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M국에서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인재였다. ‘반드시 마땅한 방법을 찾아 윤이서를 없애버릴 거야.’...이씨 가문의 고택에 돌아온 배미희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언아, 이서랑 지환이한테 무슨 일 있니?”그녀가 마당에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서가 지환이한테 달라붙었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왜...” 상언이 우스꽝스럽다는 듯 말했다.“지환이가 이서 씨한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나 봐요.”“그래? 하지만 지환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서잖니?”“네, 하지만 지환이는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잖아요.” “왜?”배미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엄마, 벌써 잊으신 거예요?” 상언이 이서와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감개무량해 했다.“이서 씨한테 지환이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하 어르신의 죽음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환이를 떠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던 거고요.”“그래서 다른 사람 같은 경우에는 천천히 언급해서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지만, 지환이만은 그럴 수 없어요. 일단 지환이를 언급하는 거 자체가 이서 씨에게는 큰 자극이 될 테니까요.”이 말을 마친 상언이 이전에 이서가 하은철로 인한 자극을 받은 일을 떠올렸다. ‘그 자식도 분명 이서 씨한테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도 이서 씨를 자극하다니,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어.’ ‘그 자식은 지환이가 이서 씨에게 온 신경을 쏟고 있었던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해. 만약 그 자식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났더라면, 뼈도 추릴 수 없었을 테니까.’ ‘이제 하은철 그 자식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건 시간 문제야.’‘이서 씨는 지금 지환이랑 같은 방을 쓸 수 있고, 지환이도 조만간 가면을 벗을 수 있게 될 테니까.’상언은 이 비운의 두 남녀가 빨리 화해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이런 상언의 마음이 이서에게 닿았던 것일까.
임하나 역시 이서가 괴한에게 습격당한 일을 알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은 상언이 아닌 임현태였다. 현태는 진실한 사람이었기에, 소희의 몇 마디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해버린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소희는 즉시 하나에게도 알려주었다. 곧 이 소식은 단톡방에 보내졌으며, 사실을 알게 된 세 사람은 즉각 이서를 보러 가려 했으나, 하나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안 돼, 절대 안 돼, 소희야, 너는 이서를 대신해서 회사를 잘 관리해야 하잖아. 조금도 소홀히 해서는 안 돼.][그리고 나나야, 아무리 기억을 잃기 전의 이서가 너를 국제적인 유명한 스타로 만들려고 했다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 계획이 보류된 상황이잖아. 너도 네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적합한 것 같아. 마침 우리 회사에 올해 M국에 갈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내가 회사에 잘 말해볼게.]소희와 나나는 마침내 이성을 되찾을 듯했다.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던 두 사람은 하나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하나의 마음은 확실히 허전한 듯했다. 상언이 떠난 이후로, 그녀는 그와 연락한 적이 없었다. ‘설마... 이 선생님이 벌써 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하나는 회사에 M국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는데, 그 프로젝트는 대단한 주목을 받는 것이었기에, 회사는 적극적인 하나의 태도에 기쁨을 표하며 즉시 허가를 내려주었다.하나는 곧바로 이 소식을 이서에게 알렸다. 물론, 그녀는 이서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출장을 오는 것이었지만, 이서는 그녀가 온다는 것 자체에 큰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요 며칠...’‘옆에 앉은 H선생님께 답답함을 느끼던 참이었어.’‘내 곁을 맴돌지 말라는 분명한 의견을 밝혔는데도 전혀 귀 기울이지 않으시는 것 같아.’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신다고.’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지환과 대화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오늘은 배미희가 주최한 바비큐
“이봐, 내가 다 설명할게.”“H선생님.”이서의 목소리가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 있던 지환을 끌어올렸다. 그가 이서를 바라보았다. “왜?”“제발 이러지 마세요. 저 손님들을 좀 보시라고요, 간간이 우리를 쳐다보면서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추측하고 있어요. 제가 그때마다 달려가서 우리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정말 그렇게 했다가는 사이코패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될 거라고요.”“말은 하지 않지만, 저 손님들의 눈빛에서 다 느낄 수 있단 말이에요.”“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쓸 필요 없어, 너만 잘 지내면 되는 거야.” 입술을 오므린 이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H선생님은요? H선생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지환은 멍해지는 듯했다. “너... 너는 내 마음속에 있는 그 사람과 많이 닮았어.” 지환의 눈동자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이서의 두 번째 말이 선선한 바람과 함께 그의 귓전을 스쳤다. “그래서 저를 그 여자의 대역으로 삼은 거예요?” 사실, 요 며칠 동안 이서는 생각을 거듭했다.‘H선생님은 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한테 친절을 베푸시는 거지?’‘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딱 하나뿐이야.’‘잃어버렸다던 그 여자와 내가 아주 닮은 거지,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그래서 모든 감정을 나한테 대입하셨던 거라고.’ 이러한 가능성을 생각하자, 이서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으며, 의심은 증폭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기억까지 잃은 상황이잖아.’ ‘혹시... 내가 이 비밀을 알고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차를 몰다가 교통사고가 난 건 아니었을까?’‘그런 게 아니라면, 이전의 일은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 유독 작년 한 해 동안의 일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영 이상하잖아.’‘그래, 내가 잃어버린 기억은 H선생님을 알게 되면서부터야.’이서는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그마치 1년간 다른 사람의 대역으로 살았다는 게 너무 억울해.’시무룩한 이서의 얼굴을 본 지환은 어
지환의 대답은 이서의 마음을 세게 흔들었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솟구치는 것 같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선물을 든 하이먼 스웨이와 심가은은 배미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배미희는 오늘 손님을 초대하여 바비큐 파티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전화를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가 파티에 참석하고 싶다고 하자, 거절하기 어려워 승낙한 것이었다. ‘나는 스웨이 여사가 아니라 심가은 저 여자한테만 악감정이 있는 거야.’‘그런데 오늘은 꽤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네?’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배미희의 시선을 느낀 가은이 간신히 표정 관리를 했다. 가은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보러 간다는 것은 알았으나, 결코 동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말씀이 맞을지도 몰라.’ ‘그래, 불과 며칠 전에 그런 일을 당했는데, 이씨 가문이 윤이서가 외출하도록 내버려둘 리가 없지. 윤이서의 현재 상황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람을 써서 윤이서를 상대할 수 있겠어?’‘게다가 윤이서는 지금 기억을 잃은 상태라, 최근 1년간 일어난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해. 즉,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야.’‘우선 윤이서한테 살갑게 다가가서 기회를 엿보자. 그렇게 하면 윤이서를 한 방에 없애버릴 수 있을 테니까.’수많은 꿍꿍이를 숨긴 가은이 배미희와 인사를 나누자, 이서와 지환 역시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순간, 가은의 시선이 가면을 쓴 지환에게 향했다. 지환은 가면 따위로 감출 수 없는 귀티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내뿜고 있었다.가은이 질투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윤이서는 참 운도 좋지. 지엽 씨와 하은철로도 모자라 지금은 또 가면을 쓴 남자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까.’‘이씨 가문에 초대받을 정도면... 신분이 꽤 높은 남자인 것 같은데...’ ‘윤이서는 결혼도 했는데, 여전히 많은 남자가 쫓아다니잖아? 정말 복도 많아.’“이서야, 나야, 하이먼 스웨이.”이서를 바라보는 하이먼 스웨이의
“기억을 잃은 이서한테 이전의 일을 말해서는 안 돼.”하이먼 스웨이가 말했다.“어떤 일이 이서를 자극할지 모르거든.”심가은은 이를 듣자마자 눈을 돌렸다.“그렇군요, 죄송해요, 기억을 잃은 사람을 만난 건 저도 처음이라...” 배미희가 가은을 힐끗 보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은근슬쩍 이서의 앞에 서서 그녀를 보호했다.바로 이때, 그들에게 다가온 상언이 말했다.“이야기는 좀 나누셨어요? 그럼 이제 식사하러 가시죠.”상황을 지켜보던 배미희가 이서를 끌며 말했다.“이서야, 우리 바비큐나 먹으러 가자.”“네.”이서가 배미희를 따라 중간 식당으로 향하기 전에 하이먼 스웨이를 한 번 바라보았다. 하이먼 스웨이 역시 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배미희와 모녀처럼 지내는 이서의 모습에 왠지 마음이 찡한 듯했다. ‘왠지 내 딸을 빼앗긴 것만 같아.’‘하지만 내 딸은 지금 내 곁에 있는데...’ “우리도 가자.”하이먼 스웨이는 가은을 불렀으나, 뒤에 있는 지환에게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저렇게 차려입은 걸 보면, 알아봐 주길 원치 않는 것 같아.’ 자리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바비큐를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서가 사람들의 대화 주제가 되었다. “배미희 여사님, 혹시 저 예쁜 아가씨가 이씨 가문의 예비 며느리인 거 아니에요?” 이서가 예쁘다는 말을 들은 가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아니에요, 제가 그런 복이 어디 있겠어요.”배미희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그리고 제 못난 아들은 이서에게 어울리지도 않아요. 이서야, 내 말이 맞지?” 이서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 식사 한 끼의 위력 때문인지 배미희는 그녀를 언급할 때마다 자부심이 가득한 말투를 하고 있었고, 이는 이서를 쑥스럽게 했다. “네?”사람들은 호기심이 발동한 듯했다.“이렇게 훌륭한 이 선생님이 저 아가씨와 어울리지 않는다니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가문의 아가씨길래 그러시는 거예요? 설마, 공주는 아니죠?”어떤 나라는 여전히 군주제를 시행하고
심가은은 이전에 심씨 가문의 고택에 있을 때, 늘 이지숙과 함께 고스톱을 쳤기 때문에 고스톱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가은은 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으나, 이따가 또 모두 이서를 칭찬할까 봐 두려웠다.그뿐만 아니라, 이서가 고스톱을 칠 줄 모르는 이상, 고스톱에서만큼은 그녀를 짓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은의 마음을 알 리가 없었던 하이먼 스웨이는 매우 기뻤다.‘가은이가 점점 더 철이 드는구나.’ “그래, 우리 넷이 한 판 해보자꾸나.” 배미희 역시 동의했다.“그러시죠.” 네 사람이 자리에 앉기 전, 가은이 말했다.“저도 잘 치지는 못해요. 엄마, 그리고 여사님, 조금은 봐주셔야 해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의적인 것이었다. ‘분명히 내가 이길 거야.’ 첫 번째 판이 곧 시작될 것이었다. 패를 섞으려던 찰나, 지환을 본 세 사람이 그에게 이서의 뒤에 의자를 놓고 앉으라고 했다. 이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패를 꼭 잡았다. 그녀는 몇 번이고 지환의 숨결이 자신의 목덜미를 쓸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으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의자에 앉아 있어서 도망갈 곳도 없어.’이서는 억지로 숨을 참아야 했다. 잠시 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고, 가면 아래에 감춰졌던 지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H선생님.”그녀의 낮은 목소리는 약간의 애원을 의미를 띠고 있었다.“조금만 뒤로 가주시겠어요?” ‘원래 고스톱은 칠 줄도 모르는 데다가, H선생님까지 보고 계신다면, 분명 빈털터리가 되고 말 거야.’속눈썹을 살짝 늘어뜨린 지환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이서의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바라보았다.‘이런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야.’ ‘이서의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 거였는데...’ ‘이런 이서의 모습은 나의 모든 근심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하는 것 같았지.’ ‘물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지환이 패가 놓인 테이블을 한 번 보았
“가은 씨, 정말 고스톱 칠 줄 모르는 거 맞아요?”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이서는 패를 만지는 것만 봐도 미숙하다는 걸 알 수 있어.’‘하지만 심가은은...’가은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패를 섞으며 말했다.“그럼요, 여사님.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에요.”배미희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아주 작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한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고, 또다시 이서의 차례가 되었다.그녀는 섣불리 패를 던지지 않았으며 패를 주시했다. ‘방금 그 한 판으로 백만원을 잃었어.’ ‘게다가 그 백만원은 H선생님이 지불하실 거라고.’ ‘배미희 여사님께서 이렇게 통이 크실 줄은 몰랐어. 절대, 절대 또 지면 안 돼.’ “긴장할 필요 없어.”지환이 이서의 패를 보며 말했다.“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이서가 입술을 깨물었다.“너무 많은 돈을 빚지면 갚을 수도 없단 말이에요.” “갚을 필요 없어.”지환의 목소리는 대단히 낮았다. 이서는 몇 번이나 그가 자신의 귀에 대고 말하는 줄 알았다. “H선생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요.” 이서는 지환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럼 이겨야겠네.”뒤에서부터 지환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서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H선생님도 고스톱을 칠 줄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나?’‘고스톱을 칠 줄도 모르는 우리 두 사람이 어떻게 이길 수 있다는 거야?’ 지환이 손가락으로 이서의 옷자락을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집중해, 모두 너만 보고 있잖아.”고개를 돌린 이서의 눈에 방실방실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아무렇게나 패를 던지려 하자, 누군가가 등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지환임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손이 홀린 듯 두 번째 패로 향했다. “아이고, 이번에는 먹을 게 없네.” 약간의 실망감에 빠진 배미희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
배미희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고작 이런 일로 이서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로 들리는데... 아직도 이서가 똑똑하다는 걸 믿지 못하겠다는 거예요?”하이먼 스웨이 역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가은이 얼른 상황을 수습하고 나섰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사모님, 계속 게임 하시죠.”‘과연 다음 판에도 운이 좋을지 한번 보자고!’ 이서는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가은의 말에 동조했다. “사모님, 저는 괜찮으니까 계속 게임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나 세 번째 판, 네 번째 판 역시 이서가 승리를 거두었다.오백만 원을 잃은 가은은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갑자기 지환에게 향했다. ‘한 번은 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 번은 말이 안 돼. 분명히 무슨 속임수를 썼을 거야.’ 가은이 잔꾀를 내었다.“저기... 혹시 물 한 잔만 가져다주시겠어요?”그녀는 말을 마칠 무렵 윙크를 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지환의 눈동자는 대단히 차가웠다. 가은은 하마터면 의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그녀는 지환이 거절할 줄 알았으나, 그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는 다소 놀란 듯했다.‘드디어 나의 매력이 통한 건가?’가은은 은근히 기뻐했으나, 이서는 몰래 입술을 오므렸다. “이서 씨, 이제 이서 씨 차례예요.” 가은이 호의적이지 않은 목소리로 이서를 일깨워주었다. 그녀는 가은을 한 번 보았는데, 가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분명 친절함이 아닌 조롱을 지닌 것이었다. 사실, 이서는 처음부터 가은이 자신을 향한 악의를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나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의 따님인데... 내가 너무 깊이 생각한 건 아닐까?’ 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직감이 정확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쩐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한테 적대적이었어.’ ‘오해가 아니었던 거라고.’고개를 숙이고 패를 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