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가 이토록 대단한 사람일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원래는 그저 작은 파벌의 제자거나 기껏해봤자 실력이 조금 뛰어날 줄 알았다.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젊은이가 소년 마스터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무도 대회에서부터 놀라움을 보여줬고 청양호에서 자양지존을 죽였으며 그다음에는 블랙 숲에서 엄청난 위엄을 보여줬다. 그리고 오늘은 무도 연맹의 맹주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모두 세상을 뒤흔들만한 일이었고 또 이런 일들로 인하여 강남에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최강 괴물이 되었다.유진우는 또래 중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고 명성은 이미 나이가 있는 마스터를 뛰어넘어 강남 무도계의 전설로 자리 잡았다. 그런 전설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당연히 놀랄만 하지.“저... 저... 저 사람이 소년 마스터라고?”양재걸은 겁에 질린 나머지 오금이 저렸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조금 전 자신이 도발한 사람이 전설 속의 괴물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이러니까 한 손가락으로 날 쉽게 이겼고 사부님마저 겁에 질려서 도망갔지. 그게 다 이유가 있었어.’블랙 숲에서의 결투를 그가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유진우는 아주 쉽게 마스터 세 명에게 중상을 입혔고 현장을 압도했다고 들었다.그 후로 조경수는 트라우마가 생겼고 조금 전 초라한 꼴로 도망친 것이었다. 그 누구라도 이런 괴물을 만난다면 진정하지 못할 것이다.“어쩐지...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 저 사람이 바로 내가 찾던 사람이었구나!”그 시각 태소원의 호흡도 가빠지기 시작했다.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두 눈에는 존경과 사랑이 가득했다.청양호 마스터 전투에서 태소원은 유진우의 위엄을 봤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가까이하고 나서야 그동안 좋아했던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생겼고 매력이 넘친다는 걸 알았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일까?“진우 선배님이... 무도 마스터였어?”눈앞의 듬직한 뒷모습을 보던 임다해의
집법팀 팀장은 꿈에서 깨기라도 한 듯 재빨리 달려가 유진우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마스터님, 제가 몰라뵙고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그러더니 연신 머리를 조아리면서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조금 전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이 쓸모없는 것들!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야!”그때 우레와 같은 성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송천수가 무도 연맹 임원들과 함께 연무장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집법팀 팀장과 굽신거리는 검은 옷 집사를 보자마자 송천수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무능한 놈들아, 너희들 때문에 우리 무도 연맹의 체면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어!”송천수는 재빨리 다가와서 두 사람을 마구 때렸다.짝, 짝, 짝...심하게 얻어맞은 두 사람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코와 입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런데도 전혀 반항하지 못했고 불만이 있어도 꾹 삼키기만 했다. 무도 마스터를 건드렸는데 당연히 빌어야지, 죽기를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장로님, 이분이 바로 송 맹주님께 도전장을 건넨 유진우 마스터입니다.”검은 옷 집사는 송천수가 양해하길 바라며 계속 말했다.“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분노가 치밀어 오른 송천수는 다시 손을 들어 따귀를 날리더니 욕설을 퍼부었다.“무림 맹주님께 도전한 사람은 우리 무도 연맹의 적인데 감히 적한테 무릎을 꿇어? 창피한 것도 모르는 놈!”“저...”검은 옷 집사는 얼얼한 볼을 움켜쥔 채 말을 잇지 못했다.‘X발, 말은 참 쉽게 하네. 너 같으면 무도 마스터를 도발할 수 있어? 아주 얻어터질 거면서.’“네가 바로 유진우야?”화풀이하던 송천수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유진우를 째려보았다. 그의 두 눈에 살기와 분노, 그리고 짙은 원한이 담겨있었다.“접니다.”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누구시죠?”“무도 연맹의 장로 송천수다!”송천수의 표정이 한껏 어두워졌다.“네놈이 어젯밤에 우리 아들을 죽였다면서? 이미 죽을죄를 지었는데 또 무
“3대 호법까지 모셔오다니, 송천수가 아주 큰 마음을 먹었구나!”“듣건대 3대 호법 모두 무도 마스터래. 유진우가 강하긴 하지만 혼자서 세 명을 상대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일 거야.”“무도 연맹 왜 저런대? 유진우는 무도 연맹 맹주한테 도전하러 왔는데 쪽수로 밀어붙여? 정말 무인의 도덕이라곤 전혀 없어.”가면을 쓴 세 사람을 보며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무도 연맹의 3대 호법은 무도 연맹의 숨은 힘이었다. 지위가 장로보다 높았고 맹주와 부맹주 다음이었다.평소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무도 연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만 나타났다. 하여 3대 호법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을 본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으니까.3대 호법이 지난번에 모습을 드러낸 건 10년 전에 송만규가 맹주 자리를 물려받을 때였다.그날 한 무리의 나쁜 세력들이 취임식을 망치려 했었는데 3대 호법이 나서서 무서운 기세로 그들을 손쉽게 해결해버렸다. 그 후로 3대 호법은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무도 연맹에서 3대 호법은 가장 강한 장벽이었다. 아무도 이 장벽을 뚫지 못했고 무도 연맹의 뿌리를 흔들지 못했다.그런데 오늘 유진우를 상대하기 위해 3대 호법까지 동원했다. 세력을 믿고 남을 괴롭히는 게 분명했다.“3대 호법?”주변을 둘러보던 유진우의 표정이 점점 싸늘해졌다.“송천수, 이 사람들이 바로 너의 비장의 카드야?”유진우는 3대 호법이 일반 무도 마스터가 아니라는 걸 바로 느꼈다. 그들은 사술만 수련하는 남다른 존재들이었다.기운이 음산하고 눈빛이 날카로웠으며 몸에 짙은 피비린내가 났다. 사술을 연마하면 실력이 빨리 늘긴 하지만 단점이 많았다. 단점 중 하나가 바로 계속 사람의 피를 마셔야만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눌러 미치광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세 사람에게서 특별한 냄새가 풍기는 것만 봐도 이 점을 충분히 증명했다. 다시 말해 무도 연맹의 3대 호법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인 3대 악마였다.무도 연맹은 많은
“넌 누구야? 뭔데 끼어들어?”송천수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전 현무문의 제자입니다. 장로님의 행동을 정말 더는 못 봐주겠어요.”태소원이 또박또박 말했다.“무도 연맹은 공평과 공정을 중히 여겨야죠. 유진우 마스터님은 분명 미리 도전장을 보냈고 무도 연맹에서도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송 맹주님이 나타나기도 전에 함부로 유진우 마스터님을 죽이려 하면 무도 연맹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어떻게 될지, 위엄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셨어요?”“맞아요! 싸우고 싶으면 정정당당하게 싸워야지, 쪽수로 밀어붙인다는 게 말이 돼요?”“유진우 마스터님이 혼자 상대하는 건 무도 연맹에 대한 존중인데 무도 연맹에서도 마땅히 예의 있게 굴어야죠. 링 위에서 싸워야만 사람들이 인정할 겁니다.”“당신들 무서워서 이러는 거죠? 유진우 마스터님이 송 맹주님의 자리를 위협하기라도 할까 봐 이런 수작 부리는 거죠?”그 시각 많은 무사들이 질책하며 불만을 드러냈다. 무도 연맹 맹주에게 도전하는 게 몇 년만의 일인지 모른다. 유진우가 이기든 지든 중요하지 않았고 적어도 용기가 있는 건 인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무도 연맹의 태도가 너무 실망스러웠다.“닥쳐! 다들 닥치라고!”송천수는 약이 바싹 올랐다.“유진우 이 자식이 내 아들을 죽였어. 아버지로서 아들의 복수를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복수하는 건 문제없지만 무도 연맹의 힘을 빌려선 안 되죠. 이건 공적인 힘을 빌려서 사적인 복수를 하는 거잖아요!”태소원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이... 이년이!”송천수는 너무도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빈틈없는 경계망을 친 건 유진우를 잡기 위해서였는데 갑자기 어떤 여자가 나타나서 방해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장로님, 복수하고 싶어도 마스터님의 도전이 끝난 다음에 하세요. 안 그러면 저희 동의 못 합니다.”“맞아요! 무도 연맹 맹주와의 도전은 아무도 방해해선 안 돼요. 두 사람 사이에 피맺힌 원한이 있다고 해도 일단은 참으세요!”태소원이 앞장서자 점점 더 많은 무인들이 나서
“부맹주님,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무도 연맹의 명예를 위해서입니다.”송천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 자는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무도 연맹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습니다. 즉시 잡지 않으면 앞으로 큰 화를 불러올 거란 말입니다!”“송 장로님, 조금 전의 상황은 제가 모두 똑똑히 봤습니다. 장로님께서 계속 몰아붙이고 오만하게 행동한 거예요.”진원효는 차분하게 말했다.“게다가, 당신은 맹주님의 명령도 없이 3대 호법을 마음대로 사용했으니 규칙을 어긴 것입니다. 만약 장로님께서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법을 알고도 어긴 죄가 더해질 것입니다!”“당신!”화가 난 송천수는 이를 악물더니 곧 목소리를 낮췄다.“부맹주님, 우리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설마 이 젊은이 때문에 저와 맞서려는 건가요?”“장로님, 저는 언제나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지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습니다.”진원효는 단호하게 말했다.“옳고 그름은 누구나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 있는 모두가 정정당당한 맹주 도전 경기를 보고 싶어 한다고 믿어요. 누구든 비열한 수단으로 방해하려는 자는 강남무림의 공공의 적이 될 것입니다!”“맞습니다! 무림 맹주에게 도전하는 것은 무사로서의 권리입니다. 아무도 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여러 무사들이 동조하며 말했다.무도계는 원래 강자가 존중받는 곳이다. 소위 강남무림 맹주라는 것도 강한 실력을 바탕으로 얻은 자리이다.마스터 경지에 이르면 누구나 강남 무림 맹주에게 도전할 수 있으며 이는 불문율이다. 그리고 만약 맹주가 싸움을 피하거나 비열한 수단을 사용하면, 그 권위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부맹주님, 정말 그렇게 하시겠습니까?”송천수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다.“왜요? 불만이라도 있습니까?”그러자 진원효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불만이 있다면 저에게 도전하셔도 됩니다. 자격이 있으니까요. 저를 이기면 부맹주를 드리죠.”“당신...”송천수는 할 말을 잃었다.그는 단지 선천 무사였
“유진우 씨, 반드시 멋지게 싸워서 이름을 알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뭐가 진정한 무도 고수인지 보여주세요!”태소원은 그 듬직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눈에는 사랑과 경외심이 가득한 채 말이다.대장부라면 세 자루의 검을 들고 세상에 나아가 불후의 공을 세워야 한다. 비록 앞길이 험난하고 위험할지라도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하며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남자인 것이다.“무림 맹주에 도전하다니,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이다!”안색이 어두워진 양재걸이 속으로 저주했다. 그는 유진우가 무대에 오르자마자 송만규에게 죽임을 당하기만을 바랐다.“흥! 어차피 죽을 놈이야. 몇 분 더 살았을 뿐이지.”송천수는 비열하게 웃으며 악의에 찬 눈빛을 보냈다.“선배님, 제발 무사해야 해요!”임다해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제기랄, 저 자식이 정말 올라갔어? 설마 자기가 진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도영민은 눈에 질투와 증오를 가득 담고 말했다.‘분명 같은 나이대인데 왜 유진우는 무도 마스터고 나는 선천 경지조차 돌파하지 못한 거지? 왜? 내가 어디가 모자라서?’“여기 정말 시끌벅적하네!”갑자기 특수한 통일 복을 입은 일행이 연병장에 들어섰다.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팔자 수염에 얼굴이 뾰족한 남자였고 그의 뒤에는 여러 명의 기이한 인물들이 따랐다.그들은 뚱뚱하거나 마르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어떤 이는 흉측하게 생겼고, 어떤 이는 아름답게 생겨 그들의 외모와 체격은 매우 다양했다.하지만 그들 모두는 굉장히 강력한 존재들이었다.“진무사? 저 사람들 진무사의 사람들이잖아!”“맙소사! 진무사가 왜 여기 온 거지? 혹시 이곳에 엄청난 죄인이 있는 건가?”상황을 파악한 현장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진무사는 용국의 공식 기관으로 그 안에는 수많은 고수들이 존재하며 강자들이 넘쳐난다.진무사의 임무는 바로 전 세계의 무사들을 관리하고 무력 남용을 방지하는 것이다. 강남무림 연맹, 강북무림 연맹, 그리고 여러 파벌들
“눈에 익다고요?”진원효는 호기심에 가득 차 물었다.“오 당주님, 혹시 이전에 유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아마 내가 착각한 것 같군.”오연호는 팔자 수염을 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의 기억력으로는 뛰어난 무사를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편이었다.유진우처럼 어린 나이에 무도 마스터가 된 인물은 매우 드문데, 그런 천재를 만난 적이 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내가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건 분명 처음 만났다는 증거겠지.’“오 당주님,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자리로 모시겠습니다.”진원효는 한 손으로 손짓하며 안내했다.“천천히 가자고. 먼저 이 젊은 마스터와 이야기를 나눠보겠네.”오연호는 이렇게 말하고 바로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이 모습을 본 진원효는 잠시 미간을 찡그렸지만 이내 다시 평정을 찾았다.진무사가 강력한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인재를 포용하는 정책에 있다.정의롭든 사악하든, 일단 실력만 있다면 그 사람은 진무사에 들어올 수 있었다.오연호는 유진우의 재능과 실력을 보고 그를 영입하려 했다.진원효는 비록 불만스러웠지만, 무도계 전체가 진무사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젊은 친구, 용기가 대단하군. 무림 맹주에게 도전하다니.”오연호는 미소를 지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진무사인가요?”유진우는 천천히 눈을 뜨고, 상대의 가슴에 있는 휘장을 보고 그의 신분을 알아차렸다.“눈썰미가 좋군. 나는 진무사의 10대 당주 중 한 명인 오연호라네.”오연호는 자신을 소개했다.“오 당주님이시군요. 무슨 용건이 있으신가요?”유진우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물었다.진무사의 영향력은 전 세계에 퍼져 있었다. 당주 자리에 오르려면 단지 실력뿐만 아니라 좋은 배경과 철저한 수단이 필요했다.“젊은 친구, 자네는 타고난 재능이 있고 미래가 창창해. 이런 작은 곳에 머물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진무사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오연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 말을 듣자마자 무대 아래가 술렁이기
“젊은 친구, 진무사에 가입만 하면 내가 보장하건대 제단사 자리 하나 내어주지!”오연호는 유진우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다. 진무사에서 제단사는 관리자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자리이다.막 입문한 사람에게 이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죄송합니다만, 그래도 흥미가 없습니다.”유진우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계속되는 거절에 오연호는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이미 충분히 체면을 지켜주었지만, 유진우가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니 말이다.“아니, 진무사의 제단사 제안을 거절하다니, 이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이지?”“진무사의 중용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데! 얼른 감사히 넙죽 받는 게 아니고... 정말 미친 거 아니야?”“흥! 소년 마스터라 해도, 진무사 앞에서는 별거 아니네!”몇몇 질투하는 무사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진무사에 가입하는 것은 많은 무사들에게 있어서 큰 영광으로 여겨진다.그러나 유진우는 이를 여러 차례 거절하며 진무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그가 매우 오만하다고 생각되게 만들었다.“기회는 놓치면 다신 오지 않아. 진짜 진무사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건가?”오연호의 얼굴은 점점 차가워졌고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그는 자신의 체면을 구기며 직접 나섰지만, 유진우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네. 저는 오늘 무림 맹주에게 도전하러 왔을 뿐, 다른 일에는 흥미가 없습니다.”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좋아! 사람마다 뜻이 다른 법이지. 더 이상 강요하지 않겠네!”곧이어 오연호는 차갑게 코웃음 치며 무대를 내려갔다. 얼굴에는 불쾌함과 약간의 분노로 가득했다.“오 당주님, 여기 앉아 차 한 잔 드세요.”진원효는 웃으며 오연호 일행을 중앙 자리에 안내했다.그 자리는 각 파벌의 장로들이 앉는 자리로, 최소 반보 마스터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그중에는 몇몇 무도 마스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천학문의 선조와 장수현, 대비사의 방 장로와 격심대사 등
그래야만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라도 지킬 수 있다.지금 왕위를 이어받을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은 표기 대장군 유태범밖에 없었다.첫째로 유태범은 유씨 가문 사람이라 왕족에 속했기에 명분이 정당했다. 둘째로 표기 대장군으로서 서경의 절반에 달하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 권력이 하늘을 찔렀다. 셋째로 유태범은 오랜 시간 동안 힘을 키워왔다. 인맥, 위신, 공로 모두 왕위에 오르기에 충분했다.현재 유태범이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적지 않은 관원들은 애도를 표한 후 바로 대장군 저택으로 가서 유태범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었다.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서경왕부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의진은 그들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어머니, 벌써 종일 여기 계셨어요. 들어가서 쉬세요. 이러다가 몸이 상하실까 걱정됩니다.”수심과 피곤이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을 본 유천우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어찌 편히 쉴 수 있겠어.”이의진이 고개를 내저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더 조심해야죠. 서경왕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왕비인 어머니가 버티셔야 합니다. 절대 쓰러져선 안 돼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이의진은 뭐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유천우가 가로챘다.“어머니, 이번에는 제 말을 들어주세요. 먼저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아버지 곁을 지켜도 괜찮아요.”이의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천우는 도우미 두 명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너희 둘,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잘 보살펴드려.”“알겠습니다.”두 도우미는 대답한 후 이의진을 부축했다. 무릎을 하도 오랜 시간 꿇고 있어 다리가 저린 나머지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천우야, 너도 몸 잘 챙겨. 절대 방심해선 안 돼.”이의진이 당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유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나가는 걸 본 후에야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다들 돌아가. 여긴 나 혼자 지키면
그 시각 서경왕부 문 앞.유태범 등 3인은 한 무리의 근위병들을 이끌고 서둘러 걸어 나왔다.서경왕부를 떠난 후 조군영이 참다못해 물었다.“대장군님, 이의진 모자가 주제도 모르고 저렇게 날뛰는데 계속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합니까?”“당연히 내버려 둘 순 없지. 하지만 너무 대놓고 움직여서도 안 돼. 흑용군의 대부분 고급 장교들이 서경왕부에 충성해서 정말 싸우기라도 한다면 우리한테 좋을 게 없어.”유태범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조군영이 또 물었다.“대놓고 움직일 수 없다면 몰래 압력을 가해야지.”유태범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경에 내란이 일어서 서경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진정한 리더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야.”“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이간질시킬게요. 백성들의 원한이 커져서 서경왕부도 감당이 안 될 때 대장군님이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서경의 백성들은 대장군님께 고마워할 것이고 새로운 서경왕으로 모시겠죠.”눈치가 참 빠른 조군영이었다.“맞아. 아주 영특하구나, 너. 나중에 내가 서경왕 자리에 앉으면 표기 대장군 자리는 네 것이 될 거야.”유태범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대장군님.”조군영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얼른 움직여. 빠를수록 좋아. 절대 그 어떤 흔적도 남겨선 안 된다는 거 명심해.”유태범이 신신당부했다.“알겠습니다. 제가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조군영은 인사를 올린 후 자리를 떠났다.“대장군님, 일반적인 내란이라면 서경왕부의 뿌리를 흔드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반드시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고원이 귀띔했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유태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난 내 사람을 몰래 키워왔어. 8대 제후 중에 절반이 내 사람이야. 내 명령 한마디면 주저하지 않고 날 도와줄 거야.”“진작 준비하고 계셨군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고원이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서경왕이 되면 절대 섭섭지 않게 해줄게.”
“유태범은 오랫동안 야심을 숨겨왔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이 기회에 무조건 권력을 빼앗으려고 할 겁니다. 이 일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맞아. 대놓고 움직이진 못해도 뒤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할 거야. 앞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해.”이의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형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유천우가 한탄하듯 말했다.“천우야, 네 능력도 네 형 못지않아. 네 형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이의진이 그를 격려했다.“어머니,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어요. 형님에 비하면 한참 부족합니다.”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이의진이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 장례식이 끝난 후에 폐하께 말씀드려서 너한테 왕위를 물려주게 할 거야. 앞으로 서경왕은 너고 그 중책을 맡아야 해.”“어머니, 왕위는 형 거예요. 전 그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서경왕은 형만이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고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천우야, 다른 일은 남한테 양보해도 이건 절대 안 돼!”이의진이 어두운 목소리로 호통쳤다.“그 자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꿈에 그리는 자리인지 알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거라고!”“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저한테 있어서 권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처럼 매일 애쓰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왕이 되면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걱정거리만 태산일 텐데. 그럴 바엔 맨날 먹고 놀면서 편히 살겠어. 그게 더 좋은 거 아닌가?’“이 녀석아, 일이 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전에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건 다 네 아버지가 있어서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아무 권력도 손에 쥐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주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거란
“유장혁?”그 소리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때 유씨 가문의 천재는 이름을 널리 떨쳤었다. 그런데 10년 전 자금성의 난이 터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그의 이름을 갑자기 들으니 놀랄 만도 했다.“도련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세자 전하의 생사도 불투명한 데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 분한테 서경왕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요?”조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까지 펼쳐 보였다.“그러게요, 도련님. 제발 현실을 잘 알고 말씀하세요. 세자 전하께 기댈 바엔 차라리 대장군님께 기대는 게 더 낫죠.”고원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천우가 자기 자신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실종된 지 10년이나 된 사람을 얘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얘기는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도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가서 형이 왕위를 이어받아도 문제없죠.”유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하는 말이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자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서경왕의 자리를 계속 비워둘 작정인가요?”조군영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형님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조 장군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유천우가 말했다.“살아있다면 지금 어디 계시는 거죠? 왜 나타나지 않는 겁니까?”조군영은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형님한테 소식을 전했으니 꼭 올 겁니다.”유천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설마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죠?”조군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위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 서경 전체가 크게 흔들릴 거예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요. 지금 당장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도 나서서 유천우를 설득했다.“형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지금 명령을 거역하겠단 겁니까?”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친 삼베옷을 입고 상복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는 위엄이 넘쳤고 온몸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빈 조군영과 고원마저도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유만수의 작은 아들 유천우였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천우는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여 예전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도 많이 저질렀었고 서경의 사고뭉치라 불리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2년 동안 유천우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더는 빈둥빈둥 놀지 않고 군에 들어가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처음에 사람들은 유천우가 군대에서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도련님이 군대의 혹독한 훈련을 버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런데 뜻밖에도 유천우는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공까지 세웠다.짧은 2년 사이에 병사에서 흑용군의 부장으로 성장했다. 든든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유천우가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 군사 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천우야, 드디어 온 거야?”아들을 보자마자 이의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저도 모르게 밀려왔다.“어머니, 소식 다 들었어요.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유천우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군영과 고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몰아붙이는 겁니까?”“그게...”조군영은 고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대국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현재 서경왕부에 리더가 없어서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많은 문제가 생길 거예요.”“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은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대국?”유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
“서경 대원수의 직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투표를 거칠 뿐만 아니라 폐하께 보고하여 최종적으로는 폐하의 결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의진의 눈빛이 경계로 가득했다.유태범이 왔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형제 간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군영과 고원의 몇 마디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깨달았다.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유태범은 흑용군에서 유만수 다음가는 위망을 가지고 있었다.표기대장군으로서 그는 많은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반의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유태범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범이 지금 이미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왕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력을 탈취하려 하다니, 그녀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만수의 죽음이 이 자들과 호룡각 잔당들이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만약 유태범이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다.“마마, 급할 때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폐하의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빨리 국면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조군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맞습니다!”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수가 밖에 있으면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소인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폐하에게 보고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내부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승복할 수 있어요.”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투표라니요? 이게 투표할 일입니까? 전 서경을 둘러봐도 대장군님보다 원수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조군영이 말했다.“그렇습니다, 왕비마마! 공적으로 보나, 위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고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세 번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비록 똑같이 연기였지만 조군영보다는 훨씬 진실되어 보였다.“표기대장군 도착하셨습니다!”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울렸다.곧이어 금빛 갑옷을 입고 기상이 비범한 중년 남자가 급하게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이 바로 일품 표기대장군 유태범이었다!유태범은 표기대장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만수의 사촌 동생이기도 했다.유태범은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하고 천부적 재능이 있어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만약 유만수가 없었다면 분명 유씨 가문의 가장 빛나는 천재였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만수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유태범을 보자 조군영과 고원은 즉시 가식적인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그들 둘은 모두 유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진정한 측근 장수들이었다.마치 유만수와 석태혁의 관계처럼 영광도 함께 하고 손실도 함께했다.“형님!”유태범은 두 심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당에 들어서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떨리며 얼굴에는 비통함과 분노의 빛이 어려 있었다.“어찌 이럴 수가? 우리 형님이 어찌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한 짓입니까?!”유태범이 붉은 눈으로 연달아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호룡각의 잔당들입니다. 그들이 자객을 부내에 잠입시켜 어젯밤 어르신을 암살했습니다.” 이의진의 얼굴이 흐리멍덩했다.“호룡각?”유태범이 이를 갈며 분노에 차 있다가 즉시 고함쳤다. “누구 없느냐! 즉시 군대를 집결시켜 전 성을 수색하라.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잠깐만요!”이의진이 갑자기 나서서 제지했다.“태범 씨, 매우 비통한 것을 알지만 지금은 아직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습니다.”“형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무
이 말이 나오자 조군영과 고원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두 사람이 오늘 온 것은 본래 기세를 과시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이의진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입을 열자마자 반역이라는 죄명을 들이대다니.이런 죄가 뒤집어씌워진다면 그들은 아마 왕부의 대문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마마, 농담 마십시오. 반역은 사형감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런 일은 감히 못 하지요!” 고원이 연달아 해명했다.“맞습니다. 저희는 왕께 항상 충성을 다해왔는데 어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조군영도 따라서 부인했다.비록 두 사람 모두 그런 야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명백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반역할 생각이 없다면 어째서 갑옷을 입고 부내에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규칙도 모르십니까?” 이의진이 조금도 봐주지 않고 꾸짖었다.그저 이품 장군일 뿐인데 군권이 조금 있다고 감히 왕부 안에서 눈깔을 찌푸리고 있다니.유만수가 살아있을 때 이 둘은 감히 이러지 못했다.“아이고! 제 정신 좀 보세요, 왕부의 규칙을 잊었네요. 마마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군영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어서 갑옷을 벗고 차고 있던 칼을 내려 왕부의 경비에게 건넸다.“저희가 급히 오느라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으니 개의치마시지요.” 고원이 웃으며 말했고 즉시 갑옷과 칼을 벗었다.이 광경을 보고 이의진의 안색이 비로소 조금 누그러졌지만 어조는 여전히 차가웠다.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왕께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저희 둘이 특별히 문안드리러 왔습니다.”고원이 가식적으로 말했다.“소식통이 꽤나 빠르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늦었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두 사람이 의아한 척했다.이의진은 설명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몸을 돌려 영당으로 향했다.왕부 밖은 비록 동정이 없었지만 왕부 안에는 이미 흰 만장이 가득
“알겠습니다. 제가 경비병 신분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변장을 하셔야 합니다.” 손도운이 결국 타협했다.비록 위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정오 무렵, 서경 왕부 안.비록 유만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봉쇄되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관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어떤 이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조문을 왔고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목적을 품고 있었다.“보국대장군 도착!”“운미대장군 도착!”왕부 문 앞에서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곧이어 갑옷을 입은 체격이 우람한 중년 남자 둘이 각각 친병들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왔다.이 친병들은 모두 허리에 장도를 차고 있었고 보기에도 험상궂었다.온 이들은 바로 이품 관직인 보국대장군 조군영과 운미대장군 고원이었다.“두 분, 왕부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반드시 갑옷과 무기를 해제하셔야 합니다.”한 왕부 친위가 조군영과 고원을 막아서며 동시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흥! 난 밖에 나올 때 갑옷을 벗지 않아. 꺼져!” 조군영이 노하여 꾸짖었다.“조 장군, 이건 왕부의 규칙입니다. 따라주시기 바랍니다.”왕부 친위가 말했다.“규칙? 나한테 감히 규칙을 운운한 건가?”조군영이 왕부 친위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규칙을 들먹이며 나를 압박하느냐? 죽고 싶나?”“조 장군, 소인도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뿐입니다.” 왕부 친위는 동요하지 않았다.“헛소리 작작 하고 비켜.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조군영이 갑자기 칼을 뽑아 왕부 친위의 목에 겨누었고 그의 모습은 매우 포악하고 극도로 횡포했다.“제 머리를 베신다 해도 규칙은 지켜야 합니다.” 왕부 친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 개자식! 관짝을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리겠구나!”조군영은 마침내 화를 내며 칼을 거세게 들어 왕부 친위의 팔을 향해 내리쳤다.“멈추세요!”이때 한 소리의 여성의 호통이 울렸다.삼베 흰옷을 입은 이의진이 석태혁 일행을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