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의 눈이 돌연 동그래졌다. 너무 동그란 것이 마치 두 개의 커다란 흑진주 같았다. “자네 말은… 서일이 두 여인을 데리고 나가는 것을 자네와 원경능이 모두 보았다고?”“당연히 보았지요. 우리가 눈이 먼 것도 아닌데.”고사가 불만스레 말했다. 우문호는 ‘오’ 하면서 말했다. “그래서 그녀가 화가 났다고?”눈에는 뜻밖에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을 약간 띠고 있었다. “그럼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까?”고사는 의미심장하게 권유했다. “제가 당신에게 뭐라 하는 건 아닙니다만, 굳이 밖의 여인을 찾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당신이 어떤 신분입니까? 왕부에는 어떤 여인을 요구해도 다 있을 것 아닙니까? 이렇게 자신의 명예를 망가뜨릴 필요 있습니까?”우문호는 가르침을 잘 받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잘 알겠어. 이런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자네 먼저 회왕부로 돌아가. 본왕이 오늘 저녁에 그녀를 마중할 테니.”“그럼요, 마중 와야지요. 어젯밤 그녀는 문을 나서자마자 좌우를 기웃거렸습니다. 결국 당신이 오지 않은걸 알고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집에 와서 그 두 여인을 보았으니 그녀가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우문호는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 어젯밤 그녀를 마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좀 가식을 떨었을 뿐이었다. 고사는 충고를 마치고 곧 떠났다. 저녁 무렵 해가 넘어가기 전, 우문호는 제시간에 회왕부에 나타났다.원경능은 방안에서 한창 회왕이 약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회왕도 협조적으로 원경능 앞에서 약을 먹은 후 약간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마음 놓으셨습니까?”원경능은 눈을 내리깔고 환자와 따지지 말자고 생각했다.일어서서 몸을 돌리는데 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못 본 척 손에 그릇을 들고 그냥 나가려 했다.우문호도 그녀를 한번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쳐 회왕에게 말을 건넸다.“괜찮아 졌느냐?”우문호는 침대모서리에 걸터앉았다.곁눈질로 원경능이 빠른 걸음
손왕도 요 이틀 손왕비를 데리고 함께 회왕부로 갔다.손왕비는 매우 아름다웠다. 짙은 아름다움에 몸매도 아주 좋았다. 손왕의 옆에 서니 마치 미녀와 야수 같은 느낌이었다.손왕비는 자주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올 때마다 많은 자양제들을 들고 왔다. 아주 정성스레 준비해서 가져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녀가 들고 온 자양제나 약재들이 다 폐병에 좋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저명취도 제왕과 함께 한번 왔다 갔다.우문령은 시종 그녀의 뒤를 따라다녔다. 심지어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 회왕을 문안할 때도 옆에 달라붙어 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소란이라도 피울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저명취와 원경능도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았었는데 매우 정중했다. 회왕의 병세를 묻고는 무릎을 굽히며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회왕의 태도 변화가 제일 눈에 띄었다.태의가 말한 시한부 날짜가 지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이젠 각혈도 하지 않았다. 기침은 약간 있었지만 많이 줄었다. 심지어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걸어 다닐 수도 있었다.제일 기뻐하는 건 로비였다. 요 며칠 그녀는 원경능을 마치 신을 모시듯 했다. 원경능이 무엇을 먹고 싶다거나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즉시 하인을 시켜 제일 좋은 걸로 준비해왔다.원경능은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했다.이날 오후 원경능은 회왕에게 주사를 놓은 후 회왕부의 정원에 멍하니 혼자 앉아 있었다.사실 그녀도 습관이 되지 않았다. 칠, 팔 일이 지나도록 그들은 한번도 마주친 적 없었다. 그녀가 초왕부로 돌아가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적막하고 쓸쓸한 봉의각과 틀에 맞춰진 기씨 어멈,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녹아가 전부였다.다보를 제외하고 그녀와 말을 주고 받을 이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장난치며 치고받던 그 나날들이 그리워졌다.그녀는 난간에 기대여 그때 만났던 화원의 한 구석을 바라보았다. 바로 저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그가 그녀에게 입맞췄던 그곳 말이다
우문호는 현재 마음이 참을 수 없이 괴롭고 쿡쿡 쑤셨다.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정말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녀가 자네에게 가져다 주는 건 고통뿐일 거야. 즐거움도, 기쁨도 없이 말이야.”“고통이 있으면 꼭 즐거움도 있을 겁니다.”우문호는 머리를 젖히고 남은 술을 다 들이켰다. 그는 자신과 고사 사이에 더 이상 공통된 언어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우의도 거의 끝인 듯싶었다.하지만 마지막으로 충고를 해줬다. 그는 고사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좋기는 그러지 마. 자네 그럼 꼭 후회할거야.”고사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앉아계십시오. 저랑 술을 좀 더 마십시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당신이 저명취에 대한 감정이 정말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당신은 그녀를 그리워할 수도, 추구할 수도 없어 마음을 졸여본 적 없지 않습니까, 아니면 하루를 못 보아서 이 세상이 다 잿빛으로 물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없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저 그녀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당신의 그 왕비는… 됐습니다. 당신은 그녀에게 당한 것이니 당연히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을 테지요.”우문호는 그를 밀치며 말했다. “자네 정신 좀 차려.” 말을 마친 그는 불쾌해하며 자리를 떠났다.“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고사가 갑자기 그를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고함을 질렀다.이건 좀 희한한 일이었다. 우문호는 몸을 돌리며 물었다. “누군데?”고사는 손가락을 하나 펴며 말했다. “원경……”신 한 짝이 정면으로 날아오며 고사의 얼굴을 명중했다. 우문호는 마치 한 마리의 성난 사자마냥 달려들어 고사를 한바탕 두들겨 팼다.고사도 영문을 모른 채 한바탕 얻어 맞고 나니 달갑지 않았다. 그도 약간의 술기운을 빌어 그와 함께 뒹굴며 싸웠다.둘 다 무예가 있었지만 그들은 시정잡배마냥 치고 받으며 싸웠다. 상대방이 한 주먹 날리면 바로 주먹을 날리고, 한번 잡아뜯으면 함께 잡아뜯으면서 말이다. 나중에 둘 다 숨이 차서 바닥
원경능은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린 채 말했다. “저는 사실 마음이 쓰였어요. 당신이 그들과 같이 있은 줄 알고.”우문호의 눈에는 선명한 불꽃이 일었다. ”당신이 왜 마음이 쓰이는데? 그대는 본왕더러 그대와 이혼하라 하지 않았나?”원경능은 한참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말은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풀이 죽어 일어나며 말했다. “됐어요. 저는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왕야도 일찍 주무세요!”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 ”가지마!”그는 일어섰다. 그녀를 품 안에 안으며 입술을 부딪쳐왔다. 오래도록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저질러버렸다. 바로 그녀와의 진한 입맞춤 말이다.기라는 얼른 밖에서 문을 닫아 누구도 왕야와 왕비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였다.이 입맞춤으로 요 며칠 억눌려있었던 그리움이 전부 폭발했다. 입술은 한 줌 한 줌의 불꽃을 일으켜 나중엔 모든 이성을 송두리째 불태워버렸다.원경능은 그에게 안겨 침대에 눕혀졌다. 옷은 절반쯤 흘러내렸다. 그 입맞춤은 거의 그녀의 모든 산소를 소진하게 했다. 그녀의 대뇌는 지금 엄중한 산소부족 상태였다. 그녀는 온몸이 나른하여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그의 손은 그녀의 몸 위를 천천히 노닐다가 결국 그녀의 가슴 위에 닿았다. 그는 머리를 그 사이에 파묻으며 마치 굶주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탐했다.긴장한 원경능은 마치 뇌의 부족한 산소를 보충하듯 줄곧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녀는 몸을 가볍게 떨며 어쩔 줄 몰라 했다.그가 온몸으로 그녀를 내리누르자 그녀는 그제서야 급히 고개를 들어 그의 깊고도 고요한 눈을 쳐다보았다. 속눈썹도 놀라 번득였다.”허락해 줄 수 있어?”그는 눈에 혼란스러움을 띠고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래의 열기는 이미 끝에 다다랐지만,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그녀에게 물었다.원경능은 숨을 참았다. 얼마 후 그녀는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그는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얼
오늘은 우문호와 고사가 함께 원경능을 회왕부로 바래다 줬다.둘이 딱 붙어있는 꼴을 보고 고사는 줄곧 눈을 흘겼다. ”오늘 저녁에도 제가 배웅 할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고사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오늘 저녁도 본왕이 마중하러 올 거야. 자넨 가서 자네 일이나 보도록 해.”우문호가 말했다.고사는 한가로워졌다. 아무튼 오늘은 이 얼굴로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좋기는 어디에 숨어야 했다.두 사람은 함께 마차에서 내려 왕부로 들어갔다. 우문호는 신신당부했다. “오늘은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해. 회왕부에 사랑채가 많으니, 사람을 시켜 방을 하나 안배해 달라해. 적어도 한 두 시진은 자야 해, 알았지?””알았어요. 당신 오는 내내 말했어요.”원경능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알았어. 더는 잔소리 하지 않을게. 명심하면 돼.”우문호는 웃었다. 확실히 좀 말이 많았다. 회왕은 모처럼 두 부부가 함께 들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며칠 내내 이 두 부부가 동시에 이 방에 있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마지막으로 본 게 둘이 여기서 싸울 때였었다. 하여 이 며칠 원경능은 과묵한 사람으로 변해버려 필요한 말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우문호는 오늘 말을 아주 잘 들었다. 그가 원경능에게 입 가리개를 요구했다. 원경능이 마스크를 넘겨주며 말했다. “며칠 지나면 입 가리개를 안 해도 됩니다. 반 달이 지나면 전염성이 많이 낮아져 그냥 넘어가도 됩니다.”우문호는 기뻐하며 물었다. “그 말은 여섯째의 병이 다 나았다는 건가?” ”계속 치료해야 합니다. 여섯 달은 약을 계속 먹어야 합니다.”원경능은 예전에 하던 대로 청진기를 꺼내 들고 회왕을 진찰하려 했다.”설령 여섯 달 후에 죽는다 해도 본왕은 이익을 본 셈입니다.”회왕은 스스로 옷깃을 들었다. 습관적인 동작을 오래 하다 보니 그도 이젠 요령을 잘 알았다.”헛소리.”우문호가 질책했다.로비가 웃으며 들어왔다. “그래, 저 애의 입을 찢어 놔야 한다. 온종일 헛소리를
원경능은 밖으로 나간 후 로비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왕야의 병세가 조금 호전된 것으로 보이니 필시 왕야의 음식에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절대 누가 거기에 손을 대게 해서는 안됩니다.”“넌 정말 그 애에게 누군가 손을 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로비가 물었다.원경능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글쎄요,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오늘 로비에게서 기왕비가 어제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기왕부부의 야심은 뻔히 드러나 보여 누구나 다 아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문호가 경조부윤 자리에 올랐는데, 그들이 과연 원경능이 회왕을 치료하여 또 한차례 공을 세우는 것을 두고 보기만 하겠는가?그러니 그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회왕에게 맞서려 할 것이다. 회왕이 중독에 의해 사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터였다. 그 후 그녀의 약에 독이 들어있었다고 한다면, 주치의인 그녀는 발을 뺄 수 없을 테니.로비는 현재 원경능을 매우 신임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분부하자, 로비는 사람을 시켜 회왕의 식사를 꼭 잘 살피도록 명하였다.그러나 점심이 되자 회왕은 이유 없이 복통과 구토,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식중독의 징후였다.다행히 약상자가 훌륭히 제 기능을 해냈다. 위를 세척하는 생리식염수가 즉시 구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위세척을 마치니 회왕에게는 이미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한바탕 고생을 하고 하니 회왕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듯했다.로비는 크게 노하며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게 했다.그러나 회왕의 음식은 전부 로비 신변 사람의 손을 거친 것이었다. 로비는 그들을 깊게 믿고 있었다. 결국 회왕부의 가신이 그녀에게 말했다.“식재료에 약을 넣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식재료는 매일 밖에서 구매합니다. 만일 꿍꿍이를 품은 자가 눈독을 들였다면 여기에 손을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로비는 오늘 들여온 식재료를 살피라고 명했다. 식재료는 문제 없었지만 한 덩이 살코기의 맛이 변한 것을 발견했다.날씨는 추운
마차가 갑자기 멈췄다.손왕이 발을 젖히자 서일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나오지 마십시오, 문제가 생겼습니다.”막 고개를 내민 손왕이 이내 움츠렸다.무언가 빠른 속도로 공기를 가르며 ‘쌩’하는 소리와 함께 서일의 귓전을 스쳤다. 서일이 몸을 옆으로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이 화살은 정통으로 그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을 것이었다.“자객입니다!”서일이 크게 분노하며 머슴더러 서둘러 마차를 몰게 했다. 그가 칼을 휘둘러 화살을 막아냈다. 원경능은 자객이라는 소리에 그제야 머릿속으로 깨달음을 얻었다.회왕을 죽이는 방법에는 독을 넣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죽는다면 회왕을 치료해 줄 이가 없어지기에 회왕은 어쨌든 죽게 될 터였다.그녀는 오늘 줄곧 어딘가 찝찝했었는데 알고 보니 적은 회왕 뿐만 아니라 그녀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자객의 수는 많지 않았다. 또한,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화살만 날리고 있었다. 화살은 급히 날려졌지만 비처럼 쏟아지지는 않았다. 서일은 자객들이 아마 3명 정도 밖에 없을 것이라고 추측했다.말이 화살에 맞지 않고 계속 달리기만 한다면 적은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럼 살길이 있었다.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고, 말이 처참하게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두 다리가 꺾이더니 마차가 뒤집어졌다.희씨 어멈은 원경능을 꽉 끌어안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손왕은 몸이 육중하여 땅에 쓰러진 후 몇 번 발버둥쳐도 일어설 수 없었다. 원경능이 다가가 그를 부축해주는데 화살 하나가 급격히 날아와 그녀의 다리에 꽂혔다.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에 퍼졌다.사방은 온통 시커맸다. 머슴의 등불은 이미 던져버렸다. 조명이 없으니 소리를 내지 않으면 상대방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그러니 원경능은 눈물을 흘릴 정로도 고통스러웠지만 한사코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다.또 한 바의 화살이 날아와 원경능의 어깨에 꽂혔다. 원경능은 아파서 거의 기절할 뻔했다. 이를 악물었지만 끝내 고통의 신음이 흘러나왔다.희씨 어멈은 너무 놀라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서일은
그녀의 머리 속에는 또 하나의 뚜렷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손왕이었다. 혹시 손왕의 목숨이 위태로운 건 아닐까?그리고 회왕에게도 내일 약을 써야 했다. 주사를 안 맞더라도 약은 꼭 먹어야 했다.다행히 오늘 저녁 떠나기 전 두 번 분량의 약을 남겼다. 그녀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그녀가 죽는다면 회왕은 약이 끊기게 된다. 그는 아직 약을 끊으면 안되었다.다만 너무 고통스러웠다. 왜 이렇게 고통스럽단 말인가. 그녀는 그저 어깨와 다리에 부상을 입었을 뿐인데 왜 온 몸이 아픈 것인가.그녀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 해도 한 음절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그녀는 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정말 그인지는 모르겠다. 목소리가 좀 달랐다. 그 목소리는 계속 떨리고 있었다.‘걱정하지 마세요. 걱정 말아요. 저는 버텨낼 수 있을 거예요.’“왕야, 뜨거운 물이 준비되었습니다.”기씨 어멈도 무척이나 놀랐다. 돌연히 왕부로 모셔진 사람이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본왕이 하지!”우문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희씨 어멈이 말하길 손왕이 그녀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손왕이 화살을 대신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그 화살은 직접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라고.기씨 어멈이 뜨거운 수건을 건네주자 그것을 받은 우문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피는 이미 굳어있어서 닦아내기 힘들었다. 그는 힘을 쓰지 못했다. 행여 그녀가 또다시 고통스러워할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비록 혼절했지만 여전히 몸을 떨고 있었다. 고통 때문이었다.이렇게 마르고 몸이 약한 그녀가 어찌 두 화살을 견뎌 낼 수 있단 말인가?“고사와 서일은?”우문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탕양이 재빨리 들어와 아뢰었다.“걱정 마십시오, 왕야. 서일과 고사는 지금 조사 중에 있습니다. 자객의 신분은 빠른 시일 내에 밝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본왕은 진실을 알고 싶다. 배후에서 지시한 사람 말이다!”우문호는 한 줄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