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멀어져가는 예천우를 바라보는 소정은 충격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솔직히 방금 전 그 돈도 정말 도와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예천우의 진짜 능력치를 알아보고 싶어 시험조로 건넨 게 컸다. 그런데...‘뭐지 저 자신만만한 태도는? 정말 사태수를 이길 수 있다는 건가? 만약 저게 그저 허세가 아니라 진짜 실력을 기반으로 한 자신감이라면 더 꽉 잡아야 해. 날... 이 세상 꼭대기로 올려줄 수 있는 남자일 테니까.’같은 시각, 차에 시동을 걸려던 예천우가 들려오는 알림음에 휴대폰을 확인했다.2억이라는 계좌이체 알림과 비행기 티켓 문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그리고 입금인 이름을 확인한 예천우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완유가 보낸 거잖아? 개인적으로 사기를 당한데다 회사 상황도 안 좋을 텐데 그 와중에...’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휴대폰이 또다시 울리기 시작했다.“내일 아침 가장 이른 티켓으로 예매했어. 지금 바로 공항으로 가.”수화기에서 임완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싫어. 내가 왜.”예천우가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너 도대체 어쩌려고 이래.”그가 고집을 부리니 임완유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자존심이 그렇게 중요해? 그래, 아까는 일가 친척들 다 있었으니 그렇다고 쳐. 지금은 우리 둘뿐이잖아. 내 앞에서까지 자존심을 부려야겠어?”“자존심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야.”“그럼 왜 이러는데? 나 때문에? 아니면 우리 집안 때문에? 그래, 나도 알아. 전에 너에 대해 많이 오해하고 있었고 심한 말도 많이 했다는 거.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선 이미 사과했잖아. 그리고 오늘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듯이 넌 이제 우리 집안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야. 지금 중요한 건 일단 사는 거라고. 정말 몰라서 그래?”“알아. 다 아니까 걱정하지 마. 난 괜찮을 테니까.”어차피 더 설명해 봤자 임완유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예천우는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사태수가 죽으면 완유도 이렇게까지 불안해 하지 않겠지.’“천우야? 천우야?”
양박군은 예천우가 나름 아끼는 인재였으므로 간단한 대화 몇 마디 나눈 후 바로 그에게 청룡법을 전수해 주기 시작했다.약 2시간 남짓 시간이 흐르고 예천우가 기를 불어넣어준 덕에 양박군은 청룡법 1-3단계 수련에 성공한 것은 몸 자체가 달라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온몸에 힘이 차고 넘치는 기분이랄까?물론 그것은 예천우가 수련 돌파를 도와준 것은 물론이요 따로 진기를 넣어 경맥을 뚫어준 덕분이었다. 원래부터 육체적 재능이 뛰어난 양박군이었던지라 예천우의 작은 도움에도 크나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앞으로 더 수련에 정진하도록 해. 익숙해지면 청룡법의 다음 단계도 가르쳐줄 테니까.”“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앞으로 시키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양박군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예천우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또 숙였다.양박군에게 삶의 의미는 단 두 가지, 하나는 여동생을 잘 지키는 것, 다른 하나는 육체적인 강함에 대한 추구였다. 그런데 그 두 가지 모두 예천우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으니 이렇게 나올만도 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저녁 8시.양대복은 제시간을 맞춰 바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딱 봐도 고수인 게 분명한 노인 두 명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화경급 고수?’예천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화경급 고수들은 대부분 그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해 종사급으로 넘어가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양대복의 뒤를 따르는 두 남자들은 화경 중간 단계쯤 되어 보이는 이들이었으나 단 몇 시간만에 화경급 고수 두 명을 섭외했다는 것만으로도 양대복의 인맥과 실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한편, 양대복의 등장에 장혁은 오히려 허둥대기 시작했다.‘흑룡회 회장, 용등상회 회장, 천해시 지하세계의 왕 양대복을 직접 만나다니.’그런데 양대복을 직접 만났다는 것보다 더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다.천하의 양대복이 예천우를 보고 바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천우 씨.”게다가 더 기가 막힌 건 그저 고개만 까딱하
그 순간, 강력한 기운이 온몸을 휩싸고 가슴을 중심으로 충격이 퍼져나가더니 마치 트럭에라도 치인 듯 뒤로 튕겨나갔다.양대복의 곁을 지키던 다른 노인이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거대한 기운에 두 사람 모두 뒤로 밀려나가다 벽에 등을 부딪히고 겨우 멈출 수 있었다.“뭐... 뭐야?”하지만 젊은 나이의 초고수를 만났다는 사실이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강력하게 다가왔다.“너... 종사급 고수였어?”남자의 말에 양대복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놀라움과 묘한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용왕님께서도 종사급 고수였어? 그래서... 그렇게 자신만만하셨던 거야?’‘종사급 고수? 전설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천우 씨가 종사급 고수였다고?’역시 깜짝 놀란 양박군과 달리 이 분야에 있어 문외한인 장혁만 눈을 껌벅버릴 뿐이었다.공포, 충격, 동경...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시선들 속에서도 예천우는 무덤덤했다.“종사급 고수가 뭐 그렇게 대단한가요?”이미 18살에 종사급 경지에 올랐으며 지금은 종사급 후기, 즉 종사급 정상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간 뒤로 넘어가겠다 싶었다.종사급부터는 한 단계를 넘어가는 것이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 한 단계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니 사태수와의 싸움을 앞두고 있는 예천우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예천우의 실력에 겁을 먹은 두 남자의 태도 역시 바로 공손하게 바뀌었다.“저희가 눈앞에 고수님을 두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벌을 내리시든 달게 받겠습니다.”손자 뻘인 남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치욕감보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인한 공포와 존경스러움이 앞섰다.“됐어. 양 회장 사람이니 굳이 건드리지 않겠어. 그리고 오늘 싸움에 두 사람은 참견하지 마.”“네, 알겠습니다!”지금까지 두 사람을 키워준 양대복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양대복 역시 그 상대가 예천우였으므로 전혀 개의치 않았다.잠시 후, 예천우는 양대복, 양박군, 장혁과 함께 사태수가 머무는 별장으로 이동하기
‘악인을 처리하는 것도 대단한데 영사파까지 맡기려 하다니.’ 양박군은 왠지 모르게 벅차오름을 느꼈다.물론 양박군은 이 모든 게 예천우가 의도적으로 그의 욕망을 끌어내려 하고 있음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한편, 예천우의 계획을 들은 장혁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으로 모자라 말 그대로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사태수, 천해시의 레전드 강자이자 싸움 좀 한다는 이들은 한 번쯤은 동경해 봤을 인물, 그런 그를 죽인다니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 건가 싶었다.지잉.‘완유잖아?’임완유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휴대폰이 울리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예천우는 대충 무시하려고 했으나 상대가 워낙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오는 터라 결국 받을 수밖에 없었다.“어, 완유야.”“예천우 너 정말 미쳤어?”수화기 저편에서 화가 잔뜩 난 임완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안 미쳤는데?”“그런데 도대체 왜 비행기를 안 탄 건데. 정말 그렇게 죽고 싶어?”반면 임완유도 도무지 무슨 생각인 건지 속을 알 수 없는 예천우가 답답할 따름이었다.“혹시 나 지금 걱정해 주는 거야?”“걱정? 내가 왜 네 걱정을 해?”“아니, 안 그럼 이렇게 화를 낼 리가 없잖아. 내가 죽든 말든.”예천우가 피식 웃었다.“걱정하지 마. 난 무조건 살아남을 거야. 예쁜 우리 와이프 평생 과부로 살게 할 순 없으니까.”“그건 또 무슨 소린데?”“별거 아니야. 나 지금 바빠서 먼저 끊을게.”“나쁜 자식! 개자식!”또다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자 임완유는 휴대폰에 대고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과부? 누가 과부로 살겠대? 너 죽으면 바로 다른 남자 만날 거야!”하지만 화가 나는 것도 잠시, 울분을 쏟아내고 나니 또다시 예천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사태수 그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이긴다는 건데...’...같은 시각, 사태수의 별장.“사태수는 자신의 실력에 굉장히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이라 저택에 경호원은 거의 두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별장 안에는 아마 잔심부름을 할 부하 2명
“예천우, 너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건방진 거야? 기회를 줄 때 곱게 도망이나 칠 것이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제 발로 여길 기어들어와? 그래.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직접 죽여주마.”말을 마친 사태수의 주위에서 살기가 피어오르고 아늑하던 거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섬뜩하게 변했다.그 기운에 양대복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고 장혁은 자꾸만 힘이 풀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았다.반면 양박군은 꽤 뜨거운 눈빛으로 사태수를 노려보고 있었다.지금으로선 저 사람과 싸워서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왠지 자꾸 싸워보고 싶은 욕심이 머리를 치켜들었다.그런 양박군의 표정을 살피던 예천우가 싱긋 미소 지었다.“싸우고 싶으면 덤벼봐. 내가 있는 한 죽진 않을 테니까.”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양박군은 바로 그 자리에서 뛰어오르더니 사태수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와 같은 강력한 기세, 바람이 일 정도로 빠른 스피드.젊은 나이에 벌써 이 정도 기개를 보여주는 젊은이가 있구나라는 생각에 사태수도 흠칫 놀랐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았다.‘하, 나이 치곤 대단하지만 내 상대는 아니지. 난 종사 중기를 앞두고 있는 몸이라고.’퍽!두 힘이 부딪히며 강렬한 충돌음을 빚어냈다.온힘을 다해 달린 양박군과 달리 그저 사태수는 그저 선 자리에서 오른손을 들었을 뿐임에도 그 강력한 기운에 양박군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에 휩싸였다.한편, 사태수 역시 꽤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아무리 절반 정도 힘 밖에 싣지 않았다지만 팔이 저릿해 오는 건 물론이요 뒤로 조금 물러날 정도로 몰아붙이다니. 양박군의 놀라운 재능에 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힘이 아주 장사구나. 아직 종사급 고수가 아닌 게 아쉬울 따름이야. 조금만 더 성장했다면 꽤 성가신 상대가 되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럴 기회는 없을 것 같구나.”그리고 다음 순간, 귀신처럼 조용히, 하지만 매섭게 이동하던 사태수는 양박군의 얼굴을 향해 장격을 날렸다.‘이건 못 피하면 죽는다.’훅 다가
“함께 싸우시죠.”사태수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확인한 양대복이 어느새 예천우 곁으로 다가왔다.‘용왕님도 종사급 고수라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함께 싸운다면 그나마 이길 확률이 늘어날지도 몰라.’“같이 덤비시겠다? 오합지졸 몇 명 더 늘어난다고 결과가 바뀔 줄 알아?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사태수는 예천우 일행을 향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그렇게 죽고 싶다면야 내가 직접 죽여주지.”“하, 너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건방진 거야?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 뭐 그런 건가?”사태수의 눈동자가 어느새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무식한 건 너야. 지금까지 네가 가장 강한 줄 알고 살아왔겠지. 우물 안 개구리 주제에.”“이게 정말 죽으려고!”예천우의 도발에 참다 못한 사태수는 순식간에 예천우 앞으로 다가와 그를 향해 따귀를 날리려 했다.‘내가 곱게 죽여줄 줄 알아? 네 사지를 부러트리고 경맥을 전부 터트리고 근육 하나하나 전부 뒤틀리게 만들어주마.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해주겠어.’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다가온 사태수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양대복은 자신이 이 싸움에 끼어봤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천우 씨 조심하세요!”양박군의 목소리를 들은 사태수가 피식 웃었다.‘지금 피해 봤자 어차피 늦었어.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왠지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에 사태수는 묘한 공포감에 휩싸였다.그리고 다음 순간, 본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비수를 꺼내고 그리고 그 비수가 정확히그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것을 발견한 사태수의 얼굴은 공포감으로 일그러졌다. ‘안돼!’하지만 이 짧은 단어를 미처 입 밖으로 내기도 전, 목 쪽에서부터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너... 너도 종사급이었나?”겨우 입을 벌리고 중얼거리던 사태수가 털썩 쓰러졌다.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사태수의 눈동자에는 억울함, 후회로 가득했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에 재방송이란 없는 것을.그리고 이
담양에겐 모시던 주인이 죽었다는 분노보다 더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났다는 공포가 더 크게 다가왔다.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은 양대복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더 큰 공경이 듬뿍 담겨있었다.‘용왕님...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강하시잖아. 내가 평생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사태수가 이렇게나 쉽게 죽어버리다니.’양박군 역시 눈을 반짝이며 예천우를 바라보았다.‘천우 씨와 함께라면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예천우의 시선은 사태수의 시신에 단 1초도 머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담양을 향해 물었다.“네가 담양이지?”“네.”잔뜩 긴장한 담양이 침을 꿀꺽 삼켰다.“절 아십니까?”“사씨 가문 사람들을 제외하고 영사파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인데 내가 모를 리가.”“과찬이십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사태수의 부하로 있긴 했지만 그건 제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누구보다 사태수를 죽이고 싶었습니다.:“알고 있어.”예천우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사태수를 죽이려고 작정한 이상, 상대에 대해 알아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그중에서 강자로 손꼽히는 담양이 뭔가 다른 속셈을 가지고 사태수 곁에 붙어있다는 것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그렇다면... 앞으로 천우 님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요?”“글쎄...”발칙한 질문에 예천우가 피식 웃었다.“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네가 날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걸 내가 어떻게 믿지?”“천우 님의 실력을 이미 확인한 이상... 제가 어찌 천우 님을 배신하겠습니까?”“그럼 만약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나타난다면?”“그래도 배신은 하지 않습니다. 비록... 잔인한 성정이라고 소문이 나긴 했지만 적어도 은혜는 잊지 않습니다.”담양이 예천우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그래. 네 말 명심해라. 행여나 허튼 짓 했다간 죽음보다 더한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다 죽게 만들어주마.”“천우 님의 말씀 마음속에 깊게 새기겠습니다.”고개를 숙인
한편, 양대복은 옆에서 찍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치만 살피다 담양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연락처만 남겼을 뿐이었다.사태수도 죽었겠다 머리 없는 뱀 한 마리 잡는 건 일도 아니니 예천우는 미련없이 별장을 나섰다.‘어차피 나머지는 담양, 양대복, 양박군이 알아서 해줄 테니까.’먼저 차에 탄 예천우가 휴대폰을 꺼냈다.“교수님!”수화기 저편에서 황호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교수님, 뭐든 말씀하십시오. 아... 사태수 그 사람과 싸우는 건 안 됩니다. 그건 제 능력 밖이에요.”황호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확실한 증거를 잡아 용국 4대 전신을 움직일 수 있으면 모를까...’용국은 과학기술은 물론 무예 고수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중에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청룡, 주작, 현무, 백호 4대 전신이며 그 4명 중에서도 제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세계 1위 강자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청룡이었다.“아, 그걸로 연락드린 게 아닙니다. 그리고 사태수는 이미 죽었으니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십시오.”예천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렇다면 다행... 잠깐,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당황한 황호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지금 사태수가 죽었다고 하셨습니까?”“네. 방금 전 제가 직접 처리했습니다.”“아니...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처음엔 귀를 의심하던 것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아마 곧 소문이 퍼지겠죠. 황 사장님한테는 다른 용건 때문에 연락드린 겁니다...”이어 예천우는 사씨 일가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재산은 재판에 따라 상납하겠지만 남은 재산은 담양이 관리를 맡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이어나갔다.이에 황호건은 당연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예천우의 부탁이라면 웬만해선 거절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고 영사그룹 같은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면 천해시의 경제는 물론이요 당장 청년 취업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일
‘저렇게 대단한 사람이 지금 내 눈앞에서 무릎을 꿇는다고?’강지혜도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손승우가 평소에 자존심 하나는 강한 사람이었는데 지금 이런 행동을 한다니 말이다.손승우가 느끼고 있는 공포가 얼마나 큰지 고스란히 드러났다.손승우는 무릎 꿇은 것도 모자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지혜와 손동욱에게 소리쳤다.“너희 둘은 아직도 눈치 못 채고 뭐 하고 있어? 당장 이리 와서 무릎 꿇어! 오늘 바로 너희가 여기서 제멋대로 굴었기에 용왕님의 미움을 사게 된 거야. 빨리 와서 용왕님께 사죄드리지 않고 뭐 하는 거야!”그는 속으로 강지혜와 손동욱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동성에서 영향력을 떨치는 진은수조차 용왕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데 너희들이 뭐라고 감히 편하게 서 있는 거야?’강지혜는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이 어떤지 잘 알기에 마지못해 손승우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오히려 손동욱은 강지혜보다 빨리 나서서 무릎을 꿇더니 다급히 입을 열었다.“용왕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가 무식해서 용왕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그런데 강지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손승우는 답답한 마음에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평소에는 재잘재잘 말 잘하더니 왜 지금 와서 말이 없어? 당장 용왕님께 사죄하지 못해? 정말 우리 손씨 가문이 멸망하길 바라는 거야?”그러자 강지혜는 굳은 표정으로 억지로 입을 열었다.“저... 잘못했습니다. 용왕님...죄송합니다.”강지혜는 오랜 세월 동안 손씨 가문의 사모님으로서 남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왔고 지금처럼 이렇게 비참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것이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다.손승우는 아내와 아들이 모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확인하자 서둘러 예천우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용왕님, 정말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용서해 주신다면 어떤 조건이라도 따를 것입니다. 무엇이든 말씀만 해 주십시오.”손승우의 태
허성태와 조은희의 흥분한 표정과 달리 손승우 일가족은 완전히 다른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손승우의 아들인 손동욱은 평소에도 용왕님의 신비로운 강함을 동경해 왔으나 막상 자신이 용왕님 앞에서 건방지게 굴었다는 사실에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어쩌면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도 기적이었다. 용왕님의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스치자 손동욱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고 너무 놀랍고 두려워서 하마터면 오줌을 쌀 뻔했다.강지혜도 한껏 굳어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나운 모습으로 악다구니를 퍼붓던 그녀는 이제 그 기세가 완전히 꺾였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손승우는 표정이 더욱 참담했다. 조금 전 주성한의 수상한 행동을 되돌아보면 뭔가 심상치 않았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그동안 그는 분노와 손씨 가문의 실력에 취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눈이 멀었던 자신이 미칠 듯이 후회스러웠다.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모든 걸 수습하는 일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용왕님이 화를 내면 손씨 가문은 반드시 멸망될 것이다.허종우와 허광호 또한 그동안 예천우에게 무례하게 군 일을 떠올리자 멍해져 있었다.예천우에게 건방지게 굴고 못마땅해하며 험담을 늘어놓고 심지어 혼내 주겠다고까지 했다.허성태가 그들을 막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미 행동에 나섰을 것이고 지금쯤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은 그저 겁에 질려 예천우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제 와서 그에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예천우의 아우라가 너무 강력해 감히 다가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허가연 또한 멍한 상태로 예천우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예천우의 실력과 영향력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허가연 역시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형부가 이토록 대단한 인물일 줄이야. 정말 전혀 예상치도 못했어.’예천우는 주변의 시선이나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진은수의 긴장된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손승우는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순간 멍해졌다.‘내가 언제 용왕님을 무시했단 말이지? 게다가 누가 용왕님이야? 설마 전설적인 용문의 용왕님을 말하는 건가? 내가 무슨 수로 감히 용왕님 앞에서 큰소리를 쳤다고 저러는걸 까? 잠깐만 혹시... 저 젊은이가 용왕님이라는 걸까?’손승우는 아득한 충격에 빠졌다.‘말도 안 돼! 절대 불가능해.’그 순간 다른 사람들도 손승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방 안의 사람들 대부분이 놀란 얼굴로 예천우를 바라보며 그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었다.허종우 역시 눈을 크게 뜬 채 그를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허광호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다가 물어보려는 순간 진은수가 손승우를 꾸짖더니 돌아서서 예천우에게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걸 보았다.“용문 4대 사자 진은수가 용왕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용왕님께서 이곳에 몸소 강림하셨는데도 제가 직접 맞이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그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은 숨죽인 듯 고요해졌고 모두 숨을 들이마시며 그 충격에 사로잡혔다. 이전에 예천우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던 사람들도 진은수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자 완전히 이해했다.진은수가 용문 4대 사자라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고 그가 용왕님이라고 부르며 경의를 표한 예천우의 정체가 확실해졌다.진은수가 용문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이제 눈앞에서 확인이 되었다.게다가 예천우가 그토록 강력한 위치에 있는 용왕님이라는 사실은 모든 이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손승우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믿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겉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듯 보였던 예천우가 바로 그 전설 속의 인물이라니 말이다.이 모습을 본 임완유와 임선호 남매 또한 충격에 빠졌다. 진은수의 높은 위치를 알고 나서는 예천우가 인맥으로 도움을 청한 줄 알았으나 사실 그는 예천우의 휘하에 있는 사람이었고 심지
진은수의 강렬하고 압도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은 순간 멍해졌다.자연스레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한 위풍당당한 남성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그의 움직임과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을 보면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 같았다.손승우는 그 목소리를 듣고 얼굴이 굳어졌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과연 위무권관의 관장 진은수였다. 진은수는 일반 권관의 관장이 아니었다.그의 문하 제자 중에서도 보통 신분이 아닌 사람들이 많았다. 각지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조차 그에게 자녀를 맡길 만큼 그의 권위는 대단했다. 허광호 역시 그의 제자 중 하나였으나 다른 진정한 고수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그렇다고 해서 손씨 가문이 진은수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손승우가 그에게 깍듯하게 대했던 건 어느 정도의 존경심 때문이었지 손씨 가문이 진은수에게 굴복할 정도는 아니었다.손승우는 그저 진은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약간의 예의를 지켰을 뿐이었다.지금 진은수가 예천우를 위해 나섰다는 상황에 허씨 가문 사람들 또한 놀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허광호는 경외의 눈빛으로 나서서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고개를 숙였다.“사부님, 오셨군요!”진은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을 뿐 아무 말 없이 성큼성큼 예천우가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허성태도 공손하게 그에게 인사했다.“진 관장님, 안녕하세요!”그는 허성태의 인사에도 응하지 않았고 마치 주변의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존재인 듯 무시하는 태도로 곧장 예천우에게 다가갔다.이 모습을 본 임완유와 임선호 남매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진은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정체와 위압감에 놀란 두 사람은 진은수가 자신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임을 직감했다. 게다가 손대우의 얼굴이 확연히 변해 있었다.허씨 가문 사람들 또한 존경의 눈빛으로 진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보니 진은수는 확실히 이 지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임이 틀림없
“아까 했던 말씀 기억 안 나세요? 분명 사모님은 우리 허씨 가문을 순식간에 없앨 수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강한 가문도 상대하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보고 어쩌라는 말씀이죠?”“너!”강지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주성한이 더 이상 손승우를 때리지 않고 멈췄다. 예천우가 멈추라고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더 때렸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이때 손승우의 얼굴은 이미 맞아서 본래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형체가 망가졌다. 그나마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정도였다. 주성훈이 완전히 제어하지 않고 때렸다면 그 실력으로 두어 번만 더 때렸어도 손승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손승우는 자신이 굴욕을 당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다. 그는 지금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왜 고작 몇 사람만 데려와서 이런 사태를 맞이하게 됐을까? 차라리 경찰이나 다른 고수를 데려왔다면 이렇게 어린 녀석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주성한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서서 예천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예천우 씨, 말씀하신 대로 다 처리했습니다.”“아주 잘했어요.”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번 일은 여기서 끝내죠. 이 정도면 주성한 씨의 실수는 없었던 걸로 해줄게."“감사합니다. 예천우 씨!”주성한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대인배답게 용서해 주는 예천우의 아량에 그는 깊이 감동했다.“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주성한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닥쳐올 손씨 가문의 보복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그래요. 가보세요.”예천우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허씨 가문의 사람들은 예천우가 주성한을 쉽게 보내는 것을 보고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순순히 따르는 주성한을 왜 그냥 놓아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천우가 주성한을 이용해 손씨 가문을 상대하지 않으니 예천우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주성한이 남아 있다면
이 말에 모든 사람이 다시 멍하니 얼어붙었다.허광호와 허종우는 입을 떡 벌린 채 예천우가 곧 손씨 가문의 주성한에게 혼쭐날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성한이 예천우에게 사과할 줄은 전혀 몰랐다.허가연의 부모들도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허성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설마 주성한이 예천우의 실력을 알아차린 걸까?’손동욱과 강지혜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얼굴이 새파래진 손승우는 주성한을 향해 소리쳤다.“주성한,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하지만 주성한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예천우의 지시를 기다렸다. 예천우는 미소를 띠며 손승우를 가리키며 말했다.“그래도 눈치는 빠른 편이네요. 저 노인네를 심하게 혼내주시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할게요.”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한순간 멍해졌다. 손동욱과 강지혜에게 손을 댄 것도 모자라 이제는 손승우까지 두들겨 패라니 정말로 세상을 뒤집겠다는 소리였다.이제 모두의 시선이 주성한에게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과연 주성한이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주성한은 속으로 몹시 난처했다. 그는 손씨 가문의 재력과 권세가 만만치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손씨 가문의 재력과 인맥이면 나보다도 훨씬 대단한 고수들을 불러서 날 죽일 거겠지.’하지만 눈앞의 예천우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간단한 동작으로 자신을 완전히 제압한 이 상대에게 주성한은 지금 예천우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주성한은 이를 악물고 결심을 내렸다. 결국 손씨 가문 사람들이 먼저 자신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 그들에게 충성을 바칠 이유가 없었다.주성한이 예천우의 지시에 따라 손승우에게 다가가자 그제야 손승우는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예천우가 말한 노인네는 바로 손승우였다.손동욱과 강지혜는 주성한이 예천우의 지시를 따르는 걸 보고 혼란에 빠졌다. 손씨 가문의 권세를 잘 알고 있는 주성한마저 이렇게 나서는 건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손승우는 허둥지둥하며 외쳤다.“
임완유는 예천우 덕분에 완전히 달라진 동생을 보며 감동에 젖어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천우야, 정말 고마워.”만약 예천우의 꾸짖음과 조언이 없었다면 동생이 이렇게 책임감 있고 당당하게 성장하진 못했을 것이다.임선호가 열심히 무술을 연습한 것도 분명 예천우의 영향을 받은 덕분이었다.비록 싸움 도중 몇 번 다치기는 했지만 임선호는 눈빛 하나 흔들림 없이 상대와 끝까지 맞섰고 치열한 싸움 끝에 마침내 그들 모두를 물리쳤다.예천우가 직접 나섰다면 이 정도 상대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는 임선호가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려는 듯 가만히 지켜보았다.그 모습에 임완유뿐만 아니라 허가연의 부모들도 속으로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임선호의 실력이 아직 부족할지라도 그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고 그런 끈기와 단호함이 허가연의 부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허가연의 부모는 속으로 어쩌면 임선호가 정말로 딸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전에 임선호에 대한 정보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이제 손씨 가문의 일만 잘 넘어간다면 더는 임선호와 허가연의 결혼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싸움이 끝나자마자 허가연은 달려가 임선호를 걱정하며 연신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했다.임선호는 아픈 몸을 이끌고도 밝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이 정도 상처쯤이야.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그 말에 허가연은 감동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반면 임선호가 뿌듯해하는 모습에 손씨 가문의 사람들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특히 강지혜와 손동욱은 주성한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제대로 임무를 수행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허씨 가문 사람들이 뿌듯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성한이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주성한 또한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고 분노와 불만이 치밀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결과는 이 모양이고 위로는커녕 비난만 받으니 정말 못마땅했다.오히려 손승우가 황급히 주
주변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전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오히려 손씨 가문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허성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이 더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예천우가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성한이 갑자기 넘어지게 된 것도 어쩌면 예천우가 한 짓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그때 허광호의 전화가 울렸고 사부님이었다. 주성한과 강지혜의 다툼을 뒤로 한 채 그는 서둘러 전화기를 들고 한쪽으로 물러나 전화를 받았다.“사부님!”“그래. 네 아버지가 지금 집에 계셔?”위무권관의 관장인 진은수는 마침 허씨 저택 근처에 있었고 얼마 전에 허성태의 몸 상태를 진단해 주겠다고 한 약속을 떠올리며 들를 겸 전화를 걸었다.“계십니다!”허광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서둘러 물었다.“사부님,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뭐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사부님은 아주 높으신 분이니 사부님 곁에 머물 기회만 주어져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허씨 가문은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에 이 관계를 더 돈독히 하면 앞으로 좋은 점이 많았다.“별일 아니야. 근처에 있어서 그냥 네 아버지 보러 들르려고.”진은수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허광호는 집안에서 난리가 난 걸 언급할지 생각하다가 이내 말을 삼켰다. 사부님의 어마어마한 무공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번에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만약 손씨 가문이 허씨 가문을 공격하려 든다면 사부님이 눈앞에 계시는데 그냥 넘어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부님은 동성 4대 가문들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한 인물이었다.위무권관 관장은 동성에서 명망 높은 사람이었다.진은수는 무공이 절정에 달해 언제든 종사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실력자였고 그의 부하 중에는 뛰어난 강자들도 많았다.그래서 누구든지 진은수의 체면을 챙겨줘야 했다.허광호는 지금
허성태는 이 광경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이 녀석은 정말 끝났어. 살아남기 힘들 거야.’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고 심지어 허가연조차 그런 분위기였다.하지만 임선호와 임완유는 달랐다. 특히 임완유는 예천우의 실력을 여러 번 목격했기에 이 정도로는 그를 위협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게다가 예천우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어 더 안심할 수 있었다.예상대로 예천우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오른손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견과류 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 주성한의 다리에 명중했고 주성한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땅바닥에 쓰러졌다.원래라면 손이라도 짚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손마저 힘이 빠져 바닥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주변 사람들은 이 광경에 멍해졌다.주성한이 대단한 기세로 예천우에게 돌진했는데 결과는 그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예천우는 가볍게 웃으며 비꼬듯 말했다.“이게 무슨 자세인가요? 제가 아무리 무서워도 굳이 이렇게 엎드려 절할 필요는 없잖아요?”“이, 이 자식이...”주성한은 속이 뒤집히는 듯했고 뭔가에 당한 게 분명했다.손승우도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 사부님, 이게 뭐 하는 겁니까! 당장 일어나서 저 녀석을 박살 내세요!”자신이 돈을 들여 고용한 무술 고수가 이렇게 바닥에 나가떨어지는 꼴을 보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주성한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다리와 손의 통증도 마다하고 다시 예천우에게 다가갔다. 이번에 그는 예천우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러다 예천우가 다시 무언가를 던지는 것을 포착했는데 그게 고작 견과류라는 걸 알고는 경악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해도 피할 수 없었다.결국 주성한은 무릎에 다시 견과류를 맞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두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양새가 되었다.주변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아까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는데 이제는 두 무릎을 꿇고 절하는 꼴이 되니 다들 어이없어했다.손승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