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일이 경후부에 연루된다면, 원경능은 가족 사이에서 경멸의 대상이 될 것이다.그녀는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고사는 바로 앞에 서서 두 팔을 낀 채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황제의 명대로 원경능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는 고사에게 물었다.“태상황께서 무슨 독에 중독되셨는 지 알려줄 수 있겠나?”고사는 입술을 꾹 다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원경능은 시위(侍卫)들의 입이 천금보다도 더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입을 벌리지 않을 것이다.원경능은 복보에게 발생했던 일을 생각하니, 태상황이 독에 중독되었다는 말이 어느정도는 신뢰가 갔다. 태상황을 눈엣가시로 여기면서 죽기만 바라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다만 건곤전의 보안은 철통 같았기 때문에 음식에 손을 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또한 태의가 처방한 약은 모두 시약을 거쳤기에 약에 독약을 썼을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 만일 약에 독을 탔다면 범인은 자연스레 상공공이나 희씨 어멈일 것이다. 시약 할 때 희씨 어멈과 상공공 중 한 명이 지켰기 때문이었다. 시약을 거친 뒤 바로 건곤전으로 가져가 태상황에게 복용시켰다.음식과 약물에 독을 탄 것이 아니라면 피우는 향 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상황 혼자 건곤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공공은 늘 태상황 곁을 지키고 있었다. 태상황이 중독된다면 상공공도 함께 중독될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건곤전에는 시중을 드는 환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태후, 명원제, 예친왕도 자주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었다. 그러니 향로에 독을 타는 건 매우 미련한 방법이었다.목여공공은 태상황이 혼절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가 황제에게 원경능이 약으로 태상황을 치료했다고 말했을까? 상공공일까? 그러나 상공공은 자신이 우문호와 함께 들어갔을 때 치료하던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우문호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우문호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기회가 없었다. 요 며칠간 입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소월각은 오랫동안 적막 속에 빠졌다. 우문호는 다시 한번 심사숙고를 거친 후 고개를 들어 탕양에게 말했다.“태상황께서 무슨 독에 중독되셨는지 알아보거라.”“왕야, 알아내기 힘들 겁니다.”“고사는 알 것이야!”우문호가 말했다.“고사는 현재 어전에서 명을 받들고 있어 나올 수조차 없을 겁니다. 그리고 왕비를 모시러 왔을 때 고사가 함께 왔었습니다. 만약 말할 수 있었다면 그때 방법을 댔을 겁니다.”탕양이 말했다. 우문호의 눈 속에서 악랄한 빛이 번뜩였다.“입궁하여 보고 하거라. 본왕이 죄를 인정한다고 말이다.”“왕야!”서일과 탕양이 동시에 깜짝 놀라면서 외쳤다. 왕야께서 미치신 것인가? 죄를 인정하다니?“원경능이 한 모든 것은 다 본왕이 시킨 것이다. 본왕은 이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우문호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서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왕야께서 자신이 자객을 보낸 것이라고 인정하겠다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왕비더러 태상황을 치료하라고 지시했다고 인정하는 것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왕야, 안됩니다. 왕야께서는 현재 처벌을 기다리고 계신 몸입니다.”서일이 말했다. 탕양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왕야, 왕비를 믿으십니까?”“이 방법밖에 없구나.”우문호는 싸늘하게 말했다. 탕양은 우문호를 쳐다보았다."왕야께서 이렇게 하시면 왕비와 운명을 같이 하시는 겁니다. 만일 왕비께서 이 상황을 뒤엎지 못하신다면 왕야의 처지는 더 비참해지실 겁니다. 왕야, 깊이 생각하셨습니까?"“다른 방법이 있느냐?”우문호는 속으로 격분했다. 목구멍에서는 피가 올라왔다. 억지로 삼켰지만 그래도 비릿한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기왕의 일 처리는 허점이 없고, 실수조차 한 적이 없었다. 자객도 이미 자결하였으니 아무런 꼬투리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은 자신이 벙어리 마냥 입을 다물고 손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의논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원경능이 다시 황조부를 완치하기만을 바랐다. 그래야만 자신이
예친왕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소매 안에서 약 한 알을 꺼내 우문호의 입에 넣고서 몸을 돌려 무릎을 꿇었다.“폐하, 다섯째가 절로 상처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의 부상은 태의들도 치료하기 힘듭니다. 만일 폐하 앞에서 연기 하는 것이라면 굳이 심한 부상을 입지 않아도 됐을겁니다.”원경능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폐하께서 우문호가 스스로 상처를 냈다고 생각하시다니?편전에서 원경능을 감시하고 있던 고사도 청을 들었다. “폐하, 소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에 태의는 왕야의 부상이 너무 심하다고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었습니다. 태상황께서 왕비를 내보내셔서 왕야는 살 수 있었습니다. 소신은 무술은 연마하는 사람이라 무기로 정확히 생명위험이 없을 정도로 중상을 입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명원제는 담담하게 말했다.“다들 일어나거라.”황제가 반응이 없자, 고사의 눈빛이 이내 어두워졌다. 태의는 빠른 걸음으로 편전에 이르렀다. 궁중에서 일하면서 오랫동안 태상황의 심장병을 돌보며 대단한 능력을 익혔다. 그는 걸으면서 동시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릴 수 있었다.위험천만한 상황이라 일어나라는 명을 받을 줄 알고 재빨리 다가오려 했다. 태의가 무릎을 꿇은 후 바로 일어났으나, 사실 황제는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이를 알아챘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일어나서 걸음을 떼려 하고 있었다. 태의는 가까스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 휘청거림에 약상자는 바닥에 떨어졌고 그도 함께 넘어졌다. 원경능은 황제를 신경 쓰지 않고 바로 태의의 약상자를 가져와 열었다. 가위를 꺼내고는 우문호의 옷을 잘랐다. 그리고 피를 멎게 하기 위해 다시 붕대로 상처의 윗부분을 동여맸다. 원경능의 행동은 매우 민첩했다. 복부의 상처를 동여맨 후 곧바로 신발을 벗기고 바지를 잘랐다. 우문호의 모든 상처가 명원제 앞에 드러났다.허벅지 안쪽의 상처를 본 명원제는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태의에게 싸늘하게 말했다.“어서 지혈하지 못
“돌아봐.”우문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원경능은 턱을 침상에 받치고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걸 축하해요.”“본왕이 죽기만을 바랐던 것이 아닌가?”우문호는 그녀의 “다채로운” 얼굴을 보았다. 이마에는 퍼런 멍이 들어있었고 눈은 팅팅 부어 있었다. 눈물이 얼룩덜룩한 얼굴에 두 줄기 흰 자국을 냈다.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불과 물처럼 어울리지 못했었다.“맞아요. 확실히 죽기를 바랐었어요.”원경능은 눈물을 닦고 조금 앳된 모습으로 말했다.“하지만 저는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가 눈 앞에서 죽으면 저의 과실인 게 되어버려요. 그러니 제 앞에서 죽지마세요.”우문호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웃었다.고사도 옆에서 지켜보다가 홀가분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복잡한 눈빛으로 원경능을 흘끔 보았다. 사실 초왕비도 너무 밉살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우문호는 호흡을 가라앉혔다. 자금단이 체내에서 약효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듯한 기운이 차츰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는 고사를 보며 물었다.“태상황께서 무슨 독에 중독되신 것이냐?”고사는 앞으로 한걸음 다가가며 말했다.“사실 저도 모릅니다. 그저 어제 저녁에 태상황께서 갑자기 피를 토하시고 혼절하신 것만 압니다. 태의가 중독 증상이라고 진단을 내렸었습니다.”우문호는 원경능을 바라보았다.“당신이 태상황께 준 약이 피를 토하게 하고 혼절하게 만드는가?”원경능이 말했다.“절대 그럴 리 없어요.”“그렇다면 부황께서 철저히 조사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아마 꼭 결과가 나올 것이다.”우문호가 말했다.“폐하에게 태상황을 만나게 해달라고 청하고 싶어요.”고사가 고개를 저었다.“왕비께서는 잠시 기다려보십시오. 폐하께서 안배하실 겁니다. 아마 예친왕도 이렇게 권고하실 겁니다.”밖에 서있던 경후는 속으로 딸 원경능을 몇 번이고 욕했다. 온갖 방법을 다 고안해내서 겨우 왕부에 시집을 보냈더니 좋은 일이 생기기는커녕 나쁜 일 투성이에, 그런 일이 생기면 꼭 자신부터
저명취는 할아버님의 걱정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며 말했다.“할아버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경능은 누명을 벗지 못할 겁니다. 태상황께서 병독하신 상태에서 중독되어 쓰러지셨으니, 어찌 다시 살아나실 수 있겠습니까? 태상황만 서거하신다면, 이유가 무엇이든지 원경능은 몰래 태상황의 병을 치료하다가 더 악화시킨 죄가 성립됩니다. 공로라고 여겨질 일은 없을 겁니다.”후궁과 조정은 변화무쌍해서 꿰뚫어 보기 어려웠다. 원경능은 더욱이 말 할 필요도 없었다. 현재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초왕은 자해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으니, 초왕부는 이미 운을 다한 것이다.우문호를 떠올리니 저명취는 조금 아쉬웠지만, 큰 일을 해내려면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아야 했다. 이는 우문호의 운명이었다.“너무 확신하지 말거라. 막이 내려지지 않는 이상 변수는 존재하는 법이니라.”저수부는 갑자기 저명취를 빤히 바라보았다.“태상황을 중독시킨 일이 너희가 한 것이 아니냐?”저명취는 깜짝 놀랐다.“저희는 절대 아닙니다. 손녀의 간덩이가 아무리 부었다 해도 감히 태상황을 독살하다니요?”저수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축 처진 눈꺼풀을 내리깔았다.“너희들이 아니면 되었다. 원경능이 어찌하여 의술을 알게 되었는지는 내가 조사해보마. 너는 이만 나가보거라.”저명취는 몸을 일으키고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서재의 문을 나서자 밖은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초왕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초왕이 평생 동안 자신을 잊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문창탑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의 냉담함과 소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그의 마음속에 원경능이 자리를 잡은 것인가? 그 천박한 여인이 어찌 그와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초왕부에서 우문호의 부상을 본 뒤에 원경능이 태상황을 치료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문호의 부상이 원경능 덕분에 처치가 가능했다는 제왕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태상황이 그날 갑자기 나아진 까닭은 원경능이 수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그때 저명취는 휘
명원제와 예친왕이 다가가서 보았다. 그 중 한 알은 중간 부분이 주홍색을 띠었고, 다른 한 알은 연한 노란색과 검은색을 띠었다.“두 알의 색이 다르다니? 어찌 된 일이냐?”예친왕이 태의에게 물었다. 태의는 멍해졌다.“그럴 리가 없습니다. 모두 한 연단로(炼丹炉: 단약을 만드는 화로)에서 만든 것인데 어찌 색깔이 다를 리가 있겠습니까?”“그렇다면 어느 것에 독이 있는지 알아보거라.”원경능이 말했다. 태의는 중간 부분이 주홍색을 띤 알약을 가리켰다.“원래 이런 색이 아니었습니다. 중간 부분이 왜 이렇게 붉은지 모르겠습니다.”그는 알약 조금을 떼어내어 잔에 놓고 물을 부었다. 은침을 갖다 대니, 은침은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번하였다. 독성이 대단한 것이 분명했다. “폐하!”태의는 털썩 무릎을 꿇고 입술을 달달 떨었다.“절대 저희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약을 바꿨습니다. 태의원에서 올린 약은 모두 무해한 것들입니다. 모두 검증했었습니다.”명원제의 눈빛이 싸늘해졌다.“여봐라, 태의원을 봉쇄하고 자세히 조사하거라!”시위가 명을 받들고 나갔다. 예친왕은 원경능을 바라보았다.“너는 어떻게 두 알약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느냐?”원경능이 설명했다.“한 알이 적어졌다는 것은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가져갔겠습니까? 가져간 것은 문제가 있는 알약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상공공이 마지막으로 태상황께 약을 드릴 때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순서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어 가져간 것은 문제없는 알약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지고 가려 했던 알약은 아직 상자에 있습니다.”“너의 분석이 맞다!”예친왕의 눈에도 싸늘한 빛이 어렸다.“감히 태상황을 독살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명원제의 모든 분노가 태의에게 향했다. 원경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부황, 아마 문제는 태의원에서 생긴 것이 아닐 겁니다.”명원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유가 무엇이냐?”원경능이 답했다.“모두 세 알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그녀는 살금살금 다가가 태상황의 침상 앞에 섰다. 두 날이 지났을 뿐인데 많이 야위었다. 얼굴은 누르스름했고 입술은 자주색을 띠었는데 눈썹은 난잡하고도 거칠었다. 유일하게 태상황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한때 북당왕국에서 가장 강대했던 남자였다. 그러나 현재 자신의 생사조차 어찌할 수 없었다. 원경능은 손을 그의 가슴팍에 갖다 댔다. 심장은 느릿하게 뛰고 있었고 호흡은 조금 거칠었다.“어떠냐?”예친왕은 그녀가 진찰하는 줄 알고 다가와 물었다. 원경능은 고개를 저었다.“아직 모르겠습니다.”예친왕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명원제는 낯빛을 바꾸지 않고 저쪽에서 알약을 검사하는 태의를 바라보았다. 태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다가와 보고하였다.“폐하, 주사에 자등(紫藤)의 독을 탔습니다.”“해독하기 어려운 것이냐?”예친왕이 물었다.“어렵지 않습니다. 무슨 독인지 알았으니 맞는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전에 복용했던 해독탕은 주사와 자등의 독에는 효과가 없는 것인지라 다른 처방으로 바꿔야 합니다.”태의가 답했다. 태의가 해독할 수 있다고 하니 원경능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명원제는 그녀더러 우문호를 보살피게 했다. 그녀가 물러나려고 할 때 명원제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오늘 저녁 궁에 남아 짐과 함께 식사를 하거라.”원경능은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성은인지 몰랐다. 그저 한 가족끼리 하는 평범한 식사라고 생각하고 순순히 응답하며 나갔다. 예친왕은 그녀의 침착한 태도가 더 마음이 들었다.사실 원경능이 걱정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우문호 그곳의 상처였다.그곳의 상처는 조금 전에 봉합했지만 그새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입궁하는 길에 흔들렸을 것이 분명했고 또 몇 백 걸음 걷기까지 했었다. 상처는 그곳 부근에 있었는지라 벌어질 때면 미치도록 아플 것이었다.우문호는 고통을 참는 능력이 대단했다.예전에 상처를 처치했을 때 편전에 사람이 너무 많았고 상황이 위급했었어서 크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지금 편전에는 아마 탕양
황후의 중신궁(中珅宫), 제왕과 저명취는 입궁하여 먼저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드렸다. 중신궁에 들어선 저명취는 황후의 안색이 좋지 않음을 발견했다. 황후는 가슴을 움켜쥐고 자리에 앉아있었다.저명취는 예전부터 황후에게 싹싹했다. 그녀가 안부를 물었지만 황후는 여전히 우울해했다.저명취는 황후가 걱정거리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제왕에게 웃으며 말했다.“왕야, 새로 만든 시를 녹왕(禄王)께 들려 드린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얼른 가보세요.”제왕은 시 쓰기를 즐기지 않았으나 녹왕은 즐겼다. 제왕과 녹왕은 모두 황후가 낳은 아들이었다. 동생의 취미를 위해, 그가 심심하지 않도록 시 쓰는 것을 배웠다. 오늘 새로 쓴 시가 있는지라 녹왕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저명취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웃으며 나갔다. 제왕이 떠나자 저명취는 시중을 드는 시녀들을 모두 물렸다. 그리고는 황후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고모,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황후는 아들이 떠나자 화를 내며 말했다.“본궁은 폐하와 이십 몇 년간 부부로 지내면서 단독으로 식사한 적이 없다. 오늘 폐하께서는 글쎄 원경능와 함께 식사를 하는 성은을 내리셨어.”저명취는 깜짝 놀랐다.“원경능이요? 입궁하여 조사를 당하지 않았나요? 감금당하지 않은 건가요?”저명취는 입궁할 때 물어보지 않았다. 원경능이 저지른 범행의 정도로 봤을 때, 감옥에 곧장 처넣어지지는 않더라도, 암실(暗房)에 가둬 자세히 조사한 뒤 초왕비의 신분을 박탈하여야 했다. 그리고 나머지 형벌들은 모두 백성의 신분으로 처단할 것이었다.저황후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감금? 오늘 단독으로 폐하와 식사를 하니, 폐하 앞에서 무슨 말을 할련지 모르겠구나.”저명취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최근 원경능은 부쩍 총명해진 것 같았다. 만일 자신에 대한 의심을 황제 앞에서 조금이라도 말한다면… 그 결과는 예상할 수 없었다.그녀는 몸을 돌려 황후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교활함이 감돌았다.“고모, 어지럽지 않으세요?”****저녁식사는 비
이 문제에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씨가 임신한 뒤로부터 그의 눈과 마음에는 다른 것들을 담지 못했었다.현재 제왕이 물으니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디 그렇게 많은 왜가 있어, 놓으면 놓는 거지.'"다섯째 형님."제왕은 우문호가 머뭇거리자 조금 몸을 일으키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혹 아직도 명취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우문호는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 다섯째 형수는 속이 매우 좁아.""형님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겁니까?"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좋아하지 않아.""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빨리 명취를 잊다니."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한참 뒤에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빛이 반짝였다."너의 다섯째 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지.""그 말인즉, 다른 사람이 생기면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건 아마 대체하는 방법인 듯 하군요. 다른 여인을 찾아야 되지요, 맞나요?"제왕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연구해본 적도 없는 걸.'허나 표면상으로는 적극적으로 말했다."맞아, 넌 동그란 얼굴의 계집애와 자주 있도록 시도해봐. 아마 곧 잊을 수 있을 거야."원영의를 말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말했다."이번에 영의가 조태의를 데리고 돌아왔기 다행이지 아니면 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네 다섯째 형수가 보낸 거다."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공을 쟁취했다. 일곱째는 늘 원씨에게 편견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을 쟁취하여야만 했다.그러나 제왕은 그 말을 흘려 보내고 홀로 중얼거렸다."사실, 동그란 얼굴도 괜찮아요. 자상하게 왕비를 소개해줄 것이라 했거든요."우문호가 불현듯 물었다."참, 오늘밤 돌아갈 거야?"제왕은 생각에 잠겼다."돌아갈 거예요. 동그란 얼굴이 있으니 절 괴롭히
우문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부황...."부황께서 합의 이혼을 동의하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말투에 불쾌한 느낌이 상당했다."그대로 하면 되느니라."명원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명취가 시집온 뒤로부터 사단이 끊인 적이 없었다. 작은 일은 저수부의 체면을 보아 눈 감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방임했더니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실의 체면을 깎는 건 괜찮으나 사적으로 친황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니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애당초 그녀의 명성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들 그녀가 현명하고 정숙하며 대가의 풍격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오늘 저씨 노태부인의 그 말을 해 이미 화가 치밀었었다. 저씨 가문의 체면이 참으로 대단했다."부황."우문호가 정색하더니 재빨리 물었다."부황의 뜻은 일곱째의 요구를 동의한다는 겁니까?""동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는데."명원제가 아비로써의 인내를 보여주었다."합의 이혼한 뒤 각자 재혼한다면 두 가문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매우 우러러보았다. 부황의 이 말은 참으로 가식적이었다. 너무 가식적이어서 전혀 가식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각별히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이 일을 일주일 내에 해결하거라. 해결하지 못하면 곤장을 맞으러 와야 한다. 꺼지거라."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우문호는 명을 받고 제왕을 찾으러 들어갔다.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하면서 출궁했다.그러나 명원제는 계속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군주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자가 있는 이외에 뭐가 나은 것이 있던가?황제란 수명이 짧은 직업이었다.옆에서 묵을 갈던 목여공공이 기쁘게 말했다."제왕과 초왕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음을 보셨으니 폐하께서도 시름을 놓으실 수 있습니다."명원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는 떳떳하고 일곱째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다행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크게 다투었을 것이다. 다투지 않더라도 이후에는 암투를 벌일 것이지.
우문호가 위로했다."그만 소리 질러, 부황 앞에서도 네가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면 네가 겁쟁이라고 꾸짖으실 거야."제왕은 아픔에 말도 하지 못했다.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실로 참을 수 없어 말했다."형님, 절 업어줘요.""상처가 앞에 있는데 내가 널 없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우문호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근심스러워졌다. '왜 이렇게 아픔을 참지 못한단 말인가? 예전에 원씨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입궁하여서도 억지로 버텼었는데, 일곱째는 여인보다 못하는군.""다쳐서 아픈 것이 낫지 이렇게 상처가 찢기는 고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왕은 걸음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입술에도 혈색이 보이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업고 나니 제왕이 또 "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우문호가 물었다."되겠어?"제왕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목여공공을 바라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나를 들고 가게."목여공공은 이미 성지를 전하러 출궁한 궁인에게 물어보았었다. 부상 정도가 그렇게 엄중하지 않다고 조태의가 말했다고 전했다. 가슴팍의 상처는 괜찮고 복부의 상처가 조금 깊다고 했다.그리하여 제왕의 이러한 모습을 본 목여공공은 근심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태의가 확실하게 진찰한 게 맞습니까? 내장이 상한 건 아닙니까?"제왕은 숨을 들이쉬었다."내장이 상한 건 아니네."목여공공은 제왕의 이런 모습으로 실로 궁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말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들고 갑시다."어깨 가마와 들것이 없으니 한 사람은 어깨를, 한 사람은 두 다리를 들고 갔다. 제왕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입에 초롱 손잡이를 물로 있었다. 허나 자신이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제왕은 칠흙같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등불의 빛은 궁중의 밤을 밝히기엔 부족했다. 그는 그저 딴 세상에 온 듯 하였다.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
황후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곱째가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 죄명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죄명이 실증되고 정말 백관 앞에서 죄를 심의 받는다면 절로 미래를 망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일의 진위를 막론하고 재빨리 답했다."합방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이야 말로 전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태노부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저명취의 낯빛을 보고 태후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다만 바보가 아닌 태노부인은 멍해졌다. '측비 때문이 아니라면 제왕은 왜 합의 이혼하려고 하려는 걸까? 설마, 그 원측비의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명취와 초왕 사이가 애매하단 말인가?'태노부인의 얼굴은 당장에 어두워졌다. 다만 태후가 자리에 있는지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나 태후는 태노부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한마디 묻겠네. 한 여인이 처로써 작은 일로 자결하고 또 낭군을 중상한 뒤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노부인의 부중에서는 어떻게 처단하는가?"태노부인은 실로 체면이 깎였으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제왕부부는 예전에 화목했었고 측비가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합방도 하지 않았으니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태노부인은 그저 기가 죽어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아둔했습니다.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입궁하여 태후마마와 황후를 귀찮게 했습니다. 다만 젊은 부부가 다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쉽게 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합의 이혼이네."태후가 차가운 낯빛으로 곧 시정했다."황실의 체면이 중요하나 황실의 혈육도 잃을 수 없네. 제왕은 황제의 적자네. 부부가 작은 일로 모순이 생겨 무기를 휘두른다면 철로 만든 몸이라 하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네."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 보았다."너의 며느리고 또 너의 조카니 네가 알아서 이 일을 해결하
황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절부절하여 명원제를 흘깃 보았는데 명원제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황후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하라고 태노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태노부인이 싸늘하고도 딱딱하게 말했다."폐하, 황후마마, 제왕은 황실자손으로써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렸습니다. 비록 명취가 충동한 것은 잘못이나 모든 잘못이 명취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제왕이 측비로 인해 합의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소문이 퍼진다면 실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에 황실과 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일 겁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왕의 상처가 호전되면 백관들 앞에서 죄를 심의 받고 합의 이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태노부인의 이 말은 절대 사정의 의미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심지어 태노부인이 황실의 체면과 저씨 가문의 체면을 함께 논할 때 황후의 낯빛이 돌연 변했다. 크게 경악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명원제를 바라 보았다.아까만 해도 낯빛이 어둡던 명원제는 태노부인의 이 말을 듣고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했다."노부인, 조급해하지 말게. 이 일은 짐이 자세하게 물어볼 것이네. 노부인의 신체가 편찮다고 수부에게 들었으니 돌아가 푹 쉬게. 자손들은 자연히 자손들만의 복이 있을 것이니 노부인이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네."말을 마친 명원제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 나가기 전에 담담하게 저명취를 흘깃 보았다.태노부인은 기가 차 멍해졌다. 명원제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명원제는 나간 뒤 목여공공에게 분부했다."초왕과 제왕을 부르거라."목여공공은 잠시 머뭇거렸다."폐하, 제왕은 아직 부상 당한 몸입니다.""죽지 않을 거다."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일 중상이라면 일찍이 부중에서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 아뢰거라. 태후께 한 번 들리라고 전하고."목여공공은 명을 받
다만 저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고 울고 있었는데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제왕은 조태의와 원영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번에 원영의는 매우 눈치가 빨랐다. 조태의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조태의가 약가루를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건 지혈약이다. 상처부분에 뿌리고 살짝 동여맨다면 이틀 뒤 바로 괜찮아질 거다."시녀는 이미 놀라 손발이 나른해진 상태였다. 약가루를 건네 받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제왕은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저명취의 곁에 앉아 물었다."왜 그러는데?"저명취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늘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도리어 맑아졌다. 사실 원영의의 말들이 그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이다.만일 명취가 정말 자신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째지게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고 당당한 친왕이었다. 다른 것을 쟁취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평생의 부귀영화를 줄 수 있었다.누구도 그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한가하게 놀고 있는 왕야를 상대하지 않았다. 명취는 그렇게 총명하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저수부의 외손자였고 현재 황후의 적자였다.큰 형님이 태자로, 황제로 된다고 하여도 감히 자신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천하 사람들의 공론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당연히, 좀 못나게 말한다면 큰 형님은 애초에 자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그리하니 명취는 정말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그가 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을까? 그리하여 제왕은 마음이 아프지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끝내. 그대가 시집온 날부터 난 그대의 마음 속에 내가 없다는 걸 알았어. 난 자연히 다섯째 형님과 비할 바가 못되지. 나도 내 자신을 알아. 그대는 시종일관 다섯째 형님을 좋아했던 거야. 다만 다섯째 형님이 그대를 저버리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시집온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아사가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뭐가 산 것이라고요?""본왕의 아들 말이다!"우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아사는 머뭇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턍양을 바라 보았다. 탕양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왕야가 이미 미쳤다는 손짓을 했다.원경능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됐어요, 식사나 해요.""우리 큰 언니는요?""돌아갔어."원경능이 답했다. 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제왕에게 정말 화가 나요. 글쎄 큰 언니와 서일이 노닥거린다면서 큰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가 화를 참고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우문호는 기분이 매우 좋은지라 이 말을 듣고 아사를 흘겨봤다."이 계집아이 좀 봐, 일곱째가 매우 연약한 것처럼 말하네. 일곱째도 무술을 연마했었어.""설마요?"아사가 경악했다."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하게 굴어요?"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약하지 않아, 최소한 손으로 계란을 한 알 깰 수 있으니.""전 돌을 깰 수 있어요."아사가 답하니 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제왕이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배웠지, 황자로써 누가 배우지 않아도 되겠어? 마술과 궁술, 무술 모두 익혀야 하지. 일곱째도 배웠었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로는 배우지 않았어.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야."아사는 의아해졌다."왜요?""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술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어."우문호가 말했다. 아사는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정말 무술을 익혔다면 왜 반격을 하지 않았겠어요?""일곱째는 여인을 때리지 않아."우문호가 답했다****여인을 때리지 않는 제왕은 제왕부로 돌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곧장 저명취의 방으로 향했다.요 이틀간 저명취는 많이 울었는지라 눈이 계속 부어있었다. 제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히 눈길을 위로 들었다."성지가 내려진 건가요
제왕은 기가 막혔다."당신의 말투가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하다니. 본왕의 혼사는 모후의 뜻을 따라야 해."원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눈에 하얀 이,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조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모두 애라 달래면 된다고요. 그리고 당신의 모후는...."제왕이 화를 냈다."당신의 모후이기도 하잖아!"원영의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가 생각난 듯 무미건조하게 코를 만졌다."전 정비가 아니라 모후라고 부르면 안돼요."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 계속 본왕에게 합의 이혼하라고 하고 지금 또 이러한 말을 하는군. 당신 정비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원영의가 물었다."정비가 되면 좋은 점이 뭔데요?""좋은 점이 많지."제왕은 잠시 생각했다."최소한 당신은 본왕과 명분이 정당한 부부로 되는 거지.""명분이 정당한 부부가 된다면 뭐가 좋아요?"원영의가 다시 물었다. 제왕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당신은 부중에서 뜻대로 할 수 있어. 하인들도 모두 당신의 명을 따를 것이고."원영의가 반문했다."제가 지금 부중에서 뜻대로 살고 있지 않나요? 지금 하인들이 제 명을 따르지 않나요?""당신 본왕과 함께 여러 장소로 출석할 수 있지."원영의가 웃었다."지금은 제가 여러 장소에 출석할 수 없나요? "제왕은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당신 지금 고의적으로 엇나가는 거야? 당신이 정비와 측비의 다른 점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정비는 처고 측비는 첩이야, 명분부터 다르잖아.""처도 좋고 첩도 좋아요. 그러나 제가 저인 사실은 번함이 없어요."원영의는 손을 내저었다."전 당신의 처가 되기 싫어요 .좋기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명취와 합의 이혼하는가를 관심하는 것은 저와 직접적인 이해득실이 있어서예요. 누가 부중에 그러한 정실이 있기를 원하겠어요? 전 그녀를 보는 것조차 싫어요."말을 마치고는 곧 일어났다. 원영의가 떠나려 하자 우문경이 손을 잡았다."가자마, 본왕과 이야기나 좀
아사는 돌아간 뒤 부두에서 만아를 본 일을 원경능에게 알렸다.원경능은 이를 듣고 조금 마음이 시큰거렸다.이러한 시대에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아는 남정네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고 있으니 어디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인가?다만 자신의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아사더러 만아에게 은 열 냥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다음날 아침 아사가 돌아왔다. 만아가 안받으려고 하였는데 억지로 만아에게 넣어주고 달아났다고 전했다.원경능이 묵묵히 말했다."그 아이에게 주었으면 되었다.""왕비께서는 참 선량하십니다."아사가 칭찬했다. 원경능은 속으로 자신이 선량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은 열 냥은 준 것도 사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원경능은 이 은 열 냥으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했다.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녀는 만아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다만 원경능은 자신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원래의 원경능도 점차 모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혹 자기 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을 잃게 된 것이었다.우문호가 저녁에 돌아올 때 제왕을 데리고 함께 돌아왔다.그은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초왕부에 도착하더니 바로 소월각으로 들어가 숨었다.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왜요? 왜 구신이라도 본 듯이 숨어요?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기에 노기등등한 얼굴이에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경능은 자신 곁으로 끌어오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기억하거라. 네가 이후에 만일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뺨을 갈겨 죽일 것이야."원경능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무슨 아들이에요? 딸이면 안되나요? 제왕이 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놈이 연속 이틀 동안 관아로 와 나를 찾았어. 공무가 가득한데 저놈 때문에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이것 봐, 오늘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