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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내 생각 했어?

서일이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왕부에 들어섰다. 그는 장방(账房)에 가서 종이, 붓, 먹, 벼루를 챙겼다.

장방 선생은 그의 사촌 동생이었는데 선지(宣纸) 천 장을 달라고 하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렇게나 많이요? 곳간(库房)에 가야 할 듯싶어요. 탕 대인께 곳간의 열쇠를 받아 혼자 알아서 꺼내세요.”

서일은 탕양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탕양은 방금 장부 대조를 마쳤는데 그가 천 장의 선지를 요구하자 의아해서 질문했다.

“그렇게 많은 종이로 무얼 하려고 그러는가?”

서일은 울상을 지었다.

“탕 대인, 이번엔 꼭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무슨 일인가?”

탕양이 이상히 여기며 물었다. 서일이 울상을 짓는 모습을 처음 봤다.

“왕야께서 저에게 ‘예의염치’ 네 글자를 천 번 베끼라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예의’는 쓸 줄 아는데 ‘염치’는 어떻게 씁니까?”

탕양이 눈썹을 치켜 떴다.

“이상하군, 자네가 ‘염치’를 쓸 줄 모르는 건 당연하네. 자넨 염치가 없으니까. 헌데 어떻게 ‘예의’를 쓸 줄 안단 말인가? 자네한테 예의가 어디 있다고?”

서일이 발을 굴렀다.

“전 이렇게 비참한데 지금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저를 도와주지 않으면 나중에 탕 대인도 제 도움 받을 생각 하지 마십시오.”

탕양이 웃었다.

“자네가 언제 날 도와준 적 있는가?”

“언젠가 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겁니다.”

서일이 원망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탕양은 웃으며 열쇠를 가지고 그와 함께 나갔다.

“가세, 곳간에서 종이를 가져와야지. 허나 자넨 왜 왕야께 벌을 받게 되었는지 내게 알려주어야 하네.”

서일은 길을 걸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제가 왕부까지 마차를 몰고 왔으니 분명 제가 발을 젖히고 왕야와 왕비를 마차에서 내리게 할 것 아닙니까? 헌데 누가 마차 안이 더울 줄 알았겠습니까, 왕야와 왕비는 온 얼굴이 땀 투성이였습니다. 왕비의 옷깃도 벌어져있었고요. 잠깐 눈길을 주었을 뿐인데 왕야께서 저를 욕하셨습니다.”

탕양이 잠시 멍하니 걸음을 멈췄다.

“정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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