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인다니?뭐가 안 보인다는 거지?김시연이 의아하다는 듯 연도진을 한 번 바라보다가 물었다.“뭐가?”연도진은 김시연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그는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했다. 마치 조금 전 연도진의 말이 환청이라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김시연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고는 트위터를 대충 훑어보다가 문득 연도진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답답하네.김시연은 연도진을 흘끔 쳐다보고는 시선을 아래로 축 내렸다.그 순간, 연도진은 그런 김시연의 눈빛을 눈치챈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렇게 궁금하면 오늘 밤 직접 한 번 볼래?”“난 겁쟁이 버섯 따위엔 관심 없거든.”식물 vs 좀비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인 겁쟁이 버섯은 날씬하고 큰 키를 갖고 있지만 좀비를 만나는 순간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려 버린다.“그럼 폭탄 버섯은?”“콜록콜록...”김시연의 머릿속에 감히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은 미처 눈 뜨고 볼 용기조차 없었다. 김시연은 짜증 섞인 눈빛으로 연도진을 노려보았다.“궁금하면 솔직하게 얘기해.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연도진이 김시연을 한 번 쳐다보고는 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난 그냥 네 호기심을 채워주려는 것뿐이니까.”“흥, 고작 너 같은 그 작은 고깃덩어리가 볼 게 뭐 있다고.”김시연이 입술을 삐죽이며 화제를 돌렸다.“야, 너 혹시 외국에 있을 때 태권도라도 배웠어? 그날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 세 놈을 처리해버린 거야?”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연도진은 마르고 얇은 남학생이었다.지금도 물론 마른 편이긴 했지만 핸들을 잡은 팔 위의 셔츠 주름이 어깨 근육과 팔의 잔 근육을 보여주었다. 딱 봐도 속이 꽉 찬, 아주 탄탄한 근육이었다.“응.”연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갑자기 대화 주제 돌리는 스킬이 진짜 서툴구나, 너는. 분명 관심 있으면서. 왜? 못 보겠어?”절대 넘어가선 안 된다.“누가 못 본대? 내가 안 보고 싶은
“너 이 녀석...”“시연아, 너 아버님께 자꾸 왜 그런 식으로 얘길 하는 거야? 게다가 서 의원님께선 이미 희수 씨한테 결혼 상대 찍어주셨고, 희수 씨가 하루빨리 나한테서 마음을 접길 바라고 계시는 중이야. 설령 의원님께서 희수 씨 편에 서신다고 해도 아버님께서 그렇게 하실 리가 없잖아. 그렇죠, 아버님?”연도진이 말했다.김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도진이 말이 맞아. 아빠가 어떻게 너희를 갈라놓을 생각을 하겠니?”그 말을 하면서도 김웅은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다음 달에 결혼이라니, 시간은 조금 촉박하겠지만 안 될 건 없지. 희수 씨한테는 언제라고 얘기했어? 어느 호텔에서 할지는?”연도진은 김시연을 한 번 보더니 최대한 날짜를 앞당겨 말했다.“10월 14일, 글로벌 빌리언 캐슬 호텔입니다.”“그렇게 가까운 날짜에? 호텔 이미 예약 다 끝났을 텐데...”“걱정하지 마세요, 아버님.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할게요.”김웅은 이미 연도진의 능력을 믿고 있었던 덕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그 집 사느라 돈 많이 썼을 텐데, 혹시라도 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언제든 아저씨한테 얘기하려무나, 사양하지 말고.”예식장 임대료, 연회, 웨딩드레스, 웨딩사진 등등을 다 합쳐보면 결혼식 비용도 절대 적지 않았다.“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돈은 저한테 있어요. 필요할 때는 꼭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날짜를 정하고 나서 김웅과 김연자는 간단히 연도진과 함께 결혼식 준비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다.김 씨 본가에서 나온 연도진이 입을 열었다.“이제 웨딩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네가 좋아하는 스튜디오라도 있어?”“없어.”김시연은 그쪽 분야에 전혀 알아본 적도 없었던 탓에 고개를 가로저었다.문득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우리끼리 옷 대여해서 하랑이한테 찍어달라고 하면 되지 않아? 우리가 하랑이의 고객이 되면 되잖아.”“안 될 건 없지. 네가 하랑 씨 실력을 믿는다면야.”“나야 당연히 믿지.”두 사람의 외모 자체가 나쁘지 않은 덕에 다른 일반 사
그녀는 이미 온하랑의 다음 스케줄이 글피로 예정된 덕분에 내일과 모레에는 시간이 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비서는 속으로 수많은 물음표를 띄웠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춰 답장을 보냈다.“죄송합니다만, 온하랑 작가님께서는 웨딩 촬영은 받지 않으십니다.”“그래도 말은 한 번 해주세요. 제가 온하랑 작가님 스타일을 너무 좋아해서 그래요! 부탁드립니다!”“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한 번 여쭤보도록 할게요. 하지만 작가님께선 내일이랑 모레만 시간이 비셔서요. 그 후부터는 한 주일 스케줄 꽉 차 있거든요.”“일주일 뒤면 너무 늦어요. 내일이나 모레도 괜찮습니다!”몇 분 정도 지나자 비서에게서 답장이 왔다.“죄송합니다. 작가님께서 요즘 몸 상태가 안 좋으시다고 쉬고 싶다고 하셔서요. 아쉽지만 거절하셨습니다.”사실 온하랑이 웨딩 촬영을 거절했던 이유가 힘든 촬영에 비해 보수가 너무 낮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런 그녀의 뜻을 비서가 고객에게 완곡하게 전달하는 중이었다.김시연은 온하랑이 임신 중이라는 것을 감안해 역시 무리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비서에게 말했다.“이틀 동안 최대한 빨리 찍도록 할게요! 그리고 저는 작가님 스타일 자체를 좋아하는 거라 딱히 까다롭게도 안 굴 겁니다. 금방 끝날 거예요! 보수는 두 배로 지급해드릴게요! 저는 진심으로 작가님 작품을 좋아하고 있는 팬입니다!”몇 분 정도가 더 지나자 비서에게서 답장이 왔다.“작가님께서 동의하셨어요. 내일 아침 8시까지 스튜디오로 오셔서 계약서 쓰기고 자세한 거 얘기해주신 다음에 큰 문제 없으시면 바로 촬영 가능하십니다. 하지만 의상은 직접 준비해오셔야 합니다.”“좋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기뻐요!”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김시연을 발견한 연도진이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신났어?”“하랑이가 우리 웨딩 촬영을 수락해줬어. 내일 아침에 바로 스튜디오로 가면 된대.”“그래.”연도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침구 세트를 가리켰다.“이 색깔은 어떤 것
직원이 드레스를 입은 김시연의 자태를 보며 감탄했다.“시연 님, 안목이 정말 탁월하신데요. 드레스 정말 잘 어울리세요!”웨딩드레스는 그녀의 몸에 딱 맞는 머메이드 스타일로 김시연의 아름다운 몸매를 부각 시켰다. 불규칙한 머메이드 라인이 오른쪽 다리의 반을 드러내며 하얀 피부와 매끄러운 다리를 드러냈다.거울을 보던 김시연 역시 자신의 모습에 빠져 몇 번이고 거울을 더 쳐다보았다.그녀 역시 이 드레스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커튼 열어서 약혼자분께 보여드릴까요?”“네, 좋아요.”직원이 커튼을 열고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소파에 앉아있던 연도진을 불렀다.“손님, 시연 남 환복 끝나셨습니다. 얼른 와서 보실래요? 정말 아름다우세요.”커튼이 열리자 연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시연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 머뭇머뭇 서 있던 연도진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김시연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이미 연도진의 꿈에 수도 없이 나타났었다.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니 마치 꿈만 같았다.김시연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더니 입술을 앙다물고는 부끄러운 듯 수줍게 웃으며 연도진에게 물었다.“예뻐?”연도진의 뜨거운 시선으로 유추해보았을 때 예쁜 게 분명했다.연도진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그의 시선이 김시연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옆에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하이힐 있나요?”“잠시만요.”직원은 김시연에게 신발 사이즈를 물어보더니 이내 그녀의 발에 맞는 하이힐을 가져왔다. 직원의 손에서 하이힐을 받아든 연도진이 말했다.“제가 직접 할게요.”연도진은 하이힐을 들고 단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어앉았다.그의 의도를 알아챈 김시연이 바로 입을 열었다.“내가 해도 돼.”연도진은 김시연의 말을 못 들은 척 가볍게 무시하고는 한 손으로 그녀의 발목을 잡더니 다른 한 손으로 신발을 들이밀며 말했다.“발 조금 들어봐.”연도진의 큰 손이 발목에 닿자 이상하게 느껴지는 열기에 김시연이 무의식적으로 발목을 빼려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아니거든?”“그런데 왜 계속 보라고 하는 거야?”김시연은 입을 삐죽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궁금하다며? 이제 와서 무서운 거야?”“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김시연은 매우 쿨하게 말했다.그녀는 두 손으로 연도진의 셔츠를 빼내더니 자연스럽게 벨트를 풀었고 지퍼를 내리자 검은색 속옷과 함께 보일락 말락 한 복근이 드러났다.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연도진의 시선은 하얗고 부드러운 김시연의 얼굴에 닿았다.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김시연과 두 눈이 마주쳤다.그와 달리 김시연은 고개를 돌리고 있었는데 길고 가는 속눈썹이 마치 작은 날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검은 속옷에 비해 너무 가늘고 하얀 그녀의 손은 속옷 주위를 맴돌았다.김시연은 연도진을 힐끗 보더니 망설임 없이 속옷을 아래로 잡아당겼다.하지만 벗겨지지 않았다.연도진이 혼신의 힘으로 막고 있었기에 아무리 잡아당겨도 꼼짝하지 않았다.“왜 그래?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 갑자기 왜 막아?”김시연은 고개를 들어 연도진을 바라봤다.“보지 마.”김시연은 어이가 없었다.“보지 말라고? 괜히 내 입맛 다시려고 그랬던 거야?”바지까지 벗었는데 보여주지 않다니 너무 실망이었다.“놀리고 싶었어. 볼 것도 없는데 뭐...”연도진은 자연스럽게 지퍼를 올렸고 그 말은 김시연의 분노 버튼을 눌러버렸다.“야, 너 지금 장난해? 안돼, 난 무조건 볼 거야.”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김시연은 막무가내로 그의 벨트를 풀었다.‘마음 준비를 얼마나 했는데 이제 와서 안 보여준다고? 절대 안 되지. 난 무조건 보고 말 거야.’연도진이 막을수록 김시연은 점점 더 보고 싶었다.“시연아, 다음에 보여줄게. 응?”연도진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타일렀다.“싫어. 지금 볼래.”김시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더니 곧바로 지퍼를 내렸다.연도진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곧바로 바지를 들고 몸을 숙이며 자리를 피했다. 재빨리 뒤로 물러섰지만 김시연은 끈질기게
“내 작품을 좋아한다며 가격을 두 개 정도 높게 불렀어. 마침 할 일도 없어서 촬영하겠다고 했지.”김시연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무리하지 마.”“알겠어. 다음 달에 정말 도진 씨랑 결혼하는 거야?”“응.”“어머님이랑 아버님이 그래도 도진 씨가 마음에 드시나 보네?”김시연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엄청 좋아해.”“나중에 두 사람이 이혼하겠다고 하면 동의하실까?”“음...”김시연은 말문이 막혔다.“동의 안 해도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우린 애초에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뭔 이혼이냐? 시간 지나면 두 사람도 알아서 받아들이겠지.”“하긴... 요즘 정신없지?”“응. 오늘은 도진이랑 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외출 전, 김시연은 온하랑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하랑아, 나 먼저 나갈게.”“응. 잘 다녀와.”온하랑도 시간을 보고 서둘러 스튜디오로 출발했다.오늘 가게 되는 이 스튜디오는 평소 자주 가던 촬영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온하랑이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직원이 폴더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하랑 씨, 어제 계약한 손님이 작성한 계약서예요. 저랑 이미 얘기가 끝났는데 하랑 씨도 확인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계약서를 건네받은 온하랑은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손님께서는 총 4벌을 준비하셨고 이틀 동안 나눠서 찍을 예정입니다. 사진은 30장으로 정했고 더 원할 시 한 장당 1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액자는 손님께서 원하신다면...”“마감은 언제죠?”“그건 하랑 씨랑 직접 만나서 얘기한다고 하셨습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선호하는 스타일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싶다며 지금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래요?”온하랑은 폴더를 다시 건네줬다.“그럼 지금 바로 가볼게요.”온하랑은 곧바로 대기실을 향해 걸어갔다.조심스럽게 노크 두 번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으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눈앞이 어두워
커플 사진은 찍는 건 온하랑도 처음이었다.비록 김시연과 연도진이 가짜 결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시연의 말을 귀담아듣고 귀를 기울였다.온하랑은 어젯밤 벼락치기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경험 글을 읽었다. 결국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포즈가 한정적이기에 옆에서 참견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플레이하도록 돕는 게 훨씬 낫다고 했다.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쌓아온 경험이 있었던 김시연은 어떻게 하면 카메라에 잘 나올지 알고 있었다.“인터넷으로 웨딩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들을 엄청 많이 봤거든? 그런데 하나같이 자세가 너무 어색하거나 표정이 부자연스러운 거야. 난 이런 게 싫어.”김시연은 온하랑에게 사진을 보여줬다.대부분 남자가 여자의 허리를 감싸거나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있는 다정한 포즈들이었다.“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참 좋아하겠다. 일단 엄마랑 아빠한테 보여줄 사진 몇 장 대충 찍고 그다음은 마음대로 하자.”“그래.”“난 자연스러운 게 좋아. 서로 눈도 마주치고 얘기도 하고, 예를 들면 이런거...”김시연은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온하랑에게 더 보여줬다.사진 속의 남녀는 석양 아래서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산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밝은 미소와 따뜻한 분위기가 더해지니 더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두 사람이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연도진은 이미 분장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어스트턴트 두 명이 여분의 옷과 로케이션 용품이 담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연도진의 헤어스타일만 봐도 얼마나 세심하고 꼼꼼하게 준비했는지 티가 났다.그는 몸에 꼭 맞는 검은색 정장 차림에 훤칠한 몸매와 우아한 자태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연도진은 김시연을 바라보다가 다시 온하랑을 향해 꼬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김시연은 연도진을 쳐다보더니 조용히 앞으로 걸어가 손을 들고 그의 머리카락 끝을 만졌다.“딱딱하네.”“응.”연도진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헤어스프레이 뿌렸어.”그의 의상은 맞춤 제작한 것처럼 보였다.김시연은 또
가벼운 스타일로 옷을 갈아입은 김시연은 연도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재켓 벗어.”연도진은 순순히 정장 재켓을 벗어 어시스턴드에게 건네줬다.“넥타이도 벗어. 단추도 몇 개 풀고 셔츠를 이렇게 걷어 올려.”연도진은 김시연이 시키는 대로 했다.김시연은 연도진을 가리키며 한발 물러나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선 빙그레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이를 놓칠 리가 없었던 온하랑은 재빨리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연도진의 표정도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애정이 가득한 눈빛에서 그들의 애틋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사실 두 사람은 평범한 커플이나 다름없었다.“이제 끝.”온하랑이 말했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야외 촬영을 나갔다.그렇게 저녁에 되어서야 촬영이 끝났다. 세 사람은 간단히 저녁을 먹고 연도진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집으로 돌아온 온하랑은 낮에 찍은 사진들을 노트북에 옮기면서 김시연과 나란히 소파에 앉아 하나하나 살펴봤다.김시연은 사진을 보면서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미쳤네. 하랑아, 너 사진 왜 이렇게 잘 찍냐? 다 너무 예쁜데 어떻게 30장만 골라. 난 진짜 못 정하겠어.”“네가 봐도 너무 예쁘게 잘 나왔지?”“응.”김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너랑 도진 씨의 웨딩 사진이야.”김시연은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봤다.“응?”“시연아, 왜 웨딩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지 잊었어? 부모님께 너랑 도진 씨가 진지하게 만나는 사이인 걸 증명하고 싶어서 찍은 거잖아.”김시연은 곰곰이 생각했다.“맞아...”김시연은 웨딩 사진을 찍으려던 의도를 완전히 잊어버린 채 연도진과 찍은 사진에 심취해 버렸다.제3자가 봤을때도 김시연은 너무 깊이 빠져있었다.아직 결혼식도 안 올린 상황에서 이미 이렇게 몰입했으니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연도진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닐 게 뻔하다.연도진은 너무 똑똑하여 항상 자신도 모르게 김시연을 도랑으로 끌어들이곤 했다.물론 김시연도
설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네.”설윤의 쓸쓸한 모습을 본 최동철은 그녀에게 물었다.“함께 갈래요?”설윤은 돈을 좋아하기에 그도 그녀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었다.그러나 설윤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저 여기 더 있고 싶어요.”최동철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나중에는?”“나중에? 그때 다시 얘기해요.”설윤은 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저 혼자예요. 저만 신경 쓰면 돼요.”최동철은 평온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최동철이 떠난 후 자신을 구해준 설윤에게 보답의 의미로 많은 금액의 돈을 송금해 주었다....회사에 처리할 일이 많았던 부승민은 첨단 연구소에서 스카우트한 사람들과 함께 강남시로 돌아갔다.경주에 며칠 더 머무른 온하랑은 여전히 최동철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최동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오랫동안 경주에 머물렀던 온하랑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가려고 했다.만약 최동철이 돌아온다면 온하랑은 메이슨을 다시 데려오면 되고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녀가 메이슨의 유일한 보호자이다.아줌마에게 메이슨의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던 중 별장에 불청객이 찾아왔다.거실에서 아줌마가 짐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던 메이슨은 최국환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로 온하랑의 뒤로 숨어버렸다.“최 회장님, 어떻게 오셨어요?”최국환을 본 온하랑도 깜짝 놀랐다.“하랑아, 미리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최국환은 온하랑 뒤에 숨은 메이슨과 땅에 놓인 캐리어를 보고 물었다.“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간다고?”그는 오래전부터 메이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네, 맞아요. 동철 오빠가 돌아오기 전에 제가 메이슨을 강남시로 데려가 돌보려고 해요.”온하랑이 대답했다.“승민이는 동의한 거야?”온하랑은 머리를 끄덕였다.“혹시 어떤 일로 찾아오셨어요?”그녀는 눈길로 아줌마에게 먼저 메이슨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설윤 씨, 일어났어요?”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린 설윤은 최동철과 눈이 마주쳤다.최동철은 웃으면서 말했다.“일어났으면 와서 아침을 먹어요.”최동철은 이미 건조된 설윤의 옷을 가져왔다.“네.”설윤은 베갯머리에 두었던 핸드폰을 보고 열 시가 넘었음을 확인했다.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이불로 가슴을 가리고 이불 밑에서 속옷을 찾아 천천히 입었다.최동철은 쓰레기통을 옆으로 걷어차고 설윤에게 칫솔 컵과 치약을 묻힌 칫솔을 건네주고는 그녀가 이를 닦은 후 따뜻한 수건도 건네주었다.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누구도 어젯밤 일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아침을 먹은 후 발목 찜질을 한 설윤은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려고 했다. 집 앞까지 다음날 배송될 수가 있기에 아주 편리했다.옷을 몇 벌 고른 설윤은 소파에 앉아 있던 최동철을 보며 물었다.“최 대표님, 제가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면 내일 도착하는데, 혹시 대표님도 필요하신가요?”조건이 우월한 최동철과 같은 귀공자는 사람을 시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기에 온라인으로 쇼핑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의 말을 들은 최동철은 머리를 끄덕였다.“갈아입을 옷 두 벌만 골라주세요, 부탁드려요.”구체적인 요구는 없었다.“네, 알았어요.”머리를 끄덕인 설윤은 남성 의상을 검색하며 물었다.“사이즈는 얼마 입어요?”“신장은 185, 몸무게는 75킬로로예요.”“네.”설윤은 최동철이 말한 사이즈에 따라 내의 한 벌과 니트 및 팬티 두 벌을 고르고는 그에게 말해주었다.최동철은 설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말을 마친 후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오후쯤 부하의 전화를 받은 최동철은 통화 중 계획 하나를 언급했으나 설윤은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과 관련이 없기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저녁이 되자 설윤은 샤워 후 침대에 누웠다.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그녀는 최동철이 그의
방안은 어두웠고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가끔 바깥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만 들렸다.설윤이 네 번째로 몸을 뒤척일 때 옆에서 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요?”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그녀의 고막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동철 씨도 잠이 안 와요?”“네.”최동철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내는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집안의 난방이 너무 커서인지 설윤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다치지 않은 발목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는데 조심하지 않고 최동철이 밖에 놓은 팔과 부딪혔다.피부가 닿는 순간 설윤은 재빨리 팔을 비켰으나 뜻밖에도 최동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의 손은 매우 컸다. 뜨거운 온도가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그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얼굴에 퍼지며 설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설윤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려고 힘을 썼지만 실패했다.“뭐 하는 거예요?”“보통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데, 한 번 시도해 보겠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설윤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 같았다.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그녀의 대답은 마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처럼 들렸다. 최동철은 그녀의 팔을 풀어주었는데 그녀가 손을 거둘 때 신속히 이불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공격적인 기운을 풍기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또 겁이 났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손끝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린 채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 놓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 그럼...”“조심할게요.”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서로의 눈 밑에는 빛을 볼 수
설윤이 차례로 밖에 씌워져 있는 랩과 붕대를 제거하니 몇 바늘 꿰맨 상처가 드러났다.그녀는 알코올로 주변을 부드럽게 닦은 후 다시 연고를 꺼내 면봉으로 고르게 발랐다.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드러난 옆모습은 매끄러운 얼굴 라인을 자랑했다. 아마 스무 살 어린 나이어서인지 볼에는 젖살이 있어 통통했고 피부는 희고 섬세해서 모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거즈를 몇 바퀴 두른 후 설윤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다 됐어요.”“고마워요.”“별말씀을요.”설윤은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난 샤워하러 가고 싶어요. 욕실에 걸상 하나 놔줄 수 있어요?”최동철은 몸을 일으켜 동그란 걸상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다시 나오면서 그는 다치지 않은 팔을 내밀려 말했다.“부축해 줄게요.”설윤은 느릿느릿 침대로 옮겨 한 손을 그의 팔에 얹고는 다치지 않은 발을 먼저 땅에 대고는 절뚝거리며 화장실로 갔다.그녀를 안쪽 욕실로 데려다준 후 최동철은 샴푸 등을 욕실 벽에 있는 선반 위에 놓아주고는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아 주었다.설윤은 느릿느릿 옷을 벗었다. 속옷은 팬티는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빨면 곧 마를 수 있겠지만 마르기 전에는 그저...이틀 전에는 혼자 살아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곁에 남자가 한 명 많아졌다.그러나 씻지 않으면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두 장 더 사는 건데...’고민 끝에 설윤은 속옷을 빨았다. 다 빤 후 드라이어로 말리면 10분 정도면 다 마를 수 있었다.이때 설윤은 문득 최동철이 나왔을 때 머리를 말리지 않은 것이 떠올랐는데 보아하니 드라이어로 팬티를 말린 것 같았다.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설윤은 팬티를 씻고 말린 후 간단히 머리도 말렸다. 그런후 속옷과 팬티를 입고 목욕 수건을 둘렀는데 다행히도 이 수건은 충분히 길어서 가슴부터 무릎까지 감쌀 수 있었다.이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다 씻었어요?”“...네.”“그럼 제가 들어갈까요?”
그녀의 최근 행동을 보면 물질, 환경, 품질 등에 큰 요구가 없는 것 같다."물론이죠."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도련님은 일반인에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설윤은 회억에 잠겨 말했다.“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이웃들이 그러는데 엄마 병은 고칠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찍 퇴원했기 때문에 병세를 끌어서 돌아갔다고 했어요.”엄마가 돌아간 후 집주인은 장례를 치러주고는 그녀를 보육원에 보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최동철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미안해요.”그는 그녀의 신원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문서에는 간단히 ‘6살 때 생모 병으로 사망’으로만 적혀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괜찮아요. 다 지나갔어요.”설윤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동철 씨는 돈이 싫으세요?”최동철은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최국환과 임가희와 암투를 벌였을까?“돈은 나에게 있어 숫자일 뿐이죠. 어쩌면 우리가 다투는 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에요.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력이죠.”최동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설윤은 아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최동철을 끌어들인 후 그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이렇게 허름한 곳에 왔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참았을 뿐이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겨울 날씨여서 그런지 금세 어두워졌다.저녁을 먹은 후 설윤은 또 얼음찜질하고 연고를 한 번 더 발랐다.발목 부기가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최동철이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며칠 동안 피해 살다가 드디어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 이르자 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어깨에 부상이 났다고 설윤이 일깨워주었지만 최동철은 신경 쓰지 않고 랩으로 상처를 감싼 후 씻으러 갔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어젯밤에 본 화면이 떠올랐다.넓은 어깨와 가슴,
최동철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그런데, 젊은이. 아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 정말 잘 어울리네.”둘 다 잘생기고 아름다웠으니까.“저희는... 대학 동기입니다.”“그래? 몰라보겠어. 아내는 참 어려 보이는데 벌써 스물여섯이라니.”최동철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동안이라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스물여섯은 설윤의 가짜 나이였다.집주인은 작은 양념병을 들고 나와 최동철에게 건넸고 우유 두 병도 함께 내주었다.돌아온 후, 최동철은 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설윤에게 전했다.설윤은 웃으며 말했다. “동철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서로 잘 맞춰주니 완벽하네요.”최동철은 가볍게 웃으며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열었다.점심은 밥에 감자 볶음과 돼지고기였다.최동철의 요리 실력은 훌륭했다. 삼겹살을 바삭하게 볶아내 느끼함 없이 밥과 잘 어울렸다.다행히도 다친 쪽은 왼팔이라 오른손으로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으나 속도는 다소 느렸다.식사 후, 설윤은 다시 한 번 발목에 냉찜질을 했다.냉찜질을 끝낸 후 최동철이 약을 가져오자 설윤이 말했다. “제가 할게요.”“그래요.” 최동철은 순순히 응했다. 한 손으로는 불편했으니까.바쁜 대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외출할 수 없는 민박집 안, 두 사람은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설윤은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최동철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설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옆모습은 뚜렷한 이마선과 오똑한 콧대가 더해져 눈매가 깊어 보였고 날카로운 턱선이 또렷했다.정말 잘생겼다.그의 이목구비는 최국환과 약간 닮았다.하지만 나잇살이 들어 퉁퉁해진 최국환과는 달리 최동철은 참으로 젊었다. 눈빛 속에도 서른 살 남자의 단단함으로 가득했고 이는 세상 물정에 밝고 노련한 최국환과 완전 달랐다.잠시 머뭇거리던 설윤이 말했다. “동철 씨, 피곤하면 여기서 주무세요.”그의 키는 너무 커서 작은 소파에선 편히 쉴 수 없었다.설윤은 발목 부상
최동철은 약품이 담긴 봉지를 찾아 안에서 멍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꺼냈다. 고개를 돌리니, 설윤이 느릿느릿 신발을 벗고 있었다.그는 연고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해줄게요.”신발과 양말을 벗자 뽀얗고 작은 발이 드러났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고 동글동글 귀여웠다. 발톱은 깔끔한 곡선을 이루며 정리되어 있었으며 발등의 뼈선은 유려하게 흐르며 섬세한 곡선을 그렸다.발목 근처에는 큼직한 멍과 부기가 올라와 있었다.최동철은 그녀의 발바닥을 받쳐 들고 부은 부위를 살짝 눌러보았다.“앗...” 설윤이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을 찡그렸다.“아파요, 누르지 마세요.”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이는데 내가 침대까지 옮겨줄 테니까 당분간은 움직이지 마요.”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그녀를 안으려 했다.“안 돼요!” 설윤은 급히 손으로 그를 막았다. “동철 씨도 팔 다쳤잖아요.”최동철은 몸을 숙여 다친 왼팔은 내리고 오른팔로 그녀의 다리 밑을 감싸 안았다. “두 손으로 내 목을 잡아요. 이쪽 팔은 힘을 쓰지 않을 거니까 안심해요.”한 손으로 안으려고?설윤은 그의 목에 양팔을 감고 조심스럽게 몸을 맡겼다.그는 오른팔로 그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두 걸음 만에 침대 곁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잠시만 기다려요. 집주인한테 얼음팩 좀 받아올게요.”“네.”최동철은 약 10분 뒤 얼음주머니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하나는 냉장고에 넣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발목에 살며시 대주었다.얼음의 차가운 감촉에 설윤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손으로 얼음주머니를 누르며 말했다.“너무 차가워요.”“20분은 찜질해야 해요.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로요.”설윤은 그에게 붕대를 가져와 얼음주머니와 발목을 단단히 감도록 했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둘 다 밖에 나가지 말죠. 배달 앱으로 장을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동철 씨,
의사는 최동철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젊은이, 앞으로는 아내 말 잘 들어요.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여보, 들었지?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잖아!”최동철은 잠시 입을 말없이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어.”봉합이 끝난 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었다.병원을 나서며 설윤은 최동철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누가 데리러 와요?”최동철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짧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설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설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요.”그녀는 두 걸음 앞서 걸으며 말했다.“이 작은 도시는 꽤 조용하네요. 며칠 더 머물 생각인데, 동철 씨도 안 간다니까 같이 지낼까요? 서로 보호도 되고.”최동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호텔은 눈에 띄니까 단기 임대 민박을 찾는 게 더 안전하고 편리할 거예요.”“좋아요.”“근데 검색해 보니까 민박은 대부분 더블침대 방이더라고요. 괜찮으세요?”“설윤 씨가 괜찮다면 전 상관없어요.”“그럼 예약할게요.”최동철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온라인으로 예약할 거예요?”대부분의 예약 앱은 신분증 정보를 입력해야 해서, 한 번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설윤은 그의 걱정을 알아채고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이 폰은 제 이름으로 등록된 게 아니에요. 추적 못 할 거예요.”최동철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준비가 철저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임가희한테 이렇게 몰렸어요?”“임가희가 이렇게 빨리 제 존재를 눈치챌 줄 몰랐거든요. 그랬다면 좀 더 철저히 준비했을 텐데요.”최동철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먼 곳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그녀의 정보를 넘긴 장본인이 아니라는 듯이.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두 사람은 예약한 민박으로 향했다.민박은 단일 방 구조로, 면적은 47㎡. 방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오픈형 주방이 있고 가스레인지
이튿날 아침, 최동철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패딩 점퍼에 청바지, 스니커즈, 그리고 새로 정리한 헤어스타일까지 더해지니 몇 년은 젊어 보였다. 게다가 넉넉한 핏의 패딩은 그의 체형을 자연스럽게 감춰주었다.“자, 마스크도 잊지 말고 쓰세요.”“네.” 최동철은 대답하며 책상 위의 마스크를 집어 썼다.지금 이 모습이라면 자세히 보지 않는 한 그를 알아보긴 어려울 터였다.최동철은 설윤이 입고 있는 패딩 점퍼를 힐끗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설윤은 웃으며 설명했다. “작은 가게라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어요. 그리고 커플룩이 신분을 숨기기에 더 좋아요.”“그렇군요.”“제가 먼저 내려가서 체크아웃하고 주변 상황을 살펴볼게요. 연락드리면 그때 내려오세요. 미리 택시도 불러놓을게요.”“알겠습니다.”“그럼 다녀오겠습니다.”“네.”설윤은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나갔는데 가방 안에는 두 사람이 입었던 옷이 담겨 있었다. 이곳에 그냥 두면 흔적이 남을 수 있어 길 가다 버릴 생각이었다.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설윤은 무사히 로비에 도착해 체크아웃을 마쳤다. 거리로 나서며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면서도 그녀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폈다.길 건너편 왼쪽, 작은 만두 가게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가게 앞에는 접이식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었고 그중 한 테이블에는 건장한 남자가 앉아 가끔씩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그 자리는 아침을 먹으며 호텔을 감시하기에 딱 좋은 위치였다.설윤은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는데 감시자는 그 남자 한 사람뿐인 듯했다.아마도 어젯밤 이들이 호텔 방마다 수색했지만 최동철의 흔적을 찾지 못해 속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한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주변을 수색하러 간 모양이었다.2분쯤 지나 설윤이 부른 택시가 호텔 앞에 도착했다.설윤은 최동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차 문을 열며 짐을 싣다가 말했다. “기사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 남편이 금방 내려올 거예요.”“네, 알겠습니다.”설윤은 다시 로비로 들어갔다.1분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