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군해 쪽은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까 다른 길 알아봐야지.”선우희재는 생각에 잠기더니 신중하게 말했다.“꼭두각시 될만한 사람 몇 명을 더 찾아봐. 누군가는 조군해를 대신해서 일해야지. 명심해, 절대로 신분을 드러내서는 안돼.”“알겠습니다!”부하는 대답하고 곧장 자리를 떴다.“이번에는 실수가 없었으면 좋겠네.”선우희재는 눈을 감으며 혼자 중얼거렸다.직접 나서고 싶었지만, 조선미의 외할아버지 때문에 소심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귀찮은 노인네 때문에 일이 복잡해진 건 사실이다....점심 무렵의 로즈 레스토랑.유진우와 조홍연은 창가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오빠를 귀찮게 했던 그 사람들은 제가 확 다 죽여버릴까요?”조홍연은 밥을 먹다가 진지한 말투로 불쑥 말을 꺼냈고 조유빈은 헛웃음이 나왔다.“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니까 며칠 가둬놓고 고생만 시키면 돼.”조일명은 선을 넘었기에 죽는 게 마땅하지만 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은 죽을 정도의 죄를 지은 건 아니다.물론 그것보다는 조선미의 감정이 더 큰 이유를 차지했다. 어찌 됐든 그들은 조선미의 친척이니까.만약 다 죽여버리면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지낼까?“알겠어요. 그럼 목숨은 살려줄게요.”조홍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유진우만 좋다면 그를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오빠, 며칠 있으면 생일이죠?”조홍연이 갑자기 물었다.“아마 그럴걸?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까먹을뻔했네.”유진우는 생일 따위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다. 밥 먹고 술 마시고, 가끔 케이크를 사 먹는 게 전부였다.“그럼 이번 생일은 어떻게 보낼 계획이에요?”호기심이 가득한 조홍연과 달리 유진우는 대수롭지 않았다.“아마 밥 한 끼에 생일 케이크 사 먹겠지?”“생일을 이렇게 간단하게 보낸다고요? 그건 절대 안 돼요!”조홍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이번 생일은 제가 준비할게요. 오빠를 위한 생일 파티를 열 거니까 기대해도 좋아요.”“귀찮게 그럴 필요 없어.
“칠색 영지요?”그 말을 들은 유진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목소리마저 높아졌다.“어디서요?”학수고대하던 끝에 마침내 행방을 찾았다.이제 이 영약만 손에 넣는다면 구전수명단을 만들 수 있다.“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남궁 가문에 있어요.”황성태는 재빨리 설명을 이어갔다.“이틀 뒤가 남궁을용 씨의 생신입니다. 누군가 선물로 칠색 영지를 준비했다고 하는데 그걸 손에 넣을 수 있을지는 사장님의 능력에 달렸어요.”“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중에 두둑하게 보상금을 챙겨드릴게요.”유진우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칠색 영지의 행방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가를 치러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그건 사양할게요. 전에 했던 약속 기억하시죠? 저에게 신세를 졌으니,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사장님에게 연락할게요. 그걸로 갚으면 됩니다.”황성태는 웃으며 답했다.“원칙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리죠.”유진우의 망설임 없이 제안을 승낙했다.“역시 사장님은 시원시원하시네요. 그럼 행운을 빕니다.”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주고받은 후 전화를 끊었다.“홍연아, 오빠가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먼저 판용산장으로 돌아가. 나중에 찾으러 갈게.”유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오빠, 무슨 일 있어요? 제가 도와줄까요?”조홍연은 몹시 궁금했다.“괜찮아,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니까 얼른 들어가. 말 들어야지?”유진우는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로즈 레스토랑에서 나온 그는 값비싼 선물을 준비한 뒤 곧장 남궁 가문으로 향했다.비록 지금은 은퇴했지만, 당시의 남궁을용은 황보용명에 못지않은 베테랑 장군이었다. 그들은 제자가 만천하에 있는 덕망 높은 거물이자 고위층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다.10년 전부터 서로 교류가 있었던 터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유진우는 후배로서 줄곧 그를 찾아뵙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해왔고 마침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생신 축하를 건네는 동시
“장군님 뵈러 왔어요.”유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 보이려고 애쓰네.”뒤에 있던 유연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혼잣말하며 입을 삐죽거렸다.그녀는 지난번 반창고 사건 이후로 줄곧 유진우가 마음에 걸렸다.그날 총에 맞아 입원한 덕분에 우연히 폐암 진단을 받게 되었고 다행히 일찍 발견해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하여 유진우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할아버지 잠시 외출하셨어요. 금방 돌아오실 거니까 일단 들어가서 차 한잔하면서 얘기 나눌까요? 마침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남궁은설은 다짜고짜 그를 끌고 저택으로 들어갔다.“은설아, 우리 승마 연습하기로 약속했잖아.”유연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귀띔했다.“아참,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어요.”남궁은설은 유진우를 바라보더니 머뭇거리며 물었다.“오빠, 뒷산 근처에 승마장 있는데 우리 그쪽에서 같이 놀까요? 할어버지 돌아오시면 제가 다시 이쪽으로 모셔다드릴게요. 어때요?”“좋아요.”분위기를 망칠 수 없었던 유진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지금 바로 승마장으로 가요.”남궁은설은 빙그레 웃더니 일행을 이끌고 저택의 뒷산으로 향했다.“한솔아, 은설이가 저 남자한테 관심 있는 것 같으니까 긴장해.”유연지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충고했다.“쳇. 아무런 힘도 없는 저 자식이 무슨 자격으로 은설이를 만나.”한솔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은설이가 호감 있다 한들 남궁 가문에서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야. 같은 세상을 사는 사람이 아니잖아. 저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밑바닥이야.”“그렇긴 해.”유연지도 딱히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유진우는 복싱과 발차기 실력이 뛰어나고, 의술도 어느 정도 익혔지만 아직은 부족했다.가장 총애받는 손녀인 남궁은설의 미래 남편은 반드시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첫 번째는 훌륭한 가정형편, 두 번째는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
“음?”사람들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한 무리의 젊은 남녀가 한가롭게 정원을 거닐며 걸어왔다.제일 앞쪽에서 걷고 있는 사람은 검은색 조끼와 검은 승마화를 신은 여자였다.아름다운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지만 거만한 표정은 마치 사람을 깔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그녀의 곁에는 윤기가 흐르는 흑마가 있었는데 아주 위엄이 넘쳤다.“남궁유나?”그 사람이 다가오는 걸 본 남궁은설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남궁유나는 큰아버지의 딸로, 평소에도 둘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특히 남궁보성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로는 그녀는 더더욱 제멋대로였고 틈날 때마다 트집을 잡으며 괴롭혔다.“은설아, 자랑도 정도껏 해야지.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고? 웃겨 죽겠네.”남궁유나는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지난 몇 년간 우승할 수 있었던 건 다 사람들이 봐줬던 거야. 몰랐어? 설마 네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니?”“헛소리 좀 그만해.”남궁은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헛소리? 내 말이 기분 나쁘면 다시 한번 붙을까? 추풍이 정말 대단한 건지, 아니면 우리 흑룡이 한 수 위인지 바로 알 수 있잖아?”남궁유나는 도발했다.예전에는 남궁은설이 사랑을 독차지했고, 심지어 남궁보성이 가주였기 때문에 모두가 그녀에게 굽신거렸다. 하지만 이제는 본인의 아버지가 가주의 자리에 앉았으니 남궁유나는 당연히 아무것도 꺼릴 필요가 없다.“그래, 한번 해보자. 설마 내가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남궁은설은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승마를 배웠고 게다가 추풍 덕분에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좋아.”남궁유나는 두 눈이 반짝였다.“경마만 하고 이대로 끝내는 건 시시하잖아? 우리 내기할래?”“뭘 걸고 싶은데?”남궁은설이 물었다.“쉽게 생각하자. 말을 걸까? 지는 쪽이 말을 내놓는 거지.”남궁유나는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말을 건다고?”그 말을 들은 남궁은설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돈이나 물건은 거는 거라면 흔쾌히
두 여자는 적대심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남궁진혁의 말은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말 안장을 설치하고 장비까지 다 착용한 후 명품 말 두 마리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마리는 하얀색이고 다른 한 마리는 검은색이라 색깔 비교가 선명했다.남궁은설과 남궁유나의 친구들도 양 팀으로 갈라져서 서로 경쟁했다.“은설아, 화이팅! 네가 꼭 이길 거라 믿어.”유연지가 옆에서 목청껏 응원했다.“추풍은 무적이야. 어떤 말이든 추풍 앞에서는 거론할 가치도 없다고.”한솔도 자신만만했다.“맞아, 평소대로만 한다면 아주 쉽게 이길 수 있을 거야.”다른 친구들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진우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말의 다부진 근육만 봐도 추풍이 흑룡보다 조금 더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기수의 기술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경험이 많은 남궁은설이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이길 가능성이 꽤 컸다.“청아 언니, 두 말 중에 어느 말이 더 빠를 것 같아요?”다른 진영에 있는 봉연주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난 말을 잘 몰라서 모르겠어요.”이청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오늘 마장에 온 건 노는 것도 노는 거지만 남궁진혁과 사업 얘기를 하려고 온 것이었다. 경마니 뭐니 그저 재미로만 구경할 생각이었다.“몰라도 괜찮아요. 아무렇게나 한번 맞춰봐요.”봉연주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난 검은 말이 이기는 걸로 할게요.”이청아가 고민 없이 대답했다.“알았어요. 그럼 난 하얀 말이요.”봉연주는 승부욕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두 말 모두 명품 말이었지만 그녀는 하얀 말 추풍이 더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더 예쁘니까.그 시각 남궁은설과 남궁유나는 각자의 말을 타고 출발점에 도착하여 출발 준비를 마쳤다.“유나야, 흑룡 성격이 까칠하니까 이따가 탈 때 조심해.”남궁진혁은 앞으로 다가가 흑룡의 갈기를 쓰다듬었다.“알았어요.”남궁유나가 우렁차게 대답했다.“은설이도 꼭 조심해, 알았어? 우애가 첫째고 시합은 둘째야. 다들 명심해.”남궁진혁은 남
쿵!남궁은설은 공중에 붕 떴다가 잔디밭에 세게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머리가 빙빙 돌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은설아!”갑작스러운 상황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다급하게 달려가 남궁은설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보호 장비를 착용한 데다가 폭신한 잔디밭이었기에 넘어져도 크게 다치진 않았고 그저 어깨만 탈골되었다.“은설아, 괜찮아? 다친 데 없어?”유연지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의사! 빨리 의사 불러!”한솔이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만약 넘어지다가 머리를 부딪혔다면 큰일이니까.“어디 보자.”남궁진혁이 다가와 남궁은설을 자세하게 살폈다.“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어깨만 탈골됐어.”그러더니 두 손으로 남궁은설의 어깨를 잡고 비틀었다.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남궁은설의 고통스럽던 표정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하하... 내가 이겼다!”결승점으로 들어온 남궁유나가 다시 말을 돌려 의기양양하게 다가오더니 내려보면서 말했다.“은설아, 뭐 이렇게 어이없게 져? 어릴 적부터 말 탄 애가 말에서 떨어져? 창피해서 원.”“너!”남궁은설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조금 전 어찌 된 일인지 추풍이 질주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질주하는 도중에도 그 어떤 수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은설아, 졌어도 결과에 승복해야지. 추풍은 내가 데려간다!”콧대가 높아진 남궁유나와 달리 남궁은설의 안색은 말이 아니게 어두웠다. 승패가 이미 갈린 이상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은설아, 아까는 네가 너무 충동적이었어.”남궁진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승패는 둘째고 안전이 제일 우선이야. 내가 분명 얘기했었지? 무리하게 욕심부리지 말라고. 이것 봐, 욕심부리니까 넘어졌잖아. 다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다쳤더라면 네 아버지한테 뭐라 그래?”“미안해요.”남궁은설은 조금 억울했지만 방법이 없었다.“정말 분별이 없는 녀석이야. 시작 전에 분명 우애가 첫째고 경기는 둘째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위험을 무릅쓴 건데?”남궁진혁
남궁진혁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봉연주가 눈앞의 유진우를 싫어한다는 건 확실했다.“우리 남궁 가문이 언제부터 개나 소나 다 들였어? 이 녀석은 또 뭐야?”“오빠, 진우 오빠는 내 친구예요.”남궁은설이 다급하게 설명했다.“친구?”남궁진혁은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은설아, 네 신분이라면 아무나 네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야.”보험이나 파는 사회의 저소득층 인물이라면 그들의 시중을 들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은설 씨 사촌 오빠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유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무엄하다!”남궁유나가 두 눈을 부릅뜨고 욕설을 퍼부었다.“네까짓 게 뭔데 함부로 입을 놀려? 감히 우리 오빠를 모욕해? 확 거저!”그러더니 채찍을 들고 다짜고짜 때리려 했다. 그 모습에 남궁진혁이 말리면서 싸늘하게 말했다.“유진우라고 했지? 당신을 건드린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왜 날 모함하는 거지?”“모함?”유진우가 코웃음을 쳤다.“당신이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 거 아니야.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수작질 부렸고. 그래서 은설 씨가 말에서 떨어졌잖아. 정말 아무도 못 봤을 줄 알았어?”“지...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남궁진혁의 표정이 확 굳어졌고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추태를 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내 마음을 진정했다. 표정 관리가 어찌나 빠른지 옆 사람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정말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잘 알 거야. 고작 말 한 마리 때문에 자기 사촌 여동생까지 다치게 해? 양심을 개한테나 줘버렸어?”유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남궁진혁이 버럭 화를 냈다.“한 번만 더 헛소리를 지껄였다간 가만 안 둬!”“빌어먹을 놈이! 명령하는데 지금 당장 우리 오빠한테 사과해. 안 하면 본때를 보여주는 수가 있어.”남궁유나의 눈빛이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뭐야?”유진우가 들고 있는 검은 침을 본 순간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금 전 말의 머리에서 침이 튀어나오는 걸 똑똑히 보았고 게다가 피까지 묻어있었다. 누군가 손을 쓴 게 확실했다.“말도 안 돼. 저 자식의 말이 다 사실이었어?”경악도 잠시 사람들의 시선이 남궁진혁에게 향했다. 그가 뭐라 설명할지 궁금했다.“증거가 떡하니 있는데도 발뺌할 거야?”유진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침이 남궁진혁의 발밑에 떨어졌다.“무슨 뜻이야? 지금 날 의심해?”남궁진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당당하게 말했다.“누구의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은설이 해치는 일 절대 하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어.”“계속 아닌 척해 봐.”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당신 여동생이 방금 당신이 추풍을 만졌다고 인정까지 했어. 당신이 아니면 누구겠어?”“내가 추풍을 만지긴 했지만 저 침이 내 거라는 증거는 없잖아.”남궁진혁이 조리 있게 또박또박 말했다.“우리가 오기 전에 다른 사람이 미리 손을 썼을 수도 있지.”“맞아! 은설의 원수가 얼마나 많아. 자주 납치당하고 암살도 당할 뻔했잖아. 그러니까 누군가 말에 손을 쓴 것도 전혀 이상할 거 없지.”남궁유나가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어디 계속 변명해 봐.”유진우가 피식 웃었다.“은설이 넌 날 잘 알잖아. 내가 널 해칠 것 같아?”남궁진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아니요. 진혁 오빠가 날 얼마나 예뻐하는데 절대 해칠 리가 없죠. 분명 오해일 거예요.”남궁은설이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나쁜 일이라곤 한 적 없는 착한 사촌 오빠이기에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들었어? 나랑 은설이 우애가 얼마나 깊은지 봤지? 당신이 뭔데 이간질이야?”남궁진혁이 싸늘하게 말했다.“은설 씨,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앞으로 아무나 믿지 말아요.”유진우가 귀띔했다. 침 하나로 남궁진혁의 죄를 단정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은설이 조금만 더 경계심을 가진다면 그걸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