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의아하게 여기던 손민규는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신이 그... 정 나리라고?""그래."정도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이마에는 핏줄이 선명했다."웃기시네. 우리 아버지는 그분과 식사를 같이 한 적 있어. 나도 거기에 있었고. 그런데 감히 네놈이 그분 흉내를 내? 뭐해, 어서 저 자식도 잡아!"손민규가 큰소리로 명령했다.정도현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상태였다.손호중과 식사를 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몇 년 사이 꾸준히 몸을 만들었으니 어느 정도 용모가 변한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좋아. 당장 저 겁대가리를 상실한 애송이를 끌고 와."정도현이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외쳤다.열 몇 명의 경호원들이 손민규에게 달려들었다. 병원 보안요원들은 나름 손민규를 보호하려 애썼으나 단숨에 제압당하고 말았다.혼비백산한 손민규가 버럭 고함질렀다."당... 당신들 가까이 오지 마! 나 손우그룹 도련님이야. 우리 아버지는 손호중이라고. 날 건드리면 우리 아버지가 가만있지 않을걸?"퍽, 묵직한 타격음이 들려왔다.앞으로 나선 정도현의 주먹질 한 번에 손민규가 털썩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정도현이 싸늘하게 일갈했다."당장 네놈 아비에게 이르거라. 네놈 아비가 어떻게 나올지 나도 궁금하구나."터진 입술을 만지작거린 손민규가 울음을 터뜨렸다. 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그가 서럽게 울부짖었다."아버지, 얼른 우리 병원으로 와줘! 누가 날 때렸어! 이 사람들 감히 정 나리 행세를 하고 있어."한참 회의 중이던 손호중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화를 냈다."뭐라고? 정 나리 행세를 하는 잡놈에게 맞았다고? 빌어먹을. 어떤 새끼야! 아들아,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가 곧 가마! 그놈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전화를 끊은 손민규가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두고 봐. 우리 아버지가 오시면 네놈들도 끝이야."정도현은 발악하는 손민규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자기 양복을 정리했다. 이내 한지훈을
손민규가 코웃음 쳤다. 그는 이젠 비웃음과 경멸의 감정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나대는 것도 이젠 끝이야. 너는 곧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구하게 될 테니까."잔뜩 거들먹거린 그가 얼른 아버지를 맞이했다."아버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이거 봐봐. 저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얻어터졌어!"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모자란다고 해야 할지, 손민규는 다 큰 성인임에도 엉엉 울며 아버지에게 고자질했다.주변 사람들도 수군거렸다."헉, 손호중이 진짜 나타났어. 저 사람들 오늘 무사히 병원을 나서긴 글렀군.""그러게. 손씨 가문은 받은 건 반드시 되갚아 주는 거로 유명하잖아. 사실 손민규가 행패를 부린 게 하루 이틀이야? 간호사들도 엄청 많이 건드리고 다녔잖아.""하긴, 세상에 착한 부자가 어디 있다고."잔뜩 얻어터진 제 아들을 바라보는 손호중의 눈동자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누가 겁도 없이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어. 당장 나와. 죽여버리겠어!"소중한 아들이, 그것도 자기 병원에서 누군가에게 얻어맞다니! 손호중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만약 소문이 퍼진다면 그야말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을 것이다.이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했다."내가 그랬다."여유롭게 뒷짐을 지고 망설임 없이 나선 정도현이 싸늘한 얼굴로 손호중을 노려봤다.분노로 눈에 뵈는 게 없었던 손호중이 대뜸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서며 버럭 호통쳤다."네놈이 내 아들에게 손댔겠다! 당장 저놈을..."드디어 눈앞의 사람을 제대로 마주한 그가 딱딱하게 얼어붙었다.왠지 정도현 나리로 보이는데... 눈이 잘못된 건가?"그래, 날 죽여버리겠다고."정도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가 내뿜는 오싹한 살기에 손호중은 편히 숨 쉴 수조차 없었다.'정말 정도현 나리잖아!'"나리... 나리께서 여긴 어떻게... 아이고, 제가 실언했습니다!"손호중은 바로 굽신거리며 정도현에게 아부했다.정도현이 짧게 코웃음 치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자식 교육이 말이 아니군."손
"이제야 깨달은 네놈도 참 대단해."정도현이 코웃음 쳤다.그 말에 손민규는 온몸을 벌벌 떨었다. 원망과 두려움이 복잡하게 뒤섞이며 마음이 심란해졌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게 우선이었다."죄송합니다, 나리. 제가 나리를 몰라뵙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손호중도 얼른 사과했다."나리, 정말 면목 없습니다. 제 아들 녀석이 이런 면에서는 좀 둔합니다. 제가 언제 한번 찾아뵙고 제대로 사죄드리겠습니다."부자를 철저히 무시한 정도현이 한지훈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공손한 목소리로 물었다."한 선생님, 어찌할까요?"손호중과 손민규는 물론이고, 현장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S시의 거물이 별 볼 일 없는 젊은이에게 허리를 숙이다니.이 장면은 의아함을 넘어 괴기스럽기까지 했다.한지훈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넋 놓고 자신을 쳐다보는 손민규에게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날 모든 병원의 블랙리스트에 넣어버리겠다고? 그럼 이건 어때, 지금부터 모든 병원과 기업에 연락해서 손우그룹과의 거래를 전부 끊어버리는 거야."그 말을 듣고 울컥한 손민규가 벌떡 일어서며 한지훈에게 삿대질했다."한지훈! 너 뭐 하는 새끼야. 거래를 끊어버리겠다고? 망상이 지나친 거 아니야?"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으로 손민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정도현과 한지훈 사이의 연결점을 찾을 수 없었다.5년이나 종적을 감추었던 망한 가문의 도련님이 뭘 할 수 있다고. 이 사건은 그저 단순한 우연일 게 분명했다.정도현이 차갑게 비웃었다."한 선생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미간을 찌푸리고 한지훈의 정체를 고민하던 손호중이 얼른 비굴하게 웃으며 정도현에게 아부했다."나리, 저분은 누구십니까? 대체 누구시길래 나리께서 이러시는 건가요?""흥, 자네가 알아서 뭐 하려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정도현이 쌀쌀맞게 대답했다.손호중의 표정이 한없이 구겨졌다. 쓴웃음을 지은 그
손민규도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여전히 한지훈을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한지훈, 너 원래 이렇게 뻔뻔한 놈이었냐? 허세 부리는 것도 정도껏 해. 우리 손우그룹이 얼마나 대단한 의료기업인지 알기나 해? 무려 S시 5개 대학병원과 의료협회 이사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네놈 말 한마디에 무너질 손우그룹이 아니란 말이야. 웃기지도 않네."손호중도 껄껄 웃었다. 정도현이 이따위 덜떨어진 사람을 데려다 쇼하는 게 몹시도 같잖아 보였다.그러나 한지훈 곁에 우뚝 서 있는 정도현은 왠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두 부자를 쳐다보고 있었다.담담하게 웃어 보인 한지훈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때가 되면 알겠지.""좋아. 10분 동안 잘 증명해 봐. 다음엔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몹시 기대되는군."손민규가 이죽거렸다.한지훈이 바로 망해버린 한정그룹 자제라는 사실을 아들로부터 전해 들은 손호중도 전혀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약속한 시각이 거의 다가오자 손민규가 참지 못하고 또 도발했다."한지훈, 곧 10분이 다 돼가는데 왜 아무 소식도 없냐?"한지훈은 여전히 덤덤했다.바로 이때, 양복 차림의 남성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뛰어 들어오며 손호중에게 보고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17개 의료기관에서 동시에 우리 손우그룹과의 계약 종료를 통보했습니다. 또한 5개 대학병원 이사직도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누군가 거대한 자금을 들여 손우그룹을... 인수했습니다."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손호중이 경악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뭐, 다시 말해봐! 다시 말해보라고! 정말 모조리 거래를 중단했다고? 그룹이 인수됐다고? 지금... 우리 그룹이 망했다는 거야?""그렇습니다... 손우그룹은 파산했습니다..."수행비서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의 심장은 쿵쿵 소리를 내며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손호중은 눈앞이 깜깜해졌다.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멀쩡한 기업이 망한다고? 말도 안 돼!손호중이 몇몇 협력
손우그룹이 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7분이었다.한지훈이 어딜 봐서 별 볼 일 없는 망한 가문의 자제란 말인가. 그는 분명 거물이 틀림없었다.S시의 갑부도 이 정도의 권력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제 아버지가 망연하게 주저앉은 모습을 본 손민규도 덩달아 절망했다. 아버지 곁에 털썩 주저앉은 그가 울부짖었다."아버지... 이제 우리 어떡해? 우리 진짜 망한 거야? 그럼 스포츠카랑, 별장이랑... 다 빼앗기는 거야?"철썩, 또 손민규의 얼굴로 손바닥이 날아왔다."이게 다 네 놈 때문이다!"당황한 손민규가 엉엉 울며 손호중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아버지!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린 의료협회 이사라고! 전 회장님께 연락드리자. 아는 인맥을 전부 동원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야.""맞아, 전 회장님이 계셨지!"손호중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을 쳐다보았다."우리 집안이 이렇게 쉽게 망할 리 없어. 의료협회에 연줄이 있거든."손호중이 S시 의료협회 전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가 우는 소리를 냈다."전 회장님. 접니다, 손호중이요. 회장님, 부디 저 좀 도와주십시오. 손우그룹에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글쎄 어떤 애송이가 무슨 수를 썼는지 저희 그룹이 하루아침에 파산했지 뭡니까... 저희 가문을 구해줄 수 있는 건 회장님밖에 없습니다."뚱뚱한 중년 남성이 의료협회 회장 사무실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전화를 받았다.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얼굴이 분노로 씰룩거렸다."뭐라고? 손우그룹을 파산하게 했다고? 어떤 미친놈이 그런 짓을. 의료협회와 척지겠다는 심보로군. 내가 당장 해결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전화를 끊은 전동해가 얼른 병원으로 출발하라고 수행원들에게 명령했다.굽신거리며 한참 하소연하던 손호중은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가 이내 한지훈에게 이를 드러냈다."넌 끝났어. 손우그룹과 척지는 건 의료협회와 척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젠 널 도
전동해가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권력가 특유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그를 보며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환자들도 서둘러 뒤로 물러서긴 마찬가지였다.그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전동해를 발견한 손호중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얼른 그를 맞이했다."전 회장님, 드디어 오셨군요! 제발 우리 손우그룹 좀 살려주십시오!"손호중을 쳐다본 전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말어. 의료협회의 사람이 외부인에게 당하는 걸 내가 두고 볼 리 없잖나. 설령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건 우리 협회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어디서 외부인이 주제넘게 나서!"전동해는 말을 하면서 정도현과 한지훈 쪽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그의 주의력은 전부 정도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한지훈은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으니까.눈썹을 치켜올리며 정도현을 뚫어져라 쳐다본 그가 싸늘하게 말했다."정도현 자네가 손우그룹에 손댔나? 아무리 이 도시의 막강한 권력가라곤 하나 우리 의료협회를 함부로 건드릴 자격은 없을 텐데. 손우그룹은 우리 의료협회에 속해 있어. 건드리기 전에 적어도 내 허락은 맡아야 하는 거 아닌가?"전동해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음산하게 지껄였다.S시의 사람들은 정도현을 두려워했으나 그는 아니었다.일단 전동해와 정도현 사이엔 직접적인 이해 충돌이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전동해는 의료협회 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기에 정도현도 쉽게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흙빛이 된 정도현은 끝내 입을 열지 않는 한지훈을 흘끔거렸다. 순간 한지훈이 그를 시험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결심을 내린 정도현이 한발 다가가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충고 하나 하자면 전 회장도 이 일에서 손을 떼는 게 좋을 겁니다. 회장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말이지요."정도현이 패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을 들은 전동해가 싸늘하게 얼굴을 굳히며 비웃음을 흘렸다."기어코 의료협회와 척지겠다는 거군. 본인이 주먹질로 그 자리까
모든 이의 시선이 그 남성에게 쏠렸다.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검은 양복 차림의 소지성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살벌한 그의 분위기는 전동해를 훨씬 압도했는데 최상위 포식자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경외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시... 시장님? 여긴 어떻게?"전동해가 얼른 그에게 다가가 살갑게 인사했다.그러나 소지성은 전동해를 무시로 일관하는 동시에 손호중 부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윽고 빠른 걸음으로 한지훈 곁으로 다가간 그가 슬쩍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한 선생님, 좀 늦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사람들은 또 한 번 경악했다.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S시의 시장마저도 저 한지훈에게 고개를 숙이다니!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전동해의 낯빛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슬슬 엄습해 오는 불안함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손호중과 손민규도 창백하게 질린 채로 식은땀을 뻘뻘 흘려댔다. 그들은 차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지성과 한지훈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들은 이젠 한지훈이 두렵기까지 했다.한지훈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시장조차도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다니. 이건 그야말로 빅뉴스였다.소문 속 망한 가문의 빈털터리 그 '한지훈'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보였다.한지훈도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소 시장님, 전 회장은 여러 차례 권리로 사욕을 도모하고 자신의 직권을 남용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소지성이 엄숙한 목소리로 전동해에게 말했다."현 시간부로 당신은 의료협회 회장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또한 감찰부 조사에도 적극 협조해 주길 바랍니다."소지성은 전동해에게 사형을 선고한 거나 다름없었다.그동안 몰래 해온 짓들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몇십 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해야 했다.소지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 몇 명의 감찰부 인사
전동해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압박을 계속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는 경기도 인천 도 씨 가문의 사람이었다. 도 씨 가문은 신분이 높고 권력이 막강할 뿐만 아니라 용국에서의 인맥 또한 최소 시장급 인물들이었다.그런데 한낱 S 시 시장이 감히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그럼 상대방이 감당해야 할 결과는 풍비박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더군다나 도 씨 가문은 무슨 일이 생겨도 그들이 선택한 사람을 옹호하기로 유명했다. 전동해는 도 씨 가문이 특별히 선택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전임 시장이 콕 집어서 S 시 의료 협회에 꽂은 사람이기에 소지성이 지금 이렇게 함부로 그의 직위를 파면하는 건 도 씨 가문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전임 시장과 원한을 맺은 거나 다름없었다.S 시의 전임 시장 기이준은 현재 H 시에 서기관으로 파견 갔기에 그곳에서는 거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신분이었다!그런데 보잘것없는 S 시의 시장 따위가 감히 기 서기관의 뜻을 거역하다니! 그러다가 시장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도 씨 가문의 배후에는 용국의 명의 손강수가 있으며 손 명의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용국에서 내로라하는 레전드급 인물들도 전부 손강수의 환자였으며 용각 4대 원로들도 주기적으로 손강수와 만남을 가졌다.손강수는 용국에서 그 누구보다 대단한 사람으로 모든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전에 용국에서 발생했던 두 차례 역병에서도 손강수가 앞장서서 해결했던 것이며 덕분에 용국 수십만 명 국민의 생명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부터 용국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전동해의 말을 듣고 있던 소지성은 순식간에 눈살을 확 찌푸린 채 언성을 높였다.“전동해 씨! 경기도 인천이 아니라 S 시입니다! 전동해 당신의 의료 협회는 더더욱 아니고요! 저 소지성이 당신의 직위를 파면하는 결정에는 그 누구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경기도 인천 도 씨 가문의 파급력이 아무리
그의 말이 떨어지자, 주위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드디어 용국이 멸망하게 됐네! 하하하.”소창지개는 하늘을 높이 우러러보며 크게 웃어댔다. 그에 반면, 허천은 멍하니 서천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존경해 오던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용국의 안위는 전혀 돌보지 않고, 수억 명의 생사는 내다 버리는 사람일 줄이야. 자기 가족만 안전하길 바랄 줄이야. 허천뿐만 아니라 모든 무종 사람들은 멍해졌다. 이게 바로 그들이 항상 자랑스럽게 바라보던 용국의 전설일 줄이야. 정말 파렴치하기 그지없었다. “하하, 진작에 이랬으면 굳이 한 사람이 목숨을 잃지 않았어도 됐잖아? 아이고, 하늘 높은 줄 모르다니, 정말 무지하네!”소창지개는 손으로 서천술의 얼굴을 건방지게 툭툭 두드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도 설욕하고 싶어? 이젠 네 아들을 생각하고, 아내를 생각하고, 네 후손들만 생각해!”“에이, 사실 용인들은 모두 너 같은 겁쟁이들뿐이야. 그러니까 지난 백 년간 너희들은 항상 업신여김을 당했지. 그러나 앞으로는... 용국에 더 이상 살아남을 사람이 있을까? 하하하!”소창지개는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 “모두 용국이 전 세계의 으뜸이라고 하긴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용국은 더 이상 그렇게 불릴 자격이 없어. 대전이 끝나게 되면 용국은 철저히 지워질 거야!”“자, 여러분. 그럼 이젠 저희의 계획대로 용국을 피로 씻어내는 겁니다. 노약자나 부녀자를 막론하고 모두 죽여도 좋습니다!”소창지개의 눈빛에서는 두 줄기의 차가운 빛이 터져 나왔고,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 가득한 고성으로 외쳤다. “서천술! 너… 기어코 우리 용국 백성들이 죽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다는 거야? 넌 더 이상 우리 무종의 선배가 될 자격이 없어! 넌...”결국 무종 대장로들까지 화가 나 치를 떨며 말했다. “흥! 백성들? 그들이 뭐가 대단하다고 감히 내 목숨과 비교할 수 있겠어. 어찌 나의 서 씨 가문 목숨과 비교할 수 있겠냐고!”
영륜 강자의 기운이 폭발함과 동시에, 기타 세력의 강자들도 거의 동시에 서천술의 몸을 봉인시켰다. 심지어 미육의 몇몇 고수들은 잇달아 사악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십여 갈래의 공포의 기운이 한 곳으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자, 하늘은 먹구름에 의해 완전히 가려져버렸다. 지금 이 순간, 서천술에게는 더 이상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의 협동 공격을 마주한 상황에, 서천술은 몸이 열 개라도 당해 내기 어려웠다. 누구나 알다시피, 각 세력들은 용국 역외 세력에 대해 모두 꺼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감히 누구도 용국 역외 세력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으려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반대로, 세속은 어떻게든 파괴하려 했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창조한 거짓된 문명이, 대중에게 공개되게 놔둘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종족 우월감을 밑바닥까지 추락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세속을 통제하여, 역외에서 끝없는 자원을 얻어내고 더 큰 이익을 얻어내려는 것이었다. 링 아래에서 지켜보던 용인들은 모두 깊은 절망에 빠졌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매우 불리했다. 모든 대 세력이 용국을 겨냥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용국을 멸살하려는 작정까지 하고 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로 용국이 어떻게 버틸 수가 있겠는가? 또 뭘 가지고 버틸 수 있겠는가? 용국 무종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필경 천신계 강자와 비교했을 때, 천왕계 강자들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그 누구도 그들을 구해낼 수 없었다. “너희... 너희들 정말 파렴치하구나!”더 이상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종묘 장로들은 마침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축대 위 사람들을 쳐다보며 노발대발했다. “하하하! 우리가 파렴치하다고? 우린 그저 우리의 문명을 보호하려는 거야. 그리고 우린 국제 질서를 보호하고 있기도 해. 그러니 설령 용국 백성들이 전부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한테는 아무런 손실도 없어!”“도리여 너희 용국의 땅은, 우리 백성들에게 있어
서천술은 어느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유럽 강자를 바라보았다. “르네상스!”그 순간, 유럽 강자는 담담하게 몇 글자를 내뱉었다. “르네상스? 그럼 대체 왜 우리 용국을 겨냥한...”서천술은 유럽 강자의 말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링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던 허천은 고개를 돌려 한지훈을 바라보고는 물었다. “한 선생님, 저게 무슨 말이죠?”“자고로 피라미드가 없으면 르네상스도 없는 법이야! 서양에서 전해져 온 르네상스는 바로 용국 수천 년 동안의 문화유산을 표절한 것에 불과하니까!”“네가 직접 대조해 보면 알 수도 있겠지만, 소위 톨러 왕조는 말세 왕조까지 줄곧 우리 용국의 왕조와 동일한 편 연도를 사용하고 있었어!”“그리고 성모상 역시, 당인이 그린 선녀 송자도와 완전히 똑같아! 단지 머리에 십자가 하나가 더 생겼을 뿐이지! 이게 바로 숨겨진 가장 큰 비밀이야!”한지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허천은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멍하니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이 일에 대해 한지훈의 발언권은 가장 컸다. 왜냐하면 그는 일찍이 아서왕과 알렉산더와 크게 맞붙은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럽 역사상 두 사람의 나이는 적어도 수천 세가 되었지만, 그들의 실력은 도리여 그 연륜에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단 하나의 가능성만이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어쩌면 그들의 실제 나이는 2, 300세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 전에 한지훈은 무도 학원의 도서관에서, 유럽의 한 천문학자가 용국 사천에서 벼슬을 맡고 있는 유럽 학자에게 보낸 서신을 발견하였다. 그 안의 내용은 뜻밖이었다. 유럽인들은 7년이 지날 때마다 왜 북극성들은 다시 순위를 매겨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는 그들이 천문학적 상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천문학적 상식도 없는 민족이, 어떻게 올바른 역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역법은 새로운 하나의 문명이 흥성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그 말은 즉, 유럽의 모든 것은 용국에서 기원되었다는 것이
서천술은 자신의 삼성 지급 천신계 실력으로, 소창지개를 충분히 깔아뭉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그의 주먹에는 비할 데 없이 심오한 진법이 있었고, 얼마든지 소창지개의 자기장에서 벗어나 그를 제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소창지개는 반격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그의 칼날은 직접 주먹을 관통해 버렸다. 그 말은 즉, 서천술 주위의 자기장이 오히려 소창지개에 의해 관통됐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제야 그는, 방금 장세풍과 조승이 왜 그렇게 비참하게 패하게 됐는지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단순히 실력의 차이였다. 이런 막강한 고수를 상대로, 두 사람은 전혀 상대할 실력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전투력이 가장 높은 서천술도 반격할 힘이 전혀 없었다. 쾅! 이내 굉음과 함께 서천술은 기괴한 칼빛에 맞게 되어, 아랫배에서는 순식간에 검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반면 소창지개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제자리에 선 채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서천술을 바라보았다. “역시 용국은 다 너 같은 멍청한 놈들만 있구나! 하하.”소창지개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너... 너...”지금 이 순간, 서천술은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형용해야 할지 몰라 했다. “흥! 왜? 설마 아직도 모르겠어? 우리 실력의 차이는 엄청나다고!”소창지개는 차갑게 말했다. 서천술은 겨우 고개를 들어 소창지개를 바라보았고, 순간 눈빛이 흐리멍덩해지더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이미 두 번째 레벨에까지 다다르게 됐다. 다시 말하여, 그들이 소환하는 자기장은 전혀 같은 수평선에 있지 않았고 상대는 완전히 차원을 낮추어 타격하고 있던 것이었다. “너희들... 천도맹약의 앞잡이였어!”서천술은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오직 천도맹약만이 부상의 고수를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소환한 자기장을 두 번째 레벨로까지 끌어올리게 할 수 있었다. 즉 자신의 자기장으로 우주의 자기장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서천술이 아
100년 국운이 걸린 대사였기에, 용국은 섣불리 대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용국 국왕이 아무리 역외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다 하더라도, 역외에 있는 용국의 종문에 대해 모를 리는 없었다. 이미 용국에는 두 명의 고수가 모두 소창지개 한 사람의 손에 패배하게 됐고, 게다가 단 한 수 만에 패했다. 이는 제삼자들이 보기에는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내 손에 죽고 싶은 사람, 또 있어?” 소창지개는 용국 축대 위에 올라가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용국에는 서천술 한 사람만 남게 되었고, 소창지개는 남은 서천술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2 성 천신계가 3 성 천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는 경지를 뛰어넘는 도발로서,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역전극을 보여줄 거라는 그의 포부였다. 지금 이 순간 서천술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약 부상인조차 이기지 못한 다면, 그는 과연 무슨 체면을 갖고 무종 후배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겠는가? “한 선생님, 서 선배가 나서면 그의 삼성 천신계 실력으로는 얼마든지 소창을 이길 수 있겠죠?”허천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어떤 용인도 더 이상 패배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주최 측 중 하나인 허 씨 가문은 더욱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한지훈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길 승산은 1도 없어.” 그는 내심 잘 알고 있었다. 이 경기는 경계 차이가 아니라 깨달음의 차이라는 것을. 사실 그가 좌우하고 있는 것은 인왕계 강자의 전력이 아니라, 이 우주와 이 천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당시 한지훈이 원을 깨달았을 때에도, 그가 지정 건곤을 해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바로 가장 정확한 증명이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깨닫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반쪽 천지를 좌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치도 못했다. 일단 천신계에 다다르면 깨달음은 경계보다도 더 중요했다. 이전에 한지훈이 정혈단을 빌리지도 않고 화산 11 로와 싸울 수 있었던 것처럼. 게다가 그중 8명을 참살하고 3명에게
이 순간, 모든 용인들의 시선은 조승에게로 쏠려있었다. 천산의 낙장생과 고천덕마저 긴장한 표정으로 TV를 주시하고 있었다. “조 선배님, 절대 안 돼요! 만약 그렇게 굴복한다면 저희 무종은 체면을 잃을 테고, 더 이상 국왕의 대위를 차지할 수도 없게 돼요!”낙장생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용국 역외 강자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약할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흥!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위풍당당했는데! 이놈들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를 줄은 몰랐네! 나 고천덕은 분골쇄신해서라도 결코 이 부상인들한테 무릎을 꿇지는 않을 거야!”고천덕은 화가 난 나머지 이빨을 아득바득 갈았다. 한편 무신종에서는, 무적천 역시 차가운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분이 난 그는 손에 든 찻잔을 깨버릴 듯한 기세로 꽈악 쥐었다. “종주님, 화를 많이 내시면...”“팍!”옆에 있던 집사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무적천으로부터 따귀 한 대 맞고 쓰러졌다. “흥! 대체 이게 뭐야! 개돼지만도 못한 놈들!”이내 무적천은 손을 뿌리치고는 직접 TV까지 산산조각내고 자리를 떠났다. 그 시각 약왕파에서는, 황 약사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장로들을 향해 말했다. “강자들이 돌아왔다고? 하하. 정말 우습네!”“우리 용국 수천 년 역사 이래, 한 번도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한 강자들은 없었어!”“이제와 보니 무종이 용국의 권력을 빼앗으려는 건 더 이상 실현할 수 없는 꿈이 됐네!”“여봐라, 서천술에게 보내준 모든 선물들을 전부 회수하고, 서천술 혼외 자식은 서자풍에게 넘겨준 단약도 전부 돌려받아내!”그 말을 들은 대장로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곡주님, 이렇게까지 하는 건 좀 무리이지 않을까요? 서천술은 필경 역외 강자인 데다가 역외에서도 꽤 명망이 높습니다!”그의 말 뜻은, 서천술은 비록 패했지만 그의 세력과 영향력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
차가운 빛은 순식간에 수막을 뚫었고, 조승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이 드러났다. “푸!”이내 푸하는 소리와 함께 조승의 왼쪽 어깨에서는 핏발이 솟구쳤고, 핏물은 그의 팔을 따라 끊임없이 흘렀다. 자신의 진법이 소창지개에 의해 이렇게 쉽게 깨질 줄은 몰랐다. 그의 진법은 비록 화산 공간 진법만큼 심오하지는 않지만, 웬만한 공격은 전부 차단할 수 있고 결코 쉽게 뚫리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단칼에 어깨가 베이게 됐다. 만약 소창지개가 사정을 봐주지도 않았다면 그의 팔은 진작에 없어졌을 것이다. “하하!”그 모습에 소창지개는 조승을 가리키며 크게 웃어댔다. “기분이 어때? 방금 저놈은 날 위해 신발을 핥아줬는데 넌 뭘 하면 좋을까? 너도 살고 싶긴 하지?”이 순간, 소창지개만이 비웃는 것이 아니라 링 위 다른 고수들도 비웃음을 참지 못했다. 설욕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있던 용국이 맞이한 결과는 참담했다. 게다가 대결을 이어가면 갈수록 더욱 처참한 패배를 맞이했다. 자고로 역외 무예 규칙에 따라, 만약 소창지개가 조승을 놔주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서서 도와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규칙을 어기는 격이 된다. 그러나 소창지개로부터 살길을 받으려면, 그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왜, 멀쩡히 살고 싶지 않아?”여전히 가만히 서 있으면서 무릎 꿇고 용서 빌 의사가 없어 보이는 조승의 모습에, 소창지개는 한 손으로 칼자루를 들고는 차갑게 물었다. 한편 조승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을 뻘뻘 흘렀다. 그는 자신이 굴복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창지개가 칼을 뽑아 들기 직전, 조승은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었다. “털썩!”조승은 링 위에 무릎을 꿇고는, 두말없이 소창지개를 향해 열 번 절을 했다. 그 모습에 다른 열국 역외 강자들은 한바탕 폭소를 터뜨렸다. 밑에서 구경하던 구경꾼들까지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그 시각 멀리 천자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국왕은 저도 모
소창지개는 어느새 용국 전체 상대로 도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장세풍이 패배했음에도 그는 마치 보따리를 차버리듯이 장세풍을 링 아래로 돌려보냈다. 한참이 지나서야 장세풍은 얼굴을 붉힌 채 일어나 축대로 돌아갔다. 방금 그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이미 여러 매체에 의해 라이브로 중계되었다. 서천술은 그런 그를 흘깃 보고도 한동안은 아무 말도 않고, 체념한 듯 옆에 있는 조승을 향해 말했다. “조승, 다음 경기는 네가 하는 게 좋겠어!”조승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겉옷을 벗고는 링으로 걸어갔다. “꼭 조심해. 소창지개 이 놈 만만치 않아!”서천술은 다급히 일깨워 주었다. 사실 단지 실력대로라면, 장세풍은 전혀 질 수 없고 심지어 한 방에 패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방금 그들이 목격한 장면은 매우 생생했다. 소창지개의 실력은 향상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전력이 어떻게 많이 차이가 날 수 있는 걸까? 조승은 고개를 돌려 서천술을 보고는 안심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이내 몸을 훌쩍 날려 신선처럼 날아갔다. 그러나 허공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막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고, 조승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이는 매우 심오한 진법 중 하나로, 푸른 바다의 파도라도 불리기도 한다. 마치 잔잔한 물결처럼 보이지만 놀랄 만한 위압을 지니고 있었다. 소창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고개를 젓고는, 이내 또 같은 수법인 수많은 그림자로 하늘을 가렸다. 방금 장세풍이 바로 이 수법에서 당한 것이었기에 조승은 방심할 수가 없었다. 이내 그가 급히 손을 흔들자 거대한 수막이 그와 소창지개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것은 공격과 방어를 일체화한 진법이었다. 만약 소창지개가 수막을 뚫고 조승을 공격하려면 반드시 수막에 내포된 힘을 감당해 내야 할 것이다. 이내 소창의 무수한 그림자가 그 수막을 통과하는 동시에, 한 줄기의 기운이 따라서 폭발하며 소창의 무수한 그림자들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쾅!”소창지개의 단 한 방은, 바로 장세풍의 가슴으로 날려왔다. “열려라!” 그러자 장세풍은 급히 손바닥을 내밀며 방어에 나섰다. “쾅!”순간 은백색의 기운이 폭발하면서, 장세풍은 피를 토하고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 순간, 링 아래의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서천술은, 급히 저리에서 일어나 크게 놀란 표정을 보였다. “말도 안 돼. 장세풍의 천절진은 한 번도 빗겨나간 적이 없는데 어떻게 질 수가 있는 거지?”서천술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소창지개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날아가게 된 장세풍조차도 막막한 표정이었다. 그는 방금 분명 온 저력을 다했는데 어떻게 소창의 한 방에 의해 날아갈 수 있게 된 건지? “하하하.”“정말 웃기네. 고작 이런 놈이 나한테 양보해 준답시고 용국을 위해 설욕하겠다고? 하하하.”소창지개는 얼굴을 쳐들고 크게 웃어댔고, 이미 중상을 입고 쓰러진 장세풍을 더 이상 신경 쓰지도 않았다. 얼굴을 붉히게 된 장세풍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소창지개를 가리키며 노호하였다. “너... 너 나대지 마!”“흥! 넌 이미 진 거야. 방금 내가 너를 죽이려고 했다면 넌 지금 살아남을 수 없었어! 설욕? 흥, 제대로 설욕을 하려면 아직도 멀었네! 그러니 꺼져. 돌아가서 기초부터 잘 닦고 다시 찾아와. 그러면 아마 또 기회가 있을지도!”소창지개는 장세풍을 상대로 모욕적으로 말했다. 장세풍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힘겹게 일어나 다시 손을 쓰려 하자, 소창지개는 칼자루를 휘두르며 말했다. “너 아직 단도류의 위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장세풍, 내가 너한테 살아남을 기회를 줄게. 그러니 무릎 꿇어! 아니면 죽게 될 거야!”장세풍은 그제야 떠올랐다. 소창지개가 진정으로 잘하는 것이 바로 단도류였다. 그러나 여태 소창지개는 한 번도 칼을 꺼내지 않았다. 그 생각에 장세풍은 저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졌다. “장세풍!”한편 서천술은 장세풍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설령 죽는다 하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