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순간 상혁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하연더러 원위치에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하고는 운전석 쪽으로 다가갔다.확인해 보니 운전석에 있는 사람은 환자복을 입고 있는 연약한 여자였다. 충격이 컸는지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의식을 잃은 듯 운전대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찬찬히 확인해 본 상혁은 이내 표정이 굳었다.“그 여자야.”하연도 이미 운전석에 앉은 여자를 확인했다.그 여자는 다름 아닌 유진이었다.“왜 여기에 나타났지? 그럼 방금...”순간 하연의 머릿속에 위험한 생각이 떠올랐다.“나를 죽이려 했던 건가?”하연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리고 그제야 이 사고가 평범한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한유진이 저를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하연은 순간 덜컥 겁이 났다.만약 아까 상혁이 밀어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상상하기도 무서웠다.상혁도 그걸 알고 있기에 얼른 하연을 품에 안고 위로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그 순간, 신기하게도 하연의 마음은 기적처럼 편안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 소방대원 그리고 구급대원까지 이내 현장에 도착하여 사고 현장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했다.이번 사고가 DS 그룹 건물 앞에서 발생한 거라 회사 사장인 하연이 책임자로 경찰청에 소환되었다.물론 녹취록을 작성하는 내내 상혁은 늘 하연과 함께했다.모든 조사가 끝난 뒤, 하연은 그제야 상혁의 팔에서 피가 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오빠, 다쳤어요?”상혁은 애써 상처를 숨기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괜찮아, 별거 아니야.”“이게 어떻게 별거 아니에요? 살이 이렇게 많이 떨어졌는데. 얼른 병원 가요.”원래 거절하려던 상혁은 저를 이토록 걱정해 주는 하연의 모습에 가슴이 따뜻해 고분고분 따랐다. 그리고 한참 뒤, 병원.“의사 선생님, 이 상처 좀 치료해 주세요.”의사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동전 크기만 한 상혁의 상처를 보며 잠깐 할 말을 잃었다.그러다 뭐라도 말하려고 눈을 든 순간 그대로 얼어붙었
상혁의 소개에 하연은 다급하게 인사했다.“아, 안녕하세요.”하연의 인사를 받은 성준은 싱긋 웃으며 상혁에게 말했다.“짜식, 능력 있네. 그런데 네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아 처치 좀 하면 끝날 일이야. 누가 보면 네가 큰 병 걸린 줄 알겠다?”“괜찮다니 다행이네요. 고마워요.”상혁이 괜찮니 그제야 안심이 됐다.그때, 성준이 거즈와 요오드를 들고 와 상혁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별거 아니에요. 다음번에는 안 다치게 조심해요.”이윽고 치료를 마치고 나니 하연을 보며 말했다.“됐어요. 치료 다 끝났으니 치료비는 저쪽 창구에서 지불하세요.”“네.”하연은 이내 대답하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때 성준이 하연의 뒷모습을 보며 농담조로 말했다.“부상혁, 내 기억이 맞다면 너 지금껏 최하연 씨 한 번도 잊지 못했지?”그 목소리는 마치 재밌는 일이라도 생긴 듯 흥분에 차 있었다.“너 연애 경험이 없어서 아직 여자 어떻게 꼬셔야 하는지 모르지? 연애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야.”“혹시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상혁은 헛기침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상혁이 이토록 겸손한 건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라 성준은 믿기 힘들다는 듯 말했다.“이거 이거, 내가 아는 그 대단하신 부상혁 도련님 맞아?”성준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재밌다는 듯 웃어댔다.“괜찮아. 내가 있잖아. 내가 가르쳐 줄게. 연애는 말이지, 진심이 전달되어야 해. 물론 여자의 동정심도 이용해 주면 좋고. 그런데 내가 볼 때 하연 씨도 너 엄청 신경 쓰는 것 같던데. 힘내 봐. 그래야 나도 네 결혼 축하주 마시러 가지.”“...”병원에서 나온 상혁의 팔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분명 작은 상처였지만 성준은 작은 상처는 효과 없다며 기어코 붕대까지 감아줬다.상혁은 그게 오버라며 당장 풀려고 했지만 하연이 나서서 제지했다.“오빠, 상처 소독 이제 막 끝났는데 마구 움직이지 마요. 집에 가서 물에 닿지 않게 조심하고,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비서 꼭 불러요.”그 순간 상혁은 동작을
“이미 FL 그룹과 협력하기로 했어. 초기에는 내가 직접 따라붙어야 할 것 같아.”“그럼 저도 함께 갈까요?”“그래. 준비하고 있어. 나중에 FL 그룹과 주요 팀원들도 함께 갈 거니까.”“네, 사장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일 처리를 마친 뒤 하연은 상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그때,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울리기 갑자기 울렸다.액정에서 번쩍이는 번호를 본 순간, 하연의 표정은 이내 굳어 버렸다.“최하연, 너 FL 그룹과 제휴를 맺었다며?”귓가에 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연은 눈을 들어 창밖을 내다보았다.“소식 참 빠르네.”“정말 나 대신 그 자식을 선택하는 거야? HT 그룹과 협력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잖아. 안 그래?”“이제 돌이킬 수도 없는데 쓸데없는 말은 왜 해?”서준은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명색이 한서준이 누구한테 이렇게 져본 적 있겠는가?“D시 프로젝트는 보기와 달라.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만약 D시에 간다면 무조건 조심해야 해. 필요하면 HT 그룹이...”“필요 없어. DS 그룹에 가장 필요 없는 게 HT 그룹의 도움이야.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집안일이나 신경 써. 그러다 또 화를 당하지 말고. 안 그래?”하연이 뭘 말하는지 서준이 모를 리 없다.“걱정하지 마. 너를 해친 사람은 단 한 명도 그냥 놔두지 않을 테니까.”서준이 사뭇 진지한 말투로 말했지만 하연은 그저 피식 웃었다.“한씨 가문 일을 나한테 보고할 거 없어. 네 잡담 들어줄 흥미 없으니까.”말을 마친 하연은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 건너편에 있던 서준은 핸드폰을 꽉 쥔 채 눈이 어두워졌다. 심지어 얼굴은 이미 잿빛이 되었다.그때 때마침 혜경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서준 씨, 괜찮아?”“나가!”싸늘한 표정으로 무섭게 내뱉은 한마디에 혜경은 흠칫 놀랐다.하지만 일부러 모른 체하며 애교 섞인 모습으로 다가왔다.“서준 씨, 무슨 일 있어? 나한테 말해. 내가 들어 줄게.”서준은 눈을 들
으리으리한 호텔 안에서 남녀의 신음 소리가 한참 동안 흘러나왔다.그렇게 한바탕 몸을 섞은 혜경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그러자 나체 상태의 도지환이 혜경을 품에 와락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한동안 못 봤더니 많이 죽었네? 감옥 생활이 고됐나 봐?”혜경은 담배 연기를 후 내뿜었다.“실없긴.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 부른 거야.”“하하, 알지! 방금 건 중요한 일 아니야?”혜경은 어두운 눈으로 담배를 눌러 껐다.“한서준이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어. 물론 아직은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지만.”지환은 혜경의 몸을 쓱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증거도 없는데 겁낼 거 뭐 있어? 조심하면 되지.”혜경은 그런 지환의 손을 탁 쳐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뭐가 됐든, 난 한씨 가문 사모님이 꼭 돼야겠어. 안 되더라도 최하연을 꼭 감옥에 처넣고 말 거야.”지환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미소 짓더니 혜경의 턱을 들어 올렸다.“내 곁에 누워서 다른 놈을 생각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애초에 그렇게 애썼는데도 한서준과 결혼하지 못했으면서,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그것만 생각하면 혜경은 화가 치밀었다.그렇게 애를 썼는데 서준의 마음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가문을 끌어들였으니.심지어 혜경의 할아버지는 아직도 빚을 갚으려고 일하고 있다.그 죄책감 때문에 혜경은 출소했으면서 가족을 만나러 가지 못하고 있고.“내가 인생 역전하려면 한서준과 결혼하는 방법밖에 없어.”“하하. 그럼 축하해.”너털웃음을 지을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지환을 보자, 혜경은 지환의 팔을 잡아당기며 애교 부렸다.“나 안 도와줄 거야?”“내가 어떻게 도와? 남녀 간의 일은 제삼자가 끼어들 수 없어.”“도와주지 못하는 거야? 도와주기 싫은 거야?”혜경은 직설적으로 되물었다. 지환이 어떤 사람인지 혜경이 모를 리 없다. 이에 바싹 자가가 지환의 뺨에 입을 맞췄다.“걱정하지 마. 난 한 사모님 신분만 필요한 거니까. 내 몸은 여전히 자기 거야.”
희망이 보이자 혜경은 눈을 반짝였다.“말해 봐. 혹시 무슨 좋은 수가 떠오른 거야?”지환은 그런 혜경을 제 아래에 가두더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알고 싶으면 나 만족시켜 봐.”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실내에서 또다시 야릇한 소리가 흘러나왔다....다음 날.하연이 짐을 챙겨 출발하려 할 때, 하민에게서 연락이 왔다.“하연아, 너 D시에 간다면서?”‘역시 오빠한테는 뭐든 비밀로 할 수 없다니까.’하연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대답했다.“네, 상혁 오빠랑 같이 가요.”“D시에 내 친구가 있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걔한테 도움받아.”“네, 알았어요. 저 어린애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요.”그건 맞지만 하민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정 실장도 같이 가?”“네, 회사 직원들은 따로 출발해서 아마 내일에야 만날 수 있을 거예요.”하민은 그제야 안심했다. 태훈과 상혁이 함께라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하지만 여전히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넌 어릴 때부터 독립심이 강하고 주관도 또렷하니 내가 간섭하지는 않겠는데, 밖에 나가면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야. D시 치안이 좋지 않으니 내가 경호원 더 붙여 줄게, 꼭 안전에 주의해.”“알았어요.”하연은 말하면서 눈을 들어 멀지 않은 곳에서 저를 기다리는 상혁을 흘긋거렸다.“걱정하지 마세요. 상혁 오빠도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이만 끊을게요.”전화를 끊은 하연은 이내 성큼성큼 상혁에게 다가갔다.“상혁 오빠!”상혁은 하연의 짐을 받아 비서에게 넘겨주고는 하연의 손을 잡고 전용기에 올라탔다.이윽고 5시간의 비행 끝에 두 사람은 무사히 D시 공항에 도착했다. 협력사 측에서 파견한 사람은 이미 현지 공항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때문에 VIP 게이트를 통해 나오자마자 두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최 사장님, 부 대표님 D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하연은 얼른 다가가 유창한 영어로 상대와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혹시 HY 그룹에서 왔나요?
안나는 하연에게 싱긋 웃으며 인사하더니 이내 모든 신경을 상혁에게 쏟아부었다.“부 대표님이 여기까지 친히 오실 줄은 몰랐네요. 환영해요. 먼 길 오셔서 피곤할 텐데 호텔로 안내할게요.” 상혁은 상대의 태도에 눈이 어두워지더니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그럼 부탁드릴게요.”눈앞에 세워진 두 대의 밴을 보자 안나는 이내 하연을 그중 하나로 안내했다.“최 사장님, 타세요.”하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상혁이 이내 그 뒤를 따라 하연의 옆자리에 앉으며 안나에게 말했다.“이사님, 저는 최 사장님과 함께 탈게요.”안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감정을 억제했다.“네. 그럼 저희가 뒤에서 따르겠습니다.”차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하자마자 하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해서 말했다.“상혁 오빠, 안나 이사님이 오빠랑 같은 차 타려고 하는데 이렇게 대놓고 미녀의 체면을 깎아도 돼요?”상혁은 고개를 돌려 하연을 힐끗 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자그마한 머리통으로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이토록 심각한 표정의 상혁은 처음 보는지라 하연은 애써 웃음을 참더니 농담조로 말했다.“알았어요. 그런데 안나 이사님이 저렇게 예쁜데 정말 안 설레요?”“별 감흥 없어.”무뚝뚝한 상혁의 대답에 하연은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그 때문인지 얼굴을 덮쳐오는 바람도 아까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하지만 호텔에 도착하자 하연은 그 웃음을 유지할 수 없었다. 호텔 인테리어는 7, 8년 정도 된 데다 한눈에 봐도 낡아 보였다.그때 안나가 차에서 내려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부 대표님, 최 사장님, 들어갑시다.”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니 하연은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안나의 말에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이곳은 이 부근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예요. 며칠 동안 편안하게 묵었으면 좋겠어요.”‘가장 좋은 호텔?’‘이게?’‘와, 현타 오네.’상혁은 그런 하연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한
“그래서 하나는 부 대표님께 드리는 겁니다.”가방에서 카드키를 꺼내 든 안나는 매력적인 눈으로 상혁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카드키를 쥐어 주며 윙크를 날렸다.“제 방은 바로 옆방이니 언제든지 환영해요. 깊이 있는 교류를 해도 좋고요.”이윽고 말을 마치자마자 상혁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엉덩이를 흔들며 떠나갔다.상혁은 카드키를 힐끗 보더니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이윽고 하연에게 전화하려 할 때, 하연이 캐리어를 끌며 다가오더니 상혁을 보자마자 그대로 내팽개치고는 상혁의 품에 폭 안기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상혁 오빠, 쥐... 엄청 큰 쥐가 있어요.”어찌나 놀랐는지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도 떨고 있었다.놀란 고양이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하연을 보자 상혁은 끝내 웃음을 참지 못했다.“마침 잘됐네, 그럼 여기서 지내.”하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쥐가 뭐라고, 괜찮아.”상혁의 위로에도 하연은 흐느끼며 고개를 저었다.“엄청 큰 쥐였어요.”말하면서 상혁의 품에서 떨어진 하연은 그제야 상혁의 방이 제 방과 천지 차이라는 걸 발견했다.그 순간 울고 싶은 마음마저 생겨났다.“이건 차별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됐어. 안방은 네가 써, 난 소파에서 잘게.”하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았고, 상혁은 하연에게 슬리퍼를 챙겨주고 캐리어를 안으로 옮겨 주었다.방에 들어오자마자 하연은 이내 침대로 향했다. 커다란 침대에 몸을 맡기니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나른해졌다.“와, 침대 너무 넓고 편하다!”몸을 돌려 옆에 있는 베개를 품에 꼭 안으니 한시도 침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이에 하연은 한참 누워 있다가 느릿느릿 잠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샤워를 마치고 나니 졸음이 쏟아져 하연은 하품을 하며 헤어드라이기를 챙겨 나왔다. 그 시각, 상혁은 노트북을 끌어안고 업무를 보고 있었다.그러다 하연을 보자 이내 노트북을 덮고 헤어드라이기를 받아 들었다. 졸려서 눈꺼풀과 싸우고 있는 하
이 방에 저와 상혁 두 사람뿐이라는 걸 떠올리자 하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답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상혁 오빠가 나를 방까지 안아갔나 보네.’“아! 최하연, 정말 미쳤어!”하연은 쪽팔리고 화가 나서 중얼거리더니 상혁을 화장실에서 쫓아냈다.하연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상혁은 어리둥절해서 밀려 나가더니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하연이 씻고 나서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상혁은 이미 방에 없었다. 그제야 히연은 숨을 푹 내쉬고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그리고 한참 뒤, 식사를 반쯤 끝냈을 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당연히 상혁이 돌아왔다고 생각한 하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오빠, 카드키 안 챙겼어요?”하지만 말소리는 이내 뚝 끊겼다.그도 그럴 게, 하연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상혁이 아니라 놀란 표정을 한 안나였으니까.안나는 하연을 삿대질하며 분노를 얼굴에 드러냈다.“설... 설마 어제 여기 있었어요?”“무슨 문제 있나요?”천진무구한 표정으로 되묻는 하연의 모습에 안나는 화가 치밀었다.“부 대표님은 어디 있죠?”하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여기 없어요. 혹시 무슨 일 있나요?”“이제 곧 출발해야 하니 사람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가시 돋친 말투로 말한 안나는 상대방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쾅 닫고 떠나버렸다. 그 뒤에 혼자 남겨진 하연은 어리둥절해서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하연이 아래층에 도착하자 일행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그중에서 태훈이 제일 먼저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했다.“최 사장님, 잘 주무셨어요?”“응. 다 도착했네?”하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이내 상혁을 돌아봤다. 이윽고 어제 일은 완전히 잊은 듯 뻔뻔하게 손을 흔들었다.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안나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상혁 앞에서 체면을 지켜야 했기에 아까처럼 하연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부 대표님, 오늘 오전 회의가 잡혀 있어 회의하고 나서 오후에 현지 조사를 진행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