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객들의 조롱이 날카롭게 강우연의 귀를 파고들자 땅만 내려다보며 걷던 강우연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시간이 지나면 조금이나마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적대감은 여전했다.‘내가...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5년 동안 가족들 도움 하나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고운이를 키워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그리고 이 모든 건 전부 한지훈 때문이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그와 한발 멀어졌다.‘무서워... 오늘처럼 중요한 날, 5년 전 그날처럼 또 지훈 씨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될까 봐. 또 다시 부모님에게, 할아버지에게, 다른 가족들, 친척들에게 죄인이 되어버릴까 봐...’오만가지 생각에 강우연의 머릿속에 어지러워질 때쯤, 따뜻하고 큰 손이 핏기 하나 없이 차게 식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보니 역시나, 한지훈의 맑지만 단단한 눈이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한지훈이 나지막히 속삭였다.짧은 한 마디였지만 사랑이 뚝뚝 흘러넘치는 두 눈과 손끝에서 전달되는 따뜻한 온기가 상처투성이인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했다.‘그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모두가 날 버렸을 때 내 곁에 있어준 사람은 지훈 씨뿐이야. 이제 내 가족은 지훈 씨랑, 고운이라고.’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던 강우연 역시 손을 꼭 잡았다.이때,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파티홀의 분위기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강우연? 네가 여길 어떻게... 게다가 저 자식까지. 너, 할아버지 쓰러지시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강우연이 등장하는 순간, 짐짓 마음에 안 드는 척 미간을 찌푸렸지만 사실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던 강희연이었다.‘그래... 너라면 무조건 올 줄 알았어.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오늘 제대로 밟아줄게. 다시는 얼굴 들고 살지 못하도록.’‘뭐지? 지훈 씨가 분명 초대장은 언니가 보낸 거라고 했는데.’강우연
“으아악! 너... 지금 날 때린 거야?!”따귀의 충격에 잠깐 멍하니 서 있던 강희연이 바로 길길이 날뛰었다.“네가 뭔데 날 때려! 네가 뭔데!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라고!”놀란 건 강희연뿐만이 아니었다.가족들도 초대받은 하객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강희연은 오늘의 주인공인 강준상 회장이 가장 아끼는 손녀, 그런 그녀의 뺨을 때렸다는 건 강준상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관우 씨, 가만히 있지 말고 좀 와봐! 저 자식이 날 때렸잖아. 내 코... 얼마 전에 바로 한 건데. 어떻게 할 거야!”여자친구의 불호령에 역시 멍하니 앉아있던 오관우가 부리나케 달려와 강희연을 뒤로 숨겼다.“야, 너 뭐야? 미쳤어? 감히 내 여자한테 손을 대?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내 말 한 마디면 너 당장 죽여버릴 수도 있어. 당장 사과해. 안 그럼 너희 세 식구한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뭔지 보여줄 테니까.”하지만 곱게 자란 부잣집 도련님의 협박 따위가 한지훈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가차없이 킥을 날려 오관우를 털썩 주저앉게 만든 한지훈이 그를 내려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그래, 이래야 눈높이가 맞지.”“허!”“세상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사람들이 술렁대고 강우연 역시 단단히 충격을 받았는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멍하니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오히려 어린 딸 한고운이 아빠를 향해 외쳤다.“아빠 멋있어!”“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겨우 정신을 차린 강우연이 아이의 입을 막고는 한지훈의 팔을 잡아끌었다.“지훈 씨, 이게 지금 무슨 짓이에요?”그리곤 부랴부랴 강희연, 오관우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죄, 죄송합니다... 저 사람이 너무 화가 나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 테니까 제발 용서해 주세요. 치료비든 뭐든 보상해 드릴게요.”“보상? 뭘 어떻게 보상할 건데?”어느새 일어선 오관우가 정장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좀 더 널브러져 있지 그래? 어차피 한 방이면 또 나가떨어
한지훈의 승낙에 사람들의 반응은...“허.”“말도 안 되는 소리!”비웃음뿐이었다.“지금 웬만한 기업들은 다들 그것만 노리고 있는데 자기가 아직도 한정그룹 도련님인 줄 아나봐?”강준상의 태도 역시 사람들과 별 다르지 않았다.“지난 5년 동안 뭘 하면서 지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영하는 기업은커녕 인맥 하나 없는 네가 무슨 수로? S시의 웬만한 기업들은 전부 금조그룹의 남긴 프로젝트를 노리고 있을 텐데? 그래, 네가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5일 안에 해내. 그럼 우연이뿐만 아니라 너도 내 손주사위로 인정해 줄 테니까.”만약 한지훈이 실패한다면 강우연이라는 오점을 영원히 지울 수 있을 테고 만약 성공하여 금조그룹 프로젝트만 따낸다면 강운그룹의 주가 역시 치솟을 것이다. 이건 강운그룹이 한 단계 더 상승하여 재계 50위권 기업에 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가슴속에 능구렁이 100마리는 넘게 키우고 있는 강준상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게다가 한지훈을 사위로 받아들인다면 5년 전 그 치욕을 두 사람이 첫 눈에 서로에게 반했다쯤으로 무마할 수 있을 테니 어느 쪽이나 그에게 나쁠 것이 없었다.‘뭐 그래도 지까짓 게 무슨 수로 5일 안에 해내겠어...’하지만 한지훈의 대답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5일이나 필요없습니다. 하루면 충분합니다.”“지금 그 프로젝트를 손에 쥐고 있는 누구인지 알긴 해? 너 같은 건 평생 말도 못 붙일 분이셔!”강희연이 팅팅 부은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할아버지, 지훈 씨 S시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데 무슨 수로...”강우연이 애원을 해봤지만 강준상의 태도는 단호했다.“억지로 강요한 적 없어. 사내라면 자기가 하겠다고 한 일은 무조건 해내야지. 이 험한 세상에서 정말 너희 모녀를 지켜낼 수 있는지 검증하는 테스트 정도라고 생각해라.”강우연의 다급함을 눈치챈 한지훈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 믿어.”“하지만...”“몸 깨나 쓰는 거 보니까 어디 조직
“우연이 대신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선물을 보낸이로 온갖 그룹 회장 이름이 언급되던 그때, 한지훈이 입을 열었다.“네가?”잠깐 흠칫하던 강준상이 바로 호통을 쳤다.“거짓말도 정도껏 쳐야지. 너희 가문이 몰락했다는 건 이 세상 사람들 다 아는 사실이야. 네가 무슨 수로 이걸 구해?”“하, 프로젝트도 따내겠다 그러더니 이제 저 선물도 자기가 보낸 거라고 그러네? 이건 뭐... 리플리 증후군인가?”“강우연 쟤도 참 불쌍해. 어쩌다 저런 남자랑 얽혀서는...”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이 비수처럼 강우연의 가슴이 꽂히고 결국 그녀는 다시 한지훈의 손목을 잡았다.“제발... 제발 그만 좀 해요.”한지훈이야말로 제발 자기를 믿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리가 자리인만큼 일단 한 발 물러서기로 한다.한고운을 번쩍 안아든 한지훈이 말했다.“내일 저택으로 계약서가 도착할 겁니다. 약속... 꼭 지키십시오, 회장님.”말을 마친 한지훈은 강우연의 손을 잡고 파티홀을 벗어났다.물론 사람들은 그의 말 따위에 신경도 쓰지 않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보물상자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말이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우연은 결국 또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미안해요. 나 때문에 지훈 씨까지...”“미안하다는 말 하지 말라니까. 저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든 난 전혀 신경 안 써. 그리고 너,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그런데... 금조그룹 프로젝트라니... 누구한테 이걸 부탁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히는 걸요...”한지훈의 위로에도 강우연의 얼굴에는 수심으로 가득했다.“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니까. S시 친구들한테 부탁하려고.”“정말... 가능할까요?”너무나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에 강우연의 눈동자에 조금의 희망이 스쳤다.“그럼.”하지만 잠시 후, 뭔가 떠올린 듯한 강유리가 커다래진 눈으로 물었다.“설마... 금조그룹... 지훈 씨 때문에 파산한 거예요?”사실 한지훈을 다시 만난 뒤로 강우연은
“네 보스, 무슨 다른 분부라도 있으십니까?”한민학이 다급히 물었다.지금까지 그는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이다!한지훈의 기세는 매우 강했고, 비록 앉아 있어도 한민학은 자신이 그에게 견줄 수 없다는 걸 느꼈다.“김 씨 가문이 남긴 협력 프로젝트를 골라내서 강우연에게 넘겨. 기억해, 강우연에게만 넘겨야 돼, 다른 사람은 절대 안 돼!”한지훈이 차갑게 말했다.“네……알겠습니다.”한민학은 황급히 대답했고, 비록 마음속에는 의문이 있었지만 추궁할 수 없었다.“다른 볼일 없으면 먼저 가 봐.”한지훈이 담담히 말하자, 한민학은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보스, 부탁이 있습니다. 3일 후 S시에서 부하들이 개최한 유명 인사들의 교류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목적은 김 씨 가문의 프로젝트를 받은 가문과 기업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죠. 여기 특별 초청장이 몇 장 있는데 부하들이 보스와 부인을 모시고 싶어 합니다.”“일단 놔둬, 시간이 되면 갈 테니까.”한지훈이 힐끗 보더니 대답했다.“예!”한민학은 그에게 인사를 한 뒤 낭월 산장을 떠났다.낭월 산장을 벗어나서야 한민학은 긴장이 완전히 풀려 버렸고, 그의 등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한편, 강 씨 가문의 별원 안.강희연은 화가 잔뜩 난 채로 적지 않은 물건을 부수며 강문복에게 말했다.“아빠! 정말 우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당하고만 있어야 해? 강우연이 강 씨 가문으로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나한테는 기회조차 없을 거라고!”하지만 강문복은 덤덤하게 차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웃으며 대꾸했다.“희연아, 그만. 이미 사람을 시켜서 조사를 했는데 한지훈은 그저 귀향한 군인일 뿐 아무런 세력이 없다. 한 씨 가문은 이미 5년 전에 망했어, 한지훈 그 집을 잃은 개가 뭘 할 수 있겠니? 김 씨 가문이 남긴 프로젝트를 그 사람은 절대로 받을 수 없다!”“정말이야?”그의 말을 들은 강희연은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흥! 그럴 줄 알았어, 강우연 그 천한 계집애는 평생 강 씨 가문에 돌아올 생각도 하
말을 마친 서경희는 거실에서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강학주에게 소리쳤다.“그만! 너무 정신없잖아! 이것 좀 보라고, 이게 당신 딸이 데려온 그 집을 잃은 개가 한 짓이야! 이 일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절대 용서는 없을 줄 알라고!”밖에서 서경희는 강학주의 체면은 세워주었지만, 집에만 오면 그는 공처가가 된다.“여보, 우연이는 이미 강 씨 가문에서 쫓겨났어. 그런데 나보고 어떡하라고?”강학주가 두 손을 펴 보이며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말했다.“당신도 봤다시피 한지훈은 그저 막돼먹은 놈일 뿐이야!”“하하, 속으로는 아직도 그 계집애를 걱정하고 있는지 누가 알아! 내가 단단히 알려주는데, 강우연은 절대 강 씨 가문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어! 이 집에서 걔 자리는 없다고! 그리고 내일 한민학을 보러 가는 일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어? 잘 아는 친구가 있다면서? 우리 신이가 갈 수 있기는 한 거야?”서경희가 물었다.“잘 안될 것 같아, 한민학을 아무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우리 강 씨 집안의 지위로는 희박하지, 아버지도 우리 집을 신경 쓰지 않으시는데 내 친구들로는 한민학 군단장을 만날 기회는 없을 것 같네.”강학주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뭐라고? 당신 정말 도움 되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네, 한지훈보다도 더 무능하기 짝이 없어! 내가 무슨 생각으로 당신한테 시집을 왔는지! 이번 일도 안 되면 우리 신이는 어떡하라고? 어르신은 지금 온통 강미연 그 게집애 밖에 눈에 안 들어오고 우리 신이는 안중에도 없어! 나중에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우리 집은 강문복에게 쫓겨나게 될 거야!”서경희가 강학주의 코를 가리키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욕을 해댔고, 강학주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가만히 서서 그녀의 구박을 받아냈다.“……다시 방법을 생각해 보지.”이튿날 아침, 한지훈네.“우연아, 내가 옛날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서 오늘 한민학 군단장님을 만나서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게 됐어.”한지훈이 말했다.”“네? 한……한
“언니……”강우연은 살짝 겁이 났는지 재빨리 한지훈의 손을 뿌리쳤다.강희연은 서늘한 얼굴로 강우연과 한지훈을 바라보며 다가왔다.“너희는 여기가 어딘지 알기나 해? 빨리 꺼져, 우리 강 씨 가문에 먹칠하지 말고! 만약 나랑 민학 그룹의 협력에 방해라도 되면 너희가 그 책임을 질 수라도 있겠어?!”강희연의 기세에 강우연은 기가 눌려 당황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그냥 가는 거 어때요?”하지만 한지훈은 물러서지 않았다.“이미 왔으니 다시 돌아가는 건 도리가 아니지. 만약 민학 그룹이 널 선택하면?”이 말을 들은 강우연은 넋을 잃었다, 그녀는 원래 아무런 희망도 품고 있지 않았는데…현장에 이렇게 많은 S시의 명문가와 대기업 회사가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자신을 민학 그룹이 무슨 근거로 자신을 뽑겠는가?“뭐라고?”강희연이 콧방귀를 뀌며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말했다.“한지훈, 꿈도 꾸지 마. 민학 그룹이 너희 같은 쓰레기와 협력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하하, 웃기지도 않는군!”오관우도 그들을 비웃으며 자신의 회색 양복을 정돈하곤 말했다.“제대로 된 선물 하나 가져오지도 않은 것들이 이곳에 발 디딜 생각을 해?”그가 이 말을 하자 강희연은 그제야 한지훈과 강우연이 빈손으로 온 것을 알아챘다.순간 강희연은 비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내기도 하찮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주변에 있던 세가와 기업의 대표들도 자연스럽게 방금 말다툼을 한 그들에게로 시선이 향하며 빈정대기 시작했다.“저기 강 씨 가문의 강우연과 한지훈 아니야? 저들이 정말 여길 오다니, 철면피가 따로 없군.”“게다가 빈손으로 온 것 좀 봐, 무슨 염치로 온 거지?”“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억 대의 선물을 들고 왔는데 말이야. 이 세계에서는 좋은 선물을 한 사람이 협력도 순조롭다는 걸 모르나 보군.”어젯밤 강 씨 가문의 생신잔치 일은 이미 S 시에 널리 퍼져 있었다.한지훈이 돌아온 뒤 강우연을 데리고 강준상의 생신잔치에서 일을 벌
“됐다! 말하지 말거라, 난 널 모른다!”강학주는 매우 차갑게 말을 끊었고, 뒤도 안 돌아보고 그녀 앞을 지나갔다.그러자 강우연은 작은 목소리로 흐느꼈다.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아는 체하기도 싫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이때, 민학 그룹 빌딩의 정문이 열리며 검은색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걸어 나왔고, 군복을 입고 총을 든 병사 네 명이 그의 뒤를 따랐다.순간, 정문 주변이 매우 조용해졌고, 중년 남성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이번 민학 그룹이 받은 김 씨 가문의 협력 프로젝트 대표인 손의강입니다. 모두들 잘 들어주십시오, 선물을 들고 온 분들은 민학 그룹과 협력을 할 수 없습니다! 선물을 들고 오지 않은 분들만 앞으로 와주십시오!”순간, 선물을 가지고 온 세가와 기업의 대표들은 모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들은 정문도 들어가지 못한 채 협력을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뭐라고?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럼 괜히 온 게 아닌가……”“손 매니저님, 이건 안 되죠! 저희는 군단장님을 뵈어야 합니다, 저흰 소양 그룹에서 왔다고요! 전에 이미 인사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저는 왕 씨 가문의 아들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이미 왕 회장님과 연락을 했습니다! 저도 군단장님을 봬야겠습니다!”떠들썩해진 현장을 본 오관우도 당황하며 손에 든 선물을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그중 특히나 거세게 항의하는 몇 명은 네 명의 군복을 입은 병사들에 의해 제압당했다.“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군단장님의 뵙겠다고 하다니! 군단장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게 속임수를 쓰며 뇌물을 바치는 겁니다! 계속해서 소란을 피운다면 직접 내쫓겠습니다!”손의강이 살기가 배어 있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고, 마침내 떠들썩하던 현장이 조용해졌다.그들은 그제야 상대방이 S시의 작전 구역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했고, 그들과 맞서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강희연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고, 오관우의 팔을 잡아당기며
사실 장월동 그조차도, 천산 장 씨 집안을 떠난 후 현재의 절진이 뜻밖에도 이렇게나 큰 위력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과거 그가 천산에 있을 당시, 역시나 천절진을 사용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위력은 매우 약했었다. 그러나 눈부신 전광과 굉음과 함께 한지훈을 덮치기 시작하는 토네이도의 모습에, 장월동은 이미 한지훈의 죽음을 확신했다. “쏴!”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하늘의 별들이 빛을 번쩍이더니 한지훈이 오릉군 가시를 던지자 한줄기 유광이 토네이도의 중심으로 날려갔다. “찢어!”이내 한지훈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한 줄기 유광이 오릉군 가시로 몰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오릉군 가시는 순식간에 토네이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쾅! 얼마 지나지 않아, 천지를 뒤흔드는 큰 소리와 함께 토네이도 속에서는 잇달아 비명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토네이도는 육안으로 보아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약화되었다. 장월동은 눈앞의 이 장면이 믿기지가 않았고, 그가 멍하고 있는 틈을 타 오릉군 가시는 날카롭게 곧장 그를 향해 날려갔다. 쿵! 이번만큼은 장월동의 몸 앞을 가로막고 있던 푸른 광막은 쉽게 뚫리게 됐고, 오릉군 가시는 바로 그의 왼쪽 어깨를 뚫었다. “푸!”이내 한 줄기 핏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장월동의 몸은 다시 한번 거꾸로 날아갔다.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장월동은 땅에 힘없이 떨어지게 됐고,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그는 거의 질식할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온 그는 한 번도 이렇게 큰 부상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왼쪽 어깨 전체가 거의 부서진 상황이었다. 장월동이 땅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손으로 그의 또 다른 어깨를 꽉 잡았다. “철컥!” 무서운 소리와 함께, 장월동의 또 다른 한쪽 어깨도 깨져버렸다. “아악!”너무 아픈 나머지 장월동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쇼크 할 뻔하여, 몸을 끊임없이 벌벌 떨기도 했다. “한... 한지훈, 살려줘! 나... 나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한지훈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암만 봐도 장 씨 집안은 확실히 탄탄한 바탕이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장월동은, 고층 건물 18층의 높이에서 지면으로 떨어지게 됐다. 그 광경을 목격한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한바탕 비명을 질렀다. “아악! 누군가 위층에서 떨어졌어!”“다들 비켜요!”“얼른 앰뷸런스 불러요!”많은 사람들이 잇달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때, 장월동은 힘껏 허리를 비틀어 겨우 발을 땅에 착지하였다. 하마터면 뒷걸음질 쳐 넘어질 뻔했으나 다행히 그의 뒤에 있던 검은색 승용차를 한 손으로 짚고 나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바로 그때, 한지훈도 몸을 훌쩍 날려 18층 고층 건물 위에서 뛰어내렸다. 필경 장월동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기에 설령 10여 층의 고층 건물에 아무런 반항 없이 떨어지게 되더라도 그에게 타격을 입힐 수는 없었다. 그 누구든지 일단 천왕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육체는 금강석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단단해지니까. 넘어지기는커녕, 포격으로 공격한다고 해도 쉽게 다칠 일은 없게 된다. 그리하여 한지훈이 끝까지 쫓아온 것이었다. 장월동은 다시 또 다가오는 한지훈의 모습에,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지훈! 설마 너 정말 나랑 죽기 살기로 해보자는 거야!”그제야 장월동은 단단히 화가 폭발했다. 한지훈을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반격을 당하게 됐으니, 장 씨 집안은 이미 체면을 구기게 됐다. 게다가 지금의 한지훈은 더 이상 용서하지도 않고 기어코 그를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니 장월동의 내심 두려웠다. 지금으로선 한지훈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남은 천절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아직 펼쳐보지 못한 남은 천절진의 진법을 시전 하게 되면, 어쩌면 예상치 못한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네 두 손은 이미 피로 가득 물들었잖아. 그러니 넌 오늘, 반드시 죽어야 해!”이내 한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그는 부자 상인들을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그
보라색 번개가 거침없이 창문으로 돌진하는 모습에, 한지훈은 두 눈을 살짝 감고는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안정시키기로 했다. 사실 한지훈은 동방 오우와 맞붙을 때도 비슷한 진법을 쓰긴 했지만, 장월동이 펼친 이러한 진법은 한지훈도 아직 파악해내진 못한 상황이었다. 오직 감각에 의해서만 발휘해 내는 진법은, 물론 동방 오우와 장월동에게 있어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지훈에게 남겨진 시간은 점점 짧아지기만 했다. 일단 보라색 번개를 맞게 되면, 설령 5성 용급 천왕계인 한지훈이라 할지라도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필경 천위는 인간이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뒤이어 보라색 번개가 룸을 덮치는 순간, 앞쪽에서 무릎 꿇고 있던 10여 명의 재계 거물들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 장면만으로도 보라색 번개의 위력을 충분히 맛볼 수 있었다. 무자비하게 천지를 파괴하는 위력에 한지훈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다시금 공명감이 엄습하게 되자, 한지훈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내 한줄기 금빛이 한지훈의 가슴에서 솟아올랐다. 만연한 금빛에 한지훈은 갑자기 홀가분함을 느끼게 됐다. 곧이어 한지훈의 몸에서는 한 줄기 광막이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동방 오우가 펼쳐 보였던 진법이었다. 비록 한지훈은 그중 일부만 배워냈을 뿐이었지만, 장월동의 진법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쾅!”바로 그때, 흰색의 기랑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지훈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던 담효운만이 금빛 광막 속에서 다행히 목숨을 건지게 됐다. 그에 반면 무릎 꿇고 있던 나머지 부자 상인들은 거의 모두 피투성이가 되었다. “우르르!”“쾅쾅!” 연이은 번개가 일제히 한지훈에게로 몰려들었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번개는 금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게 됐다. “아니...”방금까지만 해도 득의양양하던 장월동은, 뜻밖의 모습에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천절진의 위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위력은 천산 산기슭에 있는 수십
안타깝게도 천생 서문에는 삼절진에 관한 내용은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록은 매우 상세히 돼 있었다. 삼절진은 조룡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왔지만, 조룡 이후로는 더 이상 삼절진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자고로 삼절이란 바로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천절전이 가장 포악했고, 지절전이 가장 오묘했으며, 인절진이 가장 잔인했다. 장월동은 삼절진 중에서도 오직 천절진만을 수련해 왔었고, 그가 선보인 이 남색의 광막이 바로 천절진의 기운이었다. 이 기운은 심지어 천둥과 번개와도 같은 엄청난 위력과 효과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 기운에 타격을 입게 되면, 그 어떤 만물이든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이외에도 천절진은, 당시 금용왕이 펼친 진법과도 비슷한 점이 꽤나 많았다. “훗! 그래, 네가 영리한 건 인정할게. 하지만 애석하게도, 넌 젊은 나이에 일찍 죽게 됐네!”장월동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하늘에서는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 자고로 인간 세상에서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천위였다. 그 어느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은 천위는 얼마든지 하늘과 땅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불길한 생각에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고, 먼 허공에는 어두운 구름만 은은하게 모였다. 검은 먹구름들은 하늘과 해를 가렸고, 구름층 속에는 짙은 남색의 전광이 누비며 노닐고 있었다. “어?”“아니... 도련님, 저희 모두 결백합니다!”“도련님,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모두 도련님을 맞이하러 이곳까지 온 겁니다!”어느새 수십 명의 부자 상인들은 그의 기운에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깜짝 놀란 낙소종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먹구름이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게 된 이상, 룸에 있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살아나갈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한 선생님!”이내 담효운도 고개를 들어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한지훈은 이미 온몸이
장월동은 자신의 진법이 정말 효과를 거두고, 게다가 한지훈의 오릉군 가시까지 쉽게 튕겨낸 걸 보고는 갑자기 신심이 크게 높아졌다. 그동안 집안의 어른들이 줄곧 이 진법을 열심히 연습해라고 충고를 한 이유를 그제야 깨닫게 됐다. 사실 장 씨 집안이 세속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 존경을 받게 된 것은 단지 수천 년간 줄곧 조룡 묘지를 수호해 온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 씨 집안은, 조룡부터 시작하여 모든 오묘한 진법들을 수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룡이 남긴 진법은 그 위력을 가히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심지어 5대 명산도 쉽게 등한시할 수가 없었다. “하하하!”그제야 장월동은 득의양양하게 크게 웃기 시작했다. 5성 룡급 천왕계와의 맞대결이 뜻밖에도 이렇게나 쉬울 줄은 몰랐다. 그동안 자신이 한지훈을 정말 과대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 다시 한지훈의 손아귀로 돌아온 오릉군 가시는, 알 수 없는 강한 위력과 함께 다시 돌아오게 됐다. 예상치 못한 기운에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서고 나서야 비로소 몸을 굳힐 수 있었다. “한지훈, 지금 기분이 어때?”장월동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의 당황함은 전혀 없고, 오히려 여유롭게 한지훈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한 선생님, 괜찮으세요?”겨우 한 라운드밖에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밀려나게 된 한지훈의 모습에, 담효운은 다소 걱정되는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한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록 현재로선 불리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제 겨우 대결이 시작되었기에 아직 승패를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천산 장 씨 집안, 역시 내 예상 밖 실력이었어!”한지훈도 결코 이 강한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장월동 또한 동방 오우만큼 5성 용급 천왕계 경지까지 도달했다면, 오늘 정녕 누가 죽게 될지는 정말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 장월동의 실력은 동방 오우에 비해 하늘땅만큼의 차이가 났다. 어쩐지 천생 서문의 기록에 따르면, 천산 장 씨 집안
“너 죽고 싶어 환장한 거야?”한지훈이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하자, 이내 한 그림자가 급히 달려와 한지훈의 팔을 꽉 잡았다. “한 선생님! 제발 화를 푸세요. 오늘 이 일은 오해일 수도 있잖아요. 괜히 손댔다가는 상상치도 못할 후과를 초래할 수 있어요!”깜짝 놀란 여시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말대로 장월동과 한지훈 두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건드리기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강릉에서 둘 중 한 명이라도 사고가 나게 되면 그 후과는 여시수가 책임져야 했다. “오해?”한지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장월동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이름을 사칭하고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돈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젠 아무런 죄 없는 여자까지 창녀로 몰아넣으려 하잖아. 그런데 이것도 오해라고 할 수 있어?”이내 한지훈의 몸에서 기운이 갑자기 폭발하기 시작하더니, 5성 용급 천왕계의 기세가 순식간에 전부 열리게 됐다. 한지훈의 팔을 잡고 있던 여시수의 몸은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여시수는 더 이상 한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만 지킬 수 있다면, 감옥에 가는 것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생각에 잠긴 여시수는 이내 두말없이 땅에서 일어나 방을 벗어났다. 곧 전쟁터가 될 이곳에서 그는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구경하고 있던 한 무리의 부자 상인들도 잇달아 입구로 피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리 가지는 않고 복도나 룸 입구에 선 채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다들 과연 장 씨 집안 후계자가 더 대단한지, 아니면 한지훈이 한 수 위인지 보고 싶었다. 한편 한지훈의 몸에서 폭발한 5성 용급 천왕계의 기운을 느끼게 된 장월동은, 어느새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때는 4성 천급 천왕계였던 한지훈이 어느새 5성 용급 천왕계의 존재가 될 줄은 몰랐다. 그 말은 즉, 천신의 경지까지 단 한 발자국 남았다는 것이다. 든든한 믿는 구석 덕분에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장월동의 모습과 달리, 그의 실력은 사실 그리
이내 한지훈과 담효운이 한걸음 한걸음 룸 안으로 들어섰고, 사람들은 일제히 머리를 돌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응?”영문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그저 멍해졌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앞에 똑같게 생긴 한지훈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담효운 또한 마찬가지로 멍해졌다. 여태 한 번도 마주 선 적 없었던 두 사람은 그동안 단지 서로에게 약간의 공통점이 있다고만 여겼다. 그러나 정작 마주한 순간, 그들은 비로소 서로의 깊은 유사성과 차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기운 그리고 기세조차도 매우 닮아있다는 것을. 그러나 장월동의 몸에 있는 기세는 더욱 도도하고 위엄감이 있는 반면, 한지훈은 다소 평화로워 보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여시수는 손에 술잔을 든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지훈을 마주한 장월동 또한 깜짝 놀랐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흥! 한지훈!”진짜 한지훈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 이상, 장월동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는 술잔을 들고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는 얼굴에 득의양양한 기색을 드러냈다. 한지훈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일 테지만, 장월동은 결코 평범한 명문가 도련님이 아니었다. 필경 그는 천산 장 씨 집안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약하다 하더라도 그의 실력은 평균 이상일게 뻔했다. 게다가 장월동은 장 씨 집안의 서열 2위의 후계자로서, 가문에서 중점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장월동 역시 심상치 않은 저력을 품고 있었다. “너 대체 누구야? 뭔데 나로 위장하고 다니는 건데!”한지훈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장월동은 담담하게 웃기만 하다가 이내 술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드디어 가면을 벗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월동은 그렇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헉!”장월동의 진짜 얼굴을 똑똑히 보아낸 여시수는 깊게 숨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 이 얼굴, 그는 결코 낯설지 않았다. 천산 장 씨 집안은 비
한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스... 스카이 호텔에 있어. 하지만 네 마음은 잘 알겠는데, 이렇게 네가 허무하게 죽게 놔둘 수는 없어!”담창운은 머리를 돌리고는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옆에 서있던 담효령도 간곡히 권고했다. “우연이나 지금 한창 임신 중인데 너한테 절대 사고가 나서는 안되지. 괜히 무슨 일이 생겼다가는 내가 대체 무슨 체면으로 우연이 얼굴을 봐!”“내가 말했지. 나 한지훈이라고!”그러자 한지훈이 정색하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그동안 그들이 만난 한지훈은 가짜라고 강조했다. 사실 담씨 집안사람들은 거의 모두 장월동을 한 번씩 본 적이 있다. 장월동의 기세, 그리고 각 방면의 기품으로 보아도 그는 한지훈과 같은 차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눈앞의 이 젊은이가 바로 명성이 자자한 북양 왕 한지훈이라는 것은 감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효령아, 나도 데리고 가!” 한지훈은 병상에 누운 담효운이 더 이상 아무런 큰 문제가 없고 안정까지 되찾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돌려 담효령에게 말했다. “그게...”담효령이 한창 난처해하고 있을 무렵, 담효운이 병상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래! 내가 너를 데리고 갈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랑 같이 죽으면 되지!”“효운아!”담효령은 당장이라도 말리고 싶었지만, 담효운은 이미 한지훈과 함께 아래층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담창운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막으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설령 막는다고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뒤이어 담효령이 아래층까지 쫓아갔을 무렵, 한지훈은 이미 담효운을 데리고 스카이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담효령은 급한 나머지 발까지 동동 굴렀고, 이내 급히 비서를 소환하여 차를 타고 다짜고짜 쫓아갔다. 한편 그 시각, 스카이 호텔 천자 1호의 대통령 스위트룸에서는 강릉의 고위 간부들이 차례대로 장월동에게
그 말을 들은 집사는 급히 몇 사람을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2층으로 뛰어올랐다. “둘째 아가씨! 아가씨 얼른 문 열어요!” 곧이어 위층에서는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둘째 아가씨 방문이 열리지 않는데요!”집사는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리며 뛰어 내려와 초조하게 말했다. “그럼 뭘 기다려, 얼른 문을 부수고 열어야지!”담창운은 급해난 나머지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비할 데 없이 후회하며 가슴을 치게 됐다. 사실 담효령이든 담효운이든 그에게 있어 매우 소중한 손녀들이었다. 다만 애정 표현에 서툴렀던 그였기에 그동안 항상 투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손녀가 정말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담창운은 크게 후회됐다. 한지훈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가, 담씨 집안 하인 몇 명을 한꺼번에 밀치고는 방문을 걷어찼다. 방안은 칠흑같이 어두운 가운데, 담효운의 목에는 천이 묶인 채 몸은 공중에 높이 걸려있었다. “어? 둘째 아가씨...”집사가 막 나서려 하자, 한지훈이 먼저 방으로 뛰여 들어 손을 들어 담효운을 풀어주었다. 어느새 담효운의 몸은 좀 차가워졌다. 한지훈은 급히 손을 뻗어 담효운의 맥박을 살폈다. 담효운의 맥상은 이미 매우 미약하게 뛰고 있어 10분만 늦었더라도 저승길을 갈 뻔했다. “아가씨! 둘째 아가씨!”이내 하녀 몇 명이 급히 달려와 담효운을 침대에 눕혔지만, 그들이 어떻게 불러도 담효운은 여전히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곧이어 담창운과 두 중년 남자도 방문에 다가섰다. 그중 한 중년 남자는 쏜살같이 담효운의 침대 앞에 달려들어 초조하게 소리쳤다. “효운아! 담효운! 너 이렇게 죽으면 안 돼! 나한테 딸은 너 한 명뿐인데!”“효운아!”담창운은 눈물을 훔치며 천천히 침대 앞으로 다가와, 침대에 누워 겨우 숨을 쉬고 있는 담효운을 보면서 통곡하고 말았다. “만약 이대로 정말 죽게 된다면, 당신들 모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한지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