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에 송연희는 순간 당황했고 가방을 급히 정리하며 말했다. “흥, 너 같은 시골 촌뜨기가 뭘 알겠어. 난 너랑 싸우기 싫어.”그러나 도경서와 한지민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심스러워했다. 연희가 작년 모델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연희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래도 두 친구는 연희의 편을 들어줬다.“연희야, 싸우지 마. 이제 하연에게 수준 차이가 무엇인지 톡톡히 보여주면 돼.”두 친구의 말에 연희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하지만 하연은 속으로 비웃으며, 셋이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지 보려고 했다.그 사이, 주차를 마치고 나온 최하성은 하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급히 최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하연은 전화를 끊고 문자를 보냈다. [오빠, 일이 좀 생겨서 나중에 연락할게.]이에 하성은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연희는 하연을 F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식당으로 데려갔다. 이곳은 모두 회원제로 운영되며, 여기서 카드를 발급받아야 소비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말인즉슨 부유한 사람들만 올 수 있는 장소였다. 연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직원이 웃으며 다가왔다.“송연희 씨,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에 연희는 당당하게 말했다. “예약한 방으로 안내해 줘요.”“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직원은 네 사람을 안내했고 두 친구는 계속 사진을 찍으며 들떠 있었는데 오직 하연만이 여전히 평온한 모습을 유지했다. 연희는 이를 보며 하연이 이런 고급 장소를 처음 와서 얼떨떨한 줄 알고 말했다. “잠시 후에 만날 사람들 모두 옛 동창이니까, 긴장하지 마.”이에 하연은 대답했다. “게네들이 날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긴장해?”당당한 하연에 연희는 할 말을 잃었고, 다시 말했다. “최하연, 예의를 갖추라고 알려주는 거야. 시골 촌뜨기처럼 굴지 마.”하지만 하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모습에 연희는 발을 구르며 화가 났고, 하연의 무심한 태도에 이를 갈았다.“도착했습니다.”직원
평소 송연희와 어울리는 이들은 대부분 연희처럼 속물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학교 시절부터 최하연 같은 낮은 신분의 사람이 그들의 무리에 끼려는 것을 무시해 왔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말을 거칠게 하기 시작했다.“하연아, 요즘 어디서 일해? 월급은 얼마나 받아?”“결혼했어? 애인은 있어?”“필요하면 소개해 줄까?”그때 연희가 일부러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너희들 무슨 질문이 그래? 하연이 우리랑 같아? 우리 중에 누구 집에 돈이 없겠어. 우리는 그냥 가족 사업을 물려받으면 되잖아.”“하연은 아마 지금도 어딘 가에서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겠지! 그러니 너희들도 너무 놀리지 마,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거야.”연희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으나 최하연은 그들의 말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한 여자 동창은 하연의 옷이 샤넬의 이번 연도 시즌 한정판 고급 맞춤복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매우 비싼 가격인 데다가, 일반적으로 판매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연 같은 신분의 사람이 어떻게 그 옷을 살 수 있겠냐는 생각에 무심코 물었다.“하연아, 그 옷 어디서 샀어? 가짜 같은데 품질은 괜찮아 보이네?”이 말에 다른 사람들도 하연의 옷에 주목했다. 그제야 그들은 하연의 옷이 정말로 좋은 품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최하연이 그렇게 비싼 옷을 살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하연아, 이 옷 비싸지 않아?”“짝퉁이 품질이 이렇게 좋을 수 있나?”“설마 코팡 같은 데에서 찾은 짝퉁인가?”그러자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코팡에서 검색해봐, 같은 제품을 찾을 수 있는지.”하연의 태도가 갑자기 변하자 모두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하연이 그들과 대화 자체를 잘 하지 않았었다.“하연아,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그냥 농담으로 너를 놀린 것뿐이야.” 연희는 억울한 척하며 말하자 이 말에 다른 사람들도 동의했다. “그래, 왜 이렇게 쪼잔하게 굴어. 농담도 못 받
그러자 최하연이 감탄하며 말했다.“아, 그 중에 주요 스트리머였던 채송화도 포함되어 있겠지. 탈세로 체포되어 몇 천억 원을 벌금으로 물었다고 들었어!”“한낱 스트리머가 이렇게 출중한 능력을 갖췄다면, 그 뒤에 있는 자본과 연관이 없을 수 없지. 이 사건이 꽤 크게 일어나서, 다들 들어봤잖아?”명석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명석의 가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 회사는 거의 이 사건으로 인해 파산할 뻔했다. ‘근데 쟤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하연은 더 이상 명석을 상대하지 않고, 한지민을 바라보았다. “네 집안은 수산업을 하고 있지. 태풍의 영향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고 들었어. 사채업자로부터 빌린 돈을 이제 다 갚았나?”그러자 지민의 표정은 곧바로 어두워졌고 하연은 도경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집안은 작년에 금융 폭풍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고, 은행에 많은 돈을 빚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야?”이에 경서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너, 너, 네가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어?”하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너희들의 이런 역겨운 속물적인 태도가 사람을 메스껍게 만든다는 거야.”그러고 나서 하연은 연희를 바라보았다.“미래 테크놀로지가 요즘 잘 나가고 있긴 해. 하지만 이노베이션 회사가 점점 강해지고 있어.”“어느 날, 미래 테크놀로지를 밟아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이번 비즈니스 포럼에서 기회를 잡아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끝장일지도 모르니까.”하연의 말에 연희는 화가 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하지만 하연의 말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는데 하연의 말은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다들 당황해 하는 기색에 하연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느낀 하연은 일어나 떠나려 했다.“그럼 먼저 가볼 게. 다음에 또 봐.”하연은 방을 떠나며,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하연의 정체가 뭐야? 어떻게
모두가 한숨을 쉬며 최하연을 바닥까지 깎아내렸고 심지어는 악담을 퍼부으며 떠들었다.“이런 사람은 우리와 동창일 자격이 없어.”“다시 만나면 제대로 혼내 줄 거야.”“남의 남자와 바람 피우는 여자, 그게 누구든 처벌받아야 해.”다음 날 아침.송연희는 탐정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연희 씨, 저희가 조사해 봤는데 최하연에 대해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어요.”그러자 연희는 화를 내며 말했다. “쓸모없는 것들! F 국이 그렇게 큰 곳도 아닌데, 한 사람을 찾지도 못하고, 너희들 무슨 일을 한 거야!”그러자 탐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군가 그분의 신분 정보를 숨겼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을 겁니다.”이에 연희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최하연한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너희들이 일을 못 하는 건 둘째 치고, 변명하지 마. 앞으로는 너희한테 일을 맡기지 않을 거니까!”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연희의 아버지인 송강석이 다가오며 온화한 얼굴로 물었다. “연희야, 아침부터 무슨 일로 화를 내니?”연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빠! 오늘이 비즈니스 포럼이니까 우리 회사가 이 기회를 잘 살려서 더 많은 주문을 따내야 해요.”그러자 송강석은 기뻐하며 말했다. “연희야,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아빠는 만족한다. 서밋에 가서 잘해야 한다. 또, 올해는 최씨 집안에서도 포럼에 참석한다고 들었다.”최씨 집안이라는 말을 듣자 송연희의 눈이 반짝였다.“최하민도 참석하나요?”송강석은 연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딸 눈에는 최하민 밖에 없구나?”그러자 연희는 얼굴이 빨개졌다. F 국에서 하민은 비즈니스 신화로 알려져 있었고, 최씨 집안의 후원 아래 세계 최고 부자였다. 그랬기에 많은 이들이 하민과 결혼하여 재벌 가문에 들어가길 바랐고 연희도 예외는 아니었다.“아빠, 만약 우리가 최씨 집안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어느 기업이 우리를 무시하겠어요? 주문도 우리가 낮춰서 구걸
“하연아, 이 드레스 어때?” 최하성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지만 고급 맞춤 드레스를 들어 하연의 앞에서 흔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하경은 질 수 없다는 듯이 눈에 띄는 드레스를 골라 들었다. “하연아, 이 드레스 너한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형, 그 드레스는 너무 화려해요.”하지만 하경이 반박했다. “네가 고른 건 너무 어두워.”두 사람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었고 결국, 선택의 권한은 하연에게 넘어갔다. “하연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하연은 두 드레스를 살펴보고 말했다. “오빠들 다 안목은 정말 좋아요. 고른 드레스는 모두 좋지만, 오늘은 조금 더 단아한 게 좋을 것 같아요.”말을 마치고, 하연은 옅은 보라색 고급 맞춤 드레스를 손에 들었다. 이에 하성과 하경은 서로를 바라보다 하성이 말했다. “평화롭게 끝내죠! 형, 이번 판은 무효로 해요.”하연은 두 경쟁자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한 명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오빠들! 고마워요!”“바보 같은 우리 동생님, 무슨 고맙다고 그래. 이 집에서 너는 우리 공주님이야.”하경은 애정 어린 말투로 말하고는 하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서 옷을 갈아입어. 큰 형이 기다리고 있으니까.”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드레스를 들고 탈의실로 들어가서 옅은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그리고 나선형 계단을 천천히 내려올 때, 모든 사람의 눈은 반짝반짝해서 하연을 쳐다봤고 그저 예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연아, 너 오늘 정말 예뻐.” 하성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하경도 뒤따라 말했다. “이 드레스는 조용하면서도 우아해. 너를 위해 맞춘 것처럼 모든 디테일이 완벽해.”하연은 두 오빠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다.“오늘 우리 오빠들 너무 스윗한데?”그러고는 웃으며 큰오빠 앞에 섰다.“오빠, 출발해요.”하연은 그녀의 드레스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함께 문을 나섰다. 한정판 롤스로이스 팬텀이 이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민과 하
송연희는 이미 회장에 도착해 있었고,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자리를 찾던 중, 문 입구에서 최하연을 발견했고 연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최하연이 여기 왜 왔지?” 연희의 말에 옆에 있던 한지민도 연희의 시선을 따라 하연을 바라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또한 어제 하연이 스포츠카를 타고 가는 것을 본 것이 기억나서, 질투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료로 먹고 마시려고 온 게 아닐까?”연희는 입을 삐죽이며 하연이 여기에 있는 것이 자신의 수준을 낮추는 것처럼 느꼈다.“이런 자리에 아무나 다 끼어드는구나.”지민은 연희의 불만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연희야, 내가 가서 혼내 줄까? 걔한테 본때를 보여주자.”연희는 말이 없었지만, 침묵은 동의를 의미했고 친구는 연희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하연에게 다가갔다.“이게 누구야, 내 동창 아니야? 여기는 어떻게 왔어? 초대장이 있기는 해? 아니면 그냥 공짜로 먹고 마시려고 온 거야?”말투에서 조롱이 가득했고 하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돌아보니,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경멸하는 지민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멀리서 연희가 이 광경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에 하연은 천천히 대답했다. “너는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그 짧은 한마디에 지민의 얼굴이 변했다. 지민은 연희와 함께 들어온 게 사실이지만, 하연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몰랐고 곧바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이에 하연은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여기서 헛소리하지 마.”지민의 얼굴은 삽시간에 더욱 어두워졌고 하연이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일 줄 몰랐다.“최하연, 너 내가 헛소리하는지 아닌지 네가 더 잘 알잖아.”“남의 남자와 바람 피우는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내가 사람들 앞에서 네 더러운 만행을 다 말해줘야겠어?”지민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주의를 끌 만했다. 그리고 하연의 눈은 어두워
모든 사람들 앞에서 송연희는 정의롭게 행동했고, 최하연은 연희를 무시하며 말했다. “비켜.”연희는 하연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 몰랐기에 피식 비웃었다. “하연아, 잘못한 일은 인정하고, 매를 맞으려면 제대로 맞아야지.”“네가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야.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주최 측을 불러 너를 쫓아내겠어.”연희의 이 말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충분했고 특히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연희 편에 섰다.“여기는 난동 부리는 곳이 아니야. 사람을 때리다니, 너무 거만하잖아.”“사과하는 게 낫겠어. 일이 더 커지기 전에.”“맞아, 연희가 네게 기회를 주는 거야. 그 기회를 놓치지 마.”사람들의 말을 듣고, 연희는 속으로 매우 만족해 했다. 그리고는 하연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어때? 사과해.”하연도 화가 났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사과는 못 해.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하연의 말에 넘어졌던 한지민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비웃었다. 그러나 곧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됐어, 연희야. 하연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지민은 말하면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큰 억울함이라도 당한 줄 알았다. 하지만 연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강하게 나왔다.“네게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당장 여기서 너를 쫓아낼 거야.”연희의 말에 개의치 않다는 듯 하연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한 번 해보든가.”연희는 하연의 고집에 당황했지만, 이미 말했으니 물러설 수 없어 즉시 전화를 걸었다.“경호원, 여기 누군가 소란을 피우고 있네요. 처리해 주세요.”전화를 끊고, 연희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하연아,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주변 사람들이 하연을 알아보고, 나운석과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은 하연을 말렸다. “연희 씨,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요. 저 사람 건들지 말고요.”그러나 연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다니, 어떻게 그럴
“저 여자 말을 듣지 마세요. 모두 거짓말입니다.”한지민이 서둘러 변명했다.그런데 그때 나운석이 다가와서, 최하연 앞에 서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괜찮으세요?”그러자 하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요.”운석은 녹음기를 들었고, 곧바로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이 분은 제가 초대한 손님입니다. 그런데 감히 제 앞에서 모욕하려는 건가요?”이 말에 주변 사람들이 침묵하며 자리를 떠났고 이 상황에 송연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운석이 하연에게 이렇게 친절하고 보호하는 태도를 보이자, 굉장히 당황했다. 이내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했다가 즉시 태도를 바꾸어 웃으며 운석에게 다가갔다.“운석 도련님, 저는 미래 테크놀로지의 송연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연희는 아첨하는 태도로 친절을 보였지만, 운석은 연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한지민을 바라보았다.“방금 하연 씨를 모욕한 사람이 당신입니까?”지민은 당황했고,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어리어리해 있었고 운석은 곧바로 보안 요원을 불렀다. “쫓아내세요.”이에 보안 요원은 즉시 다가와서 지민을 주저 없이 쫓아냈다. 이 모든 일을 마친 후, 운석은 직접 하연을 데리고 회장으로 들어갔고, 연희는 어리둥절한 채로 자리에 남았다.그랬기에 연희는 하연의 신분에 대해 더욱 궁금해졌다. 하연이 회장에 들어서자마자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고, 주변 사람들이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하연은 예의 바르게 일일이 응대했다.연희는 이 광경을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바로 그때, 최하민이 입장했다. 연희의 시선은 바로 하민에게로 향했고, 옷과 화장을 체크한 후 하민에게 다가갔다.“하민 대표님, 저는 미래 테크놀로지의 송연희입니다. 여기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연희는 웃으며 하민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하민은 미소를 보이지 않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악수를 청했지만 응하지 않아 허전한 손에 연희는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오늘 파트너
고개를 돌려 반짝이는 눈빛으로 하연이 상혁을 바라보았다. “여긴 어디예요?” 상혁은 여자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때 버려졌던 작은 섬인데. 나중에 내가 사들였어.” 그는 자연스럽게 하연의 손을 잡으며 손가락을 맞물렸다. “어때? 마음에 들어?”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네, 좋아요!” ‘좋다니 다행이야.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보람이 있었네.’이 순간을 상혁이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그는 하연의 손을 살짝 당기며 말했다. “일단 우리 아침부터 먹자. 그리고 이따가 바닷가에 데려가 줄게.” “좋아요.” 이 섬은 남태평양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은 외딴섬이었다. 한때는 몇 년 동안 방치되어 잡초가 무성하고 황폐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상혁이 이곳을 매입해 전문가에게 맡겼다. 불과 2년 만에 섬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집도 짓고, 길도 만들고, 섬 전체가 아름답게 정돈되었다. 한낮이 되자 햇살이 섬을 따스하게 감쌌다. 하연과 상혁은 손을 잡고 깔끔하게 정돈된 자갈길을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바람이 불어오자 하연의 원피스 자락이 살짝 날렸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멀리 두었다. 눈앞에는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고, 곱디고운 모래가 햇빛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저기 봐요! 야자수가 있어요!” 하연은 설레는 듯 조심스레 뛰어나갔다. 상혁은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녀가 가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푸른 하늘 아래, 키가 큰 야자수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서 있었다. 커다란 잎사귀들이 바닷바람을 타고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마치 오랜 세월을 품고 바다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연은 신발을 벗고 모래 위에 발을 내디뎠다. 발끝을 감싸는 모래가 부드럽고도 간질거려, 묘한 전율이 발끝에서부터
가정부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다영은 손에 힘을 주며 눈빛을 날카롭게 번뜩였다. “정말이야?” 가정부는 몸을 잔뜩 웅크리며 떨었다. “정말 없습니다. 다만...” “다만 뭐?” 가정부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가 결국 떨리는 손으로 오늘 아침 신문을 내밀었다. “아가씨, 아가씨가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다영이 반응하기도 전에, 가정부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다영은 신문을 펼쳤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부남준의 충격적인 스캔들이었다. 각종 유명 유흥지에서 여성들과 어울리는 사진들,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장면들이 페이지를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게 말이 돼? 남준 씨가 나한테 이럴 리가 없어.’ “이건 거짓말이야!” 신문을 쥐고 있는 다영의 손의 힘에 의해 손이 하얗게 질려 갔다. 그녀는 결국 신문을 찢어버렸다. 그때, 송혜선이 아래층에서 천천히 내려오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일이야?” 다영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송혜선에게 달려가 팔을 붙잡았다. “어머님, 남준 씨가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어요?” ‘이럴 수가 없어!’ 송혜선은 미간을 좁히며 한숨을 쉬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다영은 바닥에 떨어진 신문을 집어 송혜선에게 내밀었다. 송혜선은 대충 훑어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부남준의 사생활에 대해서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회사 권력을 잡기 위해 정지철의 힘을 빌리지 않았더라면, 송혜선은 감히 정다영을 건드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정지철은 구속됐고, 정씨 가문도 몰락했으니, 다영에게 아직 이용 가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았다면, 송혜선은 진작에 다영을 내쫓았을 것이다. 다영에게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이런 신문 기사 하나에 휘둘리지 마라, 다영아.” 송혜선은 태연하게 다영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 “넌 남준이의 약혼녀야. 네가 남준이를 의심하면
상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용히 하연을 품에 안았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네가 좋아하는 요리들 준비해뒀어.” 하연은 눈을 들어 남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정말 맛있는 저녁이 되겠네.” 상혁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 하연이, 여전히 먹을 것 앞에서는 못 참는구나.” 식탁 위에는 하연이 좋아하는 요리들이 정성스레 차려져 있었다. 마늘 버터 가리비, 새우찜, 전복찜, 킹크랩, 탕수육까지. 하연은 만족스럽게 식사를 즐겼고, 상혁은 그녀 옆에서 직접 새우를 까서 접시에 올려주었다. “부 대표님의 또 다른 재능이 새우 까기였나 봐요?” 하연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상혁은 마지막 한 마리를 까서 그녀 앞에 내밀며 미소 지었다. “너만을 위한 서비스야.” “그럼 나는 정말 행운아네요.”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새우를 한입에 넣었다. 그때,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깜빡였다. 원신민이 보낸 메시지였다. [부 대표님, 그 사진들 보낸 사람이 정다영 씨였습니다.]상혁은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으려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나서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남자의 눈빛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이건 예상 밖이군.’ 그러나 그는 곧 차분하게 타이핑을 시작했다. [남준이는 요즘 뭐 하고 다니지?]원신민의 답장은 빠르게 도착했다. [부남준 상무님은 최근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여성들과 어울리고 있습니다.]상혁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진 확보 가능해?][어렵지 않습니다.][서여은 편집장 요즘 기사거리가 부족하다던데, 도와줘야겠어.] 메시지를 받은 원신민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부 대표님, 한 방에 끝내버리는구나.’ [알겠습니다, 대표님.]상혁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어요?” “작은 일 좀 정리했어.” 그는
하연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이현의 말이 그동안 떠돌던 소문을 확인해 주는 듯했다.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내렸어요?” 이현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감회가 어린 듯 말했다. “예전엔 내가 사업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거죠.” 그는 눈을 들어 하연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말하는 게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겠지.’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듯한 이 말들 속에는,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체면을 지키면서도 이별의 뜻이 담겨 있는 방식이었다. 이현은 한때 상혁과 정면 승부를 벌이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하연을 자신의 곁으로 다시 두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이현과 하연을 번번이 엇갈리게 만들었고, 끝없이 스쳐 지나가게 했다. 이현의 모든 집착과 미련은, 하연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게 하연이 선택한 행복이라면, 이현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조용히 축복해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애초에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요. 차라리 계속 가게 운영하는 게 더 어울렸을 텐데...” “그래도 다행이죠.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았으니까. 이제라도 진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겠어요.” 하연은 조용히 남자의 말을 들으며, 친구로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쩌면 새로운 곳에서 당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이현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아요.” 그 순간, 오랫동안 이현의 마음속에 얹혀 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스르르 사라지는 기분이들었다. 심지어 그 한때의 집착과 미련도 함께 흩어져 갔다. 그는 가볍게 몸을 돌려 준비해 온 선물 상자를 꺼내며 말했다. “새해가 지나면 하연 씨 약혼식이 있을 테니, 나는 참석하지 않겠지만, 이 약혼 선물만큼은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약혼 선물’이라는 말이 하연의 귀에 맴돌았다. 이것이 하연이 이현과 함께 들려온 남
“하연이, 집에서 지내는 게 더 편할 거예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너는 항상 우리 하연이만 생각하는구나.” 최동신은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어딘가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긴 하지. 집안 가정부들은 어릴 때부터 하연이를 봐왔으니, 생활 습관을 잘 알고 있고 이곳이 하연이가 편하긴 할 거야.” “아침부터 나갔다던데, 너랑 같이 있던 게 아니었어? 그럼 얘가 어디 간 거지?” 최동신은 가정부를 불러 말했다. “하연 아가씨한테 전화 좀 걸어보게.” “어르신, 이미 전화드렸는데 받지 않으십니다.” 최동신은 미간을 좁혔다. “무음으로 해놔서 못 들었나...” 하지만 최동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혁의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였다. 상혁은 화면을 열어 확인하는 순간, 눈빛이 짙어졌다. 최동신은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다. “상혁아,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야?” 상혁은 잠시 멈칫했지만, 다시금 평정을 찾고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업무 관련한 일이라서요.” 최동신은 배려 깊게 말했다. “일이 우선이지. 얼른 가봐라.” 최씨 가문의 본가를 나서며, 상혁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문자 메시지 하단에 찍힌 ‘TW카페’ 네 글자가 유독 선명했다. ...평일 오전의 TW 카페는 한산했다. 한 시간 전. 다시 ‘한명준’이 된 손이현은 급히 카페로 향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창가 소파에 앉아 있는 하연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여자에게 내려앉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자아냈다. 이현의 발걸음도 순간 멈췄다. 그는 한동안 하연을 바라보며 흐트러진 숨을 고르던 중, 직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손님, 몇 분이세요?” 이현은 가볍게 손짓했다.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하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다리게 했나요?” 하연은 시선을 들어 평온한 표정으로
“이게 뭐야?” 송혜선은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선만큼은 솔직했다. 하지만 사진 속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사진을 낚아채고 하나하나 넘겨봤다. 사진마다 담긴 장면이 송혜선을 점점 흥분하게 만들었다. ‘흥, 최씨 가문의 귀한 딸이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고 있다니, 이거 재미있어지겠는데?’ 사진 속 남자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고고한 분위기, 남다른 기품까지...비록 사진에는 전부 뒷모습만 담겨 있었지만, 남자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송혜선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모든 사진을 훑어본 뒤 나지막이 말했다. “이 정도는 그냥 친한 남녀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일 아닐까? 선을 넘은 정황은 없잖아. 겉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정다영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그녀는 오래전부터 하연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설 탐정을 통해 추적해왔다. 그리고 사진 속 ‘한명준’이라는 남자와 하연 이 둘 사이에는 단순한 친분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어머님, 이 남자가 누군지 아세요?” 다영의 목소리는 은근한 흥분을 담고 있었다. “바로 B시 한씨 가문의 사람이란다.” “B시 한씨 가문?” 송혜선은 순간적으로 하연의 전 남편이 한씨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자신이 분명 들은 바에 따르면 한씨 가문은 이미 몰락한 상태였다. “최하연의 전남편은 감옥에 간 걸로 아는데, 또 다른 한씨 가문 사람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하여튼 복잡한 사연이 많았어.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단다.” 다영은 하연과 ‘한명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이 일을 이용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건, 우리가 부상혁에게 무엇을 보여주느냐는 겁니다.” ‘남자
배가 항구에 서서히 가까워질 때, 허징인은 저 멀리 보이는 부두를 응시하면서 머릿속에서 끔찍했던 기억들이 마치 영화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날의 비명, 피 냄새, 그리고 민찬의 얼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는 참았던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숨을 깊게 들이쉬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난간을 꽉 잡은 여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하얀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허징인의 떨리는 손끝은 마음속 분노와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상혁이 조용히 허징인 곁에 다가왔다. 남자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섞여 들려왔다. “배에서 내리면, 제 부하들이 안전한 곳으로 허징인 씨를 모실 겁니다.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마세요.” 허징인은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차가운 눈빛과 함께 낮고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 대표님, 하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가웠다. “제 남편이 부남준 밑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어요. 물론, 제 남편도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저와 민찬이를 지키기 위해 부남준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적도 많았어요.” 잠시 말을 멈춘 허징인은 숨을 고르며 상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제 남편은 민찬이의 죽음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동안 자신과 부남준 사이에 있었던 모든 부정한 거래를 실토할 겁니다.”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부 대표님께서 제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할 방법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허징인의 목적은 단순했다. ‘정규인을 이용해 부남준을 무너뜨릴 단서를 만들어야 해. 민찬이의 억울한 죽음을,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상혁은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상혁의 원래 무심하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그가 감정적으로 흔들렸다는 건 분명했다. 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담배 한 갑을 꺼내 들었다. 남자의 길고 날렵한 손가락이 담배 한 개비를 집어 들고는 정확히 입술 끝에 물었다. 그다음엔 상혁은 침착하게 라이터를 켜고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담배를 깊이 들이마신 뒤, 한순간 숨을 멈췄다가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연기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눈빛은 이전보다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이 판이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어.’ 그러나 허징인은 자신의 분노에 사로잡혀, 상혁의 변화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부남준은 제가 가진 증거를 빼앗으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겠죠. 그래서 절 죽이고 모든 걸 덮으려 했던 거고요. 정말 어리석은 꿈을 꾼 거죠.” 허징인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었다. 감정이 폭발하면서 그녀는 마치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듯 말을 쏟아냈다. “부남준도 설마 이런 상황까지는 생각 못 했겠죠. 제가 이런 처지에 놓일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 못 했을 거예요. 하지만 증거를 손에 넣는 순간부터 전 모든 걸 철저히 준비해 뒀어요. 단 한 치의 빈틈도 없도록 말이에요.” 상혁은 담배를 쥔 손을 잠시 멈추고, 허징인을 바라봤다. 남자의 눈빛엔 전에 없던 흥미와 약간의 감탄이 섞여 있었다. “허징인 씨, 오늘 정말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허징인은 상혁의 반응에 반응하지 않았고, 대신 스스로를 비웃듯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처음엔 그저 제 아들과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그 사람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둔다면, 제가 가진 증거는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그녀는 한순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허징인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며,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폭발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에요. 그놈이 제 아들을... 민찬이를 죽였어요! 제 손으로 지켜야 했던
금발 남자의 얼굴엔 잔인한 기색이 스쳤다. 허징인과 민찬에게 단 한 줌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저년의 입과 코를 꽁꽁 막아. 빈틈 하나도 남기지 말고.” 허징인은 절망에 빠진 눈으로 민찬을 바라보았다. ‘내 아들... 우리 민찬이...!’ 울부짖는 어린 민찬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가운데, 그녀는 거대한 배의 20미터 높이의 갑판에서 차갑고 무자비하게 바다로 내던져졌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이 온몸을 감싸고,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이 허징인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의식은 멀어지고, 그녀의 몸은 깊고 어두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러나 의식이 다시 돌아왔을 때, 허징인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무겁게 아파왔다. ‘아... 여긴 어디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를 눌러본 뒤에야,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나는 바다에 던져졌는데... 대체 여긴 어디지?’ 그리고 그녀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 민찬. ‘민찬? 설마... 설마 내 아들...!’ 그 순간, 절망감이 몰려오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렸다. 허징인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쳤다. ‘누구야? 또다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부상혁 대표님...?”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허징인 씨, 오랜만이네요.” 상혁 곁에 있던 원신민은 눈치를 보며 조용히 방을 나가고, 문을 닫았다. 허징인은 불신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부 대표님, 어떻게... 어떻게 여기에...?” 여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대답을 기다리며 불안감이 가득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허징인은 곧 머리를 굴렸다. ‘설마... 나를 구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