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준은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장난치듯이 말했다.“그렇게 심각했어? 내 매력이 그 정도인가?”“나도 언제부터 시작된 마음인지 모르겠어.”고청하가 울먹이며 말했다.언제 시작한 건지 모르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천도준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그 모습을 본 고청하가 가까이 몸을 밀착했다.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치고 비좁은 차 안에서 그녀의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그녀는 두 손으로 천도준의 손을 감싸고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네 과거는 나한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난 너와 미래를 함께하고 싶어. 널 도와 네 능력치가 닿는 곳까지 같이 올라가고 싶어. 난 오남미처럼 너를 착취하지 않을 거야.”말을 마친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두 사람의 입술이 맞물린 순간, 천도준은 온몸에 전율이 일고 머릿속이 하얘졌다.곧이어 그는 손을 뻗어 고청하의 어깨를 잡고 살짝 그녀를 밀어냈다.“청하야, 미안해. 우리 둘 다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말을 마친 그는 차에서 내렸다.고청하는 멍하니 차에 앉아 떠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 운전대에 엎드려 소리 없이 흐느꼈다.천도준은 강변을 따라 정처 없이 걸었다.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직도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웠다.고청하가 자신을 남자로 생각할 줄은 몰랐다.그리고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해 올 줄도 몰랐다.어떻게 이 마음에 호응해 줘야 할까?그는 강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반짝이는 수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갑자기 담배가 생각났다. 그의 출신과 고청하의 출신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였다.출신 때문에 오남미와 결혼할 때, 속으로는 자신이 오남미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자책했던 그였다. 그런 마음 때문에 더 일에 매달렸고 돈을 버는데만 집중했다.하지만 결국 어머니의 수술비마저 빼앗겨 버렸다.만약 이수용이 마침 나타나지 않았더라면….그런 생각이 들자 천도준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그는 지갑에서 카드
아리송한 고청하의 답장에 천도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월셋방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존이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천도준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존, 아직 안 잤어요?”“도련님, 이수용 어르신께서 연락이 왔었습니다.”존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르신께서는 이미 본가로 복귀하셨고 천태영은 아직 여기 머무르는 것 같아요.”“본가에 무슨 일 생겼어요?”천도준이 물었다.이수용은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좌하라고 파견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급하게 본가로 복귀했다는 건 분명 큰일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다.아마 천태영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아직 확실한 건 모릅니다.”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하지만 어르신 말씀을 들어보면 천태영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서 가문을 물려받으라고 하지 않나, 천태영 한 명이 나타났다고 그를 보좌한다던 이수용이 다급히 가문으로 복귀하지 않나.상황을 봤을 때 아버지가 무능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천도준의 생각을 읽은 존이 말했다.“도련님, 가문의 이해관계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아요. 내부에서도 세력 다툼이 심해서 회장님 혼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예요.”“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천도준은 관심 없다는 얼굴로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현재 서천구 재개발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거의 만점에 가까운 답안지는 아버지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이수용이 옆에 없고 천태영이 아직 주변에 머무르는 상황이지만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아무리 천도영이 대단하다고 해도 이 도시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입지를 다져온 그를 쉽게 건들 수는 없을 것이다.다음 날 아침.천도준은 평소처럼 존과 함께 체력 훈련과 격투 기술을 훈련한 뒤, 회사로 출근했다.가는 길에 그는 박유리에게 전화를 걸어 모르는 사람이 병실을 찾으면 무조건 쫓아내라고 주의를 주었다.어제 그런 일
자재 협회에서 공공연히 정태건설을 저격하고 나섰다는 사실조차 그녀는 오기 직전에 알았다.장학명은 그녀를 건너 뛰고 회사를 대표해서 그 협약에 사인한 것이다.“장 부사장, 당신은 사내 규정을 어기고 사장인 내 동의 없이 사사로이 비 양심적인 협약에 사인했어요.”장학명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저희 혼자 빠지면 업계 다른 회사들의 연합 공세를 받을 겁니다. 영일이 이 도시에서 제일 공급상이라는 입지를 다졌더라도 합동 공세는 막을 수 없어요.”잠시 주저하던 그는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리고 그 계약은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정태건설에게만 유리한 계약이었어요. 동종 업계의 공분을 충분히 살만한 일이었고요. 그래서 그 계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었어요.”“지금 내가 세 살 먹은 애로 보여요?”고청하는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계약서에 다 사인했는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요? 영일에서 정태건설 좀 밀어주면 뭐가 어때서요? 정태건설 자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예요. 모든 공급 업체가 합세해서 정태건설을 저격하고 있는데 대체 배후에 뭐가 있는 건가요?”그녀는 이가 갈리고 손발이 떨렸다.고청하는 순진하고 멍청한 재벌 공주님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았고 해외에서 유학하면서도 공부에 게을리하지 않았다.그런 그녀에게 장학명의 알량한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그녀는 처음부터 천도준을 돕겠다는 일념으로 귀국했다. 회사에 조금 손실이 나더라도 상관없었다.그런데 돕겠다고 나선 결과가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장학명이 살짝 불쾌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고청하가 싸늘하게 말했다.“누가 뒤에서 장난 치는 건지는 모르겠고 장 부사장이 그쪽에서 뭘 받았는지도 모르지만 당장 정태건설에 가서 사과하세요. 계약 파기는 없어요. 못 하겠으면 회사를 떠나세요.”“고청하 씨!”장학명이 분노한 듯 말했다.“당신 미쳤어요? 영일자재가 입는 손실은 생각도 안 해요?”“상관 없어요!”고청하의 태도는 단호했다.장학명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저를
천도준이 회사를 나간 뒤, 마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다 들었죠? 대표님이 해결하신다니까 걱정 말고 일해요. 지난번에도 대표님이 서천 사업 절대 밑지는 장사 아니라고 말해서 잘 해결되었잖아요. 우리 대표님을 믿고 움직입시다!”그제야 직원들의 어두운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천도준이 대표로 부임하고 서천구 땅값이 폭등한 대 역전극 이후로 천도준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는 하늘로 치솟았다.천문동 별장.택히 한 대가 한 별장 앞에 멈추었다.차에서 내린 천도준은 대문 앞에 서서 고개를 들어 산기슭에 있는 별장을 바라봤다.그가 구매한 별장이었다.그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천태영, 강한 자는 비겁한 자에게 절대 지지 않아. 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절대 이길 수 없어.”어제 존이 했던 얘기와 오늘 갑자기 뒤바뀐 영일자재의 태도를 종합해 봤을 때 뒤에서 누가 움직이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천씨 가문이 가진 권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그도 가늠할 수 없었다.천태영이 돈으로 자재 업체를 매수하여 정태건설을 사냥하는 건 아주 쉬웠다.하지만 이 별장의 주인은 그가 매수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그는 옷매무시를 정리한 뒤,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이미 전화로 상황을 말씀드렸기에 그는 태클 없이 바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천도준을 본 집사가 그를 공손히 별채로 안내했다.우아한 고전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고전 풍의 별장 내부 인테리어와 무척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회장님, 천도준 씨 오셨습니다.”집사가 소파에 앉은 남자에게 다가가서 공손히 고했다.남자는 다급히 일어서서 천도준에게 다가왔다.금테 안경 뒤에 가려진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남자는 다름이 아닌 주건희 회장이었다.“주 회장님.”천도준이 허리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주건희도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자리를 권했다.“도준 씨, 어서 와서 앉아요. 우리 집에서는 예의 차릴 거 없어요. 자기 집처럼 편하게 있어도 돼요. 예전에 봤을
천도준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이수용 어르신은 제 귀인이십니다. 매번 귀찮은 일이 생길 때마다 어르신께 손을 내밀면 그분의 기대를 저버리는 짓 아니겠습니까?”“하하… 그렇긴 하죠.”주건희가 날카로운 눈으로 천도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말단 사원이었던 천 대표를 끌어준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때 천 대표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않았더라면 3년 안에 부장까지 진급하는 쾌거는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찻잔을 내려놓은 주건희가 본론을 말했다.“사실 연락을 받은 뒤에 이미 인근 도시에서 공급 업체 세 군데에 연락했어요. 그들의 실력이라면 서천구 개발 사업에 필요한 물량을 맞출 수 있을 거예요. 단지 단가나 지불 방식이 우리 시보다는 많이 까다로울 거예요.”“이해합니다. 일단 회사는 살리고 봐야죠. 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천도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주건희 회장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죠. 천도준 씨는 내가 먼저 발견하고 키워준 인재 아닙니까. 설마 내가 모른 척할 줄 알았어요? 사업 판은 전쟁터와 같아요. 상부상조해야 더 오래갈 수 있는 거지요.”주건희는 아무렇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며 찻잔을 들었다.천도준은 찻잔을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회장님께 확답을 들었으니 이만 회사로 복귀하겠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아요.”“그래요. 각 공급 업체에서 제시한 단가와 자세한 사항은 메일로 보낼게요.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서 가서 계약하면 됩니다.”별장을 나온 천도준은 하늘을 보며 걸었다.오늘따라 햇살이 따스했다.주건희와의 독대에서 너무 긴장한 탓인지 등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고개를 돌려 주건희의 별장을 바라본 천도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아까 그가 조금만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주건희와 대화가 길어졌더라면 이수용이 본가로 복귀했다는 사실이 탄로날 수도 있었다.지난번에 이대광이 약간 장난친 것 가지고 이수용이 직접 전면에 나섰는
승진할 걸까?그녀는 기쁘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천도준 이 녀석, 승진하고도 한 마디 말도 없었어?’고개를 끄덕인 고청하가 말했다.“그럼 천 대표님 만나게 해주세요.”그녀가 알아본 정태건설 자료에 의하면 이 회사는 한 대기업 회장의 산하 계열사중 하나였다.천도준이 대표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기에 필요하다면 천도준을 위해 자신이 나서서 그분을 만나 해명할 생각이었다.“죄송하지만 대표님은 지금 자리를 비우셨어요.”여직원이 말했다.고청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벌써 윗분을 만나러 간 걸까?서천구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현재 정태건설이 자재 업체의 협동 공격을 받고 있으니 천도준은 대표로서 그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고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도와주려고 귀국했는데 첫 단추가 이렇게 꼬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만약 장학명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절대 이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이때, 등 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천도준은 안내 데스크 앞에 있는 고청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청하 너 회사에는 어쩐 일이야?”그는 한숨을 쉬며 안내 데스크 직원을 바라봤다. 나중에 알려주려고 일부러 말 안 했는데 말하기도 전에 그녀가 그의 진짜 신분을 알아버렸다.고청하는 천도준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안 그래도 너한테 해명할 일이 있어. 자재 협회가 너의 회사와 보이콧을 선언했다며?”“그걸 어떻게 알았어?”천도준이 당황한 듯 물었다.“지금 그게 중요해?”고청하는 천도준을 끌고 구석으로 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혹시 윗분한테 불려가서 깨지고 오는 길이야?”윗분?천도준은 당황한 얼굴로 고청하를 바라보았다.아직 모르는 건가?그가 멍하니 있자 고청하는 조바심이 났다.“너 부장에서 대표로 승진한 거 알아. 그런 시점에서 서천구 개발 사업에 이런 차질이 생겼으니 배후에 있는 그분이 분명 너한테 엄청 뭐라고 했겠지.”천
고청하는 아리송한 말만 남기고 홀연히 가버렸다.천도준이 일을 해결했다면 이제 회사로 돌아가서 장학명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 볼 차례였다.천도준은 멍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뭘 잘못했다고 저러는 거지?”그는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기대에 찬 직원들의 시선이 그를 향하자 그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미 해결했으니 다들 일하세요.”환호성이 사무실에서 터져나왔다.“역시 대표님은 해낼 줄 알았어요!”“우리 대표님 정말 믿음직하세요. 이제 걱정 없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겠어요.”“자, 다 일합시다. 대표님이 힘들게 문제를 해결했는데 저희도 놀고 먹을 수는 없죠.”열띤 사무실 분위기를 보고 천도준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한편 고청하는 미친 듯이 질주하여 영일자재 주차장에 도착했다.사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바로 장학명을 호출하지는 않았다.사실 그녀는 이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했다.그는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키워낸 영일자재의 실세였다. 비록 그녀가 이곳으로 오면서 사장 자리에 올랐지만 회사 직원들에게 장학명의 명망은 그녀를 훨씬 초월했다.귀국한 진짜 이유를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장학명을 자른다면 부모님 귀에 이 일이 들어갈 것은 물론 상황이 그녀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그녀는 아직 부모님이 천도준을 성에 차할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비록 그녀의 눈에는 훌륭하다고 하지만 부모님 입장은 달랐다.그래서 조용히 귀국해서 최선을 다해 천도준을 최정상으로 올린 뒤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내는 게 그녀의 계획이었다.그랬기에 더욱 더 장학명을 자극할 수 없었다.잠깐의 고민 끝에 답이 나오지 않자 그녀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컴퓨터를 열었다. 그리고 검색창에 주건희라는 이름을 검색했다.유명인사답게 인터넷에서 그의 상세한 프로필을 검색할 수 있었다.주건희에 관련한 정보를 확인한 고청하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저런 인물이
천도준은 울적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이율 병원에서 본 광경이 가시처럼 박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전에 걱정했던 일이 이렇게 일찍 발생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절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둘 수는 없었다.“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존이 의아한 얼굴로 천도준을 쳐다봤다.천도준은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존, 여기서 나가면 피지컬 훈련 진행 도와줘요.”존은 미간을 찌푸렸다.“도련님, 시간도 늦은 데다 오늘 하루 종일 바삐 돌아쳤는데 괜찮겠어요?”그는 천도준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진 것만은 분명했다.“존, 있잖아요. 전에 매일 아침마다 훈련을 했었는데, 얼마나 더 지나야 천태영을 이길 수 있을까요?”천도준이 물었다.존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최소 일 년은 지나야 합니다.”현재 매일 아침 천도준을 위해 짠 훈련 계획은 이미 한계에 달한 수준이었다.하지만 천태영은 천씨 가문에서 최정예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고, 천도준으로 하여금 일 년 내에 그런 천태영에게 견줄만한 실력을 갖추게 하는 건 존이 예상하는 가장 최선의 결과였다.“그럼 만약 한 달 내에 천태영이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면요?”천도준의 목소리는 더없이 단호했다.“도련님….”존은 천도준이 왜 갑자기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천도준의 두 눈빛에 날이 바짝 섰다.“딱 한 달이에요. 어떻게 훈련을 시키는 다 좋아요. 훈련 강도가 10배, 100배가 된다고 해도 좋아요. 하지만 반드시 한 달 뒤, 천태영을 마주했을 때 그 녀석을 때려눕히고 말 거예요!”단호한 목소리에는 존마저 소름이 돋을 정도의 한기가 서려 있었다.……이튿날.이른 아침부터 영일자재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대표 사무실 밖.장학명은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물들인 채 테이블 위의 모니터에 보이는 영일자재 홈페이지를 가리키며 고청하를 향해 버럭 화를 냈다.“고 대표님,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겁니까? 몰래 영일자재가 정태 건설
이은화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 청하가 중간에 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고만 있겠단 말이에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중요한 순간에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요?”“알았어.”고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동의한 셈이다. “그저 여기에서 며칠 더 묵었을 뿐이야. 천씨 가문쪽과의 협의를 또 지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 돼.”고덕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천씨 가문의 여세를 몰아 당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요. 게다가 당신을 응원해요.”이은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자식이라고는 청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당신이 이미 이룬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예요.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돼요. 청하의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예요.”“하지만…”고덕화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었다.“저는 저희의 잘못된 생각으로 청하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천씨 가문을 떠나서, 천도준은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만약 청하가 우리 때문에 헤어지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어요?”이은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당신 설마 우리 청하가 석유 재벌이나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의 자식들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고덕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바로 명쾌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하지. 모레 여전히 이곳에서 파티를 열어 천도준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견례를 갖는 거지.”“좋아요. 이래야 좋은 아버지죠.”이은화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덕화와 정강수가 회관 주차장으로 달려갔을 때, 천도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저 멀리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회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덕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강수가 다급히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은 천도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탔
그 말에 정강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정강수는 국화의 대가였다. 그는 도도하고 자신의 존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사과라는 단어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사과하라니?그저 멍하니 서 있는 정강수를 보고, 유 원장은 화가 났다.“너, 나랑 박씨 어르신을 믿어, 못 믿어?”박씨 어르신도 한숨을 쉬었다.“가, 어서 사과 해.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뭐.”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 그것도 천씨 가문 가주가 아들을 위해 이미연에게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천도준이 정강수의 사과를 받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순간, 정강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유 원장이 혼자 이러는 거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박씨 어르신까지 이러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정강수는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엄마, 아빠. 제가 도준이를 잡으러 갈게요.”고청하는 감격에 겨워 밖으로 뛰쳐나갔다.오해가 풀렸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여자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정강수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안채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고덕화와 이은화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늘 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기쁨에서 분노로, 다시 공포로 변했다. 두 사람은 그저 오랜 친구들을 불러 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믿을만한 남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천도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고덕화는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흘겨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아직도 나를 속일 수가 있지
정강수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들은 모두 오래된 절친한 친구고,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이어서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누구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유 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너랑 싸우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아? 너한테 맞으면 난 내가 직접 치료하면 되는데, 넌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 치료 못 시켜줘.”“너……”정강수는 얼굴을 붉혔다. 고덕화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같은 편들끼리 왜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때, 박씨 어르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유 원장과 똑같이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강수를 바라보았다.“강수야.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유 원장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너 까지 왜……”정강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세 사람 중, 박씨 어르신이 제일 진중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아니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고덕화가 다급히 물었다.이은화와 고덕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유 원장은 성격이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를 가리키며 정강수에게 소리를 질렀다.“다시 한번 저 그림을 자세히 봐봐. 그래도 천도준이 선물한 그림이 가짜라고 한다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에 정강수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천도준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내가 진짜 잘 못 본 걸까?’정강수는 다시 를 들고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아까와 비교하면, 정강수는 확실히 침착했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았다. 고덕화 일행은 막막했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
그의 한 마디에 방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정강수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으로 천도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고청하는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갸냘픈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처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리는 자리는 이렇게 완전히 망해버렸다.그럼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고청하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준아……”그녀가 막 말을 내뱉은 순간, 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당백호의 는 이수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그는 이수용이 고작 그림 한 점으로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씨 어르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해도 절대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바로 정강수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그는 그림을 단 한 번만 보고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건 아무리 전문가여도 너무 독단적이었다.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기쁨과 환희가 차 넘쳐야 할 자리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고청하의 목소리를 듣고, 천도준은 웃으며 말했다.“청하야, 난 괜찮아. 난 이만 나가볼게.”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가 계속 여기에 있는다면 고청하만 중간에서 곤란해질 뿐이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진실된 감정을 각별히 소중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난처해하는 고청하를 보고 있자니 천도준은 마음이 아파왔다.말을 마친 천도준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준아……”고청하는 그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고덕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청하야. 아직도 모르겠어?”“아빠…… 아빠는 제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바라세요?”고청하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청하야, 천도준은 이 도시에서 젊은 인재라고
쿵.그의 한 마디에 방 안의 몇 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모두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장품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서화 면에서는 정강수처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없었다.한 폭의 그림이 거의 50억에 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선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그 말에 천도준도 깜짝 놀랐다. 이수용은 너무 손이 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50억을 쓰다니?잠시 후, 천도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50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말은 잘하네?”정강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 흉악한 분노가 일었다. 고청하는 눈을 반짝였다. 천도준의 몸값을 생각했을 때, 50억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가 막 뭐라고 해명하려고 할 때, 정강수는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말을 걸었다.“방금 잘 못 들었어? 내가 말한 건 3년 전 시가야.”“잘 들었습니다.”천도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49억 2천 8백만원. 구체적인 가격을 어떻게 알았냐고?”정강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이 그림이 경매에 팔렸을 때, 내가 그 경매 현장에 있었지. 이 그림은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한 신비로운 구매자 손에 들어갔어. 게다가 이 그림은 3년 전에 사간 이후로 한 번도 세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지. 나이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그때 그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하진 않겠지?”그 말에 고청하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두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3년 전이면 천도준과 오남미가 결혼하던 해다.그때의 천도준이 어떻게 50억 짜리 그림을 살 수 있었을까?‘설마…… 진짜 가짜란 말이야?’순간, 고청하의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공허해졌다.고덕화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그는 정강수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국화의 대가이고, 이 방면에
그의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덕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청하 어머니의 표정도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도준이는 가짜 그림을 선물할 사람이 아니에요.”고청하는 다급히 해명했다.이건 천도준이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녀의 가세로 보아, 고청하의 부모님은 천도준이 준 선물의 가치를 절대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가짜라면 그건 의미가 달라진다.이건 가식적이고 무례한 일이 아닌가?“그래, 맞아. 한 번 더 자세히 봐. 함부로 말하지 말고.”유 원장도 고청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천도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도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짜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정강수가 잘못 본게 틀림없었다.“그래, 아까 그저 얼핏 봤잖아. 네가 잘못본 게 틀림없을 거야.”박씨 어르신이 말했다.“뭐?”정강수는 박씨 어르신을 노려보았다.그는 국화의 대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서화에 빠져있었고 직접 본 서화는 부지기수였다.당백호의 는 정강수가 한 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당신……”박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천도준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강수를 향해 말했다. “이 당나귀 같은 놈아. 오늘은 청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 날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이 어떻게 가짜 그림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만약 이번 일로 천도준이 대노한다면 천씨 가문의 명령하나 만으로 정강수는 그동안의 명성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왜 나를 탓하는 거야?”정강수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난 저 녀석이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선물로 가짜 그림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보잘것 없는 선물이라도 정은 깊다는 말도 있는데 값비싼 선물을 주지 못해
“걱정하지 마. 이따가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테니까.”박씨 어르신은 워낙 권위가 높은 사람인지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옆에 있던 유 원장과 정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마시게나. 우린 오랜 벗이잖아. 우리를 초대했으니까 우리도 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도대체 어느 잘난 놈이 청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똑똑히 봐둬야겠어.”고덕화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함께 주먹을 맞잡았다.바로 그때, 고청하는 잔뜩 민망해하는 천도준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천도준을 보자마자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저…… 저 사람이 고덕화의 예비 사위라고? 세상에.’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권세도 높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천도준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이렇게 큰 인물을 감히 누가 누구를 테스트하고, 누가 누구를 단련시킨단 말인가?박씨 어르신은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이율 병원 원장인 유 원장은 천도준의 어머니가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는 천도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장 의사를 통해 천도준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말한, 우리더러 잘 테스트해봐라던 그 사람이야?”유 원장이 말했다.옆에 있던 박씨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유 원장이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사실, 천도준은 방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오늘 밤 고청하의 부모님을 만난 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함께 있을 줄이야.박씨 어르신뿐만 아니라 유 원장도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이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어머니를 돌봐느라 병원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때에 유 원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오직 그 점잖은 얼굴을 한 사람과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씨 어르신, 유 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인
죽림 정원.웃음 소리가 본연의 고즈넉함을 깨뜨렸다. 고청하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몇 몇 오랜 벗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한 쪽의 대원들 외에, 국화의 대가, 의학의 권위자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내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고청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따가 천도준이 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자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못 본 새에 이율 병원 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더군.”중년 남자는 활짝 웃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외국의 의학 잡지에 자네가 자주 등장하더군.”“하하하. 그만 칭찬하게나. 이게 다 검은 머리가 희도록 밤 새서 노력한 결과물이니……”유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정강수가 제일 자격이 있지.”그 말에 점잖은 외모에 안경을 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니? 정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건 내가 아니라 고씨 지. 석유 재벌과 실리콘밸리의 가물들과 어울려 놀잖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이번에 너희를 부른 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바로 사윗감을 테스트 하는 거지.”박씨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말에 유 원장과 정강수는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앞다투어 고덕화의 예비 사위가 누구인지 물었다.고덕화는 말없이 웃으며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생각지도 못했어. 덕화가 이 도시에서 가문을 일으켰는데 사위도 이 도시에서 찾고, 어느 집 재주가 뛰어난 놈이 우리 조카딸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거야?”유 원장은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다.“기다려보면 알아.”고덕화는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고청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마침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이 녀석들이 나를 도와 그 녀석이 진짜 합격된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할거야.”고청하는 두 손을 맞잡
세 개의 분양 아파트 실시간 데이터는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이번에 나온 매물들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그는 큰 주목을 받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이익화를 실현하려고 했다.오후 5시, 천도준은 마영석에게 오늘 밤 축하연을 마련하라고 했다.하지만 그의 테이블로 배달된 초대장 하나가 그의 계획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초대장에 적힌 글자를 보고, 천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기뻐하면서 조금 놀란 것 같았다.초대장에는 사인회관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사인회관의 초대장이다. 입문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누가 보낸 거지?”그는 울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야. 그저 초대장만 건네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천도준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다.이 초대장은 진짜 초대장이 맞았다. 사인회관의 명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무도 감히 이 초대장을 위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초대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혹시 박씨 어르신인가?’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의 신분으로 이 초대장을 보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축하연은 오늘 너희끼리 해야겠어. 나는 약속 장소로 가봐야 해.”그는 초대장을 흔들며 마영석에게 말을 걸었다.만약 정말 박씨 어르신이 보낸 초대장이라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간단한 초대장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건희, 주준용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지금 상대방이 직접 그의 손에 가져다줬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인회관은 여전히 독특한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자랑했다.작은 뜰.환한 등불이 비추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진정한 사인회관의 단골손님만이, 전체 사인회관에서 이 대나무 숲의 작은 뜰에 출입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