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도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성연과의 산책으로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다.하루 종일 바쁘게 보낸 뒤, 성연과 오붓하게 보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무진이 곁에 있으면 성연은 아무것도 마음 쓸 필요가 없는 듯한 기분이다. 안심하고 모든 걸 무진에게 맡기면 되는 듯한 느낌.그래서인지 성연의 온몸이 나른해지며 걷는 걸음도 일정하지 않았다. 마치 뼈가 없는 듯이 무진의 손을 붙잡은 채 허리를 안고 앞으로 걸어가는 성연의 온몸이 무진의 몸을 누르는 듯하다.코끝으로 전해지는 옅은 향기가 무진의 심신을 편안하면서 즐겁게 했다.거리를 걷는 동안, 주위의 사람들 모두 무진과 성연에게 눈길을 주었다.우선, 두 사람의 외모가 정말 뛰어났다. 아무렇게 사진 한 장을 찍어도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생김새다.또 다들 궁금한 표정이다. 도대체 무진과 성연이 어떤 관계인지.그도 그럴 것이 한 사람은 교복을 입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양복을 입고 있는 아주 이상한 조합이었으니까.무진은 성숙해 보이는 외모이긴 하나 나이가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딱 봐도 기운이 아주 강해 보였다. 성연은 아주 예쁘게 생겼지만 아직 풋풋한 청소년의 기운이 느껴진다. 무진에 비해 다소 앳되어 보이는 모습.구석에 있던 두 여자애가 작은 소리로 토론하기 시작했다.“저 두 사람, 동작이 저렇게 친밀한 걸 보니 딱 봐도 커플이겠지? 아저씨가 어리고 귀여운 여자와 함께 한 모습이 정말 잘 어울린다. 바로 내 심장을 찔렀어.” 여자아이가 성연과 무진을 보면서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하지만 그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두 사람의 나이차를 봐. 그리고 옷차림도. 딱 봐도 남매구만. 잘생긴 남자는 아마 저 여자애 오빠일 거야. 남매 관계가 아주 친밀하고, 아주 정상이네.”결국 무진은 너무 성숙해 보이고, 좀 판에 찍은 듯해서 성연의 남자친구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저들이 보기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무슨 오빠야? 저 남자 눈빛
말하면서 자신과 무진이 이런 모습으로 거리를 걷다니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마침 옆에 옷가게가 보이자 성연은 속으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그리고 아예 무진에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요.”성연은 바로 옷 가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옷걸이에 걸린 옷들 중에서 원피스 하나를 대충 골라 피팅 룸에 들어가 갈아입었다.갈아입은 성연이 밖으로 나오자 고개를 들던 무진의 눈에 감탄의 빛이 서렸다.성연의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다. 성연이 입은 오프 숄더 형태의 붉은색 원피스는 상당히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아랫부분의 트임 디자인은 뽀얀 긴 다리를 드러내었고, 포니테일로 묶었던 머리를 풀자 완전 여리여리한 어린 숙녀였다.몸매도 상당히 좋아서 어느 일류 모델에게도 뒤지지 않았다.이때 옷 가게 주인이 다가와 성연이 입은 모습을 보고 칭찬했다.“선생님, 여자친구 분이 이 옷을 입으니 너무 예뻐요. 몸매가 정말 좋군요.”“감사합니다.”성연은 조금도 겸손하지 않게 말했다.성연의 외모와 몸매에는 마대를 씌워도 보기 좋을 것이다.무진의 정장 슈트에 맞춰 주기 위해 성연이 고른 것은 도발적인 스타일의 스커트였다.성연의 지금 옷차림을 보면 아무도 그녀를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여자친구란 말을 들은 무진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잘못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터.이렇게 성연은 의상으로 이미지 변신의 효과가 아주 뚜렷하다는 게 증명되었다.가게 주인이 계속 옆에서 칭찬했다.“두 분 분위기가 정말 좋으시네요. 두 분 외모가 이렇게 훌륭하시니, 나중에 태어나는 아기도 틀림없이 매우 사랑스럽겠어요.”성연은 가게 주인이 이 방면으로 화제를 끌고 갈 줄은 몰랐다.억지웃음을 지으며 손사레를 쳤다.“아니 뭘 벌써? 아직 멀었어요.” 옆에 선 무진이 성연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분부대로 하지요.”가게 주인이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다들 그러는데, 얇은 입술의 남성은 차가운 성정이지만, 한 번 사랑에 빠지면 죽을 때까지 간대요. 아가씨
사실 성연은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냥 지금 이 느낌이 꽤 괜찮게 느껴진다는 것 외에.그리고 왠지 무진에게 맞추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었다. 행동을 하기 전에 어떤 결과도 고려하지 않았고, 어떤 속셈 같은 것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대로 자연스럽게 그때의 상황 순응했을 뿐.성연은 언제나 마음이 내키면 내키는 대로 해왔다. 다른 것은 여태껏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이리저리 걸어가던 두 사람은 영화관 앞을 지나갔다.성연이 무진을 잡아 세우자, 무진도 성연을 따라 발걸음을 멈춰 세우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성연이 옆에 있는 영화관을 가리키며 물었다.“무진 씨, 이런 곳에 가 본 적이 있어요?”영화관을 한 번 쓱 쳐다본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하긴, 명문재벌 가문의 도련님이니.’성연이 속으로 혀를 찼다.어려서부터 후계자로 키워졌고, 둘째, 셋째 작은할아버지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 어디든 마음 편히 드나들진 못했을 것이다.영화를 본다든지 하는 일은 더욱 힘들었을 터.강무진의 하루하루는 수업과 서류로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함께 지내며 살펴보니, 강무진이 얼마나 재미없는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효율성만 고려한 완전 틀에 박힌 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직 집과 회사만 왔다갔다하며 개인 여가생활이나 오락 활동과는 담 쌓은 생활이었다.사실 무진은 나이도 많지 않으면서 마치 늙은이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성연이 적극적으로 제안했다.“가요, 내가 당신 데리고 영화 관람 체험을 하러 갈게요. 예전 시골에서 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과 자주 영화를 보러 갔었어요.”이전의 시간을 언급하는 성연의 얼굴에 약간의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시골의 학생들은 진실하고 대범했었다. 도시의 아이들처럼 그렇게 옹졸하지 않았다.시골에서는 서로 쉽게 하나가 되어 어울릴 수 있었는데…….이전의 성연은 친구가 아주 많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북성에 오면서 오랫동안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못했다.이런 생각들을 하니 영화를 보러
무진과 성연이 영화표를 구매했다.어쩌면 별로 인기 없는 영화인지. 영화관 안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관람객은 영화관의 절반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하지만 이 정도면 영화 보는 분위기는 충분했다.성연과 함께 영화를 보며 무진은 잘 참았다.미스터리 영화였지만 무진은 그다지 스릴감을 느끼지 못했다.영화 스토리는 시작만 보고도 결말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확실히 영화는 재미없었다.그러나 성연과 함께 있으니 이것도 꽤 괜찮은 느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 마침내 데이트 느낌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영화는 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성연이만 쳐다봐도 아주 눈과 마음이 즐거웠으니까.무진은 아예 턱을 괸 채 성연만 바라보았다. 팝콘을 집어먹으며 스크린을 쳐다보는 성연은 꽤나 진지해 보였다.입안 가득 먹이를 문 햄스터처럼 볼이 불룩한 것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무진이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볼을 폭 찔렀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왜 그러냐는 듯 눈빛으로 무진에게 물었다.무진이 그녀 앞에 있는 팝콘을 가리키자 성연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팝콘 부스러기가 뺨에 묻은 줄 알고 있는 성연에게 무진이 대신 팝콘을 건넸다.사실, 성연이 너무 사랑스러웠을 뿐이다. 다시 영화에 몰입하는 성연을 본 무진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손을 거두었다.한 시간 반이 흐른 후, 드디어 영화가 끝났다.영화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잇달아 일어나 나갔다.영화관을 나와서 마지막 남은 팝콘까지 다 먹어 치운 성연이 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이 영화, 스토리가 별로야. 예고편은 아주 재미있을 것 같더니, 본편은 좀 실망스럽네. 완전 사기야.”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 꽤 기대했는데, 막상 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아주 나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대했던 것과의 격차가 좀 심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영화를 본데다 비교적 깔끔한 영화다 보니 나름 괜찮은 경험이었다. “다음에 보고 싶은 게 있으면 평론을 먼저 보고 오자.” 무진
이튿날 깨어나 원기를 완전히 회복한 성연은 늘 그랬듯이 학교로 등교했다.무진은 당연히 회사로 출근했다.자료들을 모두 수집하고 정리한 손건호가 대표실로 들어와 무진을 불렀다.“보스, 곧 회의가 시작됩니다.”고개를 끄덕인 무진이 의자에서 일어나 손건호의 손에 들린 자료를 받아 들고 회의실로 갔다.WS그룹에서는 최근 남성 시계를 새로 출시했다.오늘 아침 회의는 바로 이번 신제품의 홍보모델을 선정하기 위해 열렸다.“총괄대표님…….”무진이 들어오자 자리에 앉아 있던 고위 임원들이 모두 일어나 무진에게 인사했다.예전과 달리 지금 무진은 이미 WS그룹에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실권자였다.옆에 앉아서 방청만 할 뿐 아무런 의견조차 낼 수 없던 그 무능한 인물이 아니었다.무진의 능력과 엄청난 수완을 확인한 후, 모두 무진에게 납작 엎드렸다. 무진 밑에서는 어떤 업무도 감히 대충할 수 없었다. 다음 번 자리를 빼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닐까 두려워하며 말이다. “앉으시죠.”무진이 담담하게 말하고는 상석에 앉았다. “강 총괄대표님, 이번에 추려본 홍보모델 후보 명단입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 훑어보십시오.” 한 임원이 일어나 전전긍긍하며 손에 든 자료를 무진에게 건네주었다.홍보모델을 선정하는 것 같은 사소한 일은 평소라면 무진도 담당 부서에 맡긴다.이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회사에 남아 있을 필요도 없을 테니까.손 가는 대로 모델후보들에 대한 자료를 넘기던 무진은 그냥 보기만 할 생각이었다.그런데 돌연 소지한의 이름이 명단에 있는 것을 보자 잠시 손을 멈추었다.그런 무진을 본 임원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제 생각엔, 이번 신제품의 홍보모델로 소지한 T가 아주 적합한 것 같습니다. 소지한 씨의 이미지와도 아주 잘 어울리고 말입니다.” “고성재도 괜찮아요. 지금 여자애들은 이런 여리여리한 어린 남자애들을 더 좋아합니다. 소지한의 영향력도 물론 크지만 영화에 적합할 뿐이에요. 이런 홍보모델로는 고성재가 더 낫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보스 무진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비서 손건호가 바로 물었다.“보스, 무슨 까닭으로 이런 결정을 하신 겁니까?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소지한은 분명히 작은 사모님과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담담하게 비서를 힐끗 쳐다보며 무진이 대답해 주었다. “적은 가까이.”‘성연이 소지한과의 관계를 자신에게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 알아보는 수밖에.’소지한의 어디가 그렇게 대단한지 알아볼 참이다.손건호는 곧바로 무진의 뜻을 알아차렸다.‘지금까지 아무 말 안하더니, 지금 보니 우리 보스, 이 일에 엄청 신경을 쓰고 있군.’‘여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던 거야.’‘아니, 질투심이 폭발한 거, 맞지?’손건호는 공적인 업무를 이용해서 자신의 연적을 정탐하는 보스를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만약 예전에 보스에게 이런 말을 말했더라면 틀림없이 자신을 바보 멍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보니, 역시 세상사 돌고 도니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특히나 사랑이라는 건 너무 심오하지 않은가.WS그룹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성연은 그 시각에 호텔에서 소지한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계속 촬영 중이었다.더 이상 옷을 바꿔 입지 않아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옷을 갈아입었다.여자들은 모두 예쁜 옷을 좋아한다지만, 이렇듯 수없이 갈아입으면서 비로소 알았다.새 옷으로 갈아 입는 일도 육체노동이라는 걸.이번 한 번으로 충분히 겪어봤으니 두 번 다시는 체험하고 싶지 않았다.중간 브레이크 타임에 소지한이 성연이 가장 좋아하는 패션후르츠주스 한 잔을 들고 다가왔다.눈으로 주스를 확인한 성연이 즉시 손을 저으며 말했다.“커피. 정신 좀 차리게.”물론 성연은 버텨낼 수 있지만, 프로 모델이 아니다.그래서 자신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촬영에 영향을 줄까 우려했다.“너무 힘든 거 아니야? 아니면 내일 다시 할까.”소지한이 성연의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허심탄회하게 말해서 성연이 촬영한 결과가 확
모두가 서두르는 가운데 속도를 내면서 성연의 촬영이 재빨리 마무리되었다.이제 더 이상 이리저리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소지한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데리러 온 서한기와 같이 성연이 촬영현장을 떠났다.소지한은 사진작가가 찍은 성연의 사진을 넘겼다.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이 모두 아름다웠다.어느 각도에서든, 어떤 조명 아래 찍은 것이든 모두 다 훌륭했다.어떤 모델들을 세웠을 때보다 만족스러운 사진들이었다.성연이 할 생각을 안해서 그렇지 하기만 했다하면 이렇듯 사람을 놀래킨다.소지한은 촬영 현장에 남아서 아주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사진들을 살폈다.그런데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 소지한의 모습을 본 매니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이 사진들,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이나 보는 거야? 이제 그만 봐, 할 말이 있으니까.” “예술을 감상할 줄 몰라.”가볍게 코웃음을 친 소지한이지만 매니저가 일이라고 말하자 그대로 사진을 내려놓았다.매니저가 곧장 말했다.“WS그룹에서 신제품 홍보모델로 널 쓰고 싶대.”WS그룹의 제품은 업계에서 알아줄 만큼 최상의 품질을 자랑했다. 수많은 스타들이 WS그룹의 홍보모델이 되려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실정이다.일단 WS라는 꼬리표를 달기만 하면 이후 어느 방면에서든 그 위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고 보면 된다.이건 소지한에게도 좋은 기회였다.소지한이 비록 대단한 영화 배우이지만 WS그룹과의 콜라보가 더해진다면 그의 위상이 더 높이 올라갈 건 자명하다.매니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멋대로 혼자 결정을 내리지 않고 소지한의 의견을 물으러 왔다.그러나 그가 바로 확답을 하지 않자 매니저가 긴장하기 시작했다.“아이고, 조상님들, WS그룹이라는 이 이름, 더 이상 내가 말할 필요도 없이 너도 잘 알 테지. WS는 정말 명품 중의 명품이야. 만약 이번에 콜라보를 하기라도 한다면, 이후 작품은 완전 네 마음대로 고르는 거야.”“설마 지금은 아니지?” 소지한이 눈썹을
손건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마음속으로 군시렁거렸다.예전의 보스는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도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짐작이긴 하지만, 결국 작은 사모님 때문이겠지? 소지한이 돌연 결정을 번복할까 걱정인 거겠지.비록 이렇게 속으로 투덜거리지만, 손건호는 착실히 야근을 할 것이다.그날 밤, 회사에 남은 손건호는 밤새 계약서를 작성했다.무진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9시가 다 되가는 시간이었다.요 며칠 바쁘다 보니 집에서 성연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집에 돌아오자 집사가 바로 마중을 나와 무진의 손에 든 외투를 받았다.“도련님, 따뜻한 국물 요리 좀 드시겠어요? 저녁에 준비한 국이 아직 따뜻할 겁니다. 작은 사모님이 도련님 오시면 드리라고 특별히 남겨 두신 겁니다.”집사의 말을 듣던 무진이 동작을 멈추었다.“정말 그녀가 나에게 남기라고 한 겁니까?”“네, 도련님 요즘 많이 힘드시다고 돌아오시면 따뜻한 국물이 생각날 수도 있으니 좀 데워 놓으라고 작은 사모님이 당부하셨습니다.”무진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본 집사는 성연이 오면서 무진에게 많은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했다.자신들 같은 노인네들은 그저 그 변화에 기쁘고 위안이 되었다.“그러죠.” 무진어 말투는 차분했지만, 말을 하며 올라간 입 꼬리는 더 이상 내려오지 않았다.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보아하니, 그동안 성연에게 잘해 준 게 헛된 게 아닌 듯하다.‘요것, 인제 날 생각해서 챙길 줄도 아네.’무진이 거실로 가서 성연의 모습을 찾았다.평소에 자신이 돌아오면 늘 호들갑스러운 성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어째 오늘은 아주 조용했다.무진이 이상하다는 듯이 집사에게 물었다. “집사님, 성연이는요?”“작은 사모님은 조금 전까지도 여기서 게임을 하고 계셨습니다.” 집사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방금까지 여기에서 봤는데…….’안으로 더 들어간 무진이 소파에 웅크리고 있는 성연의 모습을 보고 순간 마음이 녹았다.방금