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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그러지 않아도 주승아와의 대화를 그가 들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보다시피 그는 다른 의미로 그녀의 초조한 마음을 잠재워주었다.

이연준은 전부 다 들어버렸다.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 평소에는 잘만 떠들더니?”

이연준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얼굴이 닿기도 전에 유나은은 몸을 뒤로해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러고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랑 승아는 둘만 있을 때 원래 아무 말이나 막 해. 방금 그건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고. 삼촌한테 한 얘기 아니야.”

이연준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손 피하지 마.”

유나은은 손을 말아쥐고 이번에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그때 들어오지 않았으면 솔직히 얘기할 생각이었어, 아니면 거짓말을 지어낼 생각이었어?”

이연준은 그녀의 턱을 잡고 물었다.

유나은은 그와 눈을 마주칠 배짱은 없었지만 말은 단호하게 뱉어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해. 그게 승아라도 얘기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걱정된다면?”

턱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맑고 흰 피부가 그의 힘 때문에 턱 부분이 빨갛게 변해버렸다.

유나은은 조금 아픈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물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내 옆에 있어. 널 계속 지켜볼 거야.”

그 말에 유나은은 순간 흥분하며 그의 손을 치워버렸다.

“그날 분명 약속했잖아. 날 놓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연준은 손을 거두어들이더니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로 얘기했다.

“계속 얘기해 봐. 내가 그날 뭐라고 약속했는지.”

유나은은 속으로 그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 시각, 병실 밖.

유나은이 걱정 됐던 주승아는 두 사람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듣기 위해 진명수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틈을 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두 걸음도 채 가지 못하고 바로 그에게 제지당했다.

“주승아 씨.”

주상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병실 문을 가리켰다.

“들어가려던 게 아니라 그냥 문밖에서 지켜보기만 하려고요.”

“안 됩니다. 도련님께서는 나은 씨와 대화할 때 그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진명수는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이에 주승아는 그의 가까이에 다가가 물었다.

“그 도련님이 우리 나은이와 무슨 대화를 나누려고 찾아왔는지 혹시 알아요?”

“모릅니다.”

진명수의 줄곧 무표정이었다.

“혹시 때리거나 하시지는 않죠...?”

그녀의 걱정에 진명수는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

“주승아 씨,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대체 왜 온 건데요? 조카 보려고 여기까지 찾아오셨을 리는 없잖아요.”

주승아는 다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왜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진명수가 되물었다.

주승아는 잠깐 멈칫하더니 곧바로 뒤로 돌아 생각에 잠겼다.

‘나은이랑 이연준 사이에 접점이 뭐가 있지? 삼촌과 조카일 뿐일 텐데...’

병실 안.

이연준의 표정은 어느새 많이 풀어졌다.

“차는 탈 만해?”

“차?”

아침에 출근할 때 몰고 온 그 차를 말하는 건가?

그녀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연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의 병상 위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 좁혀졌다.

“네가 출근한 뒤에 아주머니가 전화로 나한테 뭐라고 얘기했는지 알아?”

유나은은 조금 뻣뻣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라고 했는데...?”

이연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는 그녀의 반응을 즐겼다.

“해산물 냄새 때문에 토했다며?”

“응.”

유나은은 인정했다.

“갑자기 그 냄새가 싫어졌어.”

이연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대답해.”

“제대로 물어야 제대로 대답을 하지.”

그는 그녀의 태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임신 테스트기 샀어?”

유나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 샀는데?”

이 질문에도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이연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는 눈을 똑바로 마주치게 했다.

유나은은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눈을 이리저리 피하다 결국 실토했다.

“본가로 가기 전에.”

이연준은 그제야 그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는지 깨달았다.

“몇 줄이었는데?”

목덜미를 잡았던 그의 손이 서서히 그녀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

“몇 줄이었을 것 같아?”

이연준은 복잡한 표정의 그녀를 보며 얼굴을 톡 하고 두드렸다.

“잘 생각하고 대답해.”

“삼촌은 내가 일부러 삼촌 아이 가지려 했다고 생각해?”

유나은은 그의 손을 피해 얼굴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이에 그도 손을 거두어 들었다.

“너한테 그런 계획을 실행할 배짱은 없어.”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나 보지?”

유나은은 흥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확실히 그녀는 그럴 만한 배짱이 없었다. 3년간 그와 살을 맞대면서 한 번도 그의 아내 자리를 노린 적이 없고 그의 아이를 가지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으니 뭔가를 얻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기도 했다.

유나은은 그 잠깐 사이에 그의 향기가 몸에 잔뜩 밴 것 같아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마치 괴물을 피하듯 최대한 그와 거리를 두었다.

이연준은 그런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

“이렇게 날 피하면서 뭘 한다고.”

유나은은 그를 몰래 노려보며 아까 그에게 잡힌 턱을 매만졌다.

병실로 들어오기 전, 이연준은 그녀가 급성 위염이라는 것을 이미 보고로 들었다.

며칠 전부터 증상이 있었지만 유나은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건강을 챙기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점점 더 빨개지는 그녀의 턱을 보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을 튕겨버렸다.

“몸을 좀 소중히 다뤄. 하루 세끼 제시간에 챙겨 먹고.”

유나은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결국 속에 줄곧 담아왔던 질문을 꺼내 물었다.

“만약 내가 정말 임신이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이연준은 대답 대신 그녀에게 되물었다.

“너는?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데?”

유나은은 그가 되물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이연준이 듣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골랐다.

“빨리 수술 날짜 잡아야겠지 아무래도?”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버렸다.

유나은은 자신이 잘못 말한 건가 싶어 몸이 움찔 떨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게 정답이었다.

알아서 신경 쓸 일 없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대답이 또 있을까?

“쉬어.”

이연준은 싸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촌.”

그녀의 부름에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연준!”

다급해진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고는 그가 화낼 걸 알면서 또다시 그 얘기를 꺼냈다.

“그날 밤 나랑 했던 약속, 지켜.”

문고리에 손을 올린 이연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냉랭한 눈빛을 보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버려.”

병실 문이 열리고 또 금세 다시 닫혔다.

이연준이 떠나고 유나은은 입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침대 위에서 애기야 라고 부를 때도 어디 그런 표정 지어보지 그래?”

“너희 삼촌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데?”

갑자기 들려온 주승아의 목소리에 유나은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 내가 한 말 들은 건 아니겠지...?’

잔뜩 긴장한 채로 표정을 살피려는데 또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는 무슨 말이야? 애기야는 또 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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