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제 친구의 능력이 훌륭하다는 것을 말해주죠.”하지환은 티 나지 않게 화제를 돌렸다.“뭐 만들었어요?”윤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가 돌린 화제를 따라 열정적으로 그녀가 만든 것들을 소개했다.밥을 배불리 먹은 후, 하지환은 본인이 나서서 직접 설거지를 한다고 말했고, 윤이서는 컴퓨터를 꺼내 영화 한편을 찾았다.그건 코미디 영화인데, 윤이서는 영화 보는 것에 너무 집중하여 집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하지환이 나오면서 그녀를 보았다.윤이서는 카펫에 앉아 배를 붙잡고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윤씨네 아가씨의 우아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하지환은 문득 윤이서가 하은철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그녀가 하씨 집안 행사에 참석한 사진을 뒤져봤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 장 한 장마다 그녀는 우아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생기를 느낄 순 없었다.근데 지금 이 순간의 그녀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리고 그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았다.전에 느끼지 못했던 이 조용함과 아늑함을 즐겼다.그러나 전화벨 소리가 이 고요함을 깨뜨렸다.윤이서는 책상 위의 전화를 힐끗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성지영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그날 그들이 한바탕 싸운 이후로 부모님은 다시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마치…… 정말 그녀란 딸이 없어진 것처럼.그러나 결국 그들은 부모님이었기에 윤이서가 아무리 마음을 모질게 먹어도 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운명을 인정하고 받았다.“이서야,” 성지영은 화가 나서 말했다.“너는 왜 아직도 이혼하러 가지 않았니?!”어제 그녀는 윤수정을 보러 갔다가 마침 하은철을 만났다.하은철은 평소에도 그녀에 대한 태도가 좋지 않았는데, 어제도 만나자마자 욕설을 퍼부었고 그녀에게 딸을 잘못 교육했다고 말했다!성지영은 당시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후에 하은철의 경호원을 통해 며칠 전 하은철이 사무소에서 윤이서가 기혼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
“자신의 딸을 강요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자신의 실력이나 좀 키워요!”성지영은 하지환의 목소리인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이건 우리 집안의 일이니 넌 쓸데없는 참견 하지 마! 너희들 지금 어디에 있니?”윤이서의 집은 아니겠지?“신경 쓰지 마세요.”하지환은 장모에게 호감 같은 게 없었기에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만약 윤이서 씨가 당신의 딸이라면 앞으로 더 이상 하은철에게 시집가라는 말을 꺼내지 마세요. 윤이서 씨가 싫어할 뿐만 아니라 저도 싫어하니까.”성지영은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은철이랑 비교하는 거야?”하지환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윤이서는 그의 얇은 입술이 굳게 닫힌 것을 보고 또 화가 난 걸 알아차렸다.그러나 이번에 그녀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졌다.“고마워요.”하지환은 눈을 들어 맑은 눈을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들이 목구멍에서 막혔다.“일찍 쉬어요!”“그래요.” 윤이서가 일어섰다. “그럼 하지환 씨는…….”“나 먼저 갈게요.”윤이서는 하지환의 뒤를 따라갔다.“어디 살아요?”“시내에서요.”“방 하나 세낸 거예요?”시내는 다 비싼 땅이라 하지환이 살 수 있는 집이라면 방이 하나밖에 없겠지?하지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별장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많이 불편하죠? 아니면……. 나한테로 이사 와서 지내도…….”윤이서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하지환은 그녀의 머리를 보고 가볍게 웃었다.“아니에요.”그는 그녀와 함께 지내면 오늘 같이 자신을 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다시 발생할까 봐 두려웠다.“아.”윤이서가 대답 할 때 말투 속에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실망감이 담겼다.이 밤은 불면의 밤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하지환은 도심에 있는 아파트 꼭대기층으로 돌아와 옷을 벗은 뒤 차가운 욕조에 몸을 던졌다.키스의 뒤끝이 심해서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회복되었다.윤이서는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이
윤이서의 몸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굳었다.“회사는 그렇게 오랫동안 성장해 왔는데, 아직도 HS 그룹과 연관이 있다고요?”그녀는 줄곧 GM이 이미 HS의 곁을 벗어났고 그들이 도와주는 건 가끔 프로젝트를 소개해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윤재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GM 그룹은 하씨 집안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업계의 경쟁이 너무 치열했고, 그들의 도움만 없다면 돈을 벌기는커녕 적자만 났을 것이다.윤이서는 힘없이 웃었다.어쩐지 나보고 마음 굳게 먹고 그에게 시집가라고 하더니.“이서야, 아빠도 이러고 싶지 않아. 지금 너만이 아빠를 구할 수 있어. 너도 윤씨 집안이 망해서 더 이상 일어설 가능성이 없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윤이서는 눈물을 글썽였다.“가문을 위해 나를 희생해야 하는 건가요?”윤재하는 윤이서의 눈을 보지 못했다.“이서야, 어쩔 수가 없구나. 가문을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뜻대로만 행동 할 수 없어.”윤이서는 처량한 웃음소리를 내며 눈앞에 자신을 키운 아버지를 보며 고통스럽게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하은철은요?”“그는…… 아마 회사에 있을 거야.”“저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요.”“이서야…….”윤이서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가요.”윤재하는 입술을 움직이려다 결국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윤이서를 데리고 하씨 그룹으로 갔다.지금의 윤이서는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는 것 같다.……HS 그룹 CEO 사무실.하은철은 하지환을 데리고 사무실을 둘러본 뒤 우쭐거렸다.“어때요? 이 사무실은 제가 직접 인테리어를 설계한 건데, 좀 다르죠?”하지환은 입을 열었다.“너 오늘 기분이 좋아보이는군.”하은철은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웃었다.“정말 무슨 일이든 작은아버지의 눈을 속일 수 없군요.”“말해봐,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기쁜 거야, 아침 일찍 부터 나를 부르다니.”하은철은 웃음을 띈 채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 할 수는 없으니 둘째 작은아버지와 이야기할 수밖에 없네요. 며칠 전에 제가
하은철은 머리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넌 지금 혼인 신고 하고 있어야 하는데.”윤이서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하은철의 맞은편에 앉았다.“넌 투자를 철수하지 않을거고, 나도 이혼하지 않을 거야.”하은철은 고개를 들어 웃으며 말했다.“윤이서,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니?”“나 아주 잘 알고 있어.”윤이서는 평화롭게 말했다.“나는 오늘에야 우리 집안이 하씨 집안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네가 나의 신장을 원하는 것도 지나친 욕심이 아니긴 해.”여기까지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붉은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하지만 윤수정과 함께 있기 위해 나를 죽이려는 건 너무 했어.”하은철은 눈살을 찌푸렸다.“윤이서, 너 나한테 누명 씌우지 마, 내가 언제 너를 죽였다고…….”윤이서는 손을 흔들며 하은철의 말을 끊었다.“GM 그룹에 투자한 돈은 너의 것이니, 네가 투자를 철수하고 싶다면 나도 막을 수 없지. 그러나 GM 그룹에게 숨돌릴 기회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겠어? 내가 계산해 봤는데, 회사의 장부에 100억만 있어도 한동안은 운행할 수 있어. 나에게 이 돈을 모을 수 있도록 보름만 시간을 줘.”하은철은 가볍게 키득거렸다.“보름? 100억? 윤이서, 너 정말 성에서 사는 공주님이구나. 정말 온 세상이 너를 위해 도는 줄 알아?”“줄 거야 말 거야?”윤이서는 하은철의 눈을 바라보며 얘기했고 눈빛은 확고했다.하은철은 이렇게 의지가 강한 그녀를 처음 봤다.그의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그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윤이서,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사실 이렇게까지 나올 필요가 없었어. 네가 나한테 시집 오고 신장만 수정이에게 주면 그녀도 건강해지고, 우리의 일에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순순히 우리 집안의 사모님이 되면 평생을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데, 하필이면 가난한 놈과 결혼했으니…….”윤이서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말투도 차가워졌다.“너는 그를 평가할 자격이 없어.”그녀가 이렇게 그
하은철은 정말 알고 싶었다. 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줄곧 감정에 무관심했던 둘째 큰아버지가 첫눈에 반해 직접 결혼까지 할 수 있었는지.하지환은 침묵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하은철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둘째 작은아버지, 혹시 작은어머니가 너무 예뻐서 집안에 숨기고 우리가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가요?”하지환은 부인하지 않았다.하은철은 순간 눈을 휘둥그레 떴다.“내가 맞혔군요! 안 돼요, 둘째 작은아버지, 이렇게 말하니 더 궁금하잖아요. 가능한 한 빨리 나에게 둘째 작은어머니 만나게 해줘요!”하지환은 고개를 들어 하은철이 흥분하고 기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검은 눈동자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곧 볼 수 있을 거야.”……HS 그룹을 떠난 윤이서는 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주소록을 뒤져 사람을 찾았다.100억은 상류사회에 있어서 단지 몇 끼의 밥값일 수 있지만, 그들이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설득하는건 하늘에 별 따기였다.특히 하은철은 이미 투자를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니 그녀가 돈을 빌리러 가면 하씨 집안과 윤씨 집안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그렇다면 사람들은 더욱 더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윤이서는 갑자기 너무 지쳤다.만약 윤씨네 집안이 진작에 하씨네 집안에서 벗어났다면, 이 지경이 됐을까.진정으로 그녀를 아프게 한 것은 부모님의 태도였다.윤씨 집안을 다시 4대 가문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그들은 그녀의 생사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윤이서는 눈을 깜박거리다 눈을 감았다.때때로 그녀는 예전에 그들이 자신에게 잘 해준 것도 단지 그녀가 미래의 하씨 집안 사모님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윤이서가 눈물을 닦으면 닦을수록 눈물의 양이 많아졌다.결국 그녀는 아예 닦지않은 채 멍하니 앉아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눈물이 그냥 흐르도록 내버려뒀다.얼마나 지났을까 문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윤이서는 황급히 일어나 세수를 하고 문을 열었다.문밖에 서 있는 하지환을 보았을
잠기고 나지막한 목소리는 윤이서로 하여금 자신이 하지환을 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그녀는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몰라 황급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희고 작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미안해요, 난…….”하지환의 가슴이 순식간에 멎었다.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얇은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 “내가 빌려줄 수 있어요.”윤이서는 몸이 굳어지더니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의심했다.“뭐라고요?”하지환은 그녀의 시선에 몸 둘 바를 몰랐다.“100억.”윤이서는 미간을 펴고 말했다.“하지환 씨, 고마워요. 하지만, 이 일은 내가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신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난 정말 도와줄 수 있어요.” 하지환은 눈 한 번 깜박이지않고 윤이서를 바라보았다.“사실 나는 하씨의…….”“나는 당신이 하씨네 회사의 관리층이고 매년 연봉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100억은 그래도 큰 액수예요.”윤이서는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하씨네 집안 사람이라면 아마 그만큼의 돈이 있겠죠.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결혼하지 않았을 거예요.”“왜요?” 하지환의 눈동자는 먹통을 뒤집어 놓은 듯 새까맸다.“예전의 나는 하은철에게 시집가기 위한 존재였어요. 그때 가족들은 나를 특별하게 대했고, 내가 무엇을 원하든 그들은 나를 만족시켰죠.하늘의 달을 원하더라도.하지만 내가 포기하자 모두가 변했어요.전에 나는 탐욕이라는 두 글자가 사람을 이렇게 추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믿게 되었고요.그래서 나는 차라리 평범한 사람과 함께 있을지언정 그 어떤 가문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요.”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하지환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래서, 만약 내가 하씨네 사람이라면, 윤이서 씨는 나와 이혼할 건가요?”윤이서는 고운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하지환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그러나 윤이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당신……. 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에요, 밥은 먹었어
다음 순간, 스크린이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에 다시 밝아졌다.진수는 화면을 살짝 보았는데,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그는 바로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고 공손하게 말했다.“도련님.”이 말이 나오자 떠들썩한 룸은 조용해졌다.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진수의 표정은 시종일관 공손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전에는 분명…… 네, 알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저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그는 윤이서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윤이서 아가씨 맞죠? 방금 회의 중이라 전화 못 봤어요. 볼일 있다고요? 그래요, 그럼 우리 만나서 얘기 해요. 그래요, 내일 저녁에 봐요.”……윤이서는 전화를 끊고 온몸은 한결 홀가분해졌다.하지환은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좋은 소식 있어요?”윤이서는 고개를 들어 웃었다.“맞아요, 내일 약속 하나 잡았어요.”“남자예요, 여자예요?”윤이서는 하지환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남자요.”하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그에게 돈을 빌릴 작정인가요?”“네,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적 있거든요. 그래서 시도해보고 싶어요.”윤이서도 큰 희망을 가지지는 못했다.하지환은 숙연한 얼굴로 윤이서 맞은편에 앉았다.그가 이러는 것을 보고 윤이서는 왠지 긴장했다.“왜요?”하지환은 잠시 침묵하다 질문을 했다.“윤이서 씨, 결과가 정해져 있다 생각해 본 적 없어요?”윤이서는 턱을 짚으며 영문 모른 채 하지환을 바라보았고, 한참 뒤, 어렵게 입술을 움직였다.“그러게요, 내가 왜 그 생각도 못했지. 여기는 북성, 하씨 집안의 천하죠. 하은철이 내가 지기를 원하면 난 질 수밖에 없고, 내가 이기기를 원하면 난 이길 수 있죠. 그러니 내가 돈을 빌릴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어요.”그녀가 바로 깨닫는 것을 보고 하지환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숨기고 있었다.“그래요, 그래서 하은철이 원하는 것은 어떤 결과라고 생각하죠?”그녀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그야 당연히 내가 지기를 바라겠죠
“내가 오늘 부탁할 게 있어서…….”진수는 손을 흔들었다.“에이, 윤이서 아가씨는 저랑 처음으로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죠? 우리의 규칙은 먼저 술을 마시고 나서 이야기하는 거예요.”말이 끝나자 그는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냈다.“웨이터,가장 좋은 와인 한 병 가져오세요.”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터가 술 한 병을 들고 올라왔다.진수는 받자마자 직접 윤이서에게 술을 따랐다.“윤이서 아가씨,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와인인데, 자, 마셔봐요.”윤이서는 가뜩 따른 와인 잔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싫은 거예요?” 진수는 얼굴을 붉혔다.윤이서는 어쩔 수 없이 한 모금 마셨다.진수의 얼굴은 순간 보기 흉하게 변했다.“보아하니, 윤이서 아가씨는 성의가 없군요. 기왕 이렇게 된 이상, 가봐요.”윤이서는 황급히 말했다.“아니요, 단지 내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해서요…….”진수가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윤이서는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고 단숨에 마셨다.진수는 그제야 다시 웃음을 얼굴에 띈 채 말했다.“그래요. 자, 다시 윤이서 아가씨에게 술을 따라줘.”이번에도 술을 가득 따랐다.윤이서는 억지로 마실 수밖에 없었다.술을 마시자 그녀는 나른하게 의자에 쓰러졌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었다.“안 돼, 진 사장님, 저…… 전 마실 수 없을 거 같아요.”진수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음흉한 눈빛으로 탐욕스럽게 윤이서를 쳐다보았다.“그래요? 한 잔 더 하면 100억 빌려줄게요.”윤이서는 어렵게 고개를 들었지만 눈동자는 반짝였다.“정말이요?”진수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나서 윤이서의 잔을 가득 채웠다.“그럼 성의를 보여줘야죠.”윤이서는 애를 쓰며 술잔을 들어 올렸고, 붉은 입술이 컵에 닿자마자 발밑이 미끄러지더니 비틀거리며 땅에 넘어졌고 와인도 바닥에 쏟아졌다.그녀는 땅에 엎드려 일어서지 못했다.진수는 이 상황을 보고 윤이서의 곁으로 가서 목소리를 낮추었다.“취했어요?”윤이서는 어렴풋하게 눈을 부릅뜨며 말
병원에 다다른 소희는 침대에 누운 이서를 보고는 재빨리 하나에게 경위를 물었다. 하지만 하나도 경위를 잘 알지 않았다.그저 하은철과 하도훈의 음모로 인한 일이라는 것만 알 뿐이었다. “이서는 이미 형부의 신분을 알고 있어.”하나가 소리를 낮추고 입구를 한 번 바라보았다.소희는 병실로 들어올 때 지환을 보았다. ‘그래서 형부가 들어오지 않고 문밖에 계셨던 거구나.’“그럼...” 하나가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아직 상황이 불분명해. 마이클 천 선생님은 이서가 깨어나야만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 “그리고...”그녀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나쁜 소식을 전했으니, 좋은 소식도 하나 알려줄게.” “좋은 소식?”소희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은철이 죽었어!”“하은철이 죽었다고?” 이는 과연 좋은 소식이었다. 소희는 이 말을 듣자마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 형부가 직접 사격했대. 하지만 이 선생님이 그러는데, 그 총을 맞지 않았더라도 그날 밤을 넘길 수 없었을 거래.” “정말 잘 됐다! 그 미친X이 죽었으니, 이서 언니도 마침내 하씨 가문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 거잖아.” 그 순간, 하나 얼굴의 웃음기가 굳어졌다.‘하도훈과 하도훈 배후의 그 무서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언니, 왜 그래? 설마 내 말이 틀린 거야?” 하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잠시 다른 생각을 했을 뿐이야. 드디어 고생 끝에 낙이 온 거지. 이제 깨어난 이서가 형부와 잘 지낼 수 있기만 바라면 돼.” “형부가 이서를 속인 건, 확실히 형부가 잘못한 거야.”“하지만 형부도 처음에는 이서가 하은철의 약혼녀라는 걸 몰랐다고 하더라고.”“맞아, 나도 이서 언니가 형부와 잘 지냈으면 좋겠어. 두 사람, 그동안 너무 힘들었잖아.” “이제 하은철도 죽었으니, 두 사람을 귀찮게 할 사람은 없을 거야. 이럴 때는...” 소희의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침대 누워 있던 이서의 눈꺼풀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흥분해서 몸을 일으
소희는 감격스럽게 이지숙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서 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걱정돼요.”“당신도 들었죠? 친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데, 그래도 못 가게 할 작정이에요? 아버지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매몰찰 수 있어요?” 심근영은 정말이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근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지숙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는 목소리를 낮추었다.“어제 어르신들이 나를 왜 불렀는지 알아?” 이지숙이 대답했다.“왜 불렀는데요?” “어떤 사람이 소희가 윤씨 그룹으로 들어가는 사진을 찍은 걸로도 모자라, 그걸 가지고 글을 쓰고 있대.”“이런 상황에서 소희가 윤 대표를 만나러 간다면, 그분들은 틀림없이 심씨 가문에서 소희를 쫓아내려 하실 거야.”“당신, 우리 딸이 쫓겨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이 말을 들은 이지숙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심근영이 이어서 말했다.“물론 소희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진 않겠지. 악역은 내가 도맡을 테니, 당신은 먼저 방으로 돌아가.”이지숙은 소희를 한번 보았고,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방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몇 걸음 내딛다가 달갑지 않게 고개를 돌려 심근영을 불렀다.“당신, 소희는 어릴 때부터 우리 곁에서 자라지 않았고, 우리에게 요구한 것도 없어요.”“그리고 지금은 그저 병원에 입원한 친구를 보러 가고 싶을 뿐이죠. 우리한테 그렇게 작은 소원을 들어줄 방법도 없다는 거예요?” 이지숙이 또박또박 내뱉는 말은 소희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이 말을 들은 소희는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이 집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바란 사람은 오직 저 두 분이구나.’‘특히 저분.’ ‘내게 진 빚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내 부탁은 늘 들어주려고 하셔.’ ‘게다가 내가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랫동안 슬퍼하곤 하시지.’ 어젯밤, 소희는 이미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이지숙이 자른 과일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또 슬퍼하기 시작했고, 소희가 마지못해 모든 과일을 다
소희는 현태가 밤새 돌아오지 않자, 이서가 다친 사실을 알게 되었다.물론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낼 마음도 없었다. 그녀는 가능한 한 빨리 병원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이서 언니가 대체 어떤 상황인 거지?’ 하지만 소희가 방문을 나서자마자 심근영이 그녀를 불렀다.“소희야, 어디 가려고?” “잠시 나갔다 올게요.” “윤 대표를 만나러 가는 거야?”심근영이 물었고, 소희도 숨기려 하지 않았다.“네.” “안 된다.”심근영이 의논할 여지가 없는 말투로 말했다.“왜요?” 소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이서 언니가 입원했대요. 언니는 저의 친구나 마찬가진데, 왜 보러 가지 말라는 거예요?”소희는 애가 탔다.“윤 대표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보러 갈 수 없을 줄 알아! 잊지 마, 너는 심씨 가문의 아가씨이지, 윤 대표의 비서가 아니야!” 소희가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말씀을 하시든, 저는 오늘 이서 언니를 만나러 갈 거예요! 저와 이서 언니가 각각 심씨 가문과 윤씨 그룹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저희는 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대할 뿐이라고요!” “우리 두 사람의 사적인 관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두 집안의 이익이 연결되지는 않을 거예요.” 소희가 말했다. “그건 단지 네 생각일 뿐이야.”심근영이 다소 너그럽게 말했다.“소희야, 네 방으로 돌아가라. 지금 심씨 가문 사람들은 네가 윤씨 그룹에서 일했다는 핑계로 너를 공격하고 있어.”“그런 상황에서 네가 윤 대표를 만나러 간다면, 그 사람들이 큰 문제를 일으킬지도 몰라.”“얘야, 다 너를 위한 거란다.” “그런 배려는 필요 없어요!”소희가 말했다.“그분들이 그렇게 하는 건 저를 심씨 가문에서 쫓아내기 위한 거잖아요! 정말이지 상관없어요, 저도 이 집에 감정이 없으니까요!” 이 말이 나오자, 소희는 심근영의 몸이 움찔하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자기 말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급히 말했다.
“그래, 너는 이서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만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잖아.”상언이 더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더 이상 말리진 않을게. 하지만 나를 좀 봐. 나는 하나 씨랑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냈고, 그 시간 동안 우리의 감정이 점차 안정돼 가고 있다고 느껴.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나는 늘 걱정하면서 살아. 어느 날 눈을 떴는데, 하나 씨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할까 봐 걱정돼 미치겠어.” “그렇지만... 지환아, 너는 나보다 훨씬 운이 좋잖아.”“적어도 이서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이서가 널 좋아한다면, 언젠가는 널 다시 받아주지 않을까, 응?” “너에겐 아직 희망이 있지만, 나에겐 희망조차 없어.”“하지만 그러면 뭐 어때? 나는 여전히 지금이 너무 소중해. 왜냐하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나 자신에게 말하거든.” “하나 씨를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하라고.”고개를 돌린 상언이 미소를 지은 채 지환을 바라보았다.“지환아, 모든 걸 가진 네가 왜 자꾸 불안감을 느끼는지 알아?”“이미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이서가 너를 상대하지 않을까 봐, 후에 네가 무너져 내릴까 봐 두려운 거야.”“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너와 이서 사이의 벽이 마침내 무너져 내린 거야! 이 고비만 넘기면, 앞으로 너희 둘 사이에는 아름다운 일만 펼쳐질 거야. 찰나의 고비일 뿐인데, 두려워할 게 뭐 있겠어?” 지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상언을 보았고, 상언은 다시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지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눈빛에 서린 고마운 감정은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상언은 또 한 번 지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서야 문어귀로 걸어갔다. 그는 또 다른 일을 처리해야 해서 계속 지환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한편, 윤씨 그룹의 비서들이 심태윤을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윤 대표님은 정말 자리에 안 계십니다. 저희 말을 믿지
지환은 상언의 충고를 전혀 듣지 않았는데, 지금 당장 이서를 꼭 보고 싶은 듯했다.‘이서는 이미 내가 하은철의 작은 아빠라는 사실을 알았어.’ ‘깨어나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고!’ ‘하씨 가문이 이서에게 준 상처가 너무도 크고 깊어서, 이서는 더 이상 하씨 가문과 관련된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 ‘하물며 계속해서 자신을 속인 하은철의 작은 아빠라면 더욱이!’“이서를 만나게 해달라고! 내 말을 들어달라고!”지환의 눈이 붉어지기 시작했다.몸에 부상을 입은 상언은 도무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래, 알겠어. 이서한테 데려다줄게.” 지환은 그제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상언은 곧장 그를 데리고 이서의 병실로 향했다.병실 입구에 다다랐을 때, 마이클 천의 모습이 보였다.마이클 천도 지환을 보았는데, 곧장 병실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대표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왜죠?”지환은 목이 메었다.“사모님께서 깨어나지 않은 이상, 어떤 상황인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습니다.” “사모님을 위해 조금만 참으세요.”상언은 이 말을 들은 지환이 또 화를 낼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침묵하면서 병실 앞 의자에 앉을 뿐이었다.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마이클 천이 상언을 힐끗 보았고, 상언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대표님, 사모님께서 깨어나신다고 해도 섣불리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꼭 기억하셔야 해요!” “알겠어요.”지환이 무기력하게 대답했다.“네,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마이클 천은 이 말을 끝으로 병실로 들어갔다. 지환의 곁에 앉은 상언은 따라온 의사에게 계속해서 지환에게 링거를 투여하라고 지시했다. “지환아.”상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네 건강을 잘 유지하는 거야.”“네 부상은 너무 심각해.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남을 거라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은 지환은
병원.이는 어둠의 세력이 생긴 이래, 가장 큰 사상자를 낳은 사건이었다. 다행히도 지환 산하의 병원은 적지 않았는데, 현재 그들이 도착한 이 병원은 원래 다음 달에 개원할 계획이었다. 즉, 앞당겨 개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다행히 의사는 다른 병원에서 차출할 수 있었다.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병원에서, 하나는 붕대를 감은 채 모든 것을 지휘하는 상언의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 사이의 하나는 눈이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상언이 그녀를 쳐다보자, 급히 코를 훌쩍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왜 이런 꼴이 되었는데도 쉴 곳을 찾지 않는 거예요?”하나가 곧장 손을 들어 상언을 부축했다.“지환이는 검사하러 갔고, 의사들은 지금 막 다른 병원에서 차출되어 왔어요. 지금은 보스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나서지 않을 거예요.” 물론 현태 또한 용감하고 밝은 사람이었으나, 병원 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하나는 그저 입술을 오므렸다. “방금 이서를 진료했다면서요? 어떻게 됐어요?”“마이클 천 선생님이 급히 와서 이서에게 약을 먹였어요.” “상태가 꽤 안정적이라고 하더군요.” 상언이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된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아직도 걱정이 태산인 거예요?” 하나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하지만 마이클 천 선생님은 이게 폭풍우 전의 고요함일 수도 있다고 했어요. 지금 당장 이서의 상태를 확정 지을 수는 없어요. 모든 건 이서가 깨어나야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거라고요!” 안색이 변한 상언이 슬그머니 팔을 들어 하나를 껴안았다. 팔꿈치의 통증이 점차 온몸으로 퍼져 나갔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되려 다정하게 하나를 바라보며 위로했다.“하나 씨, 나를 믿어요. 다 괜찮을 거예요.” “지금까지의 풍파도 견뎠으니, 이서는 분명히 무사할 거예요!”하나는 그저 상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의 품은 울타리가 되어 방황하던 그녀가 중심을 잡게 했다.“이 선생님!”바로 그때, 갑자기 울려
수십 대의 차가 모든 사람을 데려가자, 그 줄지어 늘어섰던 굴착기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인근 주민들도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있었다. 밤새 떠들썩했던 병원이 마침내 조용해졌고, 하도훈은 지환의 사람이 모두 떠난 것을 확인하고서야 부하들에게 은철을 관에 넣으라고 지시했다. “남은 관 두 개는 여기 둬! 언젠가 하지환과 윤이서가 쓰게 될 테니까!” 그는 이 날이 머지않았다고 확신했다!한편, 다른 나라에서는 맑은 햇빛이 드리우고, 신선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창밖 새들의 노랫소리조차 평화롭게 들렸으며, 피비린내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환이 저렇게 처참하게 고통받는 걸 보고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하지호는 박예솔에게 레드 와인 한 잔을 따라주었다.지환이 YS그룹을 매각한 후, 하지호는 원래 YS그룹이 있던 사무실 건물로 들어왔다. 게다가 그는 지환이 관리하던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고, 그들이 계속 그 건물에서 일하며 자신을 위해 일하게 했다. 이 건물에는 너무 많은 직원이 있었는데, 그저 생계를 위해서 일하고 있었다. 지환은 당시 M국에서 사업을 매각한 후, 모든 중심을 H국으로 옮겼다. 하지만 원래 M국에 있던 직원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의 회사에서 일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M국의 80%가량의 사업이 모두 그의 것이기 때문이었다.하지호는 이렇게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후련해졌다. 이전의 그에게 있어서 지환은 기어오르는 장애물일 뿐이었다.하지만 지환이 떠나자, 재운이 물밀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도훈이 지환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하지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가장 뛰어난 고수들을 모두 하도훈에게 넘겨주었다. 비록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마지막 고비에서 하도훈이 꼬리를 내렸지만 말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밤은 어떻게든 지환의 죽음이 날이 되었을 것이었다! 하지호는 아쉬워하며 와인 잔을 곽 쥐었다.그의 감정이 드러나는 얼굴에 비해, 박예솔의 얼굴은 훨씬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를 감금하고, 사적 제재를 가하려는 행위도 변호할 수 있을까?!” 하도훈은 손을 떨다 못해 손에 쥔 톱을 땅에 떨어뜨릴 뻔했다. “아들이 죽었으니, 따라 죽어도 된다는 건가?”“하도훈, 그래봤자 너는 올해 고작 50살 정도야. 열심히 노력하면 또 아들을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이 거대한 하씨 가문의 재산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거야, 정말 그걸 원하는 거야?” 마지막 한 마디는 사람을 깊이 생각하게 했다.그 당시 지환의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하경철은 별다른 노력 없이 하씨 가문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 그 이후로 그들은 하씨 가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사람은 높은 자리에 오래 있을수록,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비록 현재의 하씨 가문은 이미 재산의 20%를 지환에게 분할해 주었지만, 하도훈이 감옥에 간다면, 남은 80%의 재산까지 하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나눠 가지게 될 것이었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평생 감옥살이는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온갖 목욕을 당하며, 하씨 가문을 호시탐탐 노리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속했던 것들을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는가.정말이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이렇게 생각한 하도훈은 마음속의 원한이 많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상언의 말은 그를 깊이 감동하게 했다.‘하긴, 난 이제 겨우 50살 정도야. 내가 원하기만 하면 여전히 후손을 만들 수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하도훈이 고개를 들어 초라한 지환을 바라보았다. 오늘 밤, 하지호는 그를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곤경에 몰아넣었다. ‘쟤는 이미 그 사람들의 위대함을 보았어.’‘그러니 앞으로는 저 녀석을 죽이고 싶을 때마다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야.’‘하물며 지금은 이서를 죽여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이 세상에 진짜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사람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이서와 함께 죽는다. 이것
주민들이 흥분하는 것을 본 경찰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다가와 현태에게 협상했다.“이러시면 안 됩니다. 무슨 문제가 있다면, 조용히 해결해야죠. 우선 진정하십시오. 일이 커지면, 우리 모두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할 겁니다!” 현태가 말했다.“사장이 빚을 갚지 않았다고요. 저는 제 돈을 찾으러 들어가고 싶을 뿐입니다!” 바로 이때, 하도훈에게 바깥 상황을 전했던 남자가 가까이 왔다. 경찰은 얼른 그 남자에게 말했다.“들었습니까? 돈을 받으러 온 거랍니다. 재산이 그렇게 많은 하씨 가문이, 직원 급여도 못 주는 상황인 건 아니겠죠?” 그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윗선에 보고드렸는데, 이분이 착각하신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하씨 가문이 빚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면서요.” “왜 빚진 사람이 없다는 겁니까?”현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병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지금 당장 하도훈을 우리 앞에 데려다 놓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병원을 발칵 뒤집을 겁니다!” 현태는 연이어 주민들을 바라보았다.“더 시간을 끌면, 정말 저 사람들이 시를 상대로 고소할지도 모르잖아요?”“이 근처 주민이라면 부유하거나 귀족에 속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럼 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도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뜻인데, 이런 소란을 피워도 괜찮다는 겁니까?” 그 남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분노한 주민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는, 정말 이곳의 모든 것을 망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하도훈이 안에서 벌이는 일은 당연히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주민들이 계속해서 소란을 피운다면, 내일 아침이 밝자마자 도시의 모든 사람이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결국 그 남자는 본인이 책임자가 아니라며 간청하기 시작했다.“우선 진정하십시오. 제가 다시 보고하러 가겠습니다!” “이봐요!”현태가 그 남자의 옷깃을 잡고 말했다.“윗선에 똑똑히 전하세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