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승민이 BX 그룹으로 다시 돌아온 것만은 사실이었다. 회사 공식 계정에서 부승민이 그룹의 새로운 회장으로 등극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아마 BX 그룹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듯했다.어쨌든 온하랑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예 휴대전화 전원을 꺼버렸다.“시아는 돌아갔죠?”“아니요. 안에서 자고 있어요.”온하랑이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저랑 같이 야외 스케치하러 가고 싶대요.”“주현 씨는 간대요.”“네, 진작 물어봤죠.”“그럼 저도 갈래요!”…모 클럽 내부.전자 모니터 위에 띄워진 숫자 “1”,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부승민이 안으로 들어서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던 그때 한쪽 팔이 안으로 쑥 밀고 들어왔다. 인기척을 감지한 센서가 빠르게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남색 정장을 입은 한 젊은 남자가 엘리베이터 입구에 서 있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남자의 팔꿈치에는 검은색 외투도 둘려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남자는 고개를 들어 그 안을 바라보다 무의식적으로 부승민과 2초 동안 눈을마주쳤다. 이내 다시 눈을 내리깐 청년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음을 옮겨 몸을 돌린 채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섰다.부승민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 자신의 앞만 바라보았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잠시만요.”청년은 곧바로 얇고 긴 손가락을 뻗어 열림 버튼을 눌렀다.연민우가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와 가슴께를 부여잡고 가쁜 숨을 내쉬며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대표님, 휴대폰 갖고 왔습니다.”연민우는 그 말을 하며 휴대전화를 부승민에게 전해주었다.하지만 연민우가 계속해서 부승민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보았지만 부승민은 받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당황한 연민우가 눈빛으로 부승민에게 눈치를 주었다.“대…”연민우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멎었다.연민우는 입을 떡 벌린 채 2초 정도 멍하니 서 있었다.눈앞에 있던 사람은 부승민이 아
연민우의 말문이 막혔다.연민우의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이 최동철이라는 사람은 온하랑이 해외에서 유학 중일 때 한인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던 사람으로 온하랑을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온하랑과 가까운 사이로 지내던 남자 중 한 명으로 어쩌면 온하랑이 예전에 낳았던 아이의 친아버지일지도 몰랐다.어쩌면 최동철이 부승민을 견제하는 이유가 바로 부승민이 온하랑 전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지 않을까.이번에 부승민이 BX 그룹으로 돌아온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최씨 집안이 비싼 값에 BX 그룹 대체에너지 프로젝트의 핵심인물들을 가로채 간 탓에 프로젝트에 전혀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프로젝트 진행이 하루씩 밀릴 때마다 손해 보는 금액은 정말 어마어마하다.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일전 부승민이 강력하게 밀고 나갔던 탓에 투자도 적잖이 받았고 부승민을 포함한 회사 고위층이 이 프로젝트를 쉽사리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어쨌든 절대 최동철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됐다.연민우가 부승민에게 최동철과 온하랑의 관계에 관해 얘기하려던 순간 엘리베이터가 정해진 층에 도착하고 문이 활짝 열렸다. 큰 보폭으로 엘리베이터를 벗어나는 부승민 탓에 연민우는 빠른 걸음으로 그의 뒤를 다급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이번 식사 자리는 한 과학기술회사의 인수합병을 위한 자리였다.부승민이 BX 그룹으로 돌아오자마자 제안한 이 인수합병 건은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임원진들의 허가를 받아냈다.위 질환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승민은 술을 마시기에 적합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접대하는 내내 연민우가 부승민에게 가는 술을 막아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그 탓에 예상 했던 대로 연민우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다.접대 자리가 끝나자 부승민은 자신의 운전기사를 연민우를 집까지 데려다주도록 했다.술이 깨고 나니 연민우는 얘기하려고 했던 최동철에 관한 이야기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후였다.그날 저녁, 부승민은 비서에게서 새로운 소식을 전해 들
온하랑은 가방을 챙겨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바로 2층으로 올라가 예약 해놓은 룸으로 들어갔다.모퉁이를 돈 온하랑은 계단을 오르며 고개를 들자 갑자기 2층 계단 입구 쪽에 나타난 사람을 마주쳤다. 바로 조금 전 마주쳤던 그 실루엣, 추서윤이 맞았다.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온 추서윤이 계단 난간에 기댄 채 얼굴에는 우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눈은 깜빡도 하지 않은 채 온하랑을 똑바로 응시하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정말 네 차였어!”잠시 걸음을 멈칫한 온하랑은 계속해서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뭐지? 추서윤이 서서 날 기다리고 있는 날이 다 오네. 뭐 집안 얘기나 나누려고 찾아왔어?”“당연히 아니지.”웃으며 대답하는 추서윤의 눈빛에는 원망이 섞여 있었다.“특별한 선물이나 하나 줄까 싶어서—”말이 끝나기 무섭게 추서윤이 힘껏 온하랑을 손으로 밀쳤다.“아—”미처 피할 새도 없이 온하랑의 발이 공중으로 붕 뜨더니 그대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그 순간, 마치 하늘과 땅이 뒤섞이는 듯했다.온하랑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바닥에 고꾸라진 후였다. 극심한 고통에 그녀의 눈앞이 아득해졌다.뒤늦게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추서윤은 이미 자취를 감춘 후였다.온하랑의 몸 곳곳에서 정도가 다른 고통들이 느껴졌다.제일 아픈 부위는 바로 이마였다. 손을 뻗어 천천히 건드려만 보아도 밀려드는 고통에 얼굴마저 새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손가락에는 뜨겁고 비린내 나는 붉은 액체들이 잔뜩 묻어있었다.“아가씨, 괜찮으세요?”종업원이 뒤늦게 달려와 넘어져 있던 온하랑을 부축했다.“우선 거기 잠깐 앉아 계세요, 제가 구급상자 들고 올게요. 120 응급차 불러드릴까요?”오른쪽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발목 쪽에서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키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곧 약속한 7시가 다 되어간다..“괜찮습니다. 대일밴드 있나요?
어쩐지.어쩐지 인터넷에서 그 사건에 관한 내용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더라니.어쩐지 추서윤이 당당하게 계단에서 확 밀더라니. 온하랑이 지금 추서윤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추서윤이 무슨 짓을 하든 함부로 신고할 수 없다는 걸 추서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그 순간, 온하랑의 사고회로가 뒤죽박죽 엉키더니 이미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았다.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피해자를 설득할지에 대해 확신이 있었던 온하랑이였다.하지만 그 납치사건의 피해자가 추서윤이었다는 사실은 온하랑에게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찾아온 온하랑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온하랑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추서윤이 나서서 증언해줄까?온하랑의 마음속에는 확인이 없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소파 곁으로 가 앉았다.“예전의 감정은 우선 넣어두고 얘기부터 하자. 너도 내가 너 무슨 목적으로 만나러 온 건지는 알고 있지? 난 네가 나서서 민성주가 그때 납치사건의 범인이었다는 증언을 해줬으면 좋겠어. 넌 그 사람들이 마땅한 처벌을 못 받았다는 생각 안 들어?”추서윤이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넣어둬? 왜? 불과 며칠 전에 내 뺨을 때렸던 사람이 너야!”온하랑이 눈을 질끈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그 일은 내가 너한테 사과할게.”“사과한다고 뭐가 달라져?”추서윤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뭐, 내가 그때 너한테 맞았던 따귀 그대로 다시 돌려줄 수 있다면 말이 달라질지도 모르지.”침묵을 지킨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온하랑을 보며 추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온하랑, 넌 피 한 방울 안 섞인 부승민 회장을 위해서는 발 벗고 나서면서 네 아빠를 위해선 그깟 뺨 한 대도 못 맞아줘?”“그래, 때려.”온하랑은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추서윤의 앞에 섰다.추서윤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얼굴
온하랑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그녀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추서윤을 응시했다. 마음속에서 깊은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온하랑은 주먹을 꽉 쥐고 당장이라고 추서윤의 뺨을 갈겨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온하랑의 심장은 이미 반쯤 차게 식었다. 딱 봐도 추서윤 쪽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이 순간, 온하랑이 믿을 사람은 하재범뿐이었다. 온하랑은 그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길, 장국호를 데리고 무사히 귀국하기만을 바라야 했다.그 순간, 갑자기 온하랑의 휴대전화에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확인해보니 하재범에게서 답장이 와 있었다.“아, 쒯! 장국호 잡았거든요? 근데 이 새끼 국경 넘을 때 튀었어요!”혹시라도 온하랑의 의심을 살까 봐 하재범은 장국호가 찍힌 몇 장의 사진들도 함께 첨부해 보내주었다.온하랑은 하재범에게서 온 사진을 유심히 관찰했다. 생긴 게 정말 수배 중인 장국호의 얼굴과 비슷해 보였다. 다행히 하재범이 사기꾼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졌지만 정작 잡아야 하는 장국호가 또다시 도주를 해버렸다.이번 도주는 전보다 더 면밀히 준비했을 게 분명했다. 전보다 수색이 더 어렵게 됐다.그 소식을 들은 온하랑은 심장이 절벽 끝까지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기분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장국호를 잡는 쪽도 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여기서 이렇게 쉽게 복수를 멈출 수 없었다.온하랑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고개를 들어 추서윤을 바라보았다.“나 만나러 여기까지 온 이유가 고작 내 부탁을 거절하기 위해서 온 건 아닐 텐데.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원하는 게 뭐야?”“온하랑 그래도 똑똑하네. 그럼 이제 내가 원하는 걸 얘기할게. 요즘 내가 금방 복귀를 했는데 말이야, 매니저 자리가 비었거든.”추서윤이 느긋한 태도로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와서 내 매니저 좀 해. 딱 한 달. 그 정도면 나도 증언해줄게.”온하랑은 추서윤의 말을 듣는 순간 알아챌 수 있었다. 추서윤은 지금 매니저가
부승민은 온하랑을 차 뒷좌석에 태우고 자세히 살펴보았다.조금 붉게 부어오른 이마에는 아무렇게나 대일밴드를 덕지덕지 붙인 상태였고 발갛게 부어오른 왼쪽 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나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발은…그는 온하랑의 오른쪽 발을 들어 신고 있던 부츠를 벗기려 했지만 온하랑은 몸을 움츠리며 발을 뺐다. 온하랑의 종아리가 부승민에 의해 내리눌려졌고 신고 있던 부츠가 벗겨졌다.부츠를 벗으니 양말 너머로도 퉁퉁 부은 발목이 눈에 들어왔다.요약하자면 지금 온하랑의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부승민의 눈빛이 심각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이 상처들은 다 뭐고? 누구한테 맞은 거야?”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한 온하랑이 대꾸했다.“신경 쓸 거 없어.”“온하랑!”부승민의 집요한 눈빛에 온하랑이 고개를 돌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부승민은 착잡함과 분노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온하랑이 말을 안 한다고 부승민이 정말 모를까?대체 누구일까? 이런 수모를 당해놓고도 온하랑이 숨겨주는 사람이라니.접대 자리에서 부승민은 단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 술을 다 마신 비서는 차를 태워 집까지 보냈고 부승민은 온하랑을 차에 태워 병원까지 직접 운전해 갔다. 병원에 도착한 부승민은 온하랑을 안고 먼저 정형외과로 향했다. 그녀를 의자 위에 앉힌 부승민은 의사에게 온하랑의 증상을 설명했다.온하랑의 오른쪽 발을 집어 들어 벌겋게 부어오른 쪽을 살살 누르며 진찰을 시작했다./“여기 이렇게 누르면 아파요?”온하랑이 대답했다.“조금이요.”“여기는요?”“조금요, 선생님, 살살 눌러주시면 안 될까요? 세게 누르면 엄청 아플 것 같은데요.”“아, 그래요? 그럼 더 세게 눌러드려야겠네.”의사가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온하랑 역시 의사의 말에 딱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저 딱딱한 진찰실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한 의사의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온하랑의 발목을 잘 고정한 의사는 곧바로 그녀의 발을 힘주어 꾹
부승민은 주방 입구에 서서 온하랑의 행동을 관찰하며 말했다.“아까 저녁에 말만 하느라 몇 입 먹지도 못했어. 나 물만두 좀 삶아줘.”온하랑은 고개를 돌리고는 그를 째려봤다. 부승민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고는 거실로 떠났다. 그 순간, 식탁에 올려두었던 온하랑의 전화가 울렸다. 부승민이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잠금화면에서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동철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고 무슨 내용인지는 뜨지 않았다.부시아가 예전에 최동철은 온하랑이 등록한 사진 학원의 사진작가라고 했고 두 사람이 같이 촬영 장소 탐사를 나갈 것이라고 부승민한테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주현과 부시아가 온하랑과 함께라서 부승민은 온하랑이 정말 촬영을 잘 배워보려는 마음인 줄 알고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들어와서 그릇 좀 내가!”주방에서 온하랑의 외침이 전해져왔다. 부승민은 들어가서 한 손에 한 그릇씩 들고나와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온하랑은 바로 뒤따라 나왔는데 손에는 젓가락과 접시가 들려있었고 접시 안에는 식초랑 다진 마늘이 담겨있었다.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물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부시아는 보면 볼수록 먹고 싶어져 보다 못한 부승민이 깨끗한 그릇을 가져와 몇 개 덜어내 부시아의 그릇에 놓아줬다.식사를 마친 뒤 부승민은 더 이상 남아있을 핑계가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떠나야 했다. 그는 가기 직전에 신신당부하며 말했다.“이마에 상처 잊지 말고 제때 약 발라.”온하랑은 대답 없이 문을 닫았다.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부승민의 눈앞에는 문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는 겸연쩍은 듯 코를 문지르고는 엘리베이터에 앉아 차고로 향했다. 차에 앉은 뒤 그는 바로 시동 걸지 않고 온하랑이 오늘 저녁 레스토랑에서 있은 일을 알아보라고 연민우한테 문자를 보냈다.온하랑은 그릇들과 젓가락을 치운 뒤 노곤하게 소파를 파고들었다. 핸드폰 잠금을 해제해 보니 최동철한테서 문자가 와있었다.“왜 오늘 수업 안 왔어?”“죄송해요. 오늘 밤에 일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우리도 방금 도착했어.”최동철은 온하랑을 한번 스캔해 보더니 물었다.“이마에 상처 뭐야? 심한 거야?”“괜찮아요.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몇 년이나 안 봤는데 넌 여전히 대학 때처럼 예쁘네.”“무슨 소리예요.”온하랑은 부끄러운 듯 웃었다.“동철 오빠, 소개를 못 했네요. 이 두 사람은 제 친한 친구예요. 여기는 김시연 씨고 여기는 주현 씨예요. 주현 씨도 사진작가예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아이는 제 조카고요.”김시연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잘생긴 오빠, 안녕하세요! 전 김시연이라고 해요.”속상하다는 감정은 김시연 몸에서 오래 머무른 적이 없었다. 김시연은 늘 저절로 소화해 내 훌훌 털어버리고 명랑함을 되찾곤 했다. 주현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주현입니다.”최동철의 눈길이 김시연에게로 옮겨졌다가 멈칫했다. 이내 그는 주현을 바라보며 젠틀하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전 하랑이 선생님이고 최동철이라고 합니다. 낭천에 도착하면 우리 같이 토론해 보죠.”제일 마지막 한마디는 주현에게 하는 말이었다. 주현도 웃으며 답했다.“저야 고맙죠.”최동철 뒤로는 금방 차에서 내린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주동적으로 다가와 자기소개를 했다.“예쁜 아가씨들 안녕하세요? 저는 최 선생님 어시예요. 이름은 이석이고요. 편하게 석이라고 부르시면 돼요.”온하랑의 눈썹이 꿈틀댔다.“그 시골의 이석 조교님인가요?”“네, 저 맞아요.”“시간이 늦었으니 다들 얼른 차에 타서 출발하죠?”최동철이 말을 꺼냈다.“그러죠.”일행은 각자의 차로 돌아가 낭천으로 향했다. 낭천은 바로 옆의 도, 강남 시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리적 위치와 지세 등 원인으로 기후가 온화하고 사계절이 봄 같았다, 거기다 자연풍경이 아름다워 탐사를 나가기 적당한 도시였다.차 안에서 조수석에 앉아 있던 부시아가 뒷좌석의 온하랑을 돌아보며 말했다.“숙모, 저 차 주의 깊게 봤어요?”“응?”“내가 아까 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