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경은 이어서 말했다. “진실을 말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아요.”“하지만 당신은 내가 B시를 떠나도록 도와주고, 내 남은 인생을 위한 충분한 돈을 줘야 해요.”“좋아.”간단한 한마디에 혜경은 매우 놀랐다. 혜경은 서준이 하연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서준 씨, 이럴 거면 처음부터 왜 그랬어요?”“쓸데없는 말 그만해, 혜경아. 내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혜경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서준 씨, 나는 바보가 아니에요! 지금 말해주지는 않을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진실을 말하면, 내가 어떻게 B시를 떠날 수 있겠어요?”“그러니, 당신이 직접 나를 출국시켜 줘요. 그럼 내가 진실을 말해 줄게요.”서준은 말없이 혜경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말을 마치고, 혜경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무시한 채 보디가드를 불렀다. “바로 영수에게 넘겨. 두 시간은 너무 기네.”혜경은 서준이 정말로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안 돼요, 서준 씨 말할게요.”하지만 서준은 움직이지 않았고, 보디가드가 혜경을 끌어올렸다. 혜경은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서준 씨, 그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에요. 그날 밤 당신이 취했을 때,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내가 일부러 당신을 속인 거예요. 당신이 그 아이가 당신 것이라고 믿게 했어요.”혜경은 거의 울면서 말했다. 하지만 혜경의 말이 끝나자 보디가드의 움직임도 멈췄고 혜경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서준 씨,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나를 구해줘요. 난 죽고 싶지 않아요. 진짜로 죽고 싶지 않아요.”혜경의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하연이 이미 문에 서 있었다. 하연은 모든 것을 본 듯한 표정으로 그저 무심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서준을 보았다. 예전에는 깊은 애정과 사랑이 담겨 있었지만, 지금은 차가운 물처럼 평온했다.“서준, 이게 나를 초대한 이유야?”하연은 모든 것을 짐작한 듯 말했
최하연은 눈을 내리깔고 말하지 않았고 서준은 계속해서 말했다. “혜경이 너에게 많은 상처를 준 것은 알지만, 혜경은 마땅한 벌을 받을 거야.”“그리고 내가 왜 걔를 감옥에서 빼내 왔는지 궁금할 거야. 하지만 내 목적은 오늘을 위한 것이었어.”하연은 고개를 들어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아, 네가 나를 위해 한 일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이제 아무 의미도 없어.”서준은 당황했다.“왜, 하연아. 왜 의미가 없다는 거야?”하연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은 분명했다. 비록 서준과 혜경이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자신에게 준 상처는 되돌릴 수 없었다. 그 항공기 사고는 서준의 진짜 모습을 알게 했고, 하연은 더 이상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곧이어 하연이 말했다.“서준아, 억지로 맺어진 인연은 깊게 가지 못해. 그리고 감정의 상처는 몇 마디로 치유될 수 없어.”“난 이미 그 감정을 놓아버렸어. 그러니 서준아, 이제 더 이상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하연은 말을 마치고 미련 없이 돌아서서 떠났다. 서준은 하연을 붙잡으려 했지만, 옷자락도 잡지 못한 채 결국, 하연이 떠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그 순간, 서준은 하연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고 서준이 몸이 굳어질 정도로 오래 기다릴 때쯤 보디가드가 들어왔다. “밖에 있는 여자는 어떻게 할까요?”생각을 정리한 서준이 차갑게 말했다. “심영수 씨에게 넘겨. 그리고 죽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본인 운에 맡겨. 운이 좋으면 살고 나쁘면 죽겠지.”“알겠습니다, 한 대표님.”...서준의 집을 떠난 후, 하연은 무거운 마음으로 차에 탔다. 그러고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벨 소리가 하연의 생각을 깨뜨렸다.“오빠!”최하민은 하연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감지하고 말했다. “네가 곽대철을 비롯한 B시의 첫 번째 지하 조직을 복종시켰다고 하던데?”그러자 하연이 말했다. “오빠, 정보가 참 빠르네요!”“네 일이라 내가 신경을 쓰는 게 아니겠
“할아버지께서 네가 돌아온 걸 아시고, 특별히 주방에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게 하셨어.”그러자 최하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와, 나 정말 너무 행복해요!”“넌 정말 먹보야!” 하경은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두 사람은 집에서 준비한 차에 올랐다. 하연의 저택은 수천 평의 넓이로, 착륙장에서 주 저택까지 차로 이동하는 데에만 10분이 걸렸다. 집에 도착하자, 하인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하연을 보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가씨, 안녕하세요!”이에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만큼, 세 형제도 모두 모였다. 할아버지는 매우 기뻐하며 식사하기 전부터 다 한 후까지 하연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밤 10시가 되어, 하연이 연이어 하품하자 할아버지는 마침내 하연을 놓아주며 말했다. “그래, 하연아. 비행기를 오래 타느라 피곤할 테니 이제 쉬어라.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할아버지와 체스 한 판 두는 거 잊지 말고.”이에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하연은 일어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세 오빠가 벽에 기대어 하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최하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내일 내가 너를 쇼핑몰에 데려가서 네가 좋아하는 옷과 주얼리들을 골라 줄게.”곧이어 하경이 뒤따라 말했다. “형, 그게 무슨 새로운 아이디어예요! 하연아, 내일 내가 너를 새로 연 게임 클럽에 데려가 줄게. 서버가 정말 죽여줘서 네가 완전히 즐길 수 있을 거야.”이에 하성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하연아, 가로수길에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들이 많고 맛있어, 어때? 가고 싶어?”세 오빠가 서로 경쟁하듯 호의를 베푸는 모습에 하연은 어쩔 줄 몰라 웃음을 지었다.“오빠들, 저 정말 피곤해요. 이 얘기는 내일 다시 할까요?”하민, 하경, 하성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돼, 넌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해.”
최하성이 준비한 옷은 최하연의 사이즈에 딱 맞았을 뿐만 아니라 분위기와도 완벽히 어울렸다.“오빠 안목은 여전하네요.”칭찬을 받은 하성은 기뻐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누굴 위해 골라주는 옷인데.”하연은 웃으며 말했다. “미래 새언니는 복받았네요!”그러자 하성은 급히 말을 막았다. “하연아. 새언니는 무슨 새언니야.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그런 말 하지 마.”생각 밖의 모습에 하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부끄러워요?”“그럴 리가, 빨리 준비해. 이젠 나가봐야 해.”팬들에게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하성은 변장을 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하연을 데리고 나갔다. 그들은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상업 거리로 향했다. 이곳은 고급 미식과 쇼핑이 결합한 곳으로,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쇼핑 명소였다.하연은 먼저 차에서 내려 길가에서 최하성이 주차하러 가는 동안 기다렸다. 그런데 이때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하연, 정말 너구나.”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하연은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돌아보니 어릴 적부터 앙숙이었던 송연희가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서 있었다. 하연은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예의를 지키기 위해 인사했다. “정말 우연이 만났네.”연희의 집안은 전자기기 사업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 명문가의 아가씨로 불렸다. 그리고 하연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 다른 학생 들과의 차별을 피하기 위해 학교의 관리자 외에는 아무도 하연의 신분을 몰랐다.또한 하연은 유기 동물들을 돌보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급생은 하연이 가난한 집안의 학생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신분은 귀족 학교에서 보기 드물었다.게다가 하연은 학업 성적이 뛰어나 매년 장학금을 받았지만, 연희는 늘 하연을 따라잡지 못했다. 결국, 승부욕이 강한 연희는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하연을 미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했다.“하연아, 졸업한
“가지 마,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잖아. 네가 힘들게 지낸다고 해서 자존심 상해할 필요 없어. 우린 널 비웃지 않을 거야.”송연희는 굉장히 친절한 척하며 말했다.“이렇게 된 김에, 우리 반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식사하려고 약속했어. 너도 같이 가자! 네가 언제 또 고급 레스토랑에 가보겠냐. 좋은 경험이 될 거야.”하연은 피식 웃으며 얼굴에 약간의 분노를 띠며 말했다. “송연희, 그런 짓은 도대체 언제 끝낼 거니? 학교 다닐 때도 나를 이기지 못했는데, 지금도 똑같네.”“돈 좀 있다고 그렇게 거만하게 굴지 마. 세상에는 너보다 잘난 사람도 많아. 혹시 알아? 그 사람들도 너를 그렇게 무시할지?”연희는 하연의 말이 여전히 날카롭다는 것에 놀랐다. 예전에도 하연에게 이기지 못했지만, 지금은 더 말도 안 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하연을 더 이상 놓아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오늘 반드시 하연에게 제대로 망신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했고 하연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하연이 같은 가난한 사람은 자기 신발 끈도 매지 못할 존재라는 것을.“다 옛 친구들인데, 같이 식사하는 게 뭐 어렵다고 그래? 하연아. 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좀 가자.”연희는 말하면서 두 명의 친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두 친구는 즉시 하연에게 다가가 양쪽 팔을 붙잡았다. “연희가 널 초대한 건 네게 체면을 세워주는 거야. 많은 사람이 이런 초대도 못 받아.”말하며 하연이 거절할 틈도 없이 차로 끌고 갔다. 하연은 처음에는 이들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집요함에 화가 나 있던 차라, 화풀이하기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이윽고 차 안에서 연희는 자신이 새로 산 에르메스 가방을 눈에 띄는 곳에 두었다.이때, 한지민이 말했다. “연희야, 이거 신상 악어가죽 맞지? 하나에 몇 십억 넘게 한다고 들었는데.”옆에 있던 도경서도 말했다.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가방도 아니지. VVIP만 살 수 있는 한정판이잖아. 연희야, 정말 부럽다.”연희는 이런 칭찬을
이 말에 송연희는 순간 당황했고 가방을 급히 정리하며 말했다. “흥, 너 같은 시골 촌뜨기가 뭘 알겠어. 난 너랑 싸우기 싫어.”그러나 도경서와 한지민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심스러워했다. 연희가 작년 모델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연희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래도 두 친구는 연희의 편을 들어줬다.“연희야, 싸우지 마. 이제 하연에게 수준 차이가 무엇인지 톡톡히 보여주면 돼.”두 친구의 말에 연희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하지만 하연은 속으로 비웃으며, 셋이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지 보려고 했다.그 사이, 주차를 마치고 나온 최하성은 하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급히 최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하연은 전화를 끊고 문자를 보냈다. [오빠, 일이 좀 생겨서 나중에 연락할게.]이에 하성은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연희는 하연을 F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식당으로 데려갔다. 이곳은 모두 회원제로 운영되며, 여기서 카드를 발급받아야 소비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말인즉슨 부유한 사람들만 올 수 있는 장소였다. 연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직원이 웃으며 다가왔다.“송연희 씨,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에 연희는 당당하게 말했다. “예약한 방으로 안내해 줘요.”“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직원은 네 사람을 안내했고 두 친구는 계속 사진을 찍으며 들떠 있었는데 오직 하연만이 여전히 평온한 모습을 유지했다. 연희는 이를 보며 하연이 이런 고급 장소를 처음 와서 얼떨떨한 줄 알고 말했다. “잠시 후에 만날 사람들 모두 옛 동창이니까, 긴장하지 마.”이에 하연은 대답했다. “게네들이 날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긴장해?”당당한 하연에 연희는 할 말을 잃었고, 다시 말했다. “최하연, 예의를 갖추라고 알려주는 거야. 시골 촌뜨기처럼 굴지 마.”하지만 하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모습에 연희는 발을 구르며 화가 났고, 하연의 무심한 태도에 이를 갈았다.“도착했습니다.”직원
평소 송연희와 어울리는 이들은 대부분 연희처럼 속물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학교 시절부터 최하연 같은 낮은 신분의 사람이 그들의 무리에 끼려는 것을 무시해 왔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말을 거칠게 하기 시작했다.“하연아, 요즘 어디서 일해? 월급은 얼마나 받아?”“결혼했어? 애인은 있어?”“필요하면 소개해 줄까?”그때 연희가 일부러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너희들 무슨 질문이 그래? 하연이 우리랑 같아? 우리 중에 누구 집에 돈이 없겠어. 우리는 그냥 가족 사업을 물려받으면 되잖아.”“하연은 아마 지금도 어딘 가에서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겠지! 그러니 너희들도 너무 놀리지 마,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거야.”연희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으나 최하연은 그들의 말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한 여자 동창은 하연의 옷이 샤넬의 이번 연도 시즌 한정판 고급 맞춤복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매우 비싼 가격인 데다가, 일반적으로 판매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연 같은 신분의 사람이 어떻게 그 옷을 살 수 있겠냐는 생각에 무심코 물었다.“하연아, 그 옷 어디서 샀어? 가짜 같은데 품질은 괜찮아 보이네?”이 말에 다른 사람들도 하연의 옷에 주목했다. 그제야 그들은 하연의 옷이 정말로 좋은 품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최하연이 그렇게 비싼 옷을 살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하연아, 이 옷 비싸지 않아?”“짝퉁이 품질이 이렇게 좋을 수 있나?”“설마 코팡 같은 데에서 찾은 짝퉁인가?”그러자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코팡에서 검색해봐, 같은 제품을 찾을 수 있는지.”하연의 태도가 갑자기 변하자 모두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하연이 그들과 대화 자체를 잘 하지 않았었다.“하연아,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그냥 농담으로 너를 놀린 것뿐이야.” 연희는 억울한 척하며 말하자 이 말에 다른 사람들도 동의했다. “그래, 왜 이렇게 쪼잔하게 굴어. 농담도 못 받
그러자 최하연이 감탄하며 말했다.“아, 그 중에 주요 스트리머였던 채송화도 포함되어 있겠지. 탈세로 체포되어 몇 천억 원을 벌금으로 물었다고 들었어!”“한낱 스트리머가 이렇게 출중한 능력을 갖췄다면, 그 뒤에 있는 자본과 연관이 없을 수 없지. 이 사건이 꽤 크게 일어나서, 다들 들어봤잖아?”명석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명석의 가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 회사는 거의 이 사건으로 인해 파산할 뻔했다. ‘근데 쟤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하연은 더 이상 명석을 상대하지 않고, 한지민을 바라보았다. “네 집안은 수산업을 하고 있지. 태풍의 영향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고 들었어. 사채업자로부터 빌린 돈을 이제 다 갚았나?”그러자 지민의 표정은 곧바로 어두워졌고 하연은 도경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집안은 작년에 금융 폭풍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고, 은행에 많은 돈을 빚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야?”이에 경서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너, 너, 네가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어?”하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너희들의 이런 역겨운 속물적인 태도가 사람을 메스껍게 만든다는 거야.”그러고 나서 하연은 연희를 바라보았다.“미래 테크놀로지가 요즘 잘 나가고 있긴 해. 하지만 이노베이션 회사가 점점 강해지고 있어.”“어느 날, 미래 테크놀로지를 밟아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이번 비즈니스 포럼에서 기회를 잡아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끝장일지도 모르니까.”하연의 말에 연희는 화가 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하지만 하연의 말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는데 하연의 말은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다들 당황해 하는 기색에 하연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느낀 하연은 일어나 떠나려 했다.“그럼 먼저 가볼 게. 다음에 또 봐.”하연은 방을 떠나며,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하연의 정체가 뭐야? 어떻게
고개를 돌려 반짝이는 눈빛으로 하연이 상혁을 바라보았다. “여긴 어디예요?” 상혁은 여자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때 버려졌던 작은 섬인데. 나중에 내가 사들였어.” 그는 자연스럽게 하연의 손을 잡으며 손가락을 맞물렸다. “어때? 마음에 들어?”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네, 좋아요!” ‘좋다니 다행이야.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보람이 있었네.’이 순간을 상혁이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그는 하연의 손을 살짝 당기며 말했다. “일단 우리 아침부터 먹자. 그리고 이따가 바닷가에 데려가 줄게.” “좋아요.” 이 섬은 남태평양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은 외딴섬이었다. 한때는 몇 년 동안 방치되어 잡초가 무성하고 황폐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상혁이 이곳을 매입해 전문가에게 맡겼다. 불과 2년 만에 섬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집도 짓고, 길도 만들고, 섬 전체가 아름답게 정돈되었다. 한낮이 되자 햇살이 섬을 따스하게 감쌌다. 하연과 상혁은 손을 잡고 깔끔하게 정돈된 자갈길을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바람이 불어오자 하연의 원피스 자락이 살짝 날렸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멀리 두었다. 눈앞에는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고, 곱디고운 모래가 햇빛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저기 봐요! 야자수가 있어요!” 하연은 설레는 듯 조심스레 뛰어나갔다. 상혁은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녀가 가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푸른 하늘 아래, 키가 큰 야자수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서 있었다. 커다란 잎사귀들이 바닷바람을 타고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마치 오랜 세월을 품고 바다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연은 신발을 벗고 모래 위에 발을 내디뎠다. 발끝을 감싸는 모래가 부드럽고도 간질거려, 묘한 전율이 발끝에서부터
가정부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다영은 손에 힘을 주며 눈빛을 날카롭게 번뜩였다. “정말이야?” 가정부는 몸을 잔뜩 웅크리며 떨었다. “정말 없습니다. 다만...” “다만 뭐?” 가정부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가 결국 떨리는 손으로 오늘 아침 신문을 내밀었다. “아가씨, 아가씨가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다영이 반응하기도 전에, 가정부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다영은 신문을 펼쳤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부남준의 충격적인 스캔들이었다. 각종 유명 유흥지에서 여성들과 어울리는 사진들,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장면들이 페이지를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게 말이 돼? 남준 씨가 나한테 이럴 리가 없어.’ “이건 거짓말이야!” 신문을 쥐고 있는 다영의 손의 힘에 의해 손이 하얗게 질려 갔다. 그녀는 결국 신문을 찢어버렸다. 그때, 송혜선이 아래층에서 천천히 내려오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일이야?” 다영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송혜선에게 달려가 팔을 붙잡았다. “어머님, 남준 씨가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어요?” ‘이럴 수가 없어!’ 송혜선은 미간을 좁히며 한숨을 쉬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다영은 바닥에 떨어진 신문을 집어 송혜선에게 내밀었다. 송혜선은 대충 훑어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부남준의 사생활에 대해서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회사 권력을 잡기 위해 정지철의 힘을 빌리지 않았더라면, 송혜선은 감히 정다영을 건드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정지철은 구속됐고, 정씨 가문도 몰락했으니, 다영에게 아직 이용 가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았다면, 송혜선은 진작에 다영을 내쫓았을 것이다. 다영에게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이런 신문 기사 하나에 휘둘리지 마라, 다영아.” 송혜선은 태연하게 다영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 “넌 남준이의 약혼녀야. 네가 남준이를 의심하면
상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용히 하연을 품에 안았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네가 좋아하는 요리들 준비해뒀어.” 하연은 눈을 들어 남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정말 맛있는 저녁이 되겠네.” 상혁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 하연이, 여전히 먹을 것 앞에서는 못 참는구나.” 식탁 위에는 하연이 좋아하는 요리들이 정성스레 차려져 있었다. 마늘 버터 가리비, 새우찜, 전복찜, 킹크랩, 탕수육까지. 하연은 만족스럽게 식사를 즐겼고, 상혁은 그녀 옆에서 직접 새우를 까서 접시에 올려주었다. “부 대표님의 또 다른 재능이 새우 까기였나 봐요?” 하연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상혁은 마지막 한 마리를 까서 그녀 앞에 내밀며 미소 지었다. “너만을 위한 서비스야.” “그럼 나는 정말 행운아네요.”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새우를 한입에 넣었다. 그때,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깜빡였다. 원신민이 보낸 메시지였다. [부 대표님, 그 사진들 보낸 사람이 정다영 씨였습니다.]상혁은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으려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나서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남자의 눈빛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이건 예상 밖이군.’ 그러나 그는 곧 차분하게 타이핑을 시작했다. [남준이는 요즘 뭐 하고 다니지?]원신민의 답장은 빠르게 도착했다. [부남준 상무님은 최근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여성들과 어울리고 있습니다.]상혁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진 확보 가능해?][어렵지 않습니다.][서여은 편집장 요즘 기사거리가 부족하다던데, 도와줘야겠어.] 메시지를 받은 원신민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부 대표님, 한 방에 끝내버리는구나.’ [알겠습니다, 대표님.]상혁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어요?” “작은 일 좀 정리했어.” 그는
하연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이현의 말이 그동안 떠돌던 소문을 확인해 주는 듯했다.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내렸어요?” 이현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감회가 어린 듯 말했다. “예전엔 내가 사업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거죠.” 그는 눈을 들어 하연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말하는 게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겠지.’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듯한 이 말들 속에는,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체면을 지키면서도 이별의 뜻이 담겨 있는 방식이었다. 이현은 한때 상혁과 정면 승부를 벌이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하연을 자신의 곁으로 다시 두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이현과 하연을 번번이 엇갈리게 만들었고, 끝없이 스쳐 지나가게 했다. 이현의 모든 집착과 미련은, 하연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게 하연이 선택한 행복이라면, 이현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조용히 축복해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애초에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요. 차라리 계속 가게 운영하는 게 더 어울렸을 텐데...” “그래도 다행이죠.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았으니까. 이제라도 진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겠어요.” 하연은 조용히 남자의 말을 들으며, 친구로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쩌면 새로운 곳에서 당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이현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아요.” 그 순간, 오랫동안 이현의 마음속에 얹혀 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스르르 사라지는 기분이들었다. 심지어 그 한때의 집착과 미련도 함께 흩어져 갔다. 그는 가볍게 몸을 돌려 준비해 온 선물 상자를 꺼내며 말했다. “새해가 지나면 하연 씨 약혼식이 있을 테니, 나는 참석하지 않겠지만, 이 약혼 선물만큼은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약혼 선물’이라는 말이 하연의 귀에 맴돌았다. 이것이 하연이 이현과 함께 들려온 남
“하연이, 집에서 지내는 게 더 편할 거예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너는 항상 우리 하연이만 생각하는구나.” 최동신은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어딘가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긴 하지. 집안 가정부들은 어릴 때부터 하연이를 봐왔으니, 생활 습관을 잘 알고 있고 이곳이 하연이가 편하긴 할 거야.” “아침부터 나갔다던데, 너랑 같이 있던 게 아니었어? 그럼 얘가 어디 간 거지?” 최동신은 가정부를 불러 말했다. “하연 아가씨한테 전화 좀 걸어보게.” “어르신, 이미 전화드렸는데 받지 않으십니다.” 최동신은 미간을 좁혔다. “무음으로 해놔서 못 들었나...” 하지만 최동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혁의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였다. 상혁은 화면을 열어 확인하는 순간, 눈빛이 짙어졌다. 최동신은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다. “상혁아,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야?” 상혁은 잠시 멈칫했지만, 다시금 평정을 찾고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업무 관련한 일이라서요.” 최동신은 배려 깊게 말했다. “일이 우선이지. 얼른 가봐라.” 최씨 가문의 본가를 나서며, 상혁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문자 메시지 하단에 찍힌 ‘TW카페’ 네 글자가 유독 선명했다. ...평일 오전의 TW 카페는 한산했다. 한 시간 전. 다시 ‘한명준’이 된 손이현은 급히 카페로 향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창가 소파에 앉아 있는 하연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여자에게 내려앉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자아냈다. 이현의 발걸음도 순간 멈췄다. 그는 한동안 하연을 바라보며 흐트러진 숨을 고르던 중, 직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손님, 몇 분이세요?” 이현은 가볍게 손짓했다.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하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다리게 했나요?” 하연은 시선을 들어 평온한 표정으로
“이게 뭐야?” 송혜선은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선만큼은 솔직했다. 하지만 사진 속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사진을 낚아채고 하나하나 넘겨봤다. 사진마다 담긴 장면이 송혜선을 점점 흥분하게 만들었다. ‘흥, 최씨 가문의 귀한 딸이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고 있다니, 이거 재미있어지겠는데?’ 사진 속 남자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고고한 분위기, 남다른 기품까지...비록 사진에는 전부 뒷모습만 담겨 있었지만, 남자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송혜선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모든 사진을 훑어본 뒤 나지막이 말했다. “이 정도는 그냥 친한 남녀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일 아닐까? 선을 넘은 정황은 없잖아. 겉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정다영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그녀는 오래전부터 하연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설 탐정을 통해 추적해왔다. 그리고 사진 속 ‘한명준’이라는 남자와 하연 이 둘 사이에는 단순한 친분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어머님, 이 남자가 누군지 아세요?” 다영의 목소리는 은근한 흥분을 담고 있었다. “바로 B시 한씨 가문의 사람이란다.” “B시 한씨 가문?” 송혜선은 순간적으로 하연의 전 남편이 한씨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자신이 분명 들은 바에 따르면 한씨 가문은 이미 몰락한 상태였다. “최하연의 전남편은 감옥에 간 걸로 아는데, 또 다른 한씨 가문 사람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하여튼 복잡한 사연이 많았어.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단다.” 다영은 하연과 ‘한명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이 일을 이용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건, 우리가 부상혁에게 무엇을 보여주느냐는 겁니다.” ‘남자
배가 항구에 서서히 가까워질 때, 허징인은 저 멀리 보이는 부두를 응시하면서 머릿속에서 끔찍했던 기억들이 마치 영화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날의 비명, 피 냄새, 그리고 민찬의 얼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는 참았던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숨을 깊게 들이쉬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난간을 꽉 잡은 여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하얀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허징인의 떨리는 손끝은 마음속 분노와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상혁이 조용히 허징인 곁에 다가왔다. 남자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섞여 들려왔다. “배에서 내리면, 제 부하들이 안전한 곳으로 허징인 씨를 모실 겁니다.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마세요.” 허징인은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차가운 눈빛과 함께 낮고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 대표님, 하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가웠다. “제 남편이 부남준 밑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어요. 물론, 제 남편도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저와 민찬이를 지키기 위해 부남준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적도 많았어요.” 잠시 말을 멈춘 허징인은 숨을 고르며 상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제 남편은 민찬이의 죽음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동안 자신과 부남준 사이에 있었던 모든 부정한 거래를 실토할 겁니다.”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부 대표님께서 제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할 방법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허징인의 목적은 단순했다. ‘정규인을 이용해 부남준을 무너뜨릴 단서를 만들어야 해. 민찬이의 억울한 죽음을,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상혁은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상혁의 원래 무심하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그가 감정적으로 흔들렸다는 건 분명했다. 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담배 한 갑을 꺼내 들었다. 남자의 길고 날렵한 손가락이 담배 한 개비를 집어 들고는 정확히 입술 끝에 물었다. 그다음엔 상혁은 침착하게 라이터를 켜고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담배를 깊이 들이마신 뒤, 한순간 숨을 멈췄다가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연기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눈빛은 이전보다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이 판이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어.’ 그러나 허징인은 자신의 분노에 사로잡혀, 상혁의 변화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부남준은 제가 가진 증거를 빼앗으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겠죠. 그래서 절 죽이고 모든 걸 덮으려 했던 거고요. 정말 어리석은 꿈을 꾼 거죠.” 허징인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었다. 감정이 폭발하면서 그녀는 마치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듯 말을 쏟아냈다. “부남준도 설마 이런 상황까지는 생각 못 했겠죠. 제가 이런 처지에 놓일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 못 했을 거예요. 하지만 증거를 손에 넣는 순간부터 전 모든 걸 철저히 준비해 뒀어요. 단 한 치의 빈틈도 없도록 말이에요.” 상혁은 담배를 쥔 손을 잠시 멈추고, 허징인을 바라봤다. 남자의 눈빛엔 전에 없던 흥미와 약간의 감탄이 섞여 있었다. “허징인 씨, 오늘 정말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허징인은 상혁의 반응에 반응하지 않았고, 대신 스스로를 비웃듯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처음엔 그저 제 아들과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그 사람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둔다면, 제가 가진 증거는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그녀는 한순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허징인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며,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폭발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에요. 그놈이 제 아들을... 민찬이를 죽였어요! 제 손으로 지켜야 했던
금발 남자의 얼굴엔 잔인한 기색이 스쳤다. 허징인과 민찬에게 단 한 줌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저년의 입과 코를 꽁꽁 막아. 빈틈 하나도 남기지 말고.” 허징인은 절망에 빠진 눈으로 민찬을 바라보았다. ‘내 아들... 우리 민찬이...!’ 울부짖는 어린 민찬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가운데, 그녀는 거대한 배의 20미터 높이의 갑판에서 차갑고 무자비하게 바다로 내던져졌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이 온몸을 감싸고,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이 허징인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의식은 멀어지고, 그녀의 몸은 깊고 어두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러나 의식이 다시 돌아왔을 때, 허징인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무겁게 아파왔다. ‘아... 여긴 어디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를 눌러본 뒤에야,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나는 바다에 던져졌는데... 대체 여긴 어디지?’ 그리고 그녀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 민찬. ‘민찬? 설마... 설마 내 아들...!’ 그 순간, 절망감이 몰려오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렸다. 허징인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쳤다. ‘누구야? 또다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부상혁 대표님...?”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허징인 씨, 오랜만이네요.” 상혁 곁에 있던 원신민은 눈치를 보며 조용히 방을 나가고, 문을 닫았다. 허징인은 불신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부 대표님, 어떻게... 어떻게 여기에...?” 여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대답을 기다리며 불안감이 가득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허징인은 곧 머리를 굴렸다. ‘설마... 나를 구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