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색시가 처갓집을 가는 건, 본디 새신랑이 같이 가야 하는 법.신랑의 형님이 같이 간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고월영은 이번엔, 꼭 자신의 마차를 타겠다고 고집했다.지언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마차를 몰고 왔다.하지만 마차가 문을 나서려는 순간, 마차의 가림막이 젓혀 지고, 차가운 그림자 하나가 걸어들어왔다.그는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차가운 눈매를 하고 있었다.고월영을 의아하게 한 건, 그의 눈가에 미인점이 있다는 것!"당신!"고월영은 놀란 나머지, 저도 몰래 마차의 안쪽 끝으로 숨어들었다."본 왕의 눈가엔 미인점이 있지 않았나? 왜 이리도 경황 불안해하는 건가?"강현준은 입가를 올려 차갑게 웃어 보였다."본왕은 현우가 아니던가?""현왕 전하, 자중하십시오!"고월영은 그의 건방진 모습이 원망스러웠다!하지만 또 잘 알고 있다. 그가 하려고 결정한 일을, 자신은 바꿀 힘이 없다는 것을.강현준은 웃음기를 거두고 몸을 숙여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이 마차는 너무 작기 그지없구나!"이 몸을 굽히고 가야 하다니!그가 타고 다니는 마차들은 전부 특수 제작을 거쳐 크고 높다 보니 열 명이 앉아도 문제없다.이 마차는 그에게 말해, 확실히 너무 작다!겨우 몸을 앉힐 수 있는 정도였다."제 마차가 누추하다 생각하시면, 전하께선 왜 본인의 마차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그리고, 부군의 형님이 같이 집으로 가는 건, 너무 쓸데없는 짓 아닌가?아현이 갈 수 없다면, 그녀 혼자 가면 될 것을!"전하...""본 왕은 지금 너의 부군이다, 전하라고 부르는 건, 너무 남 같지 않은가?""아니십니다!"그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 앉았고, 고월영은 깜짝 놀라 떠나려 했다.하지만 그는 쉽게 그녀를 다시 당겨갔고, 밀고 당기는 사이에, 고월영은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게, 어느샌가 그의 품속에 앉아있었다."놓아줘요!""아직도 신혼이건만, 놓아주는 도리가 어딨지?"강현준이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고월영은 있는 힘껏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화를
강현준은 그녀의 충격을 무시한 채 차갑게 말했다."그러니, 본 왕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한들, 그는 화내지 않을 것이다.""만약, 본왕이 회임을 하게 만든다 해도, 너의 부군은 더욱 기뻐할 뿐.""당신..."고월영은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마음속엔 황량함만 감돌았다.허리춤이 다시 조여왔다. 강현준이 그녀를 거세게 둘러안고 있다.고월영은 즉시 반항하려 했다.하지만 강현준의 시리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본 왕이 미치는 모습은, 본 왕마저도 무서울 따름이니, 본 왕을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것이야! 아니면, 본 왕이 마차에서 바로 널 처단할 수도 있어?"일순간, 그녀는 냉정을 되찾았다.작은 손은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휘두를 용기가 없었다.이 야만적이고 거칠고 도리가 통하지 않는 난폭한 늑대! 꼭 언젠간, 그를 발아래에 세게 밟아줄 테다!마차는 길을 천천히 가고 있다.고월영의 난잡한 마음도, 점차 평온을 되찾았다.이 일은, 기필코 아현과 똑바로 얘기를 해보아야 한다.강현준은 그녀를 평생 지켜줄 수 없다. 언젠간 그도, 부인과 아이가 생길 테다!아현은 너무 이상적이다!다행히, 가는 동안, 강현준은 그저 그녀를 안고 있을 뿐, 더 이상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그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마저 고르롭게 변했다.그는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설마, 요즘 너무 바삐 일해 잠자고 휴식할 틈도 없었던 걸까?고월영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힐끗 쳐다봤다. 역시나 그의 눈 밑에 드리운 피곤한 기색이 보였다.왜 이리도 힘들어하는 걸까? 마치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듯해 보였다.그리고 그녀는, 은은히 또 피 냄새를 맡은듯했다.이 녀석, 또 다친 건가?몸 어느 군데에도 성한 곳이 없는 사람이, 또 끊임없이 다치고 있다니.정녕 본인이 신선이라도 돼,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하지만 이내, 고월영의 붕 뜬 마음이 다시 눌러졌다.그는 현왕이다!현왕이 힘들든 말든, 그녀와 무슨
현왕전하?뭇사람들은 모두 멍해있었다. 사람들마다 어안이 벙벙하여 고월영과 함께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고월영의 심장은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했다. 강현준한테 잡힌 그 작은 손은 삽시간에 차가워졌다. 강현준의 눈가에는 습관적인 한기가 사라졌다. 고장군을 다시 보았을 때 입가에는 청량한 웃음을 보이면서 “고장군! 본왕은 현우입니다!”라고 말했다. 뜻밖에도 그는 여왕전하였다.부에 있는 남자들은 절반 이상이 멍하니 있었다. 부에 있는 안식구들은 오히려 그의 입술가에 나타난 매력적인 웃음에 매혹되어 혼을 빼앗기기 직전이었다. 고장군은 이에 반응하여 안색이 순간 이상해졌으며 “여왕전하를 뵙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장군이 인사를 하자 모두들은 이제야 깨달은 듯 “전하를 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였다. 눈앞의 이분은 뜻밖에도 여왕 전하라…부에 있는 일부 남자들은 조정에서 현왕 전하를 뵌 적이 있었다. 오늘 여왕 전하가 현의 차림을 하였더니 현왕 전하랑 전혀 구분이 안 갔다.유일한 구별점이라면 전설 속으로 만 듣던 눈가의 그 미인점인가?모두들은 모두 괴이한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더 말을 하지는 못했다. 고월영은 강현준옆에 서서 부의 뭇사람들이 전하에게 인사하는 것을 기다리고 나서 고 장군에게 “조부님!”라고 부드럽게 불렀다. 그러고 나서 고 조언을 보면서 “아버님!”라고 말했다. 마지막엔 고용기를 보더니 “오라버니!”라고 불렀다.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있지만 지금은 말하기 적합한 시간이 아니라서 먼저 의문을 삼키기로 하였다. 고조연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전하와 노장군이 있어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고용기는 제일로 놀란 사람이었다. 그와 현왕전하는 함께 전투한 적도 있고 눈앞의 이 남자는 어떻게 봐도 현왕전하인데 말이다!하지만 현왕전하와 여왕전하는 말대로 똑 닮았고 자신은 성을 지키느라 여동생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왕전하도 뵌 적이 없었다. 정말로 자신이 잘못 알아보았을 수도 있다.노장군은 사람들을
자매들은 마음이 갑작스레 조여오는듯 하였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설마, 영아동생이 현왕전하랑 특별한 관계가 있는가?“이런 말을 어찌 함부로 해?” 또 누군가가 엄한 얼굴로 “영아동생과 여왕전하의 감정이 얼마나 좋은지 안보이냐?”라고 물었다.유언비어가 사람을 해친다고 그 유언비어의 마음을 좀 수렴해야지!여덟째 아가씨 고여추는 급하게 “영아동생은 농담한거야! 너는 동생과 현아전하가 허물없는 관계라는 것을 설명하는 거니?”라고 속삭였다. 고월영은 정말이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고여추는 몰래 고월영을 슬쩍 밀어 더 이상 아무말이나 하지 말라고 귀띔했다.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고 만약에라도 현왕전하를 노하게 하면 고월영의 현왕부에서의 생활은 힘들게 될 것이다. 고월영은 그녀를 보고 웃음을 짓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고여추가 감히 고월영과 이렇게 가까이하고 있는 것을 본 기타 자매들은 문뜩 기분이 안좋았다. 일곱번째 아가씨 고평연은 다가가더니 고여추를 밀치더니 고월영을 쳐다보며 웃으면서 “영아동생, 듣기로는 현왕전하가 요즘 첩을 고른다고 들었는데 이 칠언니도 화상을 올려드렸거든.” 라고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붉어졌으며 여왕전하와 같은 미모를 소유하고 더욱 신비스러운 현왕을 생각하느니 그녀의 심장은 더이상 걷잡을 수 없이 빨리 뛰었다. “영아동생이 왕부로 돌아간 후 현왕전하를 보게 되면 이 언니의 좋은 말 많이 해줘!” “나도, 영아동생, 내 화상도 올려드렸어!”여섯번째 아가씨 고여설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더니 향낭 하나를 두손으로 고월영의 앞에 가져다주었다. “영아동생, 이 향낭을 현왕전하에게 전달해줘! 그리고 나 대신 좋은 말을 해줘!”“나도 향낭을 만들었어!” 고평연도 뒤치지 않으려 하였다.그리하여 고월영이 방으로 돌아갈 때 손에는 두 개의 향낭이 쥐어있었다. 고여추가 그녀를 배웅했는데 가는 길에 고월영이 잘 지내고 있는지, 부군과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만 물었다. 고월영은 반대로 호기심에 “팔언니, 언니는 현왕전하
고월영은 안색이 어두어지더니 “분명 아닌 줄 알면서”강현준의 눈길은 순간 가라앉았다. 고월영은 입술을 깨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강현준은 갑자기 일어서더니 그녀에게 다가갔다. 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도망가려 하였다. 방문은 그녀 뒤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었고 문밖의 마당에는 고여추는 방금 떠났는데 멀리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시각 강현준의 접근은 고월영으로 하여금 온 몸이 추위로 뒤덮이게 하였다. 도망가려 하여도 고여추가 보고 걱정할 까봐 두려웠다. 이러는 사이에 강현준은 그녀의 앞까지 다가왔다. 고월영은 문뒤까지 후퇴하였고 머리를 들었더니 위로부터 밑으로 자기를 내려보고 있는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갑자기 마음이 쓰려왔다. 왜 이 단계까지 왔을까?“본왕을 두려워하느냐?” 비록 이렇게 묻고 있는 자체가 필요 없다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강현준은 물었다. “전하가 저한테 그렇게 과분한 일을 한 후에도 제가 무섭지 말아야 하나요?”“넌 예전부터 본왕을 두려워하지 않았잖아!”고월영은 입술을 깨물면서 “제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강현우예요!”강현준은 손을 들더니 손바닥이 밑으로 향하게 내려왔다. 고월영은 강현준이 자기한테 손대는 줄 알고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손은 문에 지탱하여 고월영을 자기의 팔안으로 가두어넣었다. “넌 꼭 본왕의 화를 돋구어야 하겠느냐?”하고 차가운 눈길로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고월영은 두렵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녀도 알고 있듯이 강현준을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웃더니 “전하는 제 맘속의 현우가 아닌데 당신을 화내게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요?”“고월영!”강현준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치켜올렸다. 고월영은 부득이로 그의 눈길과 눈 마주쳤으며 이때에 불안을 빼고도 달갑지도 않았다. “나는 현우의 상처를 봤어, 그의 몸에는 내가 남긴 칼상처가 있어.”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눈에는 슬픔을 보이더니 “나를 구한 것은 강현우인데 그를 사칭하고 나랑
그날 고월명은 자기의 마음을 잘 정리하고 죽원에 가서 어릴 적부터 자기를 보살피던 설이모를 보러 갔다. 설이모는 고여추의 친어머니였으며 슬하에는 일남일녀를 두었었다. 아들은 강군부의 다섯째 도련님이고 이름은 고일범이고 올해에는 열아홉 살이었으며 아직 미혼 상태였다. 고월영의 친어머니는 그녀가 아주 어릴적에 병으로 돌아가시고 고월영과 그의 오라버니만 남았다. 설이모는 그들 오누이한테 잘 대해주었다. 다섯째 오라버니와 여덟째 언니도 그녀를 친 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다. 심지어 21세기에서 돌아온 고월영도 이 가족과의 관계가 제일로 좋았다. 지금까지 쭉 이래왔다.설이모는 의미심장하게 “결혼하고 나면 아가씨 때와 많이 다르단다."라고 말했다. "더욱이는 황족에 시집갔으니 일언일행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니 꼭 조심해야 한다.”“자제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단다! 실수해서 다른 사람한테 꼬리 잡히지 말고 다른 남자와 과분한 접촉을 금지해야 한다!”“황가의 며느리로 되는게 쉬운 일이 아니야! 영화 부귀는 끝없지만 하지만 전하 옆에서는 군주를 모시는 것은 호랑이 옆에 있는 것과 같다고 절대로 경솔해서는 안 된다.”설이모는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고월영의 손을 잡았다. “너의 성격은 자유로와서 여왕전하와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모도 네가 황족에 시집가는 걸 원치 않아!”고월영은 그냥 웃기만 했다. 누가 아니라던가?진심을 사기당하지 않았더라면 누가 황족에 시집가겠는가? 밖에 있으면 훨씬 더 자유롭지 않겠는가?혹 이 황족에서 그녀도 오래 있지 못할 수도 있다. “이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이와 해를 알고 있으니까 조심해서 말하고 행동할게요!”그 날밤, 고노장군은 연회를 베풀어 이 한 쌍의 신혼부부을 대접하였다.정원에는 불꽃으로 빛났으며 부중의 남자들은 하나씩 다가와 강현준에게 술을 권하였다. 오라버님이 말씀하시기를 황제 폐하께서는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그를 처벌하지 않을뿐더러 청성을 획득한 공로로 장군부에 장려를
강현준도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길은 확실히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전…부군, 너무 많이 마셨어요!” 하고 고 월명은 마지막 잔을 막아나섰다. 그녀는 잔을 빼앗아서 놓고 옆에 앉아있던 고노장군을 바라보며 “전하의 주량은 안 좋아요! 조부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노장군도 당연히 알아챘다. 자기 손자사위의 주량은 썩 좋은 편이 아니란 것을.허나 오늘 밤, 모두 기뻐하고 있지 않는가? 고장군도 “어쩌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는데 …”“저의 부군… 신체가 안좋아요!”라고 고월영은 바로 해석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들은 강현준이 머리를 갑자기 숙으리더니 고월영의 목에 얼굴을 파묻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뜨거운 숨결은 그녀의 사늘한 목부위에서 맴돌았고 고월영은 뜨거워 강현준의 다리에서 뛰어내려갈 뻔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더욱더 꼭 껴안더니 쉰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낭자가 나더러 마시지 말라 하면 나는 안 마시면 그만이지.”라고 말을 했다. 전하가 마시지 않겠다는데 누가 감히 또 술을 권하겠는가?모두들 급히 잔을 내려놓았다. 노장군은 “차를 올려드리거라!”라고 바삐 지시하였다. 하인들은 즉시 찻물을 올렸다. 고월영은 잔을 들고 뒤의 남자를 한번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얼굴을 그녀의 목부위에 파묻어 그녀는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뭇사람들의 주시 속에 이놈의 행동은 너무 제멋대로네!주변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지도 않고 모두 표정이 괴이하였다.여자들은 더욱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으며 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고월영은 쥣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현왕전하의 성질은 원래부터 이러하듯이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아예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고월영은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군, 찻물 좀 마실 가요?”먼저 머리를 저의 목으로부터 들어주실래요?그녀의 목은 뜨끈뜨끈하였으며 달아오른 얼굴은 불덩어리같이 엄청 빨갛게 보일 것이다. “그러지.”하고 강현준은
그는 신체가 엄청 좋았다. 이보다 더 좋을수가 없었다. 아니면 어떻게 매번 그녀를 죽도록 들볶을수가 있겠는가?하지만 그녀는 그와 이 문제를 거론하고 싶지 않았다. “강현준, 비켜줘!”하고 고월영은 힘껏 밀었다. 생각밖으로 종래로 밀쳐내지 못했던 남자가 이 순간 한번에 밀쳐넘어뜨려져서 심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고월영은 눈이 휘둥그래져 황급히 침대에 앉아서는 강현준이 어두운 표정을 하면서 바닥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 이 방자한 년!”강현준은 침대테두리를 집고 일어서더니 거대한 몸집이 휘청하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불안할 수가!술 취하긴 취했구나!이렇게 마시고도 그녀를 안고 방까지 돌아올 수 있다니 참으로 기적이 아닐수 없다. 강현준이 정말로 싫지 않았다면 고월영은 웃음을 참지 못했을것이다. 좀 창피했다. 강현준은 이미 기어 돌아갔으며 그녀의 팔을 잡고 또 한번 그녀를 눌러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자신도 넘어져서 고월영의 몸을 깔고 말았다. 고월영은 갑자기 호흡하기가 힘들어졌다. 이 나쁜 놈 엄청 무겁네!분명 옥처럼 기다란 팔을 보았는데 옷을 벗은 모습은 건장하기 그지없었으며 팔과 가슴에는 모두 근육이 박혀있었다. 소위의 옷을 입으면 약해 보이고 옷을 벗으면 근육질 몸매였다.하느님은 정말로 불공평하네, 이 세상의 제일 좋은 물건은 모두 그에게 주다니…권력과 세력, 재능과 능력 그리고 몸매까지!아니나 다를가 안비는 현왕전하가 첩을 고른다는 소식을 터뜨렸을 때 전체 경성의 절반수 넘어가는 대호인가들의 여자들은 온갖 방법을 생각하여 화상을 올렸던 것이다.“빨리 내려가요! 너무 무거워요!”라고 고월영은 또 힘껏 밀었지만 이번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마살을 찌푸렸으며 호흡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강…현준, 숨막혀 죽을거 같아요!”드디어 강현준은 몸을 뒤집어 그녀의 몸에서 내려갔다. 고월영은 심호흡을 두번 하더니 앉으려고 했더니 갑자기 강현준이 손을 잡았다. “놔줘요!”하고 생각지도 않고 고월영은 힘껏
황족들 사이의 암투는 예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었다.황족과 혼인한 여자는 살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몸에 익혀야 했다.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다른 여자보다 더 많이 총애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황족 남자들이 황위를 위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들의 싸움은 피를 흘리지만 여자들 사이의 암투는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고월영은 반항을 포기하고 몸에 긴장을 풀었다.주변을 돌던 호위 무사들은 둘을 보고 멀리 피해서 도망갔다.남령국에서 여왕비의 명성은 아마 눈앞의 이 남자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였다.“황족으로 사는 삶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그래도 나를 위해서….”“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이런 삶의 방식이 너무 싫어요! 게다가 전하께서도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셨잖습니까.”지금 하는 모든 말은 의미가 없었다.고월영은 원망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전하의 이 현왕부에서 저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전하의 세력 범위 안에서요. 벌써 잊으셨나요?”잊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이 왕부의 상공에 얼마나 거대한 먹구름이 끼었는지 처음으로 확인했다.더 이상 현왕부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지 않을 것 같았다.고월영은 그를 부드럽게 밀치고 갈 길을 가버렸다.그는 홀로 정원에 남아 고독을 달랬다.고월영이 영하각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무아린이었다.“어머니께서는 무안희를 버리셨습니다. 저에게 돌아가서 성녀의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하더군요.”무아린은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그래서 떠나려고요?”고월영은 무아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법이다.“저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갈 곳도 없고요.”어머니가 그녀를 마음먹고 찾으면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었다.며칠 돌아가는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무안희마저 백단교 사람들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는데 무아린은 자신이 없었다.“오라버니랑은 이
말을 마친 강현준은 뒤돌아섰다.“현준아!”안비가 다급히 붙잡으려 달려갔지만 강현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현준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너와 현우가 너무 보고 싶어서….”안타깝게도 그 말은 이미 멀리 가버린 강현준에게 닿지는 않았다.안비는 고개를 돌리고 마지막 희망을 강현우에게 걸었다.그녀는 달려가서 강현우의 손을 잡으려 했다.“현우….”강현우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현우 너마저 이 어미를 버리는 것이냐!”안비가 울며 울부짖었다.강현우는 그 모습을 낯선 눈빛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자식을 아끼던 어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왜 이렇게 된 걸까?약병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결국 그는 쥐고 있던 약병이 그의 손 안에서 깨졌다.“현우야!”안비는 아들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강현우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치고 가버렸다.두 아들이 모두 그녀를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현우야!”여왕마저 떠난 뒤, 그녀는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주저앉아 흐느꼈다.고월영은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등 뒤에서 안비의 외침이 들려왔다.“고월영, 이 악랄한 년! 넌 곱게 죽지 못할 거야!”걸음을 멈춘 고월영은 고개를 돌리고 담담히 말했다.“세상에 들통나지 않을 거짓말은 없어요, 마마. 무슨 일이든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양심도 없는 년! 어찌 나한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안비는 두 아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모든 원인이 고월영에게 있다고 생각했다.세상에 어찌 이렇듯 매정하고 악랄한 여자가 있단 말인가!고월영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안비를 바라보고는 걸음을 옮겼다.뒤에서 안비의 처절한 저주가 들려왔다.“언젠가 넌 나보다 더 비참한 처지가 될 것이야!”“모두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고 모두가 널 혐오할 것이야!”“고월영, 이 죽일
시안이 자결했을 때 방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진심으로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정말 죽으려는 사람은 절대 방해 받지 않을 시간과 환경을 마련하고 행한다. 일부러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고 행한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았다.“내 궁에서 그딴 불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안비의 두 눈에 당황함이 스쳤다.고월영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제 질문이 불편하셨다면 송구합니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품에서 약을 꺼내 강현우에게 건넸다.“현우 오라버니, 이걸 마마께 드리세요. 멍자국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멍자국?”강현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안비는 아무리 봐도 어디 다친 것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고월영이 말했다.“목을 매달았다면 온몸의 중량이 저 천으로 쏠립니다. 그 과정에서 목덜미에 압박흔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이 약을 발라드리면 멍이 사라질 겁니다. 약을 안 바르면 나중에 흉터가 남을 수도 있어요.”모두의 시선이 안비의 목덜미로 향했다.안비는 밤중이라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얗고 긴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다.안비는 당황한 얼굴로 목덜미를 가렸다.“어머니….”강현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갑자기 실망감이 몰려왔다.“나… 난 괜찮다. 사실 바로 발견돼서….”“참. 너는 이 밤중에 마마께서 나쁜 생각을 하실 줄 어떻게 알고 침소로 뛰어들어왔느냐?”고월영은 어린 궁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겁에 질린 어린 궁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안비의 눈치를 보려고 했는데 고월영이 앞으로 나서며 시선을 가렸다.“설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월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네 이년, 무슨 망언을 하는 것이냐!”안비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고월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말해 보거라! 너는 어쩌다가 마마의 침소로 들어오게 된 것이냐!”“너 이….”강현준이 싸늘한 시선이 날아오자 안비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그는 고
강현준은 손에 힘을 풀었다.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어쩌다가 온기를 찾은 심장이 다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월영은 그가 정신을 판 사이에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전하!”밖에서 지언이 다급히 안으로 달려왔다.“전하, 안비마마께서 자결하셨습니다!”그날 밤 현왕부 사람들은 모두 궁으로 몰려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부탁으로 함께 궁으로 갔다.다행히 안비는 자결 시도만 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안비는 고월영을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저년이 내 궁에 어쩐 일이야? 누가 저년을 들여보냈어? 여봐라! 당장 저년을 밖으로 끌고 나가!”궁녀와 태감들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하지만 현장에는 현왕과 여왕도 함께 있었다.강현준이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그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고 구석으로 물러섰다.고월영은 홀로 궁을 나갈 수는 없으니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그녀는 따분한 얼굴로 안비 궁 안의 시설들을 구경했다.방 안에는 안비의 울음소리만 들렸다.두 아들은 멀뚱멀뚱 서서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한참을 울던 안비는 아들들이 반응이 없자 목청을 높였다.결국 마음이 약해진 강현우가 말했다.“어머니, 형님도 너무 화가 나셔서 그런 거지 않습니까. 며칠만 참고 기다리면 금족령은 금방 풀릴 겁니다.”안비는 조심스럽게 강현준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줄곧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그녀는 더 구슬피 울며 말했다.“그래도 이 어미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우리 현우밖에 없구나. 아들이라고 둘밖에 없는데 현준이는….”강현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현왕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성격이었다.안비는 더 큰소리로 통곡했다.이 왕조에는 귀비가 없었다. 황후 다음으로 귀한 위치가 비였다. 현왕이 공훈을 많이 세웠기에 안비도 궁 안에서 모두에게 떠받들리는 존재가 되었다.그런 존재가 통곡하고 있자 안비 궁 궁인들의 눈에도
“대체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고월영은 점점 강현준의 처소랑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그녀는 이 시점에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떠날 건데 더 이상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이따가 알게 될 거야.”강현우는 이번에 작정하고 둘을 화해시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고월영은 그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해서 현왕의 정원으로 들어왔다.강현준은 정원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술 취한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그날 밤 술을 먹고 자신을 침범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밀었다.이 사람이랑 영원히 보지 않고 살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강현우는 그녀를 끌고 정원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간 뒤, 그녀의 등을 밀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고월영은 발을 헛디뎌 그대로 강현준의 품에 무너졌다.‘저런 사람도 부군이라고!’고월영은 속으로 강현우를 욕하며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강현준은 팔을 뻗어 품을 벗어나려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전하!”“네가 먼저 품에 달려들었다. 뭐가 불만이지?”강현준은 홀린 듯한 눈으로 탐스럽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눈빛에서도 다정함이 넘쳤다.정말 오랜만에 보는 다정한 눈빛이었다.고개를 든 고월영은 순간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전하도 아시다시피 제가 원해서 넘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하지만 강현준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전하, 자중하십시오!”“언제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인데?”궁에서 처음 그가 그녀를 껴안았을 때 했던 말이었다.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도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월영아, 우리 화해하면 안 될까?”강현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그의 입가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화해?그게 가능할까?고월영은 한참을 반복적으로 생각했다.화해할까?하지만 이미 잃은 사람과 전에 입었던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결국 그녀는 그의 어깨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전하, 제가
강현우는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나중은 못 보았습니다.”단지 강현준이 뜨겁게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추는 장면을 보았을 뿐이었다.그때는 무슨 생각인지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평생 살면서 남녀 사이의 일을 겪어보지 않은 강현우였기에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형님께서… 저고리 고름을 풀 때 돌아왔습니다. 나중은… 정말 못 보았어요.”강현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기침했다.“끝까지 가지는 않았다.”적어도 그날 밤은 그랬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강현우 앞에만 서면 자꾸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방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형제였지만 이 순간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한참이 지났을 때, 강현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또 할 말이 남았느냐?”강현우는 긴 한숨을 내쉬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형님과 월영이 사이에 서로에게 미련이 남은 것을 압니다. 그날 밤 월영이는 진심으로 형님을 밀쳐내지 않았어요.”강현준은 말없이 붓대만 놀릴 뿐이었다.강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정말 형님께 마음이 없었더라면 제가 아는 월영이는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거절했을 겁니다.”붓대를 잡은 강현준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그가 아는 고월영이라면 죽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은 거부하는 성격이었다.적어도 그날 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역시 쌍둥이라서 그런지 강현우보다 강현준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시안의 죽음이 월영이의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안겨서 아마 잠시는 잊어버릴 수 없을 거예요.”“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나중에 상처가 아물고 옅어지면 형님을 다시 떠올리게 될 거라고 믿어요.”“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했지?”강현준은 붓을 내려놓고 찻잔에 차를 따라 동생에게 건넸다.“말하느라 목도 말랐을 텐데 차나 한잔 하고 가거라.”강현우는 찻잔을 받아 한숨에 삼켜버렸다.형님이
운조와 서령 대군이 연합하여 청성이 함락될 위기라는 전보였다. 청성과 가까운 수성도 민심이 흔들리고 성 안은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황제는 여왕 강현우를 선봉 장군으로 봉하고 내일 즉시 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아침에 가신다고요?”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굳게 닫힌 방 문을 바라보았다.큰 오라버니는 길을 떠나도 문제없지만 심각하게 다친 고월영은 지금 길을 떠나기엔 무리였다.적어도 반 달은 요양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고용기도 장군으로써 수성으로 복귀하는데 언니만 혼자 여기 남게 된 상황이 조금 안타까웠다.“알겠습니다. 저도 전하랑 같이 가겠습니다.”고월영이 말했다.강현우의 두 눈에 희열이 스쳤다.“나는… 네가 여기 남겠다고 할 줄 알고….”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어차피 네 언니도 돌봄이 필요하니까.”“전하, 제가 현왕 전하 곁에 남겠다고 할까 봐 걱정하신 거지요?”고월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이제 오해도 풀렸으니….”“전하, 전장에 나가 보신 적은 있으세요? 현왕 전하 없이 스스로 전장에 나가신 적 있냐고요?”“월영아, 나에게는 네가 필요해.”강현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황제의 지시가 내려진 후 그는 줄곧 긴장한 상태였다.강현우의 가장 큰 약점은 스스로 결단을 내릴 주견이 없다는 점이었다.전에는 형의 말을 들었고 지금은 고월영의 의사에 따랐다. 스스로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일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저와 현왕 전하는 이제 끝난 사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뒤돌아서려던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아직도 저를 전하의 왕비로 생각하신다면 조금만 더 전하의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싫으시다면 앞으로 저를 시종으로 부려도 좋아요.”“난 한 번도 너를 내치려는 생각을 한 적 없다!”그가 두려운 건 그녀가 명의뿐인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었다.“그런데 왜 한동안만 내 곁을 지킨다고 하는 거냐? 평생 내 옆에 있으면 되지 않느냐?”“전하께서도 진짜 혼인을 하
아무도 무안희가 어떻게 속박을 풀었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모두의 시선이 안비에게 쏠린 틈을 타서 그녀는 어느새 밧줄을 풀었다.그리고 손에 칼을 빼들고 고여추의 목에 겨누었다.강현준은 음침한 얼굴로 기를 모았지만 입에서 또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형님!”강현우는 다가가서 그를 부축하고 고월영의 손을 잡아당겼다.고용기는 무안희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지금도 여전히 그녀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힘들었다.연일이 무안희를 쫓아갔다.“오지 마!”무안희는 비수를 고여추의 목에 들이댔다. 하얗고 가는 목에서 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안 돼!”결국 고용기는 밖으로 쫓아 나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손을 놓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무안희, 그만해!”“고월영, 너 때문에 난 모든 것을 잃었어. 내가 이 자리에서 네 언니의 목숨을 취해도 넌 할 말 없잖아?”고여추의 목에서는 점점 많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숨이 끊어질 것이다.“안 돼!”고월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강현우가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무안희, 인질 풀어주면 오늘 무사히 왕부를 떠나게 해주겠다!”“내가 너희를 믿을 것 같아?”무안희는 고여추의 목에 칼을 들이댄 채로 후문을 향해 뒷걸음질쳤다.고여추는 안비에 의해 섭혼술이 중단된 이후로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그녀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무안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아무도 무안희를 막지 못했다.연일은 여러 번 강현준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가 미동이 없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왕부의 하인들도 마찬가지였다.안 그래도 고월영은 강현준을 사무치게 증오하는데 이 왕부에서 언니마저 잃으면 아마 현왕에게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었다.무안희는 그렇게 고여추를 끌고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쫓아!”연일은 그제야 부하들을 호령하여 쫓아 나갔다.고월영과 강현우도 뒤따라갔다. 무안희는 뒷산의 방향으로 도망쳤다.고월영 일행이 도착했을 때, 연일이 고여추를 안고 되돌아오고
강현준의 시선이 안비에게 닿았다.안비는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아들에게서 저런 시선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처음은 심복이 고월영에게 독을 먹였을 때였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겁에 질린 안비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무안희는 강현준을 똑바로 보며 계속해서 말했다.“모두 안비의 짓이었습니다. 난원을 압박해서 고월영의 체내에 독을 주입했어요. 고월영은 그때까지 아이가 무사히 살아 있다고 애원했어요.”무안희는 안비를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하지만 마마는 한 번에 실패하자 난원에게 한 번 더 독을 주입하라고 명령했지요.”“그때 아무도 고월영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독을 두 번이나 주입했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으니까요! 전하, 이게 당신 어머니의 본 모습이에요! 얼마나 감동스러운 아들 사랑인가요!”무안희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를 제외하고 아무도 웃지 않았다.두 번의 독 주입, 그건 고월영의 목숨을 노리고 한 짓이었다.강현우는 어느새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강현준은 온기 하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안비는 그 시선을 마주하고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섰다.“그런 거 아니야. 난원이…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어. 태어나도 정상이 아닐 거라고….”“현준아, 어미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정상이 아닌 아이가 태어나면 현왕부는… 이게 다 너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어!”강현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어머니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아무도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강현준 본인도 포함이었다.머릿속에 자신의 여자가 죽어 가는 장면이 펼쳐졌다.그녀는 이미 복 중에서 숨이 끊어진 아이를 붙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다.이기적인 인간들은 멈추지 않고 헐떡이는 고월영을 붙잡고 재차 독을 주입했다.푸흡!강현준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