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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이우범은 월하노인

배인호가 대답했다.

“정아 클럽 갔다길래, 너 그 집에 없을 거 같아서.”

정아는 정말 대단했다. 클럽이 두 번째 집이라는 호언장담에 어울리는 행보였다.

“네. 알겠어요. 욕실에서 꺼내줘서 고마워요. 이제 돌아가도 돼요.”

나는 샤워 가운을 한번 고쳐 입으며 말했다.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배인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표정이 ‘날 돌려보내기는 쉽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속옷도 팬티도 안 입은 상태다. 아까 배인호가 내 발목을 확인할 때 내가 단단히 여미지 않았으면 벌써 다 보여주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가 여기 앉아 있는데 옷을 바꿔 입을 수도 없었다.

“민설아에 관해서 엄마가 어디까지 말씀해 주셨어?”

오히려 배인호가 먼저 그 여자 얘기를 꺼냈다.

“많지는 않아요. 그냥 그 여자랑 당신이 어떤 사이였는지, 당신이 나랑 결혼한 사실에 화가 나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렇게만 말씀해 주셨어요.”

내 시선은 바닥을 향했고 말투는 덤덤했다.

민설아 얘기가 나오자, 배인호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민설아는 그의 금기어였다. 배인호가 이혼을 반대하지만 않았으면 어머님이 나한테 이런 말씀을 하게끔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서란은 민설아와 많이 닮았어.”

배인호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첫사랑과 닮아서 좋아하게 되었다는 시나리오에 나는 카메오로 나오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민설아와 많이 닮지 못한 게 내 죄라면 죄다. 아니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인호는 나와 사랑에 빠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떻게 만났어요?”

긴 침묵 끝에 나는 질문을 던졌다.

“친구 소개로.”

배인호의 대답은 꽤 가벼웠다.

“만난 지 얼마 만에 사귀었어요?”

내가 또 질문을 던졌다.

배인호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민설아 얘기를 먼저 꺼내긴 했지만, 그 내용을 더 깊게 언급하고 싶지는 않아 보였다.

나는 그 마음을 읽어냈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저녁에 이우범과 만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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