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막수 스승님도 엄청 까다로우십니다. 짐이 보기에 그 아이는 크게 실망하고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왕이 온사에게 들게 한 시험은 쉬워 보였지만, 막수 스승님을 만나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수월관의 막수 스승은 고집불통이었다.왕은 물론, 선왕도 그녀의 앞에서는 체면을 조금도 챙길 수 없었다.그녀가 만약 온사가 별로라고 생각한다면 온사에게도 기회는 없다.그래서 왕은 온사가 수월관에 가면 분명 상처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만약 이 일로 그녀가 출가하여 여승이 되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결국 그 역시 란 고모의 딸이 여승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북진연은 그 아이가 넘어졌다가 일어날 때, 여전히 몸에 입은 상처들로 고통스러워 하긴 했지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자리를 뜨는 모습을 떠올렸고, 왕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온사는 이때까지도 그녀가 얻은 이 기회에도 희망이 크지 않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포기할 리 없었다.마차에서 온사는 덕공이 따로 준비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덕공은 진작부터 그녀의 상처를 눈치챘고, 약 한 병과 붕대도 조금 챙겨 주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상처가 등 뒤에 있어 온사는 대충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조금 뒤, 공간에 있던 시냇물을 담은 작은 병을 꺼냈다. 상처를 씻어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그대로 마셔버렸다.이 시냇물은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 주니, 분명 그대로 마셔도 무슨 효과가 있을 것이다.그녀는 이제 상처가 너무 빨리 아물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정신은 멀쩡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역시 온사가 예상한 대로, 아주 조금만 마셨을 뿐인데, 우울하고 무겁던 머릿속이 마치 맑은 바람에 먼지가 날아간 듯 금방 상쾌해졌다.온사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염탐을 시작했다.그녀는 수월관의 그 스승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폐하가 알고
“스승님과 제 아버지요?”온사는 이 말을 듣고 순간 멍해졌다.덕자는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왼쪽의 햇살을 즐기며 온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이 일은 말하자면 재밌습니다. 예전에 막수 스승님께서는 하산을 하지 않으셨고, 수월관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서 태어나신 해에 막수 스승님께서 사람을 시켜 진국공 저택에 선물을 보냈고, 외부 사람들은 그제야 세상사에 관심 없던 막수 스승과 진국공 저택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사람들은 진국공 어르신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뒤로 막수 스승님은 더 이상 진국공 저택과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진국공 부인의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뜨던 날까지요. 그날 막수 스승님께서는 급히 하산하시어 진국공 부인의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장례를 치른 뒤, 막수 스승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진국공께 양심이 없다며 욕을 퍼붓고 그의 부인에게 미안하니 앞으로 다시는 진국공 저택의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그제야 외부 사람들은 알게 되었죠. 알고 보니 막수 스승님께서 오래 알던 사람은 진국공이 아닌 국공 부인이었다는 것을요.”덕자가 묵묵히 얘기했다.“아가씨, 어머니와 막수 스승님께서는 확실히 오래 알고 지내셨습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서는 진국공의 딸이기도 하시니 막수 스승님께서는 아가씨 체면을 살려주지 않으실 겁니다.”“그러니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온사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그녀는 수월관의 관주인 스승이 온씨 가문과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상상도 못했고, 그게 그녀의 어머니 때문이었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이 일은 그녀의 전생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온사는 입술을 문지르며 말했다.“덕공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기왕 이렇게 된 거, 그녀도 수월관에 가봐야 한다.마차는 한참을 흔들거리며 남산에 도착했다.덕자는 온사를 수월관 앞까지 바래다주고 말했다.“아가씨, 들어가세요.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자군은 그녀의 어머니 별명, 란자군을 뜻하는 것이었다.막수 스승과 그녀의 어머니는 정말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온사는 상대방이 자신을 어머니라고 착각했다는 것을 알고 살짝 허리를 굽혀 예의를 갖추었다.“소녀 온사, 막수 스승님을 뵙습니다.”막수 스승은 멈칫했다.그녀는 순식간에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고, 난초를 안은 채 뒤로 돌아 안뜰의 다른 방향으로 갔다.그곳에는 다양한 난초가 놓인 나무 선반이 있었는데, 그 위에 빈자리가 하나 있었다.품에 있던 것은 아마 손질을 한 것 같았다. 막수는 난초를 올려둔 뒤 따뜻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맨 처음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여기는 대전이 아닙니다. 참배를 하시려면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온사는 안타까웠다.역시 이 스승은 온씨 가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이 말은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람을 쫓아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스승님, 오늘 소녀는 참배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일로……”“참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면, 시주께서는 돌아가 주시지요. 수월관은 경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머물 곳이 못 됩니다.”막수 스승은 온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아쉽지만 그녀도 오늘 목표를 달성하기 전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온사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스승님 소녀에게 시간을 조금만 내어 주십시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최소한 소녀가 이곳에 온 사유만이라도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하지만 막수 스승의 태도도 아주 단호했다.“시주께서 무슨 연유로 오셨든, 여승은 듣고 싶지 않고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다.”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심지어 그대로 뒤돌아 가버렸다.온사가 가지 않으니 그녀가 가는 것 같았다.온사는 어쩔 수 없이 급히 월동문의 앞을 가로막고 빠르게 말했다.“저도 스승님께서 온씨 가문과 어떠한 관계도 맺고 싶지 않으시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온씨 가문의 일로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온
온사는 멍해졌다.그녀는 스승의 화난 얼굴을 보며 속에서 우러나온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녀의 생일은 두 달 뒤가 맞다.만약 온모라는 예외가 없었다면, 규정대로 두 달 뒤에야 그녀의 성년식이 진행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온모의 ‘언니랑 같이 성년식 하고 싶어’라는 말 한마디에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은 그녀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강제로 두 달을 앞당겨, 온모의 생일인 어제 그녀와 함께 성년식을 치른 것이었다.이게 바로 그녀의 좋은 아버지, 좋은 오라버니들이다.하지만 온사가 다시 태어난 뒤로, 그녀는 예외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그러나 온사가 생각지도 못한 것은 막수 스승이 그녀의 생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덕공의 말을 듣고 온사는 막수 스승님이 예전에 그녀가 태어났을 때 진국공 저택에 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기억하고 있다니, 어머니와 막수 스승님 간의 우정은 아주 깊었을 것이다.“스승님 노여워 마십시오. 작은 일로 크게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온사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풀어지며 좋게 타일렀다.“겨우 성년식일 뿐입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온씨 가문에 머무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도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스승님께서도 저희 아버지께서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시니, 진국공 저택의 체면을 위해 저를 온씨 가문에서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궁으로 가 폐하께 도움을 청했고, 스승님께서 고개만 끄덕여 동의해 주시면 저는 출가하여 여승이 되어 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온사가 여기까지 얘기했을 때, 막수 스승도 이번엔 그녀의 말에 마음이 동해 동의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 밖이었다.“안됩니다.”막수 스승의 눈에 안타깝다는 눈빛이 스쳤지만 그녀의 태도는 여전히 단호했다.어쩌면 아까보다 더 단호해진 것 같았다.온사는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그러십니까?”“왜는 없습니다.”막수는 정색을 하며 돌아섰다.그리고
그녀는 막수 스승님의 말을 듣고, 갑자기 이 난초가 그녀의 두 생에서 처음 받은 축복의 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작은 난초를 정신이 나간 듯 바라보았다.이 난초는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딱 봐도 평소에 정성껏 돌본 것 같았다.그녀는 뜰에 있던 다른 난초들은 모두 이 난초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런데 막수 스승님은 왜 이렇게 난초를 많이 심으시고, 또 가장 좋은 것을 그녀에게 주었을까?그저 난초를 좋아해서?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난초…… 난, 란자군……설마 어머니 때문에?온사는 갑자기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라 깜짝 놀랐다.스승님과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그 당시에는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온사는 정확히 알고 싶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앞을 향해 말했다.“덕공님, 마차를 세워주세요.”돌아가는 속도는 느리지 않았다. 마차를 세웠을 때는 이미 남산의 아래쪽이었다.온사는 난초를 끌어안고 다시 마차에서 내렸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눈앞의 산길을 보았다. 아주 높았다.“아가씨 수월관에 두고 오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덕자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온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닙니다, 그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도해 보고 싶어서요.”막수 스승님께서 무엇을 위해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승님과 어머니의 관계가 아무리 좋았어도, 그녀는 죽어도 온씨 가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덕공님 죄송하지만 이 난초를 가지고 여기서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그녀는 난초를 건네고 웃으며 말했다.“이번엔 제가 반드시 스승님의 동의를 받아오겠습니다.”덕자는 처음엔 온사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의 손에 있던 난초를 받아들고 그녀를 다시 설득할지 생각하던 중, 온사가 돌아서서 남산의 정상에 있는 수월관을 향해 가녀린 몸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이 보였다.덕자는 경악했지만 그녀는 경건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일어나 한 걸음 걷고 다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아가씨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자,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틀림없네, 온사 어제 최세자한테 파혼 당하고, 오늘은 남산에 와서 여우짓을 하고 있네.”“어쩌면 우리가 남산에 나들이를 온다는 걸 어디서 듣고 일부러 이렇게 와서 우리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걸 거야.”공교롭게도 그 사람들은 바로 평소에 최소택과 가까이 지내던 도련님들이었다.원래 오늘 함께 남산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었던 최소택은 어제 사람들 앞에서 파혼하겠다고 한 일로 진국공 저택을 난감하게 만들어, 충용후는 그를 집에 가두고 외출을 금지시켰다.그래서 오늘은 도련님들만 온 것이었다.온사도 당연히 그들을 발견했다.하지만 그녀는 무시하기로 했다.그들은 물론, 만약 오늘 최소택이 왔더라도 절대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도련님들은 최소택과의 관계 때문에 나들이도 가지 않고 길가에 서서 온사를 지켜보며 그녀가 산기슭에서 계속 참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처음에는 그들도 계속 빈정대며 비웃었다.하지만 15분, 1시간, 반나절이 지나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온사는 계속 참배를 했다.무릎은 이미 저리기 시작했고, 깨끗했던 이마도 다 까져서 피범벅이 되었다.가장 심각한 것은 등 뒤의 상처였다.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무릎을 꿇고 고개를 한번 숙일 때마다 등 뒤의 상처도 점점 갈라졌다.혈흔이 붕대를 흠뻑 적시고 그녀의 옷을 물들였다. 그녀가 산꼭대기까지 갔을 때, 온몸은 이미 피범벅이 되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어지러울 정도였다.이 장면을 본 모든 사람들은 서서히 입을 다물고 그녀를 지켜보며 수월관 앞까지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이 드러났다.무슨 불쌍한 연기를 이렇게까지 해?온사 등 뒤의 상처는 또 어디서 생긴 거야?사람들이 다 때리고 욕하는 못되고 악랄한 여인이 도대체 뭘 위해 이 모든 일을 하는 거지?처음에 온사를 조롱하던 도련님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았다.그는 조롱하던 태도를 바꾸어
막수 스승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덕자는 표정 변화도 없이 말했다.“이렇게까지 하시는데, 분명 아가씨께서도 최종 결과를 아시고 싶어 하실 겁니다.”막수 스승은 잠시 침묵했다.결국 그녀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기왕 이 아이가 이렇게 결심하였다면, 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이 아이를 선택하셨다면, 오게 하시지요.”최소한 이 작은 수월관에는 아무도 그녀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덕자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웃는 얼굴로 말했다.“기왕 이렇게 된 거, 수고스럽지만 막수 스승님께서 아가씨를 잘 보살펴 주십시오. 소인은 먼저 돌아가서 보고드리겠습니다.”……온사는 거의 하루 종일 잤다.그녀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이튿날 오후였다.주변 환경을 보니 아마 아직 수월관에 있는 듯했다.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문 쪽에서 차가운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아무렇게나 움직이지 말고 똑바로 엎드리세요.”온사는 듣자마자 막수 스승님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얌전히 엎드려서 움직일 수 없었다.막수는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상처에 약을 바꾸어 주었다.“이 상처는 아버님께서 하신 것입니까?”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고, 표정도 무서웠다. 온사는 겁을 지레 먹고 순순히 솔직하게 대답했다.“제가 스스로 벌을 달라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화나셔서 명을 내리셨고, 큰오라버니께서 손을 드셨습니다.”“어리석으신 겁니까?”막주 스승은 그녀가 스스로 벌을 달라고 했다는 말을 듣자, 낯빛이 더욱 어두워지며 그녀의 앞에서 욕을 했다.“겨우 파혼 당한 것 가지고, 별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벌을 구하십니까? 그 충용후 저택 세자가 사람들 앞에서 아가씨를 모욕했으니 맞아야 할 건 세자인데, 뺨 한 대로는 부족합니다. 때리실 거면 열 대는 때리셨어야죠! 아주 코피도 터뜨리고 눈이 파래질 때까지! 다시는 감히 아가씨를 못 괴롭힐 만큼이요!”쓱!막수 스승은 너무 흥분한 채 욕을 하느라 약을 바르던 손이 과격해졌다. 순간
“너 바른대로 말해. 이틀 전에 궁에 가 폐하께 도움을 청한 것이 사실이야?!”최소택은 화가 잔뜩 난 채 말에서 뛰어내려 빠른 걸음으로 온사의 앞으로 가 소리치며 물었다.온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궁에 갔던 건 맞다만, 너랑 무슨 상관……”“너 그 못된 심보 안 죽었을 거 알고 있었어!”최소택은 그녀가 인정하자마자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딱 잘라 차갑게 굳어 혐오감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네가 폐하께 도움을 청한다고 내가 파혼을 없던 일로 할 것 같으냐? 내가 분명히 말해두는데, 그런 일은 없을것이야!”“내가 진작에 말했잖아, 나 최소택은 이번 생에 절대로 너 같은 악랄한 여인과 혼인하지 않을 거라고. 폐하께서 직접 명을 내리시더라도 나는 절대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야!”온사는 마음이 쓸쓸했다.그녀는 최소택이 웃기기도 했다.“내가 궁에 갔던 건 맞아. 헌데, 넌 왜 내가 너 때문에 궁에 갔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변명할 생각 마! 온모가 네가 온모한테 했던 얘기들 다 말해줬어.”최소택이 온사에게 물었을 때, 온모도 그의 뒤에 있던 마차에서 내렸다.온모는 온씨 가문에 없었고, 최소택을 따라 마차를 타고 왔다.딱 봐도 최소택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러는 거겠지.온사는 차가운 눈빛으로 온모를 보며 물었다.“정말 궁금하군. 내가 네게 무슨 말을 했었지?”온모는 제 발 저린듯한 눈빛으로 말했다.“언니 다 까먹었어? 이틀 전에 성년식 끝나고 아버지께서 언니를 사당에 가두셔서 내가 언니 보러 갔을 때 언니가 후회된다고 파혼하기 싫다고 했잖아. 언니는 소택 오라버니 아직 좋아하니까 나한테 소택 오라버니 돌려달라면서. 근데 내 생각엔 소택 오라버니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 하니까 나도 대답 못한 거야. 근데…… 근데 난 언니가 갑자기…… 갑자기 집을 떠나 궁에 가서 폐하께 부탁을 드릴 줄은 몰랐지.”말을 하던 온모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미안해 언니, 다 내 잘못이야. 난 진짜 언니가 소택 오라버니를 이렇
그는 혹시라도 막수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해명을 덧붙였다.하지만 그럴수록 막수의 눈에는 더 수상해 보일 뿐이었다.온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랬군요. 어서 앉으세요. 제가 차를 내오죠.”그녀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고 북진연과 막수만 정원에 남았다.막수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섭정왕 전하의 마음이 너무 티가 납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다 보일 정도예요. 무우는 현재 우리 수월관 사람이니 전하께서 이럴수록 무우의 수행을 망치는 것입니다.”북진연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서신을 받은 후,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온 그였다.수월관에 도착하고 막수와 부딪쳤을 때에야 그는 자신의 행위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밤중에 여인의 처소로 달려오다니, 다른 사람이 봤으면 온사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칠 것이다.북진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생각이 짧았군. 사태,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다음엔 더 주의하겠습니다.”막수는 다음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불만 가득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았다.이때, 온사가 뜨거운 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세 사람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온사는 북진연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막수와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했다.“사부님, 독사의 사체는 어디에 쓰려고 남기라고 한 건가요?”온사는 혐오스러운 눈으로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북진연은 그제야 구석진 곳에 쌓인 피 묻은 보따리를 발견했다.살짝 풀어진 틈새로 독사의 머리가 보였다.비취색의 영롱한 색상을 보고 북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독성이 매우 강한 독사인데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보따리의 형태로 봐서 적어도 열 마리는 될 것 같았다.이게 모두 온사의 정원에서 나왔고 오늘 온사가 하마터면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고 생각하니 북진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이미 죽은 녀석들이고 좋은 약재로 쓰일 수 있어. 마침 3일 후에 그 사구라는 인간을 만나야 하니 그 전에 이것들로 좋은 선물을 준비할
약속 시간을 잡은 사구는 그 길로 뒤돌아섰다.그렇게 온사의 정원을 지나던 그는 뭔가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는 늙은 여승이 있었다.사구는 그 여승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가 옷소매를 휘두르자 뱀들이 소매에서 기어나와 여승이 있는 곳을 향해 기어갔다.사구는 그걸 본 여승이 겁에 질려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흥미가 사라진 사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 길로 수월관을 벗어났다.사구가 떠난 후, 추월은 정원 안팎을 꼼꼼히 확인했다.그리고 정원 곳곳에서 십여 마리의 뱀을 잡아냈다.“사구 놈이 다녀간 후로 내 처소가 뱀 소굴이 다 되었네.”독사를 전부 처치한 추월은 굳은 표정으로 뱀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 불사르려 했다.그리고 이때, 막수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잠깐, 그 독사들은 그대로 둬.”고개를 돌린 온사가 물었다.“사부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내가 안 왔으면 네가 나 몰래 이렇게 큰 일을 치르고 있을 줄도 몰랐잖니.”막수는 싸늘한 시선으로 온사를 쏘아보았고 온사는 괜히 찔려서 어깨를 움츠렸다.사부는 밖에서 그녀와 사구의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온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사부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작정하고 숨긴 게 아니라 확실해지면 사부님께 말하려고 했어요!”“정말이니?”막수 사태는 못 믿겠다는 어투로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온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저도 출가인입니다, 사부님!”“하, 말은 잘해.”막수는 냉소를 지으며 온사에게 말했다.“일단은 믿어주도록 하마. 허나 삼일 후 나도 너와 같이 가겠다.”“그건 안 돼요, 사부님!”온사는 당황하며 막수를 말렸다.“아주 위험한 상황이란 말이에요. 상대가 몇이나 데리고 나올지도 모르고 그쪽에서 만약 사람이 많이 오면 한바탕 피바다가 될 거예요. 사부님은 출가인인데 어찌 그런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겠어요?”“그럼 넌 출가인이 아니고?”
미리 대비를 해두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그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나에 대한 정보를 대체 누가 줬을까?”중년 사내는 위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배신자는 빨리 제거해야 해서 말이야.”온사는 당연히 이 시점에 김사도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주인이 워낙 겁쟁이라 좀 겁만 줬을 뿐인데 전부 말하더라고. 그걸 꼭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알아?”“쯧,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군.”사구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질문을 이어갔다.“그런데 참 궁금하단 말이야. 고결하신 성녀 전하는 대체 우리 아가씨한테 어떤 식으로 겁을 줬을까?”능글맞게 웃는 그의 눈매에서 위협이 느껴졌다.하지만 온사에게는 저런 속임수가 통하지 않았다.“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도 많아서 말이야. 궁금하면 너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됐어. 난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 성녀 전하의 시련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 본론부터 얘기하지.”사구는 손을 뻗더니 소매 안에서 고급 소재의 헝겊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성녀 전하, 이게 뭔지는 알고 있지?”온사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그것은 사망하신 어머니께서 입관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온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좋아. 어디 네 얘기 한번 들어보지.”그녀는 소매를 만지는 척하며 공간 안에서 뭔가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피 묻은 머리카락이었다. 딱 봐도 억지로 잡아당겨 뽑은 것으로 보였다.사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온사는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내 어머니의 물건으로 날 협박하려 하지 마. 네가 어머니를 완전한 상태로 돌려준다면 너희의 아가씨도 무사할 테니까.”물론 지금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손발가락 그대로 붙어 있으니 완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사구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호통쳤다.“이런 식으로 나에게 협박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어!”“그건 예전이고 지
“뭐라고?”온자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는 그런 그를 싸늘히 노려보고는 말했다.“거래 안 한다고. 알아들었어? 내가 다시 말해줘?”“온사, 너!”온자월이 온사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검은 인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놀란 온자월은 품에 간직한 비수를 꺼내려 했다.하지만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추월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곧이어 추월은 주먹으로 온자월의 얼굴을 쳤다.퍽!온자월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그가 일어나서 반격하기도 전에 추월은 그의 복부를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너… 넌 누구야? 감히 진국공가의 공자에게 무력을 휘두르다니!”온자월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신분으로 추월에게 겁을 주려 했다.온사는 그런 그들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추월이 고개를 숙이고 온사의 뒤에 섰을 때에야 온자월은 상황을 눈치챘다.“이 아이는 내 사람이야. 뭐, 불만 있어?”온사는 바닥에 쓰러져서도 소중히 연을 감싸고 있는 온자월을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아들이 원수의 딸을 구한답시고 친히 만들어준 연을 거래 조건으로 들고 나온 걸 어머니가 아시면 참 후회하실 거야.”“원수의 딸이라니! 또 무슨 헛소리야!”온자월은 바닥에 쓰러져 몸도 못 일으키면서도 언성을 높여 말했다.“참, 내 정신 좀 봐. 또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온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는 생전에 우리를 무척 사랑하셨어. 네가 불효자인 걸 아셨어도 후회는 없으셨을 거야.”말을 마친 온사는 온자월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온자월 너는 후회 안 해?”온자월은 주먹을 꽉 쥐고 온사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아. 넌 나와 막내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어. 하지만 착각하지 마. 혈연을 떠나서 막내는 내 동생이야!”“그래? 진실을 알게 되는 날에도 그 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그 말을 끝으로 온사는 수월관으로 돌아가 버렸다.그녀는 더 이상 온자월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그가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온사는 그가 뭐 하러 온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그녀는 온자월이 대체 뭘 갖고 왔을지 궁금했다.밖으로 나가서 온자월이 들고 있는 연을 보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연까지 가지고 왔네?”온자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연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나도 쓸데없는 말 안 할게. 너 어머니의 물건을 원하잖아? 이 연을 너에게 줄게. 당장 막내를 풀어줘.”온사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온모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걔를 위해서 어머니까지 버릴 생각이야?”“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야!”그 말을 들은 온자월은 곧바로 반박했다.“네가 막내를 납치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머니의 물건을 꺼낼 일도 없었어!”온사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니까 넌 결국 어머니와 외부인 둘 중에 외부인을 택했다는 거잖아!”“헛소리하지 마!”온자월은 격앙된 목소리로 호통쳤다.“막내는 외부인이 아니야. 외부인은 너지! 잊지 마, 넌 이미 진국공가의 딸이 아니야. 진국공가의 딸은 막내 한 명뿐이야. 걔가 내 동생이라고!”“그래! 양심도 없는 놈. 역시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끼리 잘 어울리네. 원래부터 너희가 일가족이었나 봐!”온사는 눈을 부릅뜨고 온자월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지금 누굴 욕한 거야?”온자월도 눈을 부릅뜨고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 내가 너한테 주먹을 못 휘두른다고 함부로 막내 욕하지 마!”온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참 대단하네. 경성의 사내들 중에 여자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너!”온자월은 발끈하며 온사에게 다가가려다가 손에 든 연을 놓칠 뻔했다. 그는 뒤늦게 연이 괜찮은지 살펴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온사는 그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연을 외부인인 나에게 갖고 와서 거래를 하자는 사람이 뭘 그렇게 긴장해?”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설마 내가 이걸 소중히 보관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중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온자월은 나무상자에서 조심스럽게 연 하나를 꺼냈다.이것은 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간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이것을 꺼낸 적 없었다.오늘에 와서야 이것을 꺼내보지만 목적은 좀 달랐다.“분명 온사가 막내를 숨겨뒀을 거야. 온사가 막내를 풀어주게 하려면 걔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밖에.”온사가 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온자월은 잘 알고 있었다.온사는 출가하러 수월관으로 떠날 때도 그들 몰래 어머니의 위패를 가져간 사람이었다.나중에는 온자신을 갖고 그들을 협박하여 어머니의 혼수품까지 모두 챙겨갔다.그래서 이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물건은 별로 많지 않았다.이걸 온사에게 내어주기엔 너무 아깝지만 막내가 온사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온사는 막내가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모함하고 있지 않은가! 빨리 막내를 구해내지 않으면 명성이 더럽혀질 것 같았다.“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세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막내만 구출하고 어떻게든 이 연은 다시 돌려받을게요.”온자월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그는 연을 들고 말에 올라 남산 쪽을 향해 달려갔다.그가 경성을 나간 후, 진국공부.“국공 어르신, 셋째 공자께서 외출하셨습니다. 성녀를 찾아간 것 같아요.”침상에서 휴양 중이던 온권승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집사가 재빨리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온권승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뭐 하러 가는지는 말이 없었고?”집사가 답했다.“셋째 공자께서는 손에 연 하나를 들고 나가셨습니다. 다른 건 소인도 모릅니다.”“연을 갖고 나가?”온권승은 잠시 기억을 회상하다가 집사에게 물었다.“제비 모양의 연 말이야?”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맞습니다. 크지 않고 자그마한 어린애용 연 같았습니다.”온권승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온자월이 뭐 하러 갔는지 알 것 같았다.“됐어. 갈 테면 가라고 해. 수월관에 침입하지 못하도
그러나 김사도는 사구와 그저 몇번 지나치다 본 사이라고만 했다.말투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온사는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옥패 공간으로 돌아간 온사는 사구가 찾아올 것을 미리 대비해 두기로 했다.그 시각, 경성 진국공부.“그럴 리 없어요. 막내가 그런 짓을 했을 기 없잖아요! 분명 온사 그 계집애가 막내를 모함하는 걸 거예요!”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완전히 실망한 온장온은 어머니의 무덤이 도굴당한 일을 두 동생에게 알렸다.두 사람의 반응은 무척 격했다. 하지만 온장온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지금 그게 중요해? 먼저 어머니의 시신부터 찾아야 하는 게 아니야?”“당연히 알죠. 하지만 형님, 온사가 막내를 모함하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온자월은 격분해서 온장온에게 언성까지 높였다.온장온의 표정도 순간 차갑게 변했다.“온사가 이런 일로 장난칠 애로 보여? 잊지 마! 걔도 우리처럼 어머니의 자식이야!”“형님!”온자월은 실망한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며 따져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막내는 우리와 같은 배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의심해도 된다는 거예요?””내가 언제 그렇다고 했어? 셋째야, 내 말을 왜곡하지 마!”“제가 왜곡을 했다고요?”온자월은 냉소를 짓고는 온옥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그럼 넷째에게 물어보세요. 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형제는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온옥지에게 고개를 돌렸다.온옥지는 담담히 말했다.“큰 형님, 어머니의 시신이 사라져서 많이 놀라고 초조한 마음 이해요. 하지만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돌아온 막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얼마나 속상하겠냐고요?”온자월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온장온은 한숨이 나왔다.그는 이 둘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어쩌면 매번 막내와 연관된 일에 한해서는 그랬던 것 같았다.예전의 그 역시 막내의 편에 섰기에 그게 틀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최근에 그놈을 만났어?”온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놈이 나한테 정말 소중한 것을 훔쳐갔어. 그래서 놈을 찾고 있어.”김사도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온모가 시킨 거겠지. 그 인간 평소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 나도 몇 번 마주친 게 다라고. 사구의 다른 무리는 본 적도 없어.”“그렇게 은밀히 행동해?”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김사도가 말했다.“놈들을 찾자면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구는 곧 나타날걸.”온사가 흠칫하며 물었다.“온모가 내 손에 있기 때문에?”“맞아. 놈들은 온모가 변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조심해. 내 해독제를 만들어내기 전에 죽지 말라고.”말은 그렇게 해도 김사도는 꽤 신이 난 표정이었다.온사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너도 조심해야겠지.”“내가 왜 조심해? 난 어차피 온모에게 조종당하던 허수아비일 뿐이야. 지금은 온사가 너에게 잡혀가고 내 통제권이 너한테 넘어간 것일뿐. 한낱 허수아비일 뿐인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김사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온모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넌 이미 내 허수아비가 되었으니 사실을 말해주지. 온모의 몸에서 수색한 처방전을 보고 감히 확신하건대, 이 대명왕조에서 나를 제외하고 너희들의 해독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김사도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처방전을 훼손한 거야?”“그거도 그거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자세한 원인은 지금은 말해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너희는 영원히 해독제를 못 구할 거라는 것만 명심해.”“정말 너무하네.”김사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이제 동맹이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한테 그런 것도 얘기 못해줘?”“미안하지만 나한테 동맹과 친구는 달라. 동맹은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지만 친구는 아니거든. 그러니 넌 내 친구가 아니야.”온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김사도는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나 상처 받았어.”“그래. 그
“쿨럭… 처리하기도 전에 납치를 당해서… 시신은 사구한테 있어.”온사가 온모를 납치하던 날에 온모가 사구를 시켜 무덤을 도굴하게 했다는 얘기였다.온사는 만약 추월이 그날 온사를 납치해서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시신은 진작에 온모의 손에 훼손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사구는 누구야?”“모… 몰라. 난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그 사람들? 온모의 배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환각제를 먹고도 상대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다면 김사도 무리처럼 온모의 어미 백초유가 미처 온모한테 알려주지 못하고 남기고 간 사람들일 것이다.‘아니면 온모의 배후에 비밀의 존재가 있거나.’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온사는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은 후에 바로 온모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놈은 어디 있어? 너희는 어떻게 연락해?”“나도 걔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내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났어.”말을 마친 온모는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환각제의 약효가 끝난 것이다.온사는 싸늘한 눈으로 온모를 내려다보았다.“네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난다라….”‘그렇다면….’방법을 떠올린 온사는 온모를 끌고 가서 다시 철장에 가두었다.그러고는 김사도에게 서신을 보내 속히 수월관으로 오라고 했다.다음 날, 김사도는 저녁 무렵에 온사의 처소 앞에 나타났다.“무슨 일인데 이리도 급하게 사람을 불렀어? 고귀하신 성녀 전하께서 내가 그리웠나?”그는 늘 이렇게 시정잡배처럼 굴었다.온사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아, 알았어. 내가 안 보고 싶었나 보네. 그럼 내 해독제 연구에 진전이라도 있는 건가?”김사도는 온사의 옆으로 다가가서 싱글거리며 질문을 던졌다.“진전은 있어. 온모의 몸에서 네가 말한 해독제 처방을 찾았거든.”김사도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더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성녀가 보기에 그 처방 어땠어? 만들어낼 수 있어?”그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물론 온사는 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