 가요.”박수혁과 김 대표를 향해 고개를 까딱한 소은정이 돌아섰다.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성강희가 혀를 찼다.하, 두 사람 언제 저렇게 가까워진 거야? 갓 사귈 때만 해도 곧 헤어질 것 같더라니...김 대표 또한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정말 내가 잘못 본 건가?그가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제... 제가 정말 잘못 본 겁니까?”차가운 시선으로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박수혁이 자꾸 고개를 내미는 짜증을 애써 누르며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요. 제대로 보신 거 맞습니다.”말을 마친 박수혁이 쿨하게 돌아섰다.어차피 소은정 얼굴도 봤겠다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전동하... 이제 아예 대놓고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내가 정말 네가 이뻐서 가만히 내버려 두는 줄 알아? 이제 움직일 때가 된 것 같네...드디어 혼자 남겨진 김 대표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박수혁 대표 와이프가 다른 남자의 여자친구라니... 내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전동하가 자리를 뜨고 그 모습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추하나가 소은정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축하해요.”“고마워요. 그런데 우혁이는요?”아직 열애 사실을 공개한 건 아니지만 이런 자리에 추하나를 혼자 보낼 성격이 아닐 텐데...“우혁이 요즘 새 프로그램 기획 중이거든요. 아까 그냥 얼굴만 잠깐 비추고 바로 갔어요.”다행이네. 두 사람 여전히 좋아보여서.잠시 후, 다시 돌아온 전동하가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 바로 그 눈빛에 담긴 뜻을 눈치챈 소은정이 일어섰다.“하나 씨, 그럼 저도 이만 가볼게요. 만나서 반가웠어요.”“그래요. 이제 또 봐요.”호스트인 심강열에게도 인사를 한 뒤 파티장을 나선 두 사람은 자연스레 전동하의 차에 탑승했다.왠지 숨막히는 분위기에 소은정이 살짝 창문을 열었지만 전동하가 다시 창문을 닫아버렸다.“아직 밤바람이 차요. 옷도 이렇게 얇게 입었으면서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요?”꾸짖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 감춰진 걱정은 감출 수 없었다.“화 다 풀린 거예요?”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어차피 은정 씨가 날 달래줄 리도 없으니까 알아서 풀어야줘.”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은 죄책감이 밀려들면서도 왠지 의아했다.달래달라니. 애도 아니고...곁눈질로 그녀를 힐끗 바라보던 전동하가 물었다.“왜 처음부터 해명 안 했던 거예요?”아... 아직도 그 사모님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이는 거구나.“사실 처음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라서... 해명하려던 참에 동하 씨가 온 거고요...”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전동하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그럼 어떻게 달래줄까요?”두 사람의 연애에 더 적극적인 건 항상 전동하였고 소은정도 어느새 그의 사랑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상태였다.하지만 순간 이런 관계가 전동하에겐 불공평하다는 기분이 들었다.소은정의 진지한 눈빛에 전동하의 가슴이 콩닥거렸다.안정적으로 운전을 하던 그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에 당장이라도 브레이크를 밟고 싶었으니까.그제야 살짝 굳었던
소은정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려던 그때, 전동하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놓아주었다.살짝 달아올라 빨개진 뺨, 거칠어진 호흡,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 꿀을 바른 듯 반짝이는 입술...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전동하가 다시 그녀의 입술에 쪽 뽀뽀를 했다.하마터면... 정말 큰일날 뻔했어.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욕정을 누른 전동하가 말했다.“난 이렇게 달래주는 게 좋아요. 앞으로 기억해 둬요.”능글맞은 그의 말에 소은정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온 거야...입술을 꼭 깨문 소은정은 전동하를 홱 밀치더니 바로 집으로 쏙 들어가버렸다.풉... 역시 귀엽다니까.복도에 덩그러니 남겨진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다음 날 아침, 부스스 눈을 뜬 소은정은 바로 휴대폰부터 확인했다.우연준과 처음 번호의 부재중 통화로 가득한 통화목록을 확인한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지?의아함과 함께 소은정은 먼저 우연준에게 콜백을 했다.“아, 대표님. 아까 마이크 학교 측에서 전화가 왔는데... 대표님더러 학교에 왔다 가시라는데요?”소은정의 비서로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던 우연준 또한 이번에만큼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소은정과 전동하가 사귀는 건 사실이지만 마이크의 선생님이 왜 전동하가 아닌 그녀에게 연락을 해왔는지... 이해가 안 갔다.욕실로 향하던 소은정도 발걸음을 멈추었다.“네? 아,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소은정이 전동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어...”알림음에 전화를 끊은 그때 문자가 도착했다.“회의 중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중요한 회의인가 보네. 웬만하면 내 전화는 받을 텐데.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답장했다.“아니에요.”어차피 마이크는 그녀에게 이미 가족이나 마찬가지, 전동하 대신 학교를 가는 것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잠시 후, 그녀가 학교에 도착하고 선생님이 공손한 태도로 그녀를 빈 교실로 안내했다.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