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북진연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막수 사태는 두 손을 합장한 후, 아미타불을 읊은 뒤에 답했다.“섭정왕 전하께선 제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월관은 불가의 구역이지요. 이곳에 와서 출가한 아이들은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내면을 깨끗이 비워야 하는 법입니다. 무우 또한 예외는 아니지요.”북진연이 담담한 어조로 되물었다.“사태의 말씀은 내가 무우의 수행을 방해한다는 말씀인지요?”막수 사태는 아무 대답 없이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무거운 분위기가 두 사람 사이를 감돌았다.그렇게 한참 뒤에 북진연이 말했다.“줄곧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의문이 있었지요. 아마 막수 사태께서도 아실 겁니다. 마침 사태께서도 계시니, 부디 제 의문을 풀어주시길 바랍니다.”막수 사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말씀해 보시지요, 전하.” “예전에 책에서 읽은 바로는 부처께선 인연이 닿은 자에게 깨달음을 주신다 하였습니다. 그럼 저 같은 사람도 부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북진연은 상시 검을 잡고 있었던 탓에 상처투성이가 된 손을 막수에게 내보였다.옷으로 가려진 몸의 상처처럼 그의 손도 흉하기 그지없었다.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그에게서 날카로운 분위기가 흘러나왔다.“사태께서는 불가에서 수련하려면 속세의 연을 끊고 내면을 깨끗하게 비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전 2년 저부터 귀에서 잡소리가 들려오며 밤마다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꿈 속은 피바다로 뒤덮인 지옥이이었어요. 전 한시도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없었어요. 제게 이런 고통을 주는 건 부처께서 저를 구원하고 깨우침을 주기를 거부한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제 업보인가요?”막수 사태가 눈을 살포시 감으며 말했다.“나무아미타불, 전하께선 나라를 위하여 전장에 나가 적군의 침략을 막는 과정에서 손에 피를 잔뜩 묻히셨지만, 수많은 백성을 살리고 그들에게 평화를 찾아주셨습니다. 대명 왕조의 태평성세 또한 이루셨죠. 선악의 본질
수월관에서의 수행은 매우 고된 일이었기에, 이런 좋은 과자는 평소에 먹어보지도 못하는 게 여승들이었다.막수 사태가 동의하자, 온사는 과자 봉지를 들고 사저들을 찾아갔다.그리고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품에 반 봉지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온사는 잔뜩 들뜬 얼굴로 달려오다가 북진연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전하 몫을 남기는 걸 깜빡했네.’그녀의 생각을 읽은 북진연은 괜찮으니 어서 먹으라고 말을 하려다가 생각을 바꿔 묘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농을 걸었다.“이를 어쩌나. 얼마 안 남았군. 난 아직 한 조각도 못 먹었는데...”그 말을 들은 온사는 더욱 미안해졌다.섭정왕 전하께서 사온 과자를 너무 기뻐서 사저들에게만 나눠주고 보니, 정작 과자를 사다준 장본인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온사는 잔뜩 미안한 얼굴로 남은 반 봉지를 그에게 건네며 물었다.“조금 남았는데 이거라도 드실래요?”“당연한 거 아니오.”북진연은 살짝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과자 한조각을 꺼냈다.“난 단 걸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남은 건 사태가 다 드시오.”온사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북진연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장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웃으며 북진연에게 감사인사를 한 뒤,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어제 약재 종자를 좀 구하면서 재배 방법도 알아보았소. 사태의 정원이 하도 작으니, 심고 싶다면 뒷산에 심어도 되오. 이미 사람을 시켜 뒷산에다 약재를 재배할만한 곳을 확보하라고 했소. 냇가랑 가까워서 물을 주기에도 편하다 하오.”온사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제가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왜 사셨나요?”“그냥 나간 김에 산 거요.”북진연이 담담히 말했다.나간 김에 한 일이라고 하기에는 뒷산에 약재를 심을 밭마저 갈아주었지만 말이다.온사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북진연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고귀한 섭정왕 전하께서 하루가 멀다 하게 그녀를 위해 물건을 가져다주는 것도
‘그런 거였구나. 어쩐지 전에도 보답을 하겠다며 염불을 외워달라더니.’상황을 이해한 온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섭정왕 전하께서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시며 위대한 전공을 세운 분이지요. 그런 분께서 지금 고통받고 계시니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온사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제가 경 읽는 소리가 전하의 고통을 덜어드릴 수 있다면 그것도 저의 영광이지 않겠습니까.”대명 왕조가 지금의 태평성세가 있기까지 전신 섭정왕의 공로가 가장 컸다. 그런 공신이 도움을 원하는데 거절할 이유는 당연히 없었다.하물며 쉽게 들어줄 수 있는 요구 아닌가!그녀가 흔쾌히 응하자 북진연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앞으로 힘드시면 언제든 저를 찾아오세요. 절 위해 뭘 안 사오셔도 됩니다.”온사는 북진연이 전에 자신을 위해 자꾸 선물을 가져다준 것이 자신을 매수하려 한다고 생각했다.이제 진실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북진연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그건 나중에 얘기하지.”정당한 이유가 생겼으니 북진연은 더 부지런하게 수월관을 찾을 수 있었다.하지만 본디 사내가 함부로 침입하면 안 되는 곳이기에 혹시라도 자주 찾아가서 다른 사태들을 방해할까 봐 온사와는 매일 뒷산의 냇가에서 보기로 약속했다.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온사는 열심이 경문을 읊으며 약초를 심었고 북진연은 옆에서 그녀를 거들었다.막수 사태는 몇 번이나 찾아가서 확인해 본 후, 드디어 안심이 되었는지 더 이상 둘을 찾지 않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해꾼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충용 후작 부인? 저 사람이 또 왜 왔을까요?”소식을 들은 온사는 미간을 찌푸렸다.항상 그녀를 싫어하고 배척하던 온아려였는데 그런 사람이 수월관까지 왜 찾아왔을까 싶었다. 좋은 일로 찾아온 건 아닐 것 같았다. 상대하기도 귀찮았기에 그녀는 사저에게 부탁해서 말을 전하게 했다.“무우는 최근 폐관 수행 중이라고 못 만난다고 전해주세요.”말을 마친 온사는 눈을 감
“하! 우리가 널 괴롭혔다고?”온아려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온사에게 비아냥거렸다.“온사, 억울한 척하지 마. 너 내 물건을 얼마나 훔쳐갔는지 네가 더 잘 알겠지. 굳이 내 입으로 다 까발려야겠어?”“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 하지 마세요.”온사도 지지 않고 맞섰다.“제가 충용 후작가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생각되시면 사실적인 근거를 대시면 되잖습니까!”“좋아! 그래도 오라버니를 봐서 네 체면을 어느 정도는 살려주려고 했는데, 네가 수치를 모른다고 하니, 나도 더 이상 배려할 이유가 없지.”온아려는 신변의 시종에게 눈짓했다.그러자 시종이 앞으로 나서더니 온사와 사저들을 향해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수월관의 주지 사태인 막수 사태께서 며칠 전 복명 성녀와 함께 충용 후작가로 와서 노부인을 뵈었지요. 그리고 두 분이 돌아가신 후로 부인의 창고에서 옥여설화고 세 병이 사라졌습니다.”온아려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날 너희를 제외하고 아무도 우리 충용 후작가에 들르지 않았어. 너희가 훔친 게 아니면 뭔데?”“옥여설화고? 그게 뭘까? 일반 설화고가 아닌가?”백성 중 한명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옆에 있던 사람이 바로 대답해 주었다.“옥여설화고는 황실에서만 쓰이는 약이야. 미용에 좋기도 하지만 상처 치료에도 아주 탁월하다니. 흉터 제거에도 기묘한 효과를 발휘하고!”“그렇게 좋다고? 우린 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당연히 좋겠지. 한 병에 금화 천냥이나 하는데!”“그리고 황실 전용이라고 했잖아. 우리 같은 백성들은 물론이고 권력 있고 돈 있는 가문이라고 다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폐하와 마마들이 하사해야 구경이라도 할 수 있다고.”“그럼 충용 후작 부인이 잃어버린 옥여설화고는 궁에서 하사한 거겠네?”“그러니 기세등등하게 찾아와서 따지겠지.”“하지만 복명 성녀님께선 이제 공주와 동급인데… 굳이 훔치실 필요가 있을까?”대부분 사람들은 온아려의 말을 믿은 반면, 일부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의문을 제기했다.하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사
분명 피를 나눈 고모인데도 이유 없이 자신을 싫어하는 모습에 온사는 치가 떨렸다.온씨 가문은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상처를 가장 크게 주는지 아는 것만 같았다.“넌 원래 악독하고 질투심에 눈이 멀은 속 좁은 애잖아!”온아려는 삿대질까지 해가며 욕설을 퍼부었다.“웃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오라버니들한테 무례를 저지르며, 더러운 수작으로 네 동생 온모까지 괴롭혔어. 너처럼 어미 없이 자라 교양 없는 계집애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게 뭐 그리 이상하다고!”“말 다했나요?”온사는 분노에 사무친듯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제가 어미 없이 자라서 교양이 없다고요?!”그녀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상대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그래요. 저 어미 없이 자라 교양 없어요. 그런데 어린 후배에게 그렇게 상처 후벼파는 말을 하는 충용 후작 부인 당신은 교양이 있는 사람인가요?”“닥쳐! 어디서 말대답이야!”벌떡 일어난 온아려는 또 온사의 신분을 잊고 곧바로 달려들어 온사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짝!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손은 온사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온사에게 팔목이 잡혔다. 곧이어 온사가 손을 들어 그녀의 귀뺨을 후려치고 말았다.짝!또 한번의 아찔한 소리와 함께 볼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에 온아려는 순간 당황했다.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악에 받쳐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온사! 이 막돼먹은 년! 감히 날 쳤어? 나 네 고모야!““아니요. 당신이 틀렸어요.”지금의 온사는 전처럼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어떤 욕이든 다 받아주던 나약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온아려의 말을 끊었다.“난 당신의 조카딸이 아니에요! 당신이 함부로 욕하고 삿대질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그러고는 힘껏 온아려의 팔목을 비틀며 차갑게 경고했다.“충용 후작 부인, 신분을 똑바로 인지하세요. 여기가 어딘가요? 수월관은 충용 후작가가 아닙니다. 다시 성녀인 나에게 무례를 저지르고 폭력을 시도한다면 다음에는 귀뺨에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너! 어디
온사에게 밀려난 온아려는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그래, 너 두고 봐! 네가 오늘 나한테 한 짓, 절대 이대로 안 넘어갈 테니까!”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찾아왔던 온아려는 결국 너덜너덜해져서 돌아갔다.온사는 뒤돌아서 수월관으로 향했다.그러자 남은 관중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그래서 복명 성녀가 충용 후작 부인의 옥여설화고를 훔친 게 맞아?”“그걸 몰라서 물어?! 너무 뻔하지 않아?”“충용 후작 부인은 그저 의심일 뿐이고 증거가 없잖아. 성녀께서도 당당해보여서 훔치신 것 같지는 않아.”“꼭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충용 후작 부인의 의심도 일리는 있다고 봐. 성녀는 출가 전에 워낙 명성이 안 좋았잖아. 충용 후작 부인에게 보복하려고 그런 일을 했을 수도 있지!”“바보야? 성녀가 정말 훔쳤다면 폐하께 고발하겠다는 말까지 하겠어?”“그래서 고발을 안 했잖아. 일부러 허세 부리는 건지 누가 알겠어? 어쨌든 난 온사의 인품을 믿지 않아.”그렇게 수월관에서 돌아간 사람들의 입소문은 퍼지고 퍼져서 온 경성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었다.소식을 전해들은 온모는 웃음을 터뜨렸다.최소택이 선물한 옥여설화고 세 병이 이런 혼란을 야기했을 줄은 그녀도 전혀 몰랐다.그녀는 설화고를 손에 문지르며 비웃듯 중얼거렸다.“거봐, 진국공부에서의 호의호식을 거절하고 굳이 여승이 되겠다고 뛰쳐나가더니. 점점 우스운 꼴이 돼가고 있잖아.”고작 설화고를 훔쳤다고 이 야단이 나다니.‘소문이 진짜인지는 몰라도 이런 일을 만든 온사가 어리석은 거지.’그러자 옆에서 시중을 들던 시종이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역시 우리 막내 아가씨가 지혜롭다니까요. 온사 아가씨는 너무 어리석어서 아가씨랑 비교가 안 돼요.”온모는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리며 시종에게 나무라듯 말했다.“아가씨는 무슨. 이제 진국공부에 온사 아가씨는 없어.”시종은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예, 아가씨 말씀이
그 말로 인해 방 안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온모의 표정 또한 살짝 굳어졌다.그녀는 식탁 밑에서 안 보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굳이 이 좋은 분위기에서 온사 얘기를 꺼낸 온자신이 얄미워 죽을 것 같았다.분명 지난번에 온사 때문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오히려 그 사건 이후로 온자신은 더욱 더 온사를 신경 쓰는 것 같았다.‘저 자식은 바보인가? 굳이 싫다는 사람한테 왜 저렇게 집착해?’온자신의 옆에 있던 온장온도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오늘이 1일이니까 온사 생일이 맞네요.”그러자 온장온은 속으로 죄책감이 몰려왔다.온자신이 갑자기 얘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온자월이 불쾌한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걔 얘기는 대체 왜 꺼내? 걔는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야. 생일이든 아니든 우리랑 무슨 상관이라고.”온옥지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찻잔을 들었다.온장온은 싸늘하던 온사의 얼굴을 떠올리고 온권승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아버지, 비록 온사가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은 아니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피를 나눠가진 동생인데 수월관으로 찾아가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는 지난번 성인식 때 막내를 위해 생신연을 해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러니 친동생인 온사에게도 무엇인가 성의 표시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온권승은 무표정한 얼굴로 장남을 바라보았다.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남과 차남을 보자 그는 거절의 말이 차마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아무리 그래도 온사와 같은 배에서 나온 친남매이기에, 너무 매정하게 굴면 앞으로 아들들이 아버지인 자신에게 불만을 품을 수도 있었다.온권승은 인상을 찌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다. 내 궁에 들어가서 폐하께 청을 올려보마.”지난번 온자신이 수월관에 침입해서 사고를 친 이후로 진국공부 사람들은 온모까지 포함해서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그래서 오늘 온사를 보러 가려고 해도 황제의 동의가 무조건 필요했다.온장온과 온자신 형제
그는 큰 형님과 둘째 형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요즘따라 두 사람은 온사를 유난히 신경 쓰고 있었다.분명 전에는 온사에 대해 관심도 없었던 큰 형님이고 둘째 형인 온자신은 온사에게 무력까지 행사했던 사람들이었는데, 대체 왜 갑자기 변한 것일까?‘온사가 무슨 수를 쓴 게 분명해. 그래서 형님들이 걔가 전에 얼마나 악랄한 애였는지 잊은 거야!’“셋째 오라버니, 그런 말하지 마세요. 온사 언니가 그 말을 들으면 속상하겠어요.”같이 밖으로 나온 온모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온자월이 아직 그녀의 손아귀 안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겉보기에 음침하고 변덕스러운 소년이기도 하면서, 형제들 중에 가장 고집이 센 사람이기도 했다.그는 온사가 악랄하고 야비한 인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권유가 통하지 않았다.그래서 온자월을 이용해 온사를 공격하기가 가장 쉬웠다.“걔가 지금 내 말을 들을 수도 없지만 내 앞에 있다고 해도 난 그렇게 말했을 거야.”온자월이 무표정한 얼굴로 짜증스럽게 말했다.“이 모든 건 걔가 자초한 거니까.”온모가 씩씩거리며 떠나는 온자월의 뒷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온옥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막내야, 넌 진심으로 아버지와 형님들이 수월관으로 가서 온사의 생일을 축하해 주길 바라니?”온모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그녀가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온옥지가 말을 이었다.“네가 가기 싫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온모는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겉으로는 속상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 마세요, 넷째 오라버니. 저 괜찮아요. 큰 오라버니와 둘째 오라버니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저는 아무래도 괜찮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해탈한 미소를 지었다.온옥지는 온모가 참으로 순수하지만 강한 아이라고 착각하며 한숨을 쉬고 말했다.“네가 정말 힘들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오라버니가 다 해결해 줄게.”온모는 빨갛게 달아오른 눈동자로
그는 혹시라도 막수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해명을 덧붙였다.하지만 그럴수록 막수의 눈에는 더 수상해 보일 뿐이었다.온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랬군요. 어서 앉으세요. 제가 차를 내오죠.”그녀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고 북진연과 막수만 정원에 남았다.막수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섭정왕 전하의 마음이 너무 티가 납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다 보일 정도예요. 무우는 현재 우리 수월관 사람이니 전하께서 이럴수록 무우의 수행을 망치는 것입니다.”북진연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서신을 받은 후,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온 그였다.수월관에 도착하고 막수와 부딪쳤을 때에야 그는 자신의 행위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밤중에 여인의 처소로 달려오다니, 다른 사람이 봤으면 온사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칠 것이다.북진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생각이 짧았군. 사태,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다음엔 더 주의하겠습니다.”막수는 다음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불만 가득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았다.이때, 온사가 뜨거운 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세 사람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온사는 북진연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막수와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했다.“사부님, 독사의 사체는 어디에 쓰려고 남기라고 한 건가요?”온사는 혐오스러운 눈으로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북진연은 그제야 구석진 곳에 쌓인 피 묻은 보따리를 발견했다.살짝 풀어진 틈새로 독사의 머리가 보였다.비취색의 영롱한 색상을 보고 북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독성이 매우 강한 독사인데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보따리의 형태로 봐서 적어도 열 마리는 될 것 같았다.이게 모두 온사의 정원에서 나왔고 오늘 온사가 하마터면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고 생각하니 북진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이미 죽은 녀석들이고 좋은 약재로 쓰일 수 있어. 마침 3일 후에 그 사구라는 인간을 만나야 하니 그 전에 이것들로 좋은 선물을 준비할
약속 시간을 잡은 사구는 그 길로 뒤돌아섰다.그렇게 온사의 정원을 지나던 그는 뭔가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는 늙은 여승이 있었다.사구는 그 여승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가 옷소매를 휘두르자 뱀들이 소매에서 기어나와 여승이 있는 곳을 향해 기어갔다.사구는 그걸 본 여승이 겁에 질려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흥미가 사라진 사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 길로 수월관을 벗어났다.사구가 떠난 후, 추월은 정원 안팎을 꼼꼼히 확인했다.그리고 정원 곳곳에서 십여 마리의 뱀을 잡아냈다.“사구 놈이 다녀간 후로 내 처소가 뱀 소굴이 다 되었네.”독사를 전부 처치한 추월은 굳은 표정으로 뱀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 불사르려 했다.그리고 이때, 막수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잠깐, 그 독사들은 그대로 둬.”고개를 돌린 온사가 물었다.“사부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내가 안 왔으면 네가 나 몰래 이렇게 큰 일을 치르고 있을 줄도 몰랐잖니.”막수는 싸늘한 시선으로 온사를 쏘아보았고 온사는 괜히 찔려서 어깨를 움츠렸다.사부는 밖에서 그녀와 사구의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온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사부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작정하고 숨긴 게 아니라 확실해지면 사부님께 말하려고 했어요!”“정말이니?”막수 사태는 못 믿겠다는 어투로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온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저도 출가인입니다, 사부님!”“하, 말은 잘해.”막수는 냉소를 지으며 온사에게 말했다.“일단은 믿어주도록 하마. 허나 삼일 후 나도 너와 같이 가겠다.”“그건 안 돼요, 사부님!”온사는 당황하며 막수를 말렸다.“아주 위험한 상황이란 말이에요. 상대가 몇이나 데리고 나올지도 모르고 그쪽에서 만약 사람이 많이 오면 한바탕 피바다가 될 거예요. 사부님은 출가인인데 어찌 그런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겠어요?”“그럼 넌 출가인이 아니고?”
미리 대비를 해두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그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나에 대한 정보를 대체 누가 줬을까?”중년 사내는 위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배신자는 빨리 제거해야 해서 말이야.”온사는 당연히 이 시점에 김사도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주인이 워낙 겁쟁이라 좀 겁만 줬을 뿐인데 전부 말하더라고. 그걸 꼭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알아?”“쯧,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군.”사구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질문을 이어갔다.“그런데 참 궁금하단 말이야. 고결하신 성녀 전하는 대체 우리 아가씨한테 어떤 식으로 겁을 줬을까?”능글맞게 웃는 그의 눈매에서 위협이 느껴졌다.하지만 온사에게는 저런 속임수가 통하지 않았다.“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도 많아서 말이야. 궁금하면 너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됐어. 난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 성녀 전하의 시련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 본론부터 얘기하지.”사구는 손을 뻗더니 소매 안에서 고급 소재의 헝겊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성녀 전하, 이게 뭔지는 알고 있지?”온사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그것은 사망하신 어머니께서 입관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온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좋아. 어디 네 얘기 한번 들어보지.”그녀는 소매를 만지는 척하며 공간 안에서 뭔가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피 묻은 머리카락이었다. 딱 봐도 억지로 잡아당겨 뽑은 것으로 보였다.사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온사는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내 어머니의 물건으로 날 협박하려 하지 마. 네가 어머니를 완전한 상태로 돌려준다면 너희의 아가씨도 무사할 테니까.”물론 지금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손발가락 그대로 붙어 있으니 완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사구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호통쳤다.“이런 식으로 나에게 협박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어!”“그건 예전이고 지
“뭐라고?”온자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는 그런 그를 싸늘히 노려보고는 말했다.“거래 안 한다고. 알아들었어? 내가 다시 말해줘?”“온사, 너!”온자월이 온사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검은 인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놀란 온자월은 품에 간직한 비수를 꺼내려 했다.하지만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추월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곧이어 추월은 주먹으로 온자월의 얼굴을 쳤다.퍽!온자월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그가 일어나서 반격하기도 전에 추월은 그의 복부를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너… 넌 누구야? 감히 진국공가의 공자에게 무력을 휘두르다니!”온자월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신분으로 추월에게 겁을 주려 했다.온사는 그런 그들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추월이 고개를 숙이고 온사의 뒤에 섰을 때에야 온자월은 상황을 눈치챘다.“이 아이는 내 사람이야. 뭐, 불만 있어?”온사는 바닥에 쓰러져서도 소중히 연을 감싸고 있는 온자월을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아들이 원수의 딸을 구한답시고 친히 만들어준 연을 거래 조건으로 들고 나온 걸 어머니가 아시면 참 후회하실 거야.”“원수의 딸이라니! 또 무슨 헛소리야!”온자월은 바닥에 쓰러져 몸도 못 일으키면서도 언성을 높여 말했다.“참, 내 정신 좀 봐. 또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온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는 생전에 우리를 무척 사랑하셨어. 네가 불효자인 걸 아셨어도 후회는 없으셨을 거야.”말을 마친 온사는 온자월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온자월 너는 후회 안 해?”온자월은 주먹을 꽉 쥐고 온사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아. 넌 나와 막내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어. 하지만 착각하지 마. 혈연을 떠나서 막내는 내 동생이야!”“그래? 진실을 알게 되는 날에도 그 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그 말을 끝으로 온사는 수월관으로 돌아가 버렸다.그녀는 더 이상 온자월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그가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온사는 그가 뭐 하러 온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그녀는 온자월이 대체 뭘 갖고 왔을지 궁금했다.밖으로 나가서 온자월이 들고 있는 연을 보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연까지 가지고 왔네?”온자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연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나도 쓸데없는 말 안 할게. 너 어머니의 물건을 원하잖아? 이 연을 너에게 줄게. 당장 막내를 풀어줘.”온사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온모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걔를 위해서 어머니까지 버릴 생각이야?”“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야!”그 말을 들은 온자월은 곧바로 반박했다.“네가 막내를 납치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머니의 물건을 꺼낼 일도 없었어!”온사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니까 넌 결국 어머니와 외부인 둘 중에 외부인을 택했다는 거잖아!”“헛소리하지 마!”온자월은 격앙된 목소리로 호통쳤다.“막내는 외부인이 아니야. 외부인은 너지! 잊지 마, 넌 이미 진국공가의 딸이 아니야. 진국공가의 딸은 막내 한 명뿐이야. 걔가 내 동생이라고!”“그래! 양심도 없는 놈. 역시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끼리 잘 어울리네. 원래부터 너희가 일가족이었나 봐!”온사는 눈을 부릅뜨고 온자월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지금 누굴 욕한 거야?”온자월도 눈을 부릅뜨고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 내가 너한테 주먹을 못 휘두른다고 함부로 막내 욕하지 마!”온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참 대단하네. 경성의 사내들 중에 여자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너!”온자월은 발끈하며 온사에게 다가가려다가 손에 든 연을 놓칠 뻔했다. 그는 뒤늦게 연이 괜찮은지 살펴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온사는 그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연을 외부인인 나에게 갖고 와서 거래를 하자는 사람이 뭘 그렇게 긴장해?”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설마 내가 이걸 소중히 보관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중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온자월은 나무상자에서 조심스럽게 연 하나를 꺼냈다.이것은 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간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이것을 꺼낸 적 없었다.오늘에 와서야 이것을 꺼내보지만 목적은 좀 달랐다.“분명 온사가 막내를 숨겨뒀을 거야. 온사가 막내를 풀어주게 하려면 걔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밖에.”온사가 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온자월은 잘 알고 있었다.온사는 출가하러 수월관으로 떠날 때도 그들 몰래 어머니의 위패를 가져간 사람이었다.나중에는 온자신을 갖고 그들을 협박하여 어머니의 혼수품까지 모두 챙겨갔다.그래서 이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물건은 별로 많지 않았다.이걸 온사에게 내어주기엔 너무 아깝지만 막내가 온사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온사는 막내가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모함하고 있지 않은가! 빨리 막내를 구해내지 않으면 명성이 더럽혀질 것 같았다.“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세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막내만 구출하고 어떻게든 이 연은 다시 돌려받을게요.”온자월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그는 연을 들고 말에 올라 남산 쪽을 향해 달려갔다.그가 경성을 나간 후, 진국공부.“국공 어르신, 셋째 공자께서 외출하셨습니다. 성녀를 찾아간 것 같아요.”침상에서 휴양 중이던 온권승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집사가 재빨리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온권승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뭐 하러 가는지는 말이 없었고?”집사가 답했다.“셋째 공자께서는 손에 연 하나를 들고 나가셨습니다. 다른 건 소인도 모릅니다.”“연을 갖고 나가?”온권승은 잠시 기억을 회상하다가 집사에게 물었다.“제비 모양의 연 말이야?”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맞습니다. 크지 않고 자그마한 어린애용 연 같았습니다.”온권승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온자월이 뭐 하러 갔는지 알 것 같았다.“됐어. 갈 테면 가라고 해. 수월관에 침입하지 못하도
그러나 김사도는 사구와 그저 몇번 지나치다 본 사이라고만 했다.말투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온사는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옥패 공간으로 돌아간 온사는 사구가 찾아올 것을 미리 대비해 두기로 했다.그 시각, 경성 진국공부.“그럴 리 없어요. 막내가 그런 짓을 했을 기 없잖아요! 분명 온사 그 계집애가 막내를 모함하는 걸 거예요!”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완전히 실망한 온장온은 어머니의 무덤이 도굴당한 일을 두 동생에게 알렸다.두 사람의 반응은 무척 격했다. 하지만 온장온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지금 그게 중요해? 먼저 어머니의 시신부터 찾아야 하는 게 아니야?”“당연히 알죠. 하지만 형님, 온사가 막내를 모함하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온자월은 격분해서 온장온에게 언성까지 높였다.온장온의 표정도 순간 차갑게 변했다.“온사가 이런 일로 장난칠 애로 보여? 잊지 마! 걔도 우리처럼 어머니의 자식이야!”“형님!”온자월은 실망한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며 따져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막내는 우리와 같은 배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의심해도 된다는 거예요?””내가 언제 그렇다고 했어? 셋째야, 내 말을 왜곡하지 마!”“제가 왜곡을 했다고요?”온자월은 냉소를 짓고는 온옥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그럼 넷째에게 물어보세요. 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형제는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온옥지에게 고개를 돌렸다.온옥지는 담담히 말했다.“큰 형님, 어머니의 시신이 사라져서 많이 놀라고 초조한 마음 이해요. 하지만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돌아온 막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얼마나 속상하겠냐고요?”온자월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온장온은 한숨이 나왔다.그는 이 둘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어쩌면 매번 막내와 연관된 일에 한해서는 그랬던 것 같았다.예전의 그 역시 막내의 편에 섰기에 그게 틀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최근에 그놈을 만났어?”온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놈이 나한테 정말 소중한 것을 훔쳐갔어. 그래서 놈을 찾고 있어.”김사도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온모가 시킨 거겠지. 그 인간 평소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 나도 몇 번 마주친 게 다라고. 사구의 다른 무리는 본 적도 없어.”“그렇게 은밀히 행동해?”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김사도가 말했다.“놈들을 찾자면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구는 곧 나타날걸.”온사가 흠칫하며 물었다.“온모가 내 손에 있기 때문에?”“맞아. 놈들은 온모가 변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조심해. 내 해독제를 만들어내기 전에 죽지 말라고.”말은 그렇게 해도 김사도는 꽤 신이 난 표정이었다.온사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너도 조심해야겠지.”“내가 왜 조심해? 난 어차피 온모에게 조종당하던 허수아비일 뿐이야. 지금은 온사가 너에게 잡혀가고 내 통제권이 너한테 넘어간 것일뿐. 한낱 허수아비일 뿐인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김사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온모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넌 이미 내 허수아비가 되었으니 사실을 말해주지. 온모의 몸에서 수색한 처방전을 보고 감히 확신하건대, 이 대명왕조에서 나를 제외하고 너희들의 해독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김사도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처방전을 훼손한 거야?”“그거도 그거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자세한 원인은 지금은 말해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너희는 영원히 해독제를 못 구할 거라는 것만 명심해.”“정말 너무하네.”김사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이제 동맹이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한테 그런 것도 얘기 못해줘?”“미안하지만 나한테 동맹과 친구는 달라. 동맹은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지만 친구는 아니거든. 그러니 넌 내 친구가 아니야.”온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김사도는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나 상처 받았어.”“그래. 그
“쿨럭… 처리하기도 전에 납치를 당해서… 시신은 사구한테 있어.”온사가 온모를 납치하던 날에 온모가 사구를 시켜 무덤을 도굴하게 했다는 얘기였다.온사는 만약 추월이 그날 온사를 납치해서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시신은 진작에 온모의 손에 훼손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사구는 누구야?”“모… 몰라. 난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그 사람들? 온모의 배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환각제를 먹고도 상대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다면 김사도 무리처럼 온모의 어미 백초유가 미처 온모한테 알려주지 못하고 남기고 간 사람들일 것이다.‘아니면 온모의 배후에 비밀의 존재가 있거나.’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온사는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은 후에 바로 온모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놈은 어디 있어? 너희는 어떻게 연락해?”“나도 걔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내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났어.”말을 마친 온모는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환각제의 약효가 끝난 것이다.온사는 싸늘한 눈으로 온모를 내려다보았다.“네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난다라….”‘그렇다면….’방법을 떠올린 온사는 온모를 끌고 가서 다시 철장에 가두었다.그러고는 김사도에게 서신을 보내 속히 수월관으로 오라고 했다.다음 날, 김사도는 저녁 무렵에 온사의 처소 앞에 나타났다.“무슨 일인데 이리도 급하게 사람을 불렀어? 고귀하신 성녀 전하께서 내가 그리웠나?”그는 늘 이렇게 시정잡배처럼 굴었다.온사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아, 알았어. 내가 안 보고 싶었나 보네. 그럼 내 해독제 연구에 진전이라도 있는 건가?”김사도는 온사의 옆으로 다가가서 싱글거리며 질문을 던졌다.“진전은 있어. 온모의 몸에서 네가 말한 해독제 처방을 찾았거든.”김사도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더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성녀가 보기에 그 처방 어땠어? 만들어낼 수 있어?”그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물론 온사는 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