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모두 무릎을 꿇고 외쳤다.“보스!”심영수는 이 장면을 보고 마음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자기 동료들이 모두 최하연을 보스로 인정했기에 이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몰랐다.“영수, 아직도 뭐 하고 서 있어? 빨리 무릎 꿇고 대장님께 빌어. 목숨만이라도 살려달라고 하란 말이다.” 대철의 말에 영수는 속으로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었다. 이에 하연은 잠시 멈칫했다. 대철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고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었다.“다들 일어나세요.”대철은 손짓으로 사람들을 일으키고는 부하의 태도를 갖추고 다가와 말했다.“보스, 이제부터 우리는 당신을 따를 것입니다. 영수의 일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숨을 원하시면 바로 처리하겠습니다.”하연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가볍게 말했다. “목숨은 필요 없어요.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요.”영수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목숨을 건진 것에 안도했다.“최 사장님, 아니, 보스.” 영수는 급히 호칭을 고쳐 말했다. “명령을 내려 주시죠.”하연이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요. 받은 대로 돌려주는 거죠. 내 말 이해하겠어요?”영수는 잠시 망설였다. 조희경은 영수의 여자였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그렇게 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연은 영수가 주저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싫다는 건가요?”하연은 몸을 기울이며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강력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싫다는 건가요? 아니면 대신 벌을 받고 싶다는 건가요?”영수는 몸을 떨었고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자, 영수는 자신을 보호하기로 했다. “3일만 주세요. 반드시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돌아서려는 순간, 대철이 하연을 불렀다. “보스, 저희는요? 어떤 명령이든 내리세요.”“필요할 때 다시 찾죠. 그전까지는 이곳을 관리해 주세요.”이에 대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보스. 안녕히 가세요!”모두가 하연을
최하연은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상혁 오빠. 이제 알겠어요.”“좋아, 이제 곽대철이 너를 따르니, 앞으로 B시에서 활동하는 게 훨씬 수월할 거야.”이 점은 하연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하연은 단순히 한 사람을 겨우 부하로 삼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작은 행동이 이미 B시의 지하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민혜경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고 호텔 VIP 룸에서 자신을 치장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화려하게 꾸미고 나서, 혜경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혜경은 기뻐하며 문을 열었다. “드디어 왔어요?”문이 열리자, 익숙한 영수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오늘 그는 건장한 남자들을 데리고 있었다. 이에 혜경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며 말했다.“오빠,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왔어요?”영수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혜경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손짓하자 뒤에 있던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방에 들어섰다. 문이 닫히자, 혜경은 영수에게 다가갔다. “오빠,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기분이 나빠요? 내가 기분 좋게 해줄 게요.” 혜경은 손을 영수의 몸 위에 갖다 대고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영수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잡았다. “그만해, 오늘은 그런 기분 아니야.”그러자 혜경이 당황해 했다. 혜경에게 영수가 이런 말투로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며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오빠, 하연 씨 일은 잘 처리되었어요? 이미 죽었겠죠?”하연의 이름을 언급하자, 영수는 혜경을 바라보며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그러나 혜경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말했다. “하하하, 최하연 같은 천한 년은 이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어. 이제 아무도 내 머리 위에 설 수 없어.”영수는 혜경의 말을 듣고 가볍게 말했다. “꿈 깨.”그러자 혜경은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민혜경이 아무리 애원해도, 심영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결국 심영수는 혜경을 밀쳐내며 말했다. “묶어.”영수는 문 쪽을 향해서 명령했지만 하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에 영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직접 문을 열었다. “명령이 들리지 않나?”말을 마치기도 전에, 영수는 깊고 강렬한 시선과 맞닥뜨렸다. 그 남자는 강력한 기운을 풍기며, 영수에게 압박감을 주었다.“한 대표님, 왜 여기에 있습니까?”서준은 대답하지 않고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섰다. 한편, 혜경은 서준을 보자마자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 듯 달려갔다.“서준 씨, 당신이 왔군요? 제발 날 구해줘요, 제발.”서준은 걸음을 멈추고, 혜경을 내려다보며, 눈에 동정심 대신 혐오감을 드러냈다.“서준 씨, 이 여자를 위해서 오신 겁니까?” 영수의 말에 혜경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서준 씨, 날 데리고 가요. 부탁해요, 날 데리고 가세요! 이제 다시는 하연 씨를 건드리지 않겠어요.”서준은 차갑게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제가 저 여자를 데려갔다가 두 시간 후에 돌려드리겠습니다.”영수는 의아했지만, 서준과 맞서지 않고 그저 혜경을 흘끗 보며 말했다. “한 대표님, 이 여자가 그럴 가치가 있습니까? 그냥 D시에 던져버리면 끝날 텐데요.”서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그냥 알리러 온 겁니다. 상의가 아니라요.”말을 마친 영수는 심기가 불편했지만, 서준이 혜경을 데리고 나가자 영수는 분노로 벽을 주먹으로 쳤다. ‘한서준, 두고 보자.’...서준은 혜경을 고풍스러운 집으로 데려갔다. 두 사람이 들어가자, 보디가드가 혜경을 바닥에 던져졌고 혜경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서준에게 다가갔다. “서준 씨, 당신이 날 생각해 주는 걸 알아요. 제발 날 구해줘요, 제발 B시에서 떠나게 해줘요.”혜경의 목소리는 간절했지만 서준은 차갑게 말했다. “혜경아, 내가 너를 데려온 이유는 진실을 듣기 위해서야.”혜경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진실요?”서준은 혜경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
민혜경은 이어서 말했다. “진실을 말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아요.”“하지만 당신은 내가 B시를 떠나도록 도와주고, 내 남은 인생을 위한 충분한 돈을 줘야 해요.”“좋아.”간단한 한마디에 혜경은 매우 놀랐다. 혜경은 서준이 하연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서준 씨, 이럴 거면 처음부터 왜 그랬어요?”“쓸데없는 말 그만해, 혜경아. 내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혜경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서준 씨, 나는 바보가 아니에요! 지금 말해주지는 않을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진실을 말하면, 내가 어떻게 B시를 떠날 수 있겠어요?”“그러니, 당신이 직접 나를 출국시켜 줘요. 그럼 내가 진실을 말해 줄게요.”서준은 말없이 혜경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말을 마치고, 혜경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무시한 채 보디가드를 불렀다. “바로 영수에게 넘겨. 두 시간은 너무 기네.”혜경은 서준이 정말로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안 돼요, 서준 씨 말할게요.”하지만 서준은 움직이지 않았고, 보디가드가 혜경을 끌어올렸다. 혜경은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서준 씨, 그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에요. 그날 밤 당신이 취했을 때,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내가 일부러 당신을 속인 거예요. 당신이 그 아이가 당신 것이라고 믿게 했어요.”혜경은 거의 울면서 말했다. 하지만 혜경의 말이 끝나자 보디가드의 움직임도 멈췄고 혜경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서준 씨,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나를 구해줘요. 난 죽고 싶지 않아요. 진짜로 죽고 싶지 않아요.”혜경의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하연이 이미 문에 서 있었다. 하연은 모든 것을 본 듯한 표정으로 그저 무심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서준을 보았다. 예전에는 깊은 애정과 사랑이 담겨 있었지만, 지금은 차가운 물처럼 평온했다.“서준, 이게 나를 초대한 이유야?”하연은 모든 것을 짐작한 듯 말했
최하연은 눈을 내리깔고 말하지 않았고 서준은 계속해서 말했다. “혜경이 너에게 많은 상처를 준 것은 알지만, 혜경은 마땅한 벌을 받을 거야.”“그리고 내가 왜 걔를 감옥에서 빼내 왔는지 궁금할 거야. 하지만 내 목적은 오늘을 위한 것이었어.”하연은 고개를 들어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아, 네가 나를 위해 한 일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이제 아무 의미도 없어.”서준은 당황했다.“왜, 하연아. 왜 의미가 없다는 거야?”하연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은 분명했다. 비록 서준과 혜경이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자신에게 준 상처는 되돌릴 수 없었다. 그 항공기 사고는 서준의 진짜 모습을 알게 했고, 하연은 더 이상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곧이어 하연이 말했다.“서준아, 억지로 맺어진 인연은 깊게 가지 못해. 그리고 감정의 상처는 몇 마디로 치유될 수 없어.”“난 이미 그 감정을 놓아버렸어. 그러니 서준아, 이제 더 이상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하연은 말을 마치고 미련 없이 돌아서서 떠났다. 서준은 하연을 붙잡으려 했지만, 옷자락도 잡지 못한 채 결국, 하연이 떠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그 순간, 서준은 하연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고 서준이 몸이 굳어질 정도로 오래 기다릴 때쯤 보디가드가 들어왔다. “밖에 있는 여자는 어떻게 할까요?”생각을 정리한 서준이 차갑게 말했다. “심영수 씨에게 넘겨. 그리고 죽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본인 운에 맡겨. 운이 좋으면 살고 나쁘면 죽겠지.”“알겠습니다, 한 대표님.”...서준의 집을 떠난 후, 하연은 무거운 마음으로 차에 탔다. 그러고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벨 소리가 하연의 생각을 깨뜨렸다.“오빠!”최하민은 하연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감지하고 말했다. “네가 곽대철을 비롯한 B시의 첫 번째 지하 조직을 복종시켰다고 하던데?”그러자 하연이 말했다. “오빠, 정보가 참 빠르네요!”“네 일이라 내가 신경을 쓰는 게 아니겠
“할아버지께서 네가 돌아온 걸 아시고, 특별히 주방에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게 하셨어.”그러자 최하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와, 나 정말 너무 행복해요!”“넌 정말 먹보야!” 하경은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두 사람은 집에서 준비한 차에 올랐다. 하연의 저택은 수천 평의 넓이로, 착륙장에서 주 저택까지 차로 이동하는 데에만 10분이 걸렸다. 집에 도착하자, 하인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하연을 보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가씨, 안녕하세요!”이에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만큼, 세 형제도 모두 모였다. 할아버지는 매우 기뻐하며 식사하기 전부터 다 한 후까지 하연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밤 10시가 되어, 하연이 연이어 하품하자 할아버지는 마침내 하연을 놓아주며 말했다. “그래, 하연아. 비행기를 오래 타느라 피곤할 테니 이제 쉬어라.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할아버지와 체스 한 판 두는 거 잊지 말고.”이에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하연은 일어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세 오빠가 벽에 기대어 하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최하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내일 내가 너를 쇼핑몰에 데려가서 네가 좋아하는 옷과 주얼리들을 골라 줄게.”곧이어 하경이 뒤따라 말했다. “형, 그게 무슨 새로운 아이디어예요! 하연아, 내일 내가 너를 새로 연 게임 클럽에 데려가 줄게. 서버가 정말 죽여줘서 네가 완전히 즐길 수 있을 거야.”이에 하성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하연아, 가로수길에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들이 많고 맛있어, 어때? 가고 싶어?”세 오빠가 서로 경쟁하듯 호의를 베푸는 모습에 하연은 어쩔 줄 몰라 웃음을 지었다.“오빠들, 저 정말 피곤해요. 이 얘기는 내일 다시 할까요?”하민, 하경, 하성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돼, 넌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해.”
최하성이 준비한 옷은 최하연의 사이즈에 딱 맞았을 뿐만 아니라 분위기와도 완벽히 어울렸다.“오빠 안목은 여전하네요.”칭찬을 받은 하성은 기뻐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누굴 위해 골라주는 옷인데.”하연은 웃으며 말했다. “미래 새언니는 복받았네요!”그러자 하성은 급히 말을 막았다. “하연아. 새언니는 무슨 새언니야.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그런 말 하지 마.”생각 밖의 모습에 하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부끄러워요?”“그럴 리가, 빨리 준비해. 이젠 나가봐야 해.”팬들에게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하성은 변장을 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하연을 데리고 나갔다. 그들은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상업 거리로 향했다. 이곳은 고급 미식과 쇼핑이 결합한 곳으로,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쇼핑 명소였다.하연은 먼저 차에서 내려 길가에서 최하성이 주차하러 가는 동안 기다렸다. 그런데 이때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하연, 정말 너구나.”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하연은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돌아보니 어릴 적부터 앙숙이었던 송연희가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서 있었다. 하연은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예의를 지키기 위해 인사했다. “정말 우연이 만났네.”연희의 집안은 전자기기 사업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 명문가의 아가씨로 불렸다. 그리고 하연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 다른 학생 들과의 차별을 피하기 위해 학교의 관리자 외에는 아무도 하연의 신분을 몰랐다.또한 하연은 유기 동물들을 돌보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급생은 하연이 가난한 집안의 학생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신분은 귀족 학교에서 보기 드물었다.게다가 하연은 학업 성적이 뛰어나 매년 장학금을 받았지만, 연희는 늘 하연을 따라잡지 못했다. 결국, 승부욕이 강한 연희는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하연을 미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했다.“하연아, 졸업한
“가지 마,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잖아. 네가 힘들게 지낸다고 해서 자존심 상해할 필요 없어. 우린 널 비웃지 않을 거야.”송연희는 굉장히 친절한 척하며 말했다.“이렇게 된 김에, 우리 반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식사하려고 약속했어. 너도 같이 가자! 네가 언제 또 고급 레스토랑에 가보겠냐. 좋은 경험이 될 거야.”하연은 피식 웃으며 얼굴에 약간의 분노를 띠며 말했다. “송연희, 그런 짓은 도대체 언제 끝낼 거니? 학교 다닐 때도 나를 이기지 못했는데, 지금도 똑같네.”“돈 좀 있다고 그렇게 거만하게 굴지 마. 세상에는 너보다 잘난 사람도 많아. 혹시 알아? 그 사람들도 너를 그렇게 무시할지?”연희는 하연의 말이 여전히 날카롭다는 것에 놀랐다. 예전에도 하연에게 이기지 못했지만, 지금은 더 말도 안 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하연을 더 이상 놓아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오늘 반드시 하연에게 제대로 망신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했고 하연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하연이 같은 가난한 사람은 자기 신발 끈도 매지 못할 존재라는 것을.“다 옛 친구들인데, 같이 식사하는 게 뭐 어렵다고 그래? 하연아. 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좀 가자.”연희는 말하면서 두 명의 친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두 친구는 즉시 하연에게 다가가 양쪽 팔을 붙잡았다. “연희가 널 초대한 건 네게 체면을 세워주는 거야. 많은 사람이 이런 초대도 못 받아.”말하며 하연이 거절할 틈도 없이 차로 끌고 갔다. 하연은 처음에는 이들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집요함에 화가 나 있던 차라, 화풀이하기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이윽고 차 안에서 연희는 자신이 새로 산 에르메스 가방을 눈에 띄는 곳에 두었다.이때, 한지민이 말했다. “연희야, 이거 신상 악어가죽 맞지? 하나에 몇 십억 넘게 한다고 들었는데.”옆에 있던 도경서도 말했다.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가방도 아니지. VVIP만 살 수 있는 한정판이잖아. 연희야, 정말 부럽다.”연희는 이런 칭찬을
최하성은 오늘 검정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그의 차가운 분위기와 단정한 모습은 단번에 모든 직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최 대표님!”하성을 마주친 직원들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하성은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 시선을 주지 않고 빠르게 행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 저녁 만찬은 매우 풍성했다. 동서양의 요리가 조화를 이루며 대부분 직원들의 입맛과 식습관을 세심하게 고려한 모습이었다. 준비에 꽤 공을 들인 것이 분명했고, 결과적으로 반응도 좋았다. 연말 만찬이 시작되기 전, 하성은 DS그룹의 대표이사로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하성은 차분한 걸음으로 무대에 오르며, 그의 존재감은 단번에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가 화려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단 몇 마디 간결한 말로도,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 연말 행사는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하성이 등장하자마자 팬들과 네티즌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시청자 수가 십만 명을 돌파했다. [최하성 씨,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연예계에 최하성이 없으니 허전한 기분이에요. 최하성 씨, 돌아와 주세요!][다들 동감! 언제쯤 복귀할 수 있는 거죠?][복귀 요청 99%!!][...] 팬들의 댓글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하성의 인기는 생중계 플랫폼 순위에서도 단연코 1위를 차지했다. 무대 아래에서 생중계를 담당하던 진행자는 이 뜨거운 열기를 놓치지 않고 하성에게 다가갔다. “최 대표님, 생중계 채팅창에 팬들이 사장님의 새해 계획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하고 있어요. 오늘 이 특별한 밤에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성은 미소를 머금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 순간, 생중계 채팅창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선물 아이콘이 화면을 뒤덮었고, 댓글은 끊임없이 새로 고침 되었다. “안녕하세요, 하성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와 DS그룹을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DL 그룹
“어머님, 정말로 부 회장님과 결혼하세요?” 이 얘기는 다영에게 있어 꽤 충격적이었다. 세간에서는 송혜선과 부동건의 관계를 두고 여러 말이 떠돌았고, 그중 가장 많이 들려온 것은 송혜선이 ‘첩’이라는 점이었다. 한때 정지철 부인도 이 사실을 꽤 꺼려했던 터라, 다영은 송혜선이 이렇게 대놓고 정식으로 자리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언제 결혼 승낙을 받으신 거예요?” 송혜선은 이미 불룩해진 배를 가볍게 쓸며, 깊은 눈빛 속에 숨겨진 야망을 드러냈다. “부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새해도 지나고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날 테니 우리 모자에게 반드시 정당한 신분을 보장해 주시겠다고 하셨어.” “그러니... 다영아, 우리 남준이를 믿어야 해. 지금은 잠시 밀려난 상황이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잖니?” 다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더욱 굳게 다졌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저는 언제나 남준 씨를 도울 거예요.” 송혜선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야지. 남준이도 절대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그러다 두 사람이 화제를 돌리며 덧붙였다. “지금 부 회장님이 부상혁을 중시하며 DL그룹의 운영을 맡긴 데는 이유가 있어. 결국은 부씨 가문의 장손이라는 명분 때문이지.” “하지만, 임신 초기에는 변수가 많아.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겠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잖니?” “만약 그 아이가 사라지면, 부상혁 쪽의 지렛대도 없어진 셈이니 남준이한테 분명 유리한 상황이 될 거야. 그렇지 않겠니?” “...” 다영은 멍하니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 송혜선은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조그마한 흰색 약병을 다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약은 무색무취야. 일반인이 먹으면 아무 이상이 없지만, 임신한 사람이 먹으면 삼 일 안에 유산이 돼.” 다영의 손이 떨리며 본능적으로 병을 놓치듯 뺐다. “어머님,
“정다영 씨의 상상력은 참 풍부하시네요.” 상혁은 입꼬리를 비틀며 약간의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세상을 잘 모르는 아가씨다운 모습이라 참 순진하긴 한데, 이런 험한 세상에선 지나치게 순진한 건 별로 좋지 않아요.” 더는 말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상혁은 뒤돌아 떠났다. 다영은 마치 머릿속이 폭발이라도 한 듯, 귓가에서 찡하는 이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어요, 남준 씨는 그럴 리 없어요!” 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며 자신을 설득하려 애쓰며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이미 수없이 눌렀던 번호를 다급히 눌렀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여전히 차갑고 무미건조한 여성의 자동응답 소리뿐이었다. “안 돼!” 다영은 절망하며 비명을 지르고는 갑작스레 밖으로 뛰쳐나갔다. 깊은 겨울밤, 바람은 더욱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창밖의 거센 바람에 창문이 덜컹이며 울렸다. 병원의 VVIP 병실 안. 다영은 온몸을 떨며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는 텅 빈 듯했고, 난방이 틀어져 있어도 그녀를 감싼 차가운 공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다영아,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일이야?” 송혜선은 평소와 같은 말투로 물었고, 전혀 이상한 기색은 비추지 않았다. 실은 송혜선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정지철이 이제는 구속되고 정씨 가문이 더 이상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다영의 마음에는 여전히 남준의 존재가 얽매여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영에게서 더 많은 가치를 끌어낼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송혜선 또한 명확이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송혜선은 표정을 가다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자, 물 한 잔 마시고 몸 좀 녹여.” 다영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린 듯, 송혜선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 남준 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제발요!” 송혜선은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
며칠 사이, 정다영은 차갑게 닫힌 문을 수없이 마주했다. 한때 주변 사람들이 다영을 떠받들며 찬란한 별처럼 여겼지만, 이제 집안의 사건이 터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피하려고만 했다. 마치 다영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불행이 전염될 것처럼... 그렇게 다영은 세상의 차가운 이면과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연스레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바꾸었다. “송 여사와 남준이는 요즘 집에 없는 걸로 아는데, 정 다영 씨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상혁은 평범한 어조로 물었지만, 그 말은 다영을 잠시 멈칫하게 했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다. “남준 씨가 곧 돌아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상혁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이 추우니 안에서 기다려요.” 말을 마친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건 남자의 차가운 뒷모습뿐이었다. 다영은 상혁을 따라가며 급히 소리쳤다. “부 대표님, 잠깐만요...” 상혁이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할 말이라도?” 다영은 망설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며칠 동안 그녀가 이리저리 뛰어다닌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버지를 이 난관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아버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제 아버지와 관련된 일입니다.” 상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건 검찰 소관이에요. 전문 변호팀을 고용하면 사건의 진행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다영은 초조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부 대표님, 이건 분명 오해입니다. 제 아버지는 회사에 평생을 바친 분입니다. 아버지는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계약서를 조작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즉, 정지철은 딸을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망칠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분명히 이번 일에는 뭔가 숨겨진 진실
최씨 가문 본가 후원에 있는 온실에서는 조용히 바둑알이 내려놓아는 소리가 들렸다. 상혁과 최동신은 마주 앉아 바둑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상혁아, 지금 이 바둑판은 승부가 거의 결정 난 것 같은데!” 바둑판 위에서 흑과 백이 치열하게 맞서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최동신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자네의 백돌이 반 집 차이로 우위를 점하고 있어. 대단해!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어.” 상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기백이 여전히 넘치시니 제가 아직 배울 점이 많습니다.” 최동신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탄식했다. “늙었지.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그는 곧 말을 돌려 흑돌을 손에 들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자네도 조심해야겠어.” 최동신은 그 말을 하며 흑돌을 바둑판 위에 툭 하고 내려놓았다. 그 돌이 놓인 자리로 인해 한순간 바둑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바둑판 위에 집중되었다. 상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손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위를 점하고 있던 상황이 단 한 수로 인해 역전이 된 것이다. “할아버지의 바둑 실력은 늘 감탄할 따름입니다. 제가 이 점을 간과하고 놓치고 있었네요.” 상혁은 차분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판세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최동신은 손에 들고 있던 바둑알을 다시 주우며 훈계하듯 말했다. “그렇지. 이길 수 있는 상황도 한 수의 실수로 모두 망쳐버릴 수 있는 법이다.” 상혁은 최동신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최동신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들리는 말에 DL그룹의 실질적인 권한은 이제 자네가 잡았고, 자네 동생은 동남아 지사로 발령이 났다고 들었네.” “겉으로 보기엔 좋은 상황 같아 보이지만, 상혁이, 네가 한 수라도 실수하는 날엔 모든 걸 망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충고 이상의 뜻을 담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남준은 무심코 말을 뱉었다. 그의 음성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남준은 방 안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연말 이후로 예정되어 있지 않았나? 어떻게 앞당겨진 거지?” 연지는 침착하게 보고했다. “들리는 말로는 이번 사건이 중대한 만큼 생각보다 빠르게 처리되면서 연말 전에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상혁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정규인의 입을 열어 내 약점을 찾아내려는 것이겠지.”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부상혁도 모르는 게 있지. 정규인의 입은 결코 열리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야.” 연지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상무님, 그 말은 혹시...” 그러나 그녀의 말은 남준의 강렬한 눈빛으로 끊겼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연지는 남준의 의도를 즉각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정규인의 사건은 법원에서 열렸고, 법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찰들이 구치소에서 정규인을 호송해 나오자, 멀리서 그의 초췌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정규인의 기운 없는 모습에서 예전의 당당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법정 방청석을 둘러보다가, 맨 끝자락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순간, 정규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갑작스럽게 방청석을 향해 달려들며 미친 듯이 외쳤다. “여기 왜 왔어! 당장 나가! 나가란 말이야!” 경찰들이 급히 정규인을 제지하려 했으나, 그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저지당했다. “진정해!” 경찰은 엄중히 경고했지만, 그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결국, 경찰봉이 그의 등을 강하게 내려쳤다. 퍽! 정규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고, 그의 몸은 앞으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방청석의 허징인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
“이모...” 하연은 조진숙을 꽉 끌어안으며 말문이 막혔다. 지금은 어떤 말도 조진숙에게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되든 간에, 이모 곁엔 항상 저희가 있어요.” 조진숙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고맙다.” ... 한적한 교외에 위치한 독채 빌라. 고급스러운 소형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차고로 들어섰다. 황연지는 휴대폰으로 위치를 확인한 뒤,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빌라는 꽤 외진 곳에 있었고, 오랜 기간 비어 있었던 듯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연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상무님? 계신가요?”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텅 빈 집안의 메아리뿐이었다. 연지는 2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용기를 냈다. 계단 끝에 닫혀 있는 문 하나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상무님, 안에 계신가요?” 그녀는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잠시 망설이던 연지는 문을 조심스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코를 찌르는 강렬한 술 냄새가 그녀를 덮쳤다. 연지는 본능적으로 코를 막고 안으로 더 들어갔는데, 방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했다. “상무님?” 이사회 이후 부남준은 자취를 감췄고, 외부에서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단다. 그렇게 된 지가 삼 일째였다. 연지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상무님, 괜찮으세요?” 남준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비록 지금의 그는 어딘가 지쳐 보였지만, 그 매서운 매의 눈은 여전히 날카로운 빛을 띄고 있었다. 그는 황연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너였구나?” 연지는 아침에 급히 소식을 듣고 서둘러 이곳으로 달려왔다. “상무님, 사라지신 며칠 동안 정다영 씨가 상무님을 계속 찾고 있었습니다.” 정다영은 남준을 찾기 위해 거의 미쳐버린 상태였고, 부남준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모조리 뒤지고 있었다.
저녁에 하연과 상혁은 음악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집 안의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 “돌아왔니?” 하연과 상혁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소파에 홀로 앉아 있는 조진숙을 보았다. 지금의 조진숙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어머니, 집에 계셨네요?” 조진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희 기다리고 있었어.” 하연은 활짝 웃으며 조진숙에게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이 늦은 시간까지 기다린 거예요? 일찍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하연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조진숙은 손을 들어 하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희가 안 들어오면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하연은 그녀의 팔짱을 끼며 더 애교를 부렸다. “이모가 이렇게 저희를 걱정해주니까, 너무 좋아요!” 조진숙은 하연의 손등을 살짝 두드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사실 오늘은 너희에게 할 말이 있어서 기다린 거야.” 상혁은 소파의 다른 쪽에 앉아 조진숙의 말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하연과 눈빛을 교환한 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모,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조진숙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네 동건이 삼촌이 송혜선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것뿐이야.” 이 말은 마치 고요한 연못에 큰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분위기를 흔들었다. 상혁은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조진숙이 그를 불러 세웠다. “상혁아, 흥분하지 마라.” 상혁은 걸음을 멈추고 눈빛을 깊게 내리깔았다. “가서 직접 얘기를 해봐야겠어요.” “그럴 필요 없어.” 조진숙이 단호히 말하며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고, 마치 이번 일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다. “아들아, 이제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란다. 남녀가 서로 좋아해서 함께 사는 건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은 그런 장난스러운 일은 아니잖아. 네 아버지도
“이 말은...?” “회장님, 저랑 결혼해주실 수 있어요?” ... 카페에서. 부동건은 카페에서 오래 시간 조진숙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진숙이 마침내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동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가방을 받으려 손을 내밀었지만, 조진숙은 능숙하게 피해버렸다. “말해봐. 이렇게 급하게 나를 부른 이유가 뭐죠?” 부동건은 조진숙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짓으로 직원을 불렀다. “블루마운틴 한 잔, 반 설탕으로.” 조진숙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꼬는 듯한 말투로 답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내 취향을 기억하다니 의외네요.” 부동건은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변명하듯 말했다. “그래도 한때 부부였잖아, 결국엔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거지.” 조진숙은 무심한 태도로 대꾸했다. “‘잘못했다’라는 말은 이미 너무 많이 들었어. 다른 표현은 없어?” “알겠어.” 부동건은 커피를 젓는 스푼을 천천히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회사는 이미 상혁이한테 넘겼어.” “응, 들었어.”조진숙은 가볍게 대답했고, 목소리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무미건조한 톤이었다. “상혁이는 신중하고 믿음직스러워. 회사를 맡기기에 더없이 적합한 사람이야. 앞으로 상혁이하고 하연이는 그 얘들 둘은 함께 안정된 삶을 살게 될 거야.” “너도 알다시피, 하연이는 말 안 해도 좋은 아이라는 걸 당신도 알잖아. 하연이가 상혁이 곁에 있는 한, 상혁이는 하연이로 인해 고통받는 일은 없을 거야.” 조진숙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듯했다. “오늘 나를 부른 이유가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불렀어?” “아니야.” 부동건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혼 후 두 사람이 이렇게 함께 앉아 대화하는 시간은 정말로 드물었다. 부동건은 오늘따라 조진숙을 천천히, 자세히 바라보았다. 세월은 참으로 잔인한 것이었다. 수많은 세월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