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 오빠라는 말 한마디에 상혁의 마음은 옥아 내리는 것만 같았다. 상혁이 망아지를 끌며 정원을 돌고 있는 사이, 하연은 동글동글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쉴 새 없이 질문했다.“상혁 오빠, 망아지가 왜 말을 안 해요?”“왜 하늘은 파래요?”“왜 새는 날 수 있어요?”“왜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요?”“...”어린 하연은 조잘조잘 쉴 새 없이 물었지만 상혁은 귀찮아하기는커녕 인내심 있게 하나하나 대답했다.“와, 상혁 오빠 짱! 어떻게 뭐든 다 알아요?”하연은 우상을 보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상혁을 봤다. 그 반응에 상혁은 으쓱해 속으로 중얼거렸다‘하연이 너무 귀여워.’“하연아, 너 오빠 동생만 할 수 있어?”“안 돼요.”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고사리 같은 손을 꺼내 숫자를 세기 시작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저 오빠 세 명 있어요. 상혁 오빠까지 하면 4명이에요.”그 말을 듣는 순간 상혁은 낯빛이 어두워지며 질투심이 밀려왔다.“오빠 셋이나 있어? 난 동생이 너 하나뿐인데.”그때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하연이 상혁의 손을 잡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그럼 오빠가 제 남편 해요.”상혁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비록 아직 7살이지만 상혁은 다른 꼬마들이 모르는 걸 알고 있었다.예를 들면 남자와 여자는 커서 결혼해야 한다든가.결혼하면 아기가 태어난다는가.심지어는 여보, 자기 등 애칭으로 상대를 부른다든가.그리고 결혼하면 상대와 평생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까지.‘하지만 엄마가 분명 쉽게 결혼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속으로 한참 동안 고민하던 상혁은 의아한 듯 물었다.“왜 내가 남편이 됐으면 해?”“오빠가 말했는데 여자애는 커서 남편을 한 명만 둘 수 있댔어요. 그러니까 상혀규 오빠가 제 남편이 되어줄래요?”하연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그 말을 한참 듣던 상혁은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이렇게 되면 이 귀여운 여동생과 평생 같이 있을 수 있으니.“그래.”“그럼 우리 손가락 걸고 약속해요.”“그래, 약속.”작
똑똑-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가 상혁을 현실로 끌어왔다.순간 정신을 차린 상혁은 그제야 자기가 추태를 부렸다는 걸 인지하고는 자는 하연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문 밖을 나가 업무 보고를 하려는 직원을 막았다.“업무는 회의실에서 얘기합시다.”갑자기 장소를 바꾸는 상혁이 이해되지 않아 직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쳤지만 결국 아무 말 없이 고분고분 회의실로 따라갔다.곤히 잠들어 있던 하연이 깨어났을 때, 커다란 사무실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다급히 몸을 일으켜 세운 탓에 몸을 덮고 있던 담요가 떨어져 허리 숙여 주울 때, 마침 사무실 문이 열리며 상혁이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상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물어봤다.“깼어?”하연은 잠들었다는 게 쪽팔리고 미안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저 오래 잤죠?”“그렇게 오라지는 않아.”상혁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하연에게 다가갔다.“나가서 좀 산책할까?”“그래도 돼요?”하연이 놀란 듯 물었다.“당연하지.”상혁의 대답에 하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혁과 함께 회사 부근을 산책했다.FL 이제 막 이곳으로 이전한 지 불과 반년도 안 된 그룹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고, 직원들도 모두 잘 훈련받은 엘리트들뿐이다.하연을 데리고 회사 곳곳을 돌아다니며 회사 부문과 책임자들을 소개하던 상혁은 어느새 마케팅팀에 도착했다.“임 차장님, 대표님 옆에 있는 여자분은 누구예요?”그 모습을 본 직원 한 명이 낮은 소리로 서희에게 물었다.눈을 들어 확인한 서희는 하연을 보자마자 눈빛이 어두워졌다.“최 이사님이에요.”“최 이사님? 대표님이 임원 회의 때 대대적으로 소개했다던 그 분이요? 그런데 대표님과는 대체 무슨 사이죠? 엄청 친해 보이네요. 설마 대표님 여친은 아니겠죠?”그 말에 다른 직원이 맞장구쳤다.“딱 보니 그런 것 같은데요. 대표님이 언제 여자한테 저렇게 다정한 적 있었어요? 회사 소개도 직접 해주고 있잖아요. 중요한 고객이 왔을 때도 저렇게 인내심 있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럴듯하네요. 그런데 대표님이 뭐가 아쉽다고 일개 비서를 만나겠어요? 상대를 골라도 최 이사님 같은 명문가 아가씨를 만나죠.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이 왜 있겠어요.”“...”문 앞에서 직원들의 대화를 들은 서희는 복잡한 마음에 주먹을 그러쥐었고, 눈에는 어느새 그늘이 져 있었다.한편, 상혁과 함께 회사를 대충 둘러본 하연은 회사 운영 방식을 대략적으로 익혔다.그때 상혁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어때? FL 그룹과 협력할지 말지는 잘 생각해 봤어?”하연은 그 말에 눈썹을 치켜 올렸다.“생각할 게 뭐 있어요? 이렇게 좋은 프로젝트는 당연히 우리끼리 해먹어야죠. 이렇게 하리고 해요.”“응, 좋아. 그럼 가능한 내일애 계약 체결하는 거로 해.”“좋아요. 우리 효률이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대화하며 복도를 걷던 그때, 상혁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이제 업무 얘기도 끝났으니 밖에 나가 스트레스 푸는 게 어때?”“어디 갈 건데요?”의아한 눈으로 묻는 하연을 보며 상혁은 입을 꾹 다물더니 하연의 앞을 막아섰다.“너 어릴 때 승마 좋아했잖아. 승마장에 가보는 건 어때?”“그걸 아직도 기억해요? 그런데 한동안 못 타서 몸이 근질거리기는 하네요. 가 볼까요?”“그래.”상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결국 상혁은 하연을 데리고 승마장으로 향했다.오늘은 평일이라 승마장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상혁과 하연을 본 직원은 얼른 다가와 공손한 태도로 인사했다.“부 대표님, 최 사장님.”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 상대가 아는 것처럼 인사하자 하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 백마를 데려와요.”상혁의 분부에 직원은 얼른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잠시 뒤 백마를 끌고 나타났다. 백마는 무척이나 예뻐 감탄이 절로 흘러나올 정도였다.“정말 예쁘네요.”상혁은 끈을 쥐고 하연의 앞에 끌고 와 건네주었다.“한번 타봐.”백마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고분고분 다리를 굽혀 몸을 낮췄다.“와, 사람 말도 알아들어요?”하연은 놀
“혼자 들어가요.”유진은 입술을 꽉 깨물며 안 좋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서준이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자 결국 군말없이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 두 사람이 말했던 고객, 허승철이 뒤늦게 도착했다.“한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네요.”일할 때의 서준은 흠잡을 곳이 없다. 지금 역시 의젓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허승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괜찮습니다. 오래 전부터 승마를 좋아한다고 들어 일부러 승마장으로 약속장소를 잡았는데, 오늘 솜씨를 제대로 볼 수 있겠네요.”“저를 너무 추켜세우네요. 한 대표님의 승마술도 기가 막혀다던데 오늘 제대로 겨루어 봅시다.”두 사람은 말하면서 승마장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승마에 관심이 없는 유진은 아예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했다.“저기요, 과일 주스 좀 가져다 줘요.”종업원에게 주스를 주문한 유진은 소파에 앉아 승마장을 빙 둘러봤다. 그러다 익숙한 사람에게 시선이 멈추더니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섰다.곧이어 원망과 분노가 섞인 눈으로 하연을 노려봤다.“최하연이 여긴 어쩐 일이지?”유진은 서준이 있는 곳을 이내 살피더니 하연과 정반대 방향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며 미간을 찌푸렸다.‘최하연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고객님, 주문하신 주스 나왔습니다.주스를 내려놓고 떠나려는 종업원을 유진은 다급히 불러 세웠다.“잠깐!”이윽고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종업원에게 건네더니 상혁을 가리키며 물었다.“저 남자는 누구예요?”종업원은 유진의 시선을 따라 확인하더니 이내 대답했다.“저분은 저희 사장님입니다.”“사장님?”유진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하연이 승마장 사장과 붙어먹는다니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사장님 이름이 뭐예요?”종업원은 고개를 저었다.“죄송하지만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유진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종업원을 돌려보냈다.하지만 시선을 하연에게서 떼지 못했다. 지난 번 일이 하연이
허승철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한 대표님과 합작 건에 대해 얘기도 할 겸 승마하러 왔습니다. 혹시 저희와 함께하지 않을래요?”“죄송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네요.”상혁의 거절에 허승철은 옆에 있는 하연을 흘긋거리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그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기회 되면 다음에 다시 만나죠.”이윽고 상혁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했다.“한 대표님, 저희는 이만 갈까요?”하지만 서준은 오히려 싸늘한 태도로 대답했다.“아니요. 합작 건은 없던 일로 하죠.”갑작스러운 상황에 허승철은 어리둥절했다.“한 대표님, 아까까지는 이런 말씀 없었잖습니까.”“본인 입으로도 그건 아까라면서요.”허승철은 여전히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HT 그룹의 위세에 눌려 화도 내지 못했다. 결국 콧방귀를 뀌고는 뒤돌아 떠나버렸다.그 옆에 있던 서준은 끝까지 입을 꾹 다문 채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하연을 빤히 바라봤다.얼굴을 뚫을 것만 같은 눈빛이 느껴지자 하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서준은 저도 모르게 하연과 승마장에서 경쟁하던 날을 떠올렸다.지난번에 만났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한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승마 시합을 했었다.그때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승마하던 하연의 모습은 지금도 서준의 머릿속에 선명하다“최하연, 같이 승마하지 않을래?”“미안하지만 관심 없어.”제 초대를 냉정하게 거절하는 하연을 보자 서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때 유진이 다가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하연을 바라봤다.“하연 씨, 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유진은 마치 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친근한 태도로 인사를 건넸다.그런 유진의 뻔뻔함에 하연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지만 겉으로는 예의를 지켰다.“유진 언니도 승마하러 왔어요?”유진은 싱긋 웃었다.“그런데 혼자 타는 건 재미없는데 시합하는 거 어때요?”“미안하지만, 관심 없어요.”하연이 거절하자 유진은 여유로운 얼굴로 도발했다.“관심 없
유진은 순간 화가 나 독설을 퍼부었다.“하, 기다려 봐. 최하연 오늘 제대로 골탕먹을 테니까.”그 말에 서준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유진을 덥석 잡았다.“무슨 짓 했어?”그때 유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마구간에서 하연의 비명이 흘러나왔다.“아!”하연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료를 주고 있었는데 설기가 갑자기 뭐에 놀랐는지 갑자기 하연을 향해 달려들었다.그 기세에 놀라 하연은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리고 설기가 하연을 덮치려는 순간.“조심해.”때마침 나타난 상혁이 하연을 품에 안은 채 보호했다.설기는 마치 화가 난 듯 세게 버둥대며 당장이라도 마구간을 뛰어나올 것처럼 굴었다.몇 년 동안이나 말을 타온지라 말에 대해 알고 있는 하연은 단번에 이상한 낌새를 챘다.“상혁 오빠, 말에 문제 있어요.”상혁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응. 설기는 성격이 온화해서 이런 적 한 번도 없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서준이 달려와 걱정스러운 태도로 물었다.“최하연, 괜찮아?”설기는 서준 뒤에 따라오는 유진을 보자 더 세게 날뛰었다.점점 격해지는 설기의 반응에 상혁은 다급히 하연을 보호했다.“조심해.”다음 순간, 설기는 끝내 줄을 끊고 유진에게 달려들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유진은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싫어, 오지 마!”화가 난 듯 유진만 쫓는 설기의 기세에 유진은 비틀거리며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설기가 유진에게 달려들어 발로 유진의 등을 차버렸다.곧이어 비명이 들리며 유진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설기는 동작을 멈추지 않고 또다시 유진을 발로 밟았다.상황을 본 직원들은 너무 놀라 헐레벌떡 달려왔고, 상혁은 눈빛이 어두워진 채 버럭 소리쳤다.“설기야!”하지만 설기는 이성을 읽고 마구 소리쳤다.다행히 제때 도착한 직원이 곧바로 조치하는 바람에 유진을 구출했지만, 이미 충격을 받은 유진은 진작 쓰러졌다.하연은 어두운 눈으로 상혁과 눈빛을 교환했고, 상혁은 알아차린 듯 얼른 직원에게 분부했다.“얼른 구급차 불러요.”하연
“최하연은 우리 집과 안 맞는 게 틀림없어.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매번 너한테 이러는 거야? 유진아 걱정하지 마. 이번 일은 엄마가 꼭 책임을 물을 거야. 네가 이렇게 다쳤는데, 승마장도 책임을 면치 못 해.”그 말에 유진은 이내 요점을 말했다.“엄마, 그 승마장 사장이 최하연이 지금 만나는 사람이에요. 두 사람 분명 한통속일 거예요.”“이거 큰일 날 소리네. 한씨 가문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나?”고민정은 화가 치밀어 눈까지 충혈되었다. 자식이라곤 유진 하나뿐인데,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온 꼴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이에 고민정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그러다 때마침 나타난 서준과 마주치자 헛웃음을 쳤다.“서준아, 너도 들었지? 이 모든 게 최하연 그 계집이 벌인 짓이래. 너 이번에는 절대 이대로 넘어가면 안 돼.”서준은 마치 우스운 소리라도 들었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큰숙모, 본인 딸을 너무 모르시네요.”“그게 무슨 뜻이야?고민정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저도 현장에 있었어요.”그 말을 들은 고민정은 깜짝 놀라며 무의식적으로 말했다.“너 설마 이번에도 최하연 편을 드는 건 아니지? 최하연이 네 누나한테 이런 짓까지 하고 전에는 네 어머니와 동생한테도 못된 짓 했는데, 대체 네 가족이 누구야?”고민정의 한마디는 망치처럼 서준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3년 전 저지른 자신의 잘못들이 한순간 뇌를 서준의 뇌리를 스쳤다.그때 서준은 하연을 고작 집안 장식품이라고 여겼다. 그 3년 동안 하연은 늘 고분고분했고 아내의 본분을 다했으며 아무런 사고도 친 적이 없다.심지어 시어머니의 등쌀과 시누이의 괴롭힘, 다른 친척의 불친절한 태도에도 항상 참아왔다.그때 하연이 대체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텼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그런데 그걸 이혼하고 나서야 발견했다는 게 저절로도 한심했다.“큰숙모, 솔직히 말할게요. 오늘 사고 최하연과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그런데 만약 최하연을 찾아가 행패 부린다면 앞으로 경제적으로 일전한 푼
그 말에는 무력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어떤 것은 수천 마디 말로도 보상할 수 없다.서준의 태도에 하연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입꼬리를 말았다.“본인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사과해?”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이건 예전의 일에 대한 사과야.”“그거라면 넣어둬.”하연은 말하면서 고민정을 바라봤다.“이 일은 끝까지 책임 물을 거니까.”“그래. 그 선택 존중할게.”서준의 태도에 고민정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서준아 너 어쩜 또 이 여자 편을 드는 거니? 네 누나가 아직 병상에 누워있잖아.”“다 큰 어른이 자기가 한 짓에 책임은 져야죠.”“유진이 대체 뭘 했다고 이러는 건데?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건 유진아라고!”고민정은 너무 화가 나 버럭 소리쳤다.“둘이 뭘 하려고 하든 유진이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려봐.”하연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는 아무것도 안 해요. 하지만 경찰은 어떨지 모르죠.”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제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승마장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해 신고받았습니다. 혹시 한유진 씨가 누구죠?”고민정은 갑자기 나타난 경찰에 무척 당황해했다.“왜 이래요?”맨 앞에 서 있던 경찰은 이내 고민정 앞에 다가가 경찰증을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했다.“저희는 경찰입니다. 법적으로 한유진 씨 소환하는 거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한유진 씨가 누구죠?”그 말을 들은 순간 고민정은 이내 비틀거리며 제 이마를 짚었다.“제가 머리가 아파서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네요.”‘저런 것도 연기라고 하나?’하연은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하지만 고민정이 그런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경찰도 도착한 데다 증거도 확실해 유진이 아무리 머리를 써도 빠져나갈 수가 없다.하연은 하품을 하며 저를 기다려준 상혁에게 다가갔다.“오빠, 우리 이제 돌아가요.”“응, 밖에 추우니까 이거 걸쳐. 감기 조심해야지.”상혁은 외투를 벗어 하연에게 덮어주며 이내 병원을 떠났다.그때, 둘이 나란히 떠나는 뒷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