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남자가 갑자기 이를 악물더니 순식간에 목소리가 매서워졌다.“왜... 왜 그래?”온하랑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남자가 웃었다.“아니야. 사모님, 칭찬 고마워. 내가 잘 모셔줄게.”“모신다”라는 말을 남자는 일부러 강조하듯 힘주어 말했다.남자는 약속대로 입, 혀와 손을 모두 사용해 온하랑을 제대로 애무해 주었다. 그는 결박된 온하랑의 손목과 발목을 모두 풀어주었다.일이 끝나자 온하랑은 이미 온몸이 나른해져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미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너무 피곤했지만 또 그만큼 편안했다. 몸이 나른해진 온하랑의 눈꺼풀이 점점 내려앉았다. 이제 남자고 뭐고 신경 쓸 기력이 없었다.그 순간, “딸깍”하는 스위치 소리와 함께 불이 켜졌다.눈부신 백열등의 불빛에 온하랑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실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밝은 불빛에 적응했다.남자는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을 주워 소파 한쪽에 올려두었다.온하랑은 옷도 입지 않고 방안을 돌아다니는 남자를 보며 이불을 끌어 올려 자신의 몸을 가렸다.“출장 간 거 아니었어?”“비행기 안 탔어.”“범인” 부승민이 천천히 다가와 이불을 걷어내더니 온하랑의 곁에 자리 잡고 누웠다.“왜?”온하랑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처음 누군가에 의해 입이 틀어막히고 벽에 밀쳐졌을 때, 온하랑은 정말 깜짝 놀라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하지만 남자가 입을 여는 순간, 온하랑은 그의 정체를 눈치챘다. 그녀는 익숙한 향기를 맡으며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했다.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덕에 아무리 목소리를 낮게 깔아봤자 온하랑은 단번에 그 남자의 정체가 부승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번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누군가 날 일부러 거기까지 끌어들이려는 게 아닐까 싶네.”부승민이 말했다.그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장 필라시로 향하라는 메일을 받았다.그때부터 부승민은 배후 인물의 목적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온하랑은 그대로 몸을 돌려 부승민을 등진 채 하품했다.“나 지금 너무 피곤하고 졸리거든. 그러니까 먼저 잘게. 냉장고에 샌드위치 있으니까 데워 먹든지.”부승민은 머리를 괸 채 온하랑을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는 혼잣말인 척 일부러 온하랑이 다 들을 수 있게 말했다.“좋았겠지. 너 엄청 예민하고 민감하잖아. 몇 번 안 돼서 바로 가고.”온하랑은 이를 악물며 애써 부승민의 말을 무시하고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계속해서 아무 대답이 없자 부승민도 장난치는 것을 관두고 침대에서 내려와 대충 옷을 걸치며 화장실로 향했다.방안은 다시 고요해졌다.온하랑은 한쪽 눈을 뜬 채 사방을 둘러보고는 다시 몸을 돌려 기지개를 켰다.눈을 감자 조금 전에 있었던 기억의 조각들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처음에는 방 안에 또 숨어 있을지 모르는 다른 사람을 의식해가며 일부러 부승민에게 맞춰주었다. 그러니 그녀의 공포와 두려움은 완전히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방 안에 부승민 한 명뿐이라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 자신의 연기에 몰입해 있는 부승민에게 계속해서 맞춰주며 그가 어디까지 할지 계속 지켜보았다.결국, 온하랑은 부승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그녀와 함께 자는 것.역할 놀이를 곁들인 채 말이다.아무런 예고도 없었다.부승민은 정말 성실하게 범죄자 역할에 몰입해 있었다.온하랑도 그 남자가 부승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부승민도 자신을 알아본 온하랑이 함께 몰입해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암묵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 온하랑은 아주 잠깐 자신의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이 조용히 방에 침입한 도둑이라는 생각까지 했다...임신한 온하랑을 고려한 것인지 부승민의 움직임은 매우 조심스러웠다.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웠고 속도도 훨씬 느렸다.하지만 왜인지 그녀는 평소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절정에 도달했다.그
부승민이 웃으며 말했다.“얼굴 좀 닦고, 양치는 하고 자야지.”온하랑은 부승민의 손에 든 물건을 확인하자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응.”그녀는 몸을 일으켜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리고는 부승민에게서 칫솔과 양치 컵을 받아들었다.세수를 마친 온하랑이 다시 침대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부승민은 갖고 나온 물건을 욕실로 갖다 두고는 다시 밖으로 나와 침대에 누웠다.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이불 끝을 꽉 잡았다.“또 뭐 하려고?”부승민은 그저 미소만 지으며 아무 말도 없이 천천히 온하랑에게 다가갔다.온하랑은 다시 이불로 자신을 감싸며 말했다.“안돼, 나 진짜 더 못해...”“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그냥 침대 시트 좀 갈아주려고 했던 건데. 이렇게 젖었는데 여기서 계속 자려고?”어떤 장면들이 떠오른 것인지 온하랑의 얼굴이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랐다.부승민은 온하랑을 이불째로 들어 올려 소파에 옮기고는 헌 시트를 벗겨내고 새 시트를 꺼내 잘 펴두었다. 그리고는 온하랑을 다시 안아 올려 새 이부자리 위로 옮겨주었다.온하랑은 마침내 눈을 감고 편히 잠들 수 있었다.부승민은 화장실로 가 간단히 샤워를 마쳤다. 그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냉장고에 있는 샌드위치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방으로 돌아와 보니 온하랑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부승민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치고는 온하랑의 곁에 누워 평온하게 자는 어여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습관적으로 그녀의 배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그 순간, 아기가 부승민의 손길에 대답이라도 하듯 배가 갑자기 불룩하게 튀어 올랐다.그 기척에 부승민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방금 그게 혹시 태동이라는 건가?부승민은 다시 손을 배 위에 올리고는 천천히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배가 다시 불룩하게 튀어 오르며 그의 손을 밀어냈다.부승민의 얼굴에는 다정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는 당장이라도 온하랑을 깨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종일 일하고 돌아와 피곤할 그녀를 굳이 깨우지는 않았다.한밤중에 갑자기 배가 고
그릇을 절반만 비워도 온하랑은 배가 불렀다. 그렇게 남은 것은 전부 부승민의 뱃속으로 들어갔다.식사를 마치고 부승민은 식기들을 모두 주방으로 가져가 냄비와 함께 싱크대에 넣어 깨끗이 설거지를 마친 뒤, 하나하나 정리해두었다.부승민이 주방에서 나오며 손을 닦고 있던 그때, 눈 부신 빛이 그의 시야를 다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렸다.“당신 누구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눈치 있게 얼른 나가.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가정부는 한 손으로 부승민에게 손전등을 비추며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한밤중에 느껴지는 인기척에 가정부는 온하랑이 샌드위치를 데우러 나갔을 것이라 여겼다.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이상해 몸을 일으켜 살금살금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 처음 보는 남자가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언제 들어온 걸까?왜 전혀 몰랐던 걸까?“우선 그 손전등부터 내려놓고 얘기하시죠. 저는 하랑이... 남자친구입니다. 하랑이 보러 온 거예요.”그 말에 가정부는 천천히 손전등을 내려놓고 부승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조금은 믿는 눈치였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정말이에요? 지금 당장 하랑 씨한테 가서 확인해볼 겁니다.”그녀는 온하랑의 방문 앞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하랑 씨? 하라 씨? 일어나 봐요!”“안 자니까 말씀하세요.”“지금 여기 어떤 남자가 하랑 씨 남자친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말 남자친구 맞아요?”“...네, 진짜예요. 저 만나러 와서 방금 저한테 밥도 해줬어요. 아주머니는 가서 쉬고 계세요.”온하랑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가정부는 부승민을 흘려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리를 떴다.부승민은 온하랑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침대에 누운 온하랑은 부승민을 한 번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강도처럼 굴려다가 정말 강도 취급당할 뻔했네.”...필라시.벤 한 대가 외곽의 한 저택 입구에 멈춰 섰다.저택의 정문은 활짝 열려 있
그러던 중, 부선월의 얼굴에 피었던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더니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해보았지만 그중에 부승민은 없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부승민은?부선월은 곧장 건장한 사내에게 전화를 걸었다.사내들은 자리를 뜨자마자 유흥을 즐기러 가고 있었다. 부선월의 전화를 받은 사내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십니까, 사모님?”“한 명이 없잖아.”“무슨 한 명이요?”“지금 한 명이 부족하다고. 빨리 가서 데려와!”그 말에 사내가 더욱 혼란스러워했다.“그 세 명이 전부였어요! 호텔 근처는 다 수색했는데 다른 수상한 한국인은 안 보였다고요!”“그럴 리가 없어!”사내가 반박했다.“왜 그럴 리가 없어요? 못 믿으시겠으면 지금 당장 호텔 가서 CCTV 찾아보시든가요! 왜요, 갑자기 돈이 아까우세요? 아무 변명 거리라도 찾아서 돈 돌려받으시게?”“이 사람 중에 내가 찾는 부승민이 없잖아!”“그럴 리가요? 가운데에 있는 그 사람이 부승민 아니에요? 우리랑 얘기도 나눴어요!”부선월은 가운데에 있는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정체는 연민우였다!젠장!부선월이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정말 자기를 부승민이라고 소개했단 말이야?”“그렇다고요! 그럼 사모님 뜻은 지금, 저 사람이 가짜라는 소리인가요?”“... 그래!”사내가 말했다.“그럼 저희를 탓하시면 안 되죠. 저희한테 암호만 알려주시고 사진은 안 보여주셨잖아요!”잔뜩 화가 난 부선월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이번에도 부승민에게 제대로 당했다!그녀는 온하랑의 명성이 걸린 일이니 부승민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찾아오리라 생각했다.하지만 부선월은 그에게 연민우가 있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온하랑의 비밀이라면 연민우 역시 알고 있었다.부승민은 처음부터 올 생각이 없었다!진상을 밝히는 것과 온하랑을 지키는 것 중, 부승민은 후자를 택했다.역시 부선월 아들 아니랄까 봐, 온하랑에게 홀려도 단단히 홀려버렸다!몇 시간 후, 부선
히스테리를 부리는 부선월이 익숙해진 지 오래였던 부승민은 태연하게 말했다.“당연히 저한테 생명을 준 고마움을 잊을 리가 없죠.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게 제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부선원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게 무슨 말이니?”“이제 곧 알게 될 거예요.”그 말속에 담긴 뜻을 곰곰이 생각하던 부선월은 순간 아래층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부선월은 재빨리 문을 열고 난간에 기대어 아래층을 확인했고 그 순간 충격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거실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무장한 남자들이 가득했고 바닥에 누워있던 육광태도 어느새 멀쩡하게 서 있었다.고개를 들자 육광태는 위층에 있는 부선월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재빨리 옆에 있던 사람에게 명령했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2층으로 돌진했는데 누가 봐도 타깃은 부선월이다.이를 본 부선월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도망칠 구석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부승민, 나는 널 낳아준 엄마라고. 엄마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고작 그깟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을 꾸며? 넌 양심이라는 게 없구나. 내가 왜 너 같은 아들을 낳고 키웠을까. 애초에 태어났을 때 깊은 산속에 버려서 늑대들의 먹이로...”부선월은 마치 초원의 맹수처럼 사납게 울부짖으며 발광했다.부승민은 한숨을 내쉬었다.“할 말 다했어요? 이번 생에 나누는 마지막 통화일 수도 있으니까 맘껏 얘기해요. 앞으로는 그럴 기회조차 없을 텐데.”부선월은 흠칫하더니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 포효했다.“부승민!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딱히 할 말 없는 것 같으니까 이만 끊을게요. 앞으로 남은 인생 편안하게 살게 해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부선월은 할 말이 남은 듯 입을 벙끗했으나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건 차가운 기계음뿐이었다.뚝.어느새 건장한 사내들이 부선월을 포위했고 단숨에 두 팔을 잡아 제압했다.부선월은 몸부림치며 반항했지만 그들
주시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럼 빨리 가서 가져와야지 멀뚱멀뚱 서서 뭐 하는 거야.”“아... 지금 바로 갈게요.”매니저는 가방을 내려놓고 곧바로 대기실로 달려갔다.주시온은 허탈한 듯 김시연을 바라보며 한탄했다.“누나, 수아 알죠? 계속 저랑 같이 일하다가 이번에 출산 휴가를 썼거든요. 그래서 회사에서 매니저 한 명 새로 뽑았는데 꼼꼼하지 못하고 실수가 너무 많아요.”“수아? 이미 애 낳은 거 아니었어?”김시연은 머리를 정리해 주며 주시온과 수다를 떨었다.“낳은 지 아마 두달정도 됐을걸요? 다음 달부터 출근할 수 있다던데 하루라도 빨리 복귀했으면 좋겠어요.”김시연은 빗으로 마지막 정리까지 마쳤다.“이제 됐어. 수아 이제 복귀하면 용돈 챙겨줘야겠네?”“당연히 챙겨야죠. 수아만큼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이때 사원증을 목에 건 소품 담당자가 다가왔다.“시연 씨, 혹시 시간 좀 괜찮아요? 촬영에 쓰일 엄청 중요한 소품을 놓고 와서 그런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요.”“뭔데요?”“유리로 만든 빨간색 옥패예요. 아마 소품실 좌측 서랍의 두 번째 케이스에 있을 거예요.”“알겠어요. 제가 다녀올게요.”“감사합니다.”말을 마친 담당자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그럼 나 먼저 갈게.”김시연이 이제 막 인사를 나누고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주시온이 입을 열었다.“안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다운이가 마침 대기실로 갔잖아요. 시간도 얼마 없는데 어차피 소품실이랑 가까우니까 제가 그냥 다운이한테 가져오라고 할게요.”다운이는 방금 대본 찾으러 간 주시온의 매니저다.“빨리 대본 봐야 하는 거 아니야?”“괜찮아요. 어차피 대사는 이미 외웠거든요.”“다행이네.”주시온은 핸드폰을 꺼내 다운에게 전화를 걸었고 옥패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오는 길에 가져오라고 했다.그 후 주시온은 상대 배우와 서로 대사를 주고받으며 진지하게 촬영에 돌입했고 말없이 집중해서 지켜보던 감독은 두 사람의
“뭐라고요?”주시온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언제요? 많이 다쳤어요? 지금은 괜찮아요?”촬영장에 괴한이 들어온 것도 이상한데 마침 소품실에 숨어있는 게 뭔가 꺼림칙했다.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주시온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몇 분 전 김시연에게 소품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던 그 관계자가 보이지 않았다.“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가보자.”“시온아, 어디가? 촬영 벌써 끝났어?”화장실을 다녀온 김시연은 감독과 함께 자리를 옮기는 주시온의 뒷모습을 보고선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주시온은 사건의 경과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시온이가 다쳤어요. 감독님 말로는 소품실에 숨어있던 괴한의 습격을 받아 칼에 찔렸대요.”김시연은 아연실색했다.“갑자기? 많이 다쳤어? 그 사람은 잡은 거야?”“모르겠어요. 저희도 이제 막 그쪽으로 가려던 참이었거든요.”“얼른 가자. 나도 같이 갈게.”김시연은 곧바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시온이가 나 대신 소품 가지러 간 게 아니었다면 내가 찔렸을 수도 있겠네?”그 말을 들은 감독은 의아해하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김시연은 대충 설명해 줬다.“이렇게 우연일 수가 있나?”감독은 우연처럼 보이는 이 찝찝함이 너무 거슬렸다.“그렇죠? 저도 너무 이상한 것 같아요.”이때 주시온이 과감한 추측을 했다.“설마 그 괴한이 누나를 공격하려고 한 건 아니겠죠?”주시온의 말을 듣고 난 김시연도 입술을 깨문 채 곰곰이 생각했다.‘정말 나를 타킷으로 삼은 건가? 누구지? 이엘리아?’“소품 가져오라고 부탁했던 그 사람은 누구야?”김시연은 생각에 잠겼다.“사원증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요.”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돌변한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경찰이 오면 얘기하자.”그 시각 소품실 입구. 스태프 몇 명이 괴한을 제압했고 도망치지 못하게 밧줄로 꽁꽁 묶었다.바닥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다운이 누워있었는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복부에는 칼자루가 꽂혀있었고 그 주위는 피로 붉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