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몽요의 이름을 듣자 예군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사람 일에 관심 끄고 본인 일이나 잘해요.” 그녀는 물었다. “내가 너무 진몽요씨한테 ‘관심’을 갖을까 봐 무서운 거죠? 걱정 마요, 아무 짓도 안 해요. 난 지금까지 그런 사람도 아니었고, 이 얘기를 하는 건 단지 당신한테 그 여자 상황을 알고 있으라는 거예요. 어차피 내가 말 안 해도 알고 있을 테지만요, 아닌가요?” 예군작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진몽요의 모든 걸 주시하고 있었고, 그녀가 지금 출산 대기중이라 입원한 것도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 순간, 국청곡은 진정으로 자신이 심리적 피로감으로 인해 지친 게 느껴졌다. 예군작은 마치 영원히 뜨거워지지 않을 돌 같았고,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마지막에 결국 돌아오는 건 그의 차가움이었다. 가끔 그가 따뜻하게 대해도 결국 다 옆 사람 때문에 보여주는 가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은 임신기간을 우울속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잠시 침묵한 뒤 그녀가 말했다. “내일 그냥 해성으로 돌아가서 태교하는 게 좋겠어요. 여기는 적응이 안되서요.” 적어도 국가네로 돌아가면 그녀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고, 여기서 시시때때로 마음 졸이면서 남의 생각을 신경 쓰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었다. 예군작은 짜증섞인 듯 말했다. “마음대로 해요! 여자들은 다 이렇게 성가셔요?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나간다고 그러고, 이런다고 해서 내가 달라질 줄 알아요?” 국청곡은 최대한 기분을 억눌렀다.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그냥 단순히 여기 있는 게 익숙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요. 장기적으로 마음에 부담을 갖으면 아이한테도 안 좋을 거 같아서요. 당신이랑 화내면서 싸울 생각도 없고, 당신이 가식적으로 나를 기쁘게 해주는 건 더더욱 기대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할래요…” 말을 한 뒤, 그녀는 뒤돌아 다시 밥을 먹으러 갔다. 어르신은 촉촉한 그녀의 눈가를 보고 물었다. “쟤가 또 너 화나게 했어?” 국청곡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살짝
어르신은 그녀가 흥분한 걸 보고 한결 부드러운 말투로 “청곡아, 오해야, 할아버지 뜻은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네가 너희 가족들 앞에서 군작이를 감싸 주는 걸 원치 않아. 걔가 널 어떻게 대하는지 나도 알고 있고 다 걔 잘못이지. 할아버지는 그냥 너희가 갈등 때문에 별거를 하게 되면 문제는 해결도 안되고 더 멀어질까 봐 그래. 만약 정말 돌아가고 싶으면 군작이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 가기 전에 꼭 사이좋게 화해하고, 알겠지?” 국청곡은 어르신의 속셈을 추측하는데 마음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겉과 속이 다른 건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계속된 추측에 너무 지쳤다. 지금 그녀는 아무것도 신경쓰고 싶지 않았고, 다시 눈치 보고 않고 그저 마음 편히 아이를 낳고 싶었다. “네, 알겠어요.” 밥을 다 먹고 방에 돌아온 온 뒤에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어르신이 예군작에게 그녀를 직접 해성으로 데려다 주라고 한데에는 묘한 이치가 숨겨져 있었다. 예군작은 아마 높은 확률로 무시할 것 같았고, 그러니까 어르신의 말은 그녀가 만약 가고 싶다면 예군작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만약 예군작이 데려다 주지 않는 다면, 그녀는 떠날 수 없었고, 어르신은 그런 예군작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어르신은 그녀를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예군작에 말에 그녀는 깨우쳤다. 그녀는 예가네에게 남일뿐이었고, 어르신이 이전에 그녀에게 잘해주었던 건 정말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었다. 목적을 갖고 있는 호의는 어떠한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이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군작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당신 보고 나 해성에 데려다 주래요. 난 그저 돌아가서 태교하고 싶고, 아이 낳으면 다시 돌아올 거예요. 난 해성에서 자랐으니까 여기서의 모든 게 다 낯설어요. 전에는 임신중이 아니었으니 극복하고 참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임신중이라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더 커졌어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니까 당신이 내 생각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의외로 예군작은 이
서양양은 그녀가 장난치는 것 같지 않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언니, 왜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이렇게 다급한 적이 처음이신 거 같아서…” 온연은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뒤 흥분된 기분을 억지로 가라 앉혔다. “친구가 출산한다고 해서요. 지금 기쁘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해요. 당장 가봐야 해서 샘플은 양양씨한테 맡겨야 할 것 같네요. 갔다 오면 밥 살게요!” 서양양은 안도했다. “저번에 같이 밥 먹었던 그 분 맞죠? 몽요언니요. 벌써 출산하실 줄은 몰랐는데 걱정 마시고 얼른 가보세요. 회사 일은 저한테 맡기시고요. 저는 언니한테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어요…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네요.” 아이가 태어난 다는 건 좋은 일이 맞지만, 온연에게는 진몽요의 안전이 더 중요해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다. 그녀가 급하게 병원에 도착했을 때 경가네 사람들과 강령이 모두 와 있었다. 다들 수술실 밖을 지키며 긴장해서 얼굴이 창백해졌고, 심지어 경소경은 살짝 떨고 있었지만 벽에 기대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온연도 원래 그들과 같은 마음이었으나 똑같은 표정인 그들을 보자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사실 제왕절개 수술은 안전성이 높아요. 사고 날 확률이 적으니까 다들 너무 긴장 안 하셔도 돼요. 특히 경소경씨, 너무 떨지 마세요.” 경소경은 민망해서 헛기침을 했다. “저… 저 안 떨었어요… 막말 마세요, 저 하나도 긴장 안 했는 걸요. 그냥 애 낳는 거잖아요?” 하람은 이 말을 듣고 긴장된 상황에서도 아들에게 한 마디 했다. “그냥 애 낳는 거? 너가 이런 말을 하고도 사람이야? 몽요는 안에서 힘겹게 수술중인데, 넌 마음이 놓여? 네가 나보다 더 심하게 떨고 있는 것만 안 봤다면 널 팼어야 내 화가 풀렸을 거야.” 여기에 온 뒤에야 온연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그녀가 걱정할 게 뭐가 있을까? 진몽요는 전지를 만나고 나서 불행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진몽요가 가장 행복했다.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다 웃었고 온연은 다가가서 말했다. “괜찮아, 나중에 몸 좀 회복되면 둘째 낳아야지. 제왕절개는 한 3년 지나야 다시 임신할 수 있는 거 같던데, 그때면 우리 콩알이가 네 딸보다 4살정도 많을 테니 딱이네. 급하지 않으니까 우선 몸부터 챙겨.” 온연의 말을 듣고 진몽요는 마음편히 잠에 들었다. 그녀가 잠들자 경소경은 깜짝 놀랐다. “의사 선생님! 이 사람 왜 이래요? 이렇게 갑자기 잠들 수 있는 거예요? 기절한 거 아니에요?” 옆에 아직 있던 의사는 눈가가 씰룩거렸다. “아니요… 마취 기운이 아직 남아서 잠드는 게 정상이에요. 수술은 성공적으로 됐으니 혼자 너무 호들갑 떨지 마세요. 산모도 안 놀랐는데 본인이 더 놀라시면 안되죠. 우선 산모부터 편히 쉬실 수 있게 병실로 옮기도록 하죠.” 온연은 경소경의 어깨를 토닥였다. “들었죠? 뭘 그렇게 놀라요? 몽요가 아이를 안 낳았으면 소경씨 간이 이렇게 작은 줄 모를 뻔했네요. 얼른 병실로 옮기죠.” 진몽요가 잠든 시간동안, 병실에서 사람들은 큰 소리로 떠들지 못 했다. 하람은 목소리를 낮춘 채 아이를 소중히 다뤘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잠만 잤고 잠깐 배가 고파서 울려고만 하면 누군가 바로 젖병을 가져왔다. 진몽요의 수면에 방해될까 봐 아이에게 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이는 건강했다. 3.6키로로 태어나 수술실에 우렁찬 울음소리가 퍼졌고, 임신중에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했다는 게 보일 정도로 기운이 넘쳤다. 하늘이 어두워질 때쯤, 진몽요는 슬슬 잠에서 깨어났고 눈을 뜨기도 전에 신음소리를 냈다. ”아파 죽겠네…” 경소경은 다가가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술한 곳 아파요? 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통증 완화할 수 있는 방법 없는지 좀 물어볼게요.” 진몽요는 고개를 저었다. “수술 동의서 쓸 때 의사 선생님이 필요한 약은 다 썼다고 한 말 잊었어요? 특히 진통제는 지금 옆에 걸려 있잖아요. 내가 약발이 잘 안 받나봐요. 사실 엄청 아픈 건 아니고 생리통이랑 비슷해요.”
차에 탄 후 목정침은 상황을 물었고 온연은 아이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통통한 자식, 3.5키로가 넘어요. 엄청 건강하고 경소경씨랑도 꽤나 닮았어요.” 목정침은 말없이 생각에 잠긴 듯했다. “무슨 생각해요?” 그녀가 물었다. 그는 멈칫하다가 말했다. “진몽요가 애를 낳았으니 예군작이 가만히 안 있을 거 같아서.” 온연의 기쁘던 마음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러게요, 몽요가 안정적으로 애를 낳게 해준 것도 이미 그 사람 인내심의 한계일 텐데,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요. 경소경씨도 속으로 분명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예군작이 전지라는 건 조만간 들통나겠죠.” 목정침은 계속해서 돌을 던졌고 그녀의 마음 속엔 파도가 일렁였다. “예군작이 오늘 국청곡을 해성에 데려다줬어. 국청곡도 임신한지 몇 개월 됐는데, 이럴 때 그 여자를 돌려보낸다는 건 분명 어떤 액션을 취하려는 거겠지. 국청곡이 여기 있으면 걸림돌이니까.” 온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국청곡은 왜 해성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거예요? 그 여자는 지금까지 하나도 의심을 안 한 걸까요? 아니면 예군작이 다른 여자랑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걸까요? 이제 국청곡이 떠났으니 예군작은 마음대로 할 수 있겠네요.” 목정침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국청곡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증거는 충분히 많이 잡았을 텐데 말이야. 됐어, 우리는 이미 준비된 생각들이 있잖아. 일어나지 않은 일에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소경이한테만 조심하라고 하자.” 목가네로 돌아온 뒤 온연은 골치거리를 잠시 접어두고 아이에게 집중했다. 콩알이랑 같이 있을 때면 그녀는 마음에 긴장을 풀고 아무런 생각도 안 할 수 있었다. 마침 진락이 밖으로 짐을 옮기고 있었고, 그녀는 아이를 안고 그를 놀렸다. “벌써 나가는 거예요? 앞으로는 두 사람의 생활이 되겠네요. 미리 행복을 빌어요.” 진락은 그녀의 말에 민망해졌다. “사모님… 아직이에요. 벌써 놀리지 마세요,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까요.” 온연은 혀를 찼다. “왜 그런
목정침은 그녀를 몇 초간 응시했다. “내가 진락한테 뭐 줬는지 안 물어봐?” 온연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물어볼 게 뭐가 있어요? 당연히 돈이겠죠. 당신은 겉으론 차가워 보여도 주변 사람들한테는 잘해주잖아요. 특히 진락, 유씨 아주머니, 임 집사님은 같이 목가네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한테요. 지금 진락은 당연히 예전보다 돈도 더 많이 들 테고, 결혼하면 집도 사야해서 다 돈 써야 될 일 밖에 없잖아요. 돈 말고 당신이 뭘 줄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이제 반쯤은 가정이 생긴 사람인데, 앞으로 일하는 시간도 조정해줘요. 24시간 대기하게 만들지 말고요.” 목정침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근무시간은 이미 상의했어. 돈 얘기는 너무 평범해 보이잖아. 그리고 돈 줘도 안 받아. 너무 많이 주면 걔가 해고당한다고 느끼는 거 같아. 혼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서 죽어도 안 받으려고 하고, 너무 적게 주자니 또 내가 쪼잔한 거 같잖아. 그래서 집 열쇠로 줬어, 신혼집으로 쓰면서 계속 거기서 살 수 있게. 주는 거라고는 안 했어 안 받을까 봐. 집 호적 얘기는 나중에 하지뭐. 지금 얘기하면 그 성격상 절대 안 받아. 돈보다는 집으로 주는 게 낫지. 그래도 내 밑에서 몇 년 동안 있었는데 집 사는데 돈을 다 쓰게 할 수는 없잖아. 지금 걔한텐 집이 제일 필요할 거야.” 온연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왜 그 생각을 못 했죠? 역시 당신은 생각이 깊네요. 어차피 결혼할 거라면 제일 큰 지출이 집일 텐데, 당신이 바로 집을 사주면 훨씬 수월하겠어요.” 목정침은 갑자기 그녀의 코를 꼬집었다. “내가 마음대로 너랑 상의도 없이 집을 사줬는데, 넌 불만도 없어? 그래도 이건 우리의 공동 재산인데, 넌 그렇게 별 생각이 없는 거야? 그래도 먼저 물어볼 수는 있었잖아?” 아이는 그의 동작을 따라하며 온연의 코를 꼬집었고, 온연은 아이의 손을 치웠다. “비록 우리가 결혼 전에 재산공증은 안 받았지만, 이게 다 당신 돈이고 당신 재산인 거 알고 있어요.
서양양이 택시를 타고 왔을 때 목정침은 이미 밥을 다 먹고 콩알이를 데리고 위층에 올라가 있었다. 온연은 거실에서 서양양과 얘기를 나눴고, 서양양이 떠나려 할 때 마침 비가 그쳤다. 공기는 비가 그친 후에 상쾌한 냄새와 빗물의 습기가 섞여 있었다. 온연은 서양양을 택시타는 길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일 봐요.” 서양양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른 들어가세요 언니, 내일 봬요. 맞다, 언니네 집 너무 예뻐요, 역시 비싼 저택 답네요~” 온연은 웃으며 차가 멀어진 뒤에야 집으로 들어갔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서양양은 차에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런 꽉 찬 하루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가슴 아픈 생각을 할 여유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유가 생기면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마치 지금처럼… 제시카가 감옥에 들어가고, 당천도 연루가 되었으니 당천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생각을 잠겼다가 그녀는 갈수록 창밖 풍경이 낯설어 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 같은 젊은 여자 혼자서 이 저녁에 택시를 탔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당황했다. 그녀는 슬쩍 눈 앞에 택시 기사를 보았고, 기사의 얼굴은 차 흔들림 때문에 살결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도 같이 떨렸다. 그녀는 순간 젊은 여성들이 늦은 시간 택시에서 범죄를 당한 뉴스들이 생각나 공포심이 마음을 지배했다. 여기서 그녀의 집까지는 아직 멀리 남은데다가, 이 길은 점점 더 낯설고 외진곳으로 향하고 있으니 그녀는 이빨까지 떨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아빠가 잘 때 핸드폰 전원을 끄고 잔다는 게 생각났고, 이 시간에 부모님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이럴 땐 이성에게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는 연기를 하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그녀는 연락처를 뒤지며 당천의 번호에 시선이 멈췄다. 그녀는 귀신에 홀린듯이 전화를 걸었고, 전화가 연결되자 당천이 말을 하기도 전에 얼른 말했다. “어디서
그녀는 1초간 망설이다가 그를 믿기로 했다. 그녀는 그가 정말로 국내에 있을 줄 몰랐고, 이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켜고 황급히 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가로등 아래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비춰졌고, 바닥에 닿는 구두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려서 그녀의 심장을 울렸다. 그녀는 애써 침착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했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저 걷고 있어요, 어디까지 왔어요…?” 그가 어디까지 왔는지 물어보는 것 외에는 지금 이 관계에서 무슨 얘기를 나눠야 할지 몰랐다. 당천은 운전을 하고 있어서 빠르게 대답했다. “근처요.” 그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 들려왔고, 텅빈 저녁에 울려퍼지자 그녀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가 이렇게 좋고, 맑고, 매력적인지 그제서야 알았다. 약 10분이 지나고, 그녀가 마음을 졸인 그 10분이 흘러가자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그녀의 곁을 지나갔다. 한참을 멀리 지나친 후에 갑자기 멈춰서 다시 후진했다. “타요.” 서양양은 당천의 목소리를 듣고 차 문을 연 뒤 탔다. 몸은 아직도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감사해요…” 당천은 대답하지 않고 운전을 하며 계속 주변을 둘러봤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저 차가 계속 그쪽 따라다니고 있었어요. 나한테 전화해서 다행이에요.” 서양양은 그의 시선을 따라 밖을 보았고, 역시나 그 차는 그녀가 차에 타는 걸 보고 유턴을 해서 돌아갔다. 그녀는 또 두려움을 느꼈다. 만약 당천이 몇 분이라도 늦었거나, 해외에 있었거나,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 걸 선택했다면, 아마 무서운 일을 당했을 테다. 서양양은 계속 참아왔던 눈물을 그제서야 터트렸다. “앞으로 혼자 택시 못 타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당천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사실 그렇게 무서울 것도 없어요. 대부분의 택시 기사들은 문제없으니까요. 내가 차 번호 기억해 뒀으니까 무서워하지 말아요. 이제 집에 데려다 줄까요?”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