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의 시선이 회의실 안을 한 번 훑어보고 마지막으로 호현욱에게 향했고, 그녀가 입을 열어 물었다. “호 이사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어쨌든 최 사장님이 실적을 내서 그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30%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만약 1년 안에 사장님이 DS그룹 실적을 30% 이상 올릴 수 있다면, 대표 자리에 사장님이 앉더라도 여기 있는 모두 기쁘게 받아들일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임직원들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호현욱의 말을 들은 회의실 안 사람들은 모두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하는 눈치였다. ‘30%의 실적은 어떻게 해도 달성할 수 없어. 최하민 대표도 그런 실적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이건 완전히 텃세를 부리는 거네!’ “호 이사님, 이사님도 알다시피 DS그룹과 같은 세계적 그룹은 실적의 10%도 올리기 쉽지 않은데, 30%라는 터무니없는 조건이라니요? 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런 조건을 거시는 건가요?” 정기태가 참지 못하고 반발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나서서 말하지 못했다. 호현욱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허허, 이것이야말로 최 사장님의 능력을 증명하는 거 아닌가요? 만약 최 사장님이 이 목표를 달성할 수만 있다면, 저는 물론 다른 모든 이사들도 최 사장님이 대표를 맡는 것에 대해 아무런 반대가 없을 겁니다.” “호 이사님!” 정기태는 크게 분노했다. 하연은 오히려 그를 말리고 눈을 들어 차분히 호현욱을 바라보았다. “호 이사님, 그 말 진심이신가요?” 호현욱은 손을 펴서 내밀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최 사장님, 어떻게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호 이사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제가 그 도전을 안 받으면 말이 안 되죠. 다만...” 하연의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큰 회의실 안은 오히려 들끓기 시작했다. “최 사장이 정말 도전을 받아준다고? 30%의 실적 향상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거 아니야?” “3
“그럼 지금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막 회사에 합류했으니 조금이라도 실적을 내놓지 않는다면 그 늙은이들은 틀림없이 나를 따르려 하지 않을 거야.’ “호 이사님이 방금 그렇게 몰아붙인 것도, 사실 제가 대표 자리에 앉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만약 제가 이번에 물러서면 앞으로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또 괴롭힘을 당할지 모르니, 차라리 이참에 먼저 제 발언권을 장악하는 것이 나아요.” “하지만 지금 한 내기는 너무 위험합니다. 호 이사님은 대표님이 30%의 실적 향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이런 터무니없는 내기를 한 거예요.” 하연이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에요. 이미 벌어진 일이니 최선을 다해 한번 해봐야죠!” 정기태는 시종일관 하연을 지지했다. “대표님 걱정 마세요. 저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해요.” 이사회에서 일었던 일이 곧 DS그룹 전체에 퍼졌고 모두가 이 일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나운석도 이 소식을 듣고 사람들과 함께 깜짝 놀랐다. “정말이에요? 나의 여신님이 원래 이렇게 강경했나요?” “그렇지 않아요. 최 사장님은 원래 카리스마가 넘쳤어요. 그래서 이사회를 차지하고 있는 그 늙은이들도 말문이 막혔다고요.’ 나운석은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내 여신님! 정말 멋져요!” “다만... 30%의 실적 향상은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최 대표님이 위험한 내기를 한 거예요.” 나운석은 눈썹을 치켜들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 이걸 가리켜 남과 다른 혁신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연은 나운석이 하고 싶지만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했고, 그래서 나운석은 하연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거 어떡하지? 여신님에 대한 내 사랑이 더욱 깊어져 버렸어.”
DS그룹으로 돌아온 나운석은 제일 먼저 하연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여신님, 이제 여신님의 신분이 세상에 공개되었으니 우리 부모님의 뜻대로 결혼하는 것이 좋겠어요.” 하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재혼 생각이 없어요.” “그럼 여신님이 언제든 결혼하고 싶으면 내게 알려줘요. 난 언제든지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나운석의 말에 조금 골치가 아픈 하연이 마지못해 말했다. “운석 씨, 우리는 서로 어울리지 않아요. 이 말은 제가 이미 한 적이 있잖아요. 왜 이렇게 제게 집착하는 거예요?” “뭐가 안 어울린다는 거예요? 그렇게 일방적으로 빨리 결론짓지 마요.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거절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나운석이 조바심을 내며 말했다. “그럼 운석 씨는 저에 대해 잘 알아요?” 하연이 되묻자 순간 나운석은 당황해 아무 대답도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함께 지내면서 천천히 알아가도 늦지 않잖아요. 아직 시간은 많다고요.” 당황했던 나운석이 무슨 결심을 한 듯 다시 말했다. “제가 여신님에 대해 잘 몰라서 거절하는 거라면, 그럼 제가 지금부터 여신님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 볼게요.” 하연은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째서 저 사람과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지?’ “그건 아니에요. 결혼은 감정적인 토대가 있어서 서로 사랑하는 결혼이 가장 단단하다고요.” “좋아요, 그럼 반드시 여신님이 저를 사랑하게 될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나운석이 단호히 말했다. 표정에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진지함이 가득했다.하연이 다시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나운석이 오히려 한 발 앞서 말했다. “전 이미 마음을 정했어요. 안심해요! 제가 여신님을 좋아해도 절대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여신님이 저 때문에 아무런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할 거예요. 그래야 우리가 앞으로 더 오래갈 테니까요.” 나운석은 말을 마치고 얼굴에 큰 웃음을 띠며 하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신님
“지금 전화해 보겠습니다.” 비서가 휴대폰을 꺼내자 호현욱이 제지했다. “됐어. 좀 더 기다리자고.” 거의 한 시간쯤 지나서 서준과 비서인 구동후가 천천히 들어왔다. “한 대표님! 전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호현욱은 아첨하는 웃음을 지으며 적극적으로 맞이했다. 서준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조금의 감정도 드러나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호 이사님, 오래 기다리셨겠습니다.” “괜찮아요,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근데 임 대표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으니 얘기나 좀 나누면서 기다리죠.” 말하면서 호현욱은 직접 서준에게 의자를 빼주었다. “한 대표님, 앉으세요!” 서준은 긴 다리 꼬고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한 대표님, 오늘 이렇게 약속에 나와주셔서 저 호현욱에게 큰 영광입니다.” “호 이사님! 의논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셨는데, 용건을 바로 말하시지요.” 옆에서 구동후가 직접 말했다. 호현욱은 멋쩍은 듯 웃었다. “한 대표님은 정말 혜안이 있으시군요. 오늘 제가 대표님을 뵙자고 한 것은 확실히 부탁할 일이 하나 있어서입니다.” 서준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음, 호 이사님은 DS그룹의 이사이시니, 이치대로라면 HT그룹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신데, 말씀하실 부탁이란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군요.” 호현욱는 숨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맞습니다. 대표님도 알시다시피 저희 DS그룹의 새로 부임한 대표가 최하연, 바로 대표님의 전 아내입니다.” 하연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서준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손가락으로 리듬감 있게 탁자를 두드렸다. 그는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 보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호현욱의 의도를 대충 짐작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호현욱의 말을 들었다. “최 대표가 정말 대단하게도 부임하자마자 그룹의 실적을 30% 올리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저는 그녀가 젊은 나이에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의 쓴 맛을 보여줘 기억에 오래 남겨주고 싶습니다.” “그래서요?” 서준은 눈을
하연의 입가에 헛웃음이 일었다. “보아하니 호 이사님은 그다지 저를 환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연은 말을 이렇게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룸 안으로 들어섰다. 하연에게 현장을 들킬 줄을 예상 못한 호현욱은 갑자기 약점을 잡힌 듯 어색한 모습을 했다. 하지만 호현욱도 나이를 그냥 먹은 것은 아니었는지, 잠시 후 평소와 같은 상태로 회복되었다. “최 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 신 건가요? 제가 어떻게 대표님을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과 함께 호현욱은 일어나 하연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하연은 기세 좋게 앉았고, 눈을 드는 순간 한 쌍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잠시 서로의 눈빛이 교차되는 동안 보이지 않는 불꽃이 한데 뒤엉켰다. “공교롭게도 한 대표도 있었네!” 하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가 두 분을 방해했나 봅니다.” “방해랄 것 까지야. 공교롭게 최 대표 얘기가 나온 거뿐이야. 전에 HT그룹에서 일했었는데, 그 뒤로 DS그룹의 대표 자리에 올랐다고? 호 이사님이 지금 나에게 최 대표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칭찬하고 있었어. 이사회에서 1년 안에 30% 실적 향상을 하겠다고 했다지? 최 대표, 맞아? ” “저도 그냥 한 말이니, 대표님께서도 개의치 마시기 바랍니다.” 호 이사는 서준과 하연의 사이가 물과 불 같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마치 보물을 잘못 건드린 것처럼 실수한 것 같았다. 방금 하연은 서준과 호현욱의 대화를 입구에서 똑똑히 들었는데, 호현욱은 책장 넘기는 것보다 더 빨리 표정을 바꾸며 시치미를 뗐다. 하연은 호현욱의 속셈을 알고 있었지만, 서준과 약속을 했을 줄은 몰랐다. ‘서준 씨가 호 이사와 손을 잡고 나를 상대하려고 하는 걸까?’ 하연은 생각이 많았지만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응, 그런 일이 있었어. 거기다 난 호 이사님과 내기도 했지.”화제를 돌리며 하연의 시선이 호현욱에게 향했다. “호 이사님, 기왕 저희의 내기가 이렇게 밖으로 드러난 이상, 이
하연은 빙그레 웃으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어쨌든 오늘 일은 제가 신세를 진 것이니 나중에 제가 임 대표님을 도울 만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성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마디 타일렀다.“호현욱은 생각보다 교활한 사람이에요. 그동안 업계에서 일하면서 많은 인맥과 계략을 쌓아온 사람이라 상대하기 쉽진 않을 거예요. 최 사장님께서 앞으로 좀 더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네, 앞으로 더 조심할게요.”성재는 하연의 옆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귓가의 잔머리를 발견한 성재는 손을 내밀어 잔머리를 뒤로 넘겨주려고 했다.“임 대표님!”서준의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성재의 동작을 멈추게 만들었다. 성재는 싱긋 웃으며 앞으로 내밀던 손을 거두고 하연에게 말했다.“잔머리가 불편해 보여서요.”“네?”하연은 그제야 눈치챘다. 서준은 긴 다리를 내디디며 성큼성큼 걸어가 하연의 옆에 서서 성재의 시선을 막았다.“임 대표님께서 곧 약혼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제가 미리 이 자리에서 약혼을 축하드리도록 하죠.”약혼은 성재의 가족들이 정한 것인데 성재는 줄곧 동의한 적도 외계에 입장을 밝힌 적도 없었다. 그런데 서준이가 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니.“아직 제대로 결정 난 일은 아니니 축하를 받긴 너무 이른 것 같네요.”성재는 말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하연을 힐끗 보더니 계속 말했다.“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한 대표님을 제 결혼식에 초대하도록 하죠.”서준은 그의 말 뜻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재가 하연을 좋아한다는 것을.서준은 순식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누군가가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연은 줄곧 서준을 무시하였다. 그가 하연을 따라 나왔는데도 그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최 사장님, 제가 댁까지 모셔다드리죠.”성재는 화가 잔뜩 난 서준의 눈빛을 무시한 채 몸을 돌려 하연에게 말했다.“괜찮아요, 저도 차를 가지고 왔어요.”“그럼 제가 주차장까지 바래다 드리죠.
이와 동시에 SG호텔의 룸에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호현욱은 화가 나다 못해 룸에 있는 모든 물건을 깡그리 깨뜨렸다.“최하연, 네년이 감히 내 앞에서 잘난 척을 해?”호현욱이 앞에 있는 의자를 세게 걷어차자 의자는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호현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디.‘이 일은 절대 그냥은 못 넘어가! 내가 이쯤에서 그만둔다면 앞으로 평생 최하연 그년한테 지게 될 거야.’호현욱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최하연 그년을 DS 그룹에서 내쫓아!”호현욱이 전화를 끊고 떠나려고 할 때 누군가가 룸의 문을 두드려왔다.“누구시죠?”호현욱이 경계심을 가지며 묻자 상대는 밖에서 문을 열었다.“호현욱 씨, 저희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호현욱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쪽 회장님이 누구죠?”“민진현 회장님입니다.”이 이름은 별로 낯선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민진현과 전혀 모르는 사이다.“민 회장님께서 무슨 일로 절 찾으신 거죠?”“가보시면 아실 겁니다.”호현욱은 잠시 고민하더니 상대를 따라가보기로 했다....밤 11시.SOLO 스탠드바 안은 매우 떠들썩했다. 귀를 찌르는 듯한 음악 소리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시켰다.서준은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구석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술잔을 들고 계속해서 술을 마시기만 했다.“왜 그래?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안태현은 다가와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서준은 시종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태현은 서준의 이런 모습을 보자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혹시 전처와 관계있는 일이야?”이 말을 들은 서준은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역시 그 여자 때문일 줄 알았어!”“그 여자 얘기하지 마.”이건 오늘 밤 서준이가 꺼낸 첫 마디다. 태현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계속 물었다.“설마 전처 때문에 이렇게 술을 마시는 거야?”“꺼져!”서준은 화를 내며 말했다. 이에 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은 태현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익숙한 실루엣을 보게 되었다. 붉은색의 치마를 입은 여자는 바로 최하연이다.‘최하연은 임성준이랑 함께 갔었잖아. 그런데 왜 여기 있어?’하연의 춤사위는 아주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등장하자마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스탠드바에서 가장 주목을 받게 되었다.하연의 웃는 얼굴은 자신감이 넘쳤는데 그녀의 이런 모습은 서준을 설레게 만들었다.서준은 하연의 이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하연이가 이렇게 예쁘게 웃는 건 처음 보네.’서준은 마음이 복잡하여 단숨에 잔속에 남은 술을 다 마셨다. 그리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잔을 내려놓고 하연을 향해 걸어갔다.“대박! 하연아, 너 정말 너무 예뻐!”정예나는 하연을 향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역시 오늘 밤에 널 불렀어야 했어. 이 분위기를 타고 제대로 즐겨보자!”하연은 음악소리에 취해 기쁜 마음을 주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술잔을 들고 예나와 건배를 했다.“마셔!”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웃은 뒤 술잔을 비웠다. 그 술은 하연이가 매우 좋아하던 술이기에 하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원샷을 했다.“예나야,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하연은 컵을 내려놓고 화장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화장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서준을 보았다.하연은 방금까지 웃던 표정을 감춘 뒤 뒤돌아서서 도망치려고 했다.그녀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난 서준은 재빨리 하연을 불렀다.“최하연, 거기 멈춰!”하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차갑게 웃은 뒤 더 빨리 도망쳤다. 서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달려가 하연을 화장실 모퉁이에 막았다.“뭐 하는 거야! 이거 놔!”하연은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서준은 한사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두 시간 전 하연이가 자신을 오해한 것을 떠올리자 서준은 화가 치밀어올라 술기운을 빌어 입을 열었다.“최하연, 나와 호현욱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 내가 정말 그딴 놈과 손 잡을 리가 있겠어?”하연은 그의 말을 듣지
전용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천천히 열리자마자 주슬기가 눈에 들어왔다.“부 대표님.” 슬기는 공손하게 인사하며 미소를 띠고 다가갔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들러봤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운이 좋네요.”상혁은 코트를 들고 약간 무심한 태도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나요?”“원래는 없었는데요... 지금은 저녁 식사나 함께할까 해서요. 몇 가지 상의할 일이 있거든요.” 슬기는 재빠르게 대답하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상혁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다가 잠시 생각한 뒤, 뜻밖에도 승낙했다.“좋아요, 장소는 제가 정하죠.”슬기는 의아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네, 좋아요.”곧 원신민이 급하게 와서 상혁의 지시를 받았다. “오늘 당장 시내에서 가장 큰 식당에 방을 예약해.”그곳의 방은 최소한 3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기에, 원신민은 바쁘게 움직였다. 슬기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의할 게 큰일은 아닌데, 이렇게 정식으로 예약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상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업무 관련된 일이라면 허술하게 할 수 없죠.”상혁은 대수롭지 않게 밖으로 나갔고, 그가 탄 엘리베이터와는 다른 엘리베이터가 마침 내려오고 있었다.“부 대표님의 비서가 낯이 익어요. 어디서 본 적 있죠?” 슬기가 호기심을 보였다.이 업계에서, 특히 이사급의 비서라면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원신민은 과거에 이씨 가문의 장남을 도와주면서 정계와 조직폭력배 쪽 모두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방을 예약하는 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그 식당의 매니저가 직접 나와 원신민을 맞이했다. “원 비서님,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방을 예약하신다고요? 1층과 2층은 이미 만석이지만, 최상층에 있는 방은 아직 비어있습니다. 그곳을 부 대표님께 해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원신민은 상혁이 슬기와의 식사에 그렇게 화려한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손으로 테
이현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양국성도 조금 의외였다.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은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양국성은 이현의 제안에 맞장구를 치며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제가 한턱 낼게요.”사실 이현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고, 양국성도 ‘한명준’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게다가 이번에 오기 전, 정태산에게도 은밀히 말을 들은 터라, 양국성은 자신의 권한 내에서 최대한 ‘한명준’을 도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양국성도 이미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했으니 하연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차 안에서, 정태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분명히 가기 싫어하셨잖아요.” 하연이 대답했다. “한명준이 이 사업을 맡게 된 건 예측했지만, 남산을 선택할 줄은 몰랐어. 만약 내가 그때 남산 땅을 받아들였더라면, 이 사람이 어디를 선택했을지 궁금해.” 하연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이건 혹시 속내를 감추기 위한 선전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연이도 이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이현은 손을 뒤로 살짝 뻗어 그녀를 가볍게 받쳐주었다. “이모가 이번 사업을 저한테 맡기면서, 사업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거예요. 이제 저도 더 이상 가게만 운영하던 ‘손이현’이 아니에요.” 하연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다시 상기시킬 필요는 없어요.” 이현은 깊은 눈빛으로 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연 씨가 기억하는 손이현은 더 이상 없어요. 이제부터 돌아온 건 과거의 한명준만 있어요.” 그제야 하연이 그를 흘깃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과거의 한명준은 의기양양하고 당당한 청년이었죠. 지금 당신의 모습이 그 당당한 청년과 닮은 게 뭐가 있어요?” 그녀가 기분이 나쁘면 말이
하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원 비서한테 우유로 바꾸라고 했어용!” 상혁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하연은 능숙하게 일어섰다. “나도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야 해요. 커피는 더 이상 마시면 안 돼요. 저녁에 또 올게요.” 상혁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면 이미 퇴근했을 텐데.” “그럴 리가 있나요? 나 원 비서한테 물어봤는데... 당신은 요즘 새벽까지 매일 야근한다면서?” 하연이 문가에 서서 농담처럼 말했다. “부 대표님, 총책임자가 하는 일 정말 쉽지 않죠?” 상혁은 얼굴을 돌리며 미소를 숨겼다. “내일 당장 원신민 해고해야겠군.” ‘원 비서 감히 이렇게 빨리 날 배신했더니...’하연은 오늘도 신에너지와 관련된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B시에서 온 조사팀과의 회의였다. 제대로 된 홍보팀이 없는 상황이라, 하연은 CS그룹의 몇몇 직원을 빌려와 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저녁 만찬에서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장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낮잠은 잘 주무셨나요? 방은 만족하셨는지요?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제가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하연 웃으며 인사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양국성은 친근하게 하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최 사장님께서 세심하게 신경 써주신 덕분에 일이 아주 순조로웠어요. 그리고 정태산 지사님께서도 최 사장님께 안부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한 마지막 말은 하연에게 작게 속삭였다. 하연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기색이 스쳤고, 정태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사님께 제 안부 전해주시고, 부상혁 대표님께서도 잘 지낸다고 말씀드려주세요.” “부상혁 대표님이요?” 양국성이 놀라며 물었다. “아, 최 사장님께서 오해하신 것 같네요. 그날 제가 보고하러 갔을 때 한 검사장님도 계셨거든요. 그분이 최 사장님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한창명? 의외의 인물이었
하연은 말한 대로 다음 날 아침, 집에서 일하는 요리사에게 부탁해 위장에 좋은 닭죽을 끓였다. 요리사는 하연이가 이렇게 식단에 신경 쓰는 걸 처음 본 듯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이걸 회사에 가져가실 건가요?” 하연은 조금 머쓱해하며 말했다. “내가 먹는 게 아니에요.” 요리사는 놀란 듯 물었다. “아가씨, 남에게 주는 거면, 직접 요리해 보시는 게 어때요? 남자가 감동할 거예요.” 하연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알아요. 근데,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그녀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손에 들린 수프 냄비를 들고 바로 DL그룹으로 향했다.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하연은 원신민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게 해줘요.” 원신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 사장님, 부 대표님은 아직 회의 중이신데요.” “언제 끝나요?” “아마도 두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하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다 됐잖아요. 이렇게 직원들까지 압박하는 거 아니에요?” 원신민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회사 일이니까요.” 하연 한참을 생각하다가 손짓하며 말했다. “내가 너희 대표님은 밥을 먹게 할 방법이 있는데, 들어볼래요?” 원신민은 귀를 기울였다.5분 후, 비서가 회의실로 들어와서 말했다. “대표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혁은 불쾌해하며 말했다. “바로 말해.” “대표님 책상 위에 있는 백란화에 뱀이 말려들었습니다...” 회의실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몇몇이 외쳤다. “그런 건 부하 직원들이 처리하면 되지 않나? 굳이 부 대표님께서 나설 일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상혁의 안색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부동건은 난초를 매우 사랑했고, 그 백란화는 상혁이 부동건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다. 백란화를 돌보는 일은 상혁이 DL그룹을 물려받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져 오던 상혁은 잠시 쉬기로 결심하며
하연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바로 상혁의 귀에 속삭이듯 다가가며 말했다. “아직도 반응이 있네, 부 대표님은 아무나 거절하지 않는 건가요? 오늘 만약 다른 여자가 여기 앉아 있었다면...” 그녀의 농담과 향기가 귀를 간지럽히자, 상혁은 잠시 고개를 돌려 미묘하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다른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럼 나만?” 하연의 말에 상혁은 약간 무너지는 듯했지만 이내 그녀를 밀어내며 대꾸했다. “나의 의미는, 너도 아니야.” 하연의 얼굴에 순간 실망이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내밀며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상혁은 잠시 침묵하며 그가 느끼던 생리적 반응이 가라앉길 기다린 후 차분히 말했다. “내려.” “당신은 의사한테 가는데, 내가 왜 내려야 해요?” “다시 붕대 싸매.” 상혁은 이 말을 던지며 차에서 내렸다. 하연도 그제야 그 의미를 깨닫고는 피식 웃으며 따라나섰다.F국에 돌아온 후 상혁의 위장병이 계속 재발하고 있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식사가 병을 악화시켰고, 의사는 그의 상태를 보고 좋지 않은 얼굴을 했다. “부 대표님, 몸이 재산입니다.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망가집니다.” 하연은 밖에서 간호사가 다시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 그 말을 들었다. 상혁은 숨을 고르며 가볍게 대답했다. “제 몸 상태는 제가 잘 알아요. 약만 먹으면 돼요.”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잔소리를 했다. “위장은 쉬게 해야 하는데, 아플 때 약을 먹는 건 이미 늦은 겁니다. 평소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혹시 비서도 없으십니까?” 상혁도 많은 비서가 있긴 했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비서가 가져다준 음식은 몇 시간 동안 방치되곤 했다. 오늘도 병원에 온 것은 원신민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의사가 잔소리를 멈추자, 상혁은 미세하게 당황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사는 밖을 힐끗 보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밖에 계신 아가씨는 대표님의..
“이 정도의 약점을 부남준이 쉽게 너를 놓아줄 하연 없을 텐데?” “그건 제 추측일 뿐이에요!” 연지는 급히 상혁의 다리를 붙잡고 말했다. “그 재무 보고서에는 부남준과 다른 이사들, 특히 정규인과의 결탁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세부 사항이 있어요.” 상혁은 정규인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눈을 들었다. “어디에 있지?” “제 금고 안에 있어요.” “원신민.” 원신민이 재빨리 다가와 연지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같이 가서 가져오지.” “대표님...” 상혁은 허락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연지의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들며 라이터를 켰다. 불길이 일면서 머리카락이 재가 되어 날아갔고, 연지는 공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신민이 연지의 입을 재빨리 막아 그녀가 소리 지르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머리카락은 한 움큼만 탔을 뿐이었다. “알다시피, 황연지, 날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연지는 공포에 질린 눈물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하연은 다영과 헤어진 뒤 자신의 차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한 차량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한 발짝 물러섰다. 마치 상혁이 항상 타고 다니고 있는 차였다. 하연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차 문이 열리자 운전기사가 내려왔다. “부상혁 대표님께서 모시길 원하십니다.” 하연이 입술을 굳게 다문 채로 검게 칠해진 방탄유리를 바라보았는데,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 안은 향이 피워져 있었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듯한 상쾌한 향이었다. 남자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그의 잘생긴 얼굴이 희미한 조명 속에서도 돋보였다.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하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음 순간, 손목이 붙잡혔고, 그녀는 한순간에 상혁의 품에 안겨버렸다. 남자의 강한 향이 공기 중에 가득 퍼졌다. 그러자마자 차가 출발하면서 뒤로 밀리는 힘 때문에 하연은 더욱 상혁의 가슴에 밀착되었다. 상혁은 하연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눈을 떴다. “내 회사
하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다영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최씨 가문은 혼인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후손들이 영원히 번영할 수 있는 가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상혁도 역시 그런 혼인의 필요가 없었다. 부남준은 달랐다. 그는 차남이었고, 어머니 집안의 지원이 없었기에 혼인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영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최하연 씨, 만약에 남준 씨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거리를 두세요. 괜한 오해를 피하려면 말이에요.” ‘이미 오해는 깊어진 것 같아.’하연은 무력하게 생각했다. ‘내가 지금의 문제는 부남준이 나랑 거리를 두지 않으려 한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정다영 씨의 뜻은 이해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니, 조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미래는 정다영 씨가 스스로 잘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하연이 최대한 체면을 유지하며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부남준은 그렇게 겉보기만큼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순하지 않다면 오히려 더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여자들은 강한 남자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부남준의 성격을 마주할 때마다, 다영 역시 어느새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둘은 주차장의 동남쪽 모퉁이에서 발생한 작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목에는 끔찍할 정도로 붉게 번진 화상 자국이 있었다. 남자는 차 안 뒷좌석에 앉아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너를 시켜서 덫을 놓았냐?” “아무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황연지가 흐느끼며 대답했다. “저는 그저 대표님과 최 사장님의 소문을 들었고, 오랫동안 지시를 받지 못해 불만이 쌓였을 뿐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덫을 놓고 복수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를 듣고 상혁은 고개를 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하연의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서로의 체온이 맞닿았고, 한쪽은 차갑고, 다른 쪽은 뜨거웠다. 하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남자야, 네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어.” “그리기가 두려운 거야?” 남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그림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기 두려우면, 내가 대신 그려줄까?” “날 놔!” 하연은 힘을 주어 저항하다가 잉크병을 쳐서 넘어뜨렸고, 남준은 즉각 그녀를 보호하려 하며 둘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잉크는 그의 옷에 쏟아졌다. 하늘이 깜짝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상무님...” 그와 동시에, 문밖에서 낮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연은 본능적으로 돌아보았고, 그곳에 서 있는 정다영을 보았다. 정다영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남준 씨...” 남준은 다영을 보자마자 안색이 순간에 어두워졌다. “다영 씨는 여기 왜 왔어요?” 그는 마치 무언가 방해받은 것처럼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다영은 선물을 들고 있었다. “이거 몸에 좋다고 우리 어머니가 남준 씨도 드셔보라고 하셨어요.”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가 조심스레 선물을 내밀었다.사실 이 핑계는 다영이가 둘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지만, 자신이 들어왔을 때 다른 여자가 남준과 친밀한 화면을 목격한 것을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필요 없어요. 그냥 돌아가요. 이 비서, 정다영 씨를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려.” “저... 남준 씨...” 다영은 말끝을 흐리며 떠나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남준 씨, 이분은 누구세요?” 하연은 남준과 엮이기 싫어 얼른 그를 밀어내고는 빠르게 나와서 말했다. “정다영 씨, 우리 나중에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 하연이는 다영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지만, 다영은 움직이려 하지 않고 눈물을 글썽이며 남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준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도 이따가 회의가 있어요. 먼저 옷을 갈아입고 갈
부남준은 하연을 사무실로 끌어들인 뒤, 하연이가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왜 황연지를 해고한 거야?” 남준은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화상 입었잖아.” “내가 원하는 건 공평하고 공정한 처리야. 너의 독단적인 행동을 원한 게 아니라고.” “지금 상황에서 네 신분이 이미 밝혀졌는데, 그 사람들이 여전히 공평함을 믿을 것 같아?” 남준은 말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비서에게 약상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면봉을 꺼내 하연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해서 하연의 손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말이야, 최 사장님이 손을 다쳤다면, 황연지 한 명 해고하는 걸로 충분히 배상이 될 것 같아?” 하연 남준의 농담을 무시하며 말했다. “나도 일부러 황연지에게 부딪힌 게 아니야. 첫째로, 동기도 없었고, 둘째로, 내가 굳이 적을 죽이려다 내 몸도 해치는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누가 더 잘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하연이 당연히 연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총애받았을 것이다.“바로 그 동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네가 직원을 괴롭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야.” 남준은 하연의 손에 약을 발라주며, 신중하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의 부유층에 대한 반감을 과소평가하지 마.” 하연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손을 빼려 했지만, 남준은 계속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듣기로는 DS그룹의 성적이 꽤 좋은데, 최 사장님의 정신이 이런 사소한 일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다니. 가족들은 확실히 너를 너무도 잘 보호했나 보군.” 하연은 그가 비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비웃지 마.” 그녀는 대답하면서 손을 뺐다. “그러니까 왜 날 찾아왔어?”남준은 물었다.“그냥 길 지나가다가 목말라서 물 한 잔 마시러 들렀어.” 하연은 억지로 핑계를 댔지만, 남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웃으며 면봉을 던지고 화장실로 손을 씻으러 갔다.하연의 시선은 남준의 비서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