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제왕은 도리어 그를 위로했다.“다섯째 형님, 그럼 됐습니다. 형님도 그녀와 승강이하지 마십시오. 여인은 도리를 따지지 않습니다. 모든 여인이 명취처럼 사리에 밝은 게 아니니까요.”우문호가 말했다.“그래, 명취는 사리에 밝은 사람이니 그녀에게 이 일은 여기까지 하자고 전하거라. 그녀를 화나게 했다간 지팡이가 날아들지도 모르는 일이니. 물에 빠진 것도 서러운데 맞기까지 해서야 되겠냐? 그럴 가치가 없다. 저런 여자한테 화풀이하는 건 가치가 없는 일이야.”그는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꼬리가 풀려버렸다.제왕은 잠시 멍해 있었다.“다섯째 형님, 어째 형님은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우문호는 표정을 갈무리하고 그를 한번 흘겨봤다.“그럼 울기라도 하란 말이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부인에게 맞고 산다는 걸 들키면 안되지 않느냐?”일리가 있었다!“허면 이 일은, 이렇게 끝내는 건가요?”“어장을 봐서 참아 보거라!”우문호는 말을 마치고는 원경능을 찾으러 갔다.요즘 이 여인은 한시라도 자신의 시야를 벗어나게 하면 안되었다. 걸핏하면 사람들에게 화를 내니 말이다. 점점 더 제멋대로 굴고 있었다.그런데 원경능은?우문호는 한번 쭉 훑었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이렇게 사라진단 말인가?원경능은 창평공주 우문령(昌平公主宇文龄)과 문경공주에게 끌려갔다.두 자매는 진심으로 회왕의 병세를 관심하고 있었다. 하여 제왕이 우문호를 끌고 간 후 냉큼 원경능을 이끌고 밖의 정원으로 걸음을 옮겨 회왕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능은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줬다. 문경공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이 고비를 넘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미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그녀의 눈 밑이 거멓고 피부도 푸석해진 것을 보아 확실히 잠을 설친 듯싶었다. 하여 원경능은 그녀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공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곁눈질로 저명취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우문령이 치를
원경능은 손을 내리고 조금 달가워하지 않는 투로 물었다.“그럼 어떤 방법이 당신한테 먹히는 데요? 미안하다니까요?”“미안한데도 이렇게 당당한 거야? 이렇게 날뛴다고? 이게 잘못했다는 태도야? 사과는 했어? 용서는 구했냐고?”그는 힐난을 퍼부었다. 실로 너무 오랫동안 이 분노를 참았었다.원경능도 화가 치밀었다.“그냥 한마디 한 것 같고 왜 그래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 건데, 이렇게 바가지 긁는 아낙네처럼 계속 늘어져야겠어요? 당신도 뒤에서 저에 대한 좋은 말은 한적 없잖아요, 어쨌든 난 당신 생명의 은….”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앵두빛 입술 끝은 살짝 올라가고 눈빛은 조금 가라앉았다. 그녀는 약간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몸을 조금 기울이고 있었는데 불쾌감 속에서도 다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은인이라는 한마디는 차마 입밖에 낼 수 없었다. 그녀가 눈길을 슬쩍 피했다.우문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은혜로 사람을 협박하겠다는 것인가? 무법천지가 따로 없군. 그는 생각지도 않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살짝 치켜 올라간 입술을 베어 물었다. 손찌검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니 그저 대신 벌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빨간 입술이 닿는 순간 그 말랑함이 심장 끝까지 파고들었다. 몸은 뻣뻣하게 굳었고 머릿속도 새하얘졌다. 원경능의 머리도 순식간에 새하얘졌다.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포개진 입술 그대로 얼어붙었다. 원경능은 저도 모르게 가지런한 이빨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 손으로 우문호의 가슴을 밀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는 텅 비었다. 심장 박동소리는 천둥소리처럼 가슴속에서 메아리 쳤다.두 사람의 호흡이 가빠졌다. 서로의 손이 통제를 잃고 상대방을 껴안았다. 이건 주관적인 의식이 아닌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그녀가 가볍게 그의 입술을 깨문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우문호의 입술이 묵직하게 내려앉으며 비벼지고 깊게 파고들었다. 입술과 이가 부딪히는 것과 동시에 마음도 서로 뒤엉키며 숨결이
원경능은 피할 수 없어 염치 불고하고 낙평공주를 대면했다.낙평공주는 그녀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여섯째의 병을 치료한다고요, 다른 사람은 당신의 능력을 모르겠지만 본궁은 잘 알고 있습니다. 본궁의 거처에서 그런 저속한 일을 꾸민 것도 아직 당신과 따지지 않았는데, 감히 회왕부에 와서 또 허장성세로 협잡질을 하고 있는 거예요?”원경능은 낙평공주의 분노를 헤아릴 수 있었다.그녀 본인의 생일 연회였다. 친지들을 초대하여 경축하는 것은 사실 매우 체면이 서는 일이었다. 그들은 함께 밥도 먹고 극단(戏班)도 초대했는데, 낙평공주는 그녀 몸의 모든 세포를 동원했어도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초대한 극단의 실력이 경후부의 부녀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체면도 많이 구겼고 황실의 체통도 잃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다른 사람이 그런 저속한 일을 꾸미는 데에 그녀가 이용당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그녀의 명성에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이었다.원흉 중 한 명인 원경능은 도저히 방금 기왕비를 대했던 것처럼 떳떳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저명취에게서 배운 대로 써먹었다. 속눈썹을 살짝 내리깔고 가여운 모습으로 속삭였다.“부황께서 내리신 명입니다.”“지금 부황으로 저를 누르려는 거예요?”낙평공주가 도끼 눈을 했다.“제가 감히 그럴 리가요!”원경능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움츠리는 모습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사실 저도 왜 부황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셨는지 잘 모르겠어요.”낙평공주는 실은 원한을 풀려고 했는데 그녀의 이런 애처로운 모습을 보니 속에 가득 찬 화를 토해낼 수 없었다.그러나 기왕비는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냉큼 자신의 실력을 뽐내며 낙평공주를 도와주었다. 그녀가 웃음을 머금고 원경능을 위로하듯 말을 걸었다.“초왕비, 병을 고치는 일을 공주에게 말씀 드려도 될 것 같아요. 당신은 오늘 저와 로비 마마가 병을 고치는 규정을 모른다고 탓했지요. 하지만 공주는 견문이 넓으니 이해할 겁니다. 그러니 공주에게 알려주는 건 어때
우문호는 사건의 자세한 경위를 물어보고 포두(捕头-포졸 대장)와 아역(衙役-관아에서 부리던 하인을 일컫는 말)의 보고를 들었다. 검시관(仵作)의 검시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경조부를 떠날 때 이미 술시(戌时)가 넘었다.말을 급하게 몰아 회왕부 안에 들어서보니 뜻밖에도 원경능과 낙양공주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그는 의아함을 느꼈다. 공주부의 그 사건 이후로 셋째 누님은 원경능이라 하면 뼈에 사무칠 정도로 미워했다. 그가 의심스러운 심정으로 다가가자 낙평공주는 그를 보고 먼저 미소를 지었다.“방금 네 얘기를 했는데 마침 네가 왔구나. 어? 다섯째 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구나. 어디 아픈 것이냐?”우문호가 원경능을 흘끔 쳐다보았다. 원경능은 찻잔을 괴상하게 들고 물을 마시며 남몰래 그를 향해 눈을 깜박였다.그가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셋째 누님, 관아에 일이 많아서 좀 피곤한 것뿐입니다.”“피곤하냐? 그럼 얼른 원경능을 데리고 왕부로 돌아가거라.”낙평공주가 말했다.“먼저 여섯째를 보고 오겠습니다.”낙평공주가 손을 내저었다.“지금은 가지 말거라, 방금 잠들었어.”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원경능을 바라보며 말했다.“본궁은 처음에 왜 부황께서 원경능더러 여섯째의 병을 치료하게 하셨는지 이해가 안 갔어. 하지만 오늘은 많이 나아져 있더구나. 기침도 잦아졌고 아직 각혈도 안 했다. 보아하니 상태가 좋아진 것 같아.”우문호가 원경능을 흘끔 바라봤다. 알고 보니 여섯째의 병세가 호전되어서 셋째 누님이 그녀를 다시 보게 된 듯싶었다.“허면 셋째 누님은 여기 계십시오, 저흰 먼저 가보겠습니다.”우문호가 말했다.“가보거라, 내일 일찍 오고.”낙양공주가 말했다.두 사람은 몸을 돌려 나갔지만 희씨 어멈은 뒤따라가지 않았다. 그녀는 왕부에 남아 회왕의 약 먹는 상황을 지켜봤다. 반드시 단 한 번도 거르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그녀는 회황은 약을 먹
서일이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왕부에 들어섰다. 그는 장방(账房)에 가서 종이, 붓, 먹, 벼루를 챙겼다. 장방 선생은 그의 사촌 동생이었는데 선지(宣纸) 천 장을 달라고 하자 눈을 커다랗게 떴다.“이렇게나 많이요? 곳간(库房)에 가야 할 듯싶어요. 탕 대인께 곳간의 열쇠를 받아 혼자 알아서 꺼내세요.”서일은 탕양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탕양은 방금 장부 대조를 마쳤는데 그가 천 장의 선지를 요구하자 의아해서 질문했다.“그렇게 많은 종이로 무얼 하려고 그러는가?”서일은 울상을 지었다.“탕 대인, 이번엔 꼭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무슨 일인가?”탕양이 이상히 여기며 물었다. 서일이 울상을 짓는 모습을 처음 봤다.“왕야께서 저에게 ‘예의염치’ 네 글자를 천 번 베끼라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예의’는 쓸 줄 아는데 ‘염치’는 어떻게 씁니까?”탕양이 눈썹을 치켜 떴다.“이상하군, 자네가 ‘염치’를 쓸 줄 모르는 건 당연하네. 자넨 염치가 없으니까. 헌데 어떻게 ‘예의’를 쓸 줄 안단 말인가? 자네한테 예의가 어디 있다고?”서일이 발을 굴렀다.“전 이렇게 비참한데 지금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저를 도와주지 않으면 나중에 탕 대인도 제 도움 받을 생각 하지 마십시오.”탕양이 웃었다.“자네가 언제 날 도와준 적 있는가?”“언젠가 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겁니다.”서일이 원망하는 목소리로 말했다.탕양은 웃으며 열쇠를 가지고 그와 함께 나갔다.“가세, 곳간에서 종이를 가져와야지. 허나 자넨 왜 왕야께 벌을 받게 되었는지 내게 알려주어야 하네.”서일은 길을 걸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왕부까지 마차를 몰고 왔으니 분명 제가 발을 젖히고 왕야와 왕비를 마차에서 내리게 할 것 아닙니까? 헌데 누가 마차 안이 더울 줄 알았겠습니까, 왕야와 왕비는 온 얼굴이 땀 투성이였습니다. 왕비의 옷깃도 벌어져있었고요. 잠깐 눈길을 주었을 뿐인데 왕야께서 저를 욕하셨습니다.”탕양이 잠시 멍하니 걸음을 멈췄다.“정말인가?”그가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
원경능은 온몸을 긴장시키며 재빨리 눈을 피했다. 그를 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한번 흘끔거리고는 급히 눈길을 피했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새가 놀란 것 같았다.따뜻한 숨결을 담은 그의 입술이 닿아오자 그녀는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오늘 밤은 소월각에 머무는 게 어때?”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분출하지 못한 갈망을 억누르는 목소리였다.원경능이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눈을 뜨며 그를 확 밀쳤다. 그녀가 긴장한 듯 일어나서 급하게 말했다.“저는… 돌아가서 잘 생각해 봐야겠어요. 지금 머릿속이 복잡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단숨에 먼 곳까지 내달렸다. 그녀는 헐떡거리면서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받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도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두 사람은 원래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사이였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그가 자신을 좋아하나? 말도 안되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이를 갈며 그녀를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어찌 그녀를 좋아한단 말인가? 이건 너무 이치에 맞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았다.필시 그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러나 그녀에게 얻을 게 뭐란 말인가? 돈? 없었다. 지위? 그가 더 높았다. 권력? 그녀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그녀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노릴 수 있단 말인가?“왕비, 괜찮으십니까?”뒤에서 탕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원경능은 깜짝 놀라며 몸을 곧게 펴고 뒤돌아봤다. 그는 흰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딘가 준수하고 대범해 보였다. 원경능이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탕 대인, 간 떨어지게 만들 셈인가?”“용서하십시오, 왕비.”탕양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허나, 왕비는 그 정도로 담이 작은 사람은 아닌 듯싶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원경능이 무슨 면목으로 탕양에게 이 일을 말하겠는가? 그녀는 그저 쓴 웃음을 지었다.“괜찮네, 과식한 듯해서 정원에서 산책하고
우문호는 몸을 돌려 일어나 앉았다. 얼굴에는 난폭한 기운이 감돌았다. “너… 본왕의 이불이나 씻어라.”서일은 한쪽 눈을 감싸고 그 곳을 보다가 멍해졌다. “왕야, 이불에 오줌을 누신 건가요?”주먹 하나가 또 날아왔다. 다른 한쪽 눈도 시커매졌다. 우문호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제야 마음속에 치밀어 올랐던 화를 얼마간 억누를 수 있었다. 서일은 울상이 된 얼굴로 이불을 끌어안고 나갔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기라가 들어와 다시 이부자리를 깔았다. 조심스레 우문호를 바라보니 그는 화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예리한 눈길로 그녀를 위아래로 쳐다보는 것이 소름이 끼쳤다.왕야는 오늘 어찌 이러는 것인가? 기라는 전전긍긍하며 이부자리를 다 깐 후 재빨리 물러나겠노라 아뢰며 자리를 떴다.우문호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미 잠은 다 달아난 뒤였다.이렇게 괴로웠던 적이 없었다. 서일은 이불을 두드리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탕양이 손에 등불을 들고 다가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예의염치’를 베끼는 대신 이불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인가?” 서일은 새댁이 애절한 눈빛을 보내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탕대인은 왜 아직도 주무시지 않습니까?”“잤었네. 헌데 자네의 울부짖음에 깨어난 것이 아닌가?”탕양이 그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자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왜 자꾸 왕야의 노여움을 사는 게야?”서일도 억울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네 더 발분하지 않으면 왕야는 조만간 자네를 내보낼지도 모르겠네.”탕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서일은 혼비백산하여 손에 있던 이불을 던지며 물었다. “탕대인, 그게 사실입니까? 왕야가 절 내보낸다고요?”“자네 더 약삭빠르게 굴지 못하면 언제 쫓겨날지 모를 일이네.”탕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네도 알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깨지도록 싸워서라도 우리 초왕부에 들어 오고 싶어 한다는 걸.” 서일은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마음이 잔뜩 찢겨져 나갔다.맞
회왕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원경능은 우선 밖에서 엊저녁 시중들었던 머슴에게 설명을 들었다. 머슴은 엊저녁에도 각혈했었지만 기침은 많이 좋아졌다고 보고했다.희씨 어멈도 약을 먹은 정황을 보고했다. 저녁 식사 후 한 번, 밤중에 일어나 각혈한 후에 한 번 먹었고 오늘 아침 분은 아직 먹지 않았다고 했다. 원경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멈 수고했네. 낮에는 내가 지킬 테니 가서 주무시게.” 희씨 어멈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엊저녁 소인도 잠을 잤습니다. 그저 약 드실 시간에 깨어나 약을 드렸을 뿐입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로비께서 전문 인력을 보내시어 시중들게 하여 소인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알겠네, 로비마마는 어디 계신가?”원경능이 물었다.“주무시고 계십니다. 엊저녁 온밤 지키셨습니다.” 원경능은 좀 의아했다. 오늘 로비는 그녀를 감시하지 않을 셈인가? 비록 어제 로비는 그녀를 믿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원경능은 그녀가 자신을 완전히 신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회왕이 엊저녁 좀 괜찮아 진 것이 그녀의 생각을 바꾼 것일 터였다. 회왕은 아직 깨나지 않았다. 그러나 원경능과 희씨 어멈이 밖에서 작은 소리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는 깨어났다. 두어 번 기침을 하자 머슴이 얼른 달려가 시중들었다. 양치질시키고 세수시키고 머리까지 빗긴 후 다시 좁쌀죽을 들여왔다. 회왕을 아주 적절하게 보살펴 드렸다. 우문령이 입 가리개를 하고 들어왔다.“여섯째 오빠, 다섯째 올케가 지금 밖에 와있어요.” 회왕은 미소를 띠고 우문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았어. 이 계집애야, 너는 왜 이리 일찍 온 거야?” “제가 이 왕부에 거주한지 며칠 됐어요, 몰랐어요?”우문령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어?”회왕은 멍해 있다 눈가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넌 현모비의 책망이 두렵지 않느냐?” “모비는 한결같이 하찮은 일에도 크게 놀라는데요
이 문제에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씨가 임신한 뒤로부터 그의 눈과 마음에는 다른 것들을 담지 못했었다.현재 제왕이 물으니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디 그렇게 많은 왜가 있어, 놓으면 놓는 거지.'"다섯째 형님."제왕은 우문호가 머뭇거리자 조금 몸을 일으키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혹 아직도 명취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우문호는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 다섯째 형수는 속이 매우 좁아.""형님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겁니까?"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좋아하지 않아.""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빨리 명취를 잊다니."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한참 뒤에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빛이 반짝였다."너의 다섯째 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지.""그 말인즉, 다른 사람이 생기면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건 아마 대체하는 방법인 듯 하군요. 다른 여인을 찾아야 되지요, 맞나요?"제왕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연구해본 적도 없는 걸.'허나 표면상으로는 적극적으로 말했다."맞아, 넌 동그란 얼굴의 계집애와 자주 있도록 시도해봐. 아마 곧 잊을 수 있을 거야."원영의를 말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말했다."이번에 영의가 조태의를 데리고 돌아왔기 다행이지 아니면 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네 다섯째 형수가 보낸 거다."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공을 쟁취했다. 일곱째는 늘 원씨에게 편견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을 쟁취하여야만 했다.그러나 제왕은 그 말을 흘려 보내고 홀로 중얼거렸다."사실, 동그란 얼굴도 괜찮아요. 자상하게 왕비를 소개해줄 것이라 했거든요."우문호가 불현듯 물었다."참, 오늘밤 돌아갈 거야?"제왕은 생각에 잠겼다."돌아갈 거예요. 동그란 얼굴이 있으니 절 괴롭히
우문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부황...."부황께서 합의 이혼을 동의하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말투에 불쾌한 느낌이 상당했다."그대로 하면 되느니라."명원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명취가 시집온 뒤로부터 사단이 끊인 적이 없었다. 작은 일은 저수부의 체면을 보아 눈 감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방임했더니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실의 체면을 깎는 건 괜찮으나 사적으로 친황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니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애당초 그녀의 명성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들 그녀가 현명하고 정숙하며 대가의 풍격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오늘 저씨 노태부인의 그 말을 해 이미 화가 치밀었었다. 저씨 가문의 체면이 참으로 대단했다."부황."우문호가 정색하더니 재빨리 물었다."부황의 뜻은 일곱째의 요구를 동의한다는 겁니까?""동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는데."명원제가 아비로써의 인내를 보여주었다."합의 이혼한 뒤 각자 재혼한다면 두 가문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매우 우러러보았다. 부황의 이 말은 참으로 가식적이었다. 너무 가식적이어서 전혀 가식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각별히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이 일을 일주일 내에 해결하거라. 해결하지 못하면 곤장을 맞으러 와야 한다. 꺼지거라."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우문호는 명을 받고 제왕을 찾으러 들어갔다.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하면서 출궁했다.그러나 명원제는 계속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군주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자가 있는 이외에 뭐가 나은 것이 있던가?황제란 수명이 짧은 직업이었다.옆에서 묵을 갈던 목여공공이 기쁘게 말했다."제왕과 초왕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음을 보셨으니 폐하께서도 시름을 놓으실 수 있습니다."명원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는 떳떳하고 일곱째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다행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크게 다투었을 것이다. 다투지 않더라도 이후에는 암투를 벌일 것이지.
우문호가 위로했다."그만 소리 질러, 부황 앞에서도 네가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면 네가 겁쟁이라고 꾸짖으실 거야."제왕은 아픔에 말도 하지 못했다.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실로 참을 수 없어 말했다."형님, 절 업어줘요.""상처가 앞에 있는데 내가 널 없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우문호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근심스러워졌다. '왜 이렇게 아픔을 참지 못한단 말인가? 예전에 원씨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입궁하여서도 억지로 버텼었는데, 일곱째는 여인보다 못하는군.""다쳐서 아픈 것이 낫지 이렇게 상처가 찢기는 고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왕은 걸음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입술에도 혈색이 보이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업고 나니 제왕이 또 "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우문호가 물었다."되겠어?"제왕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목여공공을 바라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나를 들고 가게."목여공공은 이미 성지를 전하러 출궁한 궁인에게 물어보았었다. 부상 정도가 그렇게 엄중하지 않다고 조태의가 말했다고 전했다. 가슴팍의 상처는 괜찮고 복부의 상처가 조금 깊다고 했다.그리하여 제왕의 이러한 모습을 본 목여공공은 근심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태의가 확실하게 진찰한 게 맞습니까? 내장이 상한 건 아닙니까?"제왕은 숨을 들이쉬었다."내장이 상한 건 아니네."목여공공은 제왕의 이런 모습으로 실로 궁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말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들고 갑시다."어깨 가마와 들것이 없으니 한 사람은 어깨를, 한 사람은 두 다리를 들고 갔다. 제왕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입에 초롱 손잡이를 물로 있었다. 허나 자신이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제왕은 칠흙같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등불의 빛은 궁중의 밤을 밝히기엔 부족했다. 그는 그저 딴 세상에 온 듯 하였다.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
황후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곱째가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 죄명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죄명이 실증되고 정말 백관 앞에서 죄를 심의 받는다면 절로 미래를 망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일의 진위를 막론하고 재빨리 답했다."합방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이야 말로 전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태노부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저명취의 낯빛을 보고 태후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다만 바보가 아닌 태노부인은 멍해졌다. '측비 때문이 아니라면 제왕은 왜 합의 이혼하려고 하려는 걸까? 설마, 그 원측비의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명취와 초왕 사이가 애매하단 말인가?'태노부인의 얼굴은 당장에 어두워졌다. 다만 태후가 자리에 있는지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나 태후는 태노부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한마디 묻겠네. 한 여인이 처로써 작은 일로 자결하고 또 낭군을 중상한 뒤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노부인의 부중에서는 어떻게 처단하는가?"태노부인은 실로 체면이 깎였으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제왕부부는 예전에 화목했었고 측비가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합방도 하지 않았으니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태노부인은 그저 기가 죽어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아둔했습니다.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입궁하여 태후마마와 황후를 귀찮게 했습니다. 다만 젊은 부부가 다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쉽게 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합의 이혼이네."태후가 차가운 낯빛으로 곧 시정했다."황실의 체면이 중요하나 황실의 혈육도 잃을 수 없네. 제왕은 황제의 적자네. 부부가 작은 일로 모순이 생겨 무기를 휘두른다면 철로 만든 몸이라 하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네."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 보았다."너의 며느리고 또 너의 조카니 네가 알아서 이 일을 해결하
황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절부절하여 명원제를 흘깃 보았는데 명원제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황후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하라고 태노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태노부인이 싸늘하고도 딱딱하게 말했다."폐하, 황후마마, 제왕은 황실자손으로써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렸습니다. 비록 명취가 충동한 것은 잘못이나 모든 잘못이 명취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제왕이 측비로 인해 합의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소문이 퍼진다면 실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에 황실과 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일 겁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왕의 상처가 호전되면 백관들 앞에서 죄를 심의 받고 합의 이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태노부인의 이 말은 절대 사정의 의미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심지어 태노부인이 황실의 체면과 저씨 가문의 체면을 함께 논할 때 황후의 낯빛이 돌연 변했다. 크게 경악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명원제를 바라 보았다.아까만 해도 낯빛이 어둡던 명원제는 태노부인의 이 말을 듣고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했다."노부인, 조급해하지 말게. 이 일은 짐이 자세하게 물어볼 것이네. 노부인의 신체가 편찮다고 수부에게 들었으니 돌아가 푹 쉬게. 자손들은 자연히 자손들만의 복이 있을 것이니 노부인이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네."말을 마친 명원제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 나가기 전에 담담하게 저명취를 흘깃 보았다.태노부인은 기가 차 멍해졌다. 명원제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명원제는 나간 뒤 목여공공에게 분부했다."초왕과 제왕을 부르거라."목여공공은 잠시 머뭇거렸다."폐하, 제왕은 아직 부상 당한 몸입니다.""죽지 않을 거다."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일 중상이라면 일찍이 부중에서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 아뢰거라. 태후께 한 번 들리라고 전하고."목여공공은 명을 받
다만 저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고 울고 있었는데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제왕은 조태의와 원영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번에 원영의는 매우 눈치가 빨랐다. 조태의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조태의가 약가루를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건 지혈약이다. 상처부분에 뿌리고 살짝 동여맨다면 이틀 뒤 바로 괜찮아질 거다."시녀는 이미 놀라 손발이 나른해진 상태였다. 약가루를 건네 받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제왕은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저명취의 곁에 앉아 물었다."왜 그러는데?"저명취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늘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도리어 맑아졌다. 사실 원영의의 말들이 그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이다.만일 명취가 정말 자신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째지게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고 당당한 친왕이었다. 다른 것을 쟁취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평생의 부귀영화를 줄 수 있었다.누구도 그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한가하게 놀고 있는 왕야를 상대하지 않았다. 명취는 그렇게 총명하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저수부의 외손자였고 현재 황후의 적자였다.큰 형님이 태자로, 황제로 된다고 하여도 감히 자신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천하 사람들의 공론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당연히, 좀 못나게 말한다면 큰 형님은 애초에 자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그리하니 명취는 정말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그가 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을까? 그리하여 제왕은 마음이 아프지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끝내. 그대가 시집온 날부터 난 그대의 마음 속에 내가 없다는 걸 알았어. 난 자연히 다섯째 형님과 비할 바가 못되지. 나도 내 자신을 알아. 그대는 시종일관 다섯째 형님을 좋아했던 거야. 다만 다섯째 형님이 그대를 저버리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시집온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아사가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뭐가 산 것이라고요?""본왕의 아들 말이다!"우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아사는 머뭇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턍양을 바라 보았다. 탕양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왕야가 이미 미쳤다는 손짓을 했다.원경능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됐어요, 식사나 해요.""우리 큰 언니는요?""돌아갔어."원경능이 답했다. 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제왕에게 정말 화가 나요. 글쎄 큰 언니와 서일이 노닥거린다면서 큰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가 화를 참고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우문호는 기분이 매우 좋은지라 이 말을 듣고 아사를 흘겨봤다."이 계집아이 좀 봐, 일곱째가 매우 연약한 것처럼 말하네. 일곱째도 무술을 연마했었어.""설마요?"아사가 경악했다."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하게 굴어요?"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약하지 않아, 최소한 손으로 계란을 한 알 깰 수 있으니.""전 돌을 깰 수 있어요."아사가 답하니 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제왕이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배웠지, 황자로써 누가 배우지 않아도 되겠어? 마술과 궁술, 무술 모두 익혀야 하지. 일곱째도 배웠었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로는 배우지 않았어.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야."아사는 의아해졌다."왜요?""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술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어."우문호가 말했다. 아사는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정말 무술을 익혔다면 왜 반격을 하지 않았겠어요?""일곱째는 여인을 때리지 않아."우문호가 답했다****여인을 때리지 않는 제왕은 제왕부로 돌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곧장 저명취의 방으로 향했다.요 이틀간 저명취는 많이 울었는지라 눈이 계속 부어있었다. 제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히 눈길을 위로 들었다."성지가 내려진 건가요
제왕은 기가 막혔다."당신의 말투가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하다니. 본왕의 혼사는 모후의 뜻을 따라야 해."원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눈에 하얀 이,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조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모두 애라 달래면 된다고요. 그리고 당신의 모후는...."제왕이 화를 냈다."당신의 모후이기도 하잖아!"원영의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가 생각난 듯 무미건조하게 코를 만졌다."전 정비가 아니라 모후라고 부르면 안돼요."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 계속 본왕에게 합의 이혼하라고 하고 지금 또 이러한 말을 하는군. 당신 정비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원영의가 물었다."정비가 되면 좋은 점이 뭔데요?""좋은 점이 많지."제왕은 잠시 생각했다."최소한 당신은 본왕과 명분이 정당한 부부로 되는 거지.""명분이 정당한 부부가 된다면 뭐가 좋아요?"원영의가 다시 물었다. 제왕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당신은 부중에서 뜻대로 할 수 있어. 하인들도 모두 당신의 명을 따를 것이고."원영의가 반문했다."제가 지금 부중에서 뜻대로 살고 있지 않나요? 지금 하인들이 제 명을 따르지 않나요?""당신 본왕과 함께 여러 장소로 출석할 수 있지."원영의가 웃었다."지금은 제가 여러 장소에 출석할 수 없나요? "제왕은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당신 지금 고의적으로 엇나가는 거야? 당신이 정비와 측비의 다른 점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정비는 처고 측비는 첩이야, 명분부터 다르잖아.""처도 좋고 첩도 좋아요. 그러나 제가 저인 사실은 번함이 없어요."원영의는 손을 내저었다."전 당신의 처가 되기 싫어요 .좋기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명취와 합의 이혼하는가를 관심하는 것은 저와 직접적인 이해득실이 있어서예요. 누가 부중에 그러한 정실이 있기를 원하겠어요? 전 그녀를 보는 것조차 싫어요."말을 마치고는 곧 일어났다. 원영의가 떠나려 하자 우문경이 손을 잡았다."가자마, 본왕과 이야기나 좀
아사는 돌아간 뒤 부두에서 만아를 본 일을 원경능에게 알렸다.원경능은 이를 듣고 조금 마음이 시큰거렸다.이러한 시대에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아는 남정네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고 있으니 어디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인가?다만 자신의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아사더러 만아에게 은 열 냥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다음날 아침 아사가 돌아왔다. 만아가 안받으려고 하였는데 억지로 만아에게 넣어주고 달아났다고 전했다.원경능이 묵묵히 말했다."그 아이에게 주었으면 되었다.""왕비께서는 참 선량하십니다."아사가 칭찬했다. 원경능은 속으로 자신이 선량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은 열 냥은 준 것도 사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원경능은 이 은 열 냥으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했다.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녀는 만아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다만 원경능은 자신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원래의 원경능도 점차 모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혹 자기 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을 잃게 된 것이었다.우문호가 저녁에 돌아올 때 제왕을 데리고 함께 돌아왔다.그은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초왕부에 도착하더니 바로 소월각으로 들어가 숨었다.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왜요? 왜 구신이라도 본 듯이 숨어요?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기에 노기등등한 얼굴이에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경능은 자신 곁으로 끌어오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기억하거라. 네가 이후에 만일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뺨을 갈겨 죽일 것이야."원경능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무슨 아들이에요? 딸이면 안되나요? 제왕이 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놈이 연속 이틀 동안 관아로 와 나를 찾았어. 공무가 가득한데 저놈 때문에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이것 봐, 오늘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