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먼저 내려가 있어.”라고 고월영은 답하였다. 시안은 조급해하더니 “아가씨, 제가, 제가 모시고 갈게요!”전에 아가씨가 현왕전하를 노하게 하여 이 시각에 가면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시안은 자기네 아가씨가 현왕전하한테 괴로힘을 당할가봐 두려웠다. 고월영은 “니가 있어도 도움이 안돼, 돌아가!”라고 말했다.“아가씨…”“그만해,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시안은 투덜했지만 아가씨가 자기를 연루시키지 않으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여왕전하가 지금도 안에 있었다. 시안은 물러가기 전에 일부러 큰 소리로 “아가씨가 현왕전하에게 미움을 사서 현왕전하께서 아가씨를 처벌하실 거예요. 아가씨 부디 조심하세요!”라고 말했다.그러고 나서 그녀는 물러갔다.강현준은 어찌할지 몰라 했다. “시안이 방금 암시한 거냐? 나더러 너랑 함께 사황형한테 가서 사죄하라고?”“안 갈래요!” 고월영은 머리를 저었다. 강현우는 조금 의외였다. “왜?”“분명 화가 나있는 거 알면서도 주동적으로 찾아가 현왕전하가 화를 발산시키게 하라고요?"고월영은 그를 한 번 보더니 “제가 정말 그렇게 멍청스럽다고 생각해요?”“하지만 네가 가지 않으면 사황형은 더욱 화날 거 아니냐?” 그 결과가 더 엄중하지 않을까?“그이가 화내는 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그녀는 할 일이 아직도 많았다. 언제 그 사람을 달랠 시간이 있다고…무안희의 피와 강현우 체내의 독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야말로 그녀가 제일 신경 써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강현준에 관해서는 …생각지 말자. 어쨌든 자기에게 좋은 얼굴을 보일 리가 없으니 화내겠으면 화내라고 해야지. “무안희의 피에는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혈청을 추출해 볼 수는 있어요. 먼저 일부분의 독소를 제거해 드릴 수 있거든요. 물론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알았어!” 하고 강현우는 머리를 끄덕였다. 고월영은 오히려 좀 놀라더니 “당신은 저를 달래는 거예요? 아니면
고월영는 다리가 나른해졌다.본능에서 나오는 반응이었다. 강현준의 몸에서 뿜겨나오는 한기를 느끼고 천생적인 공포감이었다. 강현우마저 느꼈는데 그녀는 온몸으로 추위를 탔다.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원래는 계속해야 할지 주저하였는데 그녀가 이렇게 놀라는 모습을 보니 강현우는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강현우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기본상 그녀를 안은 상태로 안비의 앞에까지 걸어갔다. “모비마마”고월영도 따라서 인사를 하였다. “모비를 뵙습니다.”강현우은 그제야 그녀를 안고 강현준의 앞에 걸어가 “사황형”하고 인사했다. 고월영은 고개도 들지 않고 따라서 “사황형을 뵙습니다.”라고 말했다. 강현준은 아무 표정없이 그들 앞으로 지나갔다. 자기의 좌석에 다가가 긴 소매를 휙 털더니 앉았다. 앞에 놓여있는 잔은 어디서 불어온 바람 때문에 바닥에 쓸어떨어졌다.땡그랑하며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전체 연회장에는 갑자기 쥐 죽은듯하였다. 하인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도대체 누가 현왕전하한테 미움을 샀을까? 온몸에서 뿜기는 한기는 시중드는 하인들로 하여금 놀라서 가까이하기를 꺼려 하였다. 고월영은 온몸이 뻣뻣해졌다. 결국에는 용기를 내어 몸을 세웠다. “오늘 밤은 바람이 좀 세게 부네요!”그녀는 땅바닥에 있는 산산조각을 보더니 냉정하게 “여봐라, 빨리 치우도록 하라!”“알겠습니다, 왕비님!”하인들은 이제야 전전긍긍하며 다가가서 바닥의 조각들을 치우고 현왕전하에게 새로 다과와 술을 차려드렸다. 안비는 보고만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안색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이 아들은 이젠 점점 더 통제 불능하였다. 전에는 모비의 체면도 고려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마음에 두지 않는다. 설마 고월영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 강현준이 신경 쓰이는 사람과 일이 없단 말인가? 청아상궁은 가볍게 안비의 옷깃을 당기더니 소리 없이 귀띔하였다. 이런 때일수록 현왕전하와 더 많은 충돌은 피해야 합니다.결국에는 자기의 아들이다. 안비는 한숨을
중점극이 결국에는 다가왔다. 고월영은 안색이 조금 무거웠다. 안비는 실눈을 뜨더니 다시 한번 재촉했다. “영아야, 네가 준비한 좋은 술은?”고월영은 이제야 정신 차리고 일어나더니 작은 목소리로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안비는 그녀의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다.이제야 준비한다고? 무슨 뜻이지?설마 미리 준비한 게 아니었단 말인가? 이 계집애가 감히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다니. 유진은 고월영이 떠나간 뒷모습을 보면서 눈빛이 침침하더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 후 고월영이 돌아왔는데 몸소 술병 하나를 들고 강현준의 앞에 다가왔다. “본왕이 술 마시는 것을 시중들려고?” 강현준은 많이 마셨는지 그녀를 바라보는 눈길은 방자하였고 제멋대로였다. 그는 심지어 손을 내밀었다. 고월영은 깜짝 놀랐지만 티내지 않고 그의 손을 피하여 옆에 서서 그의 잔을 채워줬다. “사황형, 이것은 제가 각별히 전하를 위해 준비한 미주입니다. 사황형께서 좋아하시길 바랍니다.”“너 오늘 밤 본왕에게 줄곧 술을 먹이고 있는거 같은데?” 강현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길은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작은 상처는 아주 옅어 약을 바른 후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눈길은 한순간 더욱 차가워졌다. 고월영은 눈길을 아래로 하더니 눈가의 모든 허탈감을 감추었다. 다시 눈을 들어 그를 보았을 때 눈에는 더 이상 불필요한 정서가 없었다. “오늘 사황형께서 출정하여 난적을 평정하셨다고 듣고 나서 사황형이 평일에는 이렇게 고생하시는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제가 철없었고 사황형을 자주 화내게 하였는데 사황형의 양해를 빕니다.”강현준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월영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있는 건 이런 눈길은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강현준의 앞에 건네더니 “사황
이 술에 투약했다고?모든 사람들의 눈길은 유진에게 머물렀다. 전옥비의 마음은 복잡했다. 안비와 청아상궁은 암암리에 서로 보더니 고월영에 대하여 제대로 간파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계집애, 정말 유진을 찾아갔었구나. 정말로 생각을 제대로 하고 더 이상 현왕이랑 얽히지 않으려는 것인가?그녀는 한 마음 한 뜻으로 강현우를 대하려고?하지만 그녀들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이 가지 않았다. 강현준의 눈길은 유진의 몸을 스쳐지나갔다. 그는 고월영을 보고 있었는데 잠시전에 눈에 나타났던 보기 드문 부드러움은 이제 온 데 간 데 사라졌다. “해석해 보거라!” 목소리는 극도로 차가웠다. “제가 유진 씨를 찾았던 것은 사실이에요. 유진 씨가 사황형께 주동적으로 접근하길 바랐어요."고월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강현준의 눈빛은 어두워졌다. 술잔은 그의 손끝에 쥐어져 있었고 수시로 부셔질것만 같았다. “너는 그렇게 기다리다 못해 성급히 본왕을 다른 여자한테 밀어버리느냐?”“전하…”유진은 마음이 철렁하였다.현왕전하의 말에는 엄청난 내막이 있었다. 설마 그와 여왕비사이에 정말로 사적인 감정이 있는걸가? 고월영은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현준은 유진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이 시각의 모든 생각은 오직 눈앞의 이 여자에게만 있었다. 그녀는 정말 이 술에 투약을 하였을가? 그녀는 정말 그와 다른 여자가 잠자리를 함께 하는것을 배치하려 했을가?이 여자가!“사황형, 이 술은 전하께 사죄하기 위한 것이지 다른 뜻이 없습니다.”고월영은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내밀어 그의 손에서부터 잔을 가져오려고 했다. “믿지 못하겠으면 제가 마시도록 하겠습니다.”“영아!”강현우는 일어서더니 급하게 “넌 술을 못마시잖아! 이 술은 붓어버리면 돼!”강현우도 보아냈듯이 이 술에는 정말로 내막이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이 술이 정말로 투약되었다면 그녀의 내공이 너무 옅은 관계로 마시면 큰 일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고월영의 손끝이 잔에 닿는
“좋아요.” 이번에 고월영은 반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그녀는 먼저 전옥빈의 앞에 걸어가 부드럽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전아가씨, 오늘 밤 생각지 않은 일이 발생하여 제대로 접대해 드리지 못했네요. 부디…”“정말 그의 술에 투약했어요?” 전옥빈이 그녀를 보는 눈길에는 아주 복잡하였다. 방금 전 그녀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다. 현왕전하를 위해 아팠던 것이다. 그녀도 자기가 왜 그를 위해 아팠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픔은 분명했다. “그이가…너에게 그렇게 잘 해주잖아.” 전옥빈도 이것을 봐낼 수 있었다. 현왕전하가 여왕비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총애가 넘쳤다. 화를 내지만 엄청 총애한다.고월영의 얼굴에는 특별한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웃으면서 “저는 전아가씨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네요. 하지만 오늘 밤 우리 현왕부는 조금 혼란스럽군요. 계속해서 전아가씨를 접대해 드릴 수가 없게 되었네요.”“전아가씨, 다음 날에 방문하여 사죄드리겠습니다. 잘 들어가십시오!” 지언은 바로 “여봐라, 손님을 배웅해 드려라!”그러고 나서 고월영을 바라보며 “왕비님, 가시지요!”고월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언의 뒤를 따라 망월각으로 걸어갔다. 강현우는 두 발자국 따라가다가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제자리에 서서 고월영의 점점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바람은 그의 몸에 불더니 마음속은 황량해졌다. 고월영은 안비도 이 곳에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안비는 없었다. 망월각은 조용했었다.강현준은 방안에 있었다. 지언은 그녀를 위해 문을 열었다. “왕비님, 여기입니다.”고월영은 한밤중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도 잘 알다시피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에 그녀는 발을 내디디며 걸어들어갔다. 방문은 그녀의 뒤에 있었는데 지언이 닫아버렸다. 고월영이 머리 들어 보았더니 강현준은 책상
고현준의 말은 고월영의 마음을 조여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자기의 허리를 만졌다. 강현준은 차가운 웃음을 짓더니 “너는 똑같은 수작으로 본왕이 또 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네가 만약 칼을 든다면 너의 칼이 벤 것은 반드시 너의 옷일 것을 장담할게!"고월영은 허리 쪽으로 내려갔던 손을 바로 거두어들였다. “본왕은 그렇게 많은 인내심이 없어, 이리 와!”그의 목소리는 무거워졌다. 고월영은 귀신에 홀린 듯 다급하게 걸어갔다. 정말 귀신이 곡할 일이다. 현왕 전하의 목소리가 무거워질 때 정말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제가 투약하지 않은 것을 알았다면 화내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그런데 왜 여전히 그녀를 여기로 오라고 했을까? 그녀를 귀찮게 하려는 것처럼 보이게 말이다. “본왕은 네가 손을 대는 것과 안대는 것 사이에 여러 번 고민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실 여러 번 기회가 있었지만 그녀의 설계에 일부러 들어간 것이 아닌가?이렇게 생각해 보니 도도하고 냉혹하며 구속받기 싫어하는 현왕전하도 무력한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 계집애가 그의 목숨을 가지려면 쉽게 성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고월영은 입술을 움직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현준은 화가 났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게 대해서는 정말 지독하였다. “본왕은 네가 사정을 봐준 거에 대해 감격해야 하느냐?”라고 차갑게 물었다. 고월영은 그를 바라보며 “당신이 그 술을 마실 때는 제가 투약했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죠?”이 문제에 대해서는 강현준은 아예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고월영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는 정말로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 술을 마셨는데 그녀가 마시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셨을까?그녀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만약 술에 정말로 문제가 있다면 그녀는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짜 마셨는데 아무 주저 없이 마셨던 것이다. “이리와!” 강현준이 다섯번째로 요구한 것 같았다. 다섯번째!
“사황형…”“읽거나 벗거나.”하나를 선택하라고? 그가 횡포하여 선택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라. 고월영은 그를 노려보더니 이것도 선택할 권리를 준다고 할 수 있을가? 아쉽게도 강현준은 여전히 눈을 감고 휴식중인데 그녀는 눈을 아무리 부라려도 그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조성하지 못하였다. 고월영은 냉정을 찾고 계속하여 작은 목소리로 “이 편지는 12부에서 온 정보입니다. 이림산계에서 정왕이 사석에서 병기를 주조하고 있는 증거를 발견하였습니다.” 강현준은 눈을 떴다. 고월영은 입을 다물고 그를 보고 있었다. 눈을 감은 현왕전하가 나른하고 조용하다면 눈을 뜬 그는 포악하고 냉혹하였다. 그의 눈가에는 패기가 스쳐지나갔고 고월영은 마음을 조였다. 남령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무기공장을 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작은 규모는 큰 문제가 안되듯이 민간에도 칼과 창을 삼삼오오 보유한 정황이 있지만 조정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12부의 사람들이 따로 집어내서 얘기한다면 이 일은 절대로 간단하지 않다. 그것도 이림산계안에 있다고 하니 더욱 엄중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험준하고 음폐한 지역에 무기공장이 만들어져있다니 규모가 상당한 주조공장일 것이다.정왕은 반란하려는 걸가? 이런 편지는 그녀가 봐도 되는 걸가? 아는 내용이 많을 수록 더욱 위험해진다. 보았다면 순간적으로 목이 날아갈 일이다. 고월영은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보기만 하고 있었다. 강현준은 갑자기 “회신하라.”고월영은 즉시로 그에게 종이와 붓을 준비해 주었다. 자기가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고월영은 옆으로 피하고 그에게 자리를 내어 편지를 쓰게끔 하였는데 강현준은 그녀를 당겨갔다. “사황형!”고월영은 깜짝 놀랐는데 그와 함께 앉게 되었다. 의자는 충분히 커서 고월영은 강현준의 두 다리 사이에 남겨져 있는 그 빈자리에 앉게 되었다. 비록 조그마한 공간이라고 하지만 아담한 그녀에게는 충분했다. “여기에 앉기 싫어?”강현준은 내리 보더니 자기
“우”하고 고월영은 즉시 몸부림쳤다. 손은 강현준의 몸에 대고 힘껏 밀었는데 시종 끔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횡포한 기운은 그녀를 철저히 봉쇄해버렸다. 턱은 그에게 잡혔는데 그녀의 입술은 아무데도 도망갈 수 없었다. 순식간에 나약한 입술은 투항하고 더 이상 그의 맹렬한 공격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는 한꺼번에 쳐들어왔다. 그녀의 작은 손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밀어내는 힘은 점점 더 약해졌다. 그의 호흡은 무척 무거웠다. 매번 호흡할 때마다 몸에서는 용침향의 향이 뿜어져나왔는데 그녀를 꽉 감싸안았다. 무슨 향인지 말하기 힘들었지만 맡기는 굉장히 좋았다. 고월영의 머리속은 새하얗게 변하였다. 그의 손이 분명 자기 몸에서 마구 움직이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거부할 힘조차 없었다. 그녀의 손은 그의 손목을 누르고 있었는데 그를 밀어내려는 것인지 끌어들이려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모순되는 심정이었다. 몸은 뜨거웠고 마음은 되려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귀요미야, 혀를 내밀어봐, 본왕한테 맛을 보여줘!”남자의 목소리는 미혹의 기운으로 가득했고 잠긴 목소리는 음인하고 무거웠으며 자성으로 넘쳤다. 그의 기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품속의 여자는 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의 유혹하에 떨리는 혀는 더 이상 숨지 않았고 반대로 가볍게 살펴보았다. 그녀가 주동적으로 반기자 강현준의 안색은 갑자기 자욱해지더니 그녀의 얼굴을 들더니 더욱 심하게 입을 맞추었다. “어…”신체는 뻣뻣해졌고 고월영은 온 몸이 나른해졌지만 손을 들어 그의 불덩어리같은 손바닥을 마주하였다. 강현준은 그녀를 더욱더 꽉 껴안았다. 얇은 입술은 그녀의 입술에서 이동하더니 목을 따라 아래로 이동하였다. 그녀는 갑자기 소름이 끼치더니 차가운 기운은 그녀의 혼란스런 의식을 깨워줬다. 가슴은 갑자기 조여왔다. 그녀는 갑자기 놀라 급히 남자의 머리를 자기의 품으로부터 밀쳐냈다. “아” 아퍼!그는 그녀를 물어버렸다. 다행이도 그녀가 힘껏 밀려고
황족들 사이의 암투는 예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었다.황족과 혼인한 여자는 살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몸에 익혀야 했다.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다른 여자보다 더 많이 총애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황족 남자들이 황위를 위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들의 싸움은 피를 흘리지만 여자들 사이의 암투는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고월영은 반항을 포기하고 몸에 긴장을 풀었다.주변을 돌던 호위 무사들은 둘을 보고 멀리 피해서 도망갔다.남령국에서 여왕비의 명성은 아마 눈앞의 이 남자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였다.“황족으로 사는 삶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그래도 나를 위해서….”“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이런 삶의 방식이 너무 싫어요! 게다가 전하께서도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셨잖습니까.”지금 하는 모든 말은 의미가 없었다.고월영은 원망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전하의 이 현왕부에서 저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전하의 세력 범위 안에서요. 벌써 잊으셨나요?”잊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이 왕부의 상공에 얼마나 거대한 먹구름이 끼었는지 처음으로 확인했다.더 이상 현왕부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지 않을 것 같았다.고월영은 그를 부드럽게 밀치고 갈 길을 가버렸다.그는 홀로 정원에 남아 고독을 달랬다.고월영이 영하각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무아린이었다.“어머니께서는 무안희를 버리셨습니다. 저에게 돌아가서 성녀의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하더군요.”무아린은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그래서 떠나려고요?”고월영은 무아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법이다.“저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갈 곳도 없고요.”어머니가 그녀를 마음먹고 찾으면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었다.며칠 돌아가는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무안희마저 백단교 사람들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는데 무아린은 자신이 없었다.“오라버니랑은 이
말을 마친 강현준은 뒤돌아섰다.“현준아!”안비가 다급히 붙잡으려 달려갔지만 강현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현준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너와 현우가 너무 보고 싶어서….”안타깝게도 그 말은 이미 멀리 가버린 강현준에게 닿지는 않았다.안비는 고개를 돌리고 마지막 희망을 강현우에게 걸었다.그녀는 달려가서 강현우의 손을 잡으려 했다.“현우….”강현우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현우 너마저 이 어미를 버리는 것이냐!”안비가 울며 울부짖었다.강현우는 그 모습을 낯선 눈빛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자식을 아끼던 어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왜 이렇게 된 걸까?약병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결국 그는 쥐고 있던 약병이 그의 손 안에서 깨졌다.“현우야!”안비는 아들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강현우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치고 가버렸다.두 아들이 모두 그녀를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현우야!”여왕마저 떠난 뒤, 그녀는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주저앉아 흐느꼈다.고월영은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등 뒤에서 안비의 외침이 들려왔다.“고월영, 이 악랄한 년! 넌 곱게 죽지 못할 거야!”걸음을 멈춘 고월영은 고개를 돌리고 담담히 말했다.“세상에 들통나지 않을 거짓말은 없어요, 마마. 무슨 일이든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양심도 없는 년! 어찌 나한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안비는 두 아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모든 원인이 고월영에게 있다고 생각했다.세상에 어찌 이렇듯 매정하고 악랄한 여자가 있단 말인가!고월영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안비를 바라보고는 걸음을 옮겼다.뒤에서 안비의 처절한 저주가 들려왔다.“언젠가 넌 나보다 더 비참한 처지가 될 것이야!”“모두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고 모두가 널 혐오할 것이야!”“고월영, 이 죽일
시안이 자결했을 때 방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진심으로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정말 죽으려는 사람은 절대 방해 받지 않을 시간과 환경을 마련하고 행한다. 일부러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고 행한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았다.“내 궁에서 그딴 불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안비의 두 눈에 당황함이 스쳤다.고월영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제 질문이 불편하셨다면 송구합니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품에서 약을 꺼내 강현우에게 건넸다.“현우 오라버니, 이걸 마마께 드리세요. 멍자국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멍자국?”강현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안비는 아무리 봐도 어디 다친 것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고월영이 말했다.“목을 매달았다면 온몸의 중량이 저 천으로 쏠립니다. 그 과정에서 목덜미에 압박흔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이 약을 발라드리면 멍이 사라질 겁니다. 약을 안 바르면 나중에 흉터가 남을 수도 있어요.”모두의 시선이 안비의 목덜미로 향했다.안비는 밤중이라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얗고 긴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다.안비는 당황한 얼굴로 목덜미를 가렸다.“어머니….”강현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갑자기 실망감이 몰려왔다.“나… 난 괜찮다. 사실 바로 발견돼서….”“참. 너는 이 밤중에 마마께서 나쁜 생각을 하실 줄 어떻게 알고 침소로 뛰어들어왔느냐?”고월영은 어린 궁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겁에 질린 어린 궁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안비의 눈치를 보려고 했는데 고월영이 앞으로 나서며 시선을 가렸다.“설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월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네 이년, 무슨 망언을 하는 것이냐!”안비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고월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말해 보거라! 너는 어쩌다가 마마의 침소로 들어오게 된 것이냐!”“너 이….”강현준이 싸늘한 시선이 날아오자 안비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그는 고
강현준은 손에 힘을 풀었다.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어쩌다가 온기를 찾은 심장이 다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월영은 그가 정신을 판 사이에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전하!”밖에서 지언이 다급히 안으로 달려왔다.“전하, 안비마마께서 자결하셨습니다!”그날 밤 현왕부 사람들은 모두 궁으로 몰려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부탁으로 함께 궁으로 갔다.다행히 안비는 자결 시도만 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안비는 고월영을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저년이 내 궁에 어쩐 일이야? 누가 저년을 들여보냈어? 여봐라! 당장 저년을 밖으로 끌고 나가!”궁녀와 태감들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하지만 현장에는 현왕과 여왕도 함께 있었다.강현준이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그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고 구석으로 물러섰다.고월영은 홀로 궁을 나갈 수는 없으니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그녀는 따분한 얼굴로 안비 궁 안의 시설들을 구경했다.방 안에는 안비의 울음소리만 들렸다.두 아들은 멀뚱멀뚱 서서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한참을 울던 안비는 아들들이 반응이 없자 목청을 높였다.결국 마음이 약해진 강현우가 말했다.“어머니, 형님도 너무 화가 나셔서 그런 거지 않습니까. 며칠만 참고 기다리면 금족령은 금방 풀릴 겁니다.”안비는 조심스럽게 강현준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줄곧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그녀는 더 구슬피 울며 말했다.“그래도 이 어미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우리 현우밖에 없구나. 아들이라고 둘밖에 없는데 현준이는….”강현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현왕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성격이었다.안비는 더 큰소리로 통곡했다.이 왕조에는 귀비가 없었다. 황후 다음으로 귀한 위치가 비였다. 현왕이 공훈을 많이 세웠기에 안비도 궁 안에서 모두에게 떠받들리는 존재가 되었다.그런 존재가 통곡하고 있자 안비 궁 궁인들의 눈에도
“대체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고월영은 점점 강현준의 처소랑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그녀는 이 시점에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떠날 건데 더 이상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이따가 알게 될 거야.”강현우는 이번에 작정하고 둘을 화해시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고월영은 그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해서 현왕의 정원으로 들어왔다.강현준은 정원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술 취한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그날 밤 술을 먹고 자신을 침범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밀었다.이 사람이랑 영원히 보지 않고 살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강현우는 그녀를 끌고 정원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간 뒤, 그녀의 등을 밀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고월영은 발을 헛디뎌 그대로 강현준의 품에 무너졌다.‘저런 사람도 부군이라고!’고월영은 속으로 강현우를 욕하며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강현준은 팔을 뻗어 품을 벗어나려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전하!”“네가 먼저 품에 달려들었다. 뭐가 불만이지?”강현준은 홀린 듯한 눈으로 탐스럽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눈빛에서도 다정함이 넘쳤다.정말 오랜만에 보는 다정한 눈빛이었다.고개를 든 고월영은 순간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전하도 아시다시피 제가 원해서 넘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하지만 강현준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전하, 자중하십시오!”“언제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인데?”궁에서 처음 그가 그녀를 껴안았을 때 했던 말이었다.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도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월영아, 우리 화해하면 안 될까?”강현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그의 입가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화해?그게 가능할까?고월영은 한참을 반복적으로 생각했다.화해할까?하지만 이미 잃은 사람과 전에 입었던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결국 그녀는 그의 어깨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전하, 제가
강현우는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나중은 못 보았습니다.”단지 강현준이 뜨겁게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추는 장면을 보았을 뿐이었다.그때는 무슨 생각인지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평생 살면서 남녀 사이의 일을 겪어보지 않은 강현우였기에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형님께서… 저고리 고름을 풀 때 돌아왔습니다. 나중은… 정말 못 보았어요.”강현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기침했다.“끝까지 가지는 않았다.”적어도 그날 밤은 그랬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강현우 앞에만 서면 자꾸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방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형제였지만 이 순간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한참이 지났을 때, 강현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또 할 말이 남았느냐?”강현우는 긴 한숨을 내쉬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형님과 월영이 사이에 서로에게 미련이 남은 것을 압니다. 그날 밤 월영이는 진심으로 형님을 밀쳐내지 않았어요.”강현준은 말없이 붓대만 놀릴 뿐이었다.강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정말 형님께 마음이 없었더라면 제가 아는 월영이는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거절했을 겁니다.”붓대를 잡은 강현준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그가 아는 고월영이라면 죽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은 거부하는 성격이었다.적어도 그날 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역시 쌍둥이라서 그런지 강현우보다 강현준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시안의 죽음이 월영이의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안겨서 아마 잠시는 잊어버릴 수 없을 거예요.”“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나중에 상처가 아물고 옅어지면 형님을 다시 떠올리게 될 거라고 믿어요.”“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했지?”강현준은 붓을 내려놓고 찻잔에 차를 따라 동생에게 건넸다.“말하느라 목도 말랐을 텐데 차나 한잔 하고 가거라.”강현우는 찻잔을 받아 한숨에 삼켜버렸다.형님이
운조와 서령 대군이 연합하여 청성이 함락될 위기라는 전보였다. 청성과 가까운 수성도 민심이 흔들리고 성 안은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황제는 여왕 강현우를 선봉 장군으로 봉하고 내일 즉시 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아침에 가신다고요?”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굳게 닫힌 방 문을 바라보았다.큰 오라버니는 길을 떠나도 문제없지만 심각하게 다친 고월영은 지금 길을 떠나기엔 무리였다.적어도 반 달은 요양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고용기도 장군으로써 수성으로 복귀하는데 언니만 혼자 여기 남게 된 상황이 조금 안타까웠다.“알겠습니다. 저도 전하랑 같이 가겠습니다.”고월영이 말했다.강현우의 두 눈에 희열이 스쳤다.“나는… 네가 여기 남겠다고 할 줄 알고….”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어차피 네 언니도 돌봄이 필요하니까.”“전하, 제가 현왕 전하 곁에 남겠다고 할까 봐 걱정하신 거지요?”고월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이제 오해도 풀렸으니….”“전하, 전장에 나가 보신 적은 있으세요? 현왕 전하 없이 스스로 전장에 나가신 적 있냐고요?”“월영아, 나에게는 네가 필요해.”강현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황제의 지시가 내려진 후 그는 줄곧 긴장한 상태였다.강현우의 가장 큰 약점은 스스로 결단을 내릴 주견이 없다는 점이었다.전에는 형의 말을 들었고 지금은 고월영의 의사에 따랐다. 스스로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일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저와 현왕 전하는 이제 끝난 사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뒤돌아서려던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아직도 저를 전하의 왕비로 생각하신다면 조금만 더 전하의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싫으시다면 앞으로 저를 시종으로 부려도 좋아요.”“난 한 번도 너를 내치려는 생각을 한 적 없다!”그가 두려운 건 그녀가 명의뿐인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었다.“그런데 왜 한동안만 내 곁을 지킨다고 하는 거냐? 평생 내 옆에 있으면 되지 않느냐?”“전하께서도 진짜 혼인을 하
아무도 무안희가 어떻게 속박을 풀었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모두의 시선이 안비에게 쏠린 틈을 타서 그녀는 어느새 밧줄을 풀었다.그리고 손에 칼을 빼들고 고여추의 목에 겨누었다.강현준은 음침한 얼굴로 기를 모았지만 입에서 또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형님!”강현우는 다가가서 그를 부축하고 고월영의 손을 잡아당겼다.고용기는 무안희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지금도 여전히 그녀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힘들었다.연일이 무안희를 쫓아갔다.“오지 마!”무안희는 비수를 고여추의 목에 들이댔다. 하얗고 가는 목에서 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안 돼!”결국 고용기는 밖으로 쫓아 나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손을 놓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무안희, 그만해!”“고월영, 너 때문에 난 모든 것을 잃었어. 내가 이 자리에서 네 언니의 목숨을 취해도 넌 할 말 없잖아?”고여추의 목에서는 점점 많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숨이 끊어질 것이다.“안 돼!”고월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강현우가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무안희, 인질 풀어주면 오늘 무사히 왕부를 떠나게 해주겠다!”“내가 너희를 믿을 것 같아?”무안희는 고여추의 목에 칼을 들이댄 채로 후문을 향해 뒷걸음질쳤다.고여추는 안비에 의해 섭혼술이 중단된 이후로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그녀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무안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아무도 무안희를 막지 못했다.연일은 여러 번 강현준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가 미동이 없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왕부의 하인들도 마찬가지였다.안 그래도 고월영은 강현준을 사무치게 증오하는데 이 왕부에서 언니마저 잃으면 아마 현왕에게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었다.무안희는 그렇게 고여추를 끌고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쫓아!”연일은 그제야 부하들을 호령하여 쫓아 나갔다.고월영과 강현우도 뒤따라갔다. 무안희는 뒷산의 방향으로 도망쳤다.고월영 일행이 도착했을 때, 연일이 고여추를 안고 되돌아오고
강현준의 시선이 안비에게 닿았다.안비는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아들에게서 저런 시선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처음은 심복이 고월영에게 독을 먹였을 때였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겁에 질린 안비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무안희는 강현준을 똑바로 보며 계속해서 말했다.“모두 안비의 짓이었습니다. 난원을 압박해서 고월영의 체내에 독을 주입했어요. 고월영은 그때까지 아이가 무사히 살아 있다고 애원했어요.”무안희는 안비를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하지만 마마는 한 번에 실패하자 난원에게 한 번 더 독을 주입하라고 명령했지요.”“그때 아무도 고월영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독을 두 번이나 주입했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으니까요! 전하, 이게 당신 어머니의 본 모습이에요! 얼마나 감동스러운 아들 사랑인가요!”무안희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를 제외하고 아무도 웃지 않았다.두 번의 독 주입, 그건 고월영의 목숨을 노리고 한 짓이었다.강현우는 어느새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강현준은 온기 하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안비는 그 시선을 마주하고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섰다.“그런 거 아니야. 난원이…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어. 태어나도 정상이 아닐 거라고….”“현준아, 어미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정상이 아닌 아이가 태어나면 현왕부는… 이게 다 너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어!”강현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어머니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아무도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강현준 본인도 포함이었다.머릿속에 자신의 여자가 죽어 가는 장면이 펼쳐졌다.그녀는 이미 복 중에서 숨이 끊어진 아이를 붙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다.이기적인 인간들은 멈추지 않고 헐떡이는 고월영을 붙잡고 재차 독을 주입했다.푸흡!강현준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