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몇 마디가 회오리처럼 장내에서 소용돌이치자 다들 덩달아 놀랐다.이 자리에 앉은 모든 이가 다 느낄 수 있을 만한 분노에 서강인도 표정이 변하더니 다시 한번 두 손을 맞붙이며 정중하게 말했다.“오늘 일은 제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자식 교육은 제가 꼭 다시 잘 시키겠습니다.”“임유환은 정씨 집안 가주께서 한 번만 너그럽게 봐주신다면 저의 서씨 집안에서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내일 반드시 정씨 집안과 우빈이에게 답을 드리겠습니다.”“봐달라고요?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얘기하는 겁니까?”“압니다. 정씨 집안 가주의 아량을 바라고 드린 얘깁니다.”굳어진 정서진의 얼굴을 보며 서강인이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오늘 저놈을 꼭 살리시겠단 뜻이죠?”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하는 정서진에 서강인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다.“후.”“네. 그런 뜻 맞습니다.”“제가 싫다면요?”“그럼 저도 제 방식대로 처리해야겠죠.”낮게 가라앉은 정서진의 목소리에 서강인이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꽉 쥔 주먹에서 땀이 흘러나오는 걸 봐서 서강인도 이 말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정서진은 얼굴이 굳어졌을 뿐 아니라 섬뜩한 눈으로 서강인을 응시하며 마지막으로 확인하고자 입을 열었다.“이 말을 정씨 집안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저는 저에게 하룻밤만 시간을 줘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죄송하지만 그 부탁 거절해야겠습니다.”“그럼 저도 어쩔 수 없죠.”가라앉은 정서진의 얼굴에 서강인도 한숨을 한번 쉬고는 짤막하게 대꾸했다.서강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서인아의 앞에 와서더니 그녀를 향해 말했다.“얼른 임유환 데리고 여기서 나가. 여긴 아빠가 시간 끌고 있을게.”그 모습에 안도한 서인아의 얼굴이 다시 밝아지며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리고는 아빠의 말대로 임유환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유환아, 얼른 가자.”“어딜 가?!”정서진은 호통을 치며
“이건... 비행기?”어리둥절한 하객들의 귀에 그 소리가 더욱더 가깝게 더욱더 선명하게 들렸다.한대, 두대, 세대... 그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아 보였다.그리고 내는 소리로 보아 평범한 비행기가 아니라 전투기인 것 같았다.전투기가 호텔 밖에서 날고 있단 소리였다.다들 정서진이 임유환을 상대하기 위해 전투기를 부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들의 짧은 식견으로 보아 이 연경지역에서 그만한 지위와 실력을 갖춘 사람은 정씨 집안 뿐이었다.전투기 소리에 잠시 당황하던 정씨 집안 사람들도 이내 정서진이 정씨 집안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그 명망을 더 쌓기 위해 작전지역에서 공군을 불러들인 줄로 알고 환해진 얼굴로 정서진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정서진은 미간을 찌푸렸다.그에게는 육군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공군이 움직인 건지 의아해 났다.그러다 문득 총사령관이 부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서진은 환한 얼굴로 무대 위의 총사령관을 바라보았다.정서진은 총사령관이 정씨 집안의 체면을 위해 공군까지 보내 저를 도와준다는 생각에 자신이 총사령관 마음속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육군을 움직이는 걸 막지 않았을뿐더러 이렇게 조용히 도움까지 주신다며 혼자 들떠있는 정서진과 달리 총사령관은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조용히 임유환을 주시하고 있었다.전에 정서진이 육군을 움직이는 것에 반대하지 않은 것은 무언의 긍정 따위가 아니라 임유환의 생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에 함부로 나서지 않은 것뿐이었다.임유환이 지금 호패의 주인이자 또 자신의 오랜 친구의 제자였기에 총사령관은 그가 현장을 지나친 혼란에 빠뜨리지 않는 이상 지켜보고만 있으려 했다.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정서진은 총사령관도 저를 돕는다 생각해 우쭐거리며 섬뜩하게 임유환을 노려보며 말했다.“군대도 다 왔겠다 너도 이젠 죽을 건데 유언이라도 말해봐.”공군까지 왔으니 정서진은 이건 틀림없는 정씨 집안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네가 불렀다고?”잠시 벙쪄있던 정서진은 이내 박장대소를 하며 말했다.“너는 부끄럽지도 않니? 뭐 네가 공군부 총지휘관이라도 돼? 네 권력이 총사령관님보다도 크단 소리야?”임유환 같은 놈이 그런 권력이 있을 리가 없었고 흑제 또한 세계제일 갑부로서 재력 면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었지만 권력은 없었기에 정서진은 임유환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임유환은 아마 공군이 왔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모를 것 같았다.그때 정씨 집안 사람들도 임유환의 어이없는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방금 들었어요? 저놈이 작전지역에서 공군을 불러온 거래요!”“당연히 들었지, 어떻게 저런 거짓말을 하지?”“오늘 일 다른 사람 같았으면 저놈한테 속았을 거예요. 야비한 수법으로 실력을 늘리더니 흑제까지 불러오고, 뭐 우리 정씨 집안한테 그런 수법은 통하지 않아서 유감이지만.”“연경에서 우리 집안만큼 군대와 작전지역이 익숙한 집안이 없죠.”“저런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총지휘관을 사칭하다니.”“공군을 부르는 절차에 대해서도 모를걸요?”“그걸 알았다면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안 했겠죠, 정말 너무 웃기네요! 하하하!”정씨 집안 사람들이 한마디씩 주고받는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실력 있는 친구라도 아직 어려서 그런지 아무 말이나 막 내뱉는다고 생각했다.오직 서인아, 서강인, 조명주만이 놀란 눈으로 임유환을 바라보았다.아까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흑제에게 명령했지만 그들은 가까운 거리 탓에 그 대화를 다 들을 수 있었다.그 대화에 따르면 저 공군은 임유환이 부른 게 맞았고 공군뿐만 아니라 육군, 해군까지 삼군 모두 도착해있었다.그들은 한 번에 삼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임유환의 신분이 궁금해졌다.서강인, 서인아, 조명주가 놀라고 있을 때 정서진이 임유환을 조롱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방금 정씨 집안 사람들 얘기 너도 들었지? 이젠 뭐 더 할 말 있어?”“할 말은 없어.”임유환은 담담히 말하며 정서진을 쳐다보았다.“정씨 집안은 곧 멸문당
들어온 군대는 임유환이 말한 군대도, 공군도 아닌 정씨 집안의 육군이었다.선두에 선 대장은 정씨 집안의 간부층에 속하는 정지환이었다.일치한 발걸음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문을 지나 정서진에게로 다가갔다.군복을 입고 군대답게 걷고 있는 부대를 하객들은 넋을 놓고 바라보며 진짜 군대를 부른 정서진에 혀를 내둘렀다.정서진 앞에 군대가 멈춰서고 그 수장인 정지환이 정서진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했다.“연경 작전지역 제1부대 대장 정지환! 부대를 이끌고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그래, 고생했다.”정서진은 웃으며 조롱 가득한 눈으로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실력이라는 듯 임유환을 바라보았다.그런데도 변함없는 임유환의 표정에 정서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임유환이 일부러 괜찮은 척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그때 정서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한쪽에서 웃고 있던 정씨 집안 사람들이 임유환을 향해 비아냥거렸다.“너 아까 공군은 네가 부른 거라며? 정씨 집안의 군대는 이미 도착했는데 네가 부른 공군은 아직이야?”“그냥 하늘에서 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나 봐?”“그럼 우리도 저 전투기는 우리 가주가 보낸 거라고 할 수 있지!”정씨 집안의 조롱에도 임유환은 못 들은 척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아까보다 더 차가워진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볼 뿐이었다.이 자리에 있는 정씨 일가 모두가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기에 임유환은 단 한 명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다 들키니까 이젠 연기도 못하겠어?”정씨 일가는 임유환이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더욱 신랄하게 비웃어댔다.“하하, 그러게 주제를 보고 까불었어야지. 어딜 감히 정씨 집안을 상대로 거짓말을 해.”“가주님, 어서 지환 삼촌한테 저놈을 죽이라고 하세요! 정씨 집안을 건드린 놈의 최후가 어떤지는 알려줘야죠.”“하하, 다들 진정해. 저놈이 내 아들의 결혼식을 망쳤으니 그냥 보낼 수야 없지.”웃음을 터뜨리던 정서진은 다시 음침한 눈으로 임유환을 바라보았다.“내가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게. 네 손으로
“어디서 애먼 사람을 잡아!”그때 정신을 차린 정서진이 임유환을 향해 호통을 쳤다.그날의 일에 정씨 집안이 가담한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많으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흑제, 움직이라고 해.”“오늘은 정씨 집안만 처리해.”이미 더 질문할 흥미를 잃은 임유환이 살기 어린 목소리로 나지막이 명령했다.“예!”흑제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기가 더 큰 소리를 내며 호텔에 가까워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정말 호텔 바로 위에서 날고 있는 듯한 전투기에 다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걸 느끼며 숨을 죽였다.정서진도 귀가에 들리는 전투기 소리에 평소와는 다르게 빨리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설마 저게 정말 임유환이 부른 걸까?사람들이 생각할 틈도 없이 결혼식장 밖에서는 아까와 같은 일치한 발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고무신을 땅을 구르는 소리에 사람들의 이목은 다시 한번 문으로 집중됐고 이번에는 파란색과 초록색 군복의 군대가 두 부대로 나뉘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그 모습에 다들 눈을 크게 뜨며 놀랐고 머리가 터질 듯 아파오는 사람도 있었다.군복을 입은 육군과 파란색 제복을 입은 해군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었고 머리 위에서는 공군이 날고 있는 삼군이 한곳에 집결된 기이한 현상이었다.정말 이 삼군을 집결시킨 게 임유환이냐는 의문 탓에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임유환에게로 향했다.그때 모두의 시선 속에서 육해 양군의 수장들이 앞으로 나서며 임유환에게 공손히 경례했다.“육군 부통령 고유민, 군사들을 이끌고 킹더베이 호텔에 집결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발을 구르며 내는 우렁찬 외침은 사람들에게도 깊은 전율을 남겼다.“해군 부통령 최용, 군사들을 이끌고 킹더베이 호텔에 집결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모두들 놀라운 광경에 깊은숨을 들이마셨고 정씨 집안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눈만 깜빡였다.임준호 역시 임유환이 삼군을 움직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줄곧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
얼핏 들어도 나이 든 것 같은 목소리였다.크지도 않은 목소리가 결혼식장의 혼란을 순식간에 잠재워버렸다.“총사령관님이야!”사람들뿐만 아니라 임유환의 시선도 상석에 앉아있는 백발의 총사령관에게로 향했다.총사령관은 화를 내지도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임유환과 정서진을 보며 말했다.“오늘 일은 둘 다 그만하지.”그 말에 정서진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고 임유환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총사령관님을 향한 임유환의 눈빛에는 물론 존경도 묻어나 있었지만 한기도 함께 있었다.총사령관은 스승님의 오랜 벗이자 나라의 공신이었으니 존경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의 복수를 이렇게 그만둘 수는 없었다.“총사령관님, 이 일에 꼭 관여하셔야겠어요?”위협적인 투로 말하는 임유환에 사람들은 감히 총사령관을 상대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그를 놀란 듯 쳐다보았다.정서진도 이때다 싶어 총사령관의 화를 돋우려 한마디 거들었다.“어디서 감히 총사령관님한테 그런 말을 내뱉어!”“총사령관님, 저 자식이 이렇게 건방져요, 총사령관님한테도 저렇게 무례하다니, 제가 지금 당장 저놈을 잡아들이겠습니다!”“괜찮아.”총사령관은 손을 저으며 임유환을 바라보았다.그도 임유환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여기서 더 손 놓고 있었다가는 임유환이 결혼식장을 뒤집어엎을 것만 같아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그는 피바다를 이렇게 많은 하객들에게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만약 소문이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그 영향도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총사령관님이 너그러우셔서 이렇게 넘어가시는 거야! 너는 운 좋은 줄 알아!”정서진이 임유환을 향해 코웃음을 치자 임유환은 차가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됐어, 다들 조용히 해!”능구렁이 같은 정씨 일가가 역겨워 난 총사령관은 한 번 더 호통을 쳤다.“예, 사령관님.”정씨 일가는 입으로는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표정에서는 우쭐거림과 조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마치 총사령관이 정씨 집안 편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정서진은 총사령관이 임유환이 일을
정씨 일가가 나가자 임유환도 명령을 내려 군사를 철수했다.그렇게 결혼식장은 다시 조용해졌고 하객들은 경악과 놀라움에 찬 눈길을 임유환에게로 보냈다.그중에서도 조 씨, 전 씨, 손 씨, 이 씨, 윤 씨 등 5대 가문의 가장들이 유독 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임씨 집안의 버려진 아들이 정씨 집안과 맞설 정도의 힘을 키웠으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조 씨, 전 씨, 손 씨, 이씨 일가는 그날의 일이 떠올라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오늘 일은 그냥 해프닝쯤으로 기억하고 다들 이만 집으로 돌아가게.”그때 총사령관이 다시 입을 열자 사람들은 눈치 있게 하나둘 결혼식장을 빠져나갔다.“총사령관님, 그럼 저희도 이만 가보겠습니다.”5대 가문의 사람들도 총사령관에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는데 그중 네 명은 그 발걸음이 아주 급해 보였다.윤씨 집안 가장만이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임유환을 주시하다가 천천히 밖으로 향했다.그렇게 결혼식장에는 순식간에 총사령관, 임유환, 그리고 서강인 부녀만이 남게 되었다.“죄송해요, 아까는 제가 사령관님을 오해했어요.”임유환은 진심으로 죄송스럽다는 듯 총사령관을 향해 아까일에 대해 사죄드렸다.“하하, 너랑 나 사이에 뭐 그런 걸로 사과를 해.”늙은 모습이었지마는 줄곧 위엄을 잃지 않았던 총사령관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스스럼없이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그에 임유환은 오히려 난처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그 광경을 본 서강인은 잠시 벙쪄있다가 총사령관을 향해 물었다.“사령관님은 임유환이랑 아는 사이셨어요?”눈을 크게 뜨며 참지 못하고 묻는 서강인 옆에는 별로 다르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입술만 달싹이는 서인아가 있었다.임유환이 총사령관과 친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지금 보아하니 그사이가 아주 좋아 보였다.“하하, 알고 있었지.”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총사령관은 서강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이놈은 내가 아주 좋게 본 놈이야, 꼭 잡아둬.”“나도 이만 가봐야겠으
서강인이 모를 줄은 몰랐던 임유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게 사실은...”임유환은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는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얘기했다.“이런 미친놈!”그리고 그 말을 다 들은 서강인은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그런 개 같은 놈이 감히 내 딸에게 손찌검을 해?!”서강인은 지금 당장이라도 정우빈의 뺨을 날려주고 싶었다.“걱정 마세요, 정우빈이 인아한테 한 짓들 제가 다 백배로 갚게 할 거에요.”화를 내는 서강인에 임유환은 다시 차가워진 눈을 번뜩였다.“고마워 정말.”임유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던 서강인은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자네만 괜찮으면 이제부터 아저씨라고 불러, 가주님은 너무 멀어 보이잖아.”“네, 아저씨.”바로 호칭을 바꾸는 임유환에 서강인도 호탕하게 웃었다.“하하, 듣기 좋네. 그럼 나도 유환이라고 부를게.”서강인은 임유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옆에 있던 서인아를 바라보았다.임유환의 말을 듣고 나니 화장에 가려진 딸의 왼쪽 볼에 난 멍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정우빈이 어젯밤 때렸다는 뺨인 것 같아 다시 화가 치밀어올라 몸을 떨어대던 서강인은 이내 죄책감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딸, 아빠가 집안일 때문에 바빠서 너한테 신경을 너무 못 썼네.”“아빠는 우리 집안 가장인데 당연히 집안일이 먼저고 그게 제일 중요한 거죠. 그런 소리 마세요.”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문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겨야만 했던 아빠의 고초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서인아는 자책하는 아빠를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다.가장의 딸로서 그 책임을 나눠 가지는 게 당연하다 생각해왔던 서인아기에 그전에도 원망은 해본 적이 없었다.“딸, 나는...”서강인은 조금 자란 뒤로 일찍 철이 들어 아버지 걱정만 하던 서인아에 반해 자신은 아버지 노릇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코끝이 찡해났다.“나 진짜 괜찮다니까요.”서인아는 그런 아빠를 향해 일부러 더 웃어 보이며 말했다.“이런 상처는 며칠 뒤면 다 사라질 건데 왜 그래요 자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