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서는 임하나의 상상에 어이 없어 했다.“정말 재벌 집 도련님이라면, 무엇 때문에 나와 계약 결혼을 하는 거지?”임하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참을 생각했지만 마땅한 이유를 생각하지 못했다.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윤이서는 웃으며 말했다.“자, 내가 돌아가서 그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잖아?”임하나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두 사람이 작별인사를 한 다음, 윤이서는 하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저녁에 같이 밥 먹어요.”물론 그들은 이미 결혼한 사이지만 여전히 각자의 집에서 지냈다.이렇게 생각해 보니 그들은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같이 먹지 못했다.“좋아요.” 하지환의 입가가 올라갔다.“그럼…… 우리 집으로 와요. 뭘 먹고 싶어요? 내가 장보러 갈게요.”“윤이서 씨가 좋아하는 거 만들면 돼요.”윤이서는 갑자기 하은철이 생각났다.8년 동안, 그녀는 매번 하은철에게 밥을 해 줄 때마다, 그는 마치 메뉴를 읽는 것처럼 한가득 시켰지만, 그녀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마치…… 그녀는 취향이 없다는 것처럼.“그래요.”석양을 맞은 듯한 윤이서의 목소리는 생기가 넘쳤다.하지환의 마음도 움직였는지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럼 집에서 나…… 기다려요.”집에서 기다리라는 이 말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윤이서는 응 하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고 시장에 가서 장을 봤다.하지환은 전화를 끊고 사람들의 궁금해하는 눈길을 무시한 채 계속 말했다.“현재 한국의 시장 중심은 화장품에 있다, 이 조사 연구 결과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나?”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방금 본 부드러운 대표님의 모습은 그들의 착각일 뿐이였다고 생각했다.“다른 의견 없으면 퇴근.”하지환은 일어나서 핸드폰과 서류를 들고 회의실을 떠났다.서로 쳐다보며 어쩔 바를 모르는 고위층만 남긴 채로.그리고 고위층 그들은 모두 국외에서 전근되었는데, 하지환을 따라다닌지 10여 년이 지나고 처음으로 하지환이 조퇴하는 것을 본 것이다.그들은
“그건 제 친구의 능력이 훌륭하다는 것을 말해주죠.”하지환은 티 나지 않게 화제를 돌렸다.“뭐 만들었어요?”윤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가 돌린 화제를 따라 열정적으로 그녀가 만든 것들을 소개했다.밥을 배불리 먹은 후, 하지환은 본인이 나서서 직접 설거지를 한다고 말했고, 윤이서는 컴퓨터를 꺼내 영화 한편을 찾았다.그건 코미디 영화인데, 윤이서는 영화 보는 것에 너무 집중하여 집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하지환이 나오면서 그녀를 보았다.윤이서는 카펫에 앉아 배를 붙잡고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윤씨네 아가씨의 우아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하지환은 문득 윤이서가 하은철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그녀가 하씨 집안 행사에 참석한 사진을 뒤져봤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 장 한 장마다 그녀는 우아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생기를 느낄 순 없었다.근데 지금 이 순간의 그녀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리고 그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았다.전에 느끼지 못했던 이 조용함과 아늑함을 즐겼다.그러나 전화벨 소리가 이 고요함을 깨뜨렸다.윤이서는 책상 위의 전화를 힐끗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성지영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그날 그들이 한바탕 싸운 이후로 부모님은 다시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마치…… 정말 그녀란 딸이 없어진 것처럼.그러나 결국 그들은 부모님이었기에 윤이서가 아무리 마음을 모질게 먹어도 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운명을 인정하고 받았다.“이서야,” 성지영은 화가 나서 말했다.“너는 왜 아직도 이혼하러 가지 않았니?!”어제 그녀는 윤수정을 보러 갔다가 마침 하은철을 만났다.하은철은 평소에도 그녀에 대한 태도가 좋지 않았는데, 어제도 만나자마자 욕설을 퍼부었고 그녀에게 딸을 잘못 교육했다고 말했다!성지영은 당시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후에 하은철의 경호원을 통해 며칠 전 하은철이 사무소에서 윤이서가 기혼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
“자신의 딸을 강요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자신의 실력이나 좀 키워요!”성지영은 하지환의 목소리인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이건 우리 집안의 일이니 넌 쓸데없는 참견 하지 마! 너희들 지금 어디에 있니?”윤이서의 집은 아니겠지?“신경 쓰지 마세요.”하지환은 장모에게 호감 같은 게 없었기에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만약 윤이서 씨가 당신의 딸이라면 앞으로 더 이상 하은철에게 시집가라는 말을 꺼내지 마세요. 윤이서 씨가 싫어할 뿐만 아니라 저도 싫어하니까.”성지영은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은철이랑 비교하는 거야?”하지환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윤이서는 그의 얇은 입술이 굳게 닫힌 것을 보고 또 화가 난 걸 알아차렸다.그러나 이번에 그녀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졌다.“고마워요.”하지환은 눈을 들어 맑은 눈을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들이 목구멍에서 막혔다.“일찍 쉬어요!”“그래요.” 윤이서가 일어섰다. “그럼 하지환 씨는…….”“나 먼저 갈게요.”윤이서는 하지환의 뒤를 따라갔다.“어디 살아요?”“시내에서요.”“방 하나 세낸 거예요?”시내는 다 비싼 땅이라 하지환이 살 수 있는 집이라면 방이 하나밖에 없겠지?하지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별장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많이 불편하죠? 아니면……. 나한테로 이사 와서 지내도…….”윤이서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하지환은 그녀의 머리를 보고 가볍게 웃었다.“아니에요.”그는 그녀와 함께 지내면 오늘 같이 자신을 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다시 발생할까 봐 두려웠다.“아.”윤이서가 대답 할 때 말투 속에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실망감이 담겼다.이 밤은 불면의 밤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하지환은 도심에 있는 아파트 꼭대기층으로 돌아와 옷을 벗은 뒤 차가운 욕조에 몸을 던졌다.키스의 뒤끝이 심해서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회복되었다.윤이서는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이
윤이서의 몸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굳었다.“회사는 그렇게 오랫동안 성장해 왔는데, 아직도 HS 그룹과 연관이 있다고요?”그녀는 줄곧 GM이 이미 HS의 곁을 벗어났고 그들이 도와주는 건 가끔 프로젝트를 소개해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윤재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GM 그룹은 하씨 집안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업계의 경쟁이 너무 치열했고, 그들의 도움만 없다면 돈을 벌기는커녕 적자만 났을 것이다.윤이서는 힘없이 웃었다.어쩐지 나보고 마음 굳게 먹고 그에게 시집가라고 하더니.“이서야, 아빠도 이러고 싶지 않아. 지금 너만이 아빠를 구할 수 있어. 너도 윤씨 집안이 망해서 더 이상 일어설 가능성이 없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윤이서는 눈물을 글썽였다.“가문을 위해 나를 희생해야 하는 건가요?”윤재하는 윤이서의 눈을 보지 못했다.“이서야, 어쩔 수가 없구나. 가문을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뜻대로만 행동 할 수 없어.”윤이서는 처량한 웃음소리를 내며 눈앞에 자신을 키운 아버지를 보며 고통스럽게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하은철은요?”“그는…… 아마 회사에 있을 거야.”“저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요.”“이서야…….”윤이서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가요.”윤재하는 입술을 움직이려다 결국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윤이서를 데리고 하씨 그룹으로 갔다.지금의 윤이서는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는 것 같다.……HS 그룹 CEO 사무실.하은철은 하지환을 데리고 사무실을 둘러본 뒤 우쭐거렸다.“어때요? 이 사무실은 제가 직접 인테리어를 설계한 건데, 좀 다르죠?”하지환은 입을 열었다.“너 오늘 기분이 좋아보이는군.”하은철은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웃었다.“정말 무슨 일이든 작은아버지의 눈을 속일 수 없군요.”“말해봐,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기쁜 거야, 아침 일찍 부터 나를 부르다니.”하은철은 웃음을 띈 채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 할 수는 없으니 둘째 작은아버지와 이야기할 수밖에 없네요. 며칠 전에 제가
하은철은 머리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넌 지금 혼인 신고 하고 있어야 하는데.”윤이서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하은철의 맞은편에 앉았다.“넌 투자를 철수하지 않을거고, 나도 이혼하지 않을 거야.”하은철은 고개를 들어 웃으며 말했다.“윤이서,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니?”“나 아주 잘 알고 있어.”윤이서는 평화롭게 말했다.“나는 오늘에야 우리 집안이 하씨 집안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네가 나의 신장을 원하는 것도 지나친 욕심이 아니긴 해.”여기까지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붉은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하지만 윤수정과 함께 있기 위해 나를 죽이려는 건 너무 했어.”하은철은 눈살을 찌푸렸다.“윤이서, 너 나한테 누명 씌우지 마, 내가 언제 너를 죽였다고…….”윤이서는 손을 흔들며 하은철의 말을 끊었다.“GM 그룹에 투자한 돈은 너의 것이니, 네가 투자를 철수하고 싶다면 나도 막을 수 없지. 그러나 GM 그룹에게 숨돌릴 기회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겠어? 내가 계산해 봤는데, 회사의 장부에 100억만 있어도 한동안은 운행할 수 있어. 나에게 이 돈을 모을 수 있도록 보름만 시간을 줘.”하은철은 가볍게 키득거렸다.“보름? 100억? 윤이서, 너 정말 성에서 사는 공주님이구나. 정말 온 세상이 너를 위해 도는 줄 알아?”“줄 거야 말 거야?”윤이서는 하은철의 눈을 바라보며 얘기했고 눈빛은 확고했다.하은철은 이렇게 의지가 강한 그녀를 처음 봤다.그의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그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윤이서,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사실 이렇게까지 나올 필요가 없었어. 네가 나한테 시집 오고 신장만 수정이에게 주면 그녀도 건강해지고, 우리의 일에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순순히 우리 집안의 사모님이 되면 평생을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데, 하필이면 가난한 놈과 결혼했으니…….”윤이서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말투도 차가워졌다.“너는 그를 평가할 자격이 없어.”그녀가 이렇게 그
하은철은 정말 알고 싶었다. 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줄곧 감정에 무관심했던 둘째 큰아버지가 첫눈에 반해 직접 결혼까지 할 수 있었는지.하지환은 침묵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하은철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둘째 작은아버지, 혹시 작은어머니가 너무 예뻐서 집안에 숨기고 우리가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가요?”하지환은 부인하지 않았다.하은철은 순간 눈을 휘둥그레 떴다.“내가 맞혔군요! 안 돼요, 둘째 작은아버지, 이렇게 말하니 더 궁금하잖아요. 가능한 한 빨리 나에게 둘째 작은어머니 만나게 해줘요!”하지환은 고개를 들어 하은철이 흥분하고 기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검은 눈동자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곧 볼 수 있을 거야.”……HS 그룹을 떠난 윤이서는 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주소록을 뒤져 사람을 찾았다.100억은 상류사회에 있어서 단지 몇 끼의 밥값일 수 있지만, 그들이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설득하는건 하늘에 별 따기였다.특히 하은철은 이미 투자를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니 그녀가 돈을 빌리러 가면 하씨 집안과 윤씨 집안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그렇다면 사람들은 더욱 더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윤이서는 갑자기 너무 지쳤다.만약 윤씨네 집안이 진작에 하씨네 집안에서 벗어났다면, 이 지경이 됐을까.진정으로 그녀를 아프게 한 것은 부모님의 태도였다.윤씨 집안을 다시 4대 가문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그들은 그녀의 생사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윤이서는 눈을 깜박거리다 눈을 감았다.때때로 그녀는 예전에 그들이 자신에게 잘 해준 것도 단지 그녀가 미래의 하씨 집안 사모님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윤이서가 눈물을 닦으면 닦을수록 눈물의 양이 많아졌다.결국 그녀는 아예 닦지않은 채 멍하니 앉아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눈물이 그냥 흐르도록 내버려뒀다.얼마나 지났을까 문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윤이서는 황급히 일어나 세수를 하고 문을 열었다.문밖에 서 있는 하지환을 보았을
잠기고 나지막한 목소리는 윤이서로 하여금 자신이 하지환을 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그녀는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몰라 황급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희고 작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미안해요, 난…….”하지환의 가슴이 순식간에 멎었다.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얇은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 “내가 빌려줄 수 있어요.”윤이서는 몸이 굳어지더니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의심했다.“뭐라고요?”하지환은 그녀의 시선에 몸 둘 바를 몰랐다.“100억.”윤이서는 미간을 펴고 말했다.“하지환 씨, 고마워요. 하지만, 이 일은 내가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신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난 정말 도와줄 수 있어요.” 하지환은 눈 한 번 깜박이지않고 윤이서를 바라보았다.“사실 나는 하씨의…….”“나는 당신이 하씨네 회사의 관리층이고 매년 연봉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100억은 그래도 큰 액수예요.”윤이서는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하씨네 집안 사람이라면 아마 그만큼의 돈이 있겠죠.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결혼하지 않았을 거예요.”“왜요?” 하지환의 눈동자는 먹통을 뒤집어 놓은 듯 새까맸다.“예전의 나는 하은철에게 시집가기 위한 존재였어요. 그때 가족들은 나를 특별하게 대했고, 내가 무엇을 원하든 그들은 나를 만족시켰죠.하늘의 달을 원하더라도.하지만 내가 포기하자 모두가 변했어요.전에 나는 탐욕이라는 두 글자가 사람을 이렇게 추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믿게 되었고요.그래서 나는 차라리 평범한 사람과 함께 있을지언정 그 어떤 가문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요.”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하지환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래서, 만약 내가 하씨네 사람이라면, 윤이서 씨는 나와 이혼할 건가요?”윤이서는 고운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하지환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그러나 윤이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당신……. 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에요, 밥은 먹었어
다음 순간, 스크린이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에 다시 밝아졌다.진수는 화면을 살짝 보았는데,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그는 바로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고 공손하게 말했다.“도련님.”이 말이 나오자 떠들썩한 룸은 조용해졌다.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진수의 표정은 시종일관 공손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전에는 분명…… 네, 알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저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그는 윤이서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윤이서 아가씨 맞죠? 방금 회의 중이라 전화 못 봤어요. 볼일 있다고요? 그래요, 그럼 우리 만나서 얘기 해요. 그래요, 내일 저녁에 봐요.”……윤이서는 전화를 끊고 온몸은 한결 홀가분해졌다.하지환은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좋은 소식 있어요?”윤이서는 고개를 들어 웃었다.“맞아요, 내일 약속 하나 잡았어요.”“남자예요, 여자예요?”윤이서는 하지환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남자요.”하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그에게 돈을 빌릴 작정인가요?”“네,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적 있거든요. 그래서 시도해보고 싶어요.”윤이서도 큰 희망을 가지지는 못했다.하지환은 숙연한 얼굴로 윤이서 맞은편에 앉았다.그가 이러는 것을 보고 윤이서는 왠지 긴장했다.“왜요?”하지환은 잠시 침묵하다 질문을 했다.“윤이서 씨, 결과가 정해져 있다 생각해 본 적 없어요?”윤이서는 턱을 짚으며 영문 모른 채 하지환을 바라보았고, 한참 뒤, 어렵게 입술을 움직였다.“그러게요, 내가 왜 그 생각도 못했지. 여기는 북성, 하씨 집안의 천하죠. 하은철이 내가 지기를 원하면 난 질 수밖에 없고, 내가 이기기를 원하면 난 이길 수 있죠. 그러니 내가 돈을 빌릴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어요.”그녀가 바로 깨닫는 것을 보고 하지환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숨기고 있었다.“그래요, 그래서 하은철이 원하는 것은 어떤 결과라고 생각하죠?”그녀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그야 당연히 내가 지기를 바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