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그룹이 3일 후에 파티를 개최할 거랍니다. B시의 유명한 기업들을 모두 초대하였기에 저희도 초대받은 것입니다.”하연은 금색 초대장을 보며 위에 적힌 FL 두 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최근 B시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아온 FL그룹이 파티를 연다면 틀림없이 매우 떠들썩할 것이다. 어쩌면 이 기회를 틈타 새로운 합작도 따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제시간에 참석할 생각이니 내 일정에 포함시켜.”“네, 사장님.”하연은 곧 핸드폰을 꺼내 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예나야, 내가 3일 후에 파티에 참석할 예정인데 내가 입을 만한 예쁜 드레스 하나 골라줘!”[설마 FL그룹의 개업 파티를 말하는 거야?]하연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물었다.“너도 알고 있었어?”[그럼! 3일 뒤 파티를 위해 드레스 제작을 부탁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거든. 우리 하연이가 입을 건 최고로 예쁜 걸로 준비해 둘 테니 나한테 맡기기만 해! 내가 널 파티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어줄게!]“정말 고맙지만 너무 화려하진 않았으면 좋겠어.”[그래, 걱정 마.]...이튿날 하연은 택배 하나를 받았는데 열어보니 보라색 맞춤 드레스였다. 매우 고급스러운 그 드레스는 단 번에 하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사장님, 정말 너무 예쁜 드레스예요! 사장님한테 너무 어울려요!”비서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연은 매우 기뻐하더니 핸드폰을 꺼내 예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예나야, 네가 보낸 드레스 완전 마음에 들어! 네 안목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나 봐!]하지만 메시지가 발송된 지 불과 1분 만에 예나가 답장을 보내왔다.[뭔 소리야, 네 드레스는 아직 가게에 있어! 내일 파티 전에 가져다줄 생각이었어.]하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이거 네가 보낸 드레스 아니야?][아니야!]하연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뜻밖에도 조진숙이었다.“이모!”[하연아, 이모가 보낸 드레스 잘 받았어?
하연은 보라색 맞춤 드레스를 입고 굽이 10센티 넘는 하이힐을 신었다. 그녀의 예쁜 얼굴과 아름다운 몸매는 드레스에 덕분에 더욱 돋보였다.하연은 등장하자마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저 사람이 최씨 가문의 아가씨인가 봐. 얼굴이 예쁜 데다가 몸매까지 완벽하니 정말 부러워 죽겠네!”“입고 있는 드레스도 너무 예뻐! 하연 씨가 입으니 딱이네!”“한서준은 눈이 멀었나 봐. 저렇게 예쁜 미녀를 놔두고 민혜경과 바람피우다니. 지금쯤 엄청 후회하고 있겠지?”“참, 오늘 한 대표도 온다고 들었는데...”몇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웃었지만 시선은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서준을 향했다.하연이가 들어선 후부터 서준은 줄곧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만큼 오늘의 하서가 예뻤던 것이다.“대표님!”서준은 구동후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제가 방금 알아봤는데 아직도 FL그룹의 진짜 보스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F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했었지만 진짜 소식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도 BL그룹의 보스를 만나본 적이 없답니다. 오늘 파티에 나타날지 말 지도 확신할 수 없답니다.”서준은 진지한 표정을 보였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대다수 사람들은 분명 FL그룹의 보스를 만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서준은 모든 방법을 사용해 보았으나 상대가 누군지 알아내지 못해 조금 좌절스러웠다.“도대체 우리를 부른 목적이 무엇인지 잘 지켜봐야겠어!”서준은 말을 마친 뒤 또다시 하연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연은 각 업계의 대표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녀의 표정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이전에 HT그룹에서 비서로 일하던 하연은 이런 술자리에 적지 않게 참가했기에 그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한 바퀴 둘러본 하연은 이미 많은 명함을 받았다. 그것들은 모두 DS그룹의 업무 확장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기에 하연은 모두 가방에 넣었다.10센티의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하연은 발이 너무 아파 멀지 않은 소파를 향해 걸어
“서영 씨, 혹시 FL그룹의 대표와 아는 사이에요?”‘그럼 그동안 줄곧 숨겨왔던 거예요?”“그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봐요. 정말 잘생기셨나요?”서영은 사람들의 굶주린 눈빛을 보자 자신감이 생겨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비록 FL그룹의 대표를 만나본 적 없었지만 이미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이 정도 실력이라면 분명 얼굴도 잘생겼을 거야.’그래서 서영은 거짓말을 했다.“사실 그분과 따로 만났었어.”이 말을 들은 졸개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서영 씨, 정말 너무 대단하세요!”“한씨 가문의 아가씨는 역시 다르네요. B시에서 그분을 만나본 사람은 아마 서영 씨 한 사람밖에 없을 거예요.”“맞아요, 그럼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거짓말을 하기 시작한 서영은 아예 눈 깜짝하지도 않은 채 계속 거짓말을 늘여갔다. “얼굴은 정말 잘생겼어. 하지만 비교적 조용하고 떠벌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나랑 꽤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좀 이따 오면 소개해 줄게.”뒤쪽 소파에 앉아 있던 하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서영과 그녀의 졸개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서영은 하연이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두 눈을 부릅뜨며 하연을 노려보았다.“저 사람은 서영 씨 전 형수님 아니에요? 정말 예의가 없으신 분이네요.”“최씨 가문의 아가씨라고 들었는데 정말 매너가 없는 분이시네. 우리 말을 엿듣고 있었다니.”서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최하연, 웃긴 뭘 웃어?”하연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말했다.“미안, 너무 웃겨서 참을 수 없었어.”하연은 또 서연의 옆에 선 여자를 보며 말했다.“나도 그쪽 대화를 듣고 싶진 않았지만 말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들린 걸 어떡해.”“웃기시네, 넌 우리 서영이를 질투하고 있는 거잖아! 서영이는 FL그룹의 대표와 친한 사이거든.”하연은 웃으며 서영을 보며 물었다.“정말이야?”서영은 말을 이미 내뱉은 이상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그럼 정말
서영은 잔뜩 격앙된 표정으로 말했지만, 상대인 하연은 그저 가볍게 웃으며 반문했다. “내가 FL그룹의 대표와 친해져 연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 간단한 한마디로 서영의 입을 막아 버렸다. “세계 최고 부자 최씨 명문가 아가씨이자 DS그룹의 현 회장이니...” 서영의 옆에 있던 한 친구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하긴 저런 신분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오를 수도 없으니까!’ ‘만약 든든한 연줄을 갖고 싶다면, 오히려 최 대표와 친해져야지!’ 가영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보기 흉해졌다. 하연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보기에 정말 좋은 연줄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네? 다만, 그렇지 못할까 봐 걱정이야!’ 서영이 이번엔 완전히 화가 나 폭발했다. “최하연, 오빠한테 버림받은 여자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여기서 내게 이러쿵저러쿵이야? 걱정이고 뭐고 내가 손수 그 입을 찢어주마!” 서영이 화를 내며 흥분하는 것을 보고도 하연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 하연의 눈에 서영은 마치 펄쩍펄쩍 뛰는 어릿광대와 같았다. “서영아, 그만 입 다물어!” 서준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서영에게 호통쳤다. 서영은 서준이 여전히 하연을 두둔할 줄은 생각지 못했고, 순간 마음속이 극도로 불편해졌다. “오빠!” 서준이 눈빛이 서영을 향하자 그녀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서준은 다시 시선을 돌려 하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보는 하연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서준이 막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홀의 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지?”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고 떠들썩하던 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FL그룹의 오픈 파티에 참석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무대 위에 사회자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궁금함과 함께 모든 시선이 무대 쪽으로 향했다. “오늘 FL그룹이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B시에서 그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서영의 말속에 약간 하연을 약 올리는 듯한 어조가 담겨있었고, 서영은 그렇게 허풍을 떨면서 계속 마음이 찔렸다. 하연은 사회자의 입에서 부상혁이라는 세 글자가 나오는 것을 듣고는 별로 크게 놀라지 않았고, 순간 조진숙이 전화한 일이 떠올랐다. ‘그래 이모가 전화한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어!’ 하연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이해했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술잔을 들고 잔 속의 술을 단숨에 마셨다. 지금 현장에서는 모두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훤칠한 그림자가 무대 위 빛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왔는데 걸음걸이는 매우 절도 있었다. 그가 무대로 걸어올 때 불빛이 그의 몸을 온전히 비추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의 얼굴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보라색 정장을 입고 늘씬한 몸매를 드러낸 뚜렷한 이목구비의 한 남자가 남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서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에 절로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어머, 저 남자 몸매 봐! 거기다 얼굴도 잘 생긴 거야?” “완전 내 이상형인데!” “외모도 저렇게 멋있는데 능력도 좋다니, 하늘이 다 줬네, 다 줬어!” “...” 상혁은 무대 아래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아무 표정 없이 조용히 눈으로 사람들 사이를 살폈고, 결국 하연을 발견했다. 두 눈이 마주친 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많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서영아, 저봐, 부 대표가 너를 보고었어!” 서영은 이 말을 듣고 의아해하며 자신도 모르게 부상혁을 바라보았지만, 상대방은 이미 시선을 거두었다. 서영은 화를 내며 말했다. “제발, 너희들 적당히 좀 해. 난 괜히 여기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지 않으니까.” “알았어! 치, 소심하기는!” 서영은 멋쩍게 웃었다. 지금 그녀는 이미 여기에 있을 마음이 없어졌고 자신이 한 말이 들통나지 않게 기회를 찾아 몰래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FL그룹의 오픈 파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부상혁이라고 합니다.”
하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진짜 놀라고 기쁘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모두가 어리둥절해했다, 사람들은 상혁이 하연을 좋아한다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는데, 그의 눈빛이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의 호기심이 동시에 발동했다. 더욱이 지금 두 사람은 같은 색상의 옷까지 입고 있었다. “설마 진짜 커플은 아니겠죠?”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한마디 했는지 소문의 불씨가 일순간 타올랐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서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두 사람을 향한 그의 눈빛에서 마치 불을 뿜을 것만 같았다. “부 대표님, 전부터 서로 아시던 사이인가요?” 서영의 친구가 무심결에 물었다. 상혁은 하연을 보고 말했다. “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예요.” 이 말이 나오자 주위 사람들이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다는 거지?” “그럼 두 사람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는 거 아니야?” “그래 어쩐지, 최 대표는 세계 최고 부자인 최씨 명문가 아가씨인데, 함께 자란 남자의 능력이 떨어질 리 없지! 지금 FL그룹이 B시에서 강하게 부상한 것도 당연해!” 옆에서 서영이 이 말을 듣자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녀는 방금까지 하연 앞에서 자신과 상혁의 관계가 얼마나 좋은지 큰소리쳤었는데 뜻밖에도 하연이 상혁과 저렇게 가까운 사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서영은 도망치거나 땅 속에라도 기어들어가 숨고 싶을 뿐이다. “하연아, 함께 만날 사람이 있어!” 상혁은 하연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하연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망설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만약 오빠와 내가 손을 잡는다면, 나중에 밖에서 어떤 헛소문이 어떻게 퍼질지 몰라! 난 상관없지만 오빠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 하연이 망설이는 사이에 상혁은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 순간 손바닥에 전해지는 따스함을 느끼고 어리둥절했다. ‘두 사
두 사람이 걸어가 복도 끝에 다다르자 상혁이 말했다. “들어가자. 네가 궁금해하던 답이 이 안에 있어.” 상혁이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 제가 하연이를 데려왔어요!” 하연은 어리둥절한 채 열린 문 뒤로 시선을 향해 보니 최동신이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깜짝 놀란 하연이 바로 달려가 최동신의 품에 안겼다. “할아버지, 왜 B시에 오셨으면서 저한테 말도 안 하셨어요?” “내가 너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 네 할아버지께 그러자고 했어.” 옆에서 조진숙의 목소리가 들리자 하연은 또다시 놀랐다. “이모! 이모도 오셨어요?” 조진숙은 하연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내가 안 올 수 있겠어? 이사회에서 네가 호언장담 했다며? 우리 다 들었어!” 하연은 순간 당황했다. “네가 호 이사와 내기를 한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 거야?” 하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뭐, 열심히 일해서 목표를 달성해야죠!” “좋아! 포기한 건 아니구나? 오히려 꽤 자신 있는 눈치인데? 그럼 됐어! 이렇게 보니 네가 내 젊은 시절의 모습과 좀 닮았어!” 최동신이 바로 하연을 칭찬했다. “그래, 마침 상혁이도 B시에 있으니, 너희 둘이 서로 잘 살펴주면 되겠구나. 사업적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상혁이와 잘 상의해.” 조진숙이 말했다. 하연은 상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상혁 오빠는 앞으로 DL그룹 도련님 신분을 버리고 B시에 와서 FL그룹을 경영하는 거야?”조진숙이 설명했다. “FL그룹은 우리 두 집안이 공동 출자하여 설립한 거고 잠시 상혁이게 경영을 맡긴 거야.” ‘어쩐지.’ 하연은 이전에 FL그룹이라는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두 집안과 연관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럼 앞으로 상혁 오빠가 있으니 제가 B시에서 도움 좀 받을 수 있겠는데요!” 하연이 밝게 웃으며 말하자, 상혁은 그녀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하연이 상혁의 팔
“오빠!” 서준이 두 걸음도 채 가지 않았는데, 서영이 도중에 그의 앞을 막았다. 서준의 표정이 차가워지며 짜증을 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서영은 허풍을 떨다 몇몇 친구들에게 온갖 조롱을 당해서 재빨리 서준을 찾아와 떨어진 체면을 회복하려고 했다. 그녀는 서준만이 자신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모두가 B시에서 한씨 가문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빠, FL그룹의 부 대표님과 친해?” 서영이 상현에 대해 언급하자 서준의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난 친하지 않은데, 누군 친한 거 같은데?” 서영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서준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연과 상혁이 보였다. 질투의 불길이 순식간에 솟구쳐 올라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최하연, 저 천한 계집, 우리 한씨 가문을 떠난 지 며칠 만에 FL그룹과 함께 하다니 너무 뻔뻔스러워!” “특히 저 부 대표님처럼 출중한 남자가 하연이와 어울리기나 해?”서준은 서영의 질투심을 느꼈는데, 그도 같은 생각이라 그녀의 기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너, 부 대표를 좋아해?” 서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오빠는 하연이가 저렇게 괜찮은 남자랑 어울린다고 생각해?” 서영은 그저 마음이 답답했다. ‘최하연 저 년은 왜 이렇게 운이 좋은 거야? 어떻게 저렇게 훌륭한 남자들이 모두 저 년 주위를 맴도냐고.’ “오빠, 오빠가 나 좀 도와줘.” 서준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바로 거절했다. “안돼!” 서영은 약간 서운했다. “오빠, 아직 하연이에게 마음이 있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감싸주는 거나고?” “네가 상관할 게 아니야!” “오빠!” 서영은 화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오빠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부상혁, 저 남자는 내가 반드시 차지할 거야!” 서영은 말을 돌리지 않고 아주 직설적으로 했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온 친구들이 자신의 진면목을 몰라본다고 여기고 직접 면전에서 본 떼를 보여줘 친구들을
전용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천천히 열리자마자 주슬기가 눈에 들어왔다.“부 대표님.” 슬기는 공손하게 인사하며 미소를 띠고 다가갔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들러봤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운이 좋네요.”상혁은 코트를 들고 약간 무심한 태도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나요?”“원래는 없었는데요... 지금은 저녁 식사나 함께할까 해서요. 몇 가지 상의할 일이 있거든요.” 슬기는 재빠르게 대답하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상혁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다가 잠시 생각한 뒤, 뜻밖에도 승낙했다.“좋아요, 장소는 제가 정하죠.”슬기는 의아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네, 좋아요.”곧 원신민이 급하게 와서 상혁의 지시를 받았다. “오늘 당장 시내에서 가장 큰 식당에 방을 예약해.”그곳의 방은 최소한 3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기에, 원신민은 바쁘게 움직였다. 슬기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의할 게 큰일은 아닌데, 이렇게 정식으로 예약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상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업무 관련된 일이라면 허술하게 할 수 없죠.”상혁은 대수롭지 않게 밖으로 나갔고, 그가 탄 엘리베이터와는 다른 엘리베이터가 마침 내려오고 있었다.“부 대표님의 비서가 낯이 익어요. 어디서 본 적 있죠?” 슬기가 호기심을 보였다.이 업계에서, 특히 이사급의 비서라면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원신민은 과거에 이씨 가문의 장남을 도와주면서 정계와 조직폭력배 쪽 모두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방을 예약하는 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그 식당의 매니저가 직접 나와 원신민을 맞이했다. “원 비서님,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방을 예약하신다고요? 1층과 2층은 이미 만석이지만, 최상층에 있는 방은 아직 비어있습니다. 그곳을 부 대표님께 해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원신민은 상혁이 슬기와의 식사에 그렇게 화려한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손으로 테
이현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양국성도 조금 의외였다.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은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양국성은 이현의 제안에 맞장구를 치며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제가 한턱 낼게요.”사실 이현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고, 양국성도 ‘한명준’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게다가 이번에 오기 전, 정태산에게도 은밀히 말을 들은 터라, 양국성은 자신의 권한 내에서 최대한 ‘한명준’을 도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양국성도 이미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했으니 하연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차 안에서, 정태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분명히 가기 싫어하셨잖아요.” 하연이 대답했다. “한명준이 이 사업을 맡게 된 건 예측했지만, 남산을 선택할 줄은 몰랐어. 만약 내가 그때 남산 땅을 받아들였더라면, 이 사람이 어디를 선택했을지 궁금해.” 하연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이건 혹시 속내를 감추기 위한 선전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연이도 이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이현은 손을 뒤로 살짝 뻗어 그녀를 가볍게 받쳐주었다. “이모가 이번 사업을 저한테 맡기면서, 사업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거예요. 이제 저도 더 이상 가게만 운영하던 ‘손이현’이 아니에요.” 하연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다시 상기시킬 필요는 없어요.” 이현은 깊은 눈빛으로 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연 씨가 기억하는 손이현은 더 이상 없어요. 이제부터 돌아온 건 과거의 한명준만 있어요.” 그제야 하연이 그를 흘깃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과거의 한명준은 의기양양하고 당당한 청년이었죠. 지금 당신의 모습이 그 당당한 청년과 닮은 게 뭐가 있어요?” 그녀가 기분이 나쁘면 말이
하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원 비서한테 우유로 바꾸라고 했어용!” 상혁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하연은 능숙하게 일어섰다. “나도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야 해요. 커피는 더 이상 마시면 안 돼요. 저녁에 또 올게요.” 상혁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면 이미 퇴근했을 텐데.” “그럴 리가 있나요? 나 원 비서한테 물어봤는데... 당신은 요즘 새벽까지 매일 야근한다면서?” 하연이 문가에 서서 농담처럼 말했다. “부 대표님, 총책임자가 하는 일 정말 쉽지 않죠?” 상혁은 얼굴을 돌리며 미소를 숨겼다. “내일 당장 원신민 해고해야겠군.” ‘원 비서 감히 이렇게 빨리 날 배신했더니...’하연은 오늘도 신에너지와 관련된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B시에서 온 조사팀과의 회의였다. 제대로 된 홍보팀이 없는 상황이라, 하연은 CS그룹의 몇몇 직원을 빌려와 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저녁 만찬에서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장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낮잠은 잘 주무셨나요? 방은 만족하셨는지요?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제가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하연 웃으며 인사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양국성은 친근하게 하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최 사장님께서 세심하게 신경 써주신 덕분에 일이 아주 순조로웠어요. 그리고 정태산 지사님께서도 최 사장님께 안부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한 마지막 말은 하연에게 작게 속삭였다. 하연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기색이 스쳤고, 정태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사님께 제 안부 전해주시고, 부상혁 대표님께서도 잘 지낸다고 말씀드려주세요.” “부상혁 대표님이요?” 양국성이 놀라며 물었다. “아, 최 사장님께서 오해하신 것 같네요. 그날 제가 보고하러 갔을 때 한 검사장님도 계셨거든요. 그분이 최 사장님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한창명? 의외의 인물이었
하연은 말한 대로 다음 날 아침, 집에서 일하는 요리사에게 부탁해 위장에 좋은 닭죽을 끓였다. 요리사는 하연이가 이렇게 식단에 신경 쓰는 걸 처음 본 듯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이걸 회사에 가져가실 건가요?” 하연은 조금 머쓱해하며 말했다. “내가 먹는 게 아니에요.” 요리사는 놀란 듯 물었다. “아가씨, 남에게 주는 거면, 직접 요리해 보시는 게 어때요? 남자가 감동할 거예요.” 하연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알아요. 근데,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그녀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손에 들린 수프 냄비를 들고 바로 DL그룹으로 향했다.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하연은 원신민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게 해줘요.” 원신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 사장님, 부 대표님은 아직 회의 중이신데요.” “언제 끝나요?” “아마도 두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하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다 됐잖아요. 이렇게 직원들까지 압박하는 거 아니에요?” 원신민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회사 일이니까요.” 하연 한참을 생각하다가 손짓하며 말했다. “내가 너희 대표님은 밥을 먹게 할 방법이 있는데, 들어볼래요?” 원신민은 귀를 기울였다.5분 후, 비서가 회의실로 들어와서 말했다. “대표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혁은 불쾌해하며 말했다. “바로 말해.” “대표님 책상 위에 있는 백란화에 뱀이 말려들었습니다...” 회의실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몇몇이 외쳤다. “그런 건 부하 직원들이 처리하면 되지 않나? 굳이 부 대표님께서 나설 일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상혁의 안색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부동건은 난초를 매우 사랑했고, 그 백란화는 상혁이 부동건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다. 백란화를 돌보는 일은 상혁이 DL그룹을 물려받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져 오던 상혁은 잠시 쉬기로 결심하며
하연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바로 상혁의 귀에 속삭이듯 다가가며 말했다. “아직도 반응이 있네, 부 대표님은 아무나 거절하지 않는 건가요? 오늘 만약 다른 여자가 여기 앉아 있었다면...” 그녀의 농담과 향기가 귀를 간지럽히자, 상혁은 잠시 고개를 돌려 미묘하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다른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럼 나만?” 하연의 말에 상혁은 약간 무너지는 듯했지만 이내 그녀를 밀어내며 대꾸했다. “나의 의미는, 너도 아니야.” 하연의 얼굴에 순간 실망이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내밀며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상혁은 잠시 침묵하며 그가 느끼던 생리적 반응이 가라앉길 기다린 후 차분히 말했다. “내려.” “당신은 의사한테 가는데, 내가 왜 내려야 해요?” “다시 붕대 싸매.” 상혁은 이 말을 던지며 차에서 내렸다. 하연도 그제야 그 의미를 깨닫고는 피식 웃으며 따라나섰다.F국에 돌아온 후 상혁의 위장병이 계속 재발하고 있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식사가 병을 악화시켰고, 의사는 그의 상태를 보고 좋지 않은 얼굴을 했다. “부 대표님, 몸이 재산입니다.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망가집니다.” 하연은 밖에서 간호사가 다시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 그 말을 들었다. 상혁은 숨을 고르며 가볍게 대답했다. “제 몸 상태는 제가 잘 알아요. 약만 먹으면 돼요.”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잔소리를 했다. “위장은 쉬게 해야 하는데, 아플 때 약을 먹는 건 이미 늦은 겁니다. 평소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혹시 비서도 없으십니까?” 상혁도 많은 비서가 있긴 했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비서가 가져다준 음식은 몇 시간 동안 방치되곤 했다. 오늘도 병원에 온 것은 원신민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의사가 잔소리를 멈추자, 상혁은 미세하게 당황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사는 밖을 힐끗 보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밖에 계신 아가씨는 대표님의..
“이 정도의 약점을 부남준이 쉽게 너를 놓아줄 하연 없을 텐데?” “그건 제 추측일 뿐이에요!” 연지는 급히 상혁의 다리를 붙잡고 말했다. “그 재무 보고서에는 부남준과 다른 이사들, 특히 정규인과의 결탁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세부 사항이 있어요.” 상혁은 정규인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눈을 들었다. “어디에 있지?” “제 금고 안에 있어요.” “원신민.” 원신민이 재빨리 다가와 연지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같이 가서 가져오지.” “대표님...” 상혁은 허락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연지의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들며 라이터를 켰다. 불길이 일면서 머리카락이 재가 되어 날아갔고, 연지는 공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신민이 연지의 입을 재빨리 막아 그녀가 소리 지르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머리카락은 한 움큼만 탔을 뿐이었다. “알다시피, 황연지, 날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연지는 공포에 질린 눈물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하연은 다영과 헤어진 뒤 자신의 차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한 차량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한 발짝 물러섰다. 마치 상혁이 항상 타고 다니고 있는 차였다. 하연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차 문이 열리자 운전기사가 내려왔다. “부상혁 대표님께서 모시길 원하십니다.” 하연이 입술을 굳게 다문 채로 검게 칠해진 방탄유리를 바라보았는데,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 안은 향이 피워져 있었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듯한 상쾌한 향이었다. 남자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그의 잘생긴 얼굴이 희미한 조명 속에서도 돋보였다.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하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음 순간, 손목이 붙잡혔고, 그녀는 한순간에 상혁의 품에 안겨버렸다. 남자의 강한 향이 공기 중에 가득 퍼졌다. 그러자마자 차가 출발하면서 뒤로 밀리는 힘 때문에 하연은 더욱 상혁의 가슴에 밀착되었다. 상혁은 하연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눈을 떴다. “내 회사
하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다영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최씨 가문은 혼인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후손들이 영원히 번영할 수 있는 가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상혁도 역시 그런 혼인의 필요가 없었다. 부남준은 달랐다. 그는 차남이었고, 어머니 집안의 지원이 없었기에 혼인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영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최하연 씨, 만약에 남준 씨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거리를 두세요. 괜한 오해를 피하려면 말이에요.” ‘이미 오해는 깊어진 것 같아.’하연은 무력하게 생각했다. ‘내가 지금의 문제는 부남준이 나랑 거리를 두지 않으려 한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정다영 씨의 뜻은 이해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니, 조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미래는 정다영 씨가 스스로 잘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하연이 최대한 체면을 유지하며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부남준은 그렇게 겉보기만큼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순하지 않다면 오히려 더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여자들은 강한 남자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부남준의 성격을 마주할 때마다, 다영 역시 어느새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둘은 주차장의 동남쪽 모퉁이에서 발생한 작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목에는 끔찍할 정도로 붉게 번진 화상 자국이 있었다. 남자는 차 안 뒷좌석에 앉아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너를 시켜서 덫을 놓았냐?” “아무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황연지가 흐느끼며 대답했다. “저는 그저 대표님과 최 사장님의 소문을 들었고, 오랫동안 지시를 받지 못해 불만이 쌓였을 뿐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덫을 놓고 복수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를 듣고 상혁은 고개를 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하연의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서로의 체온이 맞닿았고, 한쪽은 차갑고, 다른 쪽은 뜨거웠다. 하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남자야, 네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어.” “그리기가 두려운 거야?” 남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그림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기 두려우면, 내가 대신 그려줄까?” “날 놔!” 하연은 힘을 주어 저항하다가 잉크병을 쳐서 넘어뜨렸고, 남준은 즉각 그녀를 보호하려 하며 둘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잉크는 그의 옷에 쏟아졌다. 하늘이 깜짝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상무님...” 그와 동시에, 문밖에서 낮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연은 본능적으로 돌아보았고, 그곳에 서 있는 정다영을 보았다. 정다영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남준 씨...” 남준은 다영을 보자마자 안색이 순간에 어두워졌다. “다영 씨는 여기 왜 왔어요?” 그는 마치 무언가 방해받은 것처럼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다영은 선물을 들고 있었다. “이거 몸에 좋다고 우리 어머니가 남준 씨도 드셔보라고 하셨어요.”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가 조심스레 선물을 내밀었다.사실 이 핑계는 다영이가 둘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지만, 자신이 들어왔을 때 다른 여자가 남준과 친밀한 화면을 목격한 것을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필요 없어요. 그냥 돌아가요. 이 비서, 정다영 씨를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려.” “저... 남준 씨...” 다영은 말끝을 흐리며 떠나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남준 씨, 이분은 누구세요?” 하연은 남준과 엮이기 싫어 얼른 그를 밀어내고는 빠르게 나와서 말했다. “정다영 씨, 우리 나중에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 하연이는 다영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지만, 다영은 움직이려 하지 않고 눈물을 글썽이며 남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준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도 이따가 회의가 있어요. 먼저 옷을 갈아입고 갈
부남준은 하연을 사무실로 끌어들인 뒤, 하연이가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왜 황연지를 해고한 거야?” 남준은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화상 입었잖아.” “내가 원하는 건 공평하고 공정한 처리야. 너의 독단적인 행동을 원한 게 아니라고.” “지금 상황에서 네 신분이 이미 밝혀졌는데, 그 사람들이 여전히 공평함을 믿을 것 같아?” 남준은 말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비서에게 약상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면봉을 꺼내 하연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해서 하연의 손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말이야, 최 사장님이 손을 다쳤다면, 황연지 한 명 해고하는 걸로 충분히 배상이 될 것 같아?” 하연 남준의 농담을 무시하며 말했다. “나도 일부러 황연지에게 부딪힌 게 아니야. 첫째로, 동기도 없었고, 둘째로, 내가 굳이 적을 죽이려다 내 몸도 해치는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누가 더 잘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하연이 당연히 연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총애받았을 것이다.“바로 그 동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네가 직원을 괴롭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야.” 남준은 하연의 손에 약을 발라주며, 신중하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의 부유층에 대한 반감을 과소평가하지 마.” 하연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손을 빼려 했지만, 남준은 계속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듣기로는 DS그룹의 성적이 꽤 좋은데, 최 사장님의 정신이 이런 사소한 일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다니. 가족들은 확실히 너를 너무도 잘 보호했나 보군.” 하연은 그가 비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비웃지 마.” 그녀는 대답하면서 손을 뺐다. “그러니까 왜 날 찾아왔어?”남준은 물었다.“그냥 길 지나가다가 목말라서 물 한 잔 마시러 들렀어.” 하연은 억지로 핑계를 댔지만, 남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웃으며 면봉을 던지고 화장실로 손을 씻으러 갔다.하연의 시선은 남준의 비서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