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몸을 돌려 일어나 앉았다. 얼굴에는 난폭한 기운이 감돌았다. “너… 본왕의 이불이나 씻어라.”서일은 한쪽 눈을 감싸고 그 곳을 보다가 멍해졌다. “왕야, 이불에 오줌을 누신 건가요?”주먹 하나가 또 날아왔다. 다른 한쪽 눈도 시커매졌다. 우문호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제야 마음속에 치밀어 올랐던 화를 얼마간 억누를 수 있었다. 서일은 울상이 된 얼굴로 이불을 끌어안고 나갔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기라가 들어와 다시 이부자리를 깔았다. 조심스레 우문호를 바라보니 그는 화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예리한 눈길로 그녀를 위아래로 쳐다보는 것이 소름이 끼쳤다.왕야는 오늘 어찌 이러는 것인가? 기라는 전전긍긍하며 이부자리를 다 깐 후 재빨리 물러나겠노라 아뢰며 자리를 떴다.우문호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미 잠은 다 달아난 뒤였다.이렇게 괴로웠던 적이 없었다. 서일은 이불을 두드리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탕양이 손에 등불을 들고 다가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예의염치’를 베끼는 대신 이불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인가?” 서일은 새댁이 애절한 눈빛을 보내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탕대인은 왜 아직도 주무시지 않습니까?”“잤었네. 헌데 자네의 울부짖음에 깨어난 것이 아닌가?”탕양이 그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자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왜 자꾸 왕야의 노여움을 사는 게야?”서일도 억울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네 더 발분하지 않으면 왕야는 조만간 자네를 내보낼지도 모르겠네.”탕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서일은 혼비백산하여 손에 있던 이불을 던지며 물었다. “탕대인, 그게 사실입니까? 왕야가 절 내보낸다고요?”“자네 더 약삭빠르게 굴지 못하면 언제 쫓겨날지 모를 일이네.”탕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네도 알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깨지도록 싸워서라도 우리 초왕부에 들어 오고 싶어 한다는 걸.” 서일은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마음이 잔뜩 찢겨져 나갔다.맞
회왕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원경능은 우선 밖에서 엊저녁 시중들었던 머슴에게 설명을 들었다. 머슴은 엊저녁에도 각혈했었지만 기침은 많이 좋아졌다고 보고했다.희씨 어멈도 약을 먹은 정황을 보고했다. 저녁 식사 후 한 번, 밤중에 일어나 각혈한 후에 한 번 먹었고 오늘 아침 분은 아직 먹지 않았다고 했다. 원경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멈 수고했네. 낮에는 내가 지킬 테니 가서 주무시게.” 희씨 어멈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엊저녁 소인도 잠을 잤습니다. 그저 약 드실 시간에 깨어나 약을 드렸을 뿐입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로비께서 전문 인력을 보내시어 시중들게 하여 소인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알겠네, 로비마마는 어디 계신가?”원경능이 물었다.“주무시고 계십니다. 엊저녁 온밤 지키셨습니다.” 원경능은 좀 의아했다. 오늘 로비는 그녀를 감시하지 않을 셈인가? 비록 어제 로비는 그녀를 믿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원경능은 그녀가 자신을 완전히 신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회왕이 엊저녁 좀 괜찮아 진 것이 그녀의 생각을 바꾼 것일 터였다. 회왕은 아직 깨나지 않았다. 그러나 원경능과 희씨 어멈이 밖에서 작은 소리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는 깨어났다. 두어 번 기침을 하자 머슴이 얼른 달려가 시중들었다. 양치질시키고 세수시키고 머리까지 빗긴 후 다시 좁쌀죽을 들여왔다. 회왕을 아주 적절하게 보살펴 드렸다. 우문령이 입 가리개를 하고 들어왔다.“여섯째 오빠, 다섯째 올케가 지금 밖에 와있어요.” 회왕은 미소를 띠고 우문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았어. 이 계집애야, 너는 왜 이리 일찍 온 거야?” “제가 이 왕부에 거주한지 며칠 됐어요, 몰랐어요?”우문령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어?”회왕은 멍해 있다 눈가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넌 현모비의 책망이 두렵지 않느냐?” “모비는 한결같이 하찮은 일에도 크게 놀라는데요
원경능의 입가에는 담담한 미소가 어려있었다.그러나 회왕도 밖에서 하는 말을 들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의 귀가 밝아서가 아니라 기왕비의 목소리가 너무 큰 탓이었다.회왕은 웃었다. 한 가닥의 비꼼이 얼굴에 나타났다 흔적도 없이 사라 졌다. 회왕이 말했다. “다섯째 형수, 들으셨습니까? 본왕이 낙심한 것이 아닙니다. 밖에 있는 저 사람들도 사실은 본왕이 좋아질 거라 믿지 않고 있습니다.”“밖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의 의원은 바로 저니까요.”원경능은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침대 옆에 앉았다.회왕은 그녀를 보고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다섯째 형수는 지금 그 입 가리개를 쓰고 저에게 치료가 잘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겁니까? 다섯째 형수 본인도 믿지 않는 것 아닙니까?”원경능은 그가 아직도 마스크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이 입 가리개가 왕야의 마음을 괴롭게 한 건가요?”회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괴롭지 않습니다. 그저 본왕이 죄인이라 느낄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죽음을 전파하는 죄인 말입니다.”원경능이 말했다. “당신은 원죄(原罪)가 아니에요. 원죄는 바로 이 병이지요. 당신은 그것에 크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일 뿐입니다. 사실 전 이 입 가리개를 벗을 수도 있어요. 제가 꼭 이 병에 전염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겁니다. 생명은 아주 소중한 것이니 저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제 자신을 보호할 겁니다. 왕야는 아주 불행히도 이 병에 전염되었지요. 요 삼 년 동안 아마 적지 않은 쓴맛을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침상에 누워 어디도 가지 못하고, 조금 움직여도 기침으로 폐가 다 터지는 것 같았을 겁니다. 왕야의 고달픈 상황을 이해합니다. 왕야가 그 어떤 의원도 신임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틀림없이 예전에도 지금 상황처럼 조금 좋아졌던 적이 있었을 거예요. 새 약을 바꾸면 조금씩은 효과를 보이니까요. 그러나 며칠 지나면 병세를 억제하지 못해
뭇 사람들이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인중과 태양혈을 누르고 부채질을 해주었다. 로비는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그녀가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찢어질 듯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하고 기왕비를 손가락질했다. “왜서 그 애한테 그런 말을 했느냐? 그 애에게 남은 건 고작 그 하나의 희망뿐인데, 기어코 그를 죽여야만 속이 시원한 게야? 네게 거치적거리기라도 한 것이냐? 그 아이는 그저 환자일 뿐이고, 본궁의 친정에는 인재도, 권력도, 세력도 없다. 너희한테 방해가 되지 않는단 말이다!”로비의 이 말은 여러 사람들의 형식적인 가면을 찢어버린 셈이었다.누구나 다 기왕이 태자 자리를 꼭 얻으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로비 같은 사람들은 그저 모르는 척했고, 기타 공주들은 더더욱 굳이 총명한 것처럼 기왕비의 가식을 찢어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기왕비가 대단히 난처할거라 생각했다.하지만 기왕비는 난처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로비를 바라 보았을 뿐이었다. 뜻밖에도 그녀는 채 가시지 않은 한 가닥의 탄식을 내뱉었다.“로비 마마, 자고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 하였습니다. 제 호의를 로비마마께서 받아들이지 않는대도 괜찮습니다. 요 며칠 회왕부에서 여러모로 애를 쓴 건 모두 제가 스스로 원해서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로비를 향해 무릎을 굽혀 인사하고는, 담담한 눈길로 원경능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먼저 물러나니, 여섯째 시동생을 잘 돌봐 주세요.”그녀는 천천히 돌아섰다. 허리를 곧게 펴고 걸을 때에도 치마자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마치 뒤에 수천 수만의 궁비(宫婢)들을 거느린 것 같아 자못 기개가 있었다. 이게 바로 진정한 기왕비의 모습이었다. 원경능은 거기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기왕비가 떠난 후 사람들은 한바탕 로비를 위로했다.로비는 안정을 조금 찾자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원경능을 보며 말했다. “초왕비, 그 애의 치료와 약을 쓰는 데
고사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조용히 말했다. “권세란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모든 것이라고?”원경능은 비아냥거리듯 웃으면서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네. 난 권세가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그들도 모든 것을 다 얻지는 못했네.”“권세란 종래로 끝이 없는 것입니다.”그랬다. 황제가 되면 또 하늘과 높이를 비긴다. 권세에 끝이 어디 있겠는가? 문득 우문호도 이럴까 궁금해졌다.그녀가 고사에게 질문했다. “그대와 초왕은 우의가 깊은 것 같은데,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래 되었는가?”고사는 웃으며 말했다.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어릴 때의 정은 매우 갸륵한 법이지. 그럼 그와 저명취 사이의 일도 그댄 알고 있는 것인가?”“알지요. 모두 알고 있습니다.”그가 담담하게 원경능을 보며 물었다. “무엇이 궁금한 것입니까, 왕비?”“궁금한 건 딱히 없네. 난 그들 사이의 일을 알고 싶지 않아.”원경능이 대답했다.고사는 좀 의외라고 느꼈다. “소신은 왕비가 왕야의 속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원경능은 머리를 돌려 그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들지 말자’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좌우명이라네.”고사는 무슨 생각에 잠긴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는다’라… 왕야와 저명취 사이의 일을 아는 게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드는 일이란 말인가? 그녀가 두 사람 때문에 고민이 생기는 게 아닌 이상, 고민거리라 할 것이 전혀 없었다.원경능이 말했다.“힘들어, 걷지 못하겠으니 마차를 타야겠네.”고사는 그녀를 위해 발을 들어 올려주었다.“조심하십시오, 왕비.” “고맙네!”원경능은 마차에 올라 손으로 발을 잡고 고사를 쳐다봤다. “아침 저녁으로 배웅해 주어서 정말 고맙네, 고 대인.”“폐하의 명입니다.” 고사는 담담하게 말했다.발을 내려놓은 원경능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될수록 머릿속의 고민들을 다 밖으로 내보냈다.우문호는 원경능보다 조금 일찍
우문호는 방에서 한바탕 화를 내고 나니 입맛도 사라졌다. 오늘 관아에서 하루 종일 사체를 보고, 하루 종일 멸문사건의 재구성을 들었지만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아 마음속으로 조급하기도 하고 울화도 치밀어 올라있던 차 돌아와 서일이 만들어낸 이 망할 일 때문에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렸던 것이다. “탕양은?”그는 화를 낸 후 씩씩거리며 기라에게 물었다. 그러자 기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왕야께 아룁니다. 탕 대인은 오늘 저녁 무렵 밖으로 나갔습니다.”그는 탕양이 원경능을 마중 갔을 거라 생각하고 말했다. “가서 문지기한테 이르거라. 탕 대인더러 들어오는 대로 소월각에 들라 전하라고.” “네!”기라는 재빨리 나갔다. 마치 큰 사면을 받은 기분이었다.우문호는 목욕을 한 후 방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그는 계속 밖을 주시했다. 탕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탕양이 안 돌아왔다는 건 그녀도 안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했다.일주향이 타들어 가는 시간이 지나자 탕양이 급급히 안으로 들어왔다.“왕야, 저를 찾으셨습니까?”“어디 갔었느냐?”우문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를 쳐다보고는 짐짓 그가 원경능을 마중하러 갔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탕양은 이렇게 말했다.“소인 오늘 마을(庄子)에 다녀왔습니다. 추수가 곧 다가와서요.” 우문호는 ‘오’ 한마디를 하며 말했다.“마을에 다녀왔군. 그럼 됐었다. 나가보거라.” 탕양은 감히 머무르지 못하고 서일 그 나쁜 놈이 돌아오기 전에 재빨리 도망쳤다. 우문호는 기라를 불러 물었다. “왕비는 돌아 왔느냐?”“왕야께 아룁니다. 왕비께서는 이미 돌아와 봉의각에 계십니다.”“돌아왔다고? 언제 돌아온 것이냐?”기라는 신중하게 답했다. “아마 오신지 얼마 안될 겁니다.”우문호는 그녀도 내보냈다. “알겠다. 너도 나가보거라.”기라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돌아서 나갔다. 왕야는 요즘 참 변덕스러웠다. 우문호는 앉아서 차를 마셨지만 마음을 쉽게 진정시키지 못했다.
우문호의 눈이 돌연 동그래졌다. 너무 동그란 것이 마치 두 개의 커다란 흑진주 같았다. “자네 말은… 서일이 두 여인을 데리고 나가는 것을 자네와 원경능이 모두 보았다고?”“당연히 보았지요. 우리가 눈이 먼 것도 아닌데.”고사가 불만스레 말했다. 우문호는 ‘오’ 하면서 말했다. “그래서 그녀가 화가 났다고?”눈에는 뜻밖에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을 약간 띠고 있었다. “그럼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까?”고사는 의미심장하게 권유했다. “제가 당신에게 뭐라 하는 건 아닙니다만, 굳이 밖의 여인을 찾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당신이 어떤 신분입니까? 왕부에는 어떤 여인을 요구해도 다 있을 것 아닙니까? 이렇게 자신의 명예를 망가뜨릴 필요 있습니까?”우문호는 가르침을 잘 받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잘 알겠어. 이런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자네 먼저 회왕부로 돌아가. 본왕이 오늘 저녁에 그녀를 마중할 테니.”“그럼요, 마중 와야지요. 어젯밤 그녀는 문을 나서자마자 좌우를 기웃거렸습니다. 결국 당신이 오지 않은걸 알고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집에 와서 그 두 여인을 보았으니 그녀가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우문호는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 어젯밤 그녀를 마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좀 가식을 떨었을 뿐이었다. 고사는 충고를 마치고 곧 떠났다. 저녁 무렵 해가 넘어가기 전, 우문호는 제시간에 회왕부에 나타났다.원경능은 방안에서 한창 회왕이 약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회왕도 협조적으로 원경능 앞에서 약을 먹은 후 약간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마음 놓으셨습니까?”원경능은 눈을 내리깔고 환자와 따지지 말자고 생각했다.일어서서 몸을 돌리는데 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못 본 척 손에 그릇을 들고 그냥 나가려 했다.우문호도 그녀를 한번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쳐 회왕에게 말을 건넸다.“괜찮아 졌느냐?”우문호는 침대모서리에 걸터앉았다.곁눈질로 원경능이 빠른 걸음
손왕도 요 이틀 손왕비를 데리고 함께 회왕부로 갔다.손왕비는 매우 아름다웠다. 짙은 아름다움에 몸매도 아주 좋았다. 손왕의 옆에 서니 마치 미녀와 야수 같은 느낌이었다.손왕비는 자주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올 때마다 많은 자양제들을 들고 왔다. 아주 정성스레 준비해서 가져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녀가 들고 온 자양제나 약재들이 다 폐병에 좋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저명취도 제왕과 함께 한번 왔다 갔다.우문령은 시종 그녀의 뒤를 따라다녔다. 심지어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 회왕을 문안할 때도 옆에 달라붙어 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소란이라도 피울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저명취와 원경능도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았었는데 매우 정중했다. 회왕의 병세를 묻고는 무릎을 굽히며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회왕의 태도 변화가 제일 눈에 띄었다.태의가 말한 시한부 날짜가 지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이젠 각혈도 하지 않았다. 기침은 약간 있었지만 많이 줄었다. 심지어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걸어 다닐 수도 있었다.제일 기뻐하는 건 로비였다. 요 며칠 그녀는 원경능을 마치 신을 모시듯 했다. 원경능이 무엇을 먹고 싶다거나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즉시 하인을 시켜 제일 좋은 걸로 준비해왔다.원경능은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했다.이날 오후 원경능은 회왕에게 주사를 놓은 후 회왕부의 정원에 멍하니 혼자 앉아 있었다.사실 그녀도 습관이 되지 않았다. 칠, 팔 일이 지나도록 그들은 한번도 마주친 적 없었다. 그녀가 초왕부로 돌아가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적막하고 쓸쓸한 봉의각과 틀에 맞춰진 기씨 어멈,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녹아가 전부였다.다보를 제외하고 그녀와 말을 주고 받을 이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장난치며 치고받던 그 나날들이 그리워졌다.그녀는 난간에 기대여 그때 만났던 화원의 한 구석을 바라보았다. 바로 저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그가 그녀에게 입맞췄던 그곳 말이다
이 문제에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씨가 임신한 뒤로부터 그의 눈과 마음에는 다른 것들을 담지 못했었다.현재 제왕이 물으니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디 그렇게 많은 왜가 있어, 놓으면 놓는 거지.'"다섯째 형님."제왕은 우문호가 머뭇거리자 조금 몸을 일으키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혹 아직도 명취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우문호는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 다섯째 형수는 속이 매우 좁아.""형님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겁니까?"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좋아하지 않아.""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빨리 명취를 잊다니."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한참 뒤에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빛이 반짝였다."너의 다섯째 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지.""그 말인즉, 다른 사람이 생기면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건 아마 대체하는 방법인 듯 하군요. 다른 여인을 찾아야 되지요, 맞나요?"제왕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연구해본 적도 없는 걸.'허나 표면상으로는 적극적으로 말했다."맞아, 넌 동그란 얼굴의 계집애와 자주 있도록 시도해봐. 아마 곧 잊을 수 있을 거야."원영의를 말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말했다."이번에 영의가 조태의를 데리고 돌아왔기 다행이지 아니면 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네 다섯째 형수가 보낸 거다."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공을 쟁취했다. 일곱째는 늘 원씨에게 편견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을 쟁취하여야만 했다.그러나 제왕은 그 말을 흘려 보내고 홀로 중얼거렸다."사실, 동그란 얼굴도 괜찮아요. 자상하게 왕비를 소개해줄 것이라 했거든요."우문호가 불현듯 물었다."참, 오늘밤 돌아갈 거야?"제왕은 생각에 잠겼다."돌아갈 거예요. 동그란 얼굴이 있으니 절 괴롭히
우문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부황...."부황께서 합의 이혼을 동의하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말투에 불쾌한 느낌이 상당했다."그대로 하면 되느니라."명원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명취가 시집온 뒤로부터 사단이 끊인 적이 없었다. 작은 일은 저수부의 체면을 보아 눈 감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방임했더니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실의 체면을 깎는 건 괜찮으나 사적으로 친황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니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애당초 그녀의 명성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들 그녀가 현명하고 정숙하며 대가의 풍격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오늘 저씨 노태부인의 그 말을 해 이미 화가 치밀었었다. 저씨 가문의 체면이 참으로 대단했다."부황."우문호가 정색하더니 재빨리 물었다."부황의 뜻은 일곱째의 요구를 동의한다는 겁니까?""동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는데."명원제가 아비로써의 인내를 보여주었다."합의 이혼한 뒤 각자 재혼한다면 두 가문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매우 우러러보았다. 부황의 이 말은 참으로 가식적이었다. 너무 가식적이어서 전혀 가식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각별히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이 일을 일주일 내에 해결하거라. 해결하지 못하면 곤장을 맞으러 와야 한다. 꺼지거라."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우문호는 명을 받고 제왕을 찾으러 들어갔다.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하면서 출궁했다.그러나 명원제는 계속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군주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자가 있는 이외에 뭐가 나은 것이 있던가?황제란 수명이 짧은 직업이었다.옆에서 묵을 갈던 목여공공이 기쁘게 말했다."제왕과 초왕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음을 보셨으니 폐하께서도 시름을 놓으실 수 있습니다."명원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는 떳떳하고 일곱째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다행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크게 다투었을 것이다. 다투지 않더라도 이후에는 암투를 벌일 것이지.
우문호가 위로했다."그만 소리 질러, 부황 앞에서도 네가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면 네가 겁쟁이라고 꾸짖으실 거야."제왕은 아픔에 말도 하지 못했다.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실로 참을 수 없어 말했다."형님, 절 업어줘요.""상처가 앞에 있는데 내가 널 없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우문호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근심스러워졌다. '왜 이렇게 아픔을 참지 못한단 말인가? 예전에 원씨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입궁하여서도 억지로 버텼었는데, 일곱째는 여인보다 못하는군.""다쳐서 아픈 것이 낫지 이렇게 상처가 찢기는 고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왕은 걸음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입술에도 혈색이 보이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업고 나니 제왕이 또 "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우문호가 물었다."되겠어?"제왕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목여공공을 바라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나를 들고 가게."목여공공은 이미 성지를 전하러 출궁한 궁인에게 물어보았었다. 부상 정도가 그렇게 엄중하지 않다고 조태의가 말했다고 전했다. 가슴팍의 상처는 괜찮고 복부의 상처가 조금 깊다고 했다.그리하여 제왕의 이러한 모습을 본 목여공공은 근심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태의가 확실하게 진찰한 게 맞습니까? 내장이 상한 건 아닙니까?"제왕은 숨을 들이쉬었다."내장이 상한 건 아니네."목여공공은 제왕의 이런 모습으로 실로 궁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말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들고 갑시다."어깨 가마와 들것이 없으니 한 사람은 어깨를, 한 사람은 두 다리를 들고 갔다. 제왕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입에 초롱 손잡이를 물로 있었다. 허나 자신이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제왕은 칠흙같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등불의 빛은 궁중의 밤을 밝히기엔 부족했다. 그는 그저 딴 세상에 온 듯 하였다.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
황후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곱째가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 죄명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죄명이 실증되고 정말 백관 앞에서 죄를 심의 받는다면 절로 미래를 망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일의 진위를 막론하고 재빨리 답했다."합방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이야 말로 전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태노부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저명취의 낯빛을 보고 태후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다만 바보가 아닌 태노부인은 멍해졌다. '측비 때문이 아니라면 제왕은 왜 합의 이혼하려고 하려는 걸까? 설마, 그 원측비의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명취와 초왕 사이가 애매하단 말인가?'태노부인의 얼굴은 당장에 어두워졌다. 다만 태후가 자리에 있는지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나 태후는 태노부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한마디 묻겠네. 한 여인이 처로써 작은 일로 자결하고 또 낭군을 중상한 뒤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노부인의 부중에서는 어떻게 처단하는가?"태노부인은 실로 체면이 깎였으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제왕부부는 예전에 화목했었고 측비가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합방도 하지 않았으니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태노부인은 그저 기가 죽어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아둔했습니다.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입궁하여 태후마마와 황후를 귀찮게 했습니다. 다만 젊은 부부가 다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쉽게 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합의 이혼이네."태후가 차가운 낯빛으로 곧 시정했다."황실의 체면이 중요하나 황실의 혈육도 잃을 수 없네. 제왕은 황제의 적자네. 부부가 작은 일로 모순이 생겨 무기를 휘두른다면 철로 만든 몸이라 하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네."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 보았다."너의 며느리고 또 너의 조카니 네가 알아서 이 일을 해결하
황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절부절하여 명원제를 흘깃 보았는데 명원제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황후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하라고 태노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태노부인이 싸늘하고도 딱딱하게 말했다."폐하, 황후마마, 제왕은 황실자손으로써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렸습니다. 비록 명취가 충동한 것은 잘못이나 모든 잘못이 명취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제왕이 측비로 인해 합의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소문이 퍼진다면 실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에 황실과 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일 겁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왕의 상처가 호전되면 백관들 앞에서 죄를 심의 받고 합의 이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태노부인의 이 말은 절대 사정의 의미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심지어 태노부인이 황실의 체면과 저씨 가문의 체면을 함께 논할 때 황후의 낯빛이 돌연 변했다. 크게 경악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명원제를 바라 보았다.아까만 해도 낯빛이 어둡던 명원제는 태노부인의 이 말을 듣고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했다."노부인, 조급해하지 말게. 이 일은 짐이 자세하게 물어볼 것이네. 노부인의 신체가 편찮다고 수부에게 들었으니 돌아가 푹 쉬게. 자손들은 자연히 자손들만의 복이 있을 것이니 노부인이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네."말을 마친 명원제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 나가기 전에 담담하게 저명취를 흘깃 보았다.태노부인은 기가 차 멍해졌다. 명원제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명원제는 나간 뒤 목여공공에게 분부했다."초왕과 제왕을 부르거라."목여공공은 잠시 머뭇거렸다."폐하, 제왕은 아직 부상 당한 몸입니다.""죽지 않을 거다."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일 중상이라면 일찍이 부중에서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 아뢰거라. 태후께 한 번 들리라고 전하고."목여공공은 명을 받
다만 저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고 울고 있었는데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제왕은 조태의와 원영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번에 원영의는 매우 눈치가 빨랐다. 조태의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조태의가 약가루를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건 지혈약이다. 상처부분에 뿌리고 살짝 동여맨다면 이틀 뒤 바로 괜찮아질 거다."시녀는 이미 놀라 손발이 나른해진 상태였다. 약가루를 건네 받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제왕은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저명취의 곁에 앉아 물었다."왜 그러는데?"저명취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늘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도리어 맑아졌다. 사실 원영의의 말들이 그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이다.만일 명취가 정말 자신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째지게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고 당당한 친왕이었다. 다른 것을 쟁취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평생의 부귀영화를 줄 수 있었다.누구도 그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한가하게 놀고 있는 왕야를 상대하지 않았다. 명취는 그렇게 총명하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저수부의 외손자였고 현재 황후의 적자였다.큰 형님이 태자로, 황제로 된다고 하여도 감히 자신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천하 사람들의 공론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당연히, 좀 못나게 말한다면 큰 형님은 애초에 자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그리하니 명취는 정말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그가 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을까? 그리하여 제왕은 마음이 아프지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끝내. 그대가 시집온 날부터 난 그대의 마음 속에 내가 없다는 걸 알았어. 난 자연히 다섯째 형님과 비할 바가 못되지. 나도 내 자신을 알아. 그대는 시종일관 다섯째 형님을 좋아했던 거야. 다만 다섯째 형님이 그대를 저버리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시집온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아사가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뭐가 산 것이라고요?""본왕의 아들 말이다!"우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아사는 머뭇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턍양을 바라 보았다. 탕양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왕야가 이미 미쳤다는 손짓을 했다.원경능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됐어요, 식사나 해요.""우리 큰 언니는요?""돌아갔어."원경능이 답했다. 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제왕에게 정말 화가 나요. 글쎄 큰 언니와 서일이 노닥거린다면서 큰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가 화를 참고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우문호는 기분이 매우 좋은지라 이 말을 듣고 아사를 흘겨봤다."이 계집아이 좀 봐, 일곱째가 매우 연약한 것처럼 말하네. 일곱째도 무술을 연마했었어.""설마요?"아사가 경악했다."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하게 굴어요?"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약하지 않아, 최소한 손으로 계란을 한 알 깰 수 있으니.""전 돌을 깰 수 있어요."아사가 답하니 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제왕이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배웠지, 황자로써 누가 배우지 않아도 되겠어? 마술과 궁술, 무술 모두 익혀야 하지. 일곱째도 배웠었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로는 배우지 않았어.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야."아사는 의아해졌다."왜요?""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술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어."우문호가 말했다. 아사는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정말 무술을 익혔다면 왜 반격을 하지 않았겠어요?""일곱째는 여인을 때리지 않아."우문호가 답했다****여인을 때리지 않는 제왕은 제왕부로 돌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곧장 저명취의 방으로 향했다.요 이틀간 저명취는 많이 울었는지라 눈이 계속 부어있었다. 제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히 눈길을 위로 들었다."성지가 내려진 건가요
제왕은 기가 막혔다."당신의 말투가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하다니. 본왕의 혼사는 모후의 뜻을 따라야 해."원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눈에 하얀 이,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조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모두 애라 달래면 된다고요. 그리고 당신의 모후는...."제왕이 화를 냈다."당신의 모후이기도 하잖아!"원영의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가 생각난 듯 무미건조하게 코를 만졌다."전 정비가 아니라 모후라고 부르면 안돼요."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 계속 본왕에게 합의 이혼하라고 하고 지금 또 이러한 말을 하는군. 당신 정비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원영의가 물었다."정비가 되면 좋은 점이 뭔데요?""좋은 점이 많지."제왕은 잠시 생각했다."최소한 당신은 본왕과 명분이 정당한 부부로 되는 거지.""명분이 정당한 부부가 된다면 뭐가 좋아요?"원영의가 다시 물었다. 제왕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당신은 부중에서 뜻대로 할 수 있어. 하인들도 모두 당신의 명을 따를 것이고."원영의가 반문했다."제가 지금 부중에서 뜻대로 살고 있지 않나요? 지금 하인들이 제 명을 따르지 않나요?""당신 본왕과 함께 여러 장소로 출석할 수 있지."원영의가 웃었다."지금은 제가 여러 장소에 출석할 수 없나요? "제왕은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당신 지금 고의적으로 엇나가는 거야? 당신이 정비와 측비의 다른 점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정비는 처고 측비는 첩이야, 명분부터 다르잖아.""처도 좋고 첩도 좋아요. 그러나 제가 저인 사실은 번함이 없어요."원영의는 손을 내저었다."전 당신의 처가 되기 싫어요 .좋기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명취와 합의 이혼하는가를 관심하는 것은 저와 직접적인 이해득실이 있어서예요. 누가 부중에 그러한 정실이 있기를 원하겠어요? 전 그녀를 보는 것조차 싫어요."말을 마치고는 곧 일어났다. 원영의가 떠나려 하자 우문경이 손을 잡았다."가자마, 본왕과 이야기나 좀
아사는 돌아간 뒤 부두에서 만아를 본 일을 원경능에게 알렸다.원경능은 이를 듣고 조금 마음이 시큰거렸다.이러한 시대에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아는 남정네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고 있으니 어디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인가?다만 자신의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아사더러 만아에게 은 열 냥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다음날 아침 아사가 돌아왔다. 만아가 안받으려고 하였는데 억지로 만아에게 넣어주고 달아났다고 전했다.원경능이 묵묵히 말했다."그 아이에게 주었으면 되었다.""왕비께서는 참 선량하십니다."아사가 칭찬했다. 원경능은 속으로 자신이 선량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은 열 냥은 준 것도 사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원경능은 이 은 열 냥으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했다.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녀는 만아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다만 원경능은 자신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원래의 원경능도 점차 모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혹 자기 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을 잃게 된 것이었다.우문호가 저녁에 돌아올 때 제왕을 데리고 함께 돌아왔다.그은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초왕부에 도착하더니 바로 소월각으로 들어가 숨었다.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왜요? 왜 구신이라도 본 듯이 숨어요?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기에 노기등등한 얼굴이에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경능은 자신 곁으로 끌어오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기억하거라. 네가 이후에 만일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뺨을 갈겨 죽일 것이야."원경능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무슨 아들이에요? 딸이면 안되나요? 제왕이 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놈이 연속 이틀 동안 관아로 와 나를 찾았어. 공무가 가득한데 저놈 때문에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이것 봐, 오늘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