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우리 가문 사람이야.”이연준의 말에 유나은은 조금 놀라버렸다.설마 그가 직접 그녀가 누군지 밝힐 줄은 몰랐으니까.하지만 다시 자세히 곱씹어보면 그는 그녀가 조카라는 사실을 인정한 건 아니었다.윤수경은 유나은의 가운에 적혀진 이름을 보고는 당황함이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로 얘기했다.“나, 나는... 유 선생님이 이씨 집안 사람인 줄은 몰랐어...”‘이 여자’라고 부르던 호칭은 어느새 ‘유 선생님’으로 바뀌어 있었다.유나은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리고는 살짝 웃었다.“성이 달라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양수경은 좀처럼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성이 다른 걸 보면 핏줄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이씨 가문 사람들을 건드려서 좋을 건 없기에 지금 그녀는 상당히 당황한 얼굴이었다.게다가 아직 이연준과 결혼한 것도 아니니 더욱더 무서웠다.그렇게 혼자 초조해하고 있을 때 유나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양수경 씨 맞으시죠? 항상 삼촌 곁에서 같이 사진 찍히는 거 봤어요. 삼촌이 양수경 씨를 매우 좋아하나 봐요.”그 말에 양수경은 어깨가 으쓱해지며 기분이 들떴다.이씨 가문 사람에게 이연준의 여자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연준 씨가 어디 갈 때면 항상 저만 부르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불편하다나 뭐라나.”윤수경은 행복한 얼굴로 얘기했다.유나은은 여전히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미세하게 경직되어 있었다.“그러면 곧 좋은 소식 들을 수 있는 거예요?”윤수경은 볼을 예쁜 핑크빛으로 물들이며 이연준을 바라보았다.“연준 씨가 대답해줘.”하지만 이연준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몸을 옆으로 틀어 코트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이 각도에서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터에 파란색 불꽃이 일었다.담배에 불을 붙이기 전 유나은이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삼촌, 여기 병원이에요. 담배 피울 거면 나가서 피우세요.”그 말에 이연준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
이연준과 이런 사이가 된 지 어언 3년, 그녀는 여자친구라는 타이틀도 받지 못했고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 항상 이렇게 숨어서 만나야 했다.사실 이런 떳떳하지 못한 관계는 진작에 끊어냈어야 했다.하지만 함께하는 3년 동안 이연준은 그녀의 몸에 중독이라도 된 양 처음에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만 부르다가 그 뒤로는 일주일에 세 번, 심지어는 보름 내내 그녀를 놓아주지 않기도 했다.“애기야...”남자의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를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두 사람은 해암 별장에 도착한 뒤 바로 침실로 향했고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침대 위였다.목에 아릿한 고통이 일어 그녀는 낮게 신음했다.“살살, 제발 살살...”“살살 못 해.”침대 위에서의 그는 한 마리의 흉포한 짐승이 따로 없었다. 열에 일곱 번은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애걸복걸을 하고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세 번의 격렬한 사랑을 나눈 뒤 유나은은 침대에 완전히 쓰러져버렸다. 몸은 땀범벅이었고 두 눈은 뜰 힘조차 없었다.그녀의 귓가에 또다시 뜨거운 입술이 내려앉았다.이에 그녀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그를 밀어냈다.“안돼. 나 더 이상은 무리야.”이연준은 그녀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있는 힘껏 자신의 것을 밀어 넣었다.유나은은 침대 시트를 꽉 쥐고 또다시 그를 받아냈다.“착하네.”이연준은 땀으로 가득한 그녀의 쇄골과 목을 부드럽게 매만졌다.열기로 인해 핑크빛으로 물든 피부가 무척이나 탐스러웠다.“내 옆에 있는 게 싫어?”유나은은 거의 실신한 상태로 은은한 불빛이 감도는 천장을 바라보았다.만약 이연준의 옆에 있는 게 좋으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그는 체력도 좋고 몸매도 좋으며 관계 뒤의 매너 또한 완벽했다. 잠자리 파트너로서는 가히 최고였다.하지만 그는 이연준이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말하자면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와 같았다.“다른 생각할 여유가 있나 봐?”그는 그녀의 턱을 잡아 시선을 마주치게 했다.유나은은 그의 오뚝 솟은 큰 코를 바라보
얼마나 지났을까, 유나은은 매콤한 떡볶이 냄새를 맡으며 정신을 차렸다.눈을 천천히 떠보니 주승아가 병상 옆에서 치즈가 듬뿍 들어간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승아야, 다음부터는 병실 안에서 먹지 마.”그녀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에 주승아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빵빵한 볼에 묻은 소스를 티슈로 벅벅 닦고 말했다.“나은아, 너 괜찮아?”그녀는 입에 있는 것을 마저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몸은 좀 어때?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응, 괜찮아졌어.”기절하기 전과 비교하면 안색은 확실히 좋아졌다.“그런데 승아 네가 여기는 왜 있어?”“아침 일찍 너한테 전화하니까 서민호라는 의사 선생님이 네 전화를 대신 받아서 네가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줬어. 그래서 바로 여기로 달려왔지.”유나은이 계속해서 물었다.“내 상황을 뭐라고 얘기했는데?”그녀는 기절하기 전 속이 울렁거리고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심장 고동이 빨라졌던 것만 기억하고 있다.주승아는 그녀에게 따뜻한 물을 따라주었다.“급성 위염이래.”유나은은 물을 건네받지 않고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되물었다.“급성 위염이라고?”“그래. 왜, 아닌 것 같아?”주승아는 그녀가 편히 기댈 수 있게 옆에 있는 쿠션을 등 뒤에 받쳐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그녀에게 물을 건네주었다.유나은은 물을 받아들고 한잔을 전부 비워냈다.주승아는 그제야 다시 의자에 앉아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녀 앞에는 떡볶이 먹방 중인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유나은이 정신을 차리기 전, 그녀는 떡볶이 먹방을 보다 침이 고여 결국 똑같은 떡볶이를 주문하고야 말았다.조금 뒤, 서민호가 그녀의 병실로 들어왔다. 그는 혈색이 제대로 돌아온 유나은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몸은 좀 어때?”유나은은 그를 바라보았다.“응, 이제 괜찮아졌어. 고마워.”“고맙기는.”서민호는 지금 마음이 불편했다.유나은은 그 모습을 보고 그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도 있었어?”그의 걱정에
그러지 않아도 주승아와의 대화를 그가 들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보다시피 그는 다른 의미로 그녀의 초조한 마음을 잠재워주었다.이연준은 전부 다 들어버렸다.“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 평소에는 잘만 떠들더니?”이연준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얼굴이 닿기도 전에 유나은은 몸을 뒤로해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러고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나랑 승아는 둘만 있을 때 원래 아무 말이나 막 해. 방금 그건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고. 삼촌한테 한 얘기 아니야.”이연준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내 손 피하지 마.”유나은은 손을 말아쥐고 이번에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내가 그때 들어오지 않았으면 솔직히 얘기할 생각이었어, 아니면 거짓말을 지어낼 생각이었어?”이연준은 그녀의 턱을 잡고 물었다.유나은은 그와 눈을 마주칠 배짱은 없었지만 말은 단호하게 뱉어냈다.“아무한테도 말 안 해. 그게 승아라도 얘기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내가 걱정된다면?”턱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맑고 흰 피부가 그의 힘 때문에 턱 부분이 빨갛게 변해버렸다.유나은은 조금 아픈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물었다.“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내 옆에 있어. 널 계속 지켜볼 거야.”그 말에 유나은은 순간 흥분하며 그의 손을 치워버렸다.“그날 분명 약속했잖아. 날 놓아...”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이연준은 손을 거두어들이더니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로 얘기했다.“계속 얘기해 봐. 내가 그날 뭐라고 약속했는지.”유나은은 속으로 그에게 욕을 퍼부었다.그 시각, 병실 밖.유나은이 걱정 됐던 주승아는 두 사람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듣기 위해 진명수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틈을 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두 걸음도 채 가지 못하고 바로 그에게 제지당했다.“주승아 씨.”주상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병실 문을 가리켰다.“들어가려던 게 아니라 그냥 문밖에서 지켜보기만 하려고요.”“안
유나은의 동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넘어가야 하지?“너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왜 그래?”주승아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말을 이었다.“솔직하게 불어. 너랑 네 삼촌 사이에 뭔가 비밀이 있는 거지?”유나은은 침을 꼴깍 삼켰다.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 사이이기에 주승아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평소에는 덤벙거리며 믿음직한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녀지만 중요한 일에서는 수사관보다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 원하는 것을 꼭 알아내고야 마는 그녀였다.어쩌면 이연준과의 사이를 알아채는 것도 시간문제일지 모른다.유나은은 아주 잠깐 차라리 이대로 다 털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연준에게 했던 약속했던 말이 떠올라 결국 거짓말을 택했다.“비밀은 무슨.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하지만 주승아는 절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그럼 이연준이 왜 너를 보러 여기까지 왔는지 납득이 가게 설명해 봐. 나는 네가 그 집안에서 어떤 처지인지 다 알고 있는 거 알지? 잘 생각하고 대답해야 할 거야.”“근처에 볼일 보러 왔다가 들렸대.”유나은은 그새 핑계를 생각해두었다.“그게 이씨 집안의 다른 사람이었다면 백 보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방금 여기로 온 건 이연준이야. 그 이연준이라고!”그렇다.그는 이연준이었다.이름만 들어도 절로 뒷걸음질 치게 된다는 그 이연준이었다.주승아는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유나은이 말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더 추궁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그 비서 말이야. 나를 병실 쪽으로는 한 걸음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어.”주승아는 화제를 돌렸다.“그래서 얘기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지. 그러다 문이 열리고 네 삼촌이 나오는데 내가 그 얼굴을 보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나는 너희 삼촌이 널 죽이기라도 한 줄 알았어.”“...”주승아는 말을 하다가 유나은의 턱에 남겨진 빨간색 자국을 발견하더니 얼굴이
주승아는 이미 한참이나 오래전부터 거의 세뇌하듯 외삼촌 자랑을 했었다.미남인 데다 키도 크고 집안도 좋으며 게다가 성격도 다정다감하다는 등 할 수 있는 칭찬은 전부 다 갖다 붙였다.“나은아, 너 알지. 내가 네 앞에서 우리 삼촌 자랑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그런데 정말 그만큼 사람이 좋아. 게다가 계속 솔로였고.”주승아는 전혀 동요가 없는 그녀를 보더니 다시 한번 어필했다.“비록 나한테 삼촌뻘이기는 한데. 나이는 아직 30세도 안 됐어. 정말 연애하면 후회 없을 그럴 남자라니까.”유나은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으니까.그녀는 아직 선을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주승아는 그녀의 난감한 기색을 알아채고 말했다.“나은아, 갑작스럽게 선을 보라고 해서 당황한 거 알아. 하지만 우리 삼촌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그리고 나도 평소에는 삼촌을 잘 못 봐. 그래서 이번이 어쩌면 기회라고 생각했어.”유나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너는 어제 나한테 이 얘기를 했었어야 했어.”그러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난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주승아는 그녀의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나은아, 이번 한 번만 봐주라, 응? 딱 한 번만 맞선 보러 가자.”“이제 무를 수도 없는 거 아니야?”“그럼 오케이 한 거야?”주승아는 활짝 웃었다.유나은은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친구 사귄다고 생각하지 뭐. 그러다 마음이 맞으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거고 안 되면 그냥 친구로 남는 거고. 친구와 인맥은 많은 게 좋다고 네가 항상 그랬지 아마?”사실 그녀는 이연준의 태도에 마음이 계속 복잡한 상태였다.그녀를 놓아준 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으니까.3년간, 유나은은 그가 아닌 다른 남자는 만나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면 맞선 보는 것으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지도 몰랐다.“역시 나은이 너밖에 없어!”주승아
유나은은 맞선을 볼 배짱은 있어도 이 사실을 이연준에게 들킬 배짱은 없는 듯했다. 지금 그녀가 얼마나 떨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연준 씨가 원래 오려고 했는데 급하게 중요한 회의가 잡히는 바람에 저 혼자 오게 된 거예요.”양수경은 친절하게 유나은의 손을 잡아당겼고 그녀는 유나은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이연준이 안 온다는 양수경 말에 그녀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안 와서 정말 다행이다. 밖에서 맞선을 보는 걸 그한테 들켰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한편, 양수경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연준 씨가 내 능력을 믿는다고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삼촌이 이런 중요한 일을 양수경 씨한테 맡긴 걸 보면 양수경 씨의 능력을 인정한다는 뜻 아니겠어요?”“글쎄요.”양수경은 칭찬에 마음이 한껏 들떴다. 입술을 가리고 웃던 양수경은 그제야 옆에 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은 씨 친구분들이에요?”유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수경 씨, 말씀 많이 들었어요.”주승아가 거침없이 인사를 건넸다.“절 알아요?”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물론이죠.”농담이 아니라 정말 양수경이라는 이 여자를 알고 있었다. 이연준 옆에 있는 그 여자를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꽤 유명한 사람인데 이곳에 와서 유나은과 친한 척할 줄은 몰랐다. 양수경은 옆에 있는 유나은을 쳐다보았다.“나은 씨가 알려준 거예요?”주승아는 유나은을 한번 쳐다보고는 양수경을 향해 웃었다.이어 양수경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두 남자를 다시 쳐다보았다. “친구 모임이에요? 아니면...”주승아는 당당하게 사실대로 말했다.“맞선 자리예요.”양수경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유나은을 쳐다보았다.“나은 씨도...”“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저만 맞선을 보는 거고 나은이는 그저 저랑 같이 나온 것뿐이에요.”그러나 양수경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럼
“안에 계십니다.”진명수가 옆으로 몸을 돌리며 한 방향을 가리키는데 그곳은 식당의 별실이었다. 그녀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은 이리 일어날 줄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이연준이 왜 갑자기 식당에 왔는지 추측할 여유가 없었다.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요? 삼촌도 왔구나...”그녀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친구들이랑 밥 먹고 있었어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진명수의 옆으로 지나갔다.“나은 씨, 잠깐만요.”그의 부름에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도련님께서 오실 때 안색이 좋지 않으셨습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 진 비서님께서 신경 많이 써주세요. 전 친구들이 기다려서 이만 가볼게요.”재빨리 도망치는 그녀를 진명수는 다시 부를 기회조차 없었다. 유나은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도련님의 노여움을 산다면 누구도 좋은 결과가 없을 텐데.”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진명수의 얼굴을 보니 망했다는 표정이었다. 그에게도 덩달아 화가 미치기 때문이다. 한편, 유나은은 황급히 테이블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맞은편에 있던 손지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아가 쓸데없는 얘기를 했어요. 신경 쓰지 말아요.”주승아와 유나은의 사이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나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신경 쓰지 않아요. 굳이 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승아와는 친한 사이니까 정말 별거 아니에요.”“봤지? 삼촌이 괜한 걱정을 한 거라니까.”주승아가 헤벌쭉 웃었다. “언제 어디서든 입조심해.”“알았어. 나은이가 혼자 밖에서 지내는 게 안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랬던 거야. 삼촌은 잘 아는 사람이니까 나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고.”말을 마친 주승아가 유나은을 향해 눈을 깜빡거렸다. 그 모습에 유나은은 웃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