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나쁜짓하러 나왔어?”하연의 거침없는 비아냥에 혜경의 얼굴은 일순 어두워졌다. 하지만 꾹 눌러 참으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내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 서준 씨가 보석금 엄청 많이 들여서 나 빼줬어, 알겠어? 최하연, 서준 씨 마음에는 처음부터 나 하나뿐이었다고. 너는 그저 서준 씨한테 버려진 전처일 뿐이야.”하연은 그 말에 화를 내기는커녕 아무 흔들림도 없는 모습으로 팔짱을 꼈다.“그렇다면 밖에서 싸돌아 다니며 사람 해치지 좀 마.”“너!”혜경은 이를 악물며 하연을 매섭게 쏘아봤다.“최하연, 잘 들어. 내가 그동안 겪은 걸 너한테 똑같이 돌려줄 거야.”“감옥에 다시 돌아가고 싶으면 해봐.”하연의 말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민혜경은 이제 막 감옥에서 나온 터라 효과는 배가 되었다.감옥을 생각하니 혜경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곳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너 딱 기다려.”혜경은 이를 갈며 경고를 남겼다.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등 뒤에 앉아 있던 여자가 눈을 들어 혜경을 바라봤다.여자는 무심한 듯 커피를 입에 대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언제부터 내연녀가 앞뒤 분간 못하고 이렇게 날뛰는 세상이 됐지?”혜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를 바라봤다.낯선 얼굴의 여자는 자기 관리를 무척 잘한 30대 초반으로 보였다.지금이야 하연을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눈앞의 여자로 화풀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혜경은 이내 여자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그게 당신이랑 뭔 상관이야?”여자의 눈은 순간 어두워졌다.“배운 것 없으면 조용히 있을 것이지. 남의 남자 뺏은 내연녀 주제에 자각도 없이 기어 나와 본처 앞에서 설치다니. 뻔뻔한 것!”“이년이 어디서! 내가 그 입을 갈가리 찢어줄게.”혜경은 길길이 날뛰면서 여자에게로 달려갔다.하지만 다음 순간 하연이 햬경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민햬경 적당히 해! 여긴 내 구역이야. 저분은 내 고객님이고,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말을 마친 하연은 혜경을
“전에 B시에서 열렸던 패션쇼의 메인 의상을 디자인한 분 맞죠? 저 그 의상들을 아주 좋게 봤어요. P시에 최하연 씨에 대한 소문이 자자해요.”여자는 말하면서 일어나 하연에게 손을 내밀었다.“반가워요, 김선화라고 해요.”“반가워요, 김 여사님. 방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저희 숍에서 고른 옷은 모두 20프로 할인해 줄게요.”그 말에 선화는 싱긋 웃었다.“그냥 양심선언 몇 마디 한 것뿐인데 돈 벌었네요.”“맞춤 제작 드레스를 원한다고요?”선화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청자기 주제로 한 드레스와 비슷한 스타일로 제작해 주세요. 참여할 행사가 있어 제일 먼저 하연 씨가 생각나더라고요. 혹시 시간 괜찮아요?”“물론이죠. 치수부터 잴게요.”하연은 선화를 도와 치수를 재고 나서 한참 동안 이야기 꽃을 피웠다.그러다 떠날 때가 되자 선화가 하연에게 명함 한 장을 내놓았다.“다 만들면 여기로 전화해 줘요. 그럼 수고해 줘요.”“별말씀을요. 조심히 가세요.”선화를 보낸 뒤 예나가 다급하게 하연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하연아, 어쩐지 저 여자 낯이 익다고 했는데 이것 봐...”하연은 의아한 눈빛으로 검색 결과를 확인했다.“선화 씨가 수천만 팬을 보유한 패션 블로거일 줄은 몰랐네.”“그니까. 어쩐지 보는 눈이 있다 했어. 우리 숍 옷을 고를 때도 보니까 아는 게 엄청 많더라고. 패션 블로거라 그런 거였구나.”“응. 이번 옷 최선을 다해 만들어 줘야겠네.”하연은 예나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가 인사를 하고 숍을 나섰다.하지만 이제 막 백화점 로비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혜경과 서준을 발견했다.그건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걸 보고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그때,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무의식적으로 혜경을 밀쳐내고 하연에게로 걸어왔다.물론 하연은 본 체도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지만 말이다.“최하연!”그때 서준이 하연을 불러 세웠다.이윽고 빠른 걸음으로 하연의 앞을 막아섰다.“나를
서준은 하연이 떠난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되물었다.“민혜경, 일부러 이랬어? 하연이 여기 있는 줄 알면서 일부러 나 불러내 이런 모습 보인 거냐고?”“서준 씨, 오해야.”“됐어.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아니까. 내가 너 행패 부리라고 빼내 준 거 아니야. 경고하는데, 최하연한테 가까이하지 마. 내 말 거역하면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감옥에 처넣어 줄 테니까.”“...”혜경은 화가 치밀어 서준의 팔짱을 꽉 붙잡으려 했지만 서준은 가차 없이 햬경을 밀쳐냈다.“그만해. 가식적인 태도 역겨우니까. 카드도 이미 줬잖아.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사. 다시는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말을 마친 서준은 혜경의 낯빛도 헤아리지 않고 결연한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갔다.차 안.서준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했다.“민혜경 잘 감시하라고 했잖아. 요즘 어때?”“아직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계속 감시해. 움직임만 보이면 바로 보고하고.”“네, 대표님.”전화를 끊은 서준은 핸드폰을 옆으로 내팽개쳤다.눈을 들어 먼 곳을 응시하는 서준의 눈에는 혼란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방금 전 하연의 싸늘한 태도를 돌이켜 보니, 이제는 하연을 잡을 기회가 영영 사라진 듯싶었다....“하연아, 나 귀국했어.”이제 막 화상회의를 마친 하연은 상혁이 보낸 메시지를 보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상혁 오빠, 벌써 B시에 도착했어요?”그 시각, 전화 건너편에서 상혁은 눈을 들어 휘황찬란한 DS 그룹 건물을 바라봤다.“응, 도착했어. 나랑 합작 건으로 할 얘기 있다며?”“내 배에 들어갔다 나왔어요? 어떻게 모르는 게 없어요?”“나 네 회사 아래에 있어.”하연은 놀란 듯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낯익은 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이 보였다.“기다려요, 제가 바로 내려갈게요.”전화를 끊은 하연은 이내 서류 뭉치를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던 상혁은 하연을 보자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
그에 반해 상혁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는 얼굴로 종업원에게 메뉴판을 건넸다.“우선 이렇게 주세요. 더 필요하면 따로 주문할게요.”종업원이 떠나자 하연은 그제야 물컵을 내려놓았다.“제가 파와 생강을 안 먹는 거 어떻게 알아요?”이건 3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한 서준도 모르는 일이다.‘그런데 상혁 오빠는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상혁은 눈을 들어 하연을 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네 첫째 오빠가 말해줬어.”“하민 오빠요?”상혁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솔직히 이 모든 건 그동안 상혁이 관찰해서 알아낸 결과다.하연은 그런 상혁의 말에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최하연, 정말 너였어?”그때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곧이어 한설매가 하연의 앞에 나타나 하연과 상혁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서준의 작은 고모인 한설매는 줄곧 하연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한씨 집안에서 나간 뒤 이렇게 훌륭한 남자와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두 사람 무슨 사이야?”한설매는 아무 거리낌 없이 물어봤다.하연은 원래 한씨 집안 사람에게 호감이 없는데 늘 말 많은 한설매는 더욱 싫어했다.“그게 한설매 씨와 무슨 상관이죠?”한설매는 지난번에 하연에게 거절당하고 난 뒤부터 늘 마음에 새겨뒀는데, 하연이 이렇게 되묻자 결국 폭발했다.“왜? 이혼하더니 이제는 곁에 몸 파는 남자를 두는 거야? 서준이보다 한참 못 해 보이는데 사람 보는 눈이 영 없네.”만약 한설매가 저를 욕했다면 하연은 아마 대꾸도 하지 않았을 거다.하지만 하필이면 상혁을 건드렸기에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누가 미친개를 함부로 풀어놨지? 아무 데서나 이빨을 드러내네.”“지금 나더러 개라는 거야?”“아니에요?”한설매의 얼굴은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하연은 조금도 봐줄 생각이 없었다.“남편이 아직도 일 찾고 있죠? 제가 이 바닥에 말해두면 앞으로 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상대를 잡으려면 급소를 때리라고 했던가?남편의 얘기가 나오자
지난번 일 때문에 대표의 비서에서 마케팅팀 차장으로 강등된 서희는 여태껏 불만을 품고 있다.심지어 사적으로 상혁을 몇 번이나 찾아갔지만 매번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그러다 결국 상혁의 결정을 바꿀 수 있는 역할을 해줄 사람이 바로 하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대표님, 안녕하세요.”서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상혁에게 인사하고는 이내 하연을 향해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최 이사님, 안녕하세요.”하연은 싱긋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고는 상혁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그 뒤로 서희가 서류 뭉치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대표님, 결재 부탁드립니다.”서희의 말에 상혁은 자리에 앉아 펜을 휘날리며 멋있는 사인을 하나하나 하기 시작했다.상혁이 회사에 없는 동안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하연은 소파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그러다 심심했는지 잡지를 꺼내 보다가 상혁이 일을 끝마칠 때쯤 피곤을 못 이기고 소파에 기대 잠들어 버렸다.상혁은 서류를 내려놓고 살금살금 다가가 하연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이 순간만큼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상혁은 곤히 잠들고 있는 하연의 얼굴을 바라보며 점점 옛 생각 잠겼다.7살 때, 상혁의 소원은 늘 양 갈래 머리를 한 옆집 동생을 보는 거였다.그때 옆집에 여동생이 있다는 게 부러워 상혁은 계속 조진숙에게 떼를 쓰기 일쑤였다.“엄마, 엄마도 여동생 하나 만들어주면 안 돼요?”“엄마, 저 여동생 갖고 싶어요.”“여동생이 있으면 제가 잘 돌보고 지켜줄게요.”“...”사실 조진숙도 예쁜 딸을 원했지만 상혁을 낳으며 몸이 많이 상한 탓에 임신이 어려운 몸이 되었다.“상혁아, 엄마가 예쁜 인형 사줄게. 그걸 동생으로 여기면 안 될까?”마지못해 이런 말로 상혁은 설득했지만, 상혁은 오히려 화가 난 듯 조진숙을 밀쳐냈다.“인형 싫어요. 여동생 가질래요!”아들의 고집에 조진숙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갔지만 여동생을 갖고 싶다는 상혁의 마음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정확한 날짜는 기억 나지 않지
상혁 오빠라는 말 한마디에 상혁의 마음은 옥아 내리는 것만 같았다. 상혁이 망아지를 끌며 정원을 돌고 있는 사이, 하연은 동글동글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쉴 새 없이 질문했다.“상혁 오빠, 망아지가 왜 말을 안 해요?”“왜 하늘은 파래요?”“왜 새는 날 수 있어요?”“왜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요?”“...”어린 하연은 조잘조잘 쉴 새 없이 물었지만 상혁은 귀찮아하기는커녕 인내심 있게 하나하나 대답했다.“와, 상혁 오빠 짱! 어떻게 뭐든 다 알아요?”하연은 우상을 보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상혁을 봤다. 그 반응에 상혁은 으쓱해 속으로 중얼거렸다‘하연이 너무 귀여워.’“하연아, 너 오빠 동생만 할 수 있어?”“안 돼요.”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고사리 같은 손을 꺼내 숫자를 세기 시작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저 오빠 세 명 있어요. 상혁 오빠까지 하면 4명이에요.”그 말을 듣는 순간 상혁은 낯빛이 어두워지며 질투심이 밀려왔다.“오빠 셋이나 있어? 난 동생이 너 하나뿐인데.”그때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하연이 상혁의 손을 잡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그럼 오빠가 제 남편 해요.”상혁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비록 아직 7살이지만 상혁은 다른 꼬마들이 모르는 걸 알고 있었다.예를 들면 남자와 여자는 커서 결혼해야 한다든가.결혼하면 아기가 태어난다는가.심지어는 여보, 자기 등 애칭으로 상대를 부른다든가.그리고 결혼하면 상대와 평생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까지.‘하지만 엄마가 분명 쉽게 결혼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속으로 한참 동안 고민하던 상혁은 의아한 듯 물었다.“왜 내가 남편이 됐으면 해?”“오빠가 말했는데 여자애는 커서 남편을 한 명만 둘 수 있댔어요. 그러니까 상혀규 오빠가 제 남편이 되어줄래요?”하연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그 말을 한참 듣던 상혁은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이렇게 되면 이 귀여운 여동생과 평생 같이 있을 수 있으니.“그래.”“그럼 우리 손가락 걸고 약속해요.”“그래, 약속.”작
똑똑-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가 상혁을 현실로 끌어왔다.순간 정신을 차린 상혁은 그제야 자기가 추태를 부렸다는 걸 인지하고는 자는 하연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문 밖을 나가 업무 보고를 하려는 직원을 막았다.“업무는 회의실에서 얘기합시다.”갑자기 장소를 바꾸는 상혁이 이해되지 않아 직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쳤지만 결국 아무 말 없이 고분고분 회의실로 따라갔다.곤히 잠들어 있던 하연이 깨어났을 때, 커다란 사무실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다급히 몸을 일으켜 세운 탓에 몸을 덮고 있던 담요가 떨어져 허리 숙여 주울 때, 마침 사무실 문이 열리며 상혁이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상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물어봤다.“깼어?”하연은 잠들었다는 게 쪽팔리고 미안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저 오래 잤죠?”“그렇게 오라지는 않아.”상혁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하연에게 다가갔다.“나가서 좀 산책할까?”“그래도 돼요?”하연이 놀란 듯 물었다.“당연하지.”상혁의 대답에 하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혁과 함께 회사 부근을 산책했다.FL 이제 막 이곳으로 이전한 지 불과 반년도 안 된 그룹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고, 직원들도 모두 잘 훈련받은 엘리트들뿐이다.하연을 데리고 회사 곳곳을 돌아다니며 회사 부문과 책임자들을 소개하던 상혁은 어느새 마케팅팀에 도착했다.“임 차장님, 대표님 옆에 있는 여자분은 누구예요?”그 모습을 본 직원 한 명이 낮은 소리로 서희에게 물었다.눈을 들어 확인한 서희는 하연을 보자마자 눈빛이 어두워졌다.“최 이사님이에요.”“최 이사님? 대표님이 임원 회의 때 대대적으로 소개했다던 그 분이요? 그런데 대표님과는 대체 무슨 사이죠? 엄청 친해 보이네요. 설마 대표님 여친은 아니겠죠?”그 말에 다른 직원이 맞장구쳤다.“딱 보니 그런 것 같은데요. 대표님이 언제 여자한테 저렇게 다정한 적 있었어요? 회사 소개도 직접 해주고 있잖아요. 중요한 고객이 왔을 때도 저렇게 인내심 있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럴듯하네요. 그런데 대표님이 뭐가 아쉽다고 일개 비서를 만나겠어요? 상대를 골라도 최 이사님 같은 명문가 아가씨를 만나죠.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이 왜 있겠어요.”“...”문 앞에서 직원들의 대화를 들은 서희는 복잡한 마음에 주먹을 그러쥐었고, 눈에는 어느새 그늘이 져 있었다.한편, 상혁과 함께 회사를 대충 둘러본 하연은 회사 운영 방식을 대략적으로 익혔다.그때 상혁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어때? FL 그룹과 협력할지 말지는 잘 생각해 봤어?”하연은 그 말에 눈썹을 치켜 올렸다.“생각할 게 뭐 있어요? 이렇게 좋은 프로젝트는 당연히 우리끼리 해먹어야죠. 이렇게 하리고 해요.”“응, 좋아. 그럼 가능한 내일애 계약 체결하는 거로 해.”“좋아요. 우리 효률이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대화하며 복도를 걷던 그때, 상혁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이제 업무 얘기도 끝났으니 밖에 나가 스트레스 푸는 게 어때?”“어디 갈 건데요?”의아한 눈으로 묻는 하연을 보며 상혁은 입을 꾹 다물더니 하연의 앞을 막아섰다.“너 어릴 때 승마 좋아했잖아. 승마장에 가보는 건 어때?”“그걸 아직도 기억해요? 그런데 한동안 못 타서 몸이 근질거리기는 하네요. 가 볼까요?”“그래.”상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결국 상혁은 하연을 데리고 승마장으로 향했다.오늘은 평일이라 승마장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상혁과 하연을 본 직원은 얼른 다가와 공손한 태도로 인사했다.“부 대표님, 최 사장님.”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 상대가 아는 것처럼 인사하자 하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 백마를 데려와요.”상혁의 분부에 직원은 얼른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잠시 뒤 백마를 끌고 나타났다. 백마는 무척이나 예뻐 감탄이 절로 흘러나올 정도였다.“정말 예쁘네요.”상혁은 끈을 쥐고 하연의 앞에 끌고 와 건네주었다.“한번 타봐.”백마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고분고분 다리를 굽혀 몸을 낮췄다.“와, 사람 말도 알아들어요?”하연은 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