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들은 마음이 갑작스레 조여오는듯 하였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설마, 영아동생이 현왕전하랑 특별한 관계가 있는가?“이런 말을 어찌 함부로 해?” 또 누군가가 엄한 얼굴로 “영아동생과 여왕전하의 감정이 얼마나 좋은지 안보이냐?”라고 물었다.유언비어가 사람을 해친다고 그 유언비어의 마음을 좀 수렴해야지!여덟째 아가씨 고여추는 급하게 “영아동생은 농담한거야! 너는 동생과 현아전하가 허물없는 관계라는 것을 설명하는 거니?”라고 속삭였다. 고월영은 정말이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고여추는 몰래 고월영을 슬쩍 밀어 더 이상 아무말이나 하지 말라고 귀띔했다.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고 만약에라도 현왕전하를 노하게 하면 고월영의 현왕부에서의 생활은 힘들게 될 것이다. 고월영은 그녀를 보고 웃음을 짓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고여추가 감히 고월영과 이렇게 가까이하고 있는 것을 본 기타 자매들은 문뜩 기분이 안좋았다. 일곱번째 아가씨 고평연은 다가가더니 고여추를 밀치더니 고월영을 쳐다보며 웃으면서 “영아동생, 듣기로는 현왕전하가 요즘 첩을 고른다고 들었는데 이 칠언니도 화상을 올려드렸거든.” 라고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붉어졌으며 여왕전하와 같은 미모를 소유하고 더욱 신비스러운 현왕을 생각하느니 그녀의 심장은 더이상 걷잡을 수 없이 빨리 뛰었다. “영아동생이 왕부로 돌아간 후 현왕전하를 보게 되면 이 언니의 좋은 말 많이 해줘!” “나도, 영아동생, 내 화상도 올려드렸어!”여섯번째 아가씨 고여설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더니 향낭 하나를 두손으로 고월영의 앞에 가져다주었다. “영아동생, 이 향낭을 현왕전하에게 전달해줘! 그리고 나 대신 좋은 말을 해줘!”“나도 향낭을 만들었어!” 고평연도 뒤치지 않으려 하였다.그리하여 고월영이 방으로 돌아갈 때 손에는 두 개의 향낭이 쥐어있었다. 고여추가 그녀를 배웅했는데 가는 길에 고월영이 잘 지내고 있는지, 부군과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만 물었다. 고월영은 반대로 호기심에 “팔언니, 언니는 현왕전하
고월영은 안색이 어두어지더니 “분명 아닌 줄 알면서”강현준의 눈길은 순간 가라앉았다. 고월영은 입술을 깨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강현준은 갑자기 일어서더니 그녀에게 다가갔다. 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도망가려 하였다. 방문은 그녀 뒤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었고 문밖의 마당에는 고여추는 방금 떠났는데 멀리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시각 강현준의 접근은 고월영으로 하여금 온 몸이 추위로 뒤덮이게 하였다. 도망가려 하여도 고여추가 보고 걱정할 까봐 두려웠다. 이러는 사이에 강현준은 그녀의 앞까지 다가왔다. 고월영은 문뒤까지 후퇴하였고 머리를 들었더니 위로부터 밑으로 자기를 내려보고 있는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갑자기 마음이 쓰려왔다. 왜 이 단계까지 왔을까?“본왕을 두려워하느냐?” 비록 이렇게 묻고 있는 자체가 필요 없다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강현준은 물었다. “전하가 저한테 그렇게 과분한 일을 한 후에도 제가 무섭지 말아야 하나요?”“넌 예전부터 본왕을 두려워하지 않았잖아!”고월영은 입술을 깨물면서 “제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강현우예요!”강현준은 손을 들더니 손바닥이 밑으로 향하게 내려왔다. 고월영은 강현준이 자기한테 손대는 줄 알고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손은 문에 지탱하여 고월영을 자기의 팔안으로 가두어넣었다. “넌 꼭 본왕의 화를 돋구어야 하겠느냐?”하고 차가운 눈길로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고월영은 두렵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녀도 알고 있듯이 강현준을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웃더니 “전하는 제 맘속의 현우가 아닌데 당신을 화내게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요?”“고월영!”강현준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치켜올렸다. 고월영은 부득이로 그의 눈길과 눈 마주쳤으며 이때에 불안을 빼고도 달갑지도 않았다. “나는 현우의 상처를 봤어, 그의 몸에는 내가 남긴 칼상처가 있어.”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눈에는 슬픔을 보이더니 “나를 구한 것은 강현우인데 그를 사칭하고 나랑
그날 고월명은 자기의 마음을 잘 정리하고 죽원에 가서 어릴 적부터 자기를 보살피던 설이모를 보러 갔다. 설이모는 고여추의 친어머니였으며 슬하에는 일남일녀를 두었었다. 아들은 강군부의 다섯째 도련님이고 이름은 고일범이고 올해에는 열아홉 살이었으며 아직 미혼 상태였다. 고월영의 친어머니는 그녀가 아주 어릴적에 병으로 돌아가시고 고월영과 그의 오라버니만 남았다. 설이모는 그들 오누이한테 잘 대해주었다. 다섯째 오라버니와 여덟째 언니도 그녀를 친 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다. 심지어 21세기에서 돌아온 고월영도 이 가족과의 관계가 제일로 좋았다. 지금까지 쭉 이래왔다.설이모는 의미심장하게 “결혼하고 나면 아가씨 때와 많이 다르단다."라고 말했다. "더욱이는 황족에 시집갔으니 일언일행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니 꼭 조심해야 한다.”“자제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단다! 실수해서 다른 사람한테 꼬리 잡히지 말고 다른 남자와 과분한 접촉을 금지해야 한다!”“황가의 며느리로 되는게 쉬운 일이 아니야! 영화 부귀는 끝없지만 하지만 전하 옆에서는 군주를 모시는 것은 호랑이 옆에 있는 것과 같다고 절대로 경솔해서는 안 된다.”설이모는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고월영의 손을 잡았다. “너의 성격은 자유로와서 여왕전하와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모도 네가 황족에 시집가는 걸 원치 않아!”고월영은 그냥 웃기만 했다. 누가 아니라던가?진심을 사기당하지 않았더라면 누가 황족에 시집가겠는가? 밖에 있으면 훨씬 더 자유롭지 않겠는가?혹 이 황족에서 그녀도 오래 있지 못할 수도 있다. “이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이와 해를 알고 있으니까 조심해서 말하고 행동할게요!”그 날밤, 고노장군은 연회를 베풀어 이 한 쌍의 신혼부부을 대접하였다.정원에는 불꽃으로 빛났으며 부중의 남자들은 하나씩 다가와 강현준에게 술을 권하였다. 오라버님이 말씀하시기를 황제 폐하께서는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그를 처벌하지 않을뿐더러 청성을 획득한 공로로 장군부에 장려를
강현준도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길은 확실히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전…부군, 너무 많이 마셨어요!” 하고 고 월명은 마지막 잔을 막아나섰다. 그녀는 잔을 빼앗아서 놓고 옆에 앉아있던 고노장군을 바라보며 “전하의 주량은 안 좋아요! 조부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노장군도 당연히 알아챘다. 자기 손자사위의 주량은 썩 좋은 편이 아니란 것을.허나 오늘 밤, 모두 기뻐하고 있지 않는가? 고장군도 “어쩌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는데 …”“저의 부군… 신체가 안좋아요!”라고 고월영은 바로 해석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들은 강현준이 머리를 갑자기 숙으리더니 고월영의 목에 얼굴을 파묻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뜨거운 숨결은 그녀의 사늘한 목부위에서 맴돌았고 고월영은 뜨거워 강현준의 다리에서 뛰어내려갈 뻔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더욱더 꼭 껴안더니 쉰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낭자가 나더러 마시지 말라 하면 나는 안 마시면 그만이지.”라고 말을 했다. 전하가 마시지 않겠다는데 누가 감히 또 술을 권하겠는가?모두들 급히 잔을 내려놓았다. 노장군은 “차를 올려드리거라!”라고 바삐 지시하였다. 하인들은 즉시 찻물을 올렸다. 고월영은 잔을 들고 뒤의 남자를 한번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얼굴을 그녀의 목부위에 파묻어 그녀는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뭇사람들의 주시 속에 이놈의 행동은 너무 제멋대로네!주변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지도 않고 모두 표정이 괴이하였다.여자들은 더욱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으며 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고월영은 쥣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현왕전하의 성질은 원래부터 이러하듯이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아예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고월영은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군, 찻물 좀 마실 가요?”먼저 머리를 저의 목으로부터 들어주실래요?그녀의 목은 뜨끈뜨끈하였으며 달아오른 얼굴은 불덩어리같이 엄청 빨갛게 보일 것이다. “그러지.”하고 강현준은
그는 신체가 엄청 좋았다. 이보다 더 좋을수가 없었다. 아니면 어떻게 매번 그녀를 죽도록 들볶을수가 있겠는가?하지만 그녀는 그와 이 문제를 거론하고 싶지 않았다. “강현준, 비켜줘!”하고 고월영은 힘껏 밀었다. 생각밖으로 종래로 밀쳐내지 못했던 남자가 이 순간 한번에 밀쳐넘어뜨려져서 심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고월영은 눈이 휘둥그래져 황급히 침대에 앉아서는 강현준이 어두운 표정을 하면서 바닥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 이 방자한 년!”강현준은 침대테두리를 집고 일어서더니 거대한 몸집이 휘청하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불안할 수가!술 취하긴 취했구나!이렇게 마시고도 그녀를 안고 방까지 돌아올 수 있다니 참으로 기적이 아닐수 없다. 강현준이 정말로 싫지 않았다면 고월영은 웃음을 참지 못했을것이다. 좀 창피했다. 강현준은 이미 기어 돌아갔으며 그녀의 팔을 잡고 또 한번 그녀를 눌러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자신도 넘어져서 고월영의 몸을 깔고 말았다. 고월영은 갑자기 호흡하기가 힘들어졌다. 이 나쁜 놈 엄청 무겁네!분명 옥처럼 기다란 팔을 보았는데 옷을 벗은 모습은 건장하기 그지없었으며 팔과 가슴에는 모두 근육이 박혀있었다. 소위의 옷을 입으면 약해 보이고 옷을 벗으면 근육질 몸매였다.하느님은 정말로 불공평하네, 이 세상의 제일 좋은 물건은 모두 그에게 주다니…권력과 세력, 재능과 능력 그리고 몸매까지!아니나 다를가 안비는 현왕전하가 첩을 고른다는 소식을 터뜨렸을 때 전체 경성의 절반수 넘어가는 대호인가들의 여자들은 온갖 방법을 생각하여 화상을 올렸던 것이다.“빨리 내려가요! 너무 무거워요!”라고 고월영은 또 힘껏 밀었지만 이번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마살을 찌푸렸으며 호흡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강…현준, 숨막혀 죽을거 같아요!”드디어 강현준은 몸을 뒤집어 그녀의 몸에서 내려갔다. 고월영은 심호흡을 두번 하더니 앉으려고 했더니 갑자기 강현준이 손을 잡았다. “놔줘요!”하고 생각지도 않고 고월영은 힘껏
“현우씨?” 이 시각 침대옆에 서있던 사람은 바로 강현우였다. 더욱 고월영을 의문쩍게 한 부분이 있었다. 어제 밤 고월영은 분명 긴 의자에서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침대위에 있었던거였다. 여기는 강현준이 자고 있었던 자리였다. “사황형은?”하고 그는 불쑥 일어나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방안에는 자신과 강현우뿐이었다. “여긴 우리의 침방인데 왜 사황형을 찾고 있느냐?” 라고 말한 강현우는 웃는 것 같기도 하였고 아무 표정이 없는것 같기도 하였다. 고월영이 듣기에는 강현우의 말에는 전혀 탓하는 의미가 내포하지 않은듯 하였다. “당신 자신은 무슨 일인지 잘 알면서…”라고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현우는 즉시 “어디 아퍼?”라고 관심을 보였다. “그냥 좀 피곤해요!” 요즘엔 아프거나 다쳐서 종일 놀라움과 두려움속에서 살고 있는것처럼 느껴진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그녀는 “그이는?”라고 물었다. “밤에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야밤에 성밖으로 나가 적들을 죽이러 갔어!”고월영은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어제 밤에 엄청 많은 술을 마셨는데…”“당신은 현준형이 걱정스러운가 보지?”“아니예요!”라고 고월영의 낯색은 어두워지더니 바로 “당신의 사황형이니까요.”라고 반박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사황형의 주량은 얼마 안되지만 한 잠 자고 일어나면 바로 멀쩡해지거든.”“ 현왕전하 수하에 많은 첩자들이 있거든. 그들을 먼저 지켜보다가 도망가도 걱정할 필요없어!” 술취한 몸으로 의식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적과 싸우러 간다고?위험하지 않을가? 현왕전하의 성질은 이 정도란 말인가? 그러나 지난 일년동안 그녀의 옆에 있을 때만큼은 강현준은 적어도 명랑하고 온윤한 사람이었다. 물론 절반 이상의 시간은 위장중이었던 것이다. 고월영은 참다 못해 다시 한번 미간을 만졌다. 왠지 자기는 이제 그 남자를 완전히 간파할 수 없는것을 느꼈다. 이럴바엔 생각하지도 말아야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지. 강현우는 웃으
“사실 저도 자세히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그냥 느끼건대 당신이 걸린 독은 일반 독이 아닐거라는 거예요!” 물론 일반 독이었다면 현재까지 이 많은 의사들을 속수무책하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강현우는 존귀한 신분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의료자원의 양이 일반 백성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엄청나다. 하지만 이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 여전히 그를 해독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제가 수많은 독을 연구해보았습니다만 당신 체내의 독은 제가 연구한 범위에 속해있지 않아요!” “니가 왜 독을 연구하느냐?”강현우의 관심사는 그녀와는 전혀 달랐다.고월영은 머리가 휑해지더니 눈에 힘을주면서 “중점만 얘기할가요?”라고 하자 강현우는 웃기만 하였다. 고월영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예전에 상상속에서만 가능했지만 이런 날이 정말 올 줄이야! 가장 평범한 말투로 이렇게 간단한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지라도 강현우가 인생은 희망으로 가득차보였다. 그는 처음으로 이렇게 강렬하게 희망해본다. 자신이 완쾌되어 살아가고 싶었다. 고월영은 그가 왜서 기분좋아졌는지를 알수 없었다. 체내에 독이 이 정도로 퍼졌는데 또 기분 좋아질 일이 있을가?“저는 당신의 해독할 수 있다고 하진 않았어요!”“원래부터 해독이 안돼. 상관없어.”라고 강현우는 여전히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고월영은 눈길이 무거워지더니 “어찌 상관없을 수가 있죠? 해독이 안되면 당신은…”그는 죽을 수밖에 없다. 이 지독한 충독은 이미 그의 오장육부까지 퍼졌다. 강현우는 그녀의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보고 싶지만 그에겐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목소리는 산들바람같이 부드럽게 “생과 사는 모두 명에 달렸어. 살아있을 때 소원을 이룬다면 죽어서도 여한은 없거든.” 고월영은 갑자기 우울함이 느껴졌다. 강현우는 종래로 정말로 나아질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설마 스무세살밖에 안되는 젊은 나이에 아무 희망도 갖지 않는다는 말인가?” “치료하지
고월영은 이 물음에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와 강현준을 싫어한다고? 왜 생각할 수록 이상하지? 강현우는 그녀에게 그 어떤 생각의 여유도 주지 않고 일어서더니 그녀를 보면서 “깨났으면 일어나. 노장군과 인사하고 귀가해야지.”귀가…고월영은 좀 답답함을 느꼈다. 방금 말했듯이 현왕부는 그녀의 집이 아니다. “현우씨…”“이 후의 일들은 나중에 얘기해요! 지금 장군부는 아직도 좀 뒤숭숭해요. 만약 지금 현왕부를 떠나면 장군부의 가족들을 번거롭게 할 것 같아.”강현우는 그녀의 눈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에서 피하는 것 같았다. 고월영도 잘 알다시피 이럴때일수록 장군부에 더 이상 폐를 끼쳐서는 않된다. 오라버니가 사라진 일에 대하여 아직 열기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이 시기에 그 어떤 움직임이든지 황제로 하여금 장군부에 대하여 선입견을 가지게 될 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강현우 그리고 강현준 사이의 일들은 반드시 빠른 시일내에 해결을 봐야 한다. 어떤 방식을 사용해야 황제는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승낙하면서 또한 장군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가 있을가? “내가 짐을 정리해줄께, 뭔 일 있더라도 현왕부에 돌아가서 말하자꾸나.”여기는 필경 남의 집이다. 강현우는 현왕부에서 나오면은 사실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모든것은 그녀를 위한 것이였다. “현우씨,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그의 기다란 뒷모습을 보면서 고월영의 손끝은 오므렸다. 강현우는 머리를 돌리지 않았으며 아마 무슨 질문을 하려는지 맞춘듯 하였다. 고월영은 여전히 그를 지켜보았는데 그 뒷모습의 굳어짐을 선뜻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집착하더니 “왜 그를 당신의 신분과 대신해서 나랑 함께 하였어요? 심지어 동방화촉의 밤에도 …그이였죠? 현우씨,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예요? 당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구요?”라고 물었다. 분명 아주 간단한 일인데 이처럼 복잡하게 만들다니!하지만 그녀도 이제야 느꼈듯
황족들 사이의 암투는 예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었다.황족과 혼인한 여자는 살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몸에 익혀야 했다.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다른 여자보다 더 많이 총애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황족 남자들이 황위를 위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들의 싸움은 피를 흘리지만 여자들 사이의 암투는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고월영은 반항을 포기하고 몸에 긴장을 풀었다.주변을 돌던 호위 무사들은 둘을 보고 멀리 피해서 도망갔다.남령국에서 여왕비의 명성은 아마 눈앞의 이 남자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였다.“황족으로 사는 삶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그래도 나를 위해서….”“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이런 삶의 방식이 너무 싫어요! 게다가 전하께서도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셨잖습니까.”지금 하는 모든 말은 의미가 없었다.고월영은 원망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전하의 이 현왕부에서 저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전하의 세력 범위 안에서요. 벌써 잊으셨나요?”잊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이 왕부의 상공에 얼마나 거대한 먹구름이 끼었는지 처음으로 확인했다.더 이상 현왕부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지 않을 것 같았다.고월영은 그를 부드럽게 밀치고 갈 길을 가버렸다.그는 홀로 정원에 남아 고독을 달랬다.고월영이 영하각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무아린이었다.“어머니께서는 무안희를 버리셨습니다. 저에게 돌아가서 성녀의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하더군요.”무아린은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그래서 떠나려고요?”고월영은 무아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법이다.“저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갈 곳도 없고요.”어머니가 그녀를 마음먹고 찾으면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었다.며칠 돌아가는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무안희마저 백단교 사람들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는데 무아린은 자신이 없었다.“오라버니랑은 이
말을 마친 강현준은 뒤돌아섰다.“현준아!”안비가 다급히 붙잡으려 달려갔지만 강현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현준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너와 현우가 너무 보고 싶어서….”안타깝게도 그 말은 이미 멀리 가버린 강현준에게 닿지는 않았다.안비는 고개를 돌리고 마지막 희망을 강현우에게 걸었다.그녀는 달려가서 강현우의 손을 잡으려 했다.“현우….”강현우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현우 너마저 이 어미를 버리는 것이냐!”안비가 울며 울부짖었다.강현우는 그 모습을 낯선 눈빛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자식을 아끼던 어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왜 이렇게 된 걸까?약병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결국 그는 쥐고 있던 약병이 그의 손 안에서 깨졌다.“현우야!”안비는 아들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강현우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치고 가버렸다.두 아들이 모두 그녀를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현우야!”여왕마저 떠난 뒤, 그녀는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주저앉아 흐느꼈다.고월영은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등 뒤에서 안비의 외침이 들려왔다.“고월영, 이 악랄한 년! 넌 곱게 죽지 못할 거야!”걸음을 멈춘 고월영은 고개를 돌리고 담담히 말했다.“세상에 들통나지 않을 거짓말은 없어요, 마마. 무슨 일이든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양심도 없는 년! 어찌 나한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안비는 두 아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모든 원인이 고월영에게 있다고 생각했다.세상에 어찌 이렇듯 매정하고 악랄한 여자가 있단 말인가!고월영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안비를 바라보고는 걸음을 옮겼다.뒤에서 안비의 처절한 저주가 들려왔다.“언젠가 넌 나보다 더 비참한 처지가 될 것이야!”“모두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고 모두가 널 혐오할 것이야!”“고월영, 이 죽일
시안이 자결했을 때 방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진심으로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정말 죽으려는 사람은 절대 방해 받지 않을 시간과 환경을 마련하고 행한다. 일부러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고 행한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았다.“내 궁에서 그딴 불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안비의 두 눈에 당황함이 스쳤다.고월영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제 질문이 불편하셨다면 송구합니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품에서 약을 꺼내 강현우에게 건넸다.“현우 오라버니, 이걸 마마께 드리세요. 멍자국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멍자국?”강현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안비는 아무리 봐도 어디 다친 것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고월영이 말했다.“목을 매달았다면 온몸의 중량이 저 천으로 쏠립니다. 그 과정에서 목덜미에 압박흔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이 약을 발라드리면 멍이 사라질 겁니다. 약을 안 바르면 나중에 흉터가 남을 수도 있어요.”모두의 시선이 안비의 목덜미로 향했다.안비는 밤중이라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얗고 긴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다.안비는 당황한 얼굴로 목덜미를 가렸다.“어머니….”강현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갑자기 실망감이 몰려왔다.“나… 난 괜찮다. 사실 바로 발견돼서….”“참. 너는 이 밤중에 마마께서 나쁜 생각을 하실 줄 어떻게 알고 침소로 뛰어들어왔느냐?”고월영은 어린 궁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겁에 질린 어린 궁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안비의 눈치를 보려고 했는데 고월영이 앞으로 나서며 시선을 가렸다.“설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월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네 이년, 무슨 망언을 하는 것이냐!”안비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고월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말해 보거라! 너는 어쩌다가 마마의 침소로 들어오게 된 것이냐!”“너 이….”강현준이 싸늘한 시선이 날아오자 안비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그는 고
강현준은 손에 힘을 풀었다.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어쩌다가 온기를 찾은 심장이 다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월영은 그가 정신을 판 사이에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전하!”밖에서 지언이 다급히 안으로 달려왔다.“전하, 안비마마께서 자결하셨습니다!”그날 밤 현왕부 사람들은 모두 궁으로 몰려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부탁으로 함께 궁으로 갔다.다행히 안비는 자결 시도만 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안비는 고월영을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저년이 내 궁에 어쩐 일이야? 누가 저년을 들여보냈어? 여봐라! 당장 저년을 밖으로 끌고 나가!”궁녀와 태감들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하지만 현장에는 현왕과 여왕도 함께 있었다.강현준이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그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고 구석으로 물러섰다.고월영은 홀로 궁을 나갈 수는 없으니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그녀는 따분한 얼굴로 안비 궁 안의 시설들을 구경했다.방 안에는 안비의 울음소리만 들렸다.두 아들은 멀뚱멀뚱 서서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한참을 울던 안비는 아들들이 반응이 없자 목청을 높였다.결국 마음이 약해진 강현우가 말했다.“어머니, 형님도 너무 화가 나셔서 그런 거지 않습니까. 며칠만 참고 기다리면 금족령은 금방 풀릴 겁니다.”안비는 조심스럽게 강현준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줄곧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그녀는 더 구슬피 울며 말했다.“그래도 이 어미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우리 현우밖에 없구나. 아들이라고 둘밖에 없는데 현준이는….”강현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현왕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성격이었다.안비는 더 큰소리로 통곡했다.이 왕조에는 귀비가 없었다. 황후 다음으로 귀한 위치가 비였다. 현왕이 공훈을 많이 세웠기에 안비도 궁 안에서 모두에게 떠받들리는 존재가 되었다.그런 존재가 통곡하고 있자 안비 궁 궁인들의 눈에도
“대체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고월영은 점점 강현준의 처소랑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그녀는 이 시점에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떠날 건데 더 이상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이따가 알게 될 거야.”강현우는 이번에 작정하고 둘을 화해시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고월영은 그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해서 현왕의 정원으로 들어왔다.강현준은 정원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술 취한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그날 밤 술을 먹고 자신을 침범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밀었다.이 사람이랑 영원히 보지 않고 살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강현우는 그녀를 끌고 정원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간 뒤, 그녀의 등을 밀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고월영은 발을 헛디뎌 그대로 강현준의 품에 무너졌다.‘저런 사람도 부군이라고!’고월영은 속으로 강현우를 욕하며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강현준은 팔을 뻗어 품을 벗어나려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전하!”“네가 먼저 품에 달려들었다. 뭐가 불만이지?”강현준은 홀린 듯한 눈으로 탐스럽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눈빛에서도 다정함이 넘쳤다.정말 오랜만에 보는 다정한 눈빛이었다.고개를 든 고월영은 순간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전하도 아시다시피 제가 원해서 넘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하지만 강현준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전하, 자중하십시오!”“언제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인데?”궁에서 처음 그가 그녀를 껴안았을 때 했던 말이었다.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도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월영아, 우리 화해하면 안 될까?”강현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그의 입가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화해?그게 가능할까?고월영은 한참을 반복적으로 생각했다.화해할까?하지만 이미 잃은 사람과 전에 입었던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결국 그녀는 그의 어깨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전하, 제가
강현우는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나중은 못 보았습니다.”단지 강현준이 뜨겁게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추는 장면을 보았을 뿐이었다.그때는 무슨 생각인지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평생 살면서 남녀 사이의 일을 겪어보지 않은 강현우였기에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형님께서… 저고리 고름을 풀 때 돌아왔습니다. 나중은… 정말 못 보았어요.”강현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기침했다.“끝까지 가지는 않았다.”적어도 그날 밤은 그랬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강현우 앞에만 서면 자꾸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방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형제였지만 이 순간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한참이 지났을 때, 강현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또 할 말이 남았느냐?”강현우는 긴 한숨을 내쉬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형님과 월영이 사이에 서로에게 미련이 남은 것을 압니다. 그날 밤 월영이는 진심으로 형님을 밀쳐내지 않았어요.”강현준은 말없이 붓대만 놀릴 뿐이었다.강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정말 형님께 마음이 없었더라면 제가 아는 월영이는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거절했을 겁니다.”붓대를 잡은 강현준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그가 아는 고월영이라면 죽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은 거부하는 성격이었다.적어도 그날 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역시 쌍둥이라서 그런지 강현우보다 강현준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시안의 죽음이 월영이의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안겨서 아마 잠시는 잊어버릴 수 없을 거예요.”“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나중에 상처가 아물고 옅어지면 형님을 다시 떠올리게 될 거라고 믿어요.”“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했지?”강현준은 붓을 내려놓고 찻잔에 차를 따라 동생에게 건넸다.“말하느라 목도 말랐을 텐데 차나 한잔 하고 가거라.”강현우는 찻잔을 받아 한숨에 삼켜버렸다.형님이
운조와 서령 대군이 연합하여 청성이 함락될 위기라는 전보였다. 청성과 가까운 수성도 민심이 흔들리고 성 안은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황제는 여왕 강현우를 선봉 장군으로 봉하고 내일 즉시 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아침에 가신다고요?”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굳게 닫힌 방 문을 바라보았다.큰 오라버니는 길을 떠나도 문제없지만 심각하게 다친 고월영은 지금 길을 떠나기엔 무리였다.적어도 반 달은 요양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고용기도 장군으로써 수성으로 복귀하는데 언니만 혼자 여기 남게 된 상황이 조금 안타까웠다.“알겠습니다. 저도 전하랑 같이 가겠습니다.”고월영이 말했다.강현우의 두 눈에 희열이 스쳤다.“나는… 네가 여기 남겠다고 할 줄 알고….”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어차피 네 언니도 돌봄이 필요하니까.”“전하, 제가 현왕 전하 곁에 남겠다고 할까 봐 걱정하신 거지요?”고월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이제 오해도 풀렸으니….”“전하, 전장에 나가 보신 적은 있으세요? 현왕 전하 없이 스스로 전장에 나가신 적 있냐고요?”“월영아, 나에게는 네가 필요해.”강현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황제의 지시가 내려진 후 그는 줄곧 긴장한 상태였다.강현우의 가장 큰 약점은 스스로 결단을 내릴 주견이 없다는 점이었다.전에는 형의 말을 들었고 지금은 고월영의 의사에 따랐다. 스스로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일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저와 현왕 전하는 이제 끝난 사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뒤돌아서려던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아직도 저를 전하의 왕비로 생각하신다면 조금만 더 전하의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싫으시다면 앞으로 저를 시종으로 부려도 좋아요.”“난 한 번도 너를 내치려는 생각을 한 적 없다!”그가 두려운 건 그녀가 명의뿐인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었다.“그런데 왜 한동안만 내 곁을 지킨다고 하는 거냐? 평생 내 옆에 있으면 되지 않느냐?”“전하께서도 진짜 혼인을 하
아무도 무안희가 어떻게 속박을 풀었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모두의 시선이 안비에게 쏠린 틈을 타서 그녀는 어느새 밧줄을 풀었다.그리고 손에 칼을 빼들고 고여추의 목에 겨누었다.강현준은 음침한 얼굴로 기를 모았지만 입에서 또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형님!”강현우는 다가가서 그를 부축하고 고월영의 손을 잡아당겼다.고용기는 무안희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지금도 여전히 그녀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힘들었다.연일이 무안희를 쫓아갔다.“오지 마!”무안희는 비수를 고여추의 목에 들이댔다. 하얗고 가는 목에서 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안 돼!”결국 고용기는 밖으로 쫓아 나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손을 놓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무안희, 그만해!”“고월영, 너 때문에 난 모든 것을 잃었어. 내가 이 자리에서 네 언니의 목숨을 취해도 넌 할 말 없잖아?”고여추의 목에서는 점점 많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숨이 끊어질 것이다.“안 돼!”고월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강현우가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무안희, 인질 풀어주면 오늘 무사히 왕부를 떠나게 해주겠다!”“내가 너희를 믿을 것 같아?”무안희는 고여추의 목에 칼을 들이댄 채로 후문을 향해 뒷걸음질쳤다.고여추는 안비에 의해 섭혼술이 중단된 이후로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그녀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무안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아무도 무안희를 막지 못했다.연일은 여러 번 강현준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가 미동이 없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왕부의 하인들도 마찬가지였다.안 그래도 고월영은 강현준을 사무치게 증오하는데 이 왕부에서 언니마저 잃으면 아마 현왕에게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었다.무안희는 그렇게 고여추를 끌고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쫓아!”연일은 그제야 부하들을 호령하여 쫓아 나갔다.고월영과 강현우도 뒤따라갔다. 무안희는 뒷산의 방향으로 도망쳤다.고월영 일행이 도착했을 때, 연일이 고여추를 안고 되돌아오고
강현준의 시선이 안비에게 닿았다.안비는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아들에게서 저런 시선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처음은 심복이 고월영에게 독을 먹였을 때였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겁에 질린 안비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무안희는 강현준을 똑바로 보며 계속해서 말했다.“모두 안비의 짓이었습니다. 난원을 압박해서 고월영의 체내에 독을 주입했어요. 고월영은 그때까지 아이가 무사히 살아 있다고 애원했어요.”무안희는 안비를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하지만 마마는 한 번에 실패하자 난원에게 한 번 더 독을 주입하라고 명령했지요.”“그때 아무도 고월영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독을 두 번이나 주입했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으니까요! 전하, 이게 당신 어머니의 본 모습이에요! 얼마나 감동스러운 아들 사랑인가요!”무안희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를 제외하고 아무도 웃지 않았다.두 번의 독 주입, 그건 고월영의 목숨을 노리고 한 짓이었다.강현우는 어느새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강현준은 온기 하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안비는 그 시선을 마주하고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섰다.“그런 거 아니야. 난원이…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어. 태어나도 정상이 아닐 거라고….”“현준아, 어미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정상이 아닌 아이가 태어나면 현왕부는… 이게 다 너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어!”강현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어머니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아무도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강현준 본인도 포함이었다.머릿속에 자신의 여자가 죽어 가는 장면이 펼쳐졌다.그녀는 이미 복 중에서 숨이 끊어진 아이를 붙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다.이기적인 인간들은 멈추지 않고 헐떡이는 고월영을 붙잡고 재차 독을 주입했다.푸흡!강현준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