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으로 내려온 무진이 손건호에게 지시했다.“당분간 사람을 보내 곽연철을 보호하도록 해. 은밀하게 해야 해. 너무 대놓고 해서는 안돼. 적어도 곽연철에게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돼.”이 일에 대해 무진은 절대 관용을 베풀 생각이 없다.비록 곽연철이 집안 외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강상철과 강상규는 무진에게 외부 사람보다 못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그리고 곽연철은 WS그룹과의 합작 때문에 이런 재난을 당했다.아무래도 무진 자신이 보호하는 게 맞았다.“예.” 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곽연철도 자신의 체계가 있지만,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것이 어쨌든 좀 더 안전할 것이다.손건호는 이번에 무진이 진짜 화가 났음을 알았다.강상철과 강상규가 이렇게 심하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번에 강상철, 강상규는 정말 무진의 역린을 건드린 셈이었다.말이 끝나자 마자 손건호가 앞 좌석에서 운전하며 그들은 떠났다.손님이 떠나고 난 후.성연과 서한기가 방에서 나왔다.아무도 보이지 않자 성연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곽연철이 웃었다.“강무진 대표는 정말 흔치 않은 인재입니다. 보스, 역시 안목이 뛰어나시군요.”성연은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무진을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니 그녀가 기분이 아주 좋았다.“그럼, 내가 누군데.” 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잠시 멈추었다가 성연은 계속 말했다.“강씨 집안의 그 두 노인데, 강상철고 강상규는 정말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한다. 내 수하를 건드리다니. 강무진에게 절대 손을 대게 해서는 안 된다. 서한기, 너는 그 두 늙은 여우들에 단단히 경고해. 정말 우리를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 못하도록.”서한기는 성연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진지해졌다.“예, 보스, 알겠습니다.”설사 성연이 말하지 않더라도 곽연철의 형제로서 강상철과 강상규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며칠이 지나면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절대 그들이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을.성연도 설명을 다 한 후에 아무 일도
좀 더 뒤에 서한기가 뒷문으로 나왔다.서한기는 곽연철을 보호하기 위해 무진이 보낸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무진에게 보고가 올라갔다.무진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이 서한기라는 인물은 성연과의 관계가 가볍지 않았다.무진은 기억하고 있었다.만약 사이가 좋지 않다면, 절대 둘이 같이 샤브샤브를 먹으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다만, 성연과 곽연철의 관계는 정말 그의 어머니를 구해 준 게 다일까?’그러나 지난 번 곽연철의 집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을 때, 곽연철은 자기 아는 동생이라고 말했지만 무진은 그다지 믿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당분간 이 일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성연과 관련되지 않는 한 자신과도 상관없으니.손건호가 물었다.“보스, 사람을 보내서 이 서한기 쪽도 지켜볼까요?”그는 자신의 보스가 의심하는 것을 알고 먼저 물었다.“아니, 평소대로 하면 돼.” 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서한기까지 주시할 생각은 없었다.게다가 그는 지금 곽연철과 협력관계이다. 만약 경솔하게 서한기를 주시하는 건 곽연철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 된다.만약 곽연철과 서한기의 관계가 매우 좋은데 들키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다.“알았습니다.” 손건호도 자기 보스의 생각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너는 가서 준비 좀 해. 며칠 뒤에 저쪽 두 분께 보낼 큰 선물로.” 무진은 마음속으로 이미 따지고 있었다.손건호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어떻게 할 지 가르쳐 주었다.손건호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보스, 이거 정말 대단하네요. 앞으로 둘째, 셋째 할아버님은 감히 다시는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무진이 입 꼬리를 당겨올렸다.“이것은 연습에 지나지 않아. 두 분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해.”강상철과 강상규가 자신들에게 한 일에 비하면 자신이 한 일은 결코 지나친 게 아니었다.‘누가 먼저 잘못을 하라고 시켰나?’원래 그들은 표면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상철, 강상규에게는 더 이
원래 무진이 쪽에서는 이미 계획을 세웠고, 강상철이 그물에 걸려 그들의 올가미 속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결국 무진이 쪽에서 움직이기 전에, 강상철에 관한 스캔들이 터졌다.‘강상철 부회장이 밖에서 첩이 있는데, 사생아도 있대요.’‘사생아는 이제 겨우 열 살이래요.’마침 세밑이라 강씨 집안의 친척들, 방계들까지 모두 돌아온 상태였다.이 일이 폭로되자, 강씨 집안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부의 사람들까지 모두 알게 되었다.강상철의 연세가 적지 않은데, 뜻밖에도 이런 사생아가 있다니. 게다가 강씨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으니, 이 일은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많은 사람들이 댓글에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이 강씨 집안의 둘째 할아버지 강상철은 정말 노익장이야. 사람들의 시야를 크게 넓혀주었어. 할아버지가 되었는데도 밖에서 사생아를 기르다니, 쯧쯧쯧, 정말 몰라봤어.”“아직 잘 모르는군, 재벌 가문이라는 게 원래 완전 난장판인 걸. 사생아일 뿐인데 뭐가 궁금해? 정상적인 일이야.”“사생아라, 나는 강상철이 하루 종일 무슨 도덕 어쩌고 하는 것을 보았는데, 결국 자신이 오히려 그렇게 도덕을 가장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동시에 이렇게 큰 사생아가 뜻밖에도 그렇게 여러 해 동안 숨어 있다가 이제야 발견되었으니, 어떤 사람은 둘째 할아버지 강상철의 수단에 탄복했다.이것은 도덕과 규범을 중시하는 명문가, 특히 강씨 집안과 같이 백 년 이상을 이어 온 명문 가문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인품과 예의다.둘째 할아버지 강상철의 이 일은 늙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강씨 집안에 망신을 주었다.전혀 좋은 일이 아니야.그리고 강씨 집안에서 지금 인정하는 사람들은 모두 본부인에게서 태어난 자손들이다.사생아 따위는 모두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모두들 강상철이 어떤 사람에게 미움을 사서 이런 망신을 톡톡히 당하는지 궁금해했다.강상철이 물러설 퇴로를 아예 남겨 두지 않았다.강상철은 이전에도 자주 자신의 손자를 훈계했다.바깥 여자들
“보스, 희소식입니다.” 손건호가 강상철 스캔들 기사를 들고 와 무진에게 보여 주었다.신기하다는 듯 기사를 확인한 무진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작은 할아버지 강상철의 연령에 이런 기운이 있을 줄이야.작은 할아버지의 약점이 이것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알았다고 표시한 무진이 입을 열었다.“작은 할아버지 쪽을 좀 더 예의 주시하면서 무슨 일이 있는 즉시 내게 보고해.”‘정말 흥미진진하게 됐군.’‘작은 할아버지에게 생각지 않은 사생아가 있다니.’‘아마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일 테지.’점심 시간에 무진은 잠시 짬을 내어 고택으로 건너왔다.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운경도 이 일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다.“둘째 숙부 강상철에게 진짜 사생아가 있다니, 이 소식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운경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슬쩍 웃었다.강상철의 스캔들 기사를 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강상철은 비즈니스를 할 때도 더러운 수를 많이 써서 원망을 산 사람이 우리 만이 아니야. 이번에는 약점을 잡혀 강씨 집안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구나.”안금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강씨 집안을 대표하는 얼굴로 누구 가릴 것 없이 모두 모범을 보여야 하건만.비록 더러운 짓을 하긴 해도 강상철, 강상규가 나름 규칙을 지키며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강상철이 뒤에서 이렇게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을 줄이야.예전에 ‘성질 더러운 불구자’라며 무진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더니 이제 저들의 차례가 되었다.‘뼈를 찌르는 듯한 그 괴로움을 저들도 느껴 봐야 해.’안금여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이 사태를 관망하기로 했다.어찌 되었든 지금 곤경에 처한 강상철은 무진을 귀찮게 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지금 터진 자기 스캔들 처리하기도 바쁜 강상철이 무진을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가.더군다나 마누라, 즉 둘째 동서가 두 눈 멀쩡히 뜨고 살아 있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짓은 터.그저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다. 강상철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더러운 사생활이 폭로되었으니 당
폭로된 사생활 기사를 잠재우기 위해 강상철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의 스캔들로 시끌벅적했다.강상철의 아내 또한 알게 되었다.젊었을 때 혼인을 한 이래 평생을 강상철과 함께 해 왔다. 물론 서로 격이 맞는 두 집안 사이의 혼인이었다. 비록 최근 몇 년간 남편과의 사이가 썩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서로 예를 지킬 정도는 되었다.가끔이긴 해도 강상철 또한 자기 부인의 마음을 고려하기도 했다.강상철의 아내는 비교적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로 평소 강상철과 다투지 않고 잘 맞춰 주는 편이었다.누군가에게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내 남편이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몇 가지 사소한 일들이 생각났다.때때로 강상철의 몸에서 낯선 향수 냄새가 나서 물으면, 강상철은 늘 응대하는 고객의 것이라고 대답했었다.그래서 그녀는 남편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두 사람이 오랜 시간 함께 지내 오는 동안, 사생활 관리에 신중한 남편은 밖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그래서 별다른 생각없이 남편의 말을 믿었던 터였다.하지만 이 사건이 터졌을 때, 그녀는 이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그야말로 자신의 얼굴을 진흙 속에 처박은 셈이다.부모님 손에서 아무 어려움 없이 자란 탓에 다소 유약한 성격이라 하지만, 이런 치욕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곧장 서재로 달려간 강상철의 아내가 손을 들어 강상철의 얼굴을 때렸다.당혹스러운 일을 당한 강상철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만약 평소의 그녀였다면 강상철의 이 표정을 본 즉시 바로 겁을 먹었을 터였다.그러나 지금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나 그런 것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손을 들어 얼굴을 가린 강상철이 큰 소리를 쳤다.“이 무슨 행패야?”서재에 있다가 이 장면을 목격한 강일헌은 아연실색했다.옛날부터 늘 할아버지에게 당하면서도 참고 살았던 할머니였다.할머니가 참 억울하시겠다고 늘 생각은 했지만, 이런 장면을 눈으로 보는
그날 오후.강상철의 처는 고택으로 달려와 안금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안금여는 집사에게 차를 따르도록 지시했다.“형님, 이번에는 정말 제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어요. 꼭 좀 도와주세요.” 강상철의 처는 말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안금여가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 그지없다.강상철과 결혼해서 줄곧 집에서 남편을 내조하며 자녀 양육에 전념한 강상철의 처는 회사 일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회사 내 큰 집과 둘째, 셋째 일가 사이의 은원 관계에 대해 잘 모르는 그녀는 남편 강상철의 명령에 따라 자신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하지만 안금여는 바로 아래 동서인 그녀를 탓할 생각이 없다.때때로 많은 일들이 사실 본인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것을 어쩌겠는가?강상철의 처는 평소 손 위 동서인 자신에게 정중한 태도로 예를 지켜왔다.손 아래 동서의 성격을 잘 알기에, 만약 막다른 골목에 이르지 않았다면 결코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도 잘 알고 있다.가볍게 한숨을 내쉰 안금여가 입을 열었다.“일단 눈물을 그치게. 앞뒤 사정을 똑똑히 말해야 내가 뭐라도 도울 수 있지 않겠나?”바로 아래 동서는 시종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참지 못하고 터진 그녀의 울음소리가 거실 가득 울려 퍼졌다.결국 안금여는 아무 말없이 기다렸다. 울만큼 다 울고 나면 전후 사정을 자세히 말해 줄 테니.한참을 울고 난 강상철의 처가 드디어 감정을 추스렀다.계면쩍은 듯 안금여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형님, 죄송해요. 제가 면전에서 추태를 보였어요.”“괜찮아, 한 가족인 걸 뭐. 무슨 일인지 말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내가 도울테니.”안금여는 힘들어하는 동서를 차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어찌 되었든 동서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요 몇 년간 집밖 외출도 삼가며 행동거지를 조심해 온 동서였다.‘이딴 짓이나 벌인 강상철이 나쁜 놈인 거지.’“형님, 그 사람 양심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 사생아를 데려와서 키우겠다니요? 아들과 손자가 다 보고 있는데 부끄러운 줄도 몰라요.” 또
강상철은 이제 막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그 기사가 나간 후로 사람들 모두 자신을 보면서 이상한 시선을 쳐다보았다.그러니 강상철은 속이 탈 지경이었다.그러나 자신이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한 게 분명했기에 뭐라 할 말도 없다.하지만 강상철 스스로는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그럼 애가 있는데 버리는 게 정상이야? 아무리 그래도 내 자식인데 내가 키워야지.’잘못이라면 지금 WS그룹의 실권을 큰 집이 잡고 있다는 것.만약 자신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면 아무도 찍 소리 못했을 터.이 일이 있고 나서 권력에 대한 강상철의 갈망이 더 커졌다.집에 돌아오면 좀 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고용인이 알리길 마누라가 뛰쳐나가 강씨 집안 고택으로 갔단다.강상철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최근 마누라를 나쁘게 대하지 않았지 않는가? 먹여줘, 입혀줘 또 뭘 어쩌라고?’‘평소에는 보기만 해도 설설 기더니, 지금 감히 큰집 형수 안금여를 찾아갈 생각을 해?’게다가 우리와 큰 집이 어떤 관계인지 몰라? 그런데도 큰 집으로 쫓아가서 안금여에게 말해? 이거 일부러 날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거 아냐?’화가 나는 게 먼저인지 창피한 게 먼저인지도 모르겠다.아내를 데려올 생각에 강상철은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강상철이 고택 입구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안금여가 자신의 자식을 족보에 넣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이 들렸다.강상철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그러나 사실 그랬다. 만약 형수 안금여가 고개를 끄덕여 승낙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어린 아들은 평생 조상들 앞에 나서지 못할 것이다.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의 얼굴을 떠올린 강상철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안금여의 동조를 구하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형수님, 어찌 되었든 그 아이도 우리 강씨 집안의 혈육입니다. 만약 보고 싶지 않다면, 제가 밖에서 키우면 됩니다. 그러나 이름은 제 성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강상철은 원래 이 사실을 좀 더 오래 숨겨 둘 생각이었다.아이가 좀
아래층에서의 해프닝이 끝난 후에야 운경과 무진이 위층에서 내려왔다.두 사람은 계속 위층에 있었다.다만 강상철의 처가 왔다는 말에 안금여는 두 사람을 위층으로 올라가 기다리게 했다. 동서의 감정이 격해져 있을까 걱정한 까닭이다.사실 아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두 사람도 이미 훤히 알고 있다.운경이 소파에 앉으며 냉소를 지었다.“어린 사생아를 데리고 들어와서는 제 권리 챙기려고 들 거 아니야?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듣고 있던 무진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이건 아마도 흔치 않은 기회일 것이다.‘사람을 시켜 둘째 할아버지가 숨겨 둔 그 여자를 좀 부추기면 어떨까? 그리고 일을 더 키우게 하는 거지.’‘강상철이 약점을 노출시킨 이 드문 기회를 최대한 잘 이용해야겠지?’요즘 둘째, 셋째 작은 할아버지 쪽에서 하는 일들이 갈수록 말이 아니다.주주들도 할아버지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이 기회를 이용해서 큰 판을 하나 벌여 주는 게 맞겠지?’무진은 자신의 계획을 운경과 안금여에게 알렸다.든든하게 일을 처리하는 무진으로 인해 운경과 안금여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처리해. 지금 강상철은 궁지에 몰린 토끼야.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어.” 이 일은 자신들이 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강상철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만약 무진이 알았다면 진즉에 이 일을 폭로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기다리지 않고.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더 커지도록 무진이 저들 배후에서 바람 넣는 일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강상철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알았어요.” 자신을 걱정하는 운경의 마음을 잘 안다는 뜻으로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진아, 네가 무척 신중하니 이 할머니는 마음 놓고 있으마. 하지만, 너도 조심해. 절대 강상철 같이 그런 허튼 짓을 해서는 안돼. 만약 성연이에게 미안한 짓을 한다면 성연이가 아니라 내가 널 가만 안 둘 거야.”안금여가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머니 안금
안금여가 한숨을 내쉬었다.“너와 성연이 모두 착한 아이들이야. 만약 정말 무슨 부득이한 상황이 닥치면, 이 할머니는 너희들이 좋게 헤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니 그러지 마, 무진아.”“할머니, 말씀하신 그 날은 오지 않을 거예요.” 무진은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안금여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강운경이 옆에서 말렸다.“엄마, 우리도 잘 알고 있잖아요. 엄마가 성연이를 얼마나 마음에 들어하시는지요. 하지만 무진이와 성연이 서로 감정이 깊어요. 둘 다 사리가 분명한 애들이에요. 무진이 우리를 찾아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건 기쁜 일이잖아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안금여의 말은 두 사람을 위한 것이 맞다. 불길한 말은 두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잠시 멍하니 있던 안금여가 입을 열었다.“성연이에 대해서는 네 말이 맞다. 우리 집 무진이가 마침내 일생을 함께 할 사람을 찾다니, 이 할머니가 당연히 기뻐해야지. 모두 이 할머니 잘못이다, 요 방정맞은 입 같으니라구.”무진이 얼른 말했다.“할머니, 할머니 탓하지 마세요. 모두 저와 성연일 위해서 하신 말씀이시잖아요?”“그렇네, 얼른 무진과 성연이 결혼식을 예약해야지. 성연이가 외국에서 나쁜 마음을 품은 놈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말이다!” 강운경은 성연의 성격을 안다.겉으로 보기에는 성격이 강하고 털털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린 아이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조그만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간다면...‘정말 무진이 죽으려고 하겠네.’“그래, 근데 성연이 나이가 한참 어린데, 그렇게 하겠다고 해?” 강운경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두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계획을 다 세웠다.그러나 성연이 그러겠다고 할지는 아직 미지수.“성연이는 분명히 그러겠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성연이 곧 개학할 텐데, 성연이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그러면 성연이 공부하러 가는 것을 막는 양상이 된다.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사실, 불안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성연이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다시 돌아왔다.무진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그러나 마음이 심란해지며 성연이 떠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그래서 무진은 성연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고택에 들렀다.무진이 고택으로 들어왔을 때, 안금여와 강운경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무진을 보던 안금여는 무진의 뒤를 쳐다보았다.“아니 왜 성연이는 너와 함께 오지 않았어?”무진이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저었다.“같이 안 왔어요. 제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두 분에게 드릴 말이 있어서예요.”무진의 태도가 너무 공적이고 진지한 터라, 안금여와 강운경도 덩달아 긴장하며 다급히 물었다.“무슨 일이냐?”두 사람은 무의식 중에 회사의 일을 떠올렸다.“성연이가 곧 학교로 돌아갈 겁니다. 그런데 저는 성연이가 더 뛰어나게 성장하는 걸 가로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연이 떠나면, 더 이상 제가 마음을 놓고 지낼 수가 없습니다.”무진의 음성이 유난히 침중했다.성연은 아직 너무 젊었다. 외부에는 성연이를 끌어당기는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무진이라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었다.무진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조바심과 불안은 오직 눈앞의 가족 두 사람 앞에서만 드러낼 수 있었다.무진이 에둘러 말했지만, 안금여와 강운경은 바로 알아들었다.무진의 말을 듣던 안금여와 강운경이 서로 마주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무슨 큰 일인가 했더니, 그걸 걱정하고 있었어?” 안금여와 강운경이 박장대소를 했다.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 무진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날이 있다니.제 마음이 이리도 빨리 들통나 버리자 무진은 좀 민망함을 느꼈다.무진이 입술만 오물거리며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강운경이 그런 무진을 놀렸다.“예전에 내가 무진이 너에게 괜찮은 아가씨들을 참 많이도 소개해 줬는데, 그때는 너 꿈쩍 하지도 않더니. 그때 나 정말 걱정했었어. 네가 고독한 모습으로 혼자 늙어가는 게 아닌가 해서 말이야.
손민철의 안배로 조수경의 미모를 이용해서 돈 많은 사장들을 꼬셔냈다.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아주 빠르게 올라갔다.지난 번의 거의 두 배에 가깝게.이런 놀라운 업무 실적 상승에 사람들은 조수경의 능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이전에 조수경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도 이번 성과를 본 후에는 완전히 승복했다.사람들은 그 내막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조수경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라고만 생각했다.앞으로 조수경은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옆에서 조수경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대표실 안.비서 손건호가 서류 파일 하나를 손에 들고 있다. 바로 조수경의 업무 보고서가 들어 있는 파일이다.“보스, 좀 보시죠.”두텁게 쌓인 서류는 상당히 무게가 있어 보인다.무진이 눈을 들어 손건호를 한 번 쳐다본 후, 고개를 숙여 눈앞의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몇 분 동안 집중해서 문서를 모두 살폈다.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진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보고서를 다 확인한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이렇게 많지?”손건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는 조수경 쪽을 직접 주시하지 않고 따로 사람을 보내 지켜보게 했었다.그러나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조수경의 이 업무 실적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았다.손건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했다.“지금 조수경 씨의 이 업무 실적이라면 이론상 팀장의 위치까지 승진해야 합니다.”무진은 어렴풋이 조수경이 이렇게 하는 목적을 알아챘다.지금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가 조수경을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이런 방법을 썼을 테고...“묵살해!”손건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담당 부서의 책임자가 제출한 겁니다. 묵살할 방법이 없습니다.”만약 묵살해 버린다면, 회사 내의 많은 직원들이 실망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어쨌든 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여기에 이렇게 버젓이 있는 이상, 누구
조수경의 표정이 좀 어정쩡했다.사실 마음속은 성연에 대한 원망으로 꽉 차 있었다.고택에 찾아갔더니, 안금여와 강운경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강무진도 자신에게 어찌나 냉담한지.조수경은 성연이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생각했다.물론 강씨 집안에서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 주었겠지만, 외부인이 송성연에게 이런 명품들을 선물한 적은 없을 것이다.송성연 쪽에서부터 손을 쓰기로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성연은 자신들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강골이었다.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수경의 얼굴에는 거꾸로 억울하고 불쌍한 표정이 가득 차 있었다.“성연 씨, 당신 생각을 이해해요. 앞으로 꼭 무진 오빠와 거리를 둘 게요. 다만...”조수경은 성연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말했다.“나는 할머님과 고모님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고모님과 할머님은 지금 나를 전혀 만나시려고 하질 않으세요.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어 성연 씨를 찾아온 거예요. 성연 씨가 나를 용서해 준다면, 두 분도 나를 다시 만나 주실 거라고 믿어요.”조수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찾아왔는가 싶었더니, 알고 보니 조수경은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택에 찾아가면, 무슨 일을 하든 훨씬 편리할 테니까.“할머니랑 고모가 어떻다고요? 그 분들 뜻이에요.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나도 두 분 어른의 뜻은 못 꺽어요. 나를 핑계로 해서 그 분들을 설득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건 말도 안 돼는 일이에요. 생각도 하지 말아요.” 성연이 딱 잘라 말했다.자신의 마음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을 본 조수경은 얼굴의 미소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래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는 그냥 우리 두 사람의 오해를 풀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때는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어요. 송성연 씨, 정말 미안해요. 나는 정말 일이 이렇게 되는 걸 원한 게 아니에요.”“조수경 씨가 무진 씨와 거리를 두기만 한다면,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생길 리가 없겠죠.”성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조수경을 쳐다보았다.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