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송연희와 어울리는 이들은 대부분 연희처럼 속물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학교 시절부터 최하연 같은 낮은 신분의 사람이 그들의 무리에 끼려는 것을 무시해 왔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말을 거칠게 하기 시작했다.“하연아, 요즘 어디서 일해? 월급은 얼마나 받아?”“결혼했어? 애인은 있어?”“필요하면 소개해 줄까?”그때 연희가 일부러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너희들 무슨 질문이 그래? 하연이 우리랑 같아? 우리 중에 누구 집에 돈이 없겠어. 우리는 그냥 가족 사업을 물려받으면 되잖아.”“하연은 아마 지금도 어딘 가에서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겠지! 그러니 너희들도 너무 놀리지 마,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거야.”연희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으나 최하연은 그들의 말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한 여자 동창은 하연의 옷이 샤넬의 이번 연도 시즌 한정판 고급 맞춤복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매우 비싼 가격인 데다가, 일반적으로 판매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연 같은 신분의 사람이 어떻게 그 옷을 살 수 있겠냐는 생각에 무심코 물었다.“하연아, 그 옷 어디서 샀어? 가짜 같은데 품질은 괜찮아 보이네?”이 말에 다른 사람들도 하연의 옷에 주목했다. 그제야 그들은 하연의 옷이 정말로 좋은 품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최하연이 그렇게 비싼 옷을 살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하연아, 이 옷 비싸지 않아?”“짝퉁이 품질이 이렇게 좋을 수 있나?”“설마 코팡 같은 데에서 찾은 짝퉁인가?”그러자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코팡에서 검색해봐, 같은 제품을 찾을 수 있는지.”하연의 태도가 갑자기 변하자 모두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하연이 그들과 대화 자체를 잘 하지 않았었다.“하연아,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그냥 농담으로 너를 놀린 것뿐이야.” 연희는 억울한 척하며 말하자 이 말에 다른 사람들도 동의했다. “그래, 왜 이렇게 쪼잔하게 굴어. 농담도 못 받
그러자 최하연이 감탄하며 말했다.“아, 그 중에 주요 스트리머였던 채송화도 포함되어 있겠지. 탈세로 체포되어 몇 천억 원을 벌금으로 물었다고 들었어!”“한낱 스트리머가 이렇게 출중한 능력을 갖췄다면, 그 뒤에 있는 자본과 연관이 없을 수 없지. 이 사건이 꽤 크게 일어나서, 다들 들어봤잖아?”명석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명석의 가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 회사는 거의 이 사건으로 인해 파산할 뻔했다. ‘근데 쟤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하연은 더 이상 명석을 상대하지 않고, 한지민을 바라보았다. “네 집안은 수산업을 하고 있지. 태풍의 영향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고 들었어. 사채업자로부터 빌린 돈을 이제 다 갚았나?”그러자 지민의 표정은 곧바로 어두워졌고 하연은 도경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집안은 작년에 금융 폭풍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고, 은행에 많은 돈을 빚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야?”이에 경서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너, 너, 네가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어?”하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너희들의 이런 역겨운 속물적인 태도가 사람을 메스껍게 만든다는 거야.”그러고 나서 하연은 연희를 바라보았다.“미래 테크놀로지가 요즘 잘 나가고 있긴 해. 하지만 이노베이션 회사가 점점 강해지고 있어.”“어느 날, 미래 테크놀로지를 밟아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이번 비즈니스 포럼에서 기회를 잡아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끝장일지도 모르니까.”하연의 말에 연희는 화가 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하지만 하연의 말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는데 하연의 말은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다들 당황해 하는 기색에 하연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느낀 하연은 일어나 떠나려 했다.“그럼 먼저 가볼 게. 다음에 또 봐.”하연은 방을 떠나며,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하연의 정체가 뭐야? 어떻게
모두가 한숨을 쉬며 최하연을 바닥까지 깎아내렸고 심지어는 악담을 퍼부으며 떠들었다.“이런 사람은 우리와 동창일 자격이 없어.”“다시 만나면 제대로 혼내 줄 거야.”“남의 남자와 바람 피우는 여자, 그게 누구든 처벌받아야 해.”다음 날 아침.송연희는 탐정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연희 씨, 저희가 조사해 봤는데 최하연에 대해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어요.”그러자 연희는 화를 내며 말했다. “쓸모없는 것들! F 국이 그렇게 큰 곳도 아닌데, 한 사람을 찾지도 못하고, 너희들 무슨 일을 한 거야!”그러자 탐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군가 그분의 신분 정보를 숨겼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을 겁니다.”이에 연희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최하연한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너희들이 일을 못 하는 건 둘째 치고, 변명하지 마. 앞으로는 너희한테 일을 맡기지 않을 거니까!”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연희의 아버지인 송강석이 다가오며 온화한 얼굴로 물었다. “연희야, 아침부터 무슨 일로 화를 내니?”연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빠! 오늘이 비즈니스 포럼이니까 우리 회사가 이 기회를 잘 살려서 더 많은 주문을 따내야 해요.”그러자 송강석은 기뻐하며 말했다. “연희야,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아빠는 만족한다. 서밋에 가서 잘해야 한다. 또, 올해는 최씨 집안에서도 포럼에 참석한다고 들었다.”최씨 집안이라는 말을 듣자 송연희의 눈이 반짝였다.“최하민도 참석하나요?”송강석은 연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딸 눈에는 최하민 밖에 없구나?”그러자 연희는 얼굴이 빨개졌다. F 국에서 하민은 비즈니스 신화로 알려져 있었고, 최씨 집안의 후원 아래 세계 최고 부자였다. 그랬기에 많은 이들이 하민과 결혼하여 재벌 가문에 들어가길 바랐고 연희도 예외는 아니었다.“아빠, 만약 우리가 최씨 집안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어느 기업이 우리를 무시하겠어요? 주문도 우리가 낮춰서 구걸
“하연아, 이 드레스 어때?” 최하성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지만 고급 맞춤 드레스를 들어 하연의 앞에서 흔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하경은 질 수 없다는 듯이 눈에 띄는 드레스를 골라 들었다. “하연아, 이 드레스 너한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형, 그 드레스는 너무 화려해요.”하지만 하경이 반박했다. “네가 고른 건 너무 어두워.”두 사람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었고 결국, 선택의 권한은 하연에게 넘어갔다. “하연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하연은 두 드레스를 살펴보고 말했다. “오빠들 다 안목은 정말 좋아요. 고른 드레스는 모두 좋지만, 오늘은 조금 더 단아한 게 좋을 것 같아요.”말을 마치고, 하연은 옅은 보라색 고급 맞춤 드레스를 손에 들었다. 이에 하성과 하경은 서로를 바라보다 하성이 말했다. “평화롭게 끝내죠! 형, 이번 판은 무효로 해요.”하연은 두 경쟁자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한 명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오빠들! 고마워요!”“바보 같은 우리 동생님, 무슨 고맙다고 그래. 이 집에서 너는 우리 공주님이야.”하경은 애정 어린 말투로 말하고는 하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서 옷을 갈아입어. 큰 형이 기다리고 있으니까.”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드레스를 들고 탈의실로 들어가서 옅은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그리고 나선형 계단을 천천히 내려올 때, 모든 사람의 눈은 반짝반짝해서 하연을 쳐다봤고 그저 예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연아, 너 오늘 정말 예뻐.” 하성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하경도 뒤따라 말했다. “이 드레스는 조용하면서도 우아해. 너를 위해 맞춘 것처럼 모든 디테일이 완벽해.”하연은 두 오빠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다.“오늘 우리 오빠들 너무 스윗한데?”그러고는 웃으며 큰오빠 앞에 섰다.“오빠, 출발해요.”하연은 그녀의 드레스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함께 문을 나섰다. 한정판 롤스로이스 팬텀이 이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민과 하
송연희는 이미 회장에 도착해 있었고,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자리를 찾던 중, 문 입구에서 최하연을 발견했고 연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최하연이 여기 왜 왔지?” 연희의 말에 옆에 있던 한지민도 연희의 시선을 따라 하연을 바라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또한 어제 하연이 스포츠카를 타고 가는 것을 본 것이 기억나서, 질투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료로 먹고 마시려고 온 게 아닐까?”연희는 입을 삐죽이며 하연이 여기에 있는 것이 자신의 수준을 낮추는 것처럼 느꼈다.“이런 자리에 아무나 다 끼어드는구나.”지민은 연희의 불만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연희야, 내가 가서 혼내 줄까? 걔한테 본때를 보여주자.”연희는 말이 없었지만, 침묵은 동의를 의미했고 친구는 연희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하연에게 다가갔다.“이게 누구야, 내 동창 아니야? 여기는 어떻게 왔어? 초대장이 있기는 해? 아니면 그냥 공짜로 먹고 마시려고 온 거야?”말투에서 조롱이 가득했고 하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돌아보니,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경멸하는 지민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멀리서 연희가 이 광경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에 하연은 천천히 대답했다. “너는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그 짧은 한마디에 지민의 얼굴이 변했다. 지민은 연희와 함께 들어온 게 사실이지만, 하연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몰랐고 곧바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이에 하연은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여기서 헛소리하지 마.”지민의 얼굴은 삽시간에 더욱 어두워졌고 하연이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일 줄 몰랐다.“최하연, 너 내가 헛소리하는지 아닌지 네가 더 잘 알잖아.”“남의 남자와 바람 피우는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내가 사람들 앞에서 네 더러운 만행을 다 말해줘야겠어?”지민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주의를 끌 만했다. 그리고 하연의 눈은 어두워
모든 사람들 앞에서 송연희는 정의롭게 행동했고, 최하연은 연희를 무시하며 말했다. “비켜.”연희는 하연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 몰랐기에 피식 비웃었다. “하연아, 잘못한 일은 인정하고, 매를 맞으려면 제대로 맞아야지.”“네가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야.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주최 측을 불러 너를 쫓아내겠어.”연희의 이 말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충분했고 특히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연희 편에 섰다.“여기는 난동 부리는 곳이 아니야. 사람을 때리다니, 너무 거만하잖아.”“사과하는 게 낫겠어. 일이 더 커지기 전에.”“맞아, 연희가 네게 기회를 주는 거야. 그 기회를 놓치지 마.”사람들의 말을 듣고, 연희는 속으로 매우 만족해 했다. 그리고는 하연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어때? 사과해.”하연도 화가 났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사과는 못 해.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하연의 말에 넘어졌던 한지민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비웃었다. 그러나 곧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됐어, 연희야. 하연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지민은 말하면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큰 억울함이라도 당한 줄 알았다. 하지만 연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강하게 나왔다.“네게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당장 여기서 너를 쫓아낼 거야.”연희의 말에 개의치 않다는 듯 하연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한 번 해보든가.”연희는 하연의 고집에 당황했지만, 이미 말했으니 물러설 수 없어 즉시 전화를 걸었다.“경호원, 여기 누군가 소란을 피우고 있네요. 처리해 주세요.”전화를 끊고, 연희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하연아,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주변 사람들이 하연을 알아보고, 나운석과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은 하연을 말렸다. “연희 씨,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요. 저 사람 건들지 말고요.”그러나 연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다니, 어떻게 그럴
“저 여자 말을 듣지 마세요. 모두 거짓말입니다.”한지민이 서둘러 변명했다.그런데 그때 나운석이 다가와서, 최하연 앞에 서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괜찮으세요?”그러자 하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요.”운석은 녹음기를 들었고, 곧바로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이 분은 제가 초대한 손님입니다. 그런데 감히 제 앞에서 모욕하려는 건가요?”이 말에 주변 사람들이 침묵하며 자리를 떠났고 이 상황에 송연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운석이 하연에게 이렇게 친절하고 보호하는 태도를 보이자, 굉장히 당황했다. 이내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했다가 즉시 태도를 바꾸어 웃으며 운석에게 다가갔다.“운석 도련님, 저는 미래 테크놀로지의 송연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연희는 아첨하는 태도로 친절을 보였지만, 운석은 연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한지민을 바라보았다.“방금 하연 씨를 모욕한 사람이 당신입니까?”지민은 당황했고,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어리어리해 있었고 운석은 곧바로 보안 요원을 불렀다. “쫓아내세요.”이에 보안 요원은 즉시 다가와서 지민을 주저 없이 쫓아냈다. 이 모든 일을 마친 후, 운석은 직접 하연을 데리고 회장으로 들어갔고, 연희는 어리둥절한 채로 자리에 남았다.그랬기에 연희는 하연의 신분에 대해 더욱 궁금해졌다. 하연이 회장에 들어서자마자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고, 주변 사람들이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하연은 예의 바르게 일일이 응대했다.연희는 이 광경을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바로 그때, 최하민이 입장했다. 연희의 시선은 바로 하민에게로 향했고, 옷과 화장을 체크한 후 하민에게 다가갔다.“하민 대표님, 저는 미래 테크놀로지의 송연희입니다. 여기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연희는 웃으며 하민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하민은 미소를 보이지 않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악수를 청했지만 응하지 않아 허전한 손에 연희는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오늘 파트너
“최하연 씨, 저는 외국 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협력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우리 회사는 주로 물류를 다룹니다. 앞으로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사람들의 호의를 받으며,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응대했고, 많은 이들의 호감을 얻었다. 심지어 많은 사업가가 하연과 협력을 제안했고, 하연은 이 기회를 이용해 DS그룹에 여러 대형 계약을 따냈다.송연희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최하민이 하연의 신분을 공개하면서부터 연희는 눈앞이 아찔해 났다. 학창 시절에 하연을 무시하고 모욕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후회가 밀려왔다. 이렇게 좋은 인적 자원을 스스로 망쳐버린 것이다.“연희야, 여기서 뭐 하고 있니?”“내가 너한테 최하연이랑 친하게 지내서 더 많은 계약을 따내라고 했잖아? 그런데 너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송강석이 연희를 조용히 나무랐지만 연희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있었다. 연희는 주먹을 꽉 쥔 나머지 손가락이 살을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듯싶었다. 연희는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에게 하연을 모욕한 사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기에 대신에 다른 말투로 대답했다.“알겠어요, 아버지. 제가 열심히 할게요.”말을 마친 연희는 하연에게 다가갔다. 연희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스스로에게 자세를 낮추라고 다짐했다. 이윽고 연희가 하연의 앞에 섰을 때, 이미 활짝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연아, 우리 학창 시절 친구였잖아. 이 잔은 널 위해 건배할게.”연희는 친절하게 와인 잔을 건넸으나 하연은 연희를 바라보며 잔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분위기가 잠시 어색 해졌고 연희는 가볍게 기침하며 어색함을 감추었다.“술은 안 마시는구나? 그럼 내가 이 잔을 마실게!”말을 마치고 연희는 잔을 비웠다. 하지만 하연은 냉정하게 연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학창 시절 친구였다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아?”그러자 연희는 하연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서둘러 사과했다. “하연아, 이전에 내가 잘못했어. 여기서
집에 돌아온 하연은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침실 안. 은은한 조명이 켜진 방에서, 하연은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님...” 가정부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조심스레 부르며 방으로 들어왔다. 상혁은 문틈 사이로 방 안의 하연을 흘깃 바라보며 손으로 가정부를 막았다. “내가 할게요.” 가정부가 물러난 뒤, 상혁은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벽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상혁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는데, 원신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그 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상혁은 짧은 문장을 확인한 뒤, 입가에 가볍게 조소를 띄우며 휴대폰 화면을 껐다. 마치 모든 걸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의 태도였다. 그는 이내 천천히 방의 문을 열었다. “하연아.”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에 하연은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상혁을 바라보며 조금 의아한 듯 물었다. “언제 들어왔어요?” 상혁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우유를 하연의 손에 쥐어주었다. “따뜻할 때 마셔.” 남자의 부드러운 말에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곧 우유를 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잠시 후, 컵이 바닥을 드러냈다. “잠깐 회사에 좀 다녀올게. 집에서 푹 쉬고 있어.” 상혁은 하연이가 들고 있던 유리잔을 받아들며 말했다. “이 밤중에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 하연은 살짝 의아해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아마 늦을 거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남자는 고개를 숙여 하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지금 이 순간이 난 참 행복해.” 상혁의 눈에는 하연이가 자신의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이 행복이 오래가길, 조금이라도 더 오래가길...’ 하연은 상혁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의 품에 안기며 살짝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도요. 정말 행복해
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상혁의 얼굴에 잠시 스치는 한 줄기 차가운 빛... 하지만 그것은 곧 부드러운 미소로 가려졌다. “지석 도련님 말씀대로, 형제간에는 서로 도와야 하는 법이죠.” “다만, 부씨 가문의 일을 굳이 외부인이 나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만.” 상혁의 말에는 분명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의 기운에 압도된 지석은 잠시 얼굴이 굳었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지석이 변명을 하려는 찰나, 슬기가 먼저 나섰다. “하연 씨, 여기 메뉴 중에서 어떤 게 제일 맛이 괜찮아요? 추천 좀 해주세요.” 슬기의 말에 하연은 조용히 상혁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둘의 시선이 교차하자, 상혁의 눈가에 웃음이 스쳤다. ‘지금 나를 걱정하는 거야? 하지만 너무 날 과소평가하는 거 아닌가?’ 별일도 아닌 걸로 걱정하는 하연을 안심시키려는 듯, 상혁은 눈빛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하연이 그제야 안심이 되어 바로 슬기에게 메뉴를 추천했다.“오리지널 맛도 괜찮고, 여러가지가 섞인 맛도 좋을 것 같아요. 둘 다 드셔보세요.” “그럼 두 가지 맛으로 각각 한 그릇씩 주세요!” 슬기는 메뉴를 탁 닫으며 밝게 말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석은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요.” 그가 나가는 것을 슬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석이 자리를 떠나 자, 슬기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해요. 두 분의 오붓한 자리를 불편하게 해서요. 집안에서 주선한 선 자리를 억지로 나온 거라...” 여자의 말투에서 묘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슬기는 문득 눈을 들어 상혁을 바라보았지만, 상혁은 그녀를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온전히 하연에게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슬기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그 눈빛을 외면했다. “그나저나, 하연 씨.” 슬기가 화제를 돌렸다. “최근 하연 씨가 뒤로 물러나고 회사를 최하성 씨에게 맡겼다고 들었어요.”
“하연 씨, 우리 같이 합석해도 괜찮을까요?” 슬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연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괜찮죠.” 슬기는 예상 밖의 대답에 약간 놀란 듯했다.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하연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연 씨, 이제 저 같은 ‘라이벌’에게 경계심이 풀린 건가요? 그래도 혹시 모르죠. 제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재도전할지?” 슬기가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그 속엔 은근한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그러나 하연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되받아쳤다. “주 대표님, 그런 생각할 여유가 있으시면 옆에 있는 분 눈치부터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슬기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뭐, 집에서 주선한 맞선일 뿐이라 별로 신경 안 써요. 첫 만남이기도 하고요.”그 순간 뒤에 있던 지한이 앞으로 나서며 상혁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부 대표님,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부 대표님’이라는 말은, 그가 이미 상혁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한은 외부에서 떠도는 소문을 떠올렸다. 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이 곧 혼사를 통해 막대한 사업적 결합을 이룰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가 바로 최씨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에 지한은 적잖이 긴장했다.“최하연 씨, 안녕하세요.” 지한이 하연에게도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긴장의 끊을 놓지 않았다. ‘주슬기가 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 사람들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일 줄은 몰랐는데?’ 처음 지한은 그저 형식적인 맞선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이 상황을 보니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느꼈다.그때 상혁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SW그룹의 도련님을, 여기서 다 만나고 보기 드문 일이군요.” 단 한마디로 심지한의 배경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지한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부 대표님께서 저를 알고 계셨
최근 몇 년 동안 H시는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번화한 고층 빌딩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고, 도시 풍경은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도시로 자리 잡았다.상혁은 차를 몰고 하연과 함께 요즘 SNS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유명 먹거리 거리로 향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운 후,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 먹거리 거리로 들어섰다. 거리 양옆으로는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했고, 상인들은 열심히 손님들을 끌어모으며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곳곳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가 두 사람의 발걸음을 이끌었다.한참을 걷던 중, ‘10년 전통 국밥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깔끔하고 정갈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내부 인테리어는 오래된 가게답지 않게 세련되었고, 메뉴는 벽에 붙어 있어 가격이 한눈에 들어왔다.상혁이 가게를 한참 바라보는 사이, 하연은 이미 들어가 자리에 앉으며 기다릴 새도 없이 외쳤다. “사장님, 여기 대표 국밥 하나요!” 사장님은 빠르게 주문을 적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못 드시는 재료 있으세요?”“짜지 않게 해주시고, 후추는 빼주세요. 나머지는 다 괜찮아요.” 하연이 주문을 마치자 사장님은 상혁을 향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사장님은 뭘로 드릴까요?”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사장님의 깍듯한 존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가게의 음식 나오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두 그릇이 놓였다. 하연은 반짝이는 눈으로 국밥을 바라보며 기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고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천천히 먹어.” 상혁은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자신 앞에 놓인 국밥을 내려다보았다. 어릴 때부터 상혁은 까다로운 식습관을 가진 어머니인 조진숙의 영향으로 엄격하게 관리된 음식을 먹으며 자라, 이런 길거리 음식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요?” 다영은 남준의 말을 듣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자신이 남준을 믿고 기다린 게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그녀가 모든 걸 걸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남준 씨, 난 그냥...” “그냥 뭐요?” 다영은 고개를 저으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전에 떠돌던 소문들 때문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던 것뿐이에요.”“그런 쓸데없는 소문에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남준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기쁨에 젖어 있는 다영은 남준의 말 속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남자의 팔을 꼭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언제나 남준 씨의 편이에요. 당신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부르면 돼요. 항상 곁에 있을 거니까요.”‘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내가 도와서 얻게 해줄 거야. 그게 DL그룹이라 해도...’ 그녀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굳은 결심을 다졌다....새해를 맞이하는 밤.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열렸고, 도시는 환희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모두가 기쁨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던 그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하연은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방 안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창밖으로부터 들어온 아침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일어났어?” 상혁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연은 기지개를 켜며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몇 시예요?” 상혁이 곧바로 답했다. “아직 일러. 11시밖에 안 됐어.” “11시?” 하연은 예상외로 늦은 시간에 살짝 놀랐다. 그 순간 상혁이 침대 옆으로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눈을 맞췄다. 그의 눈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 조금 더 자도 돼.”그러나 상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연의 배에서 신호가 왔다
“남준 씨, 지금 당신 날 피한 거예요?” 다영은 손에 쥔 라이터를 꽉 쥐었다가 조용히 주머니에 넣으며 한 발짝 물러섰다. 최근 들어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졌고, 남준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이 상황 역시 그녀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이, 이제는 마치 남이 된 것 같은 이 분위기가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남준은 정면만을 응시한 채 아무런 설명도 없이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타요.” 다영의 눈에 순간적으로 희미한 빛이 스쳤다. 망설임 없이 그녀는 차 뒤쪽을 돌아 조수석 문 앞에 섰고, 문을 열어 차에 탔다.차에 올라탄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놓인 정교한 포장 상자로 향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영은 상자를 들고서 물었다. “남준 씨, 이거... 내 선물이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손은 이미 멈추지 않고 상자를 열고 있었다.남준은 살짝 찌푸린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상자를 열어보는 것을 무심하게 지켜볼 뿐이었다.다영이 상자를 열자, 안에는 섬세하게 디자인된 고급스러운 목걸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중앙에 놓인 독특한 디자인의 목걸이는 푸른빛의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조명에 반사되어 빛나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말 예쁘네요...” 다영은 감탄하며 목걸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환한 미소로 남준을 바라보았다. “이거 나한테 걸어줄 수 있어요?”남준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목걸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깊어졌고,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목걸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남아공에서 천연으로 채굴된 최고급 보석입니다. 순도와 투명도가 모두 최상급이고, 무엇보다도 희소성이 높아 전 세계에 단 하나뿐입니다.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하기에 가장 적합한 아이템이죠.’ 그때 들렸던 매장의 직원 설명이 귀에 맴돌았다.
“나... 나 술 안 취했어.” 남준은 말끝이 흐려졌고, 아까의 당당한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하연은 남준의 이상한 태도를 감지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거기에는 상혁이 어느새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 혼자 있는 남자의 긴 그림자가 조명 아래 길게 드리워졌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오빠...” 하연은 입을 열어 무언가 설명하려 했으나, 상혁은 모든 상황을 이미 이해한 듯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편안한 눈빛을 주었다. 단 한 번의 눈맞춤으로 하연은 마음속에 있던 불안함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두 사람 사이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신뢰가 있었다.상혁은 그녀에게 다가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어깨에 걸쳐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바람이 차니까 빨리 들어가자.”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응, 알았어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서로 맞물리고,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고스란히 서로에게 느껴졌다.그러나 이 장면은 남준의 가슴 깊은 곳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남준은 표정만큼은 최대한 담담하게 유지하며 시선을 애써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DS그룹 연말 행사가 있다고 해서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들렸어, 마침 형도 여기 있었네.”상혁은 하연의 손을 살며시 감싼 채 고개를 들고 남준을 바라보았다. 상혁의 눈빛은 깊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왜 이젠 DS그룹 일에도 신경이 쓰여? 모르는 사람은 보면 네가 DL그룹 버리고 DS그룹으로 옮기려는 줄 알겠어.” 남준은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상혁의 말에는 은근한 경계와 조롱이 담겨 있었다. 남준은 불리한 상황임을 깨닫고 억지로 웃으며 변명했다. “형,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분위기나 좀 보려고 들른 거야.”상혁은 남준의 속내를 이미 간파하고
“시간 없어.” 하연은 단호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메시지를 확인했고, 내용을 본 후 손에 힘이 들어갔다. 10분 후.하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남준의 눈에 띄는 빨간색 스포츠카가 비상등을 켠 채 호텔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번화한 호텔 입구에서 유독 도드라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잠시 후, 차 문이 열리고 남준이 내렸다. 그는 오늘 블랙 패딩을 걸친 채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기며 여유롭게 하연을 바라보았다. “역시 올 줄 알았어.” 남자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고, 말투에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찬바람이 부는 겨울밤, 차가운 바람이 하연의 얼굴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하연은 몇 걸음 옮긴 뒤 걸음을 멈췄고, 남준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손을 들어 흩날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말해. 문자에 적힌 상혁 씨하고 관련해서 중요한 일이 뭔데?”남준은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형이 걱정돼?”“그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하연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남준은 그녀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가더니, 불과 반걸음 거리에 멈춰서 몸을 약간 숙였다. “너의 그 관심 나 한테도 좀 나눠 주면 안 돼?”그가 가까이 다가오며 내뱉은 말에 은은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술 마셨어?”남준은 입가를 비틀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혹시 나 걱정하는 거야?”“착각하지 마.”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부남준,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여기서 시간 끌 여유 없어.”남준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어딘가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너 갈수록 성격이 우리 형이랑 닮아가네. 역시 잘 어울리는 커플이야.” 하연
하연은 밝게 웃으며 상혁이 건넨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갓 짠 오렌지 주스는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부 대표님이 직접 짠 오렌지 주스라 그런가, 확실히 맛이 다르네요. 정말 맛있어요.”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 “맛있으면 자주 짜줄게.” 하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 감사히 잘 마실게요, 부 대표님!” “아니, 한참을 찾았는데 여기서 둘이서만 꽁냥거리고 있었네?” 문 앞에 기대어 서 있던 하성이 두 팔을 교차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혁, 너 요즘 이 녀석을 너무 애지중지하더라. 그러다 버릇 나빠지겠어.” “오빠!!” 하연은 볼이 부풀어올라 약간 투덜거렸지만, 옆에 있던 상혁은 태연하게 그녀를 감싸며 말했다. “애지중지하든 말든 내 마음이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하성은 두 손을 들며 장난스레 투항했다. “알았어, 알았어. 난 그냥 너희 둘이 잘 지내는 거 보니 마음이 놓여서 하는 소리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 계속 이렇게 잘 지내줘, 아주 보기 좋아!”그때 하연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부남준’이라는 이름이 뜨자 그녀는 잠시 긴장한 듯 눈빛이 흔들렸다. “오빠들, 먼저 얘기하고 있어요. 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하연이 자리를 비우고 복도로 나가자, 하성은 방금 전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상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요즘 너희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있더라. 동건 삼촌 쪽에서 뭔가 일이 있는 것 같던데?” 상혁은 하연이 마시다 남긴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시선을 복도 쪽에 고정한 채 무심하게 말했다. “첩이 ‘본처’의 자리를 노리는 거야. 흔한 일이잖아.” 하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동건 삼촌이 그 여자를 꽤 오랫동안 봐줬던 모양이던데. 이제는 꽤 많은 걸 쌓아둔 듯하고, 한번 크게 판을 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