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유진우는 차를 타고 이씨 본가에 도착했다.성중 마을에 있는 본가는 면적이 크진 않았지만 작은 마당이 딸려 있었고 마당에 꽃과 풀이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유진우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문 앞에 서 있는 이청아를 발견했다. 원래는 못 본 척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들어가기도 전에 이청아가 먼저 그를 불렀다.“거기 서! 할 얘기 있어!”“무슨 얘기?”두 사람은 서로 등을 지고 앞만 바라보았다.“할아버지 요즘 몸이 안 좋으셔서 우리 이혼한 거 아직 얘기 안 했어. 혹시라도 충격받으실까 봐.”“이 일을 계속 숨길 수 있을 것 같아?”“명절이 지나면 기회 봐서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릴 거야.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그래, 알았어. 다른 일 더 있어?”“없어.”이청아는 말을 차갑게 내뱉고는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갔고 유진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하는 내내 두 사람은 남보다도 못한 사이 같아 보였다.유진우는 숨을 깊게 들이쉰 후 술을 들고 들어갔다.거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이씨 가문 직계 가족들이 거의 다 와 있었는데 전 장인어른 이적은 출장 때문에 오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외부인 양의성이 이적의 자리에 앉았다.“흥! 참 건방지기 짝이 없어. 이렇게나 많은 웃어른을 기다리게 하고 말이야!”장경화는 유진우를 보자마자 싸늘한 표정으로 바로 비꼬기 시작했다.“엄마, 그런 소리 하지 마. 쟤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어. 혹시라도 미쳐 날뛰면 엄마도 때릴지 몰라!”옆에 있던 이현이 아니꼬운 말투로 한마디 보탰다.어제 얻어맞은 후로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붕대는 이미 풀었지만 얼굴의 멍과 붓기는 아직 남아있었다.“됐어. 다 온 것 같으니 그만 식사하지.”이 어르신이 상황을 수습하고는 유진우에게 웃으며 말했다.“진우는 할아버지 옆에 와서 앉아. 이따가 술이나 한잔하자.”“네.”유진우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이 어르신을 부축하여 자리에 앉았다.“흥! 아부쟁이 같으니라고!”이현의 두
허름한 포장의 담금주 두 병이 모습을 드러냈다.“하하... 난 또 뭐라고. 고작 담금주 두 병이야?”이현이 하찮은 얼굴로 말했다.“이런 담금주는 비싸봤자 사오십만 정도밖에 안 해. 이것도 선물이라고 들고 온 거야? 의성 도련님이 가져온 로마네 꽁띠랑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맞아요! 담금주는 너무 체면이 서지 않아요. 아마 개도 안 마실걸요?”누군가가 맞장구를 쳤다. 사실 담금주도 나쁘진 않지만 로마네 꽁띠와 비교하면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흥! 이런 싸구려 술도 선물이라고 가져온 거야? 창피한 줄도 모르고!”장경화가 대놓고 비웃었다.“담금주가 왜 싸구려예요? 수입 술만 비싸고 좋다고 누가 그래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의성 도련님의 술은 한 병에 2천만 원이 넘는데 네가 가져온 담금주는 고작 40만 원이야. 그게 싸구려가 아니면 뭔데?”이현이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비싸다고 해서 꼭 좋은 술은 아니야. 자기 취향에 맞게 마셔야지. 그리고 내가 가져온 술이 왜 양의성의 것보다 싸다고 확신하는데?”유진우가 반박했다.“눈앞에 떡하니 보이는데 계속 변명만 늘어놓을 거야?”이현이 싸늘하게 웃었다.“흥! 싸구려를 가져왔으면 가만히 있기나 할 것이지, 입만 살아서는. 정말 역겨워 죽겠어!”장경화가 경멸의 표정을 드러냈다.“됐어요. 물건 볼 줄도 모르는 사람한테 내가 더 뭐라 하겠어요.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요.”유진우는 그들에게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저런 사람들과 입씨름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됐다! 술이 비싸든 싸든 뭐가 중요해. 입맛에만 맞으면 되지. 와인 같은 건 내 취향이 아니야. 난 그래도 담금주가 좋아.”이 어르신이 그중 한 병을 따서 자기 술잔에 따랐다.“이 술 왜 이리 누르께해? 원래는 흰색 아니야?”“누렇고 혼탁해. 설마 가짜 술 아니야?”“세상에나! 가짜 술을 선물한다고? 쟤는 대체 무슨 인간이야!”노란 액체를 본 순간 사람들이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유진우, 너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
“아빠, 지금 장난해? 이게 오래된 담금주라고?”이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그래, 여보! 누렇고 혼탁한데 가짜 술이 아니야?”장경화도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다들 몰라서 그래. 오래된 담금주는 다 이런 색이야. 그리고 오래될수록 그 색이 점점 진해져. 술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야.”이적의 설명에 뭇사람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가짜 술이라고 떠들어댔는데 바로 망신당하게 생겼다. 만약 다른 사람이 얘기했더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술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이적이 잘못 판단할 리가 없었다.“전에 임원들이랑 오래된 담금주를 마신 적이 있어서 똑똑히 기억해. 심지어 내가 전에 마셨던 것보다 훨씬 더 진하고 부드러워. 적어도 50년은 넘었을 거야.”이적은 아직 여운이 남았는지 입맛을 다셨다.“50년 넘은 술이라고? 그럼 값이 얼마야?”이현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이런 술은 가격을 매길 수 없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단 말이지. 하지만 몇 년 전 경매 가격에 따라 판단하면 아마 적어도 4억은 할 거야!”이적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4억?!”그 소리에 뭇사람들은 순간 넋이 나갔다. 4억짜리 담금주라니, 마셔보기는커녕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젠 2천만 원짜리 와인도 별거 아닌 술이 돼버렸다.“말... 말도 안 돼!”장경화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여보, 당신이 뭐 잘못 안 거 아니야? 이 술은 유진우가 가져온 거라고. 쟤가 무슨 재주로 오래된 담금주를 구했겠어?”“그러니까 말이야. 4억짜리 술이라니! 쟤를 팔아서라도 못 사!”이현의 말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그래, 별 볼 것 없는 유진우가 저렇게 비싼 술을 어디서 구해?’“진우야, 이 술 어디서 샀어?”이적이 떠보듯 물었다.“친구가 줬어요.”유진우가 솔직하게 대답했다.“줬다고? 공짜로?”그러자 장경화가 코웃음을 쳤다.“너 같은 애한테 재벌 친구가 있다고? 일단 있다고 쳐. 왜 아무 이유 없이 너한테 이런 비싼
양의성이 갑자기 식탁을 탁 치며 목청을 높였다.“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께 좋은 소식 하나 전해드리겠습니다. 저희 양씨 의약이 요즘 주식을 발행하여 증자하려고 하는데 참여할 의향이 있는 분 계신가요?”“증자요?”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양씨 의약은 꽤 우수한 기업이고 강능의 의학계에서도 손꼽히는 존재다. 전에는 주식 한 주도 사기 어려웠는데 갑자기 주식을 발행한다고 하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의성 님, 주식은 왜 갑자기 발행하는 건데요? 설마 자금이 부족한가요?”이청아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당연히 아니죠. 이 결정을 내린 건 곧 상장하기 때문이에요.”양의성이 웃으며 설명했다.“여러분도 저희 양씨 의약의 내막과 실력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번에 주식을 발행하는 건 회사에 오래 있은 직원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기 위해서예요. 인원수 제한이 있어서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않았거든요. 관심 있는 분이 계시면 제가 몇 명 정도는 참여하게 할 수 있어요.”그의 말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씨 의약의 하루 매출이 엄청나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만약 주식을 갖고 있다면 매년 분배받는 이익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저절로 굴러 들어온 호박을 차버릴 리가 있겠는가.“의성 도련님! 저요! 제가 10억 투자하겠습니다!”“난 16억!”장경화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알겠어요. 일단 두 사람은 참여하는 걸로 할게요.”양의성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의성 도련님, 편애하기 있어요? 저도 살래요, 6억!”“저도요, 저도요... 전 10억요! 저의 전 재산이에요!”많은 이들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세라 앞다투어 빼앗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군중 심리이다. 누군가가 앞장서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여든다.“청아 씨는요? 얼마 살 거예요?”양의성의 시선이 이청아에게 향했다.“청아 씨도 주식을 산다면 기존의 배당금보다 조금 더 나눠줄 수 있어요.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그게...”이청아
“너 방금 뭐라고 했어?”미소를 머금고 있던 양의성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고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들었다.“곧 부도나는 회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유진우가 다시 한번 말했다.“부도?”뭇사람들은 넋이 나간 채로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헛소리 지껄이지 마!”화들짝 놀란 양의성이 연신 부정했다.“우리 양씨 의약의 하루 매출이 얼마인지 알기나 알고 이러는 거야? 한창 잘 나가는 기업이 부도나기는 왜 부도나? 그런 허튼소리로 괜히 다른 사람 놀라게 하지 마!”“허튼소리인지 아닌지는 네가 제일 잘 알겠지. 아무튼 난 양씨 의약이 가짜 약을 판 바람에 전격 압수수색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어. 인제 망하는 건 시간 문제야.”유진우가 조곤조곤 말했다.“가짜 약을 팔아? 압수수색?”그 순간 사람들은 멍한 얼굴로 일제히 양의성에게 시선을 돌렸다.“헛소리야, 헛소리라고! 유진우,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우리 양씨 의약이 얼마나 법을 잘 지키는데 압수수색이라니! 명예 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있어!”양의성이 강하게 밀어붙였다. 겉으로는 아닌 척 전혀 밀리지 않았지만 마음은 큰 물결이 치듯 하염없이 흔들렸다.양씨 의약이 압수수색에 들어간 것도 사실이었고 곧 부도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여 상장한다는 구실로 투자를 끌어들여 돈을 모은 후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압수수색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물샐틈없이 막아놓았는데 유진우는 어떻게 안 것일까?“유진우, 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양씨 가문의 사업 규모가 얼마나 큰데 망한다는 게 말이 돼?”장경화가 호통쳤다.“그래! 양씨 의약의 자산이 탄탄하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유언비어를 그만 퍼뜨려!”이현도 따라서 한마디 보탰다.누구 하나 유진우의 말을 믿는 이가 없었다. 어쨌거나 양씨 가문이 강능에서 뿌리가 깊고 칭송이 자자하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니 말이다.“방금 내가 한 말 다 사실이야. 이번에 주식을 발행하여 증자한다는 건 사
그 순간 사람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겨우 얻은 대박의 기회를 이대로 놓쳐서는 안 되었다.“의성아, 저 자식이 지금 너한테 샘이 나서 그러는 거니까 그냥 내버려 둬. 우린 아니야, 우린 널 믿어.”장경화가 재빨리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네네, 투자하는 거 절대 없던 일로 해서는 안 돼요. 아까 우리한테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양의성에게 아첨하던 그들의 시선이 유진우에게 닿는 순간 하나같이 사납게 변했다.“유진우! 경고하는데 우리 앞길 막지 마! 안 그러면 절대 가만 안 둬!”“그래! 계속 헛소리를 지껄일 거면 당장 꺼져!”뭇사람들이 너도나도 유진우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다들 유진우가 양의성을 일부러 모함하고 그들이 돈 벌 기회를 막는다고 생각했다. 정말 사람의 속내를 헤아리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다들 양의성을 이렇게 믿어요? 저 사람의 얘기가 전부 거짓말이면 어떡하려고?”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리고 되물었다.“너랑 무슨 상관인데? 우리 마음대로 할 거야!”이현이 두 눈을 부릅떴다.“그래! 사기당한다 해도 그건 우리 선택이지, 너랑 아무 상관 없잖아! 정말 오지랖도 넓어!”장경화가 불쾌한 기색을 고스란히 내비쳤다.그녀의 말에 유진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자신을 비웃는 것 같으면서도 그들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다들 돈 잃고 싶어서 안달이니 내 말은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요.”유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좋은 마음으로 귀띔해줬지만 믿질 않으니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돈에 눈이 먼 사람은 구제할 방법이 없다. 아무리 설득해도 자꾸만 스스로 구렁텅이에 빠지려 한다. 심지어 이들이 사기당한 후 어떤 표정일지 기대까지 되었다.“그 입 닥쳐! 재수 없게!”장경화는 바닥에 침까지 뱉었다. 이 어르신만 아니었더라면 유진우를 진작 내쫓고도 남았다.“그만들 해. 이 일은 그저 오해야. 진우가 주워들은 루머에 속았을 수도 있어.”이 어르신이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그래그래. 다 오해야!”이적이 히죽 웃더니 냉큼 화제
이튿날 이른 아침, 천호 리조트.강능의 최고 갑부 강천호가 한 삐쩍 마른 영감과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방 선생, 이번에는 정말 너무 아쉽게 됐어. 그 여편네가 어찌나 눈치 빠른지 약효가 나타나기 전에 가버렸어. 아니면 내가 오늘에 처리할까?”강천호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천호 씨. 걔 스스로는 절대 해독하지 못해. 죽고 싶지 않으면 무조건 먼저 찾아와서 빌 거야. 그때 마음껏 가지고 놀아도 돼.”방 선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너무 잘됐군!”강천호의 눈빛이 반짝였다. 가시 달린 장미처럼 섹시하고 날카로운 조선미를 오래전부터 탐냈었다. 침대에서 뒹굴며 마음껏 가지고 놀 생각에 그는 도저히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천호 님...”그때 한 경호원이 갑자기 다가와 강천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뭐? 조훈이 죽었다고?”강천호의 낯빛이 저도 모르게 확 굳어졌다.“누구 짓이야? 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그의 오른팔인 조훈은 그를 대신해 못된 짓을 많이 해왔다. 그런 그가 갑자기 죽었으니 강천호에게도 꽤 큰 손실이었다.“조훈의 아들 조민의 짓이라고 들었어요. 하루빨리 그 자리에 앉으려고 조훈을 죽인 것 같아요.”경호원이 말했다.“조민?”강천호가 실눈을 뜨며 말을 계속 이었다.“그놈 참 독한 녀석이구나? 아버지까지 서슴없이 죽여?”“천호 씨, 이 일 뭔가 수상쩍어.”방 선생이 갑자기 의심하기 시작했다.“그래? 방 선생 혹시 뭔가 아는 게 있나?”강천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제 조훈이 나한테 전화 와서는 누군가를 처리해달라고 하더라고. 그 사람이 안병서랑 관계가 있는 것 같아. 원래는 오늘에 가서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죽어버릴 줄은 몰랐네.”방 선생이 수염을 쓰다듬었다.“그러니까 방 선생 생각에는 그 사람이 조훈을 죽인 것 같다는 거야?”강천호는 눈치 하나만큼은 기막히게 빨랐다.“그럴 가능성이 커!”방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이 안병서랑 관계가 있는 걸 보면
“강능 3대 거물의 우두머리 강천호!”이청아가 대답했다.“네? 천호 님요?”장 비서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강능에서 강천호의 말이라면 뭐든지 다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조훈은 단지 동성구의 우두머리지만 강천호는 강능 지하세계의 진정한 우두머리이다. 권력이 하도 엄청나 안 되는 게 없었고 상업계, 정계, 군 사회까지 인맥이 널리 퍼져있었다. 만에 하나 강천호를 건드린다면 죽는 것보다 두려운 게 뭔지 느끼게 될 것이다.“대표님, 이 일에 천호 님도 나서는 건 아니겠죠?”장 비서가 침을 꿀꺽 삼켰다.“그건 모르지. 조훈은 강천호 씨가 예뻐하는 동생이야. 그런 동생이 갑자기 죽었으니 무조건 나서서 조사할 거야. 만약 정말 유진우의 짓이라면 큰일인데...”이청아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드리워졌다.“그렇다고 해도 죗값을 받아야 하는 건 유진우 씨지, 우리랑은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장 비서가 떠보듯이 물었다.“그건 강천호 씨가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어. 만약 우리랑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도 피하지 못해!”이청아가 말했다.“네?”장 비서는 순간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조훈 앞에서는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지만 강천호 앞에서는 서 있을 용기도 없었다.“대표님, 우리 그냥 의성 도련님한테 부탁할까요? 안 회장님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면 되잖아요.”장 비서가 머리를 굴렸다.“가뜩이나 양의성 씨한테 신세 많이 졌는데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아.”이청아가 머리를 저었다.“그럼 어떡해요? 만약 천호 님이 책임을 묻는다면 우리도 끝장이잖아요.”장 비서가 울상을 지었다.“괜히 호들갑 떨지 마. 난 지금 조신 그룹의 사업 파트너야. 내일 회사만 설립하면 조신 그룹이 내 뒤를 봐줄 테니까 강천호 씨도 어쩌진 못할 거야.”이청아가 말했다.“아 참, 조신 그룹이 있었죠, 정말.”장 비서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늘이 금세 사라졌다.“개업식만 순조롭게 진행되면 돼요. 새 회사 설립을 발표하면 우린 조신
문관옥의 맹렬한 기세에 유진우는 그저 검으로 막아내기만 했다. 그리고는 그저 문관옥이 마음껏 공격하게 내버려두었다.하지만 그것이 사람들 눈에는 문관옥이 계속 유진우를 누르고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보였다.계속해서 공격한다면 문관옥이 곧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문 도련님께서 익힌 기술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공격하면 할수록 위력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이 싸움을 보니 유장혁이 더 이상 당해 내지 못할 것 같네요...”“천재라고 하길래 뭐 얼마나 대단하나 했는데... 결국 문 도련님 같은 천교를 당해낼 수 없잖아요!”“문 도련님 파이팅입니다! 유진우를 죽여버려요!”기세등등하게 공격을 이어 나가는 문관옥을 보며 그들은 놀라워 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일부 사호문 제자들은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다.“죽여라! 죽여라!”문관옥은 미친 듯이 웃으면서 손에 든 칼을 점점 더 빨리 휘둘렀다. 그러면서 기세도 점점 더 거세졌다. 그의 공격은 마치 바람에 소나기가 휘몰아치는 것처럼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유장혁, 아까는 그렇게 건방지더니... 왜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막지만 말고 반격해 봐! 공격해 보라고!”“왜 방어만 하고 있어?”“설마 두려운 건 아니겠지?”“전에는 그렇게 멋있고 대단하던 사람이었잖아. 지금은? 겨우 내 공격을 버티고 있는 주제에!”“그러면서도 천재라고? 웃기지도 않아!”“너한테 그럴 자격 따위 없어!”“어때? 내 실력이 느껴져? 많이 무섭지? 절망적이지?”“안타깝지만 오늘은 아무도 널 구해줄 수 없어!”문관옥은 공격하면서도 계속 비아냥거리는 말을 해댔고 유진우로 하여금 절망을 느끼게 하려 했다.하지만 그의 꼼수에 유진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사실 그는 문관옥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문관옥은 대단하지만 유진우보다는 약했다.다른 조직이 아닌 호룡각이었기에 유진우는 겨우 이 정도의 사람들만 보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래서 그는 분명 다른 고수
문관옥의 무기는 빙화검이라는 칼이었는데 전설적인 3대 검 중 하나였다.이 칼은 위력이 셀 뿐 아니라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때론 한기가 엄습하고 때론 화염이 치솟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두 속성 모두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력이 강할 수록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문관옥은 앞으로 돌진하면서 빙화검을 칼집에서 꺼냈 다.뜨거운 붉은 불꽃이 순식간에 칼날 전체를 뒤덮었다. 불길이 마치 짐승처럼 포효하는 듯했고 칼날이 지나가는 곳마다 땅의 화초들이 검게 타들어갔다.“화염 첫 번째 기술!”문관옥이 손목을 살짝 움직이더니 화염을 내뿜는 긴 칼을 높이 쳐들고 허공을 가르며 유진우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굉음이 울려퍼졌다.화염에 휩싸인 긴 칼이 갑자기 폭발하여 거대한 칼날이 허공에 떠서 형성되었다.칼자루는 길이가 십여미터쯤 돼 보였고 너비는 3미터 쯤인 것 같았다. 주위에는 불꽃이 감돌며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언뜻 보기에는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칼날이 유진우을 향해 이렇게 무겁게 내리꽂히는 듯했다.“너무 무서운데요? 이게 문 도련님의 실력이였군요. 역시 강하세요.”“맞아요, 역시 도련님이세요. 거의 마스터 수준아닌가요?”“문 도련님 같은 분만이 유진우와 겨룰 수 있죠.”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칼날을 보고 있자니 모두들 자신도 모르게 놀라움을 나타냈다.비교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었지만 경원종 고수들의 공격과 비교해 보면 문관옥의 공격은 차원이 달랐다.이게 바로 일반 고수들과 천교의 차이였다.“검!”유진우가 이렇게 말하자 땅에 떨어졌던 청하검이 그대로 10여 미터 거리를 날아오더니 유진우의 손에 쏙 들어왔다.유진우는 한 손으로 검을 들고 머리 위에 꽂혀지는 불꽃을 살짝 건드렸다.그러자 하얀 빛이 순식간에 검을 뚫고 나와 빙화검의 불꽃에 세게 부딪쳤다.쿵하는 큰 소리와 함께 두 칼날이 마주쳤다. 그 찰나, 땅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에너지가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휘몰아쳤다.지나가는 곳마다 온통 난장판이었
펑!여기저기로부터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위력이 넘치는 번개들은 유진우의 커다란 손바닥 그림자 속에 빨려 들어갔고 바람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칼날은 전부 터져버려 모양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날카로운 얼음덩이들은 순식간에 물로 녹아버렸다.경원종의 모든 공격은 전부 무력화 되고 말았다.그뿐만 아니라 비연교 제자들의 암기들도 반사되어 공중에서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려오며 사방에서 땡그랑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이럴 수가.”오행 진법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채지웅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경원종의 다른 고수들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금방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한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으니 현재 기진맥진한 그들은 독 안에 든 쥐와 다름이 없었다.“도망가야 해! 얼른 도망가야 해!”노윤하가 소리를 지르며 허겁지겁 줄행랑을 놓았다.유진우의 손바닥 그림자에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 같은 강렬한 위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그의 공격은 일반 마스터가 다다를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으니 유진우는 이미 대 마스터의 문턱을 밟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펑!흰색의 손바닥 그림자가 곧장 따라와 사방을 휩쓸자 미처 피하지 못한 경원종의 고수들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가까이에 있던 사호문 제자들은 상황파악도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뒤에 숨어서 암기를 날리던 비연교 제자들도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유진우가 만들어낸 커다란 손바닥 그림자는 도살장의 분쇄기처럼 그곳에 남아있는 적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버렸다.지금 이곳은 지옥이 다름없었다.이곳저곳에서 피가 튕기고 산산조각이 난 시체들이 떠다녔다.바닥이 새빨간 피에 물들여져 피로 된 길고 긴 길을 만들어냈다.손바닥 그림자가 유유히 사라지자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경원종에서는 채지웅 혼자 살아남고 전멸했다.채지웅은 바닥에
전에는 경원종이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방금 경원종 고수가 쓰는 진법을 보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경원종이 명불허전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채 종주님, 경원종의 오행 진법을 보니까 정말 눈이 번쩍 트이네요. 우리가 도울 필요도 없어 보여요. 경원종 혼자서도 유진우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요!”노윤하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와 채지웅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공로를 빼앗을 수 있을꺼 생각했었는데 사호문 문주가 죽고 나니까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유진우도 정말 대단하긴 해요. 오행 진법을 쓰지 않았더라면 감당할 수 없었을 겁니다.”채지웅은 두 손을 짊어지고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물론입니다. 그래도 오행 진법에 의해서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만할 수 있어요. 그만큼 그자가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니까요.”도금칼과 이화검 모두 유진우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그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증명하기에 충분했다.오행 진법이 변화무쌍한 진법이어서 다행이었다. 하늘과 땅의 힘을 빌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채 종주님, 공로를 세우셨으니 돌아가시면 반드시 큰 상을 받게 될 겁니다. 그때 가서도 저희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노윤하가 요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노 교주님 걱정 마세요. 저희 경원종이 상을 받게 된다면 비연교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채지웅은 들뜬 마음으로 직접 다짐했다.“채 종주님께 감사드립니다.”노윤하가 공손하게 말했다.두 사람이 승리를 축하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돌멩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돌멩이들은 온 지면을 뒤덮으며 굉음을 냈다.순간, 산더미처럼 쌓인 돌덩어리가 폭발하는 것이었다.누군가가 돌멩이들 사이로 날아올라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었다.그는 수십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나서야 다시 천천히 바닥에 착지했다.아니나 다를까 흙을 헤치고 나온 유진우였다.“뭐? 안 죽었다고?”조금도 다치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다섯 자루의 검을 보면서도 유진우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을 살짝 들어 올려 위로 치켜올릴 뿐이었다.쾅!강력한 에너지가 손바닥에서 폭발하더니 빠른 속도로 그 이화검들을 삼켜버렸다.펑!다섯 발의 폭음과 함께 다섯 개의 이화검이 폭죽처럼 동시에 터지며 하늘의 불꽃이 되어 바람에 흩날려갔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채지웅이 깜짝 놀라면서 중얼거렸다.나머지 경원종 고수들도 서로 마주 보며 놀라워했다. 이화검의 순발력과 파괴력은 도금칼보다 훨씬 뛰어난 데다가 그들은 방금까지 전력을 다해서 그를 공격했기 때문이었다.그들의 예상대로 유진우가 이 살인을 막아냈더라도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하지만 유진우는 멀쩡할 뿐만 아니라 이화검의 공격도 손쉽게 피했으니 말이다.그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계속해! 마법진 변경!”채지웅은 깜짝 놀랐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오행 진법은 변화무쌍하여 7가지 공격방법이 있었다. 이화검도 안 되면 또 다른 공격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는 유진우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약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곤지함!”채지웅은 손목을 바들바들 떨면서 황토색 부적 한 장을 꺼내 바닥으로 내리쳤다.나머지 고수들도 그를 따라서 부적을 바닥에 내던졌다.펑!황토색 부적 다섯 장이 땅에 떨어지면서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유진우가 서 있는 지면이 갑자기 움직이더니 빠른 속도로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우 주위 10미터 반경의 땅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더니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유진우는 반응할 틈도 없이 깊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곤산붕!”그 순간, 채지웅은 즉시 진법을 바꿔버렸다.그는 방금 생긴 깊은 웅덩이를 빠른 속도로 메꿔버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유진우는 완전히 생매장당했다.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경원종 고수를 지휘하며 진법으로 큰 바위들을 옮겨와서 유진우가 생매장된 곳을 막아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는 산처럼 쌓여버렸다.생매장된 유
독성을 가지고 았는 다트는 마치 비 내리듯 끝없이 유진우를 향해 쏟아졌다.순식간에 유진우가 모두의 타깃으로 되었다.“마법진!”다트들이 떨어지려고 할 때 채지웅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그 후 경원종 고수들은 몇 명이 즉시 뿔뿔이 흩어져 유진우 곁에 원 모양으로 둘러섰다.그들 손에는 어느새 금색 부적 한 장이 들려 있었다.“도금칼!”채지웅은 명령과 함께 손에 든 금색 부적을 내던졌다.유진우를 에워싸고 있던 나머지 경원종 고수들도 즉시 부적을 내던졌다.다섯 장의 부적이 유진우를 향해갔다.곧이어 기괴한 장면이 발생했다.하늘하늘하던 부적에서 순간 빛이 크게 번지더니 다섯 자루의 거대한 금색 칼로 변해 유진우를 찌르려 하는 것이었다.그 칼은 아주 날카롭고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으며 파괴력이 강해 보였다.무도 마스터라도 감히 정면으로 맞서지 못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칼이었다.그리고 이 마법진은 경원종의 오행 진법으로 변화무쌍한 데다가 위력이 무궁무진한 진법이었다.또 다섯 사람이 힘을 합쳤기에 실력이 배로 늘어났을 것이었다.죽음에 가까워진 상황이 아니면 결코 쉽게 쓰지 않는 진법이었다.하지만 유진우를 죽이기 위해 경원종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질질 끌지 않고 한 방에 죽여버릴 생각이었다.“고작 이것밖에 못 하나요?”다섯 자루의 금빛 검을 본 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안색을 바꾸지 않고 발을 한 번 굴렀다.흰색 진기가 몸에서 터져 나와 타원형의 보호막을 만들어 주었다.그 보호막은 유진우를 감싸고 있었다.철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다섯 자루의 금빛 검이 유진우의 보호막에 부딪혔다. 그러자 그 검들이 순식간에 부서지더니 빛이 되어 흩어지는 것이었다.결국 유진우는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다.“응”채지웅은 미간을 찌푸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오행 진법의 도금칼은 날카롭기로 유명한 무기였다.하지만 유진우의 보호막조차 뚫지 못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마법진 변경!”채지웅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 경원종 고수를 지휘하여 진법을
“뭐죠? 안 오너님은요? 왜 갑자기 사라진 거죠?”“이상하네요.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어요.”“설마 안 오너님께서 또 무슨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 건 아니겠죠?”사람들은 사방을 둘러보면서 의논하고 있었다. 사태가 심각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말이다.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방금 기세등등하던 안호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으니 말이다.“오너님은요? 어디 가신 거죠?”“스승님! 스승님!”사호문의 제자들이 저마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응답이 없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간파한 사람은 극소수였다.“소리 지르지 않아도 돼. 너희 스승님은 이미 돌아가셨어.”백발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남들은 몰라도 무도 마스터인 그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고 나서 안호준의 몸은 마치 가스가 찬 풍선처럼 바로 폭발하였다는 것을 말이다.시체도 남아 있지 않다.“죽었다고요? 그럴 리가요?”“채 종주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희 스승님은 천하무적이라고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이겨왔는데 고작 한 방에 죽었다뇨?”사호문 제자들은 이러쿵저러쿵하며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그들에게 놓고 말해서 안호준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존재였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상대가 누구든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채 종주님 말이 맞아. 안 오너님은 죽었어.”비연교 오너도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지만 바닥에 있는 살덩어리가 안 오너님 시체야...”그녀의 말을 듣고 온 장내가 떠들썩해졌다.사호문 제자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만약 경원종 종주인 채지웅만 그렇게 말했다면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비연교 교주인 노윤하도 그렇게 말했기에 그들은 믿고 싶지 않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사호문 제자들은 땅바닥의 잘게 부스러진 살덩어리를 보고 비통해하며 울분을 토해냈다.한편, 나머지 문
“죽고 싶다면 도전해 보시든가요.”유진우는 줄곧 무표정이었고 눈빛은 차가웠다.“흥, 무서운 줄도 모르는 놈. 오늘 내가 사호문 권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마!”중년 남자가 고함을 지르며 유진우에게 달려들 때, 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잠깐만요!”경원종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며 말했다.“안 오너님, 당신도 실력은 괜찮지만 유장혁의 적수는 못 돼요. 제가 하죠.”유장혁을 죽이라는 건 호룡각에서 내린 명령이었기에 일등 공신을 세운 사람이 좋은 대우를 받을 게 당연했다.이런 좋은 기회를 남에게 양보해서는 안 됐다.“채 종사님, 좀 저희를 무시하시는 것 같은데요?”안호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제가 거느리고 있는 사호문은 채 종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나거든요. 이놈도 상대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제가 사호문을 닫아버릴게요.”“맞습니다. 경원종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저희 사호문도 호락호락하진 않거든요!”사호문 제자들이 분분히 떠들어댔다.“안 오너, 당신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채지웅은 계속해서 말했다.“오늘 유장혁한테 진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명예는 물론, 목숨도 위태로워질 거니까요.”“채 종사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만 만약 제가 지게 된다면 그건 제 권술이 부족한 탓이겠죠.”안호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분,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이때 비연교에서 몸매가 좋은 한 여자가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동맹을 맺은 사이인데 이런 작은 일로 화를 낼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때요? 제가 두 오너님을 대신해서 앞장서보겠습니다. 유장혁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시험해 보는 거죠.”큰 공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비연교 교주도 당연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다들 한몫 챙기려는 모양이네요.”채지웅은 좌우를 둘러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선착순으로 보면 제가 먼저입니다.”안호준도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
이곳에 나타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투비 레벨 고수들이었는데 무도 마스터들도 종종 숨어있었다. 게다가 문관옥과 그리고 그의 지휘 아래 있는 부하 백호랑까지...“유장혁, 이게 끝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문관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사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를 좀 오래 했거든. 네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단지 선봉대일 뿐이고 아직도 많은 고수들이 여기로 올 거야. 네가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오늘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거라는 말이지.”사실 문관옥은 유장혁을 죽이는 것쯤은 이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유장혁 쪽에서 지원군이라도 오게 될까 봐 사람들을 많이 부른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었기에 경계해서 나쁠 건 없었다.“문관옥, 설마 문왕부도 호룡각 밑에 있는 세력 중 하나인 거야?”유진우가 소리 내 물었다.“호룡각의 명을 받아 널 처리하게 된 건 내 영광이야. 너한테 놓고 말해서는 불행한 일이겠지만 말이지.”문관옥은 매우 태연하게 말했다.“네가 만약 죽은 척하고 남은 인생을 보냈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넌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했어. 그러니까 왜 그랬어? 그러지 말았어야지. 네가 자초한 거야.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널 제거하라는 명을 받았을 뿐이고.”호룡각은 황제보다도 더 큰 권력을 가졌다. 천자마저도 꼭두각시일 뿐이니 그가 전력을 다해 호룡각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도 이상해할 것 없었다.문관옥의 태도에 의해 충성도가 높다고 판단되면 평가에 통과할 수 있었다. 그에게 놓고 말해서는 호룡각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였다.그때가 되면 그도 권력을 가져서 서경왕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될 수 있을 것이었다.“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네.”유진우가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자,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은 얼마든지 덤벼. 얼마나 대단한지 보기나 하자!”“흥! 정말 끝까지 해보자는 거지?”문관옥이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