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은 놀라 넋을 잃을 것 같았다. 그녀는 바로 달려가 고월영의 손을 잡아당겼다.하지만 고월영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날... 다치지 마, 다치지 마..."그녀는 손을 내빼고, 바구니를 닫았다.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뒤로 두 걸음 물러서, 몸도 흔들리기 시작했다.시안이 그녀의 손을 잡고 보자, 역시나 손등에 두 개의 상처가 나 있었다. 그 상처는 아주 시커멓다.아가씨는 중독됐다!시안은 바로 밖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고월영이 그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가지 마..."하지만 그녀가 생각지 못한 건, 자신이 지금 이리도 허약하다는 것이다.시안을 잡아당기다, 시안에게 끌려 ‘쿵’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다.시안은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아가씨, 무서워 마세요, 왕부에 신의 한 분 계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난원이라고! 제가 지금 바로 현왕 전하께 빌어, 난 선생이 오셔서 해독할 수 있게 할게요.""괜... 찮아, 난... 해독약을 먹었어."고월영은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있었고, 몸 안엔 힘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시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 난... 일부러 그런 거야, 난... 혈청을... 제련할 거야.""아가씨!"시안은 혈청이 무슨 물건인지 모른다. 하지만 아가씨는 지금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보인다."시안아, 믿어... 날, 난... 나만의 계획이 있어, 이일은... 아현에게 알려주어선 안 돼, 현왕 전하도... 알아선 안 돼."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침대로... 부축해 줘."시안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침대에 눕혀 주었다.고월영은 눈을 감았다."시안아, 독사를 거두어라, 난... 또 써야 해, 이 일은...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 반... 드시.""아가씨, 제가 어찌 감히..."그녀는 감히 독사를 다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감히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만약 이렇게 아가씨가... 독해 되면 어쩐단 말인가?"난
"저더러 청대산으로 옮겨 지내라고요 모비?"고월영의 눈은 살짝 떨려왔다.안비는 자세히 그녀의 얼굴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경악스러움은 얼마 느껴지지 않는듯했다.그저 사람의 상태가, 조금 안 좋아 보이고, 목소리도 잠겨있을 뿐.그것을 제외하고는, 이상한 반응이 하나도 없었다.이 계집애, 설마 일찍이 알아차린 걸까?"현우가 너와 함께 갈 것이다, 청대산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니, 너희를 청대산에 한동안 지내게 하면, 현우의 몸도 잘 보살피고, 영아, 네 생각은 어떠냐?"청대산은 항상 황실 사람들의 피서 성지다.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신분이 안되는 사람은 그곳에 갈 자격도 없다.그곳은 확실히 아주 좋다.하지만 고월영은 자신의 계획이 있다.요즘, 그녀는 자신의 몸으로 약을 제련 중이다. 이럴 때일수록 만약 조용한 곳이 있다면, 그것도 좋은 선택이다.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아현에게 좋은 일이라면, 소첩은 다 기꺼이 하겠어요, 좋아요, 모비, 소첩 지금 당장 돌아가 차비를 하고, 내일 아침 바로 전하와 청대산으로 가겠습니다."안비는 그녀가 이리도 시원하게 허락할 줄 생각지 못한듯하다.이렇게 되니, 미리 생각해 놓은 대사들은, 하나도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아무래도 예상 밖이다."너... 정말 응한 것이냐?""전하의 몸에 좋다면, 소첩이 왜 응하지 않겠습니까?"하지만 고월영은 마치 당연한듯해 보였고, 얼굴에는 기대의 표정도 있었다."모비께서 다른 분부가 없으시다면, 소첩은 지금 바로 돌아가 준비하겠습니다."이렇게 되니, 오히려 안비는 반응을 하지 못하겠다.그녀는 조금의 버둥거림도 없다니? 남아있으며 준이와 계속 엮일 생각이 없는 건가?이 죽일 계집애의 마음을, 그녀는 왜 하나도 알아볼 수 없는 걸까?"모비?"고월영은 또다시 한번 불렀다.안비는 넋을 잃다 그제야 말했다."그래... 좋아, 넌... 돌아가 준비하거라."고월영은 일어나 몸을 숙여 인사를 올린 뒤 떠났다.그녀가 멀어질 때까지 안비는 여전히
고월영은 그래도 현왕부의 반 되는 여주인이다.방문이 이리도 무례하게 열린 건, 인상 속, 이게 두 번째다.평소, 하인들도 그녀에게 공손했다."청아 상궁..."시안은 깜짝 놀라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맞이했다."상궁, 이리 늦었는데, 저희 아가씨한테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몇 마디 당부할게 있어서 왔다."청아는 갑자기 그녀를 잡아당기더니, 단번에 문밖으로 뿌리쳤다.이 청아 상궁, 무술을 할 줄 아는 자라니, 힘이 이리도 셀 수가!시안은 순간의 방심으로, 그렇게 그녀에게 버려져 나왔다.문을 나서자마자, 두 명의 시위가 다가와, 각각 오른쪽과 왼쪽에서 그녀를 잡았다."지금 뭐 하는 거야? 놓아줘! 아가... 읍! 읍읍..."고월영은 약 상자를 내려놓으며 멀지 않은 곳까지 걸어온 청아를 바라보았다."상궁, 이게 대체 무슨 뜻이오? 시안이 무슨 잘못을 범했단 말인가?""계집애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저 소인이 왕비께 단둘이 할 얘기가 있는데, 그 계집애가 여기서 방해가 되어서요."청아는 고개를 돌려 힐긋 쳐다봤다."여봐라, 그 계집애 보고 돌아가 휴식하라 하거라, 늦은 저녁이니, 잘 쉬게 하고, 이리저리 마구 다니게 하지 말거라.""예!"두 명의 시위는 명을 받들고, 시안을 잡고 멀어져 갔다.고월영은 알고 있다. 이건 청아가 사람을 시켜 시안이 나오지 못하게 보고 있으라는 뜻인 것을.당연히, 시안이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못 가게 하는 것이다.오늘 사황형이 성을 떠나 없는듯하다. 그는 항상 이렇게 바쁘다.그리고 아현은, 이른 시각에 입궁하여 태후를 만나러 갔고, 지금은 돌아온 건지 모른다.하지만, 현왕 부가 이리도 큰데, 영하각에 일이 생긴다 한들, 여왕에게 알리는 사람이 없다면.아현이 있다 하더라도, 제일 빠른 시간 안에 여기에 일이 생긴 것을 알 수 없다."청 상궁, 무슨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하시지요."그들이 시안을 데려간 후, 고월영은 침착히 물었다."왕비는 역시나 처사에
고월영은 청아 손에 들린 회임탕을 보았다.표정은 여전히 냉정해 보였지만, 사실 옷자락에 숨겨진 손은 이미 움켜쥐고 있다.손바닥엔 온통 식은땀이다.그녀는 오늘 몸으로 독을 제련했다. 지금 몸속엔 아직도 독소가 남아있는데.어둠이 깃들 무렵, 연지를 조금 발라 안색이 덜 창백해 보이게 한 뒤에야, 겨우 몸을 지탱하며 안비를 만나러 갔다.이것은 그녀의 대부분 체력을 허비했다.지금, 그녀는 그저 간단히 정리를 한 뒤, 누워 쉬려했다.더 쉬지 않는다면, 독사의 맹독은 수시로 다시 올라올 것이다!하필이면 이럴 때, 청아와 안비는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이 회임탕이 그녀의 뱃속으로 들어가, 그녀 몸 안의 뱀독과 어떠한 부딪힘이 생길지도 모른다.그녀는 모험을 할 수 없다. 수시로 죽을 수도 있다."왕비?"청아는 눈살을 찌푸리고 또 앞으로 두 걸음 걸어왔다. 그녀는 이미 고월영의 눈앞에 서있다."왕비, 어찌하여 이리 원하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설마, 여왕 전하와 그렇게 애정 어려 보이는 것이 다 거짓인 겁니까?"청아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불쾌한 듯 말했다."자신의 신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당신은 여왕비십니다.""만약 왕비께서 여왕 전하를 제외한 다른 남자를 염두에 두신다면, 안비 마마께서 화를 내실 겁니다.""그때가 되면, 재수 없어지는 건 왕비 한 사람뿐이 아닙니다, 아마도, 전체 장군 부가 화를 입을 것입니다."고월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청아는 다시 보충했다."한 가지, 여왕비께서 아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현왕 전하께서 지금 보시기엔, 확실히 한 손으로 하늘마저 가리실 수 있습니다, 그는 왕부에서 일을 하며, 안비 마마께서 절 안중에 안 두고 있지요.""하지만 왕비께서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안비 마마는 현왕 전하의 친 어머니란 것을? 현왕 전하가 아무리 독한들, 친 어머니한테 손을 쓸 순 없습니다.""그러니, 마마께서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고, 아무런 신경도 안 쓰실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고
고월영은 진짜 회임탕을 마셔버렸다.청아의 눈가에는 의아함이 스쳐지났다.곰곰이 생각하더니, 안색이 평온해졌다.고월영이 건네온 빈 그릇을 받아들고, 청아는 몸을 숙였다."소인 지금 바로 여왕 전하를 오시라 재촉하겠습니다."그리고 그녀는 나갔다.밖에는 여전히 몇 명의 시위가 지키고 있다.시안 쪽도 누군가가 지키고 있어, 나올 수 없었다.아무튼, 지금 구원투수를 찾으러 갈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다.청아가 떠난 후, 고월영은 약 상자를 뒤져 은침을 꺼냈다.하지만 그녀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왜 이 회임탕을 먹고 난 뒤, 궁에서 마신 것과 다른 것이지?그녀는 더위를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몸이 점점 차가워졌다.아니다! 저것은 확실히 회임탕이 아니다!청아가 독을 내렸다!청아가 감히!고월영의 영하각엔 좋은 약이 많지 않다. 그녀는 왕부의 약고에서 약재를 가져 해독 약을 만들어 내야 한다.두 걸음을 떼고 나서야 문밖에 청아의 시위들이 지키는 것이 생각났다.그녀는 자신을 독해하려 한다. 이 점을, 안비는 과연 알고 있을까?고월영은 지금 홀로 의지할 데가 없는 상황이다. 청아도 당연히 현왕을 진짜 모셔오지 않을 것이다.시안도 약을 가져다줄 수 없고.지금, 그녀를 도울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그녀는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뛰어넘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힘이 빠져나갔다.시위도 그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을 뿐, 청아는 아마 확신을 한 듯하다. 중독된 사람이, 다른 곳에서 떠날 힘이 없다는 것을.하지만 청아는 모르고 있다. 고월영은 최근 항상 소량으로 약을 복용해왔고, 맹독에 대해, 조금의 저항력이 생겼다.그녀는 비틀대며 조심스레 높은 벽을 넘어나갔다.달은 밝지만 별은 적었다. 그녀 시선 안의 모든 것이, 점차 흐릿해져갔다.영하각을 떠난 뒤, 고월영은 후원에서 찾기 시작했다.약고가 어디 있지?예전에는 항상 시안이 약을 찾아다 주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한 번도 약고에 간 적 없었다.가다 보니 점점 길이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읍..."고월영은 힘껏 버둥댔다.강현준은 죽일 듯이 그녀를 누르고 있어, 그녀가 버둥댈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다!강렬한 술 냄새가 퍼져왔다. 고월영은 눈을 크게 떴고, 긴 손가락엔 어느새 두 개의 은침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단번에 남자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그가 피하지 않았다니!그는 그저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고 고개를 숙여, 달빛 아래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은침은 심문의 중요한 두 개의 혈자리에 박혔다. 선홍빛 한줄기가, 그의 입가를 따라 흘려떨어졌다.달빛이 쏟아지는 그의 절세 미모에는, 붉은 포악함이 조금 묻어났다."미쳤어요! 놔주세요!"고월영은 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며칠 전 중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이 녀석은 너무 미쳐, 마당의 잔디밭에서 그녀를 덮치려 했다!"도대체 술을 얼마나 드신 겁니까?"온몸에서 나고 있는 술 냄새와 그의 눈가에 짙게 서려있는 자욱한 기운까지. 모든 것이 그가 적잖이 취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중상이 낫지도 않았는데 이리 두 날 동안 술에 취해있다니, 살고 싶지 않은 건가?"놓아줘요!"하지만 강현준은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한 손으로 그녀의 양손을 머리 위로 잡아올려 바닥에 눌렀다.그리고 다른 한 손은, 심문에 박힌 두 개의 은침을 뽑아 아무렇게 던졌다.그는 고개를 숙여 고월영을 바라보며, 미간에는 포악한 기운이 맴돌았다."현우가 네 몸속의 약효를 풀어주길 바라는 건가?""제가 아현을 찾으러 온건 그저...""왜 본 왕을 찾으러 오지 않았지? 본 왕은 자격이 없는 건가?"강현준이 낮게 소리 질렀다.고월영은 화가 치밀어 눈을 붉혔다. 이 녀석, 왜 자신에게 해석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거지?어느 한마디를 완전히 뱉었나?"그래요! 전 회임탕을 마셨고, 그래서 아현 생각이 났어요."고월영은 마음속에 화가 담겨있다."그야말로 나의 명실상부한 부군이니까요!"자신이 모든 것을 계획해 놓고, 이제 와서 자신이 아현을 찾는 것을 책망하다니?미
"전하가 말했습니다, 전하는 제 사황형이라고! 이게 사황형이 자신의 제수를 대할 때 가져야 할 태도인가요?"고월영의 풍자는 날카롭고 차가웠다."사황형, 당신의 이 행위가 미쳤다 생각하지 않나요?""본 왕은 이리 미친 것을 좋아한다, 네가 어쩔 수 있나?""너무 하십니다!"설마, 무력치가 높다 해서, 이리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건가!"그래?"강현준은 얇은 입술로 웃어 보이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에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한입 물었다.그리고 그 뜨거운 입술은, 옆으로 옮겨와 그녀의 입술을 찾고 있었다.고월영은 너무 놀라 고개를 홱 돌려, 그의 습격을 피하려 했다.하지만 강현준의 입술은 그녀의 얼굴을 따라, 계속 아래로 미끌어 내려갔고, 마지막에 그녀의 매끈하고 하얀 목 주위에서 배회했다."네가 잊은 것 같구나, 그때 마차에서 본 왕의 옷을 벗길 때, 본 왕이 무엇을 말했는지?"고월영은 입술을 깨물고 대답을 거절했다.하지만 강현준은 서늘한 표정을 하고 그녀 대신 질문에 답했다."본 왕이 말했지, 본 왕의 몸을 보았으면, 넌 본 왕 것이라고!""넌 본 왕 것이다!"‘찌익’소리와 함께, 고월영이 입고 있던 옷이 그로 인해 찢겨나갔다.남자는 그녀의 몸을 누르며, 이내 미쳐갔다!... 고월영은 도탄에 빠져들어갔다.옷은 잡아당겨 그로 인해 허리에 묶였고, 자신의 손마저 함께 묶여버렸다.그녀는 완전히 헤쳐 나올 수 없었다. 그저 몸을 꿈틀대며, 최선을 다해 그의 뜨거운 입술을 피했다.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자신의 새하얀 체구가 꿈틀대는 것이, 남자의 시선에는 얼마나 유혹적인 존재인지.강현준에게 있어, 이 장면은 마치 독약처럼, 치명적인 유혹이었다!그는 그녀가 달달 떠는 모습에 깊이 빠져들었다!매번 떨 때마다, 그의 몸 전체의 혈액을 빠르게 만들고, 몸속 매 하나의 근육이 조여오게 만들었다.강현준은 움직일 수 없는 그녀를 껴안고, 고개를 숙여 뜨거운 입술을 대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타고 아래로 계속 향했다."안돼..."고월
얼마나 지났을까. 고월영은 점차 깨어났다.뇌리에는, 아까의 미친 짓들이 생각났다.그녀는 마음이 아파져, 바로 눈시울을 붉혔다."놓아주세요!"고월영은 힘껏 입술을 깨물었고, 눈가엔 굴욕의 기색이 가득했다.하지만 그녀는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힘껏 참았다.그는 자신을 향해 포악한 약탈과 굴욕을 했고, 그의 눈에는, 자신은 그저 노리개와 같았다!그는 언제, 그녀에게 조금의 연민이 있었나?가증스러운 것은, 그녀가 그의 조롱에 자신의 조신을 잃어버렸다.그녀는 정말 죽어야 한다!"영아..."강현준의 술기운은 반 이상 깬듯하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하지만 고월영은 고개를 홱 돌려, 그의 손가락을 피했다."다치지 마세요!"그녀의 눈빛은 차갑다 못해 조금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다."본 왕을 원망하냐?"강현준의 심장은, 세게 찢겨나가는 듯했다.온몸의 열정이, 점차 식어갔다."저는 아현의 왕비입니다, 전하, 당신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합니까?""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합니다!"강현준의 마음은 순간 가라앉았다.그녀의 분노가 가득 찬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는 차갑게 웃었다."그래! 아주 좋다! 그럼 지금 이 순간의 원망을 기억하고, 영원히 본 왕에게 있어서는 안될 마음을 품지 말거라!""난..."갑가기, 고월영의 복부에서 격렬한 아픔이 느껴졌다.이것은 너무 확실한 아픔이다!온몸은, 마치 무언가에 의해 찢기는 듯했다. 그녀는 아픔으로 인해 경련을 일으킬 정도다."본 왕 앞에서 수작을 쓰지 마라!"강현준의 표정은 싸늘했다.고월영은 그를 노려보며, 미간을 점점 심히 찌푸렸다.누가 앞에서 수작을 부린다는 거지? 이 파렴치한 녀석!방금의 미친 짓으로, 그녀는 청아가 독을 쓴 것을 잊고 있었다.지금, 광란이 지나고, 독이 발작되었다. 그녀는 기운이 뒤집어져, 이미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월영은 참고 참다, 또 참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갑자기 피를 토해냈다!검은 피!강현준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녀가 피
황족들 사이의 암투는 예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었다.황족과 혼인한 여자는 살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몸에 익혀야 했다.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다른 여자보다 더 많이 총애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황족 남자들이 황위를 위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들의 싸움은 피를 흘리지만 여자들 사이의 암투는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고월영은 반항을 포기하고 몸에 긴장을 풀었다.주변을 돌던 호위 무사들은 둘을 보고 멀리 피해서 도망갔다.남령국에서 여왕비의 명성은 아마 눈앞의 이 남자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였다.“황족으로 사는 삶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그래도 나를 위해서….”“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이런 삶의 방식이 너무 싫어요! 게다가 전하께서도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셨잖습니까.”지금 하는 모든 말은 의미가 없었다.고월영은 원망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전하의 이 현왕부에서 저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전하의 세력 범위 안에서요. 벌써 잊으셨나요?”잊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이 왕부의 상공에 얼마나 거대한 먹구름이 끼었는지 처음으로 확인했다.더 이상 현왕부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지 않을 것 같았다.고월영은 그를 부드럽게 밀치고 갈 길을 가버렸다.그는 홀로 정원에 남아 고독을 달랬다.고월영이 영하각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무아린이었다.“어머니께서는 무안희를 버리셨습니다. 저에게 돌아가서 성녀의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하더군요.”무아린은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그래서 떠나려고요?”고월영은 무아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법이다.“저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갈 곳도 없고요.”어머니가 그녀를 마음먹고 찾으면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었다.며칠 돌아가는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무안희마저 백단교 사람들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는데 무아린은 자신이 없었다.“오라버니랑은 이
말을 마친 강현준은 뒤돌아섰다.“현준아!”안비가 다급히 붙잡으려 달려갔지만 강현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현준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너와 현우가 너무 보고 싶어서….”안타깝게도 그 말은 이미 멀리 가버린 강현준에게 닿지는 않았다.안비는 고개를 돌리고 마지막 희망을 강현우에게 걸었다.그녀는 달려가서 강현우의 손을 잡으려 했다.“현우….”강현우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현우 너마저 이 어미를 버리는 것이냐!”안비가 울며 울부짖었다.강현우는 그 모습을 낯선 눈빛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자식을 아끼던 어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왜 이렇게 된 걸까?약병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결국 그는 쥐고 있던 약병이 그의 손 안에서 깨졌다.“현우야!”안비는 아들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강현우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치고 가버렸다.두 아들이 모두 그녀를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현우야!”여왕마저 떠난 뒤, 그녀는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주저앉아 흐느꼈다.고월영은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등 뒤에서 안비의 외침이 들려왔다.“고월영, 이 악랄한 년! 넌 곱게 죽지 못할 거야!”걸음을 멈춘 고월영은 고개를 돌리고 담담히 말했다.“세상에 들통나지 않을 거짓말은 없어요, 마마. 무슨 일이든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양심도 없는 년! 어찌 나한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안비는 두 아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모든 원인이 고월영에게 있다고 생각했다.세상에 어찌 이렇듯 매정하고 악랄한 여자가 있단 말인가!고월영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안비를 바라보고는 걸음을 옮겼다.뒤에서 안비의 처절한 저주가 들려왔다.“언젠가 넌 나보다 더 비참한 처지가 될 것이야!”“모두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고 모두가 널 혐오할 것이야!”“고월영, 이 죽일
시안이 자결했을 때 방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진심으로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정말 죽으려는 사람은 절대 방해 받지 않을 시간과 환경을 마련하고 행한다. 일부러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고 행한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았다.“내 궁에서 그딴 불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안비의 두 눈에 당황함이 스쳤다.고월영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제 질문이 불편하셨다면 송구합니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품에서 약을 꺼내 강현우에게 건넸다.“현우 오라버니, 이걸 마마께 드리세요. 멍자국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멍자국?”강현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안비는 아무리 봐도 어디 다친 것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고월영이 말했다.“목을 매달았다면 온몸의 중량이 저 천으로 쏠립니다. 그 과정에서 목덜미에 압박흔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이 약을 발라드리면 멍이 사라질 겁니다. 약을 안 바르면 나중에 흉터가 남을 수도 있어요.”모두의 시선이 안비의 목덜미로 향했다.안비는 밤중이라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얗고 긴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다.안비는 당황한 얼굴로 목덜미를 가렸다.“어머니….”강현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갑자기 실망감이 몰려왔다.“나… 난 괜찮다. 사실 바로 발견돼서….”“참. 너는 이 밤중에 마마께서 나쁜 생각을 하실 줄 어떻게 알고 침소로 뛰어들어왔느냐?”고월영은 어린 궁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겁에 질린 어린 궁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안비의 눈치를 보려고 했는데 고월영이 앞으로 나서며 시선을 가렸다.“설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월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네 이년, 무슨 망언을 하는 것이냐!”안비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고월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말해 보거라! 너는 어쩌다가 마마의 침소로 들어오게 된 것이냐!”“너 이….”강현준이 싸늘한 시선이 날아오자 안비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그는 고
강현준은 손에 힘을 풀었다.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어쩌다가 온기를 찾은 심장이 다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월영은 그가 정신을 판 사이에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전하!”밖에서 지언이 다급히 안으로 달려왔다.“전하, 안비마마께서 자결하셨습니다!”그날 밤 현왕부 사람들은 모두 궁으로 몰려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부탁으로 함께 궁으로 갔다.다행히 안비는 자결 시도만 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안비는 고월영을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저년이 내 궁에 어쩐 일이야? 누가 저년을 들여보냈어? 여봐라! 당장 저년을 밖으로 끌고 나가!”궁녀와 태감들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하지만 현장에는 현왕과 여왕도 함께 있었다.강현준이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그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고 구석으로 물러섰다.고월영은 홀로 궁을 나갈 수는 없으니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그녀는 따분한 얼굴로 안비 궁 안의 시설들을 구경했다.방 안에는 안비의 울음소리만 들렸다.두 아들은 멀뚱멀뚱 서서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한참을 울던 안비는 아들들이 반응이 없자 목청을 높였다.결국 마음이 약해진 강현우가 말했다.“어머니, 형님도 너무 화가 나셔서 그런 거지 않습니까. 며칠만 참고 기다리면 금족령은 금방 풀릴 겁니다.”안비는 조심스럽게 강현준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줄곧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그녀는 더 구슬피 울며 말했다.“그래도 이 어미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우리 현우밖에 없구나. 아들이라고 둘밖에 없는데 현준이는….”강현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현왕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성격이었다.안비는 더 큰소리로 통곡했다.이 왕조에는 귀비가 없었다. 황후 다음으로 귀한 위치가 비였다. 현왕이 공훈을 많이 세웠기에 안비도 궁 안에서 모두에게 떠받들리는 존재가 되었다.그런 존재가 통곡하고 있자 안비 궁 궁인들의 눈에도
“대체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고월영은 점점 강현준의 처소랑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그녀는 이 시점에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떠날 건데 더 이상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이따가 알게 될 거야.”강현우는 이번에 작정하고 둘을 화해시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고월영은 그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해서 현왕의 정원으로 들어왔다.강현준은 정원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술 취한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그날 밤 술을 먹고 자신을 침범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밀었다.이 사람이랑 영원히 보지 않고 살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강현우는 그녀를 끌고 정원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간 뒤, 그녀의 등을 밀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고월영은 발을 헛디뎌 그대로 강현준의 품에 무너졌다.‘저런 사람도 부군이라고!’고월영은 속으로 강현우를 욕하며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강현준은 팔을 뻗어 품을 벗어나려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전하!”“네가 먼저 품에 달려들었다. 뭐가 불만이지?”강현준은 홀린 듯한 눈으로 탐스럽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눈빛에서도 다정함이 넘쳤다.정말 오랜만에 보는 다정한 눈빛이었다.고개를 든 고월영은 순간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전하도 아시다시피 제가 원해서 넘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하지만 강현준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전하, 자중하십시오!”“언제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인데?”궁에서 처음 그가 그녀를 껴안았을 때 했던 말이었다.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도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월영아, 우리 화해하면 안 될까?”강현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그의 입가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화해?그게 가능할까?고월영은 한참을 반복적으로 생각했다.화해할까?하지만 이미 잃은 사람과 전에 입었던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결국 그녀는 그의 어깨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전하, 제가
강현우는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나중은 못 보았습니다.”단지 강현준이 뜨겁게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추는 장면을 보았을 뿐이었다.그때는 무슨 생각인지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평생 살면서 남녀 사이의 일을 겪어보지 않은 강현우였기에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형님께서… 저고리 고름을 풀 때 돌아왔습니다. 나중은… 정말 못 보았어요.”강현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기침했다.“끝까지 가지는 않았다.”적어도 그날 밤은 그랬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강현우 앞에만 서면 자꾸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방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형제였지만 이 순간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한참이 지났을 때, 강현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또 할 말이 남았느냐?”강현우는 긴 한숨을 내쉬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형님과 월영이 사이에 서로에게 미련이 남은 것을 압니다. 그날 밤 월영이는 진심으로 형님을 밀쳐내지 않았어요.”강현준은 말없이 붓대만 놀릴 뿐이었다.강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정말 형님께 마음이 없었더라면 제가 아는 월영이는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거절했을 겁니다.”붓대를 잡은 강현준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그가 아는 고월영이라면 죽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은 거부하는 성격이었다.적어도 그날 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역시 쌍둥이라서 그런지 강현우보다 강현준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시안의 죽음이 월영이의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안겨서 아마 잠시는 잊어버릴 수 없을 거예요.”“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나중에 상처가 아물고 옅어지면 형님을 다시 떠올리게 될 거라고 믿어요.”“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했지?”강현준은 붓을 내려놓고 찻잔에 차를 따라 동생에게 건넸다.“말하느라 목도 말랐을 텐데 차나 한잔 하고 가거라.”강현우는 찻잔을 받아 한숨에 삼켜버렸다.형님이
운조와 서령 대군이 연합하여 청성이 함락될 위기라는 전보였다. 청성과 가까운 수성도 민심이 흔들리고 성 안은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황제는 여왕 강현우를 선봉 장군으로 봉하고 내일 즉시 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아침에 가신다고요?”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굳게 닫힌 방 문을 바라보았다.큰 오라버니는 길을 떠나도 문제없지만 심각하게 다친 고월영은 지금 길을 떠나기엔 무리였다.적어도 반 달은 요양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고용기도 장군으로써 수성으로 복귀하는데 언니만 혼자 여기 남게 된 상황이 조금 안타까웠다.“알겠습니다. 저도 전하랑 같이 가겠습니다.”고월영이 말했다.강현우의 두 눈에 희열이 스쳤다.“나는… 네가 여기 남겠다고 할 줄 알고….”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어차피 네 언니도 돌봄이 필요하니까.”“전하, 제가 현왕 전하 곁에 남겠다고 할까 봐 걱정하신 거지요?”고월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이제 오해도 풀렸으니….”“전하, 전장에 나가 보신 적은 있으세요? 현왕 전하 없이 스스로 전장에 나가신 적 있냐고요?”“월영아, 나에게는 네가 필요해.”강현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황제의 지시가 내려진 후 그는 줄곧 긴장한 상태였다.강현우의 가장 큰 약점은 스스로 결단을 내릴 주견이 없다는 점이었다.전에는 형의 말을 들었고 지금은 고월영의 의사에 따랐다. 스스로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일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저와 현왕 전하는 이제 끝난 사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뒤돌아서려던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아직도 저를 전하의 왕비로 생각하신다면 조금만 더 전하의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싫으시다면 앞으로 저를 시종으로 부려도 좋아요.”“난 한 번도 너를 내치려는 생각을 한 적 없다!”그가 두려운 건 그녀가 명의뿐인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었다.“그런데 왜 한동안만 내 곁을 지킨다고 하는 거냐? 평생 내 옆에 있으면 되지 않느냐?”“전하께서도 진짜 혼인을 하
아무도 무안희가 어떻게 속박을 풀었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모두의 시선이 안비에게 쏠린 틈을 타서 그녀는 어느새 밧줄을 풀었다.그리고 손에 칼을 빼들고 고여추의 목에 겨누었다.강현준은 음침한 얼굴로 기를 모았지만 입에서 또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형님!”강현우는 다가가서 그를 부축하고 고월영의 손을 잡아당겼다.고용기는 무안희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지금도 여전히 그녀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힘들었다.연일이 무안희를 쫓아갔다.“오지 마!”무안희는 비수를 고여추의 목에 들이댔다. 하얗고 가는 목에서 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안 돼!”결국 고용기는 밖으로 쫓아 나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손을 놓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무안희, 그만해!”“고월영, 너 때문에 난 모든 것을 잃었어. 내가 이 자리에서 네 언니의 목숨을 취해도 넌 할 말 없잖아?”고여추의 목에서는 점점 많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숨이 끊어질 것이다.“안 돼!”고월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강현우가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무안희, 인질 풀어주면 오늘 무사히 왕부를 떠나게 해주겠다!”“내가 너희를 믿을 것 같아?”무안희는 고여추의 목에 칼을 들이댄 채로 후문을 향해 뒷걸음질쳤다.고여추는 안비에 의해 섭혼술이 중단된 이후로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그녀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무안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아무도 무안희를 막지 못했다.연일은 여러 번 강현준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가 미동이 없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왕부의 하인들도 마찬가지였다.안 그래도 고월영은 강현준을 사무치게 증오하는데 이 왕부에서 언니마저 잃으면 아마 현왕에게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었다.무안희는 그렇게 고여추를 끌고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쫓아!”연일은 그제야 부하들을 호령하여 쫓아 나갔다.고월영과 강현우도 뒤따라갔다. 무안희는 뒷산의 방향으로 도망쳤다.고월영 일행이 도착했을 때, 연일이 고여추를 안고 되돌아오고
강현준의 시선이 안비에게 닿았다.안비는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아들에게서 저런 시선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처음은 심복이 고월영에게 독을 먹였을 때였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겁에 질린 안비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무안희는 강현준을 똑바로 보며 계속해서 말했다.“모두 안비의 짓이었습니다. 난원을 압박해서 고월영의 체내에 독을 주입했어요. 고월영은 그때까지 아이가 무사히 살아 있다고 애원했어요.”무안희는 안비를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하지만 마마는 한 번에 실패하자 난원에게 한 번 더 독을 주입하라고 명령했지요.”“그때 아무도 고월영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독을 두 번이나 주입했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으니까요! 전하, 이게 당신 어머니의 본 모습이에요! 얼마나 감동스러운 아들 사랑인가요!”무안희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를 제외하고 아무도 웃지 않았다.두 번의 독 주입, 그건 고월영의 목숨을 노리고 한 짓이었다.강현우는 어느새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강현준은 온기 하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안비는 그 시선을 마주하고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섰다.“그런 거 아니야. 난원이…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어. 태어나도 정상이 아닐 거라고….”“현준아, 어미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정상이 아닌 아이가 태어나면 현왕부는… 이게 다 너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어!”강현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어머니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아무도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강현준 본인도 포함이었다.머릿속에 자신의 여자가 죽어 가는 장면이 펼쳐졌다.그녀는 이미 복 중에서 숨이 끊어진 아이를 붙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다.이기적인 인간들은 멈추지 않고 헐떡이는 고월영을 붙잡고 재차 독을 주입했다.푸흡!강현준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