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은 잔뜩 격앙된 표정으로 말했지만, 상대인 하연은 그저 가볍게 웃으며 반문했다. “내가 FL그룹의 대표와 친해져 연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 간단한 한마디로 서영의 입을 막아 버렸다. “세계 최고 부자 최씨 명문가 아가씨이자 DS그룹의 현 회장이니...” 서영의 옆에 있던 한 친구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하긴 저런 신분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오를 수도 없으니까!’ ‘만약 든든한 연줄을 갖고 싶다면, 오히려 최 대표와 친해져야지!’ 가영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보기 흉해졌다. 하연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보기에 정말 좋은 연줄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네? 다만, 그렇지 못할까 봐 걱정이야!’ 서영이 이번엔 완전히 화가 나 폭발했다. “최하연, 오빠한테 버림받은 여자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여기서 내게 이러쿵저러쿵이야? 걱정이고 뭐고 내가 손수 그 입을 찢어주마!” 서영이 화를 내며 흥분하는 것을 보고도 하연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 하연의 눈에 서영은 마치 펄쩍펄쩍 뛰는 어릿광대와 같았다. “서영아, 그만 입 다물어!” 서준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서영에게 호통쳤다. 서영은 서준이 여전히 하연을 두둔할 줄은 생각지 못했고, 순간 마음속이 극도로 불편해졌다. “오빠!” 서준이 눈빛이 서영을 향하자 그녀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서준은 다시 시선을 돌려 하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보는 하연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서준이 막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홀의 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지?”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고 떠들썩하던 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FL그룹의 오픈 파티에 참석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무대 위에 사회자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궁금함과 함께 모든 시선이 무대 쪽으로 향했다. “오늘 FL그룹이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B시에서 그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서영의 말속에 약간 하연을 약 올리는 듯한 어조가 담겨있었고, 서영은 그렇게 허풍을 떨면서 계속 마음이 찔렸다. 하연은 사회자의 입에서 부상혁이라는 세 글자가 나오는 것을 듣고는 별로 크게 놀라지 않았고, 순간 조진숙이 전화한 일이 떠올랐다. ‘그래 이모가 전화한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어!’ 하연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이해했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술잔을 들고 잔 속의 술을 단숨에 마셨다. 지금 현장에서는 모두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훤칠한 그림자가 무대 위 빛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왔는데 걸음걸이는 매우 절도 있었다. 그가 무대로 걸어올 때 불빛이 그의 몸을 온전히 비추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의 얼굴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보라색 정장을 입고 늘씬한 몸매를 드러낸 뚜렷한 이목구비의 한 남자가 남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서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에 절로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어머, 저 남자 몸매 봐! 거기다 얼굴도 잘 생긴 거야?” “완전 내 이상형인데!” “외모도 저렇게 멋있는데 능력도 좋다니, 하늘이 다 줬네, 다 줬어!” “...” 상혁은 무대 아래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아무 표정 없이 조용히 눈으로 사람들 사이를 살폈고, 결국 하연을 발견했다. 두 눈이 마주친 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많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서영아, 저봐, 부 대표가 너를 보고었어!” 서영은 이 말을 듣고 의아해하며 자신도 모르게 부상혁을 바라보았지만, 상대방은 이미 시선을 거두었다. 서영은 화를 내며 말했다. “제발, 너희들 적당히 좀 해. 난 괜히 여기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지 않으니까.” “알았어! 치, 소심하기는!” 서영은 멋쩍게 웃었다. 지금 그녀는 이미 여기에 있을 마음이 없어졌고 자신이 한 말이 들통나지 않게 기회를 찾아 몰래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FL그룹의 오픈 파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부상혁이라고 합니다.”
하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진짜 놀라고 기쁘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모두가 어리둥절해했다, 사람들은 상혁이 하연을 좋아한다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는데, 그의 눈빛이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의 호기심이 동시에 발동했다. 더욱이 지금 두 사람은 같은 색상의 옷까지 입고 있었다. “설마 진짜 커플은 아니겠죠?”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한마디 했는지 소문의 불씨가 일순간 타올랐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서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두 사람을 향한 그의 눈빛에서 마치 불을 뿜을 것만 같았다. “부 대표님, 전부터 서로 아시던 사이인가요?” 서영의 친구가 무심결에 물었다. 상혁은 하연을 보고 말했다. “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예요.” 이 말이 나오자 주위 사람들이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다는 거지?” “그럼 두 사람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는 거 아니야?” “그래 어쩐지, 최 대표는 세계 최고 부자인 최씨 명문가 아가씨인데, 함께 자란 남자의 능력이 떨어질 리 없지! 지금 FL그룹이 B시에서 강하게 부상한 것도 당연해!” 옆에서 서영이 이 말을 듣자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녀는 방금까지 하연 앞에서 자신과 상혁의 관계가 얼마나 좋은지 큰소리쳤었는데 뜻밖에도 하연이 상혁과 저렇게 가까운 사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서영은 도망치거나 땅 속에라도 기어들어가 숨고 싶을 뿐이다. “하연아, 함께 만날 사람이 있어!” 상혁은 하연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하연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망설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만약 오빠와 내가 손을 잡는다면, 나중에 밖에서 어떤 헛소문이 어떻게 퍼질지 몰라! 난 상관없지만 오빠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 하연이 망설이는 사이에 상혁은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 순간 손바닥에 전해지는 따스함을 느끼고 어리둥절했다. ‘두 사
두 사람이 걸어가 복도 끝에 다다르자 상혁이 말했다. “들어가자. 네가 궁금해하던 답이 이 안에 있어.” 상혁이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 제가 하연이를 데려왔어요!” 하연은 어리둥절한 채 열린 문 뒤로 시선을 향해 보니 최동신이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깜짝 놀란 하연이 바로 달려가 최동신의 품에 안겼다. “할아버지, 왜 B시에 오셨으면서 저한테 말도 안 하셨어요?” “내가 너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 네 할아버지께 그러자고 했어.” 옆에서 조진숙의 목소리가 들리자 하연은 또다시 놀랐다. “이모! 이모도 오셨어요?” 조진숙은 하연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내가 안 올 수 있겠어? 이사회에서 네가 호언장담 했다며? 우리 다 들었어!” 하연은 순간 당황했다. “네가 호 이사와 내기를 한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 거야?” 하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뭐, 열심히 일해서 목표를 달성해야죠!” “좋아! 포기한 건 아니구나? 오히려 꽤 자신 있는 눈치인데? 그럼 됐어! 이렇게 보니 네가 내 젊은 시절의 모습과 좀 닮았어!” 최동신이 바로 하연을 칭찬했다. “그래, 마침 상혁이도 B시에 있으니, 너희 둘이 서로 잘 살펴주면 되겠구나. 사업적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상혁이와 잘 상의해.” 조진숙이 말했다. 하연은 상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상혁 오빠는 앞으로 DL그룹 도련님 신분을 버리고 B시에 와서 FL그룹을 경영하는 거야?”조진숙이 설명했다. “FL그룹은 우리 두 집안이 공동 출자하여 설립한 거고 잠시 상혁이게 경영을 맡긴 거야.” ‘어쩐지.’ 하연은 이전에 FL그룹이라는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두 집안과 연관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럼 앞으로 상혁 오빠가 있으니 제가 B시에서 도움 좀 받을 수 있겠는데요!” 하연이 밝게 웃으며 말하자, 상혁은 그녀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하연이 상혁의 팔
“오빠!” 서준이 두 걸음도 채 가지 않았는데, 서영이 도중에 그의 앞을 막았다. 서준의 표정이 차가워지며 짜증을 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서영은 허풍을 떨다 몇몇 친구들에게 온갖 조롱을 당해서 재빨리 서준을 찾아와 떨어진 체면을 회복하려고 했다. 그녀는 서준만이 자신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모두가 B시에서 한씨 가문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빠, FL그룹의 부 대표님과 친해?” 서영이 상현에 대해 언급하자 서준의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난 친하지 않은데, 누군 친한 거 같은데?” 서영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서준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연과 상혁이 보였다. 질투의 불길이 순식간에 솟구쳐 올라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최하연, 저 천한 계집, 우리 한씨 가문을 떠난 지 며칠 만에 FL그룹과 함께 하다니 너무 뻔뻔스러워!” “특히 저 부 대표님처럼 출중한 남자가 하연이와 어울리기나 해?”서준은 서영의 질투심을 느꼈는데, 그도 같은 생각이라 그녀의 기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너, 부 대표를 좋아해?” 서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오빠는 하연이가 저렇게 괜찮은 남자랑 어울린다고 생각해?” 서영은 그저 마음이 답답했다. ‘최하연 저 년은 왜 이렇게 운이 좋은 거야? 어떻게 저렇게 훌륭한 남자들이 모두 저 년 주위를 맴도냐고.’ “오빠, 오빠가 나 좀 도와줘.” 서준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바로 거절했다. “안돼!” 서영은 약간 서운했다. “오빠, 아직 하연이에게 마음이 있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감싸주는 거나고?” “네가 상관할 게 아니야!” “오빠!” 서영은 화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오빠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부상혁, 저 남자는 내가 반드시 차지할 거야!” 서영은 말을 돌리지 않고 아주 직설적으로 했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온 친구들이 자신의 진면목을 몰라본다고 여기고 직접 면전에서 본 떼를 보여줘 친구들을
상혁은 하연의 말을 듣는 순간 눈빛이 조금씩 차가워졌고, 그의 손에 든 와인 잔이 떨리면서 그 안의 붉은 와인이 넘실거렸다. 그는 하연이 예전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일을 줄곧 마음에 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부 대표님.” 서영은 상혁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못 느꼈는지 먼저 오른손을 내밀었다. 한참이 지났지만 상혁은 그녀와 악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서영은 조금 당황했고 어색하게 자신의 손을 다시 거두었다. “부 대표님께서 젊고 유능하셔서 이렇게 이른 시기에 FL그룹의 회장이 되셨군요. 오늘 이렇게 부 대표님을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앞으로 저희 HT그룹이 FL그룹과 협력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상혁이 대꾸했지만 얼굴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협력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혁의 이 말은 서영의 체면을 단숨에 구겼다. 주변 사람들은 상혁이 서영을 처음 봤다고 해도 한씨 가문을 이렇게 대할 줄은 몰랐다. 상혁의 반응으로 다들 긴장하여 자신들도 모르게 손에 땀이 흘렀다. 서영도 순간 당황했고 웃음기 있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지더니 서서히 표정이 풀렸다. 서영은 B시에서 남에게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부 대표님,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희 HT그룹과 협력할 생각이 없으시다는 건가요? 저희 한씨 가문이 이 B시에서 어떤 위치인지는 알고 계시죠? 이곳에서 한씨 가문의 미움을 서면 대표님에게 조금도 좋을 게 없어요. 아님 혹시...” 서영은 옆 쪽의 하연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혹시 하연이를 위해 한씨 가문과 척을 져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서영 씨, 어떻게 일할지는 제가 결정할 문제이니, 서영 씨가 간섭할 권리는 없어요.” 서영은 상혁이 이렇게 하연을 보호할 줄은 몰랐고, 눈빛 가득 질투심이 타올랐다. ‘최하연, 대체 저 년이 뭐가 있어서? 우리에게 쫓겨난 이혼녀 주제에 부 대표의 총애를 받는 거지?’ ‘부상혁,
상혁은 말을 마치고 서영을 놓아주었다. 분한 서영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있는 모습이다. “최하연, 까불지 마! 언젠가는 내가 너를 반드시 B시에서 쫓아내서 네 신세 망치는 것을 지켜볼 테니까.” 하연은 그 말을 듣고 그저 웃기만 했고, 눈을 돌려 멀지 않은 속에 있는 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대표님, 서영이가 술을 많이 마셔서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으니 집에다 좀 데려다주세요.” 서준이 어둡고 인상 쓴 얼굴을 하고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오더니 서영의 팔을 잡아당겼다. “따라 나와!” “오빠! 내가 하연이를 혼내주고 있는데 왜 그래?” “얼마나 더 창피를 당하려고 그래?” 서준이 말하자 서영은 그제야 주위 사람들의 여러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는 좀 난처한 듯, 방금 자신이 한 일을 생각하더니 얼굴이 갑자기 붉게 상기되었다. 결국 서준에게 억지로 끌려가 연회홀을 떠났다. 서영이 떠난 후, 상혁은 하연을 신경 쓰며 물었다. “어때? 괜찮아?” 하연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난 괜찮아요!” “저 여자가 너를 그렇게 괴롭혔어? 지난 3년 동안 넌 도대체 저 집에서 어떤 생활을 했던 거야?” 상혁의 말에는 하연을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방금 한서영, 저 여자의 행동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어.’ ‘대체 전에 하연은 저런 여자와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고요.” 상혁은 하연을 꼭 껴안았다. “앞으로 한서영, 저 여자가 다시 너를 건드리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하연은 상혁의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고마워요. 상혁 오빠!”상혁은 한숨을 내쉬며 분노했던 눈빛을 가라앉혔고, 빠르게 기분이 바뀌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안 좋은 분위기도 완전히 사라졌다. “천만에. 할아버지께 널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어.” 하연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참, 내일 오전에 신형 나노기술공정 투자에 관한 프로젝트 관련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임 비서님. 이따가 누가 절 데리러 올 거예요.” “그럼 문 앞까지 제가 배웅하겠습니다.” 하연이 거절할 틈을 주지 않고 임서희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하연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 하이힐 소리를 내며 입구로 향했다. 입구 앞에서 상혁은 몇몇 FL그룹 파트너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눈길을 슬쩍 돌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하연을 발견했다. “그럼 류 대표님, 신형 나노기술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내일 대표님 회사에 가서 자세히 논의하시죠.” “좋습니다, 부 대표님. 언제든지 기다리겠습니다.” 파트너를 떠나보낸 후, 상혁은 천천히 하연 앞으로 걸어갔다. 상혁은 하연의 어깨가 드러나있는 것을 보고 바로 자신의 외투를 벗었다. “밖이 추워!” 상혁은 말과 함께 자신의 외투를 하연의 어깨에 걸쳤다. 뒤에 있던 서희는 이 모습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상혁이 하연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약간 놀라워했다. ‘역시 예전에 대표님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야.’ “내 운전기사가 왔어요!” 하연은 익숙한 차량 번호를 보며 말했다. “상혁 오빠, 그럼 내일 봐요.” 상혁은 알겠다며 대답하고 하연을 차에 태운 후 손을 흔들었다. 운전기사가 차를 운전해 출발했고 하연을 태운 그 차가 사라지자 끝까지 보고 있던 상혁이 비로소 눈길을 돌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상혁이 보낸 운전기사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피스룩에 깔끔한 메이크업을 더해 세련미를 뽐내는 하연이 차에 타자 운전기사가 서류뭉치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최 대표님, 이걸 부 대표님께서 전해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연은 받아서 서류를 넘겨보니 모두 신형 나노기술 프로젝트에 대한 자료들이었다. 그녀의 눈에 자기도 모르게 희색이 돌았다. “고마워요. 부 대표님께서 정말 세세하게 배려해 주시네요.” 운전기사는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고 하연은 그 틈을 타서 손에 든 자료를 뒤적였다. 오늘 그들과 협업에 대해 논의할 회사는 외자 기업이자 B시
진수용은 이름이 불리자 몸이 떨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입을 열었지만, 평소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고 목소리는 떨렸다. “제 생각에는... 결국 이 회사도 부씨 가문의 사업 아닙니까? 부상혁 대표님이든 부남준 상무님이든, 누구든 이끌 자격이 있습니다.” “만약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부남준 상무님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진수용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마치 모든 게 조심스러워 보였다. 정지철은 진수용의 대답에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진 이사님도 입장을 밝히셨으니,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그는 시선을 옆에 있던 오랜 동료인 오국정 이사에게 돌렸다. 오국정은 이미 자신이 정지철의 편에 서 있었기에, 이제 와서 그 배에서 내릴 방법은 없었으니, 말없이 손을 들어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다. 두 명의 이사가 찬성 의견을 내었다. 정지철은 즉시 손을 들어 자신의 표까지 추가했다. “제도 여기에 한 표 합니다!” 이렇게 세 표가 확보되었다. 이제 한 표만 더 얻으면, 남준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 정지철의 얼굴에는 승리의 기쁨이 가득했다. 그는 흐름을 타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지 이사님, 장 이사님,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두 사람은 정지철이 미리 접촉한 인물들이었기에 그는 자신만만했기 때문에 기대에 찬 눈빛이 그들에게 쏟아졌다. 심지어 남준 또한 승리를 확신한 듯, 이미 얼굴에는 승리자의 여유로운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지 이사는 나이가 지긋한 이사로, 처음부터 태도가 한결같이 신중하고 겸손했다.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안경을 고쳐 쓰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DL그룹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를 이렇게 성급히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부상혁 대표님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순서 아닐까요?” 장 이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지 이사를 따랐다. “맞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일방적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설마 부상혁 대표님께서 무슨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셨다는 겁니까?” “부상혁 대표님은 수년간 회사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오셨습니다. 단 한 번도 실수를 저지르신 적이 없고, 연말 배당금도 매년 증가했습니다. 설마 밥그릇 들고 밥 먹다가 내려놓고 욕하는 그런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려는 건 아니시겠죠?” “어떤 일을 하시더라도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허위 사실을 날조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입니다.” “...” 이사회 멤버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정지철의 주장에 의문을 표했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고, 정지철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분노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만약 남준이 정지철의 팔을 잡아 말리지 않았다면, 정지철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했다. “흥!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면 제가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여러분, 직접 확인해 보시죠!” 정지철은 화를 참지 못하고 준비해 온 증거를 스크린에 띄웠다. 자료에는 하나하나 세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부상혁 대표님이 그동안 진행하신 사업을 살펴보면, 최근 몇 가지 사례에서 문제점이 적지 않습니다. 이중계약, 탈세, 심지어 공무원을 뒷돈으로 매수한 정황까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관련 부서의 승인을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주식 시장에서의 불법 거래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같이 법을 어긴 행위들입니다. 제가 경찰에 신고만 하면, 부상혁 대표님은 감옥 신세를 면치 못할 겁니다.” 정지철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은 다시 적막해졌다. 모두가 스크린을 응시하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크린의 내용을 확인한 이사들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 대표님, 뭐라고 설명 좀 해 보세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셨습니까?” “이제 우리 회사는 끝났군요. 완전히 끝입니다.” “다행히도 부동건 회장님께서 아직 전권을 넘기지 않으셨으니, 우리 회사에는
남준은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형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설마 제가 여기 나타나는 걸 바라지 않으신 건 아니겠죠?” “남준아, 오해는 하지 마.” 상혁은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서두르다 보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고. 그건 아주 기본적인 이치인 건 알고 있지? 이런 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네가 이미 잘 알 테지.” 상혁의 목소리에는 권력자의 위엄이 담겨 있었다. 주변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남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네. 그렇다면 제가 직접 이 기간 동안의 성과를 보고드리겠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회의실은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남준은 현재 본사에서 직무가 정지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자격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의 특별한 신분, 즉 부씨 가문의 차남이라는 타이틀이 있는 이상 누구도 쉽게 반박하지 못했으니, 그저 본능적으로 모두의 시선이 상혁에게 향했다. 상혁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그만큼 자신이 있다면, 기회를 주는 것도 좋겠지. 모두들 잘 듣고, 부남준 상무의 성과를 한번 확인해 보시죠.”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사들 역시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그럼 수고 좀 해주시죠, 상무님.” “상무님, 부탁드립니다.” 원신민이 손짓으로 자리 앞으로 안내했다. 남준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주석 자리 앞으로 나아가 이사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귀중한 기회를 주신 이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대형 스크린에 데이터 화면이 띄워졌다. 남준은 차분하고 조리 있게 설명을 이어갔고, 그의 발표 내용은 듣는 이들에게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사들 사이에서는 소곤 소곤거리는 칭찬이 터져 나왔다. “역시 상무님 이십니다. 이런 능력과 수완을 보니, 정말 대
“대표님, 부남준 상무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최상층 사무실에서, 원신민이 차분하게 보고했다. 부상혁은 고개를 들고 시선을 멀리 두었다. 그는 느긋하게 외투를 정리하며 평온한 얼굴로 앉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원신민은 말을 이어갔다. “상무님께서 동남아에서 상당히 많은 지지를 얻어내셨습니다. 현재 이사회에서도 분위기가 매우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회장님도 잇달아 칭찬을 아끼지 않고 계십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에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상혁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본 그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부드러운 기운이 스쳤다. [부 대표님?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만나고 싶어요!!]메시지에는 귀여운 이모티콘이 하나 붙어 있었다. 메시지의 주인은 분명 지금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상혁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갑자기 전화했어요?]그녀는 상혁의 전화해 의아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옆에 있던 원신민은 이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두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 조용히 옆에서 대기했다. 상혁은 미간을 풀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최 사장님께서 만나고 싶다니, 제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요.” 하연은 가볍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부 대표님, 자제력이 아직 부족한 것 같네요!]“그렇죠, 제가 최 사장님 앞에서는 특히 더 자제력이 부족해요.” 그의 목소리에는 다른 뜻이 담겨 있었다. 하연은 전화기 너머에서 얼굴이 붉어졌고, 서둘러 말을 돌렸다. [정 실장이 콘서트 티켓 두 장을 가져왔어요. 오늘 저녁에 우리 같이 보러 가요.] “그럼 내가 저녁에 데리러 갈게.” [좋아요.] 전화를 끊고, 상혁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었지만, 차가운 고요함이 가득했다. 곧, 그의 저음이 울려 퍼졌다. “가자. 이제
‘부씨 가문의 장손, 절대로 부상혁의 아이가 되어서는 안돼!!’ 이 말은 송혜선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녀 마음 깊숙이 뿌리를 내려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님, 이 일은 남준 씨의 의사를 따라야 할 것 같아요.” 다영은 입가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표정은 어딘가 씁쓸했고, 눈동자에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어른거렸다. 송혜선은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이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절차에 불과했고, 복잡한 문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걱정 말아. 남준이한테는 내가 직접 이야기할 테니까. 이런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우리 남준도 절대 흐릿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거야.” 송혜선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다영을 안심시켰다. 다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깊은 밤. 격렬한 사랑의 열기가 가라앉은 후, 다영은 온몸에 땀이 촉촉이 배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부남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련 하나 없이 자리에서 훌쩍 일어섰다.그 순간, 다영이 남준의 등 뒤에서 두 팔로 단단히 그를 끌어안았다. 남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손에 쥔 동작이 멈췄다. “갑자기 왜 이래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한결같이 차분했다. 다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등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더욱 힘껏 그를 끌어안았다. “조금만 더 있어주면 안 될까요?” 남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침 일찍, 중요한 일이 있어서 서둘러야 해요.” 다영은 그의 품에서 천천히 물러섰다. 침대 머리맡의 희미한 빛이 그녀의 눈동자 속 기대감을 비추고 있었다. “남준 씨, 우리 아이를 가져보는 게 어때요?” 남준의 표정은 여전히 깊고 변함없었다. 그는 다영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죠?” 다영은 그를 응시하며 눈망울을 반짝였다. “남준 씨
남준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정지철은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한걸음에 다가가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자, 그럼 우리 집으로 가세.” 동시에, 정씨 가문의 저택은 불빛으로 환히 밝아져 있었다. 정다영은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벌써부터 문밖으로 자꾸만 향하며,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주머니, 기사님께 전화 한 번 해 보세요. 왜 아직도 안 오시는 거죠?” 가정부인 왕순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께서 직접 모시러 가셨으니, 곧 도착하실 겁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다영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다. “분명히 남준 씨일 거야.” 문을 나서자 찬바람이 불어왔고, 다영은 몸을 살짝 떨었지만, 마음속 설렘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남준 씨!” 차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다영의 시선은 오직 한 곳만을 향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이는 기대했던 남준이 아니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녀는 놀란 듯 말했다. “어머님, 여기 웬일이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실망이 묻어났지만, 금세 태연한 척하며 표정을 고쳐 잡았다. “왜? 내가 오면 안 되는 거니?” 차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송혜선이었다. 송혜선은 어두운 색의 패딩을 입고 있었지만, 부드럽게 불룩 나온 배는 그녀의 우아함과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다영은 서둘러 다가가 송혜선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다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실 줄 몰랐고, 미리 말씀도 없으셨잖아요.” 송혜선은 다영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남준이가 돌아온다길래 네 아버지가 연락을 줬거든. 그래서 겸사겸사 들러본 거야.” 다영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는 상황을 이해했다. 단순히 들르겠다는 말은 구실에 불과했고, 내일 있을 이사회를 염두에 둔 방문임이 분명했다.
“제가 요즘 입덧이 심해서 기름진 음식은 못 먹거든요.” 하연의 말에 부동건은 금방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구나. 그렇다면 다음에 혜선 이모에게 담백한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할게.” 부동건은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곁에 있던 비서는 부동건의 눈짓을 읽고, 즉시 보온 통을 조용히 치워갔다. “혜선 이모는 그런 일을 잘 아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혜선 이모에게 물어보렴.” 그 말이 떨어지자, 사무실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연은 상혁의 표정이 차갑게 변한 것을 느꼈다. 그의 주변에는 금세 폭풍이 몰아칠 듯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연은 상혁의 손을 살짝 잡으며 그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도 점점 사람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혜선 이모도 지금 임신 중이신데, 어떻게 그런 부탁을 드릴 수 있겠어요?” 부동건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냐, 넌 걱정하지 말거라.” 하연은 여전히 단호한 태도로 거절했다. “아니에요. 전 늘 진숙 이모가 해주신 음식을 먹어서, 다른 분이 만든 건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녀가 조용히 조진숙을 언급하자, 부동건은 잠시 당황한 듯 멈칫했다. 곧 코를 문지르며 멋쩍게 말했다. “그렇구나, 내가 생각이 짧았다. 진숙 이모는 어릴 때부터 널 봐왔으니 네 입맛을 가장 잘 알겠지.” 그는 말을 돌리며 덧붙였다. “그럼 앞으로 이런 건 진숙 이모에게 부탁하자꾸나.” 상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이런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들의 단호한 어조에 부동건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젊은 사람들 일은 내가 나설 일이 아니지. 다만 너희 둘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부동건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이제 너희가 가정을 이루고 일도 안정적으로 맡게 되어, 정말 기쁘구나.” 그는 마치 옛날을 떠올리는 듯
상혁은 하연을 단숨에 품 안으로 끌어당기며 밀착했다. “대범하다는 건 과장이야. 그저 한 번의 신세를 갚았을 뿐이야.” 하연은 그의 말에 질투가 더 짙어졌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톡톡 찌르며 따져 물었다. “어떤 일이길래 부 대표님이 그렇게 큰 손을 쓰셨나요?” 전진그룹의 프로젝트는 최소 몇억에 달하는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하연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니면, 부 대표님이 나한테 감추고 싶은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요?” 상혁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네 작은 머릿속엔 도대체 무슨 생각이 그렇게 가득하니?” 상혁의 큰 손은 자연스럽게 하연의 어깨로 내려왔다. 그는 몸을 숙이며 하연의 시선을 마주했다. 깊고 진지한 눈동자 속에 하연의 모습만 담겨 있었다. 상혁은 하연을 장난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알아? 하연아, 너 지금 엄청 귀엽다.” 하지만 하연은 여전히 진지했다. “부 대표님, 화제를 돌리지 말아요.” “응.”상혁은 가볍게 대답하며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 모임에서 들었던 말이 하연의 귀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주슬기에게 이익을 준 건, 단지 주슬기에게 빚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얽매임이 없다는 걸 뜻하지.” 잠시 말을 멈춘 후,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하연아. 오늘 너의 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었어.” 하연이 질투를 하고, 다른 여자를 신경 쓰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혁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하연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상혁의 손등을 꼬집으며 말했다. “부 대표님, 오해하지 말아요. 그냥 우리 아이 아빠가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으읏!” 하연의 말이 끝나
“마침 ZT그룹의 서류가 도착했네요. 최 사장님, 함께 올라가시죠.” 연지의 말에 하연은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였다. “DL그룹이 ZT그룹과도 협력하고 있나요?” 연지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원래는 없었죠.” 바로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연지는 공손하게 손짓하며 말했다. “먼저 타시죠.” 하연은 앞장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연지는 뒤따라 옆에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올해 사업 조정으로 ZT그룹과 협력할 기회가 조금 생겼습니다. 게다가 부 대표님께서 ZT그룹을 꽤 신경 써 주신 덕에, 자연스레 왕래가 잦아졌죠.” 하연은 시선을 고정한 채 연지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느꼈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호기심 섞인 말투로 물었다. “오, 그게 무슨 뜻이죠?” 연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연말은 늘 우리 회사에서 가장 바쁜 시기인데, 최근 부대표님께서 전진그룹의 프로젝트를 모두 ZT그룹에 넘기셨거든요. 덕분에 이번 연말은 꽤나 한가해졌어요. 전진그룹이라면 바로 무역협회 전영철 회장님 회사잖아요.”하연은 연지의 말 속에서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전진그룹은 F국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으로, 그 기반은 단단했고 산하 프로젝트도 방대했다. 그런 이익을 고스란히 주슬기에게 넘겼다니,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 하연의 마음속에 의혹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평정을 유지하며 연지를 흘깃 바라봤다. 연지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분명 의도가 있었다. 하연은 차갑게 눈을 좁히며 물었다. “그 말은, DL그룹이 그 프로젝트를 전부 ZT그룹에 넘겼다는 거네요?” 연지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런데 부 대표님께서 이 일을 말씀 안 하셨나 봐요?” 하연은 옅게 미소 지으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이렇게 말해 줬으니, 덕분에 알게 됐네요.” 연지는 속이 뜨끔하며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급히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