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능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뜻이예요?”우문호는 대답하지 않고 되려 물어왔다.“그대는 어찌하여 기왕이 손을 쓴 거라고 생각하지?”원경능은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직감이죠.”그녀는 당연히 직감으로 일을 풀어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머리에 떠오르는 지금의 상황을 조금씩 분석하여 얻은 결론이 기왕이었다. 우문호는 이를 한눈에 알아봤다.“본왕은 직감이란 말은 안 믿는다. 괜찮으니 한번 말해봐.”원경능은 담담하게 말했다.“확실히 직감이에요.”그녀는 방금 자신이 입을 잘못 놀려 한 말이 후회스러웠다. 자신은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분석한 것들을 말해도 그녀에게 득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자신이 경후부에 있을 때부터 이 일을 알고 있었다고 여길 수 있었다. 사서를 읽는 사람으로써, 그녀는 시국에 대해 예민했다. 기왕은 장자였으며 전쟁에서 공도 세웠었다. 황제도 그를 꽤 알아봐주고, 대신들도 매수해 두었다. 그는 태자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기왕의 세력이 이렇게 드센데, 다른 친왕들도 야심은 있지만 발벗고 나서서 굳이 우문호를 제거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우문호가 살아 있다는 것은 기왕이 태자 직위를 얻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렇다고 다른 친왕들이 우문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직 황위 다툼이 그 정도로 열띤 상태는 아니었다.우문호는 더 묻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조금 놀랐다. 이 아둔한 여인이 기왕이라는 것을 눈치 채다니.보아하니 경후부도 적잖이 시국을 논의하는 모양이었다. 경후부는 그가 더욱 싫어하는 대상이 되었다.원경능은 방석에 엎드린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요즘 너무 힘들어서 눕기만 하면 잠이 쏟아졌다.하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많은 생각들 때문에 그녀는 몸이 나른하고 눈꺼풀이 아무리 무거워도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어이, 못난이!”침대 위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원경능은 바깥 방향으로 머리를 돌려버렸다. 그녀는 이렇
깜짝 놀란 와중에 그는 원경능이 면도칼 한 자루를 꺼내는 것을 발견하였다. 우문호는 화를 내며 물었다.“또 무엇을 하려는 거지?”“털을 밀어야 해요. 털을 밀지 않으면 어떻게 소독하고 치료하나요?”원경능은 그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다리를 좀 벌리세요.”우문호는 온몸의 혈액이 머리에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귀에는 윙윙 소리가 났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어 면도칼이 살갗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더부룩한 것이 허벅지를 스치며 떨어졌다. 곳곳이 느껴지는 촉감은 치욕감을 주었다.사실 원경능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원해서 보는 것인가? 원해서 음모까지 밀고 그곳의 상처를 처치하는 것인가? 하지만 만일 감염으로 인해 그것이 떨어진다면 태상황과 자신에게 할 말이 없었다. 비록 그것이 떨어진다 하여도 자업자득이지만 말이다.상처는 다행스럽게도 아슬아슬하게 허벅지의 대동맥을 빗겨갔다. 상처는 매우 깊었는데 무슨 방법으로 지혈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우문호가 혼자서 지혈하는 약 가루를 뿌렸을 것이다. 허벅지 옆에 찐득찐득한 약이 발라져 있었다.만일 조금만 더 중심으로 베었다면 분명 그 물건을 비스듬히 잘라냈을 것이다. 만일 잘라냈다면 정말로 좋았을 것이다! 이는 온갖 죄악의 근원이었다.원경능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몰래 고개를 들어 우문호를 흘끔 보았다. 우문호가 주먹을 휘두르자 원경능은 재빨리 목을 움츠렸다. 그리고는 홍시처럼 빨개진 그의 얼굴을 발견하였다.“그래도 봉합해야 되겠네요!”원경능은 소독한 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싫다!”우문호는 단번에 거절하고 천천히 다리를 오므렸다. 그러나 원경능은 그보다 먼저 그의 허벅지를 밀어내면서 두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게 하였다. 우문호는 머리칼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리칼 끝에는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알겠어요!”원경능은 약상자를 꺼내 바르는 마취약을 꺼내며 말했다.“지혈하는 약을 좀 발라 줄게요. 상처가 빨리 회복되게 할 수 있어요.”“빨리빨리 좀 해!”우문호는
원경능은 탕양과 함께 대청(正厅)에 도착하였다. 도착하기 전, 탕양은 그녀에게 목여공공이 온 이유를 말해주었다.원경능이 몰래 태상황을 치료해준 일을 황제가 알게 된 것이다. 황제가 크게 노하셔서 목여공공에게 직접 초왕부에 가라고 명한 것이었다. 원경능을 황궁에 들여 문책하기 위해. 원경능은 황궁의 규칙을 알고 있는지라 당연히 당황했다. 그녀는 어의도 의원도 아니었다. 애초에 태상황을 치료해줄 자격이 없었다.목여공공은 엄숙한 얼굴로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경능이 들어오자 몸을 일으키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초왕비, 폐하께서 궁으로 부르십니다.”원경능은 한마디 물었다.“태상황께서는 괜찮으십니까?”“태상황께서는 중독되어 혼절한 상태입니다.”목여공공은 쌀쌀하게 대답했다. 원경능은 눈을 내리깔았다. 이래서 황제가 자신에게 죄를 묻는 것이었다. 만일 치료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자신은 과오도 공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착오가 생기면 모든 잘못은 자신의 것으로 전가된다.태상황은 더욱이 중독 상태였다.그녀는 목여공공을 따라 초왕부 문앞까지 나와서야 어전부시위장 고사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고사는 담담한 눈빛으로 말했다.“왕비, 마차에 오르십시오.”바닥에는 발 디딜 걸상이 없었다. 원경능은 힘겹게 마차에 올랐다. 발이 드리워지는 순간 탕양에게 우문호가 열이 나는지 가서 지켜보라고 말 했었던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원경능은 발을 휙 올리며 고사에게 말했다.“탕양에게 할 말이 있네.”고사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왕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입궁만 하시면 됩니다.”원경능은 잠시 멍해졌다.“쓸데없는 일? 무슨 뜻인가?”“왕비 자신만 생각하시고 왕야를 진흙탕에 끌어들이지는 말라는 말입니다.”고사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자 원경능도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런가? 그렇다면 고 대인이 수고스러우신 대로 탕양에게 말을 전해주게. 왕야께서 열이 나는지 가서 확인하라고 말이네. 혹시 고열에 시달린다면 내가 왕
만약 이 일이 경후부에 연루된다면, 원경능은 가족 사이에서 경멸의 대상이 될 것이다.그녀는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고사는 바로 앞에 서서 두 팔을 낀 채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황제의 명대로 원경능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는 고사에게 물었다.“태상황께서 무슨 독에 중독되셨는 지 알려줄 수 있겠나?”고사는 입술을 꾹 다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원경능은 시위(侍卫)들의 입이 천금보다도 더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입을 벌리지 않을 것이다.원경능은 복보에게 발생했던 일을 생각하니, 태상황이 독에 중독되었다는 말이 어느정도는 신뢰가 갔다. 태상황을 눈엣가시로 여기면서 죽기만 바라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다만 건곤전의 보안은 철통 같았기 때문에 음식에 손을 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또한 태의가 처방한 약은 모두 시약을 거쳤기에 약에 독약을 썼을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 만일 약에 독을 탔다면 범인은 자연스레 상공공이나 희씨 어멈일 것이다. 시약 할 때 희씨 어멈과 상공공 중 한 명이 지켰기 때문이었다. 시약을 거친 뒤 바로 건곤전으로 가져가 태상황에게 복용시켰다.음식과 약물에 독을 탄 것이 아니라면 피우는 향 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상황 혼자 건곤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공공은 늘 태상황 곁을 지키고 있었다. 태상황이 중독된다면 상공공도 함께 중독될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건곤전에는 시중을 드는 환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태후, 명원제, 예친왕도 자주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었다. 그러니 향로에 독을 타는 건 매우 미련한 방법이었다.목여공공은 태상황이 혼절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가 황제에게 원경능이 약으로 태상황을 치료했다고 말했을까? 상공공일까? 그러나 상공공은 자신이 우문호와 함께 들어갔을 때 치료하던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우문호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우문호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기회가 없었다. 요 며칠간 입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소월각은 오랫동안 적막 속에 빠졌다. 우문호는 다시 한번 심사숙고를 거친 후 고개를 들어 탕양에게 말했다.“태상황께서 무슨 독에 중독되셨는지 알아보거라.”“왕야, 알아내기 힘들 겁니다.”“고사는 알 것이야!”우문호가 말했다.“고사는 현재 어전에서 명을 받들고 있어 나올 수조차 없을 겁니다. 그리고 왕비를 모시러 왔을 때 고사가 함께 왔었습니다. 만약 말할 수 있었다면 그때 방법을 댔을 겁니다.”탕양이 말했다. 우문호의 눈 속에서 악랄한 빛이 번뜩였다.“입궁하여 보고 하거라. 본왕이 죄를 인정한다고 말이다.”“왕야!”서일과 탕양이 동시에 깜짝 놀라면서 외쳤다. 왕야께서 미치신 것인가? 죄를 인정하다니?“원경능이 한 모든 것은 다 본왕이 시킨 것이다. 본왕은 이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우문호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서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왕야께서 자신이 자객을 보낸 것이라고 인정하겠다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왕비더러 태상황을 치료하라고 지시했다고 인정하는 것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왕야, 안됩니다. 왕야께서는 현재 처벌을 기다리고 계신 몸입니다.”서일이 말했다. 탕양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왕야, 왕비를 믿으십니까?”“이 방법밖에 없구나.”우문호는 싸늘하게 말했다. 탕양은 우문호를 쳐다보았다."왕야께서 이렇게 하시면 왕비와 운명을 같이 하시는 겁니다. 만일 왕비께서 이 상황을 뒤엎지 못하신다면 왕야의 처지는 더 비참해지실 겁니다. 왕야, 깊이 생각하셨습니까?"“다른 방법이 있느냐?”우문호는 속으로 격분했다. 목구멍에서는 피가 올라왔다. 억지로 삼켰지만 그래도 비릿한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기왕의 일 처리는 허점이 없고, 실수조차 한 적이 없었다. 자객도 이미 자결하였으니 아무런 꼬투리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은 자신이 벙어리 마냥 입을 다물고 손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의논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원경능이 다시 황조부를 완치하기만을 바랐다. 그래야만 자신이
예친왕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소매 안에서 약 한 알을 꺼내 우문호의 입에 넣고서 몸을 돌려 무릎을 꿇었다.“폐하, 다섯째가 절로 상처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의 부상은 태의들도 치료하기 힘듭니다. 만일 폐하 앞에서 연기 하는 것이라면 굳이 심한 부상을 입지 않아도 됐을겁니다.”원경능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폐하께서 우문호가 스스로 상처를 냈다고 생각하시다니?편전에서 원경능을 감시하고 있던 고사도 청을 들었다. “폐하, 소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에 태의는 왕야의 부상이 너무 심하다고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었습니다. 태상황께서 왕비를 내보내셔서 왕야는 살 수 있었습니다. 소신은 무술은 연마하는 사람이라 무기로 정확히 생명위험이 없을 정도로 중상을 입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명원제는 담담하게 말했다.“다들 일어나거라.”황제가 반응이 없자, 고사의 눈빛이 이내 어두워졌다. 태의는 빠른 걸음으로 편전에 이르렀다. 궁중에서 일하면서 오랫동안 태상황의 심장병을 돌보며 대단한 능력을 익혔다. 그는 걸으면서 동시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릴 수 있었다.위험천만한 상황이라 일어나라는 명을 받을 줄 알고 재빨리 다가오려 했다. 태의가 무릎을 꿇은 후 바로 일어났으나, 사실 황제는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이를 알아챘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일어나서 걸음을 떼려 하고 있었다. 태의는 가까스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 휘청거림에 약상자는 바닥에 떨어졌고 그도 함께 넘어졌다. 원경능은 황제를 신경 쓰지 않고 바로 태의의 약상자를 가져와 열었다. 가위를 꺼내고는 우문호의 옷을 잘랐다. 그리고 피를 멎게 하기 위해 다시 붕대로 상처의 윗부분을 동여맸다. 원경능의 행동은 매우 민첩했다. 복부의 상처를 동여맨 후 곧바로 신발을 벗기고 바지를 잘랐다. 우문호의 모든 상처가 명원제 앞에 드러났다.허벅지 안쪽의 상처를 본 명원제는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태의에게 싸늘하게 말했다.“어서 지혈하지 못
“돌아봐.”우문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원경능은 턱을 침상에 받치고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걸 축하해요.”“본왕이 죽기만을 바랐던 것이 아닌가?”우문호는 그녀의 “다채로운” 얼굴을 보았다. 이마에는 퍼런 멍이 들어있었고 눈은 팅팅 부어 있었다. 눈물이 얼룩덜룩한 얼굴에 두 줄기 흰 자국을 냈다.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불과 물처럼 어울리지 못했었다.“맞아요. 확실히 죽기를 바랐었어요.”원경능은 눈물을 닦고 조금 앳된 모습으로 말했다.“하지만 저는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가 눈 앞에서 죽으면 저의 과실인 게 되어버려요. 그러니 제 앞에서 죽지마세요.”우문호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웃었다.고사도 옆에서 지켜보다가 홀가분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복잡한 눈빛으로 원경능을 흘끔 보았다. 사실 초왕비도 너무 밉살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우문호는 호흡을 가라앉혔다. 자금단이 체내에서 약효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듯한 기운이 차츰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는 고사를 보며 물었다.“태상황께서 무슨 독에 중독되신 것이냐?”고사는 앞으로 한걸음 다가가며 말했다.“사실 저도 모릅니다. 그저 어제 저녁에 태상황께서 갑자기 피를 토하시고 혼절하신 것만 압니다. 태의가 중독 증상이라고 진단을 내렸었습니다.”우문호는 원경능을 바라보았다.“당신이 태상황께 준 약이 피를 토하게 하고 혼절하게 만드는가?”원경능이 말했다.“절대 그럴 리 없어요.”“그렇다면 부황께서 철저히 조사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아마 꼭 결과가 나올 것이다.”우문호가 말했다.“폐하에게 태상황을 만나게 해달라고 청하고 싶어요.”고사가 고개를 저었다.“왕비께서는 잠시 기다려보십시오. 폐하께서 안배하실 겁니다. 아마 예친왕도 이렇게 권고하실 겁니다.”밖에 서있던 경후는 속으로 딸 원경능을 몇 번이고 욕했다. 온갖 방법을 다 고안해내서 겨우 왕부에 시집을 보냈더니 좋은 일이 생기기는커녕 나쁜 일 투성이에, 그런 일이 생기면 꼭 자신부터
저명취는 할아버님의 걱정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며 말했다.“할아버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경능은 누명을 벗지 못할 겁니다. 태상황께서 병독하신 상태에서 중독되어 쓰러지셨으니, 어찌 다시 살아나실 수 있겠습니까? 태상황만 서거하신다면, 이유가 무엇이든지 원경능은 몰래 태상황의 병을 치료하다가 더 악화시킨 죄가 성립됩니다. 공로라고 여겨질 일은 없을 겁니다.”후궁과 조정은 변화무쌍해서 꿰뚫어 보기 어려웠다. 원경능은 더욱이 말 할 필요도 없었다. 현재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초왕은 자해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으니, 초왕부는 이미 운을 다한 것이다.우문호를 떠올리니 저명취는 조금 아쉬웠지만, 큰 일을 해내려면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아야 했다. 이는 우문호의 운명이었다.“너무 확신하지 말거라. 막이 내려지지 않는 이상 변수는 존재하는 법이니라.”저수부는 갑자기 저명취를 빤히 바라보았다.“태상황을 중독시킨 일이 너희가 한 것이 아니냐?”저명취는 깜짝 놀랐다.“저희는 절대 아닙니다. 손녀의 간덩이가 아무리 부었다 해도 감히 태상황을 독살하다니요?”저수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축 처진 눈꺼풀을 내리깔았다.“너희들이 아니면 되었다. 원경능이 어찌하여 의술을 알게 되었는지는 내가 조사해보마. 너는 이만 나가보거라.”저명취는 몸을 일으키고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서재의 문을 나서자 밖은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초왕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초왕이 평생 동안 자신을 잊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문창탑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의 냉담함과 소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그의 마음속에 원경능이 자리를 잡은 것인가? 그 천박한 여인이 어찌 그와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초왕부에서 우문호의 부상을 본 뒤에 원경능이 태상황을 치료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문호의 부상이 원경능 덕분에 처치가 가능했다는 제왕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태상황이 그날 갑자기 나아진 까닭은 원경능이 수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그때 저명취는 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