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한지훈과 용일은 주군 본부의 전용기를 타고 곧장 용경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 용경, 외국 대사를 접대하는 국빈 호텔 안. 이곳은 용경에서 가장 장엄한 호텔이었고, 연회 손님은 모두 전 세계의 대표들이었다. 웬만한 큰 사건은 이곳에서 회의와 뉴스 브리핑을 진행했다. 현재, 국빈 호텔 반경 5마일 안은 이미 모두 계엄령이 내려졌으며, 모든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모든 길모퉁이에는 짙은 녹색 군복을 입은 중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국빈 호텔 1km 이내에는 중무장한 경비병까지 있었고 탱크, 장갑차, 미사일 차량이 모두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국빈 호텔 최상층에는 약 2천 평에 달하는 거대한 회의실이 있으며,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문 앞에는 9개국의 깃발과 용국의 깃발이 놓여 있다. 9개국 정상회 대표들과 9개국 특별대사들은 얼굴을 붉힌 채 회의실 한쪽에 앉아 있었고, 반대편 용국 작전부 대표 및 용각 대표들과 격렬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그중 매부리코와 짙은 푸른 눈을 가진 중년의 백인 남자가 용국 외교대사인 왕린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왕 대사님! 이번 우리 9개국 정상회의 목적은 바로 용국, 북양의 총사령관 한지훈의 직위를 박탈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를 작전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할 겁니다. 게다가 당신들은 흑뢰에 천억 달러의 손해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겁니다! 기억하세요, 천억 달러입니다!""맞습니다! 이번에 용국은 아주 선을 넘었습니다! 그야말로 인권을 박탈하는 행위를 한 겁니다!""특히 그 한지훈은 직위에서 해임되고 군사 법정에 서야 합니다!!"맞은편 9개국 대사들은 격앙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앉아 있던 왕린과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의 요구에 응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 용국 전구 내부 문제이며, 우리 용국작전부가 결정할 일입니다! 9개국 정상회는 우리 용국 작전부의 결의에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왕린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예정천은 바로 앞에 있는 사내를 가리키며 재촉했다.“내가 말한 대로 저들에게 통역해 주세요!”왕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상대 측에 통역했다.순식간에 맞은편에 앉은 아홉 명의 대사들이 분노한 얼굴로 호통쳤다.“이건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용국 당신들 크게 실수하는 겁니다!”“우린 서부 9개국 정상회를 대표해서 이 자리에 협상하러 나왔어요! 언행에 주의해 주세요! 참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40만 대군을 동원하여 용국을 치겠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용국 전쟁부의 한지훈 사령관의 직위를 철수하고 군사재판에 넘기세요! 그렇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하겠습니다!”대사들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들이 용국을 상대로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은 처음이었다.전에도 불만을 토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협상의 태도를 보였었는데 오늘은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왕린은 착잡한 얼굴로 예정천을 바라보았다. 예정천은 손사래를 치며 그에게 말했다.“통역할 필요 없어요. 마지막 말은 나도 알아들었으니까!”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섬뜩한 눈빛으로 아홉 대사를 노려보며 호통쳤다.“전쟁? 좋아! 난 언제든 너희들과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 전쟁이 얼마나 걸리든, 내가 너희를 상대해 주지!”예정천 주변에 앉아 있던 용국 전쟁부의 장군들이 전원 기립하더니 분노한 눈빛으로 아홉 대사들을 노려보았다.회의실 안에서 팽팽한 기싸움이 시작되었다.숨을 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울 정도로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먼저 당황한 쪽은 아홉 대사였다. 그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눈앞의 용국 장군들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이때, 중간 휴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잠시 후, 9개국 정상회의 대사들은 씩씩거리며 회장을 떠나 지정된 휴게실로 왔다.“망할 용국 전쟁부, 저렇게 건방지게 나올 줄이야!”이국의 백인 대사는 휴게실에 들어오자마자 분노한 얼굴로 책상을 쾅쾅 두드리며 울분을 토했다.다른 8개국 대사들도 분분
그들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미셸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3군에 연락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해! 그리고 함대에 연락해서 용국의 주변 해역에서 순찰을 돌도록 지시해. 이는 용국에 전하는 경고야. 우리 9개국 정상회는 이번에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라고!”“네!”금발의 미인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인 뒤, 밖으로 뛰쳐나갔다.그 시각, 용국 전쟁부와 왕린의 휴게실.예정천은 뒷짐을 지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디 9개국 찌질이들이 감히 우리 용국을 도발해? 우리 용국 군대는 한 번도 도발을 두려워한 적이 없어! 그들이 꼭 전쟁을 해야겠다면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한바탕 분풀이를 한 예정천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이 장군, 당장 용국 전쟁부의 이름으로 용국의 5대 주국에 연락해서 전원 집결하라고 해! 이번에는 그 건방진 9개국 정상들에게 용국의 본때를 보여줘야겠어!”“사령관님, 조금 전에 입수한 소식인데 북양 전쟁부와 남령 전쟁부는 이미 전원 집결을 마쳤답니다!”이 장군이라는 사람이 공손히 말했다.그 말을 들은 예정천은 그제야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좋아, 아주 좋아! 이게 바로 우리 용국의 군대지!”말을 마친 그는 뭔가 떠오른 듯이 굳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동원 전쟁부와 서부 전쟁부는?”이 장구는 고개를 저었다.“아직 움직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소더 킹의 연락을 받았는데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예정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서효양 그 녀석은 머리가 좋아. 일단 그쪽은 상관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거야. 저 머저리 같은 대사들이 무슨 말을 지껄여도 절대 받아주거나 타협하면 안 돼! 배상은 꿈도 꾸지 마!”“네!”현장에 있던 장군들이 기립 자세로 정중히 대답했다.대략 30분 정도의 휴식을 거친 뒤, 2차 회담이 시작되었다.격렬한 토론은 결국 나중에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그렇게 대략 한 시간이 지나 쌍방은 서로 얼굴만 붉히고 헤어지고 말
소식을 들은 용국의 백성들도 분노에 휩싸였다.거리와 골목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항의의 목소리가 용경의 하늘을 찔렀다.용경의 백성들은 격앙된 심정으로 거리로 나와 자기 나라와 북양왕을 위해 함성을 질렀다.뜨거운 열기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고황성을 뒤덮었다.수백만 명의 용경 백성들은 전부 국빈 호텔로 몰려가서 주먹을 흔들며 항의를 표했다.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현장은 질서 있게 유지되었고 그들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정서를 표출했다.9개국 패권주의를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용경의 하늘에 울려퍼졌다.“9개국 정상회는 용경에서 물러나라!”“용국과 용국 국민은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9개국 멍청이들은 당장 용국에서 꺼져!”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깃발이 용경 거리의 곳곳에 휘날리기 시작했다.용각에서도 신속히 입장을 내놓고 국빈 호텔 주변 5km까지 경계선을 취소했다.이 뜨거운 열기는 사면팔방에서 국빈호텔까지 휘몰아쳤다.국빈호텔 내부.미셸 일행은 휴게실 창문 앞에 서서 인상을 잔뜩 구기고 창밖의 인파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들의 목소리는 벼락처럼 국빈호텔을 흔들고 있었다.이렇게 응집된 민심은 용국 최고의 무기가 될 것이다.미셸 일행은 충격을 금치 못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그들의 나라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멀리 바라보니 인파가 계속해서 몰리고 있었다.“미셸, 이제 어떡할 거야? 이건 국제적으로 큰 수치로 기록될 거라고!”“그래! 그냥 군사를 철수하고 용국 대표들과 다시 제대로 협상하자. 이러다가는 용국 전쟁부는 물론이고 10억이 넘는 용국 국민들의 미움을 사서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게 될 거야!”“안 돼! 당장 전쟁부에 연락해서 군사를 철수하게 해야겠어!”일부 대사들은 이미 자신들 나라의 전쟁부에 연락하여 경거망동하지 말고 새로운 지시를 기다리라는 입장을 표명했다.미셸이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 이대로 철수할 수는 없어. 우리 9개국 정상회는 이 따위 쇼에 굴복하지 않아! 항의하라고 해. 국제
그가 말했다.“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소.”용 선생도 창가로 다가가며 말했다.“그의 선택이 곧 폐하의 선택이 될 겁니다.”국왕은 피식 웃고는 지시를 내렸다.“10만 용기군에 연락해서 무장하고 지시를 기다리라고 하시오. 만약 9개국 정상회가 군사를 철수하지 않는다면 바로 전쟁을 선포할 겁니다.”“예, 폐하!”용 선생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그 시각, 전용기 한 대가 용경 전쟁부의 공항에 착륙했다.전용기에서 내린 한지훈은 이미 대기하고 있던 군용차를 타고 국빈 호텔로 향했다.그 시각, 국빈 호텔 내부에서는 제5차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쌍방은 마주하자마자 또 격렬한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이미 전쟁을 염두에 두고 나온 쌍방이라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은 쪽으로 발전하고 있었다.“용국 전쟁부, 정말 우리 9개국 정상회랑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미셸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거리며 물었다.반면 예정천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전쟁은 당신들이 먼저 원한 거고 꼭 해야겠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그래! 누가 두려워할 줄 알고?”그 말을 들은 미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회의실 전체가 조용해졌다.미셸을 제외한 다른 대사들은 난감한 얼굴로 미셸을 바라보고 있었다.예정천과 함께 합석한 다른 장군들은 반면 태연한 얼굴로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미셸은 짜증이 치밀어 마지막 경고장을 날렸다.“예 장군, 우린 군을 철수시킬 의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에 말했던 것처럼 한지훈은 용국 전쟁부에서 퇴출시키고 군사재판에 넘겨야 합니다. 용국 입장에서는 한지훈 한 명 손해보고 40만 대군을 물릴 수 있으니 남는 장사 아닙니까!”예정천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싫습니다!”“하!”분노한 미셸이 으르렁거리듯 물었다.“용국, 정녕 전쟁을 원한단 말입니까!”쾅!그리고 이때, 굳게 잠겼던 회의실 문이 열렸다.곧이어 싸늘한 목소리가 협상 회장에 울려퍼졌다.“전쟁?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한지훈의 돌발 행동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아무리 미셸이 괘씸해도 이국에서 특파한 대사인데 그대로 명치를 날려버리다니!바닥에 쓰러진 미셸은 배를 붙잡고 고통스럽게 신음하다가 보좌관의 부축을 받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지훈에게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건방진 자식! 감히 이국 대사인 나를 쳐? 당장 나한테 사과하지 않으면 군을 파견하여 용국을 짓밟을 거야! 사과 안 해?”미국 대사로서 사람들 앞에서 이런 수모를 당해본 적 없는 미셸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그는 북양왕이라는 사내가 너무 건방지고 괘씸해서 견딜 수 없었다.자칫 잘못하면 양국의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한지훈은 태연한 얼굴로 뒷짐을 진 채, 남은 대사들을 둘러보며 싸늘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지. 너희가 전쟁을 원한다면 난 언제든지 오케이라고! 당장 군을 파견해! 우리 북양의 30만 파용군이 너희 군을 짓밟고 너희 이국의 수도에 깃발을 꽂을 테니까!”그 말에 회의실 전체가 조용해졌다.모두가 긴장감에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대단한 자신감이었다.그 말 한 마디로 당장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9개국 정상회 대사들의 얼굴에 수치와 분노가 서렸다. 그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한지훈을 비난하기 시작했다.현장이 다시 혼란스러워졌다.이때, 미셸의 보좌관이던 금발의 미녀가 다급히 안으로 들어오더니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미셸에게 다가갔다.“미셸 대사님, 큰일 났어요! 동원 전쟁부 40만 대군이 아군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이국 본토 쪽에서도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어요. 변방의 7개국이 우리 이국을 향해 칼을 빼들었답니다. 사우디 제국에서 80만 병사를 집결하여 본토 변방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배후에는 동원 전쟁부 수장 서효양이 움직인 것 같아요. 국주께서는 당장 본토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그 말을 들은 미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뭐라고? 어떻게 이럴 수가? 사우디 제국이 왜 끼어들어? 젠
미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지훈은 다가가서 그의 멱살을 잡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미셸! 여긴 이국이 아니라 용국이야! 네 협박은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미국 전쟁부에서 우리 나라를 침범할 때까지 용국의 군대가 가만히 손 놓고 있을 것 같아? 계속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면 당장 내 군대를 동원하여 주변 해역에 있는 네 함대들을 폭파하라고 할 거야!”쾅!말을 마친 한지훈은 그대로 미셸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말했다.“끌고 가!”“네!”순식간에 사병들이 몰려들어 미셸과 금발 여인을 압류하여 끌고 나갔다.남은 대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벌벌 떨었다.그들의 리더인 미셸마저 잡혀간 마당에 그들에게까지 화가 미치지는 않을지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다.고개를 돌린 한지훈은 대사들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여러분, 또 볼일이 남았나요? 다른 볼일 없으면 사람을 시켜 여러분을 안전하게 공항까지 모시겠습니다.”여덟 대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한지훈에게 고개를 숙였다.“북양왕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저희는 바로 떠나겠습니다.”잠시 후, 8인은 부랴부랴 국빈 호텔을 떠나 당일 날 비행기로 용국 영토를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군대도 전부 용국 해역에서 철수했다.왕린의 저택.왕린과 예정천, 그리고 한지훈은 왕린의 집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한 사령관, 오늘 정말 대단했어! 한 사령관 덕분에 우리 나라의 위상이 더 높아질 거야. 선배로써 부끄러울 따름이네!”예정천은 한지훈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한지훈은 예의 바르게 답했다.“예 사령관님, 과찬이십니다. 만약 예 사령관 같은 분이 대사들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제가 도착할 때까지 회의가 진행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예 사령관님이야말로 용국의 영웅이십니다.”예정천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한지훈의 어깨를 잡았다.“녀석, 말 한번 예쁘게 하네!”왕린도 그들의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그리고 이때, 천자각 전용차 한 대가 왕린의 저택 앞
“알겠습니다!”한지훈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떠날 채비를 하는데 국왕이 갑자기 그에게 물었다.“흑뢰에서 할아버지는 만났나?”한지훈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그는 CCTV 메모리카드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국왕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이건 그의 할아버지와 한씨 가문의 생사와 긴밀히 연관된 일이었기에 조금 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그 말을 들은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자네의 할아버지는 용국에 미안한 일을 하지 않았네. 과거 사건에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얽혀 있어. 4대 가문과 연관된 일이라 지금은 자네에게 다 말해줄 수가 없네. 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언젠가는 자네도 알게 될 거야. 내 느낌이지만 자네의 할아버지가 큰 것을 준비하고 있네. 그리고 자네는 그 작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거고.”한지훈은 인상을 찡그리며 국왕에게 되물었다.“큰 것이라니요?”국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베란다로 가서 용경 전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과거 나와 자네의 할아버지는 한 가지 약속을 하였네. 우리 둘 사이에 한 명은 다음 대 국왕, 한 명은 대원수가 되기로. 그렇게 해서 용국의 형세를 완전히 뒤엎고 용국에서 4대 가문의 영향력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우리는 4대가문을 일망타진하고 그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취한 재산과 권력을 몰수해서 백성들에게 돌려줄 꿈을 꾸었다네.”“다만 나중에 그 사건이 터지면서 자네의 할아버지는 4대가문의 음해를 당하였고 국내 여론의 압력 때문에 난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네.”“한지훈, 자네는 내가 원망스럽나? 내가 4대가문과 끝까지 싸우지 않아서 실망했나?”한지훈은 어쩐지 지쳐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폐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저는 폐하의 생각까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할아버지와 만나고 과거 우리 가문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4대가문에 복수하는 겁니다. 이건 저도 양보할 수 없어요!”뒤돌아선 국왕은 한
한지훈은 담담하게 말했다.“도청전인?”국왕은 지금까지 도청전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고,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다.하지만 한지훈이 추천한 인물이라면 믿을 만했다.“그럼 짐이 그에게 관직을 하사하여, 나라를 위해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겠는가?”국왕이 신중하게 묻자, 한지훈은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용국이 위기에 처하면 그가 스스로 나설 것입니다. 그는 무종 사람으로 자유로운 삶에 익숙합니다. 오히려 관직을 주면 그에게 부담이 될 것입니다.”“제가 그를 국왕께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오륙으로 떠나기 전까지, 적어도 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국왕은 이 말을 듣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한지훈, 그대는 진정 나라의 기둥이로구나! 가장 먼저 찾은 것이 아내와 자식이 아니라 짐이라니! 짐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겠구나!”위기가 해소되자 국왕의 표정도 한층 부드러워졌고, 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오직 국왕 폐하의 근심을 덜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이제 할 말을 다 했으니, 저는 물러나겠습니다.”한지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국왕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한지훈, 이번 곤륜에서의 경험이 상당했을 텐데... 지금의 그대는 어느 경지인가?”잠시 침묵이 흘렀다.“천신입니다!”짧고 날카로운 대답이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졌고, 순식간에 한지훈의 모습이 사라졌다.“천신...?!”국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지훈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국왕 폐하, 방금 누군가 다녀갔습니까?”진우가 문을 밀고 꼭대기 층 테라스로 들어오며 말했고,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주변을 살폈다.“그래, 한지훈이었다!”국왕이 담담히 대답했다.“한지훈이라고 하셨습니까?!”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귀신이나 환영 같은 걸 믿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한지훈은 이미…“쓸데없이 놀라
이 시각, 강중에서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도는 것과 달리, 용경은 한층 더 고요했다.용각에서 국왕은 홀로 천자각 꼭대기에서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지금 한지훈이 부재한 상황에서, 용국은 반드시 그를 대신할 인물을 찾아야만 했다!그러나 유청은 그 기준에 명백히 미치지 못했다.적어도, 실력이나 경지에 있어서 유청은 열국을 위압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바로 그때, 한 사람의 그림자가 불쑥 내려앉았다!“누구냐!”국왕은 즉시 돌아서며 크게 외쳤고, 동시에 허리에 손을 뻗어 검을 뽑으려 했다.“국왕 폐하, 저입니다.”스윽—!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국왕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한... 한지훈?!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국왕은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너... 너는 사람이냐, 귀신이냐?”국왕은 말을 하며 몇 걸음이나 물러섰고, 정신을 가다듬어 자세히 보니 과연 한지훈이었다!다만, 지금의 한지훈은 이전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고, 그의 분위기 역시 확연히 변화한 듯했다.예전의 한지훈에게서는 절대적인 위엄이 느껴졌다면, 지금의 한지훈은 더욱 깊고 심오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국왕 폐하,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하산한 뒤에서야 국상을 알았지만, 다행히 운 좋게도 죽지 않았습니다!”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죽지 않았다니?!”국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눈가에는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한지훈! 네 녀석... 나를 기절초풍하게 만들 뻔했구나! 네가 정말 죽었다면, 용국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겠느냐!”국왕은 말하며 성큼 다가와 한지훈의 옷깃을 움켜쥐고는 세차게 흔들었다.“하지만, 예 씨 부부는 저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두 부부 덕분입니다! 그 부부가 목숨을 걸고 저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수정층 아래에 누워 있는 것은 바로 저였을 것입니다!”한지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래… 예 씨 어르신
황약사가 말을 마치자, 옷자락을 휘날리며 앞마당을 나섰다.일반인들은 황약사가 의술이 뛰어나고 그 실력이 아무도 따라올 수 없다고만 알고 있었다.하지만 극히 일부만이, 황약사가 진정한 천왕계 강자이며 무적천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실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설령 단해룡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황약사의 손에서 쉽게 이득을 보지 못할 터였다.황약사의 예상대로, 한지훈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장씨 가문이든 단해룡이든 가슴 한편에 약간의 설렘이 부풀어 올랐다. 한지훈이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아내와 자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장씨 가문의 사람들이 괜히 희생된 것도 아니고, 단해룡이 공개적으로 모욕당한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예충기가 살아 있다면 감히 나서지 못했겠지만, 그마저도 곤륜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젠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노 씨 어르신 무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각 문파와 접촉했고, 화산과 항산 역시 이에 호응하며 손을 잡았다. 이제 강우연이 강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바로 그녀를 찾아가 책임을 묻겠다는 움직임이 퍼졌다!겉보기엔 용국이 평온해 보였지만, 물밑에서는 거센 격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사대 가문 중에서도 특히 동방 가문과 원씨 가문이 한지훈과 가장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기에, 이제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가주님, 듣기로는 노 씨 어르신과 무맹이 이미 열 개가 넘는 문파를 규합하여 한씨 가문을 찾아가 응징할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저희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원상용은 차분한 시선으로 보고한 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원씨 가문의 원한이 그냥 묻힐 수는 없지!”“한지훈, 네가 살아 있을 때 우리 원씨 가문 사람들의 목숨을 수없이 앗아갔다. 이제 네가 죽었으니, 우리가 잔인하다고 탓하지는 말아라!”원상용은 말을 마친 뒤 보고를 한 사람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꺼냈다. “원상호, 네가 원씨 가문을 대표하여 강중으로 가 강우연에게 책임을 물
이때, 약왕파에서 생방송을 지켜보던 장로들이 하나같이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비록 약왕파와 한지훈 사이에는 오래된 원한이 있었으나, 한지훈의 삶은 의롭고 당당하여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하아! 북양왕의 생애가 너무나도 짧았구나. 만약 그에게 10년만 더 주어졌다면, 이처럼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수만 도에 달하는 고온 속에서라면, 누구라도 수증기로 변해 사라졌을 것이야. 하지만 제릉산에 의관총이라도 마련된 것이 그나마 영광이라 해야겠지.”장로들은 저마다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오직 오 장로만은 깊은 눈빛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내 생각엔 며칠 안 가서 무종의 사람들이 우리 문파를 찾아올 거요. 우리 약왕파는 이미 한지훈과 엮여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소?”그의 말에 주변 장로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오 장로, 자네가 한지훈에게 당한 게 있다 해도, 그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소!”대장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비록 무종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해도,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야 했다.한지훈이 막 숨을 거둔 상황에서 즉각 손절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문파의 명예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터였다.“제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약왕파 전체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단해룡이나 원씨 가문, 동방 가문 같은 세력은 논외로 치더라도, 장씨 가문, 천산, 화산, 항산의 인물들이 한지훈을 가만히 두겠습니까?”“그들 중 어느 누구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한지훈을 건드리지 못했던 것은 오직 그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예충기까지 함께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예충기 부부마저도 이번 사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그리고, 헬기를 통해 촬영된 그들의 시신 사진도 이미 공개되었습니다!”뭐라고?!앉아 있던 장로들은 일제히 경악을 금치 못했
두 눈을 뜬 도청 전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당초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천신계 경지를 돌파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20대의 나이에 천신이라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이내 도청 전인은 천천히 일어나 옆에 놓인 보자기 하나를 들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아래로 걸어갔다. 비록 도청 전인은 아직 천신경로 돌파하지는 못했지만, 그 경지까지 반 보 정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도청 전인은 진법에 대한 인식은 깊게 가지고 있었다. 그 또한 체내의 자기장을 동원할 때마다, 발 밑에서는 두 갈래의 회오리바람이 떠오르면서 어느 정도의 기운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곤륜에서는, 한지훈은 천천히 대전을 빠져나왔고, 그의 발은 지면에 닿을 때마다 뇌해의 고온 양향으로 융해된 지면에 층층이 잔잔한 물결을 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치 물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한지훈은 다시금 예충기 부부의 시체 앞에 다가와 허리 굽혀 절을 하였다. 그는 여전히 비통한 마음이었다. 만약 생사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는 절대 이 두 노인을 자신과 동행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한지훈은 눈물을 훔치고는 다시 가슴을 쳐들고 산 아래로 걸어갔다. 한지훈이 자리를 떠난 후, 예충기와 정봉교의 시체 옆에는 기이하게 피어난 금색의 작은 꽃 두 송이가 나타났고 수정과도 같은 지면에는 약간의 균열이 나타났다. 한지훈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30분도 안 되어 작은 뜰로 다시 돌아왔다. 작은 뜰은 이미 텅 비었고, 신한국과 강만용조차도 종적을 감췄다. 결국 한지훈은 작은 뜰에서 잠시 머물다가 곤륜산 아래로 걸어갔다. 지금 이 순간 용국은 온 나라가 비통에 잠겨있었다. 용국의 백성들은 한지훈의 공적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지훈을 위한 국장이 치러지는 날, 수백만 명의 용국 백성들은 함께 거리로 나가 한지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몇 줄로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한지훈은 급히 일어섰다. 후! 이때, 제단 주위에서는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더니 곤륜산 전체를 포함한 주위의 모든 것이 한지훈의 감지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가 바로 이 대지의 주재자라도 된 것처럼, 그는 손 하나 발 하나로도 얼마든지 이 대지와 긴밀하게 융합할 수 있었다. 천신! 순간 한지훈의 마음속에서는 이 두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이내 그가 주먹을 쥐자, 비할 데 없이 강력한 힘이 체내에서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마치 이 세상에 더 이상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 같았다.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났다. 백룡심을 융합시키고 나니, 또 다른 높은 경지에 다다르게 된 건가? 한지훈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기만 해도, 오로지 육안만으로도 수십 미터 높이의 돌로 쌓은 대전을 관통할 수 있었고 하늘의 노을빛까지 보아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신의 경지에 다다른 징조이다. 게다가 천생서문에 따르면, 일단 천신계로 돌파하기만 하면 하늘에 노을빛이 나타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마침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바로 그 화려한 노을빛이었다. “엄마, 저거 봐, 불광이야!”한편 그 시각, 천부성에 있던 한 소녀가 하늘의 노을빛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린 소녀의 손가락 방향을 따라 많은 사람들은 그 눈부신 빛을 바라보았다. “어머, 진짜 불광이네. 영험한 보살이 나타났나 보구나!”“다들 얼른 무릎 꿇고 절하세요!”대낮에 어떻게 불광이 나타날 수 있는 거지? 어떤 사람은 단추까지 채운 채 공손하게 무릎 꿇었고, 어떤 사람은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뭐가 됐든 이 노을빛은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한편 저 멀리 유럽에서는, 대전에 있는 한 백발의 노인은, 세계 각지에서 전송된 동영상 자료를 보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 비춘 노을빛을 보고는,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용국에 또 천신 강자가 탄생한 거야? 마찬가지로 오르크스산에서는, 백발이
마치 금속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처럼 무섭게 들렸다. “칵!”바로 그때,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은제 상자는 떨어지게 됐다. 뒤이어 칠흑같이 어두웠던 제단은 갑자기 대낮처럼 밝게 비쳤다. 한지훈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방금 은제 상자가 놓여있던 곳에서는 눈부신 백광이 나타났다. 한지훈은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주시한다 하더라도 그 백광 뒤에 가려진 사물을 전혀 볼 수는 없었다. “설마 이게 바로 백룡심인 건가?”한지훈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천생서문에 있는 백룡심에 대한 기록을 다시 회상했다. 백룡심을 융합시키는 건 다른 용심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이유는 백룡심은 사실 생사상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년불멸의 용심은 영원히 살아있기에, 백룡심을 융합하려는 자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렇게 생사가 맞아떨어져야 백룡심이 비로소 하나가 된다. 다만 문제는 그 조건이 매우 가혹하다는 것이다. 백광이 제단 전체를 밝게 비추는 가운데, 음양어 문양도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지훈은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쿵쿵쿵!” 심지어 한지훈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땅 위의 제단을 다시 한번 올려다본 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른바 생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결코 이대로 허무하게 자결한다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땅에 그을린 몇 갈래 금은 모두 음양어로 몰리게 됐는데, 어느새 음양어의 한쪽은 이미 흰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럼 남은 반대쪽은 빨간색으로 물들여야 한다. 그 빨간색은 바로 피였다. 이내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뽑아 들어 직접 자신의 손목을 찔렀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지훈은 순간 멍해졌다. “땡!” 오릉군을 내려치면서 뜻밖에도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 것이다.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힘껏 오릉군을 내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목에 는 흰 점 하나만 보였다. 피는커녕 피부에 닿지도 못했다. 한지훈은
그렇게 한지훈은 예충기 부부의 시체를 향해 여러 차례 무릎 꿇고 참배까지 마친 후에야, 계속하여 곤륜허의 더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뇌해 구역을 지나 5리도 안되어, 한지훈은 갑자기 알 수 없이 넘쳐흐르는 생기를 느꼈다. 이내 주위에 깔려있던 회백색의 모래와 자갈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고, 전방에는 넓은 숲이 나타나더니 자연의 짐승들이 나무 사이를 누비는 걸 보게 됐다.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공기가 탁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나 예충기가 말한 바와 같이, 제준의 능묘로 들어설수록 생기가 오히려 짙어지고 있었다. 백룡심을 얻기 위해서는 생사를 건너야 한다더니. 방금 뇌해를 건너면서 한지훈은 이미 한 번의 죽음을 겪었기에, 지금 그의 눈앞의 펼쳐진 것은 바로 또 다른 삶이었다. 계속하여 이러한 생사의 왕복이 펼쳐질 예정이다. 동시에 한지훈은 내심 걸어온 길을 되새기며 생기와 사기를 번갈아 생각해 보았다. 이는 어떻게 보면 한지훈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지훈은 생사의 오의를 깨닫지는 못하여 단지 모호한 개념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상한 사실 하나는, 곤륜허에는 낮과 밤의 구분도 없는 것 같았다. 시간으로 계산하게 되면, 지금 시점은 노을이 지는 시점일 텐데 곤륜허는 여전히 대낮과도 같았다. 햇빛은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주위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이런 극한의 환경은 곤륜허를 더욱 기괴하게 만들었다. 또 몇 시간 계속하여 걸으면서 산등성이를 넘은 한지훈은, 갑자기 비할 데 없이 웅장한 궁전을 마주하게 됐다. 그 궁전은 길이가 수 미터에 달하는 돌로 쌓여 있었다. 비록 세월의 풍파를 거치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대전과 벽에 보이는 금에서 당시 이 궁전이 얼마나 휘황찬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한지훈은 곧장 대전으로 걸어갔다. 대전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없는 한기가 한지훈에게로 밀려왔다. 이는 진정한 죽음의 기운이었다. 바로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 극한의 한기였다. 대
국왕의 발언에, 종묘 장로들은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젊어 보이지만 그 내면은 매우 단단했다. 이는 이번 기회를 빌어 아주 자연스럽게 4대 가문과 조정에 숨겨진 배후를 함께 물리칠 계획이었다. 재빨리 이 사실을 눈치챈 종묘 대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어귀에 있는 금위군을 향해 말했다. “여봐라, 당장 모두 밀어내!”“네!” 이내 한 무리의 금위군이 우르르 몰려들어 땅에 무릎을 꿇고 있던 그 노신들을 밀어내려 하자 국왕이 차갑게 말했다. “그래도 엄연히 다들 우리 용국의 영웅들인데, 어떻게 밀어낼 수가 있겠어?” “네?”그 말에 한 무리의 금위군들은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모두 끌어내! 3일 안에 용경을 떠나지 않는 자들은 가산까진 전부 몰수할 거야!”국왕의 노여움에 금위군들이 다시 우르르 몰려들어 멱살을 잡거나 팔을 잡아당긴 채 20여 명을 모두 용각 밖으로 끌어냈다. 그제야 조정은 비로소 평온을 되찾았다. 신한국은 끌려가는 노신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폐하, 이러면 이젠 4대 가문과 얼굴을 붉히게 될 것입니다!”강만용 역시 근심이 가득했다. “용국이 영원히 4대 가문의 용국은 아니야. 더욱이는 어느 명문 가문의 용국도 아니야. 자고로 용국은 백성들에게 속하고 만민에게 속하는 거야!”“나라를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은 마땅히 봉상을 받아야 하고, 그 유상 역시 마땅히 조상의 영예를 받아야 돼. 이것은 절대 당연한 천리야! 이 천리를 어기려 하는 자들은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될 거야!”국왕이 이렇게까지 화가 난 이유는, 그동안 4대 가문이 손을 뻗은 범위가 너무나도 넓었고 관리 범위도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왕은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닌 용국 전체의 의지를 대표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그 시각, 멀리 곤륜허에서는 사람 모양을 한 검은 숯덩이가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족히 10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람 모양의 검은 숯덩이는 겨우 몸을 버티고 땅에서 일어선 뒤 옆에 있는 유리석에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