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와 식탁으로 걸어갔다. 목정침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밥 먹는 것까지 사람 시켜서 고히 모셔와야 하나봐? 내가 너한테 규칙에 대해서 가르친 적이 없었나?”그녀는 식탁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배는 벌써부터 고팠다. 그가 진함을 앞에 두고는 자신에게 어떤 짓도 하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목정침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이미지이니까. 냉랭한 표정이 이미 그가 할 수 있는 한계치였다. 더 심한 짓은 그도 하지 못할 것이다. 온연을 쳐다보는 진함의 눈빛이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았다. “정침씨, 연이 다 당신이 돌봐준 덕분이에요. 엄마 된다는 사람이… 너무 부끄럽고 감격스럽네요.”강연연은 그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목정침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입을 열었다. “정침 오빠 정말 대단하다. 원수의 딸도 옆에서 거두어 키우고. 그것도 십 년 동안이나.”진함의 얼굴이 갑자기 냉랭해졌다. 하지만 화를 내기에는 또 애매했다. “입 다물어.”강연연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맞잖아요? 엄마, 언니는 참 운이 좋아요.”반찬을 집던 온연의 손이 갑자기 얼어버렸다. 입안의 음식이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강연연 이 여자는 자꾸 타이밍 맞게 그녀를 역겹게 했다. 목정침이 눈을 몇 번 감으며 눈밑에 담긴 분노를 쓸어 넘겼다. 몸을 일으키며 그가 말했다. “천천히 드세요. 전 다 먹어서. 일 얘기는 조금 이따 서재에서 하죠.”진함이 몸을 일으켜 단정하게 웃었다. “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목정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그의 발걸음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자연스럽게도 온연을 향한 분노일 것이다.목정침이 자리를 뜨자 오히려 온연이 밥을 먹기가 더 편해졌다. 강연연이 아낌없이 혐오가 가득 찬 눈빛을 드러냈다. “보아하니 정침 오빠가 너 거둬
#진함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연, 나 이제 갈게. 몸 불편하면 병원에 가봐. 미루지 말고."그녀는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거북함을 참지 못하고 냉랭하게 대답했다. "강사모님, 당신은 저 신경 쓰실 자격 없으세요. 그 시간에 강씨 집안사람이나 더 신경 쓰시는 게 어때요."진함의 몸이 살짝 얼어버렸다. 그녀는 이 상황이 조금 난감했다. 강연연이 진함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엄마, 싫다는 사람한테 그만 들러붙으면 안 돼? 엄마는 딸로 생각하고 싶을지 몰라도 얘는 엄마를 엄마라고 인정하기 싫어해." 진함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묵묵히 계단을 내려 자리를 떠났다. 강연연은 마음이 너무 찝찝했다. 예전에는 진함의 눈에 딸은 자신 하나뿐이었는데 지금 갑자기 온연이 튀여나와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화가 나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 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그녀는 그제서야 일어나 혹시나 뭐라도 먹을 게 있나 찾아보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방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막 서재에서 걸어 나오는 목정침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가 조금 어두워지더니 냉랭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너무 혐오스러워 그녀를 한 번이라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아래층을 내려가 대문으로 향했다. 온연은 떠나가는 그를 보며 입술을 오므리고 묵묵히 서있었다. 묵묵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삶은 언제쯤 끝이 나는걸까? 마치 짙은 안갯속에 씌워진 듯 도저히 빛이 보이지 않았다.뭐라도 먹고 방으로 돌아갔는데 핸드폰에 심개가 보낸 문자가 띄워져있었다. "통화 할 수 있을까?"그녀는 바로 전화를 했다 거의 일초만에 전화가 연결됐다. 심개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흥분감이 섞여있었다. "연아, 요즘 잘 지내?"그녀의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그녀는 통유리 앞으로 걸어가 커튼을 열어 비 내린 후의 상쾌한 공기를 느껴보았다. "잘 지내."심개의 대화주제가 진몽요에게로 전환
#온연은 진몽요가 말실수를 할까 무서워 황급히 말했다. "난 괜찮아. 너 도와주지 않으면 오히려 내 마음이 불편해."심개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네 여기서 좀 기다려. 나 먼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심개가 간 후 진몽요가 온연의 손을 잡았다. "너 손이 너무 차갑다. 어제 의사선생님께서 너보고 침대에서 일주일 정도 쉬라고 했잖아. 뭘 이렇게 돌아다녀. 여긴 심개랑 같이 있으면 돼. 그만 돌아가. 응?"여기까지 왔는데 온연은 당연히 지금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됐어. 심개앞에서 헛소리나 하지 마. 난 괜찮아."한편 화장실 문 앞까지 도착한 심개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그의 눈이 한 쌍의 차가운 눈과 마주쳤다. 잠깐의 침묵이 끝나고 그가 입을 열었다. "연이 따라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지는 마세요."목정침의 표정이 조금 더 차가워졌다. "연이? 내 와이프랑 사이가 좋은가 보네."'와이프' 이 세 글자를 듣자 심개의 가슴의 조금씩 아파졌다. "목정침, 네가 무슨 수를 써서 온연이랑 결혼을 했든 걔한테 잘 해줘야 할 거야. 아니면 널 대신할 사람이 생길 테니까."목정침의 입가에 조롱의 미소가 걸렸다. "넌 지금 무슨 신분으로 그 얘길 나한테 하는 건데? 전 남자친구? 아님… 대타? 내가 그녀한테 잘하든 못하든 심개 너랑은 상관없는 것 같은데. 네가 할 일은 그녀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져 주는 거야. 내가 네 귀국을 허락했다고 해서 네가 아무 걱정 없이 온연이랑 다시 재결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심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눈앞에 서있는 안하무인의 남자가 난생처음으로 그를 앞뒤 가리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고 싶게 했다. "지금 협박하는 거야? 그래, 네가 우리 심가를 망하게 하는 건 엄청 쉬운 일이겠지. 근데 슬프게도 넌 보기에만 모든 걸 손에 쥐고 있지 사실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방어하고 있잖아.참 안타까워… 만약 온연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제발 놓아줘. 내 눈에는 다 보여. 네가 계속 온연이를 괴롭히고 있다는게… 그게 아니라면
#심개는 온연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는 목정침을 만난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괜찮아. 오늘은 좀 늦었다. 일단 이 정도만 하자. 몽요 너는 어머님이랑 같이 있어 드려."진몽요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 엄마 원래 저러시잖아. 네가 몰랐던 것도 아니고. 아빠 저렇게 돌아가신 거 아마 몇 년이 걸려도 진정 안되실거야."온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 일 생기면 연락해."말이 끝나자 그녀의 눈에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는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보였다 그녀가 이미 외워버릴 정도로 익숙해진 차 번호였다. 목정침의 차였다…잠시 멍 때린 사이에 진락이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핸드백을 받아들었다. "사모님, 가시죠."온연은 목정침이 여기에 있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 심개와 진몽요를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락을 따라 차에 탔다.차 안, 목정침은 읽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여기에 있는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그는 창밖으로 스쳐지나는 건물들을 보고 있었다. "왜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건데?"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고 나서야 대답했다. "몽요네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전 그냥 일처리 해주러 온 거예요." 목정침이 계속 따져 물을 줄 알았는데 그가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진중이 죽었으니까 돈은 안 갚아도 돼."그의 말에 온연은 얼어버렸다.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그녀가 말했다. "몽요가 안 갚을 리가 없어요. 몽요네 어머님 밑으로 엄청 큰 빚이 있어요. 부부 공동명의라 아빠가 돌아가셨어도 갚아야 할 거예요."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밑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어려있었다. "안 갚아도 된다고 했잖아. 너도 계속 심개 만나려고 이유 찾지마. 스캔들은 이미 충분히 많아. 적당히 해. 나는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아."목정침이 왜 갑자기 사람 좋은 일은 했는지 그녀는 그제서야
#어제부터 사람을 시켜 가져온 것이라면 특별히 강연연을 위해서 준비한 것일 수도 있다. 오늘 마침 진함과 강연연이 왔었으니. 단지 식재료가 너무 늦게 와서 강연연이 미처 저녁까지 기다리지 못해 그녀가 운 좋게 떨이를 주운 것일 수 있다.이 계절에 제도에서 이렇게 품질 좋은 대하는 구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비행기로 태워 가져왔으니 목정침이 마음을 쓰긴 했나보다.그녀가 막 입안으로 대하를 집어넣으려 할 때 목정침이 식탁에 도착했다. 대하 반절이 입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의 얼굴색이 좋지 않자 그녀는 규칙을 어기고 먼저 젓가락을 놀리는 걸 신경 쓰는건 줄 알았다. 대하를 뱉을까 말까 고민하는데 그가 새우를 전부 그녀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먹는 모양 하고는."그가 종래로 대하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그녀가 다 먹을 수 있었다.비록 말투는 좋지 않았지만 이미 그가 입을 열었으니 그녀는 더 이상 사양하기가 귀찮았다. 두 손을 열심히 움직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앞에 대하 껍데기가 한가득 쌓여있었다.접시에 담겨있던 온연의 손바닥만 한 대하를 거의 다 먹어치우고도 멈출 생각이 없는 그녀를 보며 목정침은 조금 놀라워했다. 그녀가 먹는 양이 이렇게 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평소에는 식욕이 고양이만 하더니 설마 진짜… 그녀에게 너무. 각박하게 대한 건가? 라고 그는 생각했다.그는 인상을 쓰며 연어를 그녀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녀가 흘깃 쳐다보더니 연어를 다시 식탁 중간으로 돌려놓았다. "저 지금 생거 못 먹어요…"목정침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왜?"자신이 말을 잘못한 걸 알고 그녀의 몸이 얼어버렸다.그녀가 황급히 말했다. "저 요즘 위가 안 좋잖아요… 당신 드세요…"그가 몸을 바르게 세웠다. 그의 시선이 계속 오물거리는 그녀의 작은 입술에 고정되었다. 그도 궁금했다. 그녀가 얼마나 더 오물거릴 수 있는지….반 시간 뒤, 온연은 접시에 있는 대하를 다 먹고는 채소를 곁들여 밥을 한 그릇을 뚝딱했다. 오늘 그녀
#그들은 한동안 이렇게 같이 밥을 먹고 한 지붕에서 지낸 적이 없었다. 요즘 그도 먼저 그녀를 찾지 않았고. 그 말을 듣자 온연은 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저… 제가 담배 냄새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 계속 피세요. 괜찮아요. 전 객실방에서 자면 돼요.”예전에 그가 담배를 피울 때 그녀는 한 번도 싫다고 한 적이 없었다… 목정침의 눈 밑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담뱃갑을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는 몸을 일으켜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자자.”온연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의 행동이 뭘 의미하는 건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그녀가 싫다고 해서 담배를 전부 버렸다고? 그녀를 신경 써서 그랬다기에는 너무 말이 안 됐다. 그가 화가 나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걸어가 담배를 다시 주웠다. 방안에 있는 쓰레기통은 항상 깨끗했다. 하긴 평소에 그녀는 방에서 잠만 잤을 뿐이니까. “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죄송해요.”목정침은 시계를 풀어 침대맡에 올려 두었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고 목소리에는 답답함이 섞여 있었다. “싫으면 말해. 항상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그녀는 침묵했다.. 그녀는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이번에는 습관성 침묵이 아니었다. 그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그게 언제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고 하고 싶은 말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내 말에 그가 진심으로 나를 신경 써주다니….목정침의 옆에 누웠을 때 온연은 이 상황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냉랭했는데… 자세히 생각을 해보니 결혼한 삼년 동안 그들이 이렇게 같이 누워있던 시간들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갑자기 목정침이 몸을 돌려 그녀를 마주 보더니 았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를 품 안에 안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의식적으로 들자 온연이
#전화기 너머, 진몽요는 갑자기 전지 생각이 났지만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단지 말투가 조금 씁쓸해졌을 뿐이었다. “응… 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 앞으로 잘 지내야 해!”전화를 끊고 온연은 다시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바쁜 오전이 지나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근처 백반집이 생각 났다. 오늘은 왠지 가벼운 음식이 먹고 싶었다. 백반집에 도착한 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 두 가지를 시켰다. 반찬이 바닥날 때까지 천천히 음미했다. 식당을 떠날 때쯤 갑자기 밖에서는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지 모를 비가 내리고 있었다.를 그녀는 발견했다. 지금 계절이 딱 그렇다. 날이 맑은지 흐린지 확실하지 않았다. 마치 목정침처럼…비는 작지 않았고 전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갇혀버렸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비록 회사랑 먼 곳은 아니지만 그녀는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백반집 앞에는 주차를 위한 빈 공터가 있어 도로와 가깝지 않았고 택시를 부를 방법도 없었다. 옛날이었으면 아마 망설이지 않고 비를 뚫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의 뱃속에 있는 이 작은 녀석이 신경 쓰였다. 임신 초기에는 감기몸살이나 약물을 제일 금기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색 캐딜락이 공터 근처에 세워졌다. 그녀는 그 차를 알고 있었다. 전지의 차다. 전지는 당연히 이런 차를 몰수 있는 경제적 상황이 되지 않는다. 이 차가 진몽요와 관련이 있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과거 휘황찬란했던 진가의 모습이 눈에 보였고 지금 진가의 몰락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조금의 조롱도 그 속에 섞여있었다. 차에서 내리던 전지는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온연을 발견했다. 그는 비를 뚫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마치 옛 친구와 인사하듯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왜 있는 거예요?”온연은 생각을 멈추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비가 와서 못 가고 있어요. 그쪽은 밥 먹으러 왔어요?”전
#온연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 그쪽 몽요랑 똑같네요. 이 의심, 저 의심 하는 거 보니. 저 도착했어요. 옆에 세워 주세요.”차가 멈추고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황급히 자리를 떴다.멀어져 가는 그녀의 뒤 모습을 보던 전지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어두웠다. 보아하니 진몽요가 아직 그와 헤어진 사실을 온연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 같았다…곧 퇴근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진몽요가 온연에게 문자로 원망 섞인 소식을 전했다. ‘일자리 찾는 거 너무 어려워. 게다가 오늘 비도 많이 오고. 짜증 나 죽겠어!’그때 온연은 손에 있던 일들을 거의 다 끝낸 상태였다. 그녀가 대답했다. ‘전지가 너 먹여 살릴 건데 뭐가 걱정이야? 예전에는 네가 도와 줬다면 이젠 걔가 너 도와 줘야 할 때지. 그 사람 이제 좋은 직장도 있고, 2억짜리 차도 몰고 다니고. 생활이 꽤 괜찮은 것 같던데. 너 일자리 찾는 건 천천히 해.’문자를 보내고 난 후 진몽요는 한참이 지나서도 답장이 없었다. 온연은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답장이 왔다. ‘나 전지랑 헤어졌어. 그 차 내가 생일선물로 사준 건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우리 집 힘들 때 걔 그 차 팔아서 우리 집 도와줄 생각도 안 했어. 벌써 알아챘어야 했는데. 빨리 마음 접게.’온연은 그 문자를 본 후 침묵했다. 요즘 진몽요는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는데 조금이라도 멘탈이 약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벌써 못 버티고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다만 점심에 자신을 회사까지 데려다 준 전지가 진몽요랑 헤어졌다는 사실을 왜 그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전지가 티를 내지 않은 바람에 그녀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일순간 어떤 적절한 위로의 말을 건넬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진몽요가 오히려 그녀를 위로했다. ‘난 괜찮아 연아. 나한테는 너랑 심개가 있는걸. 남자는 다 쓰레기야. 친구야말로 진짜지. 일자리 찾으면 밥 살게. 일단 여기까지만 하자. 나 밥하러 갈게.’결국 온연은 ‘그래’라고 그녀에게 한마디 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