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88화

Author: 이제리
어쨌거나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란자군의 시신을 가져갈 것이다.

란자군은 진국공부 사람이고 죽어서도 그건 변함이 없었다.

그녀의 시신은 그녀를 위한 조상묘에 묻혀야 마땅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그녀와 함께 묻힐 것이다.

“섭정왕 전하, 괜히 논점 흐리지 마시죠. 온사의 명성을 그렇게 걱정하신다면 그 애를 설득해서 어미의 시신을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안 그러면 저도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

“허튼소리는 여기까지!”

북진연은 싸늘한 목소리로 온권승의 말을 잘랐다.

말에서 내린 그는 성큼성큼 온권승의 앞으로 다가갔다.

온권승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북진연이 주는 위압감에 그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북진연이 앞으로 다가오자 키차이에서 오는 압박감과 함께 굴욕감이 온권승을 괴롭혔다. 그런 온권승에게 북진연은 더 모욕감을 주는 말을 했다.

“난 진국공 자네랑은 달라. 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여인의 명성을 갖고 사람을 협박하진 않는다고. 하지만 자네가 딸의 명성을 들먹이며 내게 답을 요구했으니 그 답을 지금 해주지!”

그 순간 막수마저 주먹을 불끈 쥐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북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북진연이 일시적인 충동으로 온사의 명성을 실추시키는 발언을 할까 봐 두려웠다.

북진연이 말했다.

“난 늘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아왔어. 내가 여인의 접근을 혐오한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 만약에 내가 마음에 품은 여인이 나타난다면 그것 역시 만 천하가 알게 될 거야. 내가 누구를 소중이 생각하고 아끼는 줄 알면 당연히 그 사람을 어렵게 대해야 하거늘!”

그 말이 끝나자 현장에 적막이 감돌았다.

온장온은 할 말 많은 표정으로 북진연을 바라보았고 온권승은 마치 똥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저 요망한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다.

“그러니 진국공, 내가 무우 사태에게 어떤 마음인지 이제 알겠나?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한번 더 말해줘야 할까?”

온권승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북진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9화

    온장온은 아무런 불만도 말할 수 없었다.분명 마차에 난입하려 한 사람은 셋째였는데 칼은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섭정왕께서 갑자기 기분 나쁘다고 그의 목을 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셋째가 흑기군의 호위 범위에 난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왜 자신이 동생의 죄를 대신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온장온은 처음으로 아버지와 동생에게 원망을 느꼈다.온사의 명성을 갖고 섭정왕을 협박한 아버지, 그리고 얌전히 있으랬더니 마차에 난입하려고 한 동생, 둘이 친 사고를 왜 자신이 수습해야 하는지 분통이 터졌다.온장온은 차라리 오늘 따라오지 말걸 하고 후회했다.어머니의 시신이 온사에게 있지만 효심이 지극한 온사이니 시신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온사가 화가 좀 풀리면 그가 찾아와서 사정해도 될 일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후회가 치밀자, 온장온은 불만 섞인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 이제 그만하시죠? 어쨌거나 어머니의 시신은 온사가 가져갔지 않습니까. 아버지든 아들인 저희든 지금은 온사를 추궁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막수는 고개를 돌려 놀란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았다.‘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큰 애가 저렇게 변했지?’그녀는 온장온이 어쩌다가 사람이 할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어떻게든 이들과 대치를 이어가려던 온권승은 불쾌한 눈으로 장남을 노려보았다.북진연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진국공, 나이가 들었으면 패배를 인정하는 게 심신에 좋아. 자넨 이미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 같구만. 차라리 장남이 나아.”온권승이 냉소를 지으며 반박하려던 찰나, 마차에서 듣고만 있던 온사가 입을 열었다.“진국공 어르신, 자꾸 이렇게 시간을 끌면 당신께서 그렇게 아끼는 사생아가 목숨을 잃을 텐데요.”그 말을 들은 온씨 가문 사내들의 안색이 급변했다.온권승은 잔뜩 분노한 목소리로 마차에 대고 소리쳤다.“너 온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그 애가 사람을 시켜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가고 보복한답시고 시신을 훼손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1화

    “우쭈쭈.”“먹어, 언니, 왜 안 먹어?”어두컴컴한 밀실에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온사가 숨죽인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의 몸에 있는 쇠사슬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목과 사지를 묶어 빠져나갈 수 없게 했다.그녀의 앞에는 노란색 옷를 입고 있는 소녀가 개 먹이를 들고 개를 놀리는 것처럼 그녀를 놀리고 있었다.웃을 때 보조개가 예쁘게 생기는 이 소녀는 그녀의 여동생 온모였다.온모는 뒤에 있던 시녀에게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이거 봐, 우리 언니 진짜 쓸데없다니까? 개로도 못 쓰겠어. 이 몸이 직접 먹여주는데도 감히 안 받아먹잖아.”시녀는 곧장 앞으로 가 바닥에 있던 사람을 걷어찼다.차인 사람이 힘겨운 소리를 내자, 그제야 시녀는 온모를 달랬다.“아가씨, 그러지 마세요. 이 개가 아직도 자기가 국공부 정실 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온모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온사가 정실 딸은 무슨, 아버지랑 오라버니들도 다 모르는 사람이라는데, 개로 써주는 것도 얘한텐 영광이지.”“불쌍한게 눈치도 없어.”온모는 차가운 말 한마디를 던지고 온사의 손을 있는 힘껏 짓이겼다.너무 세게 밟은 탓에 손가락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고, 온사는 고통스러운 듯 흐느꼈다.“온사, 내가 마지막 기회 한 번 더 줄게, 그 옥패 내놔.”“흐…… 흐흐……”이미 정신이 조금 희미해진 온사는 이 말을 듣고 나서야 힘겹게 반응했다.그녀는 힘없는 웃음을 내뱉고 말했다.“온모, 너 헛된 희망 가지지 마……”옥패는 어머니가 그녀에게 물려준 유일한 물건이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절대 온모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멍청한 것, 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온모는 눈에서 불을 뿜을 것처럼 화를 냈다.마침 이때, 밖에 있던 누군가에 의해 밀실의 문이 열리고, 실루엣 몇 개가 밀실로 들어왔다.온모는 그들을 돌아보고 급히 개 사료를 시녀의 품에 숨기며,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듯 순식간에 순수하고 귀여운 얼굴로 바뀌더니 기뻐하며 그들에게 달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화

    성년식?성년식은 진작 끝났잖아?그녀는 성년식 당시에 겪었던 치욕들을 지금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손님들의 비웃음, 오라버니들의 조롱, 혼인 상대의 파혼, 그리고 부모님의 질책……그녀는 이미 그런 일들을 한번 겪었었다.근데 지금 또 웬 성년식?설마 온모가 또 무슨 새로운 수작을 부려서, 그때 그 치욕을 다시 겪게 하고 죽이려는 건가?!온사는 순간 숨이 가빠졌다.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것 같던 그때, 갑자기 그녀의 시선이 멈추었다.잠깐!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아무런 상처도 없이 깨끗한 자신의 손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을 보고 서서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손과 발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는데 지금은 어떻게 다 괜찮아진 걸까?이게 가능한 일인가?분명 그녀의 손과 발의 힘줄은 전부 끊어져서 절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정도였다.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온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방을 둘러보았다.모든 장식품들이 서서히 기억과 합쳐졌다.그녀는 방 한편에 있는 화장대로 시선을 옮겼다.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니 구리로 된 거울에 서서히 가녀린 실루엣이 비쳤다.앳되고 멀쩡한 얼굴 그리고 풋풋한 옷차림……이건 분명 온모가 그녀의 얼굴을 망가뜨리기 전일뿐더러, 아직 어른이 되기도 전의 모습이었다.멀쩡한 손과 발, 익숙한 방 그리고 이 상처 하나 없는 얼굴……온사는 갑자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추측이 떠올랐다.……설마 다시 태어난 건가?게다가 성년식 날로 돌아간 건가?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온사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미친듯한 표정을 지었다.맞다, 맞아……그녀는 진작 온자월의 검에 베여 죽었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게다가 다시 태어나다니?!하!하늘은 그녀를 농락하는 걸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그녀는 분명 다시는 온씨 가문과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하늘은 그녀를 다시 온씨 가문의 딸로 태어나게 했다.온사는 피가 날 지경으로 입술을 깨물었다.비릿한 피의 맛이 느껴지고 나서야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3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았지만 시중드는 하녀가 없어 스스로 머리를 빗던 소녀는 뒤돌아 그를 보더니 역겨움을 참고 조용히 말했다.“둘째 오라버니.”방으로 들어온 온자신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온사에게 말했다.“뭐 좀 물어보자, 막내 관복 네가 망가뜨린 것이냐? 왜 그렇게 못된 것이야? 분명 오늘은 막내의 성년식 날이기도 하거늘, 막내 관복을 망가뜨리다니!”흥분한 온자신이 온사에게 묻던 그때, 온사가 뼛속까지 미워하던 사람이 온자신의 뒤에서 미안하다는 듯한 얼굴을 내밀었다.“둘째 오라버니, 그만두세요. 제가 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언니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실수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온모는 가녀린 몸과 귀여운 외모로 항상 지켜줘야 할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누구든 그녀의 겁먹은 사슴 같은 눈망울을 본다면 동정심이 생길 것 같았다.그녀도 자신의 강점이 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특히 진국공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온모는 겨우 반년 전에 진국공 저택의 사람이 찾아서 데려왔기 때문이었다.아버지는 그녀가 3살 때 누군가에게 납치당했고, 어렸을 때부터 밖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했다.그래서 온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온모를 안쓰럽게 생각했고, 최대한 보상해 주려고 했다.온사 역시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어쨌든 온모도 그녀의 친동생이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이런 순진한 생각 때문에 전생에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렀다.그런 온모의 얼굴을 다시 보자, 온사는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었다.“막내야! 너는 어찌 그리 착하게만 구는 것이냐? 분명 다섯째의 잘못인데, 네가 어찌 그리 감싸고도는 것이냐?”“아니라니까요, 아이고, 둘째 오라버니, 어찌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십니까.”온모는 이 말을 하면서 심지어 고개를 돌려 온사에게 사과까지 했다.“언니 미안해. 다 내가 말을 잘 못하여 제대로 설명 못해서 그런 것이야. 둘째 오라버니께 노여움을 풀면 안 될까? 오라버니께서 날 너무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4화

    비틀거리다가 화장대 모서리에 부딪힌 온사는 입술을 깨물었다.저번 생에서 온모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하고 지금 이러는 온모를 보니, 온사는 그녀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관복을 주워들었다.“저도 제가 무엇을 했기에 막내가 이렇게 크게 반응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니면 막내가 직접 설명해 주겠니?”“네가 뭘 했는지는 너 스스로가 가장 잘 알 터!”온자신은 온모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를 높여 그녀에게 화를 냈다.온사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예전엔 그녀도 잘 몰랐지만, 지금 보니 온자신은 정말 눈이 먼 것 같았다.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누가 뭘 하고 안 했는지도 보지 못했다.그게 아니라면 보이는데도 한 사람의 말만 믿는 것이다.온자신은 매섭게 온사를 노려본 뒤, 온모의 어깨를 토닥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막내야, 괜찮다. 무슨 일 있으면 오라버니에게 말하거라. 그 일이 무슨 일이던 오라버니가 다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니.”두 사람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하지만 온자신은 마치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전혀 꺼림이 없었다.온모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붉히며 말했다.“오라버니, 저…… 저 너무 아파요.”온모는 눈앞에 있는 충동적이고 멍청한 둘째 오라버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이 말 한마디면 온자신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역시 온자신은 온모의 억울해하며 무력한 모습을 보자, 바로 열이 올라서 머리가 어지러웠다.그는 방금 온모가 관복을 만지고 갑자기 아프다고 했던 것을 떠올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그의 상상을 완성시켰다.짝!온모의 뺨에 손이 날아왔다.“좋아, 온사, 네가 막내에게 관복을 준다고 한 것이 네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친 것이라 믿은 내 탓이었구나. 관복에 손을 쓰다니, 네가 이렇게까지 악랄한 줄은 몰랐구나!”온자신에게 맞아 왼쪽 얼굴이 얼얼한 온사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속에서 증오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5화

    “온사, 너 미친 것이냐?!”다시 빼앗아 올 생각을 하고 있던 온모는 더 놀라고 화가 나 말을 잃었다.마치 온사가 자신의 옷을 잘라버리기라도 한 듯 흥분했다.온사는 손을 멈추지 않았고, 웃는 얼굴도 변하지 않았다.“옷 자르고 있지 않습니까. 오라버니랑 막내도 보셨으면서 뭘 그렇게 크게 반응하십니까?”온자신의 두 눈은 분노로 가득 찼다.“네가 감히 내게 어찌 이렇게 크게 반응을 하냐고 묻는 것이냐?! 이 관복은 나와 형님이 특별히 네 성년식을 위해서 제작한 것인데,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왜 잘라서 망가뜨린 것이냐?!”“아무도 원치 않으니까요.”온사는 또 ‘싹둑’하고 잘라냈다.“저도 싫고, 막내도 필요 없다는데, 아무도 원치 않는 물건은 당연히 처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그녀의 차가운 표정 때문에 온자신은 그녀가 조금 낯설기까지 했다.내가 언제 필요 없대?!온모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그녀는 그저 온자신이 의심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그런 것뿐이었다.하지만 온사가 이렇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녀는 분명 오늘 반드시 이 관복을 입으려고 했지만, 온사가 다 잘라서 망가뜨려버렸다.이건 경성 전체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관복인데!그중에 하나도 아니고 유일한데!온모는 가슴이 아파서 마치 피라도 흐르는 것 같았다.“네가 언제 필요 없다고 했느냐? 네 마음에 아주 쏙 든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가장 아끼는 옷이……”온자신은 그 어느 때보다 화가 났다.하지만 온사는 그의 말을 잘랐다.“저 좋아하지 않습니다.”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 다시 말했다.“예전엔 좋아했으나, 지금은 좋아하지 않습니다.”그녀의 것이 아니라면, 전부 필요 없다.싹둑.온사의 마지막 가위질로 관복은 완전히 갈기갈기 잘려있었다.마치 그녀와 온자신 일행의 관계처럼.그녀가 전생을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만약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진작 이 모든 걸 멈추어 그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번 생에는 절대로 또 전생처럼 멍청하게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6화

    그는 마치 소나무, 대나무처럼 곧은 몸으로 남색 도포를 입고, 용모가 단정하며 준수했다.그의 이름은 온장온이며, 그녀의 큰오라버니이자 국공부의 큰 도련님이다.“다섯째야, 네 잘못을 알고 있느냐?”온장온은 차가운 눈빛으로 온사를 보고 있었다.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에 온사는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예전엔 멍청해서 온장온의 키 때문에 이런 터무니없는 느낌을 받는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온장온이 허리와 머리를 숙여 온모와 시선을 맞추고 그녀의 서운함을 들어주는 모습을 직접 본 온사는 그제야 자신은 큰오라버니의 눈에 그저 아랫사람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오라버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건지, 오라버니께서 알려주세요.”온사는 그의 손에 들린 관복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그래서 그가 왜 왔는지 추측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근데 그게 뭐?한 마디도 안 묻고 대뜸 잘못을 인정하라고?내가 왜?온장온의 눈빛은 냉정했다. 하지만 온사의 눈빛은 그보다 더 차가웠다.온장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불쾌함을 드러냈다.“네가 언제 이렇게 성질을 부리는 사람이 되었느냐? 이렇게 제멋대로 버릇없이 구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구나.”“저는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뿐인데, 그로 인해 오라버니께서 화가 나신 것입니까? ‘제멋대로 버릇없이 구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니, 정말 억울합니다.”“네가 감히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냐? 그럼 이건 무엇이냐?”온장온은 화를 내며 관복을 온사의 발밑에 던지고 말했다.“네 둘째 오라버니가 네가 이걸 직접 잘라서 망가뜨렸다는데, 처음엔 난 믿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네가 가장 아끼는 관복이니. 헌데 지금 네 성질을 보아하니, 내가 믿을 수밖에 없겠구나.”“맞습니다. 제가 직접 잘라서 망가뜨린 것입니다. 그저 아무도 원치 않는 옷을 자른 것뿐입니다. 만약 큰오라버니께서도 이게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어차피 온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7화

    최소택은 온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화가 잔뜩 난 채 생트집을 잡으려는 모양이었다.다시 그의 뒤를 보니, 온모가 겁에 질린 얼굴로 입을 벌려 ‘하지 마’라고 했다. 하지만 최소택을 제지하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그리고 다시 온모와 눈을 마주쳤을 때, 그녀는 만족스러운 눈빛이었다.최소택이 자신을 위해 쉽게 나서는 것에 대해 아주 만족스러운 듯했다.하지만 아쉽게도 최소택이 온사의 근처까지 다가오자, 예단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섯째야, 막내야, 길시가 다 되었는데 얼른 와서 성년식 준비를 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온사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예단 위에는 단정하게 푸른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자가 맨 앞에 앉아 차가운 얼굴로 그녀들을 보고 있었다.그녀의 아버지, 진국공 온권승이었다.아무리 최소택이 그녀를 괴롭히려고 했지만, 이때는 그저 잠시 물러나 있어야 했다.온사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예단으로 올라갔다.온모는 예단으로 올라가니 보조개가 들어가 꽃이 핀 듯 예쁜 얼굴로 그녀에게 팔짱을 끼며 친한 척을 했다.“언니, 옷 꿰매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아버지께서 얼마나 오래 기다리셨는데.”“옷을 꿰매?”온권승은 온사를 흘끗 보았다.온사가 말을 하기도 전에 온모는 못 참겠다는 듯 온사가 관복을 잘라버린 일에 대해 얘기하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휴, 역시 제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둘째 오라버니를 잘 타일렀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언니도 화가 나서 관복을 잘라버리지 않았을 거예요.”짜증 나 죽겠다. 굳이 이 일로 그녀를 난감하게 해야 했는가?온사는 이때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몇 초간 온권승이 그녀를 쳐다보도록 내버려뒀지만 짜증이 났다.“도대체 성년식은 시작하긴 하는 건가요? 아버지랑 막내가 제가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제가 알아서 꺼져 드릴게요. 그럴까요?”온사는 생각지도 못한 폭력적인 말과 함께 짜증 가득한 얼굴로 예쁜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이 말을 들은 온모도 순간 멍해졌다.온사

Latest chapter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9화

    온장온은 아무런 불만도 말할 수 없었다.분명 마차에 난입하려 한 사람은 셋째였는데 칼은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섭정왕께서 갑자기 기분 나쁘다고 그의 목을 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셋째가 흑기군의 호위 범위에 난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왜 자신이 동생의 죄를 대신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온장온은 처음으로 아버지와 동생에게 원망을 느꼈다.온사의 명성을 갖고 섭정왕을 협박한 아버지, 그리고 얌전히 있으랬더니 마차에 난입하려고 한 동생, 둘이 친 사고를 왜 자신이 수습해야 하는지 분통이 터졌다.온장온은 차라리 오늘 따라오지 말걸 하고 후회했다.어머니의 시신이 온사에게 있지만 효심이 지극한 온사이니 시신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온사가 화가 좀 풀리면 그가 찾아와서 사정해도 될 일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후회가 치밀자, 온장온은 불만 섞인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 이제 그만하시죠? 어쨌거나 어머니의 시신은 온사가 가져갔지 않습니까. 아버지든 아들인 저희든 지금은 온사를 추궁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막수는 고개를 돌려 놀란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았다.‘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큰 애가 저렇게 변했지?’그녀는 온장온이 어쩌다가 사람이 할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어떻게든 이들과 대치를 이어가려던 온권승은 불쾌한 눈으로 장남을 노려보았다.북진연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진국공, 나이가 들었으면 패배를 인정하는 게 심신에 좋아. 자넨 이미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 같구만. 차라리 장남이 나아.”온권승이 냉소를 지으며 반박하려던 찰나, 마차에서 듣고만 있던 온사가 입을 열었다.“진국공 어르신, 자꾸 이렇게 시간을 끌면 당신께서 그렇게 아끼는 사생아가 목숨을 잃을 텐데요.”그 말을 들은 온씨 가문 사내들의 안색이 급변했다.온권승은 잔뜩 분노한 목소리로 마차에 대고 소리쳤다.“너 온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그 애가 사람을 시켜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가고 보복한답시고 시신을 훼손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8화

    어쨌거나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란자군의 시신을 가져갈 것이다.란자군은 진국공부 사람이고 죽어서도 그건 변함이 없었다.그녀의 시신은 그녀를 위한 조상묘에 묻혀야 마땅했다.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그녀와 함께 묻힐 것이다.“섭정왕 전하, 괜히 논점 흐리지 마시죠. 온사의 명성을 그렇게 걱정하신다면 그 애를 설득해서 어미의 시신을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안 그러면 저도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허튼소리는 여기까지!”북진연은 싸늘한 목소리로 온권승의 말을 잘랐다.말에서 내린 그는 성큼성큼 온권승의 앞으로 다가갔다.온권승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북진연이 주는 위압감에 그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북진연이 앞으로 다가오자 키차이에서 오는 압박감과 함께 굴욕감이 온권승을 괴롭혔다. 그런 온권승에게 북진연은 더 모욕감을 주는 말을 했다.“난 진국공 자네랑은 달라. 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여인의 명성을 갖고 사람을 협박하진 않는다고. 하지만 자네가 딸의 명성을 들먹이며 내게 답을 요구했으니 그 답을 지금 해주지!”그 순간 막수마저 주먹을 불끈 쥐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북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북진연이 일시적인 충동으로 온사의 명성을 실추시키는 발언을 할까 봐 두려웠다.북진연이 말했다.“난 늘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아왔어. 내가 여인의 접근을 혐오한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 만약에 내가 마음에 품은 여인이 나타난다면 그것 역시 만 천하가 알게 될 거야. 내가 누구를 소중이 생각하고 아끼는 줄 알면 당연히 그 사람을 어렵게 대해야 하거늘!”그 말이 끝나자 현장에 적막이 감돌았다.온장온은 할 말 많은 표정으로 북진연을 바라보았고 온권승은 마치 똥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당장이라도 저 요망한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다.“그러니 진국공, 내가 무우 사태에게 어떤 마음인지 이제 알겠나?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한번 더 말해줘야 할까?”온권승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북진연을 노려보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7화

    “섭정왕 전하!”뒤늦게 온자월의 옆으로 달려간 온권승은 기이할 정도로 휘어진 아들의 다리를 보고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어찌 제 아들에게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애를 죽이려고 작정했어요?”북진연은 그런 온권승을 바라보며 냉소를 짓더니 말했다.“진국공, 난 명을 받들어 성녀 전하의 안전을 보호했을 뿐이야. 자네의 아들은 흑기군 호위를 따돌리고 강제로 성녀 전하가 계신 마차에 침입하려 했어. 건방지게도 말이야. 이건 섭정왕인 날 무시하는 행위 아닌가. 정말 한방에 죽여버릴까 생각도 했네만 자네를 봐서 참은 건데, 어떻게 생각하나?”“참으로 건방지군요, 섭정왕!”온권승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내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전하께서 이리도 온사 그 계집애를 감싸고 도는 이유 말입니다. 단순히 폐하의 어명 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전하께서 온사에게 어떤 마음인지 본인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마세요!”짝!온권승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막수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손을 뻗어 온권승의 귀뺨을 쳤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온권승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온권승! 이 짐승보다도 못한 놈!”막수는 치미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그게 아비로서 할 말이야? 아무리 무우가 이제는 진국공부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찌 그런 식으로 딸의 명성을 더럽힐 수 있지?”만약 이 소문이 새어나간다면 온사는 경성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특히나 그녀는 부처님 앞에 맹세를 올리고 출가한 승려였다. 만약에 온사가 섭정왕을 홀려서 불도를 더럽혔다는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면 그녀를 벼랑으로 떠미는 격이었다.“아버지, 방금 하신 말씀은 선을 넘으셨어요!”듣다못한 온장온마저 고개를 돌리고 불만스러운 어투로 온권승에게 말했다.마차에 타고 있는 온사가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상심할까?아버지의 말로 그녀의 명예가 실추된다면 그건 정말이지 온사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었다.하지만 온장온은 오라버니인 자기들이 온사의 명성을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6화

    잠자코 자리를 지키던 온사가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이때, 막수가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막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녀에게 말했다.“넌 나갈 필요 없어. 네 어머니를 잘 지키고 있어. 내가 나갈게.”말을 마친 막수는 마차에서 내려갔다.고개를 돌린 온권승 부자는 온사가 내려오길 기대했지만 나온 사람은 막수였다.막수는 온권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온장온과 온자월을 번갈아보더니 담담히 말했다.“넷째는 안 왔네. 하긴, 그 놈은 말도 타지 못하는 약골이니까.”“넷째가 오든 안 오든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야? 당장 온사 나오라고 해!”온권승이 옆에 있으니 온자월도 대담해졌다.그는 짜증스럽게 막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감히 건방지게 성녀의 이름을 입에 담아?”아직도 반성을 모르는 아이에게 막수는 인내심을 잃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온권승을 노려보며 비아냥거렸다.“자군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진국공 가문은 애들을 대체 어떻게 가르친 거지? 어찌 저런 예의 범절도 모르는 망나니가 됐어?”온권승은 불쾌한 얼굴로 경고했다.“막수, 네가 출가인 신분이라는 걸 잊지 마. 어디 출가인이 그런 불경한 말을 해?”“내 성격 진작에 알고 있었잖아? 예전 기억이 별로 없나? 승려한테 욕먹어서 기분이 불쾌해? 또 귀뺨 한번 맞고 싶어?”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당황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온자월과 온장온 형제는 물론이고 북진연마저도 눈썹을 치켜올렸다.‘역시 온사의 사부여서 그런지 개성 있어.’경성에 진국공을 상대로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막수를 제외하고 몇 없을 것이다.온권승은 버럭 화를 내며 막수를 협박했다.“예전에는 부인 체면을 생각해서 참고 있었지만 감히 오늘 내 앞길을 막는다면 나도 더 이상 참고만 있지 않아!”그의 협박에 막수는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네 주제에? 그럴 자격은 있고?”온권승이 음침한 눈으로 노려보는 가운데 막수는 싸늘히 덧붙였다.“넌 사생아의 신분을 은폐하려고 자군의 딸에게 온갖 고통과 시련을 주었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5화

    그녀의 침묵에 막수도 잠시 고민에 잠겼다.잠시 후, 막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내가 몇번을 말해. 독과 해독제는 동시에 제조해야 한다고 그렇게 일렀거늘.”온사는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제가 돌아가서 바로 만들게요!”다행히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북진연은 흑기군을 이끌고 근처를 배회하던 중에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도주하던 사구 일당이 그대로 북진연의 포위 범위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그리고 그때 마침 진국공부에서 사람을 보내왔다고 한다.“그 사람들이 왜요?”온사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북진연은 안쓰러운 얼굴로 온사를 바라보며 말했다.“온모를 데려갔어. 김사도는 도망치고 사칠과 사구를 우리가 잡았어. 네가 쓸데가 있을 것 같아서 사람을 시켜 이쪽으로 끌고 오는 중이야.”당연히 김사도와 온사의 관계를 아는 북진연이 일부러 풀어준 거였다.그래서 북진연은 부하를 시켜 김사도에게 틈을 주었고 그걸 눈치챈 김사도는 사구와 사칠을 버려둔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여기로 끌고 올 것까진 없습니다. 사칠은 그냥 죽이고 사구의 몸에 뱀독 해독제가 있는지 수색하고 있든 없든 그냥 목을 치면 됩니다.”뱀독 해독제를 연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그녀는 더 이상 후환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출가인이 사람을 죽이라는 말을 이리도 쉽게 하는데도 북진연은 전혀 그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온사가 그들의 죽음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 것이다.곧 지시가 내려졌고 결과가 나왔다.사구의 몸에는 해독제가 없었지만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거짓말을 하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안타깝게도 온사는 주저없이 죽이라고 말했고 사구의 목이 떨어졌다.온사와 막수는 온자신과 란자군의 시신을 챙겨 길을 나섰다.당나귀를 타고 갈 수는 없으니 당나귀는 자연스럽게 고요에게 맡겨졌다.“걱정 마세요, 성녀 전하. 제가 이 녀석을 어떻게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흑기군은 그들을 호송하기로 했다.남산 산기슭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4화

    “무우야!”“사태!”막수와 추월이 동시에 소리쳤다.온사는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온자신에게 밀쳐져서 바닥에 쓰러졌다.그녀는 다급히 온자신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팔뚝에는 가느다란 독사가 매달려서 독니로 그의 살을 깨물고 있었다.추월은 바로 독사를 쳐내고 검으로 그것의 머리를 잘랐다.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온사는 재빨리 온자신의 옷소매를 위로 걷었다. 독사에게 물린 부위가 이미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빨리 팔뚝을 묶어!”막수는 란자군의 시신을 온사에게 넘긴 후, 해독제를 꺼내 온자신에게 먹였다.그러나 사구의 독사는 독성이 아주 강한 품종이라 해독제도 독이 몸에 퍼지는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그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일각만 지나면 온자신은 독성이 온몸에 퍼져 죽게 될 것이다.“온사야, 내 동생… 괜찮아? 그 뱀… 멀리 도망쳐… 위험해….”온자신이 자신이 곧 죽을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온사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다.온사는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그만 말해요. 지금 위험한 건 당신이니 체력을 아껴요.”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하는 온사를 보고 온자신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네 말 들을게.”온사는 고개를 홱 돌리며 막수에게 물었다.“사부님,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막수는 은침을 꺼내 온자신의 혈자리에 꽂으며 말했다.“있어. 걱정 마. 내가 있는 한 이 녀석 절대 죽지 않아.”그제야 온사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곧이어 막수는 싸늘한 얼굴로 온사에게 말했다.“네 전갈을 시켜서 뱀에게 물린 부위를 물게 해. 독으로 독을 공격해서 뱀독을 약화시켜야 해!”“예.”온사는 전갈왕을 하나 꺼내 온자신의 팔뚝에 놓았다.한 마리로 부족해서 막수는 또 한 마리를 부르라고 했다.그렇게 전갈왕 두 마리가 양쪽에서 독사가 물린 부위를 깨물었다.그러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잠시 후, 온자신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악! 아파, 너무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3화

    전갈을 본 사구와 사칠은 의심의 눈초리로 김사도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자신들보다 더 충격에 빠진 그를 보고 의심이 약간 사그라들었다.“가야 합니다!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해요!”저것들은 일반 전갈이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소중한 독사들이 떼죽음을 당할 상황이었다.사구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사칠과 함께 온모를 붙잡고 뛰었다.“싫어! 나 안 가! 이 무능한 자식들! 어떻게 여자 셋을 처리하지 못해서 이 난리야!”온모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하지만 이번에 사구와 사칠은 그녀의 말을 따라주지 않았다. 그들은 강제로 온모를 끌고 갔다.김사도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온사를 힐끗 바라본 뒤에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사구가 자리를 뜨자 요행으로 살아남은 뱀들도 뿔뿔이 흩어졌다.물론 움직임이 느린 자들은 전갈의 집게발에 찔려 죽었다.“도망쳤네.”막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구와 온모가 도망친 방향을 노려보며 말했다.그러고는 흐뭇한 얼굴로 온사를 바라보았다.“미리 대비해 뒀기에 다행이야. 섭정왕 전하의 사람들도 좋은 소식을 전해오겠지.”한차례 대결이 드디어 끝나자 온사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리 좀 하고 저희도 이곳을 떠나죠.”그녀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고는 막수에게 말했다.그런데 이때, 등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온사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나무 뒤에 숨어서 이 사태를 지켜보던 온자신이 밖으로 나오며 온사에게 물었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독사의 사체를 보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온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미 다 봤으면서 새삼스럽게 뭘 물어봐요? 보신 그대로예요. 더 설명할 것도 없어요.”온자신은 흠칫하며 막수가 안고 있는 시신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러니 막내가… 널 협박하려고 어머니의 시신을… 도둑질해갔다는 얘기야?”“협박이 아니지요.”온사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보복이에요. 분을 못 이겨서 나에게 보복하려고 어머니의 시신을 도굴해서 훔쳐간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2화

    온모의 호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등 뒤에 있던 사구가 담담한 미소를 짓더니 답했다.“명을 받들겠습니다, 아가씨.”걸걸한 목소리가 울리자 사방에서 쉭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수십 마리나 되는 비취색 독사들이 빠른 속도로 온사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그것들은 온사 일행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사방을 포위했다.그 광경을 본 온모는 지금 당장 고통받는 온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온사가 자기 앞에 무릎 꿇고 살려달라 애원할 생각을 하니 웃음이 터져나왔다.그런데 이때, 온모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갑자기 입에서 피를 뿜었다.“아가씨!”당황한 사구가 얼른 달려와서 온모를 부축했다. 그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검붉은색이었다.“감히 아가씨께 독을 먹였어?”사구는 눈을 부릅뜨고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독사들을 노려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사전에 독을 먹이지 않았으면 너희 같은 비겁한 자들을 어떻게 상대하라고?”“젠장! 당장 해독제 내놔!”“그 전에 네가 우릴 무사히 보내준다면 기꺼이 줄 수 있어.”온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 돼… 절대 보내주지 마!”온모는 피를 토하면서도 사구를 꽉 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온사는 절대 돌려보내면 안 돼!”그동안 그 고생을 견디며 참아온 이유는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다.그래서 절대 온사를 무사히 돌려보낼 수 없었다.“하지만 아가씨, 체내의 독은….”“닥쳐! 이 무능한 자식! 당장 저 늙은 할망구부터 잡아. 저 할망구가 쟤 사부야. 저 늙은이만 잡으면 온사가 어련히 알아서 해독제를 내놓겠지!”사구는 그 말을 듣고 곧장 반절이 넘는 독사를 막수에게로 보냈다.막수는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독사를 발로 차버리고는 소매에서 웅황이 든 독약을 독사들에게 뿌렸다. 앞에서 돌진하던 독사 몇 마리가 독을 맞고 쓰러졌다.하지만 그 뒤로 더 많은 독사가 몰려왔다.수량이 많아지니 막수도 점점 상대하기 버거워졌다.그녀는 란자군의 시신까지 안고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시신을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281화

    “좋아.”사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잠자코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막수 사태가 주저없이 요구를 승낙했다.막수는 고개를 들려 단호한 눈빛으로 온사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갈 테니 넌 여기 가만히 있어.”온사는 자기가 가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상의할 여지조차 없어 보이는 막수 사태의 모습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예, 그렇게 할게요. 조심해요, 사부님.”김사도는 몰래 온사를 힐끗 보고는 짐짓 여유 넘치는 어투로 물었다.“내가 갈까?”사구가 담담히 말했다.“아니, 사칠 네가 가.”눈만 빼고 온몸을 꽁꽁 사맨 사칠이 고개를 끄덕였다.“예, 형님.”저들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사구는 일당 중에서도 꽤 지위가 있어 보였다.김사도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사칠을 힐끗 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길을 비켰다.사칠은 관을 내려놓고 맞은편을 향해 걸어갔다.그와 동시에 막수 사태도 천천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사구는 눈앞의 늙은 여승을 빤히 노려보았다.3일 전 수월관에서 만났던 모습이 떠올랐다.그때 악취미가 발동해서 상대를 겁주려고 시도했는데 상대의 반응이 참 재미없었던 거로 인상에 남았다.그런데 그 여승이 성녀의 사부이자 수월관의 주지 사태였을 줄이야.사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한편, 사칠이 다가오자 검은 인영이 온사의 뒤편에 나타났다.추월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칠이 자칫 조금만 선을 넘는 행동을 하면 당장 죽여버릴 기세였다.거래 과정은 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사칠이 다가오는 동안에도 온사는 칼로 온모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막수가 어머니의 시신을 옮기려면 시간이 필요했다.그녀는 막수가 어머니의 시신을 관에서 안고 돌아올 때에야 천천히 비수를 내렸다.“아가씨, 가시죠.”사칠의 목소리는 사구보다도 더 흉측했는데 마치 쇠가 갈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그는 예의고 뭐고 다짜고짜 온모의 팔목을 잡아당기며 일행이 있는 쪽으로 이끌었다.“가자! 빨리 가자!”온모는 허둥지둥 사칠을 따라갔다. 만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