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정의 손동작은 정말 멈추었다.상언을 바라보는 그녀는 여전히 약간의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이를 본 상언이 웃으며 말했다.“왜? 아직도 날 못 믿는 건가? 내 여동생이 왜 당신보다 더 예쁜지 알아? 내가 성형수술을 해줬기 때문이지.”“그래서 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진 거야.”“다만, 걔는 원래 바탕이 그리 좋지 않았어. 그래서 수술했는데도 여전히 결점이 있지. 하지만 당신은 달라. 당신은 정말 완벽하잖아? 수술만 한다면 금상첨화일 거야. 내 여동생보다 더 예뻐질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정말이야?”이민정은 분명히 설렌 듯했다. 그녀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그럼 내가 어디를 손대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될 수 있을까?”상언은 여자를 에워싸고 계속해서 돌았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의 생김새는 아주 완벽해. 다만, 눈이 좀 아쉽지.” “눈?”이민정은 승복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렸다.“너도 알 수 있겠지만, 내가 내 몸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 바로 눈이야. 그런데 그런 눈이 유일한 결점이라니... 너, 의사가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사기꾼 아니야?”이민정은 또 한 번 손찌검했다.하지만 상언이 손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우선 내 말부터 들어봐.” “확실히 예쁜 눈이긴 하지만, 당신의 분위기와 맞진 않아.” 이민정은 온몸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왜지?”“당신의 눈동자를 좀 봐. 부드럽고 매혹적이지만, 당신이 풍기는 분위기는 오히려 냉정하고 무자비하잖아. 즉, 그 눈동자와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지.” “네 말대로라면, 내 눈알을 파서 새로 바꿔야 한다는 거야?!”상언이 낮게 웃었다.“바로 그거야!’“감히 날 놀려?!”이민정은 분노하며 손을 들어 상언의 목을 졸랐다.하지만 그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고, 뒤로 재빠르게 몸을 피한 후, 차 안에 있는 앤서니를 향해 소리쳤다. “바로 지금이에요!”이민정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소용없었다.그녀는 분노로 인
“저렇게 강한 사람은 사실 죽을 필요가 없었어. 고작 아름다움을 향한 마음속의 집념 때문에 죽은 거야.”상언의 말 속에는 뼈가 있었다.지환은 앞을 보며 천천히 앉았고, 자신을 부축하러 온 앤서니를 밀치며 또박또박 말했다.“사람이 살 수 있는 건 마음속의 집념 때문이지 않나? 집념조차 없으면 사는 게 무슨 의미지?”이 말을 들은 상언은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시각.CCTV로 이 장면을 본 주경모가 말했다.“이민정 씨가 이렇게 죽었단 말입니까?” 하도훈이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하지호가 저들을 넘겨줄 때 그러더군. 확실히 강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강할수록 약해지기 쉽다고. 아무리 강한 사람도 자신만의 약점이 있기 마련이잖아?” “그럼 어떡하죠? 정말 하 대표님이 들어오게 두실 겁니까?”“내가 이 모든 걸 준비한 이유는 하지환이 오길 바랐던 거야. 그리고 절대 잊지 마, 우리에겐 아직 비장의 카드가 남았어.” “윤이서 씨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지만 윤이서 씨는 안 오실 것 같습니다.”“안 올 것 같다?”하도훈이 가볍게 비웃었다.“안 온다면 우리가 직접 데리러 가면 되지.” 주경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하도훈을 바라보았다.같은 시각.호텔에서 졸음과 싸우며 걱정스러워하던 이서가 밖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곧 잠에 빠지려던 하나를 살짝 밀며 말했다.“하나야, 너도 들었어?” 하나는 단번에 깨어났다.“형부랑 이 선생님이 돌아오신 걸까?”“아니.”이서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한 후, 정신을 집중하고서야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발소리야. 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다, 적어도 열댓 명은 되는 것 같아.” 한동안 주의를 기울인 하나도 여러 개의 발소리를 들었다. “어떻게 된 거지?”하나가 침대에서 내려왔다.“이 선생님이 여긴 분명히 안전할 거라고, 호텔을 나서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어. 아마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파견한 사람들인 것 같아.” 이서도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
하나는 눈물을 머금고 이서를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이서야, 반드시 스스로를 잘 보호해야 해!”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를 다시 한번 보고는 결연히 입구로 걸어갔다.“누구세요?”그녀의 목소리는 평상시처럼 차분해서 조금의 당황스러운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밖의 사람들은 피에 굶주린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 보스의 명령을 받아 하씨 병원으로 모시기 위해 왔습니다. 저희가 하 대표님과의 재회를 돕겠습니다.” 이서는 발코니 밖에 숨어 있는 하나를 한 번 보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문을 열고 말했다.“갑시다.” 문밖에는 한 덩치 큰 사내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힘이 장사인 듯했는데, 주먹 하나로도 이서를 눌러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이서처럼 부드러운 사람은 힘이 없었고, 그와 힘으로 맞붙을 생각도, 죽을 각오로 싸울 계획도 없었다.그저 죽기 전에 지환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 남자는 이서가 이토록 순순히 따를 줄은 몰랐는지 웃음을 터뜨렸다.“상황 파악을 잘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인 법인데, 정말 현명하시군요. 아래층에서 고집스럽게 저항하는 경호원들과는 완전히 다르네요.” 이서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남자가 말하는 경호원들은 그녀가 발코니에 있을 때 아래층에 있던 사람들일 것이었다. “그 사람들, 전부 당신이 해치운 건가요?”이서가 묻자, 그 남자가 꽤 자랑스럽게 말했다.“네, 하지만 분명히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보통 경호원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 조직원입니다, 어둠의 세력 조직원들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여길 보호하고 있었다니, 하지환은 본인의 목숨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직 살아는 있는 거죠?”이서가 엘리베이터로 들어섰다.그러자 그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누구요? 아, 하지환이요? 물론 살아는 있죠.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도 못했는데 죽었을 리가요.” 이서는 이 말을 듣고서야 팽팽했던 등줄기가 느슨해지는
모두가 한참을 걸었더니 음산한 기운이 더욱 뚜렷해졌다. “조심해, 나는 이미 위험한 낌새를 느꼈어.” 상언의 말이 끝나자마자 종이연처럼 가벼운 두 그림자가 그들 곁에 조용히 내려 앉았다.두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 공격하려는 순간, 뒤에서 하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필요없어. 이미 여기까지 들어왔으니, 들어가서 은철이를 만나게 해주자고.” “우리가 줄 수 있는 작은 성의랄까?” 그 두 사람은 서로를 힐끗 보고서야 자리를 떠났다. 상황을 지켜보던 상언은 지한의 곁으로 가서 그를 부축했다.“좀 더 힘을 내. 하은철을 보러 가야지.” “방금 그 두 사람, 솜씨가 꽤 괜찮은 것 같더라. 아무래도 내 걱정이 괜한 게 아니었던 것 같아. 오늘밤, 이 으스스한 병원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힘을 좀 아껴둬서 나쁠 건 없을 거야.” 지환은 이번에 더 이상 발버둥치지 않고, 상언의 부축을 받으며 마지막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방에 세 개의 관이 있는 것을 보았다.상언이 안색이 변하여 지환을 바라보았다.‘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아직 지환과 상언이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하도훈이 가운데에 놓인 관 뒤에서 걸어 나왔다. 관 옆에 선 하도훈의 키는 관 높이와 비슷했고, 관은 열려 있어서 그 안의 상황을 볼 수 있다.하도훈은 한 번 훑어보더니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드디어 왔군. 먼저 은철이한테 향 하나 올려. 그렇지 않으면, 곧 이 세상을 떠날 너희는 은철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기회도 없을 테니까.”상언이 하연을 부축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남은 관을 저와 지한이를 위해 준비했다는 건가요? 정말 친절하기 그지없네요.” 하도훈이 상언을 흘겨보았다.“이 선생, 걱정이 많은가 보네. 이 관은 지환이를 위해 준비한 거야.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이서를 위해 준비한 거지!” 이서의 이름을 말할 때, 하도훈은 거의 이를 갈았다. 지환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틀렸어. 이 관에는 네가 들어가게 될 테
“지환 씨!”이서는 들어오자마자 지환에게 시선을 주었다.그의 몸이 상처투성이인 것을 본 이서는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다.“이서야, 다 내가 너를 잘 돌보지 못한 탓이야. 미안해.”지환은 주먹을 꽉 쥐었는데, 이서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지환 씨는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 오히려 잘못한 건... 바로 나예요. 내가 지환 씨의 발목을 잡은 거라고요!” “그만하지 못 해!”두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본 하도훈은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타오르기 시작했다.“어차피 다 죽을 텐데 여기서 정분을 나눌 정신이 남았나? 그렇게 함께 있고 싶다? 좋아, 내가 그 소원을 들어주지!” 하도훈은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너부터 죽어. 이서도 곧 네 옆으로 보내줄 테니까.” 이서가 고함을 질렀다.“안 돼요! 지환 씨! 죽으면 안 돼요!” 옆에 있던 상언이 기회를 틈타 얼른 말했다.“잠깐! 지환이가 죽은 후에 이서를 죽이면, 지환이의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죠?” 이 말은 꿈속을 헤매던 사람을 단번에 깨우는 한 마디였다. 하도훈이 지환의 목숨을 원하는 이유는, 그의 손에 이서의 목숨이 달렸기 때문이었다. 즉, 그것을 이용해 지환을 위협하려는 것. 그런데 지환이 죽은 후에 이서도 죽는다면, 이 위협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하하, 정말 아들이 죽어서 미쳐버린 모양이군. 말도 행동도 뒤죽박죽이라니.”하도훈은 쓸쓸한 목소리를 냈다.“하지만 이것만큼은 잊지 않았어. 그건 바로...” 그는 갑자기 관 옆으로 가서 세 번 두드렸다.“은철아, 네가 원하는 대로 저들을 불러들였어.”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하도훈의 좌우에 서 있던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 관 안에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이 보였다. 은철이 얼굴이 드러나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관 속에 있던 사람이 정말로 하은철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조금 이상해 보였다. 얼굴은 창백해서 마치 죽
관에 앉아 있던 은철도 음산한 웃음소리를 냈다.“그렇게 똑똑한 작은 아빠가 설마 모르겠어요? 작은 아빠, 이제는 직접 이서에게 정체를 말해줘야하지 않겠어요?”“작은 아빠?!”이서의 얼굴빛이 변했다.“그래.”지환이 고개를 돌려 이서를 쳐다보았는데, 눈빛에는 증오와 사랑이 담겨 있었다.“넌 아직 모르지? 저 사람이 내 작은 아빠이자 YS그룹의 대표라는 걸. 우리 할아버지의 죽음도 다 저 사람 때문이라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연이은 소식에 이서의 머리는 터질 듯이 아팠다. 감히 건드릴 수 없었던 두려운 기억, 그것이 악마처럼 그녀를 바짝 옭아매 숨 쉴 수 없게 했다. ‘하씨 가문... 하은철의 작은 아빠... 할아버지도 돌아... 돌아가셨고...’“이서야!”하지만 이서는 이미 자신의 기억 속에 빠져 지환의 부름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하하하...”고통스러운 이서를 본 하은철의 눈동자에 마침내 복수의 쾌감이 떠올랐다.“그게 바로 나한테 미움을 산 결말이야. 하하하, 날 배신한 결말이라고. 이서야, 나는 곧 죽게 될 테지만, 황천길에 너라는 동반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번 생에 후회는 없어... 우욱...” 피를 토하자, 은철이 갈아입은 옷이 붉게 물들었다. 하도훈은 그저 마음이 아팠다.“은철아, 너는 시간이 많지 않아. 그러니 너무 흥분하지 말고 어서 다음 일을 처리하거라.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서는 안 돼!” 은철이 웃으며 말했다.“네, 아쉬움을 남기고 떠날 순 없죠. 아버지, 총 좀 주시겠어요?”“누구를 데려가려는 게야? 이 아비가 도와주마.”은철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제가 직접 데려가고 싶어요.” 하도훈이 말했다.“하지만 네 몸은...”“아버지, 총 주세요. 제가 데리고 가야지만 이서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따라올 것 같아서 그래요.”이 말을 들은 하도훈은 어쩔 수 없이 은철에게 총을 건넸다. 그러자 은철은 양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려 달라고 표시했다.하도훈을 바라보던 두 사람
“은철 오빠, 안녕?”열여섯 살 소녀가 막 해외에서 돌아와 그의 앞에 서자, 발그레한 얼굴에는 수줍음이 가득해졌다. 그때의 은철은 그녀와 같은 나이였다. 개의치 않는 척하느라 그 소녀를 차갑게 쳐다보기만 했지만, 그 소녀의 얼굴에 눈길이 닿자,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은철은 그 한 번의 눈길로 이서를 기억에서 지울 수 없게 되었다. 열 여섯살 소녀, 이는 처음으로 꽃이 피는 나이지 않은가. 이서의 눈동자에 서린 순수함은 마치 가지에 맺힌 꽃봉오리처럼, 단번에 은철의 설렘을 불러일으켰다.그날, 그는 이서와의 첫 만남을 되새기고 있었다. 하지만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교 문 앞에서 불쌍하게 울고 있는, 온몸이 진흙투성이인 윤수정을 만났다. 그는 황급히 차에서 내려 진흙투성이인 그녀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차 안에서, 그는 수정의 상태가 이서의 걸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날의 아름다운 순간은 그렇게 찢겨 버렸다.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수정을 집으로 데려가 씻게 해주었다. 심지어 직접 이서를 찾아가 수정에게 사과하라고 시키려 했지만, 수정에게 가로막혔다. “은철 오빠, 됐어. 언니가 우리 사이가 좋다는 걸 알고 나한테 화내는 건 정상이야. 어쨌든 오빠의 약혼녀는 언니인 거니까. 약혼녀가 질투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하은철은 그가 당시에 한 말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었다.“윤이서는 할아버지가 원하는 손자며느리에 지나지 않아. 나는 그렇게 악독한 사람이 내 약혼녀라는 걸 인정할 수 없다고!” 그 후로 그는 이서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보면 반사적으로 혐오감을 느꼈다. 이서는 그저 아름다운 얼굴 덕분에 많은 어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 뿐, 뒤에서는 음흉한 사람일 뿐이었다.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본인조차도 가끔 이서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을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그녀의 얼굴은 어디서 오는 마력을 지닌 것인지, 사람을 저절로 끌어당겨 계속 쳐다보게 했다. 이 사실은 은철을 더욱 화나게 했다. 그래서 이서
그 이후, 이서를 향한 학교의 대우는 더 나빠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래한 장본인은 바로... 하은철!그는 그때 분명 옆 반에 있었고, 그 사람들이 이서를 비난하여 울리는 것을 들었지만,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그때의 이서는 그를 죽도록 원망했을 것이었다.은철이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후회의 눈물이었다.깊게 숨을 들이쉬며,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난 은철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은철이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이서의 목숨을 사라질 터였다. “이서가 왜 그렇게 당신을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겠어. 이서는 기억을 잃고 고통을 견디면서도,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려 했지.”사실 이 문제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기만 하면 답을 찾을 수 있었다.다만, 과거의 은철은 시종일관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이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후에 이서가 지환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는 자세를 낮추고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마음이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이서의 변심으로 돌리며 결론을 짓기 바빴으니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서가 그동안 받은 고통과 억압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포기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은철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그저 윤수정의 말만 듣고 이서를 비난했다. 만약 그때의 그가 이서에게 가서 ‘윤수정을 수령에 밀어 넣은 게 너야?’라고 물었다면, 완전히 다른 답을 얻었을 것이고, 지금의 결말도 얻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은 바로 후회였다. 이렇게 생각한 은철의 눈빛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손에 든 총을 이서의 관자놀이에 겨눴다. 이 광경을 본 지환 역시 총구의 위치를 잡았다. 두 사람은 은근히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지금의 은철은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지환은 정확히 사격할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