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이가 도움을 청하자 바 안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제, 제 뱃속의 아이 좀 살려주세요!” 하연은 눈앞의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혜경이가 이와 같은 수법으로 자신을 모함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연기에 중독되기라도 했나 보네.’멀지 않은 곳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어두운 표정으로 두 여자를 향해 걸어왔다.땅에 쓰러진 혜경을 본 서준은 그녀가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 물어보려 했으나 혜경은 그가 묻기도 전에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혜경은 통증 때문에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서준 씨, 나 좀 살려줘! 우리 아이 좀 살려줘!”“오빠, 모두 최하연 저 년이 새언니를 밀어 이렇게 된 거야!”서영은 재빨리 고자질을 했다. 하지만 서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혜경이가 정말 아파 보이자 서준은 그제야 손을 내밀어 그녀를 안았다. 이때 그는 손에 뭔가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피야! 오빠, 새언니 피났어!”서영의 말은 주위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다.“뭣들 하는 거야, 얼른 119 불러!”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한 마디 외치자 모두 핸드폰을 꺼냈다.서준은 망설이지 않은 채 혜경을 안고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갔다. 이때 급하게 달려온 예나가 하연에게 물었다.“하연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하연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귀찮은 일에 얽힌 것 같네.”“뭐?”하연은 머리를 숙여 땅바닥의 핏자국들을 보았다. 그녀는 혜경이가 자기 아이마저 도구로 이용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하연은 금방 마음을 가라앉힌 뒤 어두운 눈빛으로 멀지 않은 곳의 CCTV를 보았다.한편 혜경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서준과 서영은 모두 수술실 밖을 지키고 있었다.얼마 뒤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급히 달려왔다.“환자 가족분이 누구시죠?”서준이 얼른 물었다.“환자 상태는 괜찮은 가요?”“환자분 남편이신 거죠? 환자분은 현재 유산되어 수술로 뒤처리를 해야 되는 상태입니다. 남편분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그렇다면 경찰에 신고하면 되겠네.”민진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영을 보며 말했다.“서영 아가씨께서 똑똑히 보셨다고 하셨으니 우리 혜경을 위해서라도 경찰들 앞에서 증인으로 나서주실 거죠?”“그게...”서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원래 증인으로 나서려고 했던 그녀는 서준의 어두운 표정을 눈치챈 후 하려던 말을 바꾸었다. 그것도 민진현이 보는 앞에서.“하지만 그곳의 불빛이 어두워서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어요.”겁을 잔뜩 먹은 서영은 심장이 매우 빨리 뛰었다. 이때 민진현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서영 아가씨, 전 그저 진실에 대해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그게...”서영은 고개를 숙이더니 서준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민진현은 안색이 매우 어두웠다. 서준이가 아직도 하연의 편을 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민진현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혜경이는 자네의 아이를 품고 있었어! 지금 아이가 유산되었는데 자네는 아빠로서 조금도 슬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드는 건가? 자네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기나 해?”“죄송합니다.”서준이 입을 열었다.“제가 어떻게 된 일인지 반드시 조사해 내겠습니다.”“조사한다고 해놓고 또 그 여자를 감싸주려는 건가?”민진현과 서준이 다투는 소리는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혜경은 침대 시트를 꽉 쥐었다. 두 사람의 아이가 유산되었는데 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하연의 편을 들고 있었다.혜경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연을 지옥으로 보낼 것이다.“할아버지...”혜경의 허약한 목소리가 엄숙한 분위기를 깨뜨렸다.“새언니 깼어요?”서영은 바로 혜경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새언니, 몸은 좀 어때요?”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채 서준을 보며 말했다.“서준 씨, 우리 아이가...”하지만 서준은 마치 이 일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차가운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
“서준 씨가 아직 그 여자한테 감정이 남아있다는 건 이해해. 두 사람이 3년 동안 부부로 지내왔으니까. 하지만 그 여자는 날 밀어 우리 아이를 죽게 만든 범인이야!”“그래, 알았어.”서준은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은 채 말했다.“그럼 경찰에 신고해서 제대로 조사해 보지.”서준은 이 말을 마친 뒤 병실을 떠나려 했다. 이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하연이가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최하연 씨, 당신은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찾아와!”혜경은 하연을 보자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에 하연은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방금 하신 말씀들 모두 병실 밖에서 들었습니다. 한 마디만 물을 게요. 민혜경 씨,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정말 그쪽 말대로 인 가요?”“최하연, 네년 때문에 내 아이가 죽었어!”하연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민혜경 씨, 말을 함부로 하셔서는 안 되죠.”“내 말은 모두 사실이야! 범인은 바로 너야! 내가 당장 신고해서 널 감방에 처넣을 거야! 넌 내 아이를 죽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혜경은 미친 듯이 소리 질렀지만 하연은 시종 침착한 모습이었다.“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가 이미 경찰을 데리고 왔거든요.”하연은 말을 마친 뒤 몸을 옆으로 돌려 자리를 비켰다.“안으로 들어오시죠.”곧 경찰 제복을 입은 경찰관 두 명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혜경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
혜경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떠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신고할 생각은 없었다.하연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다 나가! 다 나가라고!”혜경은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는데 마치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서준은 어두운 표정을 보인 채 경찰에게 다가가 말했다.“환자분이 방금 아이를 유산하셔서 상태가 많이 불안정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두 경찰은 서로 마주 보더니 입을 열었다.“저희도 신고받고 온 것이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어느 분이 민혜경 씨인 거죠?”“꺄악!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서준 씨, 나 머리가 너무 아파!”혜경은 소리를 지르며 서준의 손을 잡았다.“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내가 의사를 부를게.”서준은 말하면서 침대 머리맡의 호출 벨을 눌렀다. 혜경은 매우 상태가 불안정해 보였다.“저 사람들 모두 나가라고 해! 당장 나가! 협조고 뭐고 당장 나가라고!”서준은 손을 내밀고 망설이더니 혜경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해 주었다.“경찰관님, 환자분이 방금 아이를 유산해 상태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지금 물어보셔도 제대로 이야기도 못할 것 같으니 환자가 좀 안정된 다음 다시 오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민진현이 입을 열자 두 경찰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저희는 신고자가 제공한 증거를 따라 현장을 조사하기도 했으니 결과가 나온 다음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네, 수고가 많으십니다.”민진현은 말을 마친 다음 일어나 경찰을 병실 밖으로 배웅했다.경찰이 떠난 후 혜경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하연을 노려보았다. 이에 하연은 헛웃음을 터뜨렸다.“계속 연기하시지 그래요.”이미 예상했던 반응이라 하연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민혜경 씨는 정말 연기를 잘하시는 것 같아요. 올해의 연기 대상을 받아도 될만한 실력이에요.”“최하연 씨, 당신은 꼭 천벌을 받게 될 겁니다.”혜경이 악랄하게 말하자 하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민혜경 씨야말로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반드시 제 아이를 죽인 대가를 치르셔야 할 겁니다!”혜경은
두 사람은 병원 옥상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가요? 민혜경 씨의 유산에 관한 일이라면 전 굳이 할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민진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연을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사람들을 시켜 CCTV를 확인해 보았는데 그 당시 화면이 찍히지 않았더라고. 혜경이가 널 범인이라고 몰면 넌 절대 혐의를 벗어나지 못할 거야.”이 말을 들은 하연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비꼬듯이 말했다.“그렇다고 사실이 뒤바뀌진 않습니다.”민진현은 계속해서 말했다.“F국이 최씨 가문의 천하이긴 하지만, 우리 민씨 가문도 B시에서는 만만치 않은 존재야. 그리고 난 싸우는 것보단 화해하는 쪽이 더 내키거든.”하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떻게 화해하시려고요?”“2,000억을 배상금으로 주면 오늘 일은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지.” ‘다짜고짜 2,000억을 내놓으라고 말하다니.’“민 회장님은 보기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 민씨 가문에 돈이 많이 모자란가 봐요.”하연의 말을 들은 민진현은 오히려 큰소리쳤다.“2,000억이 뭐 별 게라고.”“그러세요?”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화해는 절대 못합니다. 전 민혜경 씨를 끝까지 고소할 생각이거든요.”하연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지금 나랑 끝까지 싸우겠다는 건가?”“전 돈을 가지고 일을 해결하고 싶진 않거든요. 민혜경 씨의 아이가 어떻게 유산된 건지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혜경이가 널 범인으로 끝까지 몰면 네가 무슨 수로 혐의를 벗어나겠어?”“민 회장님은 지금 증거가 없다고 믿으시는 것 같은데, 어쩌면 제 손에 증거가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하연은 말을 마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옥상을 떠났다. 민진현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콧방귀를 뀌며 주름진 손으로 소리 없이 지팡이를 잡았다.민진현이 다시 병실에 돌아왔을 때 혜경 한 사람만 병실에 남아 울고 있었다.“할아버지! 최하연 그년을 절대 가만두면 안 돼요!”혜경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민진현은
일부 네티즌들은 DS그룹의 공식 사이트를 찾아가 댓글을 남기며 고소를 하기도 했다.바로 이때, 민씨 가문은 B시의 유명한 기자들을 초대하여 기자발표회를 열었다.혜경은 기자들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연의 ‘악행’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했다.“민혜경 씨, 지금 하신 말들이 모두 사실인가요? 정말 최씨 가문의 하연 아가씨 때문에 유산을 하신 거예요?”혜경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하연 씨가 절 밀었기 때문에 제가 넘어져 아이를 잃게 된 겁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번 유산으로 인해 제 건강이 엄청나게 악화되어 앞으로 다신 아이를 가지지 못할지도 모른답니다...”혜경이 눈물을 흘리자 현장의 기자들은 모두 그녀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혜경 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최하연 씨께서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될 겁니다.”“법률은 공평한 법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마지막으로 민진현은 카메라를 보며 힘든 기색을 드러냈다.“저희 가족 모두 이번 유산 때문에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민 회장님,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인 가요?”“저희는 최하연 씨가 응당한 처벌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겁니다.”민진현이 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누구든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 최하연 씨한테 기회를 드릴 생각입니다.”민진현은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큰 소리로 말했다.“최하연 씨께서 저희 혜경이한테 사과하신다면 저희도 형사책임은 추궁하지 않겠습니다.”이 말을 네티즌들을 또다시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민씨 가문은 정말 도량이 넓네.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상대가 사과만 한다면 용서해 준다고 말하다니.][민씨 가문 사람들은 정말 착하네.][좀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큰일을 사과 하나만으로 용서해 주다니. 난 뭔가 수상한 것 같아.][좀 더 기다리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겠지.]...민씨 가문의 기자발표회를 본 네티즌들은 모두 하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일은 계속해서 뜨거운 열기를 가지고 있었다.민씨 가문
[인터넷에 발표된 거짓 보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최하연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누구도 해친 적이 없습니다. DS그룹은 이 일을 경찰에게 맡겨 법대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거짓말로 여론을 선동한 민씨 가문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인터넷의 여론들은 또다시 뒤집혔다.[그럼 민씨 가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쇼를 했던 거네.][그러게 죄 없는 사람을 왜 모함하고 난리야!][형사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말한 건 딱 봐도 도둑이 제 발 저린 거네!][민씨 가문은 정말 뻔뻔하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티즌들이 토론하고 있을 때 녹음된 음성이 폭로되었는데 그 안에는 민진현이 병원 옥상에서 하연에게 협박하던 말들이 담겨 있었다.[미쳤어, 어떻게 2,000억을 사기 칠 생각을 한 거지?][배상금으로 2,000억을 요구하다니, 민씨 가문은 정말 미친 거 아니야?][내가 평생 노력을 해도 2,000억은 못 벌 거야.][이건 분명 사기야! 2,000억은커녕 200원도 꿈꾸지 마!]녹음된 내용이 폭로된 후 네티즌들은 모두 민씨 가문을 미친 듯이 욕하기 시작했다. 원래 하연을 나락 가게 만들려다가 지금은 그들 민씨 가문이 나락 가게 생겼다.민진현은 이 소식을 듣자 정신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이뿐만이 아니다. 녹음이 폭로된 후 ST그룹의 주식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반 시간 만에 10%나 하락되었다. ST 그룹의 시가는 단번에 몇천억이나 낮아졌다.한 시간 후 주식은 완전히 폭락되었다. 민씨 가문은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고 욕설을 듣게 되었다.“그러게 쌤통이야!”예나는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더니 말했다.“민혜경은 이제 임산부가 아니니 더 이상 석방되지 못할 거야. 이제 우리가 제공한 증거에 따르면 적어도 20년은 넘게 선고받을 거야.”하연이 가볍게 응했다.“하긴 그 정도는 선고받아야지!” “그런데 좀 이상한 게 한서준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어. 민혜경 뱃속의 애가 한서준 애이기도 하잖
“최하연 그년은 왜 이렇게 운이 좋은 거야!”호현욱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고작 며칠 사이 B시에서 손꼽히던 회사인 ST그룹이 이렇게 망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것들은 모두 하연과 연관이 있었다.“호 이사님, 전 최 사장님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두 분의 내기는...”호현욱은 비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호통을 쳤다.“입 다물어! 고작 여자인 주제에 상업계에 발을 붙이려 하다니! 그년이 ST그룹의 계약들을 가로채갔다고 해서 우리한테 위협이 생길 것 같아?”하지만 호현욱은 여전히 표정이 어두웠다. 그는 절대 이번 내기에서 져서는 안 된다.‘두고 봐, 최하연.’...ST그룹은 일주일 만에 파산을 선언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몰래 ST그룹의 남은 틀을 인수하고 대량의 자금을 투자해 보름 만에 새로운 회사인 FL그룹을 만들어냈다.FL그룹은 얼마 지나지 않아 B시에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한동안 FL그룹에 관한 소문들이 B시의 상업계에서 떠돌아다녔다.“FL그룹은 정말 신비로운 것 같아! 배후의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조금도 밝혀지지 않았어!”“분명 엄청난 사람이 FL그룹 뒤에 숨어 있을 거야!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빨리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자금이 많았다는 것을 증명해! 소문으로는 B시의 3분의 1의 업무들이 모두 FL그룹에게 빼앗겼대!”“ST그룹이 사라진 후 B시의 상업계가 다시 정돈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FL그룹이 나타나 모든 것을 뒤바꾸었어.”하연과 비서 정기태는 로비를 지나가던 와중에 데스크에서 가십을 떠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후 하연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최근 FL그룹에 관한 소문이 많나 봐.”“네, 사장님. FL그룹이 엄청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강해서 모두 FL그룹의 뒤에 숨은 진짜 보스를 알아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어요.”“쓸만한 정보는 하나도 못 찾았어?”하연은 다소 놀란 눈치였다. 기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저희도
진수용은 이름이 불리자 몸이 떨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입을 열었지만, 평소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고 목소리는 떨렸다. “제 생각에는... 결국 이 회사도 부씨 가문의 사업 아닙니까? 부상혁 대표님이든 부남준 상무님이든, 누구든 이끌 자격이 있습니다.” “만약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부남준 상무님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진수용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마치 모든 게 조심스러워 보였다. 정지철은 진수용의 대답에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진 이사님도 입장을 밝히셨으니,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그는 시선을 옆에 있던 오랜 동료인 오국정 이사에게 돌렸다. 오국정은 이미 자신이 정지철의 편에 서 있었기에, 이제 와서 그 배에서 내릴 방법은 없었으니, 말없이 손을 들어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다. 두 명의 이사가 찬성 의견을 내었다. 정지철은 즉시 손을 들어 자신의 표까지 추가했다. “제도 여기에 한 표 합니다!” 이렇게 세 표가 확보되었다. 이제 한 표만 더 얻으면, 남준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 정지철의 얼굴에는 승리의 기쁨이 가득했다. 그는 흐름을 타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지 이사님, 장 이사님,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두 사람은 정지철이 미리 접촉한 인물들이었기에 그는 자신만만했기 때문에 기대에 찬 눈빛이 그들에게 쏟아졌다. 심지어 남준 또한 승리를 확신한 듯, 이미 얼굴에는 승리자의 여유로운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지 이사는 나이가 지긋한 이사로, 처음부터 태도가 한결같이 신중하고 겸손했다.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안경을 고쳐 쓰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DL그룹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를 이렇게 성급히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부상혁 대표님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순서 아닐까요?” 장 이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지 이사를 따랐다. “맞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일방적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설마 부상혁 대표님께서 무슨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셨다는 겁니까?” “부상혁 대표님은 수년간 회사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오셨습니다. 단 한 번도 실수를 저지르신 적이 없고, 연말 배당금도 매년 증가했습니다. 설마 밥그릇 들고 밥 먹다가 내려놓고 욕하는 그런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려는 건 아니시겠죠?” “어떤 일을 하시더라도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허위 사실을 날조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입니다.” “...” 이사회 멤버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정지철의 주장에 의문을 표했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고, 정지철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분노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만약 남준이 정지철의 팔을 잡아 말리지 않았다면, 정지철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했다. “흥!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면 제가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여러분, 직접 확인해 보시죠!” 정지철은 화를 참지 못하고 준비해 온 증거를 스크린에 띄웠다. 자료에는 하나하나 세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부상혁 대표님이 그동안 진행하신 사업을 살펴보면, 최근 몇 가지 사례에서 문제점이 적지 않습니다. 이중계약, 탈세, 심지어 공무원을 뒷돈으로 매수한 정황까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관련 부서의 승인을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주식 시장에서의 불법 거래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같이 법을 어긴 행위들입니다. 제가 경찰에 신고만 하면, 부상혁 대표님은 감옥 신세를 면치 못할 겁니다.” 정지철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은 다시 적막해졌다. 모두가 스크린을 응시하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크린의 내용을 확인한 이사들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 대표님, 뭐라고 설명 좀 해 보세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셨습니까?” “이제 우리 회사는 끝났군요. 완전히 끝입니다.” “다행히도 부동건 회장님께서 아직 전권을 넘기지 않으셨으니, 우리 회사에는
남준은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형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설마 제가 여기 나타나는 걸 바라지 않으신 건 아니겠죠?” “남준아, 오해는 하지 마.” 상혁은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서두르다 보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고. 그건 아주 기본적인 이치인 건 알고 있지? 이런 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네가 이미 잘 알 테지.” 상혁의 목소리에는 권력자의 위엄이 담겨 있었다. 주변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남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네. 그렇다면 제가 직접 이 기간 동안의 성과를 보고드리겠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회의실은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남준은 현재 본사에서 직무가 정지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자격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의 특별한 신분, 즉 부씨 가문의 차남이라는 타이틀이 있는 이상 누구도 쉽게 반박하지 못했으니, 그저 본능적으로 모두의 시선이 상혁에게 향했다. 상혁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그만큼 자신이 있다면, 기회를 주는 것도 좋겠지. 모두들 잘 듣고, 부남준 상무의 성과를 한번 확인해 보시죠.”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사들 역시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그럼 수고 좀 해주시죠, 상무님.” “상무님, 부탁드립니다.” 원신민이 손짓으로 자리 앞으로 안내했다. 남준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주석 자리 앞으로 나아가 이사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귀중한 기회를 주신 이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대형 스크린에 데이터 화면이 띄워졌다. 남준은 차분하고 조리 있게 설명을 이어갔고, 그의 발표 내용은 듣는 이들에게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사들 사이에서는 소곤 소곤거리는 칭찬이 터져 나왔다. “역시 상무님 이십니다. 이런 능력과 수완을 보니, 정말 대
“대표님, 부남준 상무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최상층 사무실에서, 원신민이 차분하게 보고했다. 부상혁은 고개를 들고 시선을 멀리 두었다. 그는 느긋하게 외투를 정리하며 평온한 얼굴로 앉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원신민은 말을 이어갔다. “상무님께서 동남아에서 상당히 많은 지지를 얻어내셨습니다. 현재 이사회에서도 분위기가 매우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회장님도 잇달아 칭찬을 아끼지 않고 계십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에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상혁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본 그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부드러운 기운이 스쳤다. [부 대표님?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만나고 싶어요!!]메시지에는 귀여운 이모티콘이 하나 붙어 있었다. 메시지의 주인은 분명 지금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상혁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갑자기 전화했어요?]그녀는 상혁의 전화해 의아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옆에 있던 원신민은 이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두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 조용히 옆에서 대기했다. 상혁은 미간을 풀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최 사장님께서 만나고 싶다니, 제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요.” 하연은 가볍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부 대표님, 자제력이 아직 부족한 것 같네요!]“그렇죠, 제가 최 사장님 앞에서는 특히 더 자제력이 부족해요.” 그의 목소리에는 다른 뜻이 담겨 있었다. 하연은 전화기 너머에서 얼굴이 붉어졌고, 서둘러 말을 돌렸다. [정 실장이 콘서트 티켓 두 장을 가져왔어요. 오늘 저녁에 우리 같이 보러 가요.] “그럼 내가 저녁에 데리러 갈게.” [좋아요.] 전화를 끊고, 상혁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었지만, 차가운 고요함이 가득했다. 곧, 그의 저음이 울려 퍼졌다. “가자. 이제
‘부씨 가문의 장손, 절대로 부상혁의 아이가 되어서는 안돼!!’ 이 말은 송혜선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녀 마음 깊숙이 뿌리를 내려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님, 이 일은 남준 씨의 의사를 따라야 할 것 같아요.” 다영은 입가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표정은 어딘가 씁쓸했고, 눈동자에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어른거렸다. 송혜선은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이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절차에 불과했고, 복잡한 문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걱정 말아. 남준이한테는 내가 직접 이야기할 테니까. 이런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우리 남준도 절대 흐릿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거야.” 송혜선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다영을 안심시켰다. 다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깊은 밤. 격렬한 사랑의 열기가 가라앉은 후, 다영은 온몸에 땀이 촉촉이 배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부남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련 하나 없이 자리에서 훌쩍 일어섰다.그 순간, 다영이 남준의 등 뒤에서 두 팔로 단단히 그를 끌어안았다. 남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손에 쥔 동작이 멈췄다. “갑자기 왜 이래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한결같이 차분했다. 다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등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더욱 힘껏 그를 끌어안았다. “조금만 더 있어주면 안 될까요?” 남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침 일찍, 중요한 일이 있어서 서둘러야 해요.” 다영은 그의 품에서 천천히 물러섰다. 침대 머리맡의 희미한 빛이 그녀의 눈동자 속 기대감을 비추고 있었다. “남준 씨, 우리 아이를 가져보는 게 어때요?” 남준의 표정은 여전히 깊고 변함없었다. 그는 다영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죠?” 다영은 그를 응시하며 눈망울을 반짝였다. “남준 씨
남준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정지철은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한걸음에 다가가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자, 그럼 우리 집으로 가세.” 동시에, 정씨 가문의 저택은 불빛으로 환히 밝아져 있었다. 정다영은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벌써부터 문밖으로 자꾸만 향하며,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주머니, 기사님께 전화 한 번 해 보세요. 왜 아직도 안 오시는 거죠?” 가정부인 왕순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께서 직접 모시러 가셨으니, 곧 도착하실 겁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다영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다. “분명히 남준 씨일 거야.” 문을 나서자 찬바람이 불어왔고, 다영은 몸을 살짝 떨었지만, 마음속 설렘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남준 씨!” 차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다영의 시선은 오직 한 곳만을 향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이는 기대했던 남준이 아니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녀는 놀란 듯 말했다. “어머님, 여기 웬일이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실망이 묻어났지만, 금세 태연한 척하며 표정을 고쳐 잡았다. “왜? 내가 오면 안 되는 거니?” 차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송혜선이었다. 송혜선은 어두운 색의 패딩을 입고 있었지만, 부드럽게 불룩 나온 배는 그녀의 우아함과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다영은 서둘러 다가가 송혜선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다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실 줄 몰랐고, 미리 말씀도 없으셨잖아요.” 송혜선은 다영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남준이가 돌아온다길래 네 아버지가 연락을 줬거든. 그래서 겸사겸사 들러본 거야.” 다영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는 상황을 이해했다. 단순히 들르겠다는 말은 구실에 불과했고, 내일 있을 이사회를 염두에 둔 방문임이 분명했다.
“제가 요즘 입덧이 심해서 기름진 음식은 못 먹거든요.” 하연의 말에 부동건은 금방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구나. 그렇다면 다음에 혜선 이모에게 담백한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할게.” 부동건은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곁에 있던 비서는 부동건의 눈짓을 읽고, 즉시 보온 통을 조용히 치워갔다. “혜선 이모는 그런 일을 잘 아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혜선 이모에게 물어보렴.” 그 말이 떨어지자, 사무실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연은 상혁의 표정이 차갑게 변한 것을 느꼈다. 그의 주변에는 금세 폭풍이 몰아칠 듯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연은 상혁의 손을 살짝 잡으며 그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도 점점 사람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혜선 이모도 지금 임신 중이신데, 어떻게 그런 부탁을 드릴 수 있겠어요?” 부동건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냐, 넌 걱정하지 말거라.” 하연은 여전히 단호한 태도로 거절했다. “아니에요. 전 늘 진숙 이모가 해주신 음식을 먹어서, 다른 분이 만든 건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녀가 조용히 조진숙을 언급하자, 부동건은 잠시 당황한 듯 멈칫했다. 곧 코를 문지르며 멋쩍게 말했다. “그렇구나, 내가 생각이 짧았다. 진숙 이모는 어릴 때부터 널 봐왔으니 네 입맛을 가장 잘 알겠지.” 그는 말을 돌리며 덧붙였다. “그럼 앞으로 이런 건 진숙 이모에게 부탁하자꾸나.” 상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이런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들의 단호한 어조에 부동건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젊은 사람들 일은 내가 나설 일이 아니지. 다만 너희 둘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부동건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이제 너희가 가정을 이루고 일도 안정적으로 맡게 되어, 정말 기쁘구나.” 그는 마치 옛날을 떠올리는 듯
상혁은 하연을 단숨에 품 안으로 끌어당기며 밀착했다. “대범하다는 건 과장이야. 그저 한 번의 신세를 갚았을 뿐이야.” 하연은 그의 말에 질투가 더 짙어졌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톡톡 찌르며 따져 물었다. “어떤 일이길래 부 대표님이 그렇게 큰 손을 쓰셨나요?” 전진그룹의 프로젝트는 최소 몇억에 달하는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하연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니면, 부 대표님이 나한테 감추고 싶은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요?” 상혁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네 작은 머릿속엔 도대체 무슨 생각이 그렇게 가득하니?” 상혁의 큰 손은 자연스럽게 하연의 어깨로 내려왔다. 그는 몸을 숙이며 하연의 시선을 마주했다. 깊고 진지한 눈동자 속에 하연의 모습만 담겨 있었다. 상혁은 하연을 장난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알아? 하연아, 너 지금 엄청 귀엽다.” 하지만 하연은 여전히 진지했다. “부 대표님, 화제를 돌리지 말아요.” “응.”상혁은 가볍게 대답하며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 모임에서 들었던 말이 하연의 귀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주슬기에게 이익을 준 건, 단지 주슬기에게 빚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얽매임이 없다는 걸 뜻하지.” 잠시 말을 멈춘 후,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하연아. 오늘 너의 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었어.” 하연이 질투를 하고, 다른 여자를 신경 쓰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혁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하연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상혁의 손등을 꼬집으며 말했다. “부 대표님, 오해하지 말아요. 그냥 우리 아이 아빠가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으읏!” 하연의 말이 끝나
“마침 ZT그룹의 서류가 도착했네요. 최 사장님, 함께 올라가시죠.” 연지의 말에 하연은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였다. “DL그룹이 ZT그룹과도 협력하고 있나요?” 연지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원래는 없었죠.” 바로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연지는 공손하게 손짓하며 말했다. “먼저 타시죠.” 하연은 앞장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연지는 뒤따라 옆에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올해 사업 조정으로 ZT그룹과 협력할 기회가 조금 생겼습니다. 게다가 부 대표님께서 ZT그룹을 꽤 신경 써 주신 덕에, 자연스레 왕래가 잦아졌죠.” 하연은 시선을 고정한 채 연지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느꼈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호기심 섞인 말투로 물었다. “오, 그게 무슨 뜻이죠?” 연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연말은 늘 우리 회사에서 가장 바쁜 시기인데, 최근 부대표님께서 전진그룹의 프로젝트를 모두 ZT그룹에 넘기셨거든요. 덕분에 이번 연말은 꽤나 한가해졌어요. 전진그룹이라면 바로 무역협회 전영철 회장님 회사잖아요.”하연은 연지의 말 속에서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전진그룹은 F국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으로, 그 기반은 단단했고 산하 프로젝트도 방대했다. 그런 이익을 고스란히 주슬기에게 넘겼다니,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 하연의 마음속에 의혹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평정을 유지하며 연지를 흘깃 바라봤다. 연지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분명 의도가 있었다. 하연은 차갑게 눈을 좁히며 물었다. “그 말은, DL그룹이 그 프로젝트를 전부 ZT그룹에 넘겼다는 거네요?” 연지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런데 부 대표님께서 이 일을 말씀 안 하셨나 봐요?” 하연은 옅게 미소 지으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이렇게 말해 줬으니, 덕분에 알게 됐네요.” 연지는 속이 뜨끔하며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급히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