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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Author: 이제리
그녀는 무덤 앞에 장장 3일을 잠들어 있었다.

3일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달콤한 꿈에서 깨어났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돌아가지 않았고 아버지도 어머니를 배신하지 않았으며 오라버니들도 그녀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다. 가증스러운 온모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 일가족은 행복했다.

안타깝게도 그건 꿈에 불과했다.

꿈에서 깬 온사는 우울한 기분에 약제실로 가서 전갈독의 해독제를 연구해냈다. 그리고 그것을 온자신에게 가져갔다.

그날 저녁, 막수는 산을 내려가는 온자신을 배웅했다.

수월관을 떠나기 전까지 온자신은 기대에 찬 눈으로 수시로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았지만 기다리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너희들이 무우한테 너무 큰 상처를 줬어. 용서받기는 힘들 거야.”

막수는 떠나는 온자신에게 대고 이렇게 말했다.

온자신은 고개를 푹 숙이고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평생 속죄하며 기다릴 거예요.”

그 시각, 진국공부.

수많은 의원들이 3일 동안 치료한 끝에 온모는 드디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침상 옆에 서 있는 온권승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 아버지, 평생 아버지를 다시 못 뵐 줄 알았어요…”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 이제 와서 누굴 탓해?”

아까까지 걱정돼서 발을 동동 구르던 온권승은 깨어난 온모를 보고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죄… 죄송해요, 아버지. 화 푸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온모는 이번에 온권승이 진심으로 화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버지의 화를 풀어드리기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온사에게 고마울 정도였다.

‘흥, 실력이 부족해서 날 한방에 죽이지 못한 게 오히려 고마워질 정도네.’

온모는 겉으로는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옆에 있던 온자월과 온옥지는 안쓰러운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나서서 한마디씩 했다.

“아버지, 막내 방금 깨어났잖아요. 애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

“그래요, 아버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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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92화

    그녀는 무덤 앞에 장장 3일을 잠들어 있었다.3일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달콤한 꿈에서 깨어났다.꿈속에서 어머니는 돌아가지 않았고 아버지도 어머니를 배신하지 않았으며 오라버니들도 그녀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다. 가증스러운 온모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 일가족은 행복했다.안타깝게도 그건 꿈에 불과했다.꿈에서 깬 온사는 우울한 기분에 약제실로 가서 전갈독의 해독제를 연구해냈다. 그리고 그것을 온자신에게 가져갔다.그날 저녁, 막수는 산을 내려가는 온자신을 배웅했다.수월관을 떠나기 전까지 온자신은 기대에 찬 눈으로 수시로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았지만 기다리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너희들이 무우한테 너무 큰 상처를 줬어. 용서받기는 힘들 거야.”막수는 떠나는 온자신에게 대고 이렇게 말했다.온자신은 고개를 푹 숙이고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괜찮습니다. 평생 속죄하며 기다릴 거예요.”그 시각, 진국공부.수많은 의원들이 3일 동안 치료한 끝에 온모는 드디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정신을 차린 그녀는 침상 옆에 서 있는 온권승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아… 아버지, 평생 아버지를 다시 못 뵐 줄 알았어요…”“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 이제 와서 누굴 탓해?”아까까지 걱정돼서 발을 동동 구르던 온권승은 깨어난 온모를 보고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죄… 죄송해요, 아버지. 화 푸세요… 제가 잘못했어요….”온모는 이번에 온권승이 진심으로 화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버지의 화를 풀어드리기 더 힘들었을 것이다.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온사에게 고마울 정도였다.‘흥, 실력이 부족해서 날 한방에 죽이지 못한 게 오히려 고마워질 정도네.’온모는 겉으로는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옆에 있던 온자월과 온옥지는 안쓰러운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나서서 한마디씩 했다.“아버지, 막내 방금 깨어났잖아요. 애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그래요, 아버지. 이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91화

    온자신의 상태를 살피던 막수가 흠칫하며 그녀에게 물었다.“안치할 곳을 벌써 찾았어?”“예.”온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곳은 풍경이 좋아? 은폐된 곳이지? 누가 찾아오거나 발견될 일은 없겠지?”막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온사에게 물었고 온사도 인내심 있게 하나씩 답해주었다.“걱정 마세요, 사부님. 풍경도 좋고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을 곳이에요.”“그래, 그래….”막소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온사에게서 란자군의 시신을 받았다.온사는 미리 오기 전에 어머니의 시신을 잘 정돈하여 어머니의 혼수 중에 깨끗한 상자를 골라 그곳에 어머니를 모셨다. 상자 안에서는 난꽃향이 은은하게 나서 부패한 냄새를 차단해 주었다.막수는 소중하게 상자를 어루만지며 울먹였다.“내가… 네 어미랑 둘이 얘기 좀 나누마.”“예, 사부님.”그렇게 사부는 다음 날 날이 저물 때까지 란자군과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시신을 온사에게 돌려주었다.“무우야, 네 어미를 잘 묻어줘.”막수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밤새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막수는 상자를 온사에게 돌려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묻어주고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마. 나한테도 말하지 마. 자군은 조용한 걸 좋아하는 애였으니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곳에서 쉬는 게 맞아. 나중에 내가 죽거든….”막수는 숨을 고르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너만 원한다면 나와 네 어미를 같이 묻어주렴.”지금이야 속죄해야 하니 아직은 떠날 수 없지만 아마 얼마 안 있으면 자군의 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온사는 사부를 한참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사부님….”막수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이유는 묻지 말렴….”막수는 상자를 한참이나 쓰다듬다가 밖으로 나가며 온사에게 말했다.“내 정원에 핀 난꽃들 모두 가져다가 자군의 옆에 심어주거라. 생전에 난꽃을 가장 좋아했으니.”그 뒤로 막수는 장장 3일 동안 처소로 돌아가지 않았다.온사는 난꽃을 옮기러 갔다가 사부가 정성 들여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90화

    막수는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온자신과 어머니의 시신을 꽉 안고 있는 온사를 바라보았다.막수는 시신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온사에게 말했다.“걱정 말거라. 온자신은 무사할 거다. 온권승이 다시 네 어미의 시신을 빼앗으려 하지 못하게 내가 막아주마.”온사는 고개를 돌려 온자신을 힐끗 바라보고는 담담히 말했다.“저 인간을 걱정하는 건 아닙니다.”그리고 어차피 온권승이 또 찾아온다고 해도 어머니의 시신은 그가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둘 것이다.수월관에 도착한 후, 막수는 온자신을 데리고 방으로 갔다.마차에서 내린 온사는 고개를 돌려 북진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섭정왕 전하….”“오늘 내가 한 말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 그리고 네 아비가 했던 말도 신경 쓸 필요 없어. 나중에 혹시라도 네가 수월관을 떠나고 싶거든 그때 다시 내가 했던 말을 고민해도 괜찮아.”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던 온사는 급급히 해명하는 북진연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 이상한 쪽으로 생각한 적 없어요.”어차피 그녀는 평생 다시 속세로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그러니 수월관을 떠날 일도 없었다.북진연의 말 속에 숨은 뜻이 뭔지도 알고 싶지 않았다.짤막한 그녀의 대답에 당황한 건 북진연이었다.온사가 그의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에게서 멀어지는 게 두려워서 해명한 거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온사의 반응을 보니 조금 속이 상했다.‘차라리 출가하기 전에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북진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너무 늦게 만나서 그 길이 더 어려워진 것이다. 두 사람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세속의 눈길이었다.전장에서 백전백승으로 대오를 이끌던 그였지만 감히 마음을 표현할 수조차 없는 상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북진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래, 어서 들어가서 푹 쉬어. 무슨 일 생기면 추월을 내게 보내고.”“예, 전하.”온사는 어딘가 서글퍼 보이는 북진연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9화

    온장온은 아무런 불만도 말할 수 없었다.분명 마차에 난입하려 한 사람은 셋째였는데 칼은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섭정왕께서 갑자기 기분 나쁘다고 그의 목을 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셋째가 흑기군의 호위 범위에 난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왜 자신이 동생의 죄를 대신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온장온은 처음으로 아버지와 동생에게 원망을 느꼈다.온사의 명성을 갖고 섭정왕을 협박한 아버지, 그리고 얌전히 있으랬더니 마차에 난입하려고 한 동생, 둘이 친 사고를 왜 자신이 수습해야 하는지 분통이 터졌다.온장온은 차라리 오늘 따라오지 말걸 하고 후회했다.어머니의 시신이 온사에게 있지만 효심이 지극한 온사이니 시신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온사가 화가 좀 풀리면 그가 찾아와서 사정해도 될 일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후회가 치밀자, 온장온은 불만 섞인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 이제 그만하시죠? 어쨌거나 어머니의 시신은 온사가 가져갔지 않습니까. 아버지든 아들인 저희든 지금은 온사를 추궁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막수는 고개를 돌려 놀란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았다.‘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큰 애가 저렇게 변했지?’그녀는 온장온이 어쩌다가 사람이 할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어떻게든 이들과 대치를 이어가려던 온권승은 불쾌한 눈으로 장남을 노려보았다.북진연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진국공, 나이가 들었으면 패배를 인정하는 게 심신에 좋아. 자넨 이미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 같구만. 차라리 장남이 나아.”온권승이 냉소를 지으며 반박하려던 찰나, 마차에서 듣고만 있던 온사가 입을 열었다.“진국공 어르신, 자꾸 이렇게 시간을 끌면 당신께서 그렇게 아끼는 사생아가 목숨을 잃을 텐데요.”그 말을 들은 온씨 가문 사내들의 안색이 급변했다.온권승은 잔뜩 분노한 목소리로 마차에 대고 소리쳤다.“너 온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그 애가 사람을 시켜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가고 보복한답시고 시신을 훼손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8화

    어쨌거나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란자군의 시신을 가져갈 것이다.란자군은 진국공부 사람이고 죽어서도 그건 변함이 없었다.그녀의 시신은 그녀를 위한 조상묘에 묻혀야 마땅했다.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그녀와 함께 묻힐 것이다.“섭정왕 전하, 괜히 논점 흐리지 마시죠. 온사의 명성을 그렇게 걱정하신다면 그 애를 설득해서 어미의 시신을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안 그러면 저도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허튼소리는 여기까지!”북진연은 싸늘한 목소리로 온권승의 말을 잘랐다.말에서 내린 그는 성큼성큼 온권승의 앞으로 다가갔다.온권승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북진연이 주는 위압감에 그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북진연이 앞으로 다가오자 키차이에서 오는 압박감과 함께 굴욕감이 온권승을 괴롭혔다. 그런 온권승에게 북진연은 더 모욕감을 주는 말을 했다.“난 진국공 자네랑은 달라. 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여인의 명성을 갖고 사람을 협박하진 않는다고. 하지만 자네가 딸의 명성을 들먹이며 내게 답을 요구했으니 그 답을 지금 해주지!”그 순간 막수마저 주먹을 불끈 쥐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북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북진연이 일시적인 충동으로 온사의 명성을 실추시키는 발언을 할까 봐 두려웠다.북진연이 말했다.“난 늘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아왔어. 내가 여인의 접근을 혐오한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 만약에 내가 마음에 품은 여인이 나타난다면 그것 역시 만 천하가 알게 될 거야. 내가 누구를 소중이 생각하고 아끼는 줄 알면 당연히 그 사람을 어렵게 대해야 하거늘!”그 말이 끝나자 현장에 적막이 감돌았다.온장온은 할 말 많은 표정으로 북진연을 바라보았고 온권승은 마치 똥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당장이라도 저 요망한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다.“그러니 진국공, 내가 무우 사태에게 어떤 마음인지 이제 알겠나?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한번 더 말해줘야 할까?”온권승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북진연을 노려보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7화

    “섭정왕 전하!”뒤늦게 온자월의 옆으로 달려간 온권승은 기이할 정도로 휘어진 아들의 다리를 보고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어찌 제 아들에게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애를 죽이려고 작정했어요?”북진연은 그런 온권승을 바라보며 냉소를 짓더니 말했다.“진국공, 난 명을 받들어 성녀 전하의 안전을 보호했을 뿐이야. 자네의 아들은 흑기군 호위를 따돌리고 강제로 성녀 전하가 계신 마차에 침입하려 했어. 건방지게도 말이야. 이건 섭정왕인 날 무시하는 행위 아닌가. 정말 한방에 죽여버릴까 생각도 했네만 자네를 봐서 참은 건데, 어떻게 생각하나?”“참으로 건방지군요, 섭정왕!”온권승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내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전하께서 이리도 온사 그 계집애를 감싸고 도는 이유 말입니다. 단순히 폐하의 어명 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전하께서 온사에게 어떤 마음인지 본인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마세요!”짝!온권승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막수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손을 뻗어 온권승의 귀뺨을 쳤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온권승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온권승! 이 짐승보다도 못한 놈!”막수는 치미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그게 아비로서 할 말이야? 아무리 무우가 이제는 진국공부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찌 그런 식으로 딸의 명성을 더럽힐 수 있지?”만약 이 소문이 새어나간다면 온사는 경성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특히나 그녀는 부처님 앞에 맹세를 올리고 출가한 승려였다. 만약에 온사가 섭정왕을 홀려서 불도를 더럽혔다는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면 그녀를 벼랑으로 떠미는 격이었다.“아버지, 방금 하신 말씀은 선을 넘으셨어요!”듣다못한 온장온마저 고개를 돌리고 불만스러운 어투로 온권승에게 말했다.마차에 타고 있는 온사가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상심할까?아버지의 말로 그녀의 명예가 실추된다면 그건 정말이지 온사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었다.하지만 온장온은 오라버니인 자기들이 온사의 명성을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6화

    잠자코 자리를 지키던 온사가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이때, 막수가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막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녀에게 말했다.“넌 나갈 필요 없어. 네 어머니를 잘 지키고 있어. 내가 나갈게.”말을 마친 막수는 마차에서 내려갔다.고개를 돌린 온권승 부자는 온사가 내려오길 기대했지만 나온 사람은 막수였다.막수는 온권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온장온과 온자월을 번갈아보더니 담담히 말했다.“넷째는 안 왔네. 하긴, 그 놈은 말도 타지 못하는 약골이니까.”“넷째가 오든 안 오든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야? 당장 온사 나오라고 해!”온권승이 옆에 있으니 온자월도 대담해졌다.그는 짜증스럽게 막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감히 건방지게 성녀의 이름을 입에 담아?”아직도 반성을 모르는 아이에게 막수는 인내심을 잃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온권승을 노려보며 비아냥거렸다.“자군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진국공 가문은 애들을 대체 어떻게 가르친 거지? 어찌 저런 예의 범절도 모르는 망나니가 됐어?”온권승은 불쾌한 얼굴로 경고했다.“막수, 네가 출가인 신분이라는 걸 잊지 마. 어디 출가인이 그런 불경한 말을 해?”“내 성격 진작에 알고 있었잖아? 예전 기억이 별로 없나? 승려한테 욕먹어서 기분이 불쾌해? 또 귀뺨 한번 맞고 싶어?”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당황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온자월과 온장온 형제는 물론이고 북진연마저도 눈썹을 치켜올렸다.‘역시 온사의 사부여서 그런지 개성 있어.’경성에 진국공을 상대로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막수를 제외하고 몇 없을 것이다.온권승은 버럭 화를 내며 막수를 협박했다.“예전에는 부인 체면을 생각해서 참고 있었지만 감히 오늘 내 앞길을 막는다면 나도 더 이상 참고만 있지 않아!”그의 협박에 막수는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네 주제에? 그럴 자격은 있고?”온권승이 음침한 눈으로 노려보는 가운데 막수는 싸늘히 덧붙였다.“넌 사생아의 신분을 은폐하려고 자군의 딸에게 온갖 고통과 시련을 주었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5화

    그녀의 침묵에 막수도 잠시 고민에 잠겼다.잠시 후, 막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내가 몇번을 말해. 독과 해독제는 동시에 제조해야 한다고 그렇게 일렀거늘.”온사는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제가 돌아가서 바로 만들게요!”다행히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북진연은 흑기군을 이끌고 근처를 배회하던 중에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도주하던 사구 일당이 그대로 북진연의 포위 범위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그리고 그때 마침 진국공부에서 사람을 보내왔다고 한다.“그 사람들이 왜요?”온사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북진연은 안쓰러운 얼굴로 온사를 바라보며 말했다.“온모를 데려갔어. 김사도는 도망치고 사칠과 사구를 우리가 잡았어. 네가 쓸데가 있을 것 같아서 사람을 시켜 이쪽으로 끌고 오는 중이야.”당연히 김사도와 온사의 관계를 아는 북진연이 일부러 풀어준 거였다.그래서 북진연은 부하를 시켜 김사도에게 틈을 주었고 그걸 눈치챈 김사도는 사구와 사칠을 버려둔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여기로 끌고 올 것까진 없습니다. 사칠은 그냥 죽이고 사구의 몸에 뱀독 해독제가 있는지 수색하고 있든 없든 그냥 목을 치면 됩니다.”뱀독 해독제를 연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그녀는 더 이상 후환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출가인이 사람을 죽이라는 말을 이리도 쉽게 하는데도 북진연은 전혀 그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온사가 그들의 죽음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 것이다.곧 지시가 내려졌고 결과가 나왔다.사구의 몸에는 해독제가 없었지만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거짓말을 하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안타깝게도 온사는 주저없이 죽이라고 말했고 사구의 목이 떨어졌다.온사와 막수는 온자신과 란자군의 시신을 챙겨 길을 나섰다.당나귀를 타고 갈 수는 없으니 당나귀는 자연스럽게 고요에게 맡겨졌다.“걱정 마세요, 성녀 전하. 제가 이 녀석을 어떻게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흑기군은 그들을 호송하기로 했다.남산 산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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